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야간비행 - 정혜윤 여행산문집
정혜윤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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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I know not what tomorrow will bring.

-페르난두 페소아

 

이상하게 나는 경어체(~ㅂ니다)로 쓰이거나 편지 형식으로 쓰여있는 책을 싫어한다. 몰입이 안된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 책은 시작부터 미스 양서류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표현까지 나와... 아예 기대가 없었다. 서두에 이상하면 그냥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형식이 불편함에도 어느덧 이 책에게 스르르 마음을 열고 있는 나를 보았다. 필리핀 보홀의 사람들 이야기 때문에 그랬을까. 가난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와 마음을 조금씩 이 책에게 주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페르난두 페소아와 리스본 이야기가 나오니 어쩔 수가 있겠는가. 한번 유럽여행을 하게 되니 두번은 더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유럽으로 스페인을 생각하면서 그림 한장 없는 이 책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소리없는 감동을 느낀다.

저자처럼 리스본에 가게 된다면 <최후통첩>을 고할 것들의 목록을 써 가서 그 장소에서 읽어보리라 다짐해본다. 아주 작게 중얼거리게 될지라도. 내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경험은 더욱 그렇다.

당시에 제 마음은 어두웠지만 내가 사는 세상도 어두웠지만 저는 빛과 함께했다고 느낍니다. p.275

이 부분을 읽다가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힘들었던 시기에 어렵게 떠난 여행이라면 그 시간이 인생 전체에서 보았을 때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 본 자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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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 부는 사람 - 모든 존재를 향한 높고 우아한 너그러움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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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기이한 삶을 지켜보며 내가 느꼈던 의문들은 책을 찾아보면 해결될 것이고 그런 지식을 제공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지식의 궁전은 발견의 궁전과 다르며 나는 발견의 궁전의 진정한 코페르니쿠스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그 이상이다! 나는 그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하지만 거미는? 거미조차도?
거미조차도.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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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여행법 - 소설을 사랑하기에 그곳으로 떠나다
함정임 글.사진 / 예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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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카뮈는 27번 국도 옆 공동묘지의 양지바른 곳에 묻혀 있었다. 나는 ‘알베르 카뮈’라 새겨진 돌 위에 손을 얹으며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최고의 아름다움은, 그리움과 슬픔을 동반한다는 걸 나는 오랜 시간 수많은 글과 수많은 여행지를 통해 깨달았다. 카뮈가 생의 마지막 2년을 보낸 곳, 그리고 정오의 태양 아래 영원히 잠들어 있는 곳, 루르마랭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간절한 슬픔을 느꼈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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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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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도 태도이고 ‘요리하기’도 태도인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생각해서 하다보면 결국 하나의 태도, 삶에 임하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p.142

피셔 할머니의 말씀처럼 가난은 가난할 때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삶 속에 항상 있는 가난과 결핍을 나름의 스타일로 다스리는 것이다. 즉 늑대를 피하기만 할 게 아니라 맛있고 아름답게 요리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p.228
M.F.K 피셔 <늑대를 요리하는 법>

어린 시절에 읽은 어린이 위인전 중 <퀴리 부인>에 등장하는 구절. 퀴리 부인이 연구에 몰두하던 어느 날, 체리 몇 알과 차만 마시며 일을 하다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아마도 방사능 때문이었겠지만, 내가 어릴 때 떠올렸던 ‘체리 몇 알과 찻잔’은 오래도록 의식 속에 남아 있었다. 열정으로 사는 사람의 몸을 채워주던 가장 ‘깨끗한’ 음식으로, 가장 정결한 정물로.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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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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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처음의 <비상의 죄>와 <평지에서>를 읽었다. 그저 그런 사랑에 관한 에세이로군 했다. 그런데 마지막 <깊이의 상실>을 읽고 어제 밤 잠을 청하려던 것을 끝까지 다 읽고 잤다.

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깊이를 상실 했다는 말이 작가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책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평범한 우리들이 더할 나위없이 큰 행복을 느끼는 것은 사랑할 때이다. 그야말로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비상 말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종교 또는 예술로 비상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 가장 평범한 방법이다. 작가가 말했듯 사랑은 마법과 진실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여 불가능한 것을 이룰 수도 있을 것 같게 만들고, 어쨌든 결국 진실됨을 요구하기 때문에(진실이 없는 사랑은 곧 끝나게 되니까..) 높이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을 깊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의 초반이 한없는 비상이라면 오래된 사랑, 세월이 쌓인 사랑은 서로를 깊어지게 만든다. 세상에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은 참 많지만 용기의 댓가로 짧은 시간 안에 내면의 크기를 가장 확장시키는 것 또한 사랑일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사랑을 잃었다. 갑작스러운 병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말이다. 그것을 '비상의 죄' 다시 말해 '누군가를 사랑한 댓가'라고 표현한다면...  참으로 매정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비상의 죄 인지도 모르겠다. 그 비탄의 심정이야 제 삼자가 어찌 이해할까. 이 글을 읽으며 가슴 아팠다니보다는 차라리 비탄이란 것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그 형식을 본 것만 같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최소한 그렇게 느꼈다. 원제는 Levels of Life이다. 수직의 척도로 지상 최고의 행복에서 비탄이라는 나락으로의 추락... 사랑의 매혹은 이런데서 우리를 이끌어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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