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독서모임이라면, 기꺼이 참여하고 싶다.


우린 동그랗게 모여 앉아 차를 마셨지 어디로 가는지 모를 하루를 쪼개 무엇이든 한 장씩 읽어나가자 그렇게 모아서 만든 구슬들을 쿠션 보자기에 담아와 동그란 탁자 위에 풀어놓아보자. 

-박상수 <서촌 일요 독서회>



이상하게 읽기도 전에 마음이 가는 책이 있다. 이 시집이 그랬다. 파스텔 민트 단일 색감의 이 시집을 동네 서점에 주문하고 찾으러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지. 

"제가 주문한 책 왔다고 해서요."

서점 주인이 제목을 말해 보라 하자 갑자기 튀어나온 뜬금 없는 말은.

"트렁크요."

서점 주인이 "메신저 백이죠."

내가 말해놓고 내가 포복절도했다. 친절한 서점지기가 "어차피 여행 갈 때 필요한 가방들이니 그럴 수 있어요."라고 위로해준다. 


시인의 '트렁크'가 아닌 '메신저 백'을 읽는다. 오랜만에 시집을 몰입해서 읽는 경험을 하게 됐다. 시인의 어휘들은 짧은 단편들, 작은 그림들, 단편 영화를 연상시킨다. 과거에 두고 온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현실 자본주의에 소모되는 처절한 노동의 나날들이 교차하며 그 경계를 넘나든다. 아름다움을 환기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냉정한 관조를 피하지 않는다. 서정성과 서사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맞아, 시는 이런 거야, 라고 절로 수긍하게 되어버리는 마법. 


좋아해요, 라는 말이 떨리면서 흘러나오는 순간을 더할 수 없는 기분으로 좋아해요.

-박상수 <다하지 못한 마음>


내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박상수 <파견>-기울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고백을 기다리는 시간과 나를 마치 투명인간, 종이상자 하나 정도로 취급하는 근로의 나날들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이 형언하기 힘든 모순의 지점을 통과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인은 많지 않다. '언제든 밀려날 수 있는 한줌의 사람'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 누가 한숨처럼 내뱉어도

우리가  여기 모인 게 기적이야! 그런 말로 되받을 줄 아는" -박상수 <오래된 집의 영혼으로부터>


그런 정경을 그려낼 수 있게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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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4-16 09: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정리하고 구매를 자제하는 중인데, 블랑카 님의 글 때문에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blanca 2026-04-16 09:41   좋아요 0 | URL
저는 자목련님 만큼 시에 조예가 깊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 시집은 진짜 압도적으로 좋았어요. 소장하려고 줄도 박박 그었네요. 오랜만에 진짜 시를 읽는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한 가정 공동체로 묶여 서로의 가장 내밀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애증의 관계는 행복의 원천이기도 하고 불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우리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나는 전부 다 드러내어 말할 수는 없다.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가슴이 미어질 만큼 슬픈 시간들은 더 많았다. 나와 아이들의 시간도 그럴지 모른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그럴 수는 없다. 운명의 힘 앞에서, 인간의 한계 안에서.




찬탄이 나올 만한 명작이었다. 다 읽고 나니 이 특수한 집안의 이야기가 왜 이리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알았다. 유진 오닐의 가족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자전적 이야기는 그 누구의 가족사와도 만나는 부분이 있다.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빛나던 부모가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이야기, 그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보려 했지만 끝내 넘어지는 성인 자식들의 이야기는 현실 그 자체다.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먼저 도착해 있다. 사랑하지만 상대의 기대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음은 실존의 치트키다. 이러한 일들이 더 빈번히 노골적으로 일어나는 역학이 가족 관계다. 


극 중 어머니 메리는 유랑극단 배우인 남편 제임스 타이론을 따라 싸구려 호텔을 전전하다 거기에서 아이들을 낳는다. 한 명은 어려서 죽고 다른 한 명은 폐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 자신 아이 출산 후 처방받게 된 모르핀으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여름 별장에 모인 네 가족은 저마다의 고통을 떠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기대했다 원망한다. 실제 유진 오닐의 어머니는 유진을 호텔에서 낳았다고 한다. 몰락한 배우 아버지 타이론은 어린 시절의 가난에 사무쳐 미친듯이 땅을 사모으고 가족에게 쓰는 현금은 아까워한다. 언제나 가성비를 따지는 선택을 하고 그게 가족을 위한 거라 둘러댄다. 심지어 어린 아들의 폐병 요양소도 가장 싼 곳을 찾아 헤맨다.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게 비극이다.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

-pp.72


이 가족의 부유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막내 아들 에드먼드가 이야기하듯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을 전염시킨다. 우리 모두가 여기, 현재 정주하는 삶이라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타이론 가족들처럼 어느 누구나 '안개 인간'으로 언젠가는 흩어져버릴 수밖에 없는 현재를 살고 있다.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닌 이 슬픈 가족사를 재현한 희곡은 유진 오닐 사후 25년 후에 공개되는 것으로 약속을 맺었으나 그 약속은 깨지고 만다. 유진 오닐이 가장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던 아들의 자살로 더는 상처를 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게 되어서. 가장 슬픈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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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연루된다는 일은 솔직히 피곤한 일이다. 담백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삶은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끊임없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내 좌표는 이동한다. 대문자 J에게 가장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은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딜레마가 있고, 갈등이 있다. 고민 끝에 당시에는 더 나은 선택이라 여겼던 일이 현재에 와서는 깊은 회한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모든 자유 의지에 대한 생각이 모두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온다. 내가 선택이라는 걸 감히 할 수는 있는 걸까? 그냥 삶이란 이미 죽 그어진 경로고 나는 무력하게 그 경로에 놓인 하나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 걸까?




김연수와 히라노 게이치로의 만남. '윤리적 딜레마'라는 공통 주제에 소환된 두 작가의 이야기 끝에는 대담이 실려 있다. 김연수의 작품 < 근접한 세계>에는 국정 농단 사태의 폭로에 연루된 손동하라는 사람의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결정적 순간>에는 고인이 된 사진 작가의 전시회를 준비하다 우연히 마주친 작가의 성적 일탈로 인한 그의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 큐레이터의 번뇌의 사연이 나온다. 김연수의 이야기는 맑고 찰랑이는 물 같고, 히라노 게이치로의 목소리는 뜨거운 불을 닮았지만, 그 둘은 묘하게 서로 공명한다. 소설이란 결국 존재가 현실과 부딪혀 자아내는 어떤 균열을 서사화하는 일이기에 서로 멀어질 수 없어서일까. 손동하의 소년 시절 만난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가스미가 생전 존경했던 작가와의 관계의 붕괴와 오버랩되는 지점도 그럴지 모른다. 우리가 보는 타인의 세계는 얼마나 진실한가. 그 사람이 내게 보이는 얼굴은 그 사람의 지극히 미분화된 조각이 시간의 구획 안에 스며든 것이다. 내가 지나가는 시간과 상대가 통과하는 시간이 만나 파열음을 낼 때 그 만남을 품은 과거의 이야기는 다른 측면에서 조망된다. 이미 헤어질 것을 알고 만나는 것과 죽을 것을 알고 사는 것은 그래서 닮아 있다. 우리는 종내 실망할 것을 알면서도 기대하고 산다.


이미 부서질 것을 알고도 인연을 맺고,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돌아가 다시 듣는다. 김연수 작가는 그 향수어린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며 천천히 읽는 이들의 과거를 환기하는 시간을, 히라노 게이치로는 우리가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당면하게 되는 숱한 딜레마들을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영리하게 소환한다. 덧붙여 두 작가의 대화는 그 둘의 이야기만큼이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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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지움 2026-03-04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루라는 말이 와 닿네요~~

blanca 2026-03-04 12:51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연결과는 또 다른 어감이죠.

아이엠용 2026-03-10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된 글이 너무 좋아 저장해 놓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의 팬인데 조만간 이 책을 접하게 되겠지요~~

blanca 2026-03-11 18:5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도 김연수 작가 책을 따라 읽는 팬입니다.
 

어느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뭔가 주저주저할 때가 있다. 그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며, 그 작가의 문체, 때로는 그 작가의 철학까지 긍정하게 되면, 마치 그 작가 생전의 기행, 편향된 사상, 정치관까지 동조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런 작가가 미시마 유키오다. 


미시마 유키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 자위대의 궐기를 주장하며 할복 자살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이 대목은 더없이 거북하다. 그의 극도의 탐미주의가 아슬아슬하게 횡단하는 윤리의 경계 부분도 그러하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고의 가치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작가의 윤리관, 가치관에 의심이 들 지경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금각사>를 불태우는 이 천재 작가에 대한 연상들은 반쯤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갈수록 미시마 유키오라는 사람을 우리는 철저히 오해한 게 아닌가 하는 심증을 떨칠 수 없다. 하루키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하고는 자신이 방탕한 생활을 한다고 오해하지만 실은 지극히 담담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충실히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한 것처럼 미시마 유키오도 세상 사람들의 오해로 규정되는 캐릭터를 강제로 부여받은 게 아닐까. 실제 그의 에세이나, 소설들에 우경화된 제국주의나 전체주의적 시각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미시마는 자신을 천재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극우라고 정치적 입장을 작품 속에 표명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어떤 고정된 가치관에 유보적이고, 퇴폐미와 유미주의에 대해서도 한 발 물러서는 입장에 더 가까웠다. 그의 마지막 죽음의 어처구니 없는 전시에 대해서는 또 다른 관점에서 비판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솔직한 고백록이다. 당연히 문장들은 아름답고, 묘사력 또한 출중하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자신 없어하는 머뭇거림들이다. 흔히 일본 작가들의 사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비대한 자아 따위는 없다. 그는 작중 캐릭터와 작가 자신을 혼동하는 다자이 오사무가 싫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세상에서 유리된 듯 하지만 그 현실에 우뚝 서 있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좋다고 거듭 고백한다. 여기에 우리가 미시마 유키오 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미친 천재 작가는 없다. 십대의 치기, 자기 중심주의에 대한 철저한 해체, 반성의 대목도 그렇다. 


지금 내가 빨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스물다섯 살의 나는 하양이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마흔 살의 나는 그것을 초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리를 분별할 수 있을 때까지 소설을 쓰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현실이 확정되는 순간, 그것은 소설가에게 죽음일 것이다.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미시마 유키오 <소설가의 휴가>


마지막에 실린 <팽이>는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작용한다. 어느 날, 집앞에서 하염없이 이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젊은 작가를 기다리던 십대 소년에게 미시마 유키오가 허용했던 단 하나의 질문. 그건 바로 "선생님은 언제 죽습니까?"였다. 십대의 어느 순간, 돌던 팽이가 돌연 투명해지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투영하게 되는 그 유일한 순간에 대해 미시마 유키오는 이야기한다. 진짜가 출몰하는 그 찰나에 대하여.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다. 자신을 추앙하는 무리들에게서 온갖 찬사를 받던 이 작가는 이 엉뚱하고 무례한 질문으로 자신의 삶이 어떤 죽음으로 마감될지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예술은 예술로서 다 용인될 수 있는가, 에 대한 거대한 질문에 온몸으로 답한 한 작가의 생애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답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에세이를 읽는 일이 의미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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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2-15 15: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얼마전에 잠자냥 님도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글을 쓰셨는데, 이젠 블랑카 님도! 미시마 유키오란 작가는 도대체 어떤 작가이길래 잠자냥 님과 블랑카 님 두 분 모두, 책 잘 읽고 글도 잘 쓰시는 두 분 모두 이렇게 기꺼이 페이퍼를 헌정하시는걸까요.....

blanca 2026-02-15 19: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봄눈>으로 시작해 보세요. 좀 과할 데도 있지만, 문장이 말도 못하게 아름답습니다. <금각사>도 그렇고요.

카스피 2026-02-16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시절(45년 2월) 징집명령을 받았으나 당시 페결핵으로 오진을 받아 병역 부적격 판정을 받았는데 당시 징집된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전사해 일종의 죄의식을 가졌다고 합니다.하지만 일각에선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서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동경한 미시마 유키오가 오진을 이용해 징집을 피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이는 전후에 그가 병약했던 육체를 단련하고 극단적인 군국주의 성향과 자위대 궐기 촉구, 할복 자살 등의 행보를 보인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은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적 문학관을 많이 이야기 하는데(옐ㄹ 들면 금각사),부도덕 교육강ㅇ좌를 읽으시면 5~60년대 일본 사회를 위선적 도덕관을 비판하고 풍자했던 그의 날카로운 통찰과 역설의 유머를 느끼실수 있을실 겁니다.

blanca 2026-02-16 10:41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미시마 유키오가 극우 군국주의자라는 평이 있는데 개인적 사상관이나 작품을 통해 보면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마지막 죽음의 명분이 너무 뜬금 없어서 생 전체가 오해받게 됐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해봅니다.

2026-02-16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16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16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16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16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6-02-24 1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이 책 읽으셨네요! 이 글도 이제 봤어요. 오잉… 미시마는 일단 이번달엔 그만 읽으려고 하는데 땡투할게요! 😸

blanca 2026-02-24 14:42   좋아요 1 | URL
이 책에는 또 다른 미시마의 모습이 나옵니다. 정말 종잡을 수 없다는. 심지어 자신이 천재 작가가 아니라 은행가 같은 그저 성실한 평범한 작가라고 자평하는데... 사춘기의 자아 비대에 대해서는 반성하는 모습까지.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돌변한 건지 의아해져요. 추천합니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처음 읽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감동을 받았다. 이제 그런 결말의 반전이 더는 새롭지 않은 시대라고 해도 여전히 이 부커상 수상작이 가졌던 강렬한 인상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내게 줄리언 반스는 젊고 예리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였다. 인문학적 소양과 픽션을 적절히 융합시킨 그의 소설은 어떤 것은 와닿았고 또 어떤 것은 내게 너무 난해했다. 그래도 줄리언 반스의 신작은 내게 언제나 챙겨보게 되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오십대 후반에 이미 죽음에 대한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책 속에서 형인 철학자와 죽음에 관해 나눈 대화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게 아버지뻘인 그가 얘기하는 죽음은 어쩐지 좀 유쾌했다. 오십대 후반에도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느끼기는 힘들구나, 싶었고 또 그것을 읽었던 삼십대의 나는 더더군다나 '죽음'을 현실이 아닌 하나의 철학적 소재나 주제로 치환하여 마음 편하게 받아들였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가인 그나 독자인 나에게나 그때의 죽음은 '아직은...'이었다.


그러던 그가 스스로 마지막 책이라 호명한 소설을 썼다. 아니, 이건 소설이라기보다 그 자신이 한국인 독자에게 쓴 편지에서 고백한 것처럼 픽션과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책이다. 이제 만으로 팔십 살이 된 노작가는 자신이 소설가로서 살아온 삶과, 갑작스럽게 뇌종양으로 떠나보낸 아내의 상실, 코로나 시기의 암 진단, 친구의 연애와 이별, 다시 재결합의 메신저 역할을 했던 기억 등을 한데 모아 재구성한다. 이 책은 그 어느 인터뷰보다 그 어떤 소설보다 줄리언 반스에 대해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고백들로 채워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부터가 작가 개인의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힘든 모호한 지점들 경계에서 줄리언 반스는 특유의 호쾌한 농담으로 독자들과 밀고 당기는 게임을 한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하지만 이 당연한 명제를 '나'를 주어로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일상 속에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멈칫한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고 다음 차례는 내가 될 거라는 각성은 차갑다. 삶이란 영속성, 연속성의 관성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들이 곧 흩어지고, 그 일들을 하고 말하는 내가 사라지는 세상을 매순간 가정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사실상 마지막 작별인사가 될 거라 선언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소멸하고 말 거라는 걸 철학적이고 간접적으로 받아들이는 일과 직접적으로 육박하는 시간 속에서 인정하는 일의 낙차는 아찔할 정도로 크다. 그럼에도 줄리언 반스는 여전히 그의 글처럼 그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도 무겁지 않으면서도 예리한 논평가처럼 한다. 여기에서 멈추면 줄리언 반스가 아니다. 이제 줄리언 반스는 그가 만나지 못한 수많은 우리 같은 독자들에게 인사를 한다. 이 인사말이 어쩌면 이 책 전부를 아우르는 가장 아름다운 종결어일지 모른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즐거웠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나는 슬쩍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2022~2025년 런던에서

줄리언 반스


슬쩍 사라지지 말고 다음 책 한 권 정도는 더 써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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