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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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를 찌르는 도발. 한없이 우울해질 것 같은 이야기가 품고 있는 위트조차 왠지 숙연해지는 이야기.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생각하는 약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이야기.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결국 돌아오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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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6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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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남녀 간의 미약한 이끌림이었으나 마무리는 위대한 사랑의 힘인 이야기. 우리가 꿈꾼 그대로의 삶이 아니어서 삶은 더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빅토리아 시대의 조지 엘리엇이 만든 우주 안 청춘들의 결혼 이후의 진짜 어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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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29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 책을 읽고 계시군요!!

blanca 2024-01-29 11:07   좋아요 1 | URL
2권까지 다 읽었어요. 책장이 쉽게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데, 인물이 정말 살아 숨쉬더라고요. 역시 고전은 어떤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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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의 나는 이십 대의 나를 거리에서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였던 나를 꼭 붙들고 있는 나를 과거의 나는 어떻게 볼까. 기억에 남아 있는 과거의 나를 재회하는 나의 기분은 어떨까. 이 책은 그런 걸 이야기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되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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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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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사십대의 내 앞에 이십대의 내가 나타난다면 아마도 나는 상대를 반쯤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십대에 나를 알았던 사람 그 누구도 지금 이 나이의 내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겁이 없었다. 추억 속의 나는 낯설다. 세월이라는 것은 신비롭다. 새로운 모든 걸 시도해보고 싶어했던 사람도 어느새 겁쟁이로 만들어버린다.


앤드루 포터가 돌아왔다. 텍사스 주에 사는 사십대 초반의 남자 화자로. 백인 중산층 남자. 서너 살의 아이가 있거나 없다. 결혼했다. 과거 대학 시절의 친구들과 재회하거나 혹은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젊은 여자를 통해 이삼십 대의 과거와 만난다. 나는 무언가를 세월과 함께 잃어버렸다. 그건 나다움일 수도 있고 내가 두고 온 그 무엇일 수도 있다. 대체로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들이다. 언뜻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모든 이야기가 하나하나 다 새롭게 느껴진다. 앤드루 포터 특유의 섬세한 서정성은 내가 감각했지만 언어화할 수 없었던 수많은 모호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소환하여 명명한다. 바로 그거였다. 


어떠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

-<오스틴>


첫작품에서 '나'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파티에서 우연히 주거침입을 했다 집주인의 정당방위로 살해당하게 된 십대 소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일하게 아이를 낳은 '나'에게 친구들은 이 사건의 촌평을 요구한다. 나는 옳고 그름 그 너머에 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옳고 그름에 선명하게 경계를 그을 수 있다고 믿고 흥분했던 시절이 있다. 이제 나는 그런 것과는 멀어졌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나는 일단 마음이 무거워진다. 살면서 많은 실수를 했고 그 대부분이 내가 생각했던 옳고 그름의 잣대 너머에서 벌어졌다. 나는 이제 확신이 무섭고 그 주장이 때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그가 결국 친구들에게 답을 주지 못한 그 사정을 공감한다.


<라인벡>이라는 작품은 특히 마음을 울렸다. 연인 사이에 낀 나. 이런 구도는 청춘의 친구들 사이에서 흔하다. 이상하게 그 시절은 그랬다. 연인은 꼭 교집합 친구를 부른다. 그들의 권태, 갈등의 접점에 그 친구를 동원한다. 그 시간은 아름답기도 하고 기만적이기도 하다. 이십 년이나 그런 구도 속에서 한 연인의 사랑, 권태, 이별, 재결합의 경로를 함께 통과한 내가 마침내 그들에게서 걸어나오는 장면은 눈물겹다. 그건 성장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서글프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엔 또 동원할 다른 수사가 없다. 공허한 아름다움이다.


"가끔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너무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어. 알아? 그걸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

-<히메나>


나와 내 아내 앞에 나타난 여대생 히메나. 그녀는 나와도 아내와도 어떤 묘한 관계를 맺는다. 부부는 각자 그 관계에 대해 함구한다. 어느 날 히메나가 사라지고 부부는 각성의 순간을 맞는다. 어쩌면 히메나는 그들의 과거의 자신들의 모습의 환영일지도 모른다. "히메나의 이야기는 항상 바뀐다."는 문장이 갖는 의미다. 살면서 다시 쓰게 되는 과거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공유할 수 없다. 


표제작 <사라진 것들>에서 내가 죽은 친구의 연인과 함께 하게 된 마지막 삼십 분에 느끼는 그 묘한 환희와도 통하는 이야기다. 이 감정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건 불륜도 외도도 아니다. 다만 어떤 순간이다. 앤드루 포터는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사이에 등장하는 제3자를 통한 그 모호한 비밀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통점은 그들이 환기하는 내 과거의 시간이다. 내가 감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어떤 것을 일깨우는 시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곳에서 내가 두고 온 그 무엇들을 뒤돌아보게 되는 시간. 


사라진 것들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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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23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잠자냥 님에 이어 블랑카 님도 오별이라니!!

blanca 2024-01-23 09:32   좋아요 0 | URL
요새 아주 줄줄이네요. 이제 저는 미들마치로 갑니다.

잠자냥 2024-01-23 11:11   좋아요 1 | URL
다락방 님 우리 나이에.... ㅋㅋ 이거 오별 안 주기 어렵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4-01-23 11:1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우리 나이 ㅋㅋ 정곡을 때리시네요. 이것은 마치 딱 우리 나이 남자 버전 이야기예요.

새파랑 2024-01-23 11:44   좋아요 1 | URL
40대를 위한 책인가요? ㅋ이번주에 서점가서 구매해야겠습니다~!!

blanca 2024-01-23 11:45   좋아요 1 | URL
이 책 읽으면 앤드루 포터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내가 느낀 개인적인 감정들이 실은 다 사십 대의 공통된 정서였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요. ㅋㅋ

감은빛 2024-01-24 0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이거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만드는 글이네요. 조만간 서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제목이 [사라진 것들]이라서 더 와닿는 느낌이네요.

blanca 2024-01-24 11:4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그 나이듦이 주는 소외감, 상실감이 그냥 절창이에요. 왜 내가 기분이 안 좋았지?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그랬던 게 결국 그런 거였더라고요. 강추입니다.
 
레티파크
유디트 헤르만 지음, 신동화 옮김 / 마라카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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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까지 자라다 서울에 와서 줄곧 살았다. 부산의 바다를 보며 <레티파크>를 읽기로 했다. 일부러 노력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일출과 일몰을 다 봤다. 언젠가 쏟아질 것 같던 별을 보고 감동 받았던 것처럼, 내가 늙고 죽는 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체념하는 순간을 다시 만났다. 


유디트 헤르만의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글(이 글 또한 정말 아름답다. 그냥 형식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고뇌와 고민과 정성을 가득 들인 흔적이 역력한 선물처럼)을 다시 읽으니 이 짧은 열일곱 편의 시 같은 이야기들이 의도했던 바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다채롭고 수수께끼 같은 의미가 실린 타인들의 일상"을 읽으며 사는 건 이런 거구나, 정말 이런 미소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눈물겹구나, 했다. 


모든 이야기가 다 골고루 좋았고 마음의 현을 건드렸지만 특히 좋았던 이야기를 꼽아보고 싶다.


<페티시> 

떠난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엘라의 이야기. 그 여자는 남자가 피워두고 떠난 모닥불을 다시 피우는데 유독 그 크기에 연연한다. "그녀는 불이 너무 커지면 누가 와서 자리를 함께할까 봐 두렵다." 왜냐하면 그녀는 떠난 남자가 돌아올 자리를 남겨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듯 그녀의 곁을 차지한 사람은 놀랍게도 조그마한 아이다. 어쩌면 가장 어울리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작으니까, 남자가 떠난 자리를 다 채우지 않으면서 그가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을 남긴다. 그러나 아이도 결국 떠나야 하는 날이 오고 만다. 아이는 떠나며 외친다. "우린 출발해요." 떠나는 어른은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이별에서 출발을 연상하지 않는다. 거기에 아이가 온다. 기다리는 일에 등장한 이 꼬마 손님의 반전이 아름답다. 끝과 작별에 파고드는 새로운 시작과 출발. 


실제 유디트 헤르만의 아버지와의 사연이 투영되어 있다는 <시>는 늙어가는 아버지를 둔 우리 모두에게 호소하는 서정시다. 화자의 아버지는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쳤다". 그는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한다. 나는 아주 가끔 그런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가 좋아하는 자두 케이크를 사들고. 

당시 그는 시를 견디는 연습을 했다. 그는 시를 읽으면서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그에게 몹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는 걸 말해야겠다. 우리는 함께 그걸 연습했다. 그 병원에서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을 일은 그것 외에 많지 않았으니까.

-<시>

 

어쩌면 가장 무용한 시를 이런 참혹한 상황에서 함께 연습했을까. 사위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를 붙잡고 딸은 함께 시를 읽는다. 부서지고 무너지는 아버지의 존엄을 찾기 위해. 그 마지막 보루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쓸데없어 보이는 시였다. 모든 무의미와 부조리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그 헛된 사랑의 힘. 그건 시였다.


<포플러 꽃가루>에서 모든 안정적으로 보이던 사랑은 붕괴한다. 시누이 관계였던 두 여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남자를 모두 잃는다. 그리고 그 둘만 남는다. 자연발화한 포플러 꽃가루. 사랑은 그런 거였을 거라고 마침내 체념하는 그 순간에도 그 생각마저 언젠가 버리게 될 수 있음을 상기하는 인물을 만든 작가의 머뭇거림이 너무나 좋다. 유디트 헤르만은 모든 각성의 순간을 잠정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완벽한, 완전한 깨달음은 삶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녀는 본능적으로 안다. 


<꿈>에서 같은 정신분석의를 공유했던 친밀했던 친구 사이는 끝나고, 굽타 박사라 불리는 그 의사와 테레자만 남는다. 

그는 거의 모든 질문에 답을 주지 않고, 거의 모든 질문을 열린 채로 놔둔다. 마치 단 하나의 질문에도 유효한 답은 없으며 어떤 결정에도 정말 타당한 근거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꿈>

그는 환자의 뒤에 서 있다. 조언하지도 분석하지도 않는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유디트 헤르만의 작가로서의 페르소나도 그런 것 같다. 그녀는 독자의 뒤에 서 있다. 그런데 굽타 박사가 테레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그 존재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있는 것,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은 중요하다. 흐린 형체임에도 확고한 크기를 가진 존재로서."


<교차로>에서 난동을 부리는 십대 세입자를 함부로 신고하고 내칠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은 타인의 삶 전부를 타자화할 수 없기 때문일 거다. 그 안에서 나의 과거를, 오늘을, 미래를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머니>에서 나의 어머니가 단짝 친구의 늙은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보살피고 심지어 그의 조카의 부고까지 챙기는 그 마음과도 통할 것이다. 그 오지랖은 생존의 치트키다. 나만의 것은 없다. 삶이란 그렇게 지탱할 수가 없다.


섣불리 가능한 아름다운 결말 대신 진한 여운을 남기는 모호한 말줄임표를 찍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나간다. 그렇게 여러 날이 반복되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일출과 일몰의 약속처럼 약동하는 이야기들이 빛난다. 정말 진실한 이야기는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생략된 지점은 독자의 몫이다. 

그녀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문장 하나하나는 모두 심연이라고. 이렇게 말할까, 아니면 다르게 말할까, 아니면 그냥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상책일까.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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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17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네요, 블랑카 님. 특히 <페티시>의 모닥불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입니다.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blanca 2024-01-17 11:43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진짜 좋아하실 거예요. 오랜만에 참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좋은 단편집이었어요. 정말 독특한데 잘 읽히더라고요.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는 거 사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작가는 그걸 제대로 해냈더라고요.

다락방 2024-01-17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땡투 드렸습니다. 부자되세요.

2024-02-01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2-01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