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가 들어가면 타협과 체념과 친해진다. 가장 비극적인 타협은 무의미와 하는 악수다. 내가 유한한 존재이고 나의 삶이 역사책의 주석 한 줄에도 끼이지 못하고 그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를 담담하게 읽어 낼 수도 있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악의 현존도 수긍하고 감내해야 한다.  

감히 삶의 의미, 본질 따위를 논할 수 있는 오만은 예술작품과 종교들이 떠맡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전부인 마냥 오도방정을 떠는 드라마에 중독되고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자문하는 문학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착각일지라도 나의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단지 그냥 어쩌다 뻗어나온 잔챙이 정도로 나와 나의 삶이 폄하되는 것을 맨정신으로 견딜 자신은 잘 서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마냥 취해 있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은 우리보다 질기다. 우리보다 세다. 우리가 죽고도 남는 것들은 쉼보르스크의 말처럼 박물관에 갈 것이다.  

독특한 자서전이었다. 태어나 살고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집착하는 것 같은 외연적인 풍경은 희미한 자서전. 오히려 내면적인 의식의 흐름과 인식의 성숙에 초점이 맞추어져 독자를 아리송하고 난감하게 하는 약간은 불친절한 자서전이었다. 자신의 생애가 외적인 경험면에서 빈약하다,는 프롤로그에서의 그의 엄중한 경고를 명심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자서전이 출간되지 않는 조건으로 제자이자 비서에게 이 자서전의 내용을 구술하게 된다. 여든이 넘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 융은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라고 말한다.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는 사실 좀 난감했다. 끊임없이 언급되는 꿈의 얘기, 연금술에 대한 천착, 신비주의적인 태도가 낯선 이물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이물감은 어느덧 하나의 감동과 경탄의 감정 속에 녹아 버렸다. 어쩌면 불편한 낯섦이 나의 무의식의 원형으로 조금이나마 다가가기 위해 뚫어야 했던 투박한 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융 자신도 대부분의 사람과 자신과의 차이점을 '칸막이벽'들이 투명하여 그 뒤의 것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더욱더 큰 본질적인 것, 의미로운 것들과의 연결 속에서 자기를 응시하는 자아의 모습이 결국 융이 얘기하고자 하는 궁극의 의미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과거의 기억들을 조각조각 이미지로 떠올리며 마치 꿈같다,고 느끼고 지금 집착하고 경험하는 것들이 순간 순간 무의미하다고 되새김질할 때 단편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실재이다. 그러니까 나는 안다. 지금의 것들이 언젠가는 다 무너지고 스러지고 마침내 '내'가 '나'라고 느끼는 이 절대적일 것만 같은 존재의 주체감마저 흩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이 허무의 지점에서 그 두껍고 무거운 철책을 더 밀고 나가 마침내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 역사들, 신화들의 거대한 원형의 흐름 속에 그 허무를 싣고 장려한 존재의 의미를 일깨운 것이 그의 위업이다. 결국 융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는, 나는, 태어나 마땅했고 숨쉬고 꿈꾸고 사랑하며 어떤 더 큰 뿌리와 의미로 내달아 가도록 되어있는 숙명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가 얘기하는 숙명은 비극적이고 허무한 의미의 것이 아니라 존재의 의미론적 진동과 닿아 있는 그것이다. 그의 유신론이 교화적인 것이 아닌 지점과도 겹친다.  

다름 사람들이 모두 모르는 것을 홀로 안다고, 생각했던 그는 실로 고독했다. 수많은 적들과 싸워야 했고 그럼에도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음에 때로 두려워하고 절망하기도 했다. 그의 절망은 아집이나 오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노자가 "모든 사람이 명석한데 나만이 흐리멍덩하구나''라고 했던 고백은 그의 노년에서도 유효했다. 그는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현상과 인간이라는 현상이 너무나 큰 것이 때문에.  

인생과 인간을 무한히 크고 의미있는 것으로 세우는 일이 이 시대에는 이단으로 취급받는다. 현세의 욕구충족과 악의 현신에 걸치적거리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수단화하고 기계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욕망에 비끄러 매는 것은 사실 삶과 존재의 의미를 흐리멍덩한 것으로 지워 버려야 가능한 일들이다. 생떼같은 젊은이들이 산재로 스러진 얼룩은 이미 우리가 터치하는 액정스크린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미와 다름 아니다.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하려는 매트릭스 안에 우리는 오늘도 갇혀 그 안을 자유의지로 활보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견딘다. 

그의 자서전은 의외의 마침표를 가지고 온다. 뭉클했다. 위대한 노심리학자, 의사는 어리광처럼 덧붙인다.  

내게는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이라고 한 바울의 조건문이 모든 인식 중에서 최초의 인식이며 신성 그 자체의 진수인 것처럼 여겨진다. <중략>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견딘다"(<고린도전서> 13:7).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다.

 

결국 사랑이구나....


댓글(23)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19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9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9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10-1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도 이 책 읽으셨네요.
이 책 너무 어렵지 않아요? 나는 정리를 해내기 힘들었어요.
지금 블랑카님의 리뷰를 보며, 아 그렇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말 독특한 자서전이라는 점에 동감해요~

blanca 2010-10-19 19:07   좋아요 0 | URL
마고님 따라 읽은 거예요. 마고님 리뷰 읽고...저도 생각보다 너무 안 읽혀서 왜 별점이 그렇게 높나 했어요^^;; 정말 독특했어요. 너무. 후반부로 가니 왜 사람들이 그렇게 이 책을 좋아했나, 수긍이 가더라구요...그런 의미에서 마고님 고마워요...

마녀고양이 2010-10-19 19:17   좋아요 0 | URL
근데 말이죠.........
나 블랑카님이 추천한 <사도세자의 고백> 읽는 중인데,
이 슬픔을 어쩌면 좋을거냐 말이죠! 자자, 책임져요!

blanca 2010-10-19 19:37   좋아요 0 | URL
지금 여기서 놀아요. 공주님께서 늦은 낮잠 중이라 오늘 밤 어떻게 될지--;; <사도세자의 고백> 마지막에 영조가 정조한테 왕위이양할 때 완전 대박눈물나요. 저 콧물,눈물 다 뺐잖아요. 오늘밤 읽으시면 너무 슬프실텐데요.. 낮에 읽으세요^^

프레이야 2010-10-1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또 장바구니행이에요.^^
일목요연하면서도 정곡이 읽히는 리뷰, 감동적으로 가슴 울리는 한 점, 고마워요.^^
무의미와의 악수를 오늘도 하나 더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존재의 의미론적 진동과 닿아있는 숙명, 그런 값진 생과 인간으로서 나는 소중하고,
그 소중함이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나만 가치있고 명석하다고 생각하는 현대판 나르시스들에 비해 노자나 융의 말은 의미가 아주 큽니다.

blanca 2010-10-19 19:3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저를 너무 띄워 주십니다.^^;; 꼬옥 소장하고 천천히 읽어 볼만한 책인 것 같아요. 사실 초반부에 좀 지루해서 덮어버리고 싶은 욕구도 좀 있었지만 역시 많은 리뷰어들의 극찬이 맞더라구요. 프레이야님, 언제나 저의 서재를 방문하셔서 소중한 댓글 달아주시니 고마워요. 저 그 이쁜 사진 보고 말았잖아요^^;;

2010-10-19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0-1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융의 이런 면이 있었군요.

<인간과 상징> 에서만 그를 만났었는데.. 말이죠. 올려주신 글을 읽으니, 그의 눈길이 느껴집니다.

blanca 2010-10-20 21:41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융이 솔직히 비호감이었는데 대략 그의 무게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구요. 이렇게 내면에 줄곧 전 생애를 걸고 천착하는 것, 아무나 못하는 거잖아요...<인간과 상징>은 못 읽어봤어요. 정작 그의 저작은 읽어 보지도 못하고 아는 체 한 것 같아서 부끄럽네요..

양철나무꾼 2010-10-20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융은 융만으로 읽히지 않고,프로이트와 묶어 세트로 인식 돼요.
그래서 일까요?
그의 외로움이 자가당착이라는 생각이 들고,그가 말하는 사랑이 가식 같아서 말이죠~

그런데,이렇게 따뜻한 시선의 페이퍼라니...저도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요~^^

blanca 2010-10-20 21:44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안그래도 프로이트와 지지고 볶는 얘기도 나오더라구요. 프로이트가 성이론을 마치 신앙적 교리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다 마침내 그와 결별하고 마는 얘기. 융이 프로이트에 아버지를 투사했다고 고백하더라구요. 솔직히 저도 이 둘은 약간 비호감이었답니다. 그런데 자신의 한계, 무지,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노년이라니...이런 모습은 참 낯설고 대단한 것으로 뵈더라구요. 사실 노년이 되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미화하고 윤색하고 자신의 이론,주장을 합리화하고 싶어지잖아요. 그걸 뛰어넘은 모습이 감동적으로 느껴졌어요.

2010-10-20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2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1 1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10-2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제가 알기론 유럽쪽에선 프로이드나 융의 심리학은 이제 폐기처분이라고 알고 있는데. 프로이드 이론이 융 이론보다 그런 대접을 더 받고 있긴하지만 융 또한 이제는 그렇게 예전처럼 대접 받지 못하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쩌면 저 말, 자신이 이해받지 못하다는 말은 자신의 미래를 정확히 본 듯해요.^^

blanca 2010-10-21 20:43   좋아요 0 | URL
제가 융의 이론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서 융의 이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자신의 꿈을 지나치게 예지몽처럼 과장하는 대목은 저도 상당히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정신과 치료에서 약물치료와 프로이트식 상담은 절충점을 찾아야 하는 대목도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기억의집 2010-10-22 09:29   좋아요 0 | URL
물론 저야 심리학에 대해선 개뿔도 몰라서 잘 모르겠지만.
제 친구중에 미국에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랑 무지 친했어요. 고등학교 내내 붙어다녔으니깐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미국 가서 지금 미국 산지가 20년이 넘고 20년동안 한국에 종종 나오면 꼭 저랑 붙어다니다가 미국 가는 친구인데.

그 친구랑 이번에 어떡하다가 연락이 끊어졌어요. 이제 끝나는구나 싶었는데 그제 연락이 왔더라구요. 그 친구도 저랑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 있는 자기 남동생한테 부탁하고 어쩌고 해서 제 핸폰으로 연락을 했어요.

2010-10-22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누군가를 가장 쉽게 울릴 수 있는 화제가 있다.
어머니에 대한...
읽는 이를 속수무책으로 오열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아주 드물게... 

 

"너는 영웅이 될 것이다. 너는 장군이 되고, 가브리엘 단눈치오가 되고 프랑스 대사가 될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담배를 물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보석을, 모자를 팔고 때로는 시장에서 야채를 팔았던 이 늙은 유대인 어머니는 언제나 어린 외아들의 식탁 위에 비프스테이크를 대령하고 부잣집 도련님 부럽지 않은 입성을 갖추게 했다. 그리고 뭇사람들의 멸시와 비아냥거림 앞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예언처럼 아들의 미래를 읊조리곤 했다.  

그.리.고. 이 소년은 자라서 2차 대전 종전 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며(규정과 어긋나긴 하지만), 프랑스의 대사가 된다. 그는 물론 로맹가리다. <자기 앞의 생>의 에밀 아자르이기도 하며,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하여 시대의 아이콘이 된 배우 진 세버그의 남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당치 않은 예언이 발포되는 순간이면 가장 어머니를 미워했다던 바다 같은 눈을 지녔던 소년은 그것을 몸소 구현해 냄으로써 생애의 걸작을 스스로 완성한 셈이 되었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제 어머니를 잃고 바다 앞에 엎드린 마흔을 넘은 사내가 복기하는 어머니와의 유년, 청년기는 그 특유의 익살과 재치, 사물과 현상을 예리하게 꿰뚫는 예민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장대한 서사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로맹가리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의 니스에 정착하기까지 난민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이 늙고 병든 여자의 노동에 의지하여 성장하게 된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과목마다 과외교사를 붙이고, 어린 아들이 위대한 작가로 성장했을 때를 대비해 멋들어진 필명을 함께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 극성 어머니의 거의 신앙 같은 아들에 대한 애정과 숭배는 로맹가리를 인간의 존엄과 정의에의 굳건한 신뢰와 인간됨의 명예에 대해 말하는 작가로 키우게 된다. 그것은 이토록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이 해피엔드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자 그가 쓰는 일을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시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영국의 비행 기지에서 새벽 서너 시까지 털장화를 신고 곱은 손을 호호 불며 중편이라도 쓰겠다고 버둥거렸던 그의 열정은 어머니의 헌신에 대한 하나의 의리였다. 그의 삶은 아들을 위해 비어내어 바스러지고 만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어머니 삶에 대한 하나의 대리 재건이었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 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인 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그 여명기에 결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죽는 날까지 찬밥을 먹어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여자가 당신을 안아서 가슴에 품어준다고 해도 조사에 불과할 뿐. 우리는 버림받은 개처럼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무덤으로 돌아와 짖어대는 것이다. 

2차 대전 공군에 복무하던 그는 삼년 간 어머니와 편지로 대화한다. 프랑스를 대표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언제나 전진하기를 독려하고 적들 앞에서의 굴복을 경계하는 어머니의 날선 조언, 충고들은 하늘에서 하나씩 사라지는 동료들을 목도하며 그 자신 죽을 고비를 수차례나 넘기면서도 언제나 고질병인 절망하지 않는 낙관으로 그를 버티게 한다. 

마침내 개선 장군이 되어 영토 해방 훈장과 레지옹 도뇌르와 무공 훈장, 메달들을 주렁주렁 달고 주머니에는 자신의 소설의 영어판과 프랑스어판을 담고 금의환향한 그를 맞아준 것은 어머니가 삼 년 동안 전장에 보낸 이백오십 통의 편지가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 한꺼번에 써서 친구에게 맡겨 규칙적으로 아들에게 당도하도록 한 어머니의 슬픈 깜짝쇼였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삼 년 전 아들과의 이승에서의 탯줄만을 남긴 채 용서받지 못할 반전을 준비하고 죽어버렸던 것이다. 

마지막 문장은 '나는 살아냈다.'다. 로맹가리는 화자(어쩌면 그 자신)의 입을 빌려 자신이 죽은 뒤 하늘을 유심히 보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새로운 별자리. 어떤 신의 코를 이빨 전체로 악물고 있는 인간 개의 별자리를. 개개인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낙관주의가 무너지고 난 마지막에 대한 자신의 답편으로 이해할 수 있기를. 

어머니의 해피엔드이기를 소망했던 그가 그 아름다운 결론을 마땅히 보아야 할 사람의 시선에 고정시켜 주지 못하고 마침내 권총자살로 자신의 삶을 맺은 것을 그의 결론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 한다. 오리온 자리 옆에 결국 삶은, 존재는 의미롭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신 앞에 으름장을 놓으며 빛나는 마침표를 첨언한 로맹가리가 내려다보고 있을테니까. 

 


댓글(36)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12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2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10-12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blanca님! 저도 이 책 읽었어요. 저는 이 책 읽을때 지금은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로맹 가리가 히틀러를 죽일수도 있었지만, 어머니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는 부분이 엄청 좋았어요. 그 문장이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당연하죠;;) 그 문장에 담긴 유머가 정말 너무 좋은거에요. 그러나 제가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유머보다는 그의 인생에 대한 쓸쓸함이에요.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같은. 단편집의 으뜸이죠.

blanca 2010-10-12 21:2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읽으셨군요. 평이 확 갈리더라구요. 단편집은 아무래도 덜 친절하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로맹가리가 유머가 많긴 해요. 다락방님은 그의 인생에 대한 씁쓸함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왠지 다락방님은 읽었겠다, 싶었어요. 왠지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비로그인 2010-10-12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앞의 생>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네요. 로자 아줌마의 시신에 온갖 향수를 뿌려주며 마지막까지 함께하던 모모... 그리고 여러 어머니들이 떠오르는군요. 카뮈의 어머니, 바르트의 어머니, 보르헤스의 어머니 그리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품고 있을 만한 그런 평범한 자식처럼 여길 수 없었노라던 고은 시인의 어머니까지... 잘 봤습니다^^

blanca 2010-10-12 21:30   좋아요 0 | URL
후와님, 안 그래도 저도 로자 아주머니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싶더라구요. 역시 작가는 자신의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나 봅니다. 저는 사르트르의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스티브 킹도. 카뮈와 바르트, 보르헤스의 어머니들도 그랬군요.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는 모녀와는 또다른 그 어떤 절절한 끈끈함이 있는 것 같아요.

기억의집 2010-10-12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지만 로맹 가리의 엄마가 끔찍하게 느껴지네요. 자식에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 부모들의 열정을 뭐라고 해야할까요? 무서워요. 로랭 가리는 엄마의 끔찍한 헌신에 성공한 케이스죠. 대부분이 미치광이 헌신이 실패를 하는데.
로맹가리의 평전을 읽어보고 싶기는 해요. 특히나 진 세버그와의 관계에 대해서. 정말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의 뒤를 이어 자살한 것인지도 궁금하고.

blanca 2010-10-12 21:33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ㅋㅋㅋ 벌써 제 주변에 약간 그런 성향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긴 합니다. 저는 극성과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거의 게으른 수준이라 일부러 조금 자극을 받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며느리 생각도 해봤답니다. 그런 모자 관계에 개입된 제3자가 느낄 박탈, 상실감. 진 세버그 넘 이뻐요. 기억의집님은 혹시 진 세버그의 영화를 보셨나 궁금합니다. 너무 보고 싶은데 사야 하나 생각중이에요. 진 세버그 때문제 죽는 게 아니라는 식으로 유서에 암시를 흘리긴 했는데 그 부분이 되레 더 진 세버그를 의식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평전 참 좋다는데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안 납니다.

프레이야 2010-10-1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블랑카님 페이퍼 오늘도 고맙습니다.^^
새벽의 약속,은 담아갑니다.
로맹가리의 저 흑백초상을 한참 들여다보게 돼요.
신앞에 으름장을 놓으며 빛나는 마침표를 첨언한, 이런 문장을 쓰는 블랑카님이 사랑스러워요.

blanca 2010-10-13 10:49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읽어 주시고 이런 댓글 주셔서 감사한걸요. 오랜만에 눈물흘리며 읽은 소설 같아요. 왜 사람들이 로맹가리,로맹가리 하는지 조금은 알겠더라구요...

2010-10-12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0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0-10-1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고 싶어요. 제목이 많은 여운을 남기네요.
어머니가 참으로 좋은 영향을 끼쳤어요.
님의 맛깔스러운 글을 읽으며 오늘도 화이팅을 외쳐봅니다.
요즘 몸이 좀 피곤해요.

blanca 2010-10-13 10:54   좋아요 0 | URL
세실님...그러셨군요. 그러실 수 있고 그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몸이 피곤하셔서 어쩌지요? 운동은 하시는지. 저는 요가가 참 좋더라구요. 몸이 피곤할 때 하면 오히려 몸이 개운해지는 게. 강추합니다.

전호인 2010-10-13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리뷰만 보아서도 글을 짐작하게 하지만 새벽의 약속 보관함에 넣습니다. ^^

blanca 2010-10-13 21:58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그렇죠? 예, 보관함에 넣어두셨다 시간 나시면 꼬옥 읽어 보세요...후회 없으실 거예요.^^

양철나무꾼 2010-10-1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가장 쉽게 울릴 수 있는 화제는 어머니'라는 말에 공감을 했던 터라,
'읽는 이를 속수무책으로 오열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말도 믿어 의심치 않으나,
그래서 당분간 멀리 할려구요.

이 가을엔 속수무책으로 오열하고 싶지 않아서요~^^

근데,글이 참 좋아요.
자꾸 들락거리게 되요~

blanca 2010-10-13 21:58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완전 처지는 책이랍니다. 게다가 요새 하늘 보셨죠? 이런 회색 하늘이라니. 이런 시기에는 되도록 밝은 유쾌한 얘기들을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자꾸 들락거리시면 좋잖아요 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10-1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눈치오가 되어라...글쎄요...제가 좋아하는 작가이긴 합니다만 선뜻 그와 같은 남자가 되고 싶진 않은데...왜 아들에게 다눈치오처럼 되어라고 했을까요...남자다운 애국심? 혹시 블랑카 님도 다눈치오를 좋아하나요?

blanca 2010-10-14 20:27   좋아요 0 | URL
노자님, 저는 다눈치오를 몰라요^^;;; 노자님이 한 수 가르쳐 주셔야겠는데요? 노자님은 어떤 작가를 제일 좋아하는지 궁금해지네요. 그리고 정말 고전 분야에서는 모르는 작가가 없고. 저보다 어리신데도(맞죠?) 저보다 배로 더 성숙하고 박학하신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브리엘 다눈치오(1863~1938)는 애국주의 성향이 강해서 파시스트로 분류되지요.이탈리아는 크로아티아를 자기들 안마당이라고 여깁니다.크로아티아가 베네치아 공국의 영토이기도 했지만...여하튼 1차대전이 끝나고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 되어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의 영토가 각각 독립국이 되는데 크로아티아도 그랬지요.그래서 예전 베네치아 공국의 땅이라며 다눈치오는 특공대를 이끌고 피우메(현재 리에카)를 점령하여 이탈리아 애국주의에 불을 붙였지요.

그의 장편 <죽음의 승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어쩐지 일본의 미시마 유키오 분위기가 나는데, 시들시들 사느니 젊었을 때 불같이 사랑하다 애인과 함께 강물에 투신해 죽는 이야기입니다.이 소설은 일제 때 조선의 젊은 엘리트들도 좋아했습니다.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린 작가죠.물론 지금은 잊혀진 작가인데 이탈리아 파시즘의 역사를 언급할 때는 반드시 언급되는 독특한 작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외국작가는 국내에선 거의 애호가가 없습니다.

blanca 2010-10-15 17:55   좋아요 0 | URL
아, 베네치아 공국 안에 크로티아가 들어가 있었군요. 자세한 댓글 감사합니다. 노자님 얘길 듣고 보니 다눈치오가 지극히 파시스트로 보여집니다.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군요^^;; 대체 어떤 작가일까요? 클라이스트 좋아한다고 하셨죠?

노이에자이트 2010-10-16 16:34   좋아요 0 | URL
극한의 사랑,극한의 아름다움 등등은 아무래도 퇴폐주의 아니면 파시즘이 되기 쉬운가 봅니다.<죽음의 승리>는 시중에서 구할 순 없고,예전 금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에 있었습니다.도서관에선 구할 수 있을 거에요.

클라이스트 작품선은 요즘도 시중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작품도 재밌거니와 괴테와의 미묘한 관계때문에 서양에선 많이 언급되는 작가지요.

2010-10-15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5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5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6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6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10-19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요즘 왜 이리 잠잠하신지요?

blanca 2010-10-19 17:40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이유는 간단하답니다.--;; 아이가 낮잠을 안잡니다. 밤이 되면 같이 쓰러집니다. 그리고 안쓰니 더욱 못쓰고 못쓰니 더욱 안쓰고 그렇게 되네요...

stillyours 2010-11-0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어제 KBS 북쇼에 갔다가 이 책 보자마자 블랑카님 생각이 났어요.
어서 읽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책 표지를 쓰다듬었답니다. :)
로맹 가리, 너무 좋아요. 멋진 그이.

blanca 2010-11-01 22:35   좋아요 0 | URL
moon님 북쇼에 가셨어요? 우아..이 책이 소개되었던가요? 저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책꽂이에 멀리 꽂아두지도 못하고 그냥 책상 옆에 눕혀 놓았어요^^;; 무언가를 보고 제 생각이 났다는 그 자체가 참 유쾌한 기분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나귀 가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향해 내뻗었던 촉수들을 하나씩 거두어 나의 내면으로 던져 놓는 그 시간, 잠들기 직전 나의 소원들을 정렬해 보곤 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하루가 그럭저럭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더 욕심이 나서, 하루를 망쳐 버린 날이면 그 상처를 다독거리기 위해서 그 소원들이 다 실현된 내일의 공상 속에 잠들곤 했다.  

이제 삶이 더 이상 내일의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게 되면서 나의 소원은 줄고 작아지고 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 실현을 꿈꾸는 그 허망한 과정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죽어간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에 대한 무기력하고 허약한 반역을 꾀하는 것임을 때로 머리로 자각하면서도 나의 호흡은 그런 명징한 가끔의 깨달음을 지워 버린다.  

프로이트가 죽기 전 '나는 그리움을 품은 채로 무로 가는 길을 준비한다',며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바로 이 <나귀 가죽>이었다. 죽음을 의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로 해석했던 그가 욕망과 생을 맞바꾸며 마침내 파멸하고 마는 청년의 얘기로 삶의 문을 닫고 걸어 나간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프로이트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과 해명을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대신한 것만 같다. 삶은 욕망과 등가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고 추구하다 때로는 좌절하고 가끔은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며 생을 소모한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생의 본질적 경향성도 결국 욕망과 다름아니다.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주체를 갉아 먹는다. 발자크가 바람과 행함이 존재의 원천을 고갈시킨다고 얘기한 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성에 대한 슬픈 지적이다. 

프랑스의 19세기의 시대상을 방대한 소설 모음으로 재현하려 했던 그의 원대한 구상 안 철학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이 작품은 현실과 그 현실의 원리, 법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의 몰락한 귀족의 자제인 라파엘은 죽음을 결심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골동품점에서 만나게 된 골동품상 주인에게서 소원을 이루어 주는 나귀가죽을 얻게 된다. 이 가죽은 소망의 강도와 횟수에 비례하여 그 둘레가 줄어들게 되어 있는데 남은 가죽의 크기는 바로 남은 목숨을 표상한다. 소망이 이루어지면 질수록 삶은 점점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되는 것이다. 라파엘은 그토록 바라던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지니게 되었을 때 정작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게 된다. 무언가를 욕망하고 이루게 되는 것이 가져오는 상실이 그 욕망을 가능케 하는 주체와 원인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라는 잔인한 깨달음은 나귀가죽으로 상징화되어 단순하고 거칠게 우리를 위협한다. 욕망 그 자체가 악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삶임을 우리는 어쩌면 선험적으로 알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강하게 욕망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꺼림칙함과 두려움이 그 방증이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 존재의 비극이 있다. 어느 지점이든 우리가 소원해서 간 그곳은 목적지로 두고 바라봤을 때의 그곳이 이미 아닌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초조해지고 그 목적지가 단지 지루한 길의 하나의 경유지에 불과했음을 스스로에게 가르쳐 주고 만다. 다음에는 또 눈을 돌리게 된다. 새로운 욕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욕망을 거치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것은 흡사 하나의 묘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백 년이 지난 오늘, 라파엘과 나는 다른 점보다 닮아 있는 대목이 더 많다.  

라파엘이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간 요양지에서 뭇사람들이 그를 벌레 피하듯 피하고 따돌리는 장면은 현재진행형이다. 사회는 황금과 멸시를 먹고 산다는 발자크의 말은 소름끼치도록 잘 구현되어 있다. 이 세상에 불행 말고 완전한 것은 없다,는 그의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 라파엘의 최후는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마저 무자비하게 차단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려 버린다. 그의 냉소, 그의 잔인할만치 예리한 삶에 대한 통찰, 마치 독자와 일대일로 대면이라도 하고 있는 듯이 사람의 보편적 갈등, 고뇌의 근저를 저며내는 그의 언사들은 때로 섬뜩하다. 

   
 

 그리고 너, 제복만 입지 않았을 뿐 시종들 중 상 시종인 너, 뻔뻔한 식객이여, 네 성질은 집에다 두고 다녀라. 너를 맞아준 주인이 음식을 소화시키는 속도에 맞추어 너도 소화시켜라. 그의 눈물에 눈물을 흘려라. 그의 웃음에 웃음을 터뜨려라. 그의 빈정거림도 듣기 좋은 것처럼 받아들여라. 그를 헐뜯고 싶으면 그의 실각을 기다려라. 세상은 이런 식으로 불행한 자에게 은전을 베푼다. 그를 죽이거나 내쫓는 식으로, 아니면 그를 타락시키거나 거세시키는 식으로.

 
   

 

욕망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사회, 소원을 말해보라고, 나는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여신이 되겠다고 꼬드기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오늘도 나의 욕망을 결국은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자존심들을 뚝뚝 부러뜨리고 울며 걷는다. 그건 하나의 착각이고 그건 하나의 거짓이고 사기라는 것을 결국은 알게 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라파엘의 '나귀가죽'을 저마다 손 안에 꽈악 움켜쥐고서.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10-1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읽으셨군요.욕망을 완전히 채워주는 성취가 과연 있을까요...이 글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blanca 2010-10-11 22:04   좋아요 0 | URL
노자님, 결국 읽었어요. 발자크 이름만 들어도 지루한 소설들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우선 너무 재미있어서. 골짜기의 백합도 읽을까 하고 있답니다. 정말 몸이 천재라고 했던 이유가 십분 수긍가는 작가입니다.

반딧불이 2010-10-1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계속되는 발자크 읽기 덕분에 제가 읽는 발자크 평전이 더 풍요로워지네요.

blanca 2010-10-11 22:04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한 작가에 빠지면 전작주의를 시도해 보고 싶긴 한데 좀 엄두가 안 나기도 하고 그러네요. 소세키 읽어나가시는 모습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요.

2010-10-10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1 2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10-1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급 관심과 호감. 사람의 욕심은 소원이 이루어지더라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근데 저도 나귀가죽 가지고 싶어지네요. 사고 싶은 라이더가죽자켓보다~~~

blanca 2010-10-11 22:08   좋아요 0 | URL
라이더 자켓 ㅋㅋㅋ 정말 통하네요. 기억의집님 소원 있으세요? 정말 큰 소원. 사실 저도 정말 말도 안되는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게 이루어지면 생명줄이 준다면 사양하려구요^^;;

꿈꾸는섬 2010-10-12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요즘 어째 힘든 책은 읽기가 싫어요. 쉽게 읽히는 책만 읽고 싶어하고 있어요.

blanca 2010-10-12 21:34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사실 저도 그래요. 요새는 삼백 페이지 이상 되는지 꼬옥 확인한답니다.^^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설 때에도,
10분의 1초 만에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떨어질 때에도,
그의 손톱은 자라나고 있을 터였다.  
-<교수형> 중-

조지 오웰이 서 있는 지점이다. 꼬챙이처럼 마른 힌두인 죄수가 교수대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웅덩이를 피하려고 몸을 피하는 장면에서 그는 문득 깨닫는다. 한창 물이 오른 생명의 숨줄을 뚝 끊어버리는 일의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식민제국주의 통치의 일원으로 복무하던 관료가 불현듯 피통치자의 생명의 무게를, 그 나름의 존귀함을, 하필 그 숨통을 끊어버리려는 찰나에 저릿하게 깨닫게 되는 이 지점에서 조웰은 자신의 삶이 다할 때까지 고통스럽게 서성거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그의 사서 했던 방황과 가책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그의 글을 끊임없이 읽게 된다.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을 소원했던 그의 에세이들은 그의 소망 만큼 대부분 정치적 비판 의식을 저변에 깔고 있고 재치있고 직설적인 문체들로 독자들을 흡입하고 있다. 식민지 버마에서의 경찰 생활 동안 겪은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회고와 참회, 이후 이어진 자발적 노숙자 체험의 절절한 르포식 보고, 파시스트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참전한 스페인 내전에서의 교묘한 혁명세력의 탄압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 맹목적 민족주의에 대한 예리한 해부 같은 정치적이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아내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을 필요없이 아이들을 들처업고 따라가 마당에서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물속의 달''이라는 상상 속의 펍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다. 오웰은 그러한 펍이 실재한다고 한껏 착각하게 만든 다음 독자에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여 김빠지게 만드는 익살도 부린다. 오웰의 이 기발한 상상의 펍은 후에 동명의 비슷한 분위기의 대규모의 펍체인 사업을 낳게 했다고 한다.  

이 책의 표제작이가도 한 <나는 왜 쓰는가>와 위선과 가식으로 현실의 정치의 은유처럼 오염된 글쓰기를 비판한 <정치와 영어>가 사실상 이 에세이 선집의 하이라이트로 보여진다.  

   
 

명료한 언어의 대적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 마치 오징어가 먹물을 뿜어대듯 말이다.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서평과 문학적 평론에 대한 그의 시니컬한 의견도 인상깊다. 그는 생업으로서의 서평쓰기에 꽤나 곤역을 치른 모양이다. 모든 문학적 판단은 본능적인 선호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그의 지적은 결국 내가 어떤 책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를 읽는 이에게 교묘하게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자책을 끌어 내었다. 어떤 책에 대한 진정한 반응은 주로 '나는 이 책이 좋다'거나 '나는 이 책이 싫다'는 것이란다. 그 뒤에 따라붙는 것은 합리화라고 못박는다. 어느 정도 근저에 있는 그 불편한 진실을 저며내어 보여 준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조금 서운한 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간디에 대한 소견>에서 마하트마 간디를 인본주의, 즉 인간을 택하지 않은 내세적 이상주의자로 조심스럽게 비판한 대목은 갑자기 정수리에 찬물을 맞은 기분이었다. 오웰은 내세적 이상과 인본주의의 이상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하느님 아니면 인간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혁명은 인간을 택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대목이나 결국 이 생에서의 인간들의 삶이 개개로서 존귀함을 인정하자는 그 단순한 정의가 종교의 내세관에서 어떻게 비틀어지고 묵과되는 지에 대한 예리한 지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종교 그 자체를 싸잡아 비판한다기 보다는 그것을 교묘하게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현실에서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숙명적인 것으로 감내하도록 조장하는 비열한 책동과 인간중심 혁명을 대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그의 시선은 언어의 외피를 뚫고 진동하는 인간의 그 허약한 위선, 어리석음을 걸러내고 만다. 마치 내가 들킨 기분이다. 결국 언어와 그 사람의 내면이 조우하는 지점에서 글이 나와야 한다. 자신의 사상과 괴리되어 저만치 현학적이고 위선적인 어휘들로 대충 감침질한 어휘들의 향연을 자신의 글로 내세우는 것은 비열하고 패악적인 정치인의 자기 과시와 동떨어진 일이 아니다. 오웰은 더 나아가 이러한 언어의 타락이 정치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연쇄 반응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언어의 체에 그것들을 통과시키게 된다. 전체주의 세력들이 끝까지 언론 장악을 포기하지 못하는 대목만 봐도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언어의 부정적인 영향력에 대한 직시는 그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하나의 경고지점이 된다. 오웰은 언제나 자신의 글이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그 자신이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라고 고백한다. 사회적 비판의식이 결여되고 현실과 괴리된 글쓰기가 가지는 생래적 한계는 결국 그것이 우리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적인 존재이며 정치와 떨어져 일상을 영위하는 영광을 누릴 수 없다. 시장에 가서 오천 원이 넘는 대파 한 단을 몇 번이나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아줌마는 '정치'를 떠올린다. 오웰이 비단 정치적인 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부책감을 토로했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시대가 정치적이지 않다고 항변할 도리가 없는 것을 보면 결국 우리는 모두 정치적인 시대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숙명인가 보다. 그러니 모든 글쓰기 또한 정치적인 인식이나 비판,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유독 불편한 사람이 있다. 잊어 버리고 묻어 버리고 싶은 것들을 자꾸 끄집어 내어 시선을 돌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자꾸 찾게 되는 이상한 마력을 갖춘 사람은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매력은 깐깐하고 남에게 교묘하게 세력을 행사하려 조언을 남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단점을 주저없이 먼저 끄집어 불쑥 보여주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충고는 값지다. 자신을 먼저 무장해제하고 악수를 권하는 상대에게 우리는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다. 조지 오웰 당신은.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꾸는섬 2010-10-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관심 갖고 있는 책이에요.^^

blanca 2010-10-05 21:21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 대박 감기 앓으면서 읽었어요. 그래서 솔직히 아주 몰입하지는 못했습니다. 분량이 많고 아무래도 정치적인 글들이 주라 책장이 팍팍 넘어가지는 않더라구요.

순오기 2010-10-05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조지 오웰에 대한 명쾌한 소감이 멋지네요.
나는 제목만 보곤 '글쓰기 안내서' 같은 책인줄 알았어요.ㅋㅋ
조지 오웰의 매력을 다시 확인하게 되네요. 추천 꾸욱~~

blanca 2010-10-05 21:2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조지 오웰에 왜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토록 열광하는 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0-0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조지오웰은 쉽지 않아요.
님의 리뷰도 쉽진 않아요.

하지만,먼저 자신의 손을 내미는 사람에 대응할 수 있는 건 두가지죠.
그 손을 맞잡거나 거부하는 것.
그게 조지오웰이고,blanca님이라면 거부할 수 없겠는 걸요~^^

blanca 2010-10-05 21:22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제 리뷰가 쉬워졌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나봐요. 조지오웰은 쉽지가 않아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0-10-05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 안 그래도 만지작대고 있었는데,
읽어야겠는걸요..... 아아, 이 책에 대한 단상 정말 맘에 쏙 든다...
거기다 조지 오웰의 의견 자체가, 너무나 공감되네요.

어릴 때 조지 오웰에 미쳐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든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blanca 2010-10-05 21:23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구입하셨어요? 조지 오웰에 미쳐있던 시절이라, 너무 멋있잖아요. 저는 이십 대 때 책을 너무 안 읽었어요. 참 후회됩니다.

poptrash 2010-10-0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버튼을 클릭하고 싶어하는 손가락을 외면하고 있는데 이런 글을 올리시면 orz...

blanca 2010-10-05 21:23   좋아요 0 | URL
poptrash님, 기똥차게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승주나무 2010-10-0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출판사에서 조지 오웰 에세이가 출간되었네요. 최근 가장 애정을 갖고 탐독한 작가가 조지 오웰입니다. <1984>, <카탈로니아 찬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도 챙겨 읽었죠. 조지 오웰로 인해서 나의 언어가 더욱 정직해졌다는 점에서 저는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 사서 봐야겠어요~ 블랑카 님께 땡스투를 바칩니다^^

blanca 2010-10-06 21:55   좋아요 0 | URL
승주나무님 반갑습니다.^^ 저는 정작 조지 오웰의 소설들을 읽어보지 못했어요. 그러니 오웰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도 감히 비판할 깜냥도 못됩니다. 승주나무님의 땡스투라니, 감격스럽니다.^^;;

like 2010-10-0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읽다보면 조지 오웰이 시대를 뛰어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고리오 영감에 이어서 좋은 책들을 멋있게 소개해 주시니 좋네요~

blanca 2010-10-06 21:57   좋아요 0 | URL
like님, 저도 그 책 읽고 정말 뭔가 한데 툭 맞은 기분이 들더라구요. 내가 누리는 무언가가 빚지고 있는 부분을 그렇게나 적나라하게 체험에서 우러나온 절절함을 덧대어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어요. like님이 좋다 하시니 저도 좋습니다.^^

기억의집 2010-10-0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잠깐만요
제가 이따가 들어올께요^^ 지금 지인하고 약속을 해서 ......

blanca 2010-10-07 21:29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기다려지는데요^^;;

기억의집 2010-10-07 23:40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는 코끼리와 파리와 런던이었는데...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웰은 자신이 생각했던 혹은 의도했던 것들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었어요. 것도 폭발적인 감정이나 값싼 감정이 아닌 체 말이에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에세이스트가 몇 명이나 될까 싶더라구요. 미국이나 영국의 전통상 에세이에 자기 신념이나 주장을 명확하게 하는데, 저는우리식의 값싼 감정의 토로가 아닌, 유안진같은 여성수필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우리 수필하고 달라서 충격이 굉장했지요.

간디에 대한 조지 오웰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의 다른 글을 보면서 유추하건데 그는 절대로 감정의 눈으로 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님이 말한대로 타인이 불편하게 느끼겠지만 자신의 주장을 썼겠죠. 우리 문학이 배워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기억의집 2010-10-07 23:41   좋아요 0 | URL
여하튼 사고 싶어요. 사실 책 주문하면서 이 책 할까 하다가 마일리지로 보태서 주문하려고 안 했어요. 으이구, 저 왜 이렇게 사나 몰라요^^

穀雨(곡우) 2010-10-0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조지오웰에 대해 분명한 시각을 담았네요. 불편한 양반, 조지오웰.
그래도 블랑카님 글 읽으니 읽고픈데요. 어렵다는 것은 때론 지극히 간단한 이치를
애둘러 말하는 것인지 모르잖아요. 아님 확신이 없다거나 애매모호한 경계에 설 때,
말이 바빠지고 글이 늘어지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했지만 블랑카님의 글이 오히려, 나는 왜 쓰는가에 적합한 거 같아요.
리뷰에 강추....^^ 책은 읽은 후에....ㅋㅋㅋ

blanca 2010-10-07 21:32   좋아요 0 | URL
곡우님, 찬찬히 읽어 보시면 이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무언가 내용이 없어지면 각종 말도 안되는 숙어, 현란한 어구들을 끌어와 쓰곤 했었는데 오웰이 완전 따악 짚어냈더라구요. 언어라는 게 결국 그 사람의 사고, 감정, 가치관의 체로 작용하는 지점을 정말 예리하게 지적한답니다. 학창시절 얘기도 재미나구요. 추천드립니다.

herenow 2010-11-1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신간서평단 도서로 선정되어 읽고 있는데, 다시 한번 책을 들쳐보게 하네요.
솔직히 조지 오웰에 별 관심이 없어서 '왜 이걸 읽어야 하나?' 내심 고민하다가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책 읽는 맛이 새록새록 느껴져 자꾸 손에 들게 되더라구요.
이렇게 맛깔스런 서평이 있기에 잠시후 올려야 할 제 서평은 무척 부끄럽게 되겠지만
새로운 이해, 새로운 감상의 폭을 넓혀주셔서 감사합니다. ^ ^

blanca 2010-11-17 20:13   좋아요 0 | URL
herenow님, 반갑습니다. 좋은 서평이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아요^^;; 책장이 술렁술렁 넘어가는 맛은 없지만 한 번쯤 두고 천천히 읽을 만한 책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부끄러우시다니요...저보다 더 좋고 나은 평이 나올 텐데요..읽어 주셔서 도리어 감사합니다^^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 내가 주저 없이 천재라고 부르고 싶은 유일한 작가다, 라고 칭찬에 인색한 서머싯 몸은 발자크를 두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발자크의 소설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 발자크를 가장 잘 대표해 주고 있고, 작가가 꼭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잘 집약한 소설을 한 권 추천해달라고 부탁해온다면, 주저 없이 <고리오 영감>을 읽어 보라고 조언하겠다고 덧붙인다. 

고전은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버석버석 말라버린 이야기를 지리하게 끊임없이 쭈욱쭉 늘여 내는 것에 불과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어 줄 작품을 들라면 주저없이 이 작품을 내밀고 싶다. 이백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파리의 저급한 하숙집을 배경으로 그려낸 인간 군상의 이야기는 시대차라는 한계는 저만치 떠밀어 버릴 정도로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과 교차하고 약동한다. 발자크가 19세기의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기 위하여 137편의 소설을 계획했고 그 안에 이 소설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다. 우리는 이 소설 첫 문장 '보케르 부인은 콩플랑 거리에서 태어난 늙은 여자다.'와 만나는 순간부터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대양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여기에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세속적인 기준에서 볼 때 뻑적지근하게 시집 잘 간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딸들의 하녀에게 그들의 스케줄을 염탐해 내어 샹젤리제의 통로에서 몰래 사랑하는 딸들을 훔쳐 볼수밖에 없다. 딸들은 돈이 필요할 때만 그를 찾아와 사랑하는 아버지!를 연호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아끼는 은식기를 우그러뜨려 팔아서라도 딸들이 정부를 두고 사치스럽게 몸치장을 하느라 진 빚을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정작 이 퇴락한 전직 제면업자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으며 초라하고 추운 하숙집에 덜덜 떨며 몸을 누인다. 그에게 딸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한, 천상의 천사보다 더 우위에 있는, 피에서 피어난 꽃들이다. 자신을 챙기지 않는 무모한 내리사랑은 어처구니없는 보복을 당한다. 내 몸 속의 심장을 꺼내어 손 위에 들고 있는 것만치 우리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녀들에게 퍼붓는 눈먼 사랑이 어떤 식으로 폄하되고 비하될 수 있느지를 목도하는 과정은 더없이 괴롭고 불편하다. 발자크의 저력은 여기에 있다. 아무도 선뜻 꺼내어 들지 못하는, 그러나 인간의 삶의 본질적 측면에 수그리고 있는 그것들에 대한 응시는 위선과 가식의 더께를 가차없이 벗겨버린다.

여기에 한 청년이 있다. 그는 가난한 법학도다. 화려한 성공에 대한 동경, 갈망, 그리고 별볼일없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 그것을 딛고 올라서고자 하는 적당히 비열하고 저열하고 미끈미끈한 탐욕, 그리고 약간의 배경 같은 양심. 작가의 말처럼 그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한다는 그 참혹하고 절망적인 기본 명제를 너무나 손쉽고 어설프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버린다. 게다가 그는 청춘이다. 발자크는 청춘에 대한 여러가지 그 설익은 자만과 어설픈 상상력을 위트있고 예리하게 지적하여 독자를 웃게 한다. 청춘은 욕망 앞에 쉽게 옷을 벗어버리고 낭만적 열정이 때로는 전부를 덮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하고도 치기어린 지점이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분별없는 욕망과 가장 순결한 자비로움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뒤섞이는 모순의 최극치를 경험한다. 가장 유치하고 비열하면서도 자비로울 수 있는 시간들.  라스티냐크에게서 그 시간들을 복기한다. 

   
 

젊은 사람들은 밤샘 공부를 하겠다고 약속한 열흘 밤 가운데에서 일곱 밤을 자버리는 법니다. 밤을 새우려면 스무 살은 넘어야 한다.  
-p.51

 
   

 

   
 

따라서 만일 청년들이 세상을 알고 몸을 사렸다면 사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p.76 

 
   

고리오 영감은 마침내 딸들에게 버림받고 장례비용도 없이 처절하고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의 곁을 지키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출세를 위하여 능수능란하게 타락해가는 법을 배워가는 청년 라스티냐크이다. 결국 이 둘은 인간의 내면 안의 두 가지 본성이자 본질이며 인생의 시기들의 은유이다.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놓고 죽는다. 그럼에도 삶은 모든 어리석은 욕망을 기반으로 지탱하는 허약하고 어리석은 청춘과 같다. 생 그 자체가 어쩌면 욕망 그 자체 같다. 무언가를 무모하고 어리석게 열망하지 않으면 존재의 그 허약한 한계와 허구성 앞에서 우리는 주저앉고 더이상 전진할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이 숙명에 대하여 발자크는 얘기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의 무덤에서 라스티냐크는 회한과 자신의 눈먼 욕망을 참회하는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다. 청춘의 마지막 눈물을 묻어 버리고 파리와의 대결을 선포하며 씩씩하게 걸어나간다.  

발자크는 그래서 위대하다. 인간의 왜소함을 이다지도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거의 유일한 작가로서.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09-3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리뷰가 게으른 제 손을 책꽂이에서 고리오 영감을 찾게 합니다. 고맙습니다.

blanca 2010-10-01 13:35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저의 독서는 대중없습니다. 반딧불이님의 그 체계적이고 진중한 독서에 비할 수가 없지요.

프레이야 2010-09-3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의 가슴 울리는 리뷰 잘 읽고
장바구니로 저 책을 모셔갑니다.^^ 좋은 글, 고마워요.
적요한 시간이에요. 작은딸은 독서기록장 정리하고 있네요.
내일 급히 학교에 제출할 일이 있어서요.ㅎㅎ

blanca 2010-10-01 13:38   좋아요 0 | URL
적요한 시간. 프레이야님 안그래도 독서기록장이 궁금했어요. 읽은 책이랑 목록을 작성하는 것인지. 은근히 번거로울 것 같아요. <고리오 영감>은 책값도 할인율이 높아 착하고 여러모로 프레이야님께 권하고 싶어집니다.^^ 저는 또 감기 폭격 맞아 헤롱거리고 있습니다.--;;

프레이야 2010-10-01 19:50   좋아요 0 | URL
전 느낌 위주로 적게 합니다.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구요.
환절기라 감기 걸리는 분들 많은데 언능 나으시기 바래요. 기온이 꽤 내려갔어요.

2010-10-01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0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선 19세기 유럽소설이라면 워낙 러시아 작가들이 대세라서 특히 프랑스 작가들은 많이 안 읽히지요.발자크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그 중에서도 <고리오 영감>이 읽히는 편이라 다행입니다.사실 발자크의 다른 작품에 비해 분량도 적당하지요.<종매 베트>나 <사라진 환상>은 두툼해서 좀 부담스럽습니다.예전에 딸에게 버림받은 아버지라는 소재를 다룬 리어왕과 비교해서 연속 읽어볼 계획을 세웠는데 지금도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blanca 2010-10-02 14:39   좋아요 0 | URL
노자님, 혹시 나귀가죽은 읽어 보셨나요? 저는 지금 이것 읽으려고 하는데 <고리오영감>만 제외하면 발자크 작품이 좀 사소한 묘사 줄줄 늘여 지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두 작품은 접해보지 못했어요. 아, 리어왕 생각은 미처 못했어요.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수도 있겠네요. 고전 분야에 정말 박학 다식한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10-02 21:23   좋아요 0 | URL
최근 번역된 건 읽어보지 못했어요.<사라진 환상>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온 겁니다.인터넷엔 광고하지 않을 거에요.이게 대표걸작인데 을유문화사에서 60년대에 나온 이후 절판되었지요.프랑스 근대사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발자크의 다른 작품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양철나무꾼 2010-10-0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천재라고 불리우는 작가들 좋아해요,일단은 개연성이 확보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서머싯 모옴도,발자크도 좋아하지요.

솔직히 전 그냥 그렇게...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로운 걸요~^^

빨리 감기 폭격을 떨고 일어나시길 바라겠습니다~!!!

blanca 2010-10-02 14:40   좋아요 0 | URL
저도 모옴 좋아해요, 양철나무꾼님. 일단 모옴 책은 재미가 보장되니까요. 감기 폭격. 지금 완전 최루탄 맞은 기분입니다. 좀 그런 얘기지만 콧구멍에 휴지를--;; 비까지 오니 완전 퍼지고 있답니다.

2010-10-01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