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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평점 :
조경란이라는 작가가 백화점에 대해서 쓴 것이 의아했다. 사실, 어느 작가가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썼다해도 한번은 물음표를 그렸을 것 같기는 하다. 나에게 백화점이란 현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니까 말이다. 나도 한때 퇴근하자마자 회사건물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에 물건을 사든 사지 않든 들락날락 거리곤 했던 때가 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사버리고는 다음달 카드청구를 두려워하며 일종의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명분으로 삼기도 했으니 말이다. 밝고 쾌적한 그 공간에서 빛나는 물건들을 보면 갖고 싶은 모든 것이 내것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움, 나아가 나의 경제적 무력감까지 느끼고 했던 그 공간.. 그런데 막상 그 물건을 집으로 가져와서 보면 살 때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아주 오랫동안 아마 지금도 백화점이란 곳을 삶의 아주 중요한 거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도서관에 하루 종일 있다가 백화점을 들리곤 한다니까 어딘가 좀 의아하긴 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혼자 밥을 먹기 뭐할때는 백화점 식당이 좋다는 이야기며, 유행이 한참 지난 구두를 수선하러 백화점에 가서는 망설이는 모습 등 작가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덕분에 그 시절의 나의 모습, 내 기분, 사건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도 오래 살았나,하는 생각에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내용은 아버지께 값비싼 점퍼를 선물하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때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물질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바짝 정신이 차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