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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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언 매큐언의 <레슨>은 주인공 롤런드가 열한 살 때 피아노 레슨을 받는 장면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건 그리 특별한 도입부가 아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언 매큐언의 영리한 계략에 걸려든 것이다. 

이 이야기의 제목이 <레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격적이다. 당신이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건 당신의 상상의 영역을 뛰어 넘고야 만다. 


일단 롤런드는 이름만 들어도 연상되듯 영국의 백인 남자다. 그의 아내 앨리사는 돌도 안된 아들을 남겨두고 갑자기 집을 나갔다. 그는 졸지에 정부로부터 한부모 지원금을 받는 싱글 대디가 됐다. 그의 생계를 해결해준 공권력은 그를 사라진 앨리사의 살해 용의자로 의심하고 신문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실패한 시인이다. 

한때 그는 전도유망한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실제 그런 기대를 실현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던 피아노 강사 미리엄 코넬에게서 레슨을 받았다. 애석하게도 그 레슨은 단지 피아노 레슨만이 아니었다. 부모와 떨어져 소년들만 모인 기숙학교에서 사춘기에 진입하게 된 롤런드는 그녀의 교묘한 통제와 조종에 의해 성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에 말려든다. 그리고, 소년 롤런드는 우스꽝스럽지만 당시 쿠바 미사일 위기 상태로 전운이 고조됐던 국제 정세로 어쩌면 이 세계가 하루 아침에 멸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으로 열한 살이나 많은 그녀에게 달려가 첫경험을 하게 된다. 둘은 이를 계기로 부적절한 관계의 구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관계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된 것은 아주 나중, 심지어 롤런드가 노년기의 초입에 들어갔을 때다. 이언 매큐언은 이 아슬아슬한 어쩌면 역겹기까지 한 관계를 그 관계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사춘기 소년의 치기, 욕망, 조급함과 그 소년을 어떤 의미로든 사랑하고 소유하고 싶었던 젊은 여자의 미숙하고 불안한 통제욕과 교차시키며 놀랍도록 강렬하고 노련하게 형상화한다. 이 이야기를 이 칠백 쪽에 육박하는 긴 이야기의 저류로 은밀히 침투시킨다. 

우리는 이제 그런 위험한 경험을 하게 된 소년이 성장해 어떤 어른으로 되고 심지어 어떻게 노인이 되는지까지 그저 이언 매큐언의 세련된 언어의 쾌속정에 올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직 어린 아들을 롤런드에게 남겨두고 소설을 쓰겠다고 충동적으로 집을 나간 아내 앨리사는 언뜻 보면 무책임해 보이고 무모하다. 앨리사라는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그런 그녀가 독일 문학계의 거물이 되고 심지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성공한다는 스토리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는 위대한 소설가가 될 수 없고, 남성 작가는 가정을 유지하며 할 수 있는 그것을 여성은 갖지 않거나 기꺼이 버리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상대적으로 가정과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캐릭터가 언제나 남자였던 진부한 클리쉐를 작가가 전복한 걸까. 어떤 것을 향한 강한 열망으로 강력한 모험을 감행한 결과는 외부적인 성취가 다가 아닌 것이라는 결말은 또 다른 이야기다. 노년의 앨리사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꿈꾸던 피아니스트도 시인도 되지 못한 채 라운지바 피아니스트가 된 롤런드는 가족으로 둘러싸여 다복한 나날을 보낸다. 물론 이언 매큐언은 이런 단편적인 이야기로 만족할 작가가 아니다. 


롤런드에게는 어머니가 첫결혼에서 낳은 이부 형과 누나가 있다. 어머니 로절린드와 군인 출신 아버지 로버트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아버지는 반세기가 넘는 결혼 생활 동안 강압적인 폭군 행세를 했다. 그러나 이 거칠고 통제적인 남자는 아들인 롤런드에게는 이따금 다정한 부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롤런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에 일종의 숨겨진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로절린드의 남편이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만나 생긴 아이를 그들은 유기한다. 그리고 롤런드는 있는지도 몰랐던 그 형을 노년에 만나게 된다. 여기에는 이언 매큐언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돼 있다고 한다.


모든 것들의 이면에는 상상 이상의 스토리가 있었고, 그 모순과 불협화음과 부조화 그 사이에 삶이 있었다. 우리가 흔히 삶에 기대하는 어떤 정합성과 균형은 어느 순간 하나의 환상이자 헛된 기대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오늘 가혹했던 사람이 내일 갑자기 따뜻한 손길을 내밀기도 하고 믿었던 누군가가 생각지도 못했던 비행이나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내가 확신했던 신념들이 하루 아침에 붕괴되기도 한다. 그 엔트로피, 그 혼란이 어떤 악이나 물리쳐야 할 비정상적 상태가 아니라 삶과 생명의 치트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나 너무나 늦게 오고 만다. 


롤런드는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에게 기대했던 그 완벽함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헛되고 무의미했던 것인지 깨닫는다. 후반기에 기록한 사십 권의 일기장을 다 읽고 다 태워버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롤런드에게 죽음의 한 가지 심각한 문제점은, 이야기에서 제외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이렇게 멀리까지 따라왔으니,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pp.674


롤런드의 개인적 삶은 공적 역사의 흐름과 분리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으로 전장에 파병된 남편의 부재를 롤런드의 아버지로 채우게 된 어머니로 인해 그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독일 나치의 만행에 맞선 용기 있는 백장미단의 활약으로 아내가 태어날 수 있었고, 그들 사이에 아들 로런스가 태어날 수 있었다. 아내가 다시 자신의 고향인 독일로 돌아가 그 이야기를 씀으로써 그녀는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고, 롤런드는 대프니와 재혼해 새 가정을 이루고 진짜 사랑을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이 모든 일련의 흐름은 특별한 개인의 것이 아닌, 시대와 역사의 격랑 사이에 맞물린 혼합물이다. 이언 매큐언이 끊임없이 한 나라의 사회, 정치, 역사, 경제를 이야기하고 인물의 입을 빌려 그것에 대한 나름의 견해나 감상을 피력하는 건 바로 이런 불가분성과 불가해성을 직시하기 때문이다. 롤런드가 자신의 앞에 놓인 죽음을 애석해한 것 또한 이 새로운 세기의 역사를 목도하는 관찰자가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싱글 대디가 된 롤런드와 공동 육육아를 하다 사랑에 빠져 결국 재혼을 결심한 그 순간 말기암 진단을 받은 대프니와 함께 그녀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의 담긴 에스크강 근처에서 대프니가 아홉 살 아버지와 나눈 대화 장면이다.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어 죽음을 앞둔 딸은 아홉 살 때 그 아버지가 바로 그 장소에서 어머니와 연인이던 시절 전장에서 보낸 편지에서  "돌아가면 결혼해서 나 같은 딸을 갖자고 했대." 라고 말하며 그 순간 얼마나 행복했는지 롤런드에게 들려준다. 사랑을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시대, 표현하는 걸 약하다고 여겼던 당시에 그 문장은 사랑 그 자체로 화한 표현이었다. 사람은 죽음을 앞둔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나온 그 순간의 서사로 위로 받을 수 있다. 묘한 아이러니다. 


레슨은 이언 매큐언의 노년에 완성된 역작이다. <속죄>에서의 그 서늘하지만 찬란했던 반전의 대목을 이제 이 작가는 자신이 직접 살아낸 삶의 레슨으로 숙성하여 더 깊고 아름답고 넓은 이야기로 우리 앞에 내어 놓았다. 이야기의 힘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고, 삶은 허망하고 헛되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믿게 하는 일. 

이언 매큐언이니까 할 수 있는 그런 일.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이 매혹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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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0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다 읽고 그리고 이 리뷰를 다시 읽으러 왔어요. 블랑카 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다시 보자, 하고요. 확실히 블랑카님은 작품을 약간 멀리서 보실줄도 아는 분이라는 생각을, 지금 했습니다. 이 리뷰를 읽으면서 제가 인지한 지점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제가 인지하지 못한 지점들도 알게 됐거든요. 저는 이 책을 다 읽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과연 그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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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제는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다. 예전 같으면 주변에 물어볼 일을 AI에게 물어보고, 상담가나 친구들과 나눌 사적인 일들까지 인공지능과 나누고 있다. 무엇보다 글을 읽고 쓰는 일에 이 거대언어모델(LLM)이 끼친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독자들도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상상하는 일을 인공지능에게 위임하고 심지어 글쓰기 공모전에는 뭔가 불쾌한 기시감이 드는 창작물들이 버젓이 개인의 이름을 달고 제출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문학을 여전히 읽고 쓰는 일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아니 그런 질문 자체가 유의미한가.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이런 질문이 떠올랐고, 다행히 과정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출구를 더듬을 수 있었다. 일곱 편의 수상작이 모두 작가들 고유의 리듬감으로 흥미롭게 읽혔고, 나름의 사유의 깊이로 오랜만에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최은미ㅣ김춘영


탄광 마을에서 광부들에게 술을 팔았던 여성 노인 김춘영을 면담하는 여성 연구자가 화자다. 마지막 면담만을 남겨놓고 해발 천 미터의 험준한 산을 올라간 화자가 폭설을 만나 구술자의 집에 고립되며 우연히 만나게 되는 등산객 중년 부부와 젊은 군인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은 결국 한 인간이 타인의 고유한 경험을 간접경험함으로써 가닿게 되는 소통과 공감의 지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보인다. 이 연결은 작가 최은미의 치열하게 조탁한 문장으로 이음매가 거의 노출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아름답다. 이야기의 힘과 문장의 유려함이 만날 때 얼마나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



강화길 l 거푸집의 형태


여성 가족 서사의 서늘한 긴장감과 가족이라는 미명 하에 버젓이 이루어지는 착취와 폭력의 중층적인 구조를 이야기의 형태로 보여주는 데 남다른 재능을 가진 작가로 강화길을 빼놓을 수 없다. 친밀하다고 느꼈던 막내이모와 조카 사이에 끼어든 죽음이 가져온 파국의 내막은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김인숙 ㅣ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어느 순간 우리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보호와 위계가 역전되는 기점을 맞게 된다. 경제, 건강, 노령화 등 그 시점은 가족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 그 시간은 누구나에게 오고야 만다. 자식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기능하며 이제 약해진 부모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그건 비극일까, 자연스러운 섭리일까. 사랑해서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딸을 포기하지 않았던 엄마는 딸에게 증오와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그 어머니에게서도 그 딸에게서도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굳이 답을 주지 않고 보여주는 것만으로 이런 공감을 자아내기는 쉽지 않은데 작가는 그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김혜진 ㅣ 빈티지 엽서


주인공 여성이 헬스장에서 고춧가루를 생각하는 도입부부터 읽기를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특히나 "삶에서 사소한 정을 주고받는 일이 점점 드물어진다는 생각을 그녀는 자주 했다." 같은 문장을 맞닥뜨리고서는 더더욱. 그녀가 저지른 일은 불륜이 아니다. 그렇다고 불륜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 미묘한 지점들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과 우리가 사는 것들의 그 낙차에서 아찔해져 버리는 체험은 김혜진 작가 아니고서 누가 이렇게 탁월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배수아 ㅣ 눈먼 탐정


성경의 <누가복음>에서 죽은 예수가 엠마오 마을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하는 이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는 배수아 작가의 인장이 군데군데 찍혀 있다. 초현실, 비현실, 이런 해석들로 이 중층적인 이야기를 감침질하는 건 실례가 될 것 같다.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야기가 이토록 현실 전체를 감싸안을 수 있다는 발견은 놀랍다. 삶, 죽음, 이별 등의 거대한 추상성이 구체화의 외피를 두르지 않고 현현하는 놀라운 체험이 가능한 이야기.



최진영 ㅣ 돌아오는 밤


내 친구의 죽음 대신 직장 상사 지인의 장례식장에 참석하기 위해 무민의 나라 핀란드를 경유해 가 돌아오는 길에 만나게 되는 돌발적인 사고 앞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건 무얼까. 모든 경험, 모든 소통이 온라인화되는 이 세계에서 정작 내가 실제로 겪은 건 인간의 폭력이었다. 



황정은 ㅣ 문제없는, 하루


나는 현실적인 삶을 살고 동생은 자신의 것이 아닌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비극들로 괴로워한다. 나는 그 동생이 현실에 닿아 있지 않다고 걱정하지만, 정작 이 자매가 터널에서 만난 사고는 타인의 고통에 연루되지 않는 감각이 얼마나 큰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에게 '문제없는, 하루'라는 감각은 정작 '문제없는 하루'를 불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가해지는 그 많은 폭력들은 결국 우리에게도 돌아올 테니까.



쉽고 편리한 것들이 넘쳐나는 세계에서 여전히 작가들은 고심하고 쓴다. 그 노력과 그 노력이 가지는 힘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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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7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09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막 문을 닫으려 할 때쯤, 살짝 술 냄새를 풍기며 알딸딸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손님이 가끔 있다. 대부분 남자인데, 시집을 사는 사람이 많다. 근처에 술집이나 바가 많아서 한잔하고 돌아가는 길, 불빛에 이끌려 무심코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다.

-<술김에 시를 사다> 다지리 히사코 '책과 고양이 (그리고) 나의 이야기' 




술에 조금 취한 남자 손님이 불빛에 이끌려 이 작은 서점 문을 밀고 들어와 시집을 사가는 정경을 상상해 본다. 그는 평소엔 서점을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를 쓰거나 읽는 일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사람일 수도 있다. 먹고 일하고 자고 사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그 사이로 동네 작은 서점을 가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도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그 사이로 동네에서 책을 팔던 많은 서점들이 문을 닫았다. 이제 어린 아이가 책 살 돈 없이 그저 책을 둘러보고 가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며 작은 의자를 내어 주는 그런 서점 주인이 자생해 나갈 길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은 전투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 타령만으로 살아나갈 길은 요원하다. 그래도 이따금은 그래도 이런 글들을 읽고 안식을 얻고 싶다. 여전히 그 틈새에서 고군분투하며 지켜나가는 그 무엇들에 대한 희망과 신뢰와 기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 


"작가님, 작가님의 단편 <뉴욕제과점>을 낭독해주셨으면 합니다."

"한번 해볼게요."

<중략>

그와 함께 만든 세계가 있다.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국 문학은 재미있다'는 세계. 이 세계를 가장 먼저 함께 만들어준 김연수 작가가 항상 고맙고 자랑스럽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김승복>




도쿄의 진보초 거리. 고서점 150여 곳이 모여 있는 책의 거리에 유일한 한국어 책방 <책거리>에 대한 이야기. 그 이야기에는 놀랍게도 '책거리'를 운영하는 저자와 김연수 작가와의 사연이 나온다. 책방 주인은 책만 파는 것이 아니었다. 그 책을 읽히게 하기까지 그 여정에 독자와의 소구 지점을 빚어내는 데 수많은 관계망이 있다. 작가들에 대한 제안들, 그 제안들은 제대로 그 속마음을 전달하고 취지를 공감하며 또 그 상대의 현실과도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런데 거의 처음부터 언제나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시원하게 상대의 제안에 따뜻하고 적극적으로 응해서 그의 기세를 꺾지 않고 결국 그 책방이 흥하게 하는데 일조한 작가가 김연수라니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쓴 작가가 이 한국어 책방의 세계 확장에 기여했다니 감동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모든 행위가 교환가치로 환산되는 이 삭막한 세계에서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작은 동네 서점이 있다는 건 삶이 아무리 분주하고 소모적이어도 최후의 보루가 어디에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아무쪼록 오래오래 이 서점들이 버텨주기를, 흥하기를, 그리고 그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들이 그 위안과 안식처를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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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31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 한잔 걸치고 가는 길에 시집 1권을 사는 아저씨라니 왠지 짠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네요. 이걸 보면 아 책방은 1층에 있어야겠수나 하는 생각도 합니다. 작은 책방이 따뜻한 온기를 부디 오래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좋아하는 김연스 작가의 에피소드도 좋네요

blanca 2025-07-31 11:42   좋아요 1 | URL
우연히도 이 책 두 권을 연달아 읽게 됐어요. 언제든 문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동네서점 한 곳 정도는 있었으면, 하는 따뜻한 스토리가 많더라고요.

moonnight 2025-07-31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따뜻합니다^^

blanca 2025-08-01 07:54   좋아요 0 | URL
서점 얘기는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 같아요. 동네 서점은 추억저장고죠. 오래오래 버텨주기를…
 
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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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 조국, 민족은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슬로건이 되어 지나치게 화석화된 용어처럼 느껴지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개념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혹은 기대보다 훨씬 자신이 속한 민족, 나라, 문화, 언어에 영향을 받는다. 


잠깐 미국에 거주한 경험으로 내가 이민자의 삶을 감히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스쳐가듯 만난 이민자 친구들이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미국에서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들을 겪고 소화하고 때로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다른 피부 색깔이나 식습관, 언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오랜 기간 그곳에서 살아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미국이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인도, 한국, 이탈리아, 중국, 일본. 그들은 떠나온 나라를 "내 나라"라고 표현했다. 다시 돌아갈 일이 없어도 그랬다. 오래 전에 떠나왔어도 이민이라는 건 내가 떠나온 그곳을 녹여 융합하는 과정이 아닌 것 같았다. 



한때 트럼프의 심장 질환 주치의였던 아버지를 둔 2세대 이슬람께 이민자 극작가 아야드 악타르의 자전적 소설인 <홈랜드 엘레지>는 도발적이면서 아름다운 작품이다. 일단 픽션이라는 외피를 입은 자전적 요소의 과감한 표현이 강렬하고 생생하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들은 '그래, 이건 지어낸 소설이야.'라고 가슴을 쓸어내려야 할 정도였다. 물론 그 경계가 어디인지는 작가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 의사 이민자인 아버지가 만난 당시의 트럼프는 경제적으로 최악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병을 고치러 와준 무슬림 의사에게 보인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이후로 트럼프를 지지하게 되고 아들과 이 문제로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낳고 키운 아들 앞에서 때로 자신이 떠나온 나라를 폄하하고 미국을 칭송한다. 기회의 땅, 준법의 땅, 성취의 땅. 이 판도가 바뀐 것은 911 이후였다. 사람들은 단지 무슬림의 겉모습을 지녔다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오래전 이미 떠나온 조국, 민족, 종교를 상기시키고 배척한다. 무슬림은 존재만으로 배척, 배제,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경험을 수시로 하게 되고 각종 민감한 사안에서는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결정타가 된다. 911의 상흔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와 상처를 남겼고 이것은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온한 일상이 외부인들의 테러에 의해 언제든 유린당할 수 있다는 학습은 모두의 미래를 불안 속에 잠식시켰다. 


작가의 아버지는 환자가 제기한 지난한 의료 소송에 시달리다  결국 도망치듯 빚을 남기고 그렇게나 칭송하던 미국을 떠나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내 피의 모든 원자가 이 땅의 흙, 이 땅의 공기로 빚어졌다. 하지만 이 많은 것은 나의 것이 되지 않으리라."고 선포했던 아들의 마지막 문장은 결국 미국이 내 고향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의 설득력은 결국 작가의 필력에서 나온다.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렇게 이입해서 읽은 적은 오랜만인 것 같다. <홈랜드 엘레지>는 그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낯선 이야기다. 낯선 이야기가 일깨우는 그 고유의 공감대는 인간이라면 결국 태어나 자란 한때 기억하는 내 고향에 대한 생래적 이끌림에 대한 엘레지, 고향을 떠나 순례하는 과정이 결국 삶이라는 자각, 언제나 우리의 타인에 대한 이해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있다는 체념이 만나는 데에서 나올 것이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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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 2024 부커상 수상작
서맨사 하비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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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친구를 떠나 지구 상공 250마일 위를 선회하고 있는 우주정거장에서 반년을 넘게 유영해야 한다면, 당신은 그 기회를 기꺼이 받아들일까? 실제 이런 질문을 이 <궤도>의 작가 서맨사 하비는 받았고 놀랍게도 작가 자신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나도 당연히 아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온갖 사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까지 굳이 가고 싶지 않다. 

그런 우리들에게 이 이야기는 여섯 우주비행사들을 통해 생생한 우주 유영 간접 체험의 기회를 준다. 


아무래도 여러 단계의 각종 선발 과정과 몇 년에 걸친 훈련을 거친 이 여섯 명의 다양한 국적의 우주비행사들은 그런 의미에서 일단 대단히 용감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겪는 슬픔, 기쁨, 집착, 상실을 모른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더 강렬하게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 전부 있다. 이 몇 사람에게도 응축된 인류는 더는 종잡을 수 없이 이질적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종이 아니다. 가깝고 붙잡을 수 있는 존재다.

-pp.37


우주 정거장에서의 단 하루는 "창백하고 푸른 점"인 우리 지구의 열여섯 번의 일출과 일몰을 조망하는 일과다. 이 지상에서의 모든 일들은 사소하고 덧없다. 무한과 영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미국인, 일본인, 영국인, 이탈리아인, 러시아인 우주 비행사 각자의 시선과 관점을 통과한 지상에서의 개개인의 전사들을 간단하고 건조하게 서술한다. 대단한 서사나 인생 사연 대신 각자가 이 푸른 점에 두고 온 자신의 과거, 현재, 어쩌면 미래까지를 더 넓고 긴 시선으로 줌아웃한다. 

이 지구에서 우리가 욕망하고 분투하고 싸우고 집착하는 것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덧없는 것인지, 바깥에서 보면 그 경계조차도 흐릿한 국경을 가지고 서로 죽고 죽이는 일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폭력인지 읽는 이들은 절로 깨닫게 된다. 


이곳에서 우리 삶은 더없이 사소하지만 동시에 중대하다고, 되풀이되지만 동시에 유례가 없다고 당장이라도 일어나 말할 것만 같다. 우리 존재의 의미는 크지만 동시의 무의미하다. 인류 위업의 정점에 도달하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미미한지를 깨닫게 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가 이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위업임을 비로소 이해한다.

-pp.212



이 이야기는 하나의 드라마틱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욕망과 폭력과 파괴로 들끓는 뜨거운 지구 바깥으로 나가 그 모든 것을 조망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적 읽기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이 강요하는 관점, 타인이 설정해 놓은 욕망의 기준에 끌려가는 삶, 폭력과 경계가 모호한 애정에 지칠 때 우리가 기꺼이 우주 정거장으로 가고 싶어하는 자가 되기는 어려우니 우리 대신 그곳에 간 여섯 명의 우주비행사의 깨달음을 작가의 응축된 아름다운 언어로 대신 듣는 빛나는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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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6-24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개월까지는 좀 힘들고 한달정도라면 우주에 가보고 싶어요.우주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하고도 우주에 가고싶어하니 저역시도 보내준다면 가보고 싶네요.

blanca 2025-06-24 10:49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의 우주에 가고 싶은 이 마음도 소중하고 대단한 거예요. 저는 겁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못 갈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