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귀와 마음, 머리 전체를 채울 때가 있다. 그것은 좋다, 나쁘다,의 가치 판단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냥 조용히 나는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의 소리에 잠긴다. 

사랑도 그렇게 시작될 때가 있다. 전화선 너머 미성은 정작 만났을 때 복실복실한 외모와 어긋났지만 그래도 그것으로 족했다. 눈은 보라고, 귀는 들으라고, 코는 냄새 맡으라고 주어졌으니 그것에 충실한 것을 근시안적이고 감각적이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너무 이뻐서, 몸에서 나는 향내가 좋아서, 목소리가 근사해서 사랑에 빠지는 일이 그러하다. 

김훈이 <칼의 노래>로 나타났을 때 문단은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의 문장 하나 하나는 곰이 동굴에서 100일을 마늘로 버텼듯이 철저하게 벼리고 또 벼린 쌉쌀한 맛이 났다. 그의 목소리를 빌리면 이야기는 하나의 완강한 사실이 되어 눈 앞에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사실을 보고하고 고발하는 지점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문체가 서사를 앞지른다,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고 한계점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했다. 유독 그의 문체가 빛을 발한 작품들이 역사적 사실들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신유사옥으로 흑산도에16년간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생을 마친 정약전의 얘기가 주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정약용의 형인 약전의 얘기는 중심 가지를 이룬다. 하지만 그 곁가지들에 김훈의 시선은 가 있다. 시대 너머, 이 생 너머를 기약하는 지점에 천주학을 걸어 놓고 부단히 이 생에서 투쟁하다 때로 꺾이고 스러져간 이름 없는 이들에 대한 얘기.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자문하는 것은 언제나 조금은 위험하다. 단순하고 명료한 진리들 앞에서 매혹당해서는 왜 안 되는지를 미처 묻기도 전해 숱한 이들이 그 질문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들이 산화한 지점에서 우리는 타락한 것들에 후달리고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가장 쉬운듯하면서 용단이 필요한 일이다. 

김훈은 언제나처럼 버석거린다. 때로 그의 목소리가 너무 도드라져서 그것이 싸안을 이야기들이 울툭불툭 비어져 나온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그래서 그답다,고 수긍하기도 한다. 숱한 목숨이 내던져진 절두산 아래 닿아 있는 자유로를 달려 귀가하며 그는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 고 한다. 언어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너머로 부단히 시선을 던지는 작가의 진정성이 담보된 이야기다. '나는 말이나 글로써 정의를 다투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그의 고백은 뭉클하기도 하고 실망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한 것처럼 조금씩 밖에 더 나아갈 수 없는 우리들은 실재라고 믿는 것을 향해 생을 내어던질 수 있는 그들의 얘기 앞에서 감히 말을 잃고 만다. 너무나 큰 얘기. 언제 누가 들어도 가슴 저릿한 얘기.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1-11-15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작가의 글발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모두가 다산에 주목할 때, '자산'에 눈을 돌린
그의 탁월한 선택에 그저 감복할 따름입니다.

blanca 2011-11-15 23:20   좋아요 0 | URL
hermes91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정약용이 아닌 그의 형을 소재로 소설을 쓸 생각을 한 것 부터가 김훈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11-11-1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별은 세 개군요. 별로였나요? 기대했는데...
하긴, 작년에 나왔던 소설 거 뭐죠...? 숲 어쩌고 하는 소설
그거 참 별로 였어요. 예전의 작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분도 늙는 것일까요? 헉~

blanca 2011-11-15 23:23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자기 제목이 생각 안 나서 찾아 봤어요. <내 젊은 날의 숲>. 사실 김훈 작품을 다 찾아 읽을 만큼 좋아하는데 그 작품 이후로 문체는 여전히 훌륭하지만 서사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칼의 노래>가 너무 눈부셔서 그 이후의 작품들이 그 후광에 가려지는 것도 같고요. 단편 <언니의 폐경>이랑 <화장> 같은 작품은 참 좋았는데...저도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마녀고양이 2011-11-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이 책 읽으셨군요?
그동안 잘 계셨죠?

blanca 2011-11-15 23:24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안 계신 동안 저는 시간만 죽이고 있었습니다.--;; 아, 갑자기 올해를 떠나보낸다고 생각하니 어찌나 허무한지요....

순오기 2011-11-15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젊은날의 숲> 올초에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였는데,
한승원의 <흑산도 하늘길>도 읽었으니 두 작가가 그린 정약전을 비교할 겸 <흑산>을 읽을까 했더니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어요. <흑산>은 정약전보다 주변인들을 더 조명한 듯, 김훈은 점점 호불호가 명확히 나뉘고 장편보다 단편이 더 빛나는 것 같아요.

blanca 2011-11-16 09:10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한승원의 <흑산도 하늘길>은 어땠나요? 궁금합니다. 아, 맞아요. 저도 정약전 시점에서 그려진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웅, 저도 순오기님 어머니독서회 들어가고 싶어요--;;

비로그인 2011-11-16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음에 들어요..잘 읽었습니다. 꾸벅.

blanca 2011-11-16 09:10   좋아요 0 | URL
음, 이 아침 기분좋게 하시는 댓글이네요. 잘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yamoo 2011-11-1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께서도 읽으셨군요. 이 책을 사야할지 말아야할지...좀 두고 보다가 반값세일 하면 그때 냉큼 사야 겠어요..ㅎㅎ

김훈의 역사소설은 좀 별루 인거 같다는 인상이 짙습니다만..어쨋든, 요즘 젊은 작가보다는 훨씬 고퀄리티의 글을 쓰시는 양반이니 구해서 읽어는 봐야 겠습니다. 아, 근데, 아직 <공무도하>도 안봤군요!

blanca 2011-11-16 22:59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저도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책들이 한 다스랍니다. 연말이 되니 더욱더 그렇게 되는군요. 이제는 가진 책들을 하나 하나 제대로 읽고 좀 떨어내고 하려고 하지만 이미 오늘 또 주문하고 말았답니다.--;;
 
토지 - 전21권 세트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표면상으로는 소설을 썼다. 이 책은 소설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한 인간이 하고많은 분노에 몸을 태우다가 스러지는 순간순간의 잔해다. 잿더미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울부짖음도 통곡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일 따름, 허구일 뿐이라는 얘기다. 진실은 참으로 멀고 먼 곳에 있었으며 언어는 덧없는 허상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진실은 내 심장 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 영원히 침묵한다는 얘기도 되겠다. 칠팔 년 전에 나는 어느 책에다가 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마성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진실이 머문 강물 저켠을 향해 한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의 언어, 그럼에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강을 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전율없이 그 말을 되풀이할 수 없다.
                                                                                                                                     -<토지> 서문 중 
 

 

나는 표면상으로는 소설을 읽었다. 시대의 질곡 속에서 들려오는 민초들의 포효는 말줄임표였다. 소설일 따름, 허구일 따름이라는 작자의 얘기는 사무치는 겸손이었다. 이것은 단지, 저 피안을 응시하며 자맥질하는 허무한 몸짓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도저히 얘기할 수 없다. 나는 전율없이 <토지>를 회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숙연한 슬픔, 소소한 가을바람과도 같이 영성을 흔들며 알지 못할 깊고도 깊은 아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원초적이며 본질적인 것으로 삼라만상에 대한 슬픔인 것 같았다.
                                                                                                                                            -토지 19권 p.331

 

박경리가 엮은 언어의 틈새에는 나를 향해 달겨드는 별빛들이 있었다. 그러니 그는 언어의 마성을 초월했다. 유일하게 진실에 가 닿을 수 있는 가능성에의 천착은 무용한 것이 아니었다. 2011년 8월 7일, 1994년 8월 15일 작가가 마침내 끝을 맺은, 1945년 8월 15일의 얘기를 읽어냈다. 문득 깨어보니 독도분쟁은 한창이었고 동경에서는 한류 반대 시위가 일고 한국의 여성 격투기 선수는 일본의 남성 개그맨 세 명에게 무참하게 구타당했다. 역사적 기억들은 하나의 화인 같다. 후손들은 그 화인 주위를 또 맴돈다.

<토지>는 몇 차례 드라마화되었다. 주로 아버지의 재종형인 친일파 조군구에게 가산을 수탈당한 최참판댁 여주인 최서희의 집념어린 복수와 하인 길상과의 애정사에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당시 서희역의 안연홍이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테야!"라며 훗날의 복수를 기약하던 당돌한 모습의 잔향이 크다. 더불어 평사리의 상민 이용과 무당의 딸 월선의 안타까운 사랑과 이별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월선역의 청순하고 아름다웠던 선우은숙의 촉촉했던 눈시울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토지>에 있어 이 대목들은 일부를 차지할 따름이다. 600여 명이 넘는 인간 군상이 구한말부터 해방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밀착하여 엮어내는 삶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토지>가 출발점은 소설이었을지라도 결국 우리 모두의 피를 따라 흐르는 눈물어린 조상들의 삶의 집단 기억을 선택받은 저자가 대필한 것이 아닐까. 숙명의 과업을 걸머지고 고행길을 걷다 저 하늘로 떠나버린 작가. 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를 자문하며 쓰지 않을 수 없던 그에게 <토지>를 읽는 일은 하나의 채무를 지는 것과 같다.  

 

*생에 대한 연민, 그러나 삶에 대한 찬사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토지>는 시작하고 끝난다. '한'에 대한 얘기는 전체를 관통한다. 서희와 혼인한 하인 출신의 길상이 어린 시절 양육되었던 절에 장엄한 '관음탱화'를 향한 얘기들은 결국 작가가 삶의 본질에 대해 하고 싶어하던 얘기다. 슬픔과 외로움. 우리 모두는 슬프고 외롭다. 가지지 못할 것들을 끊임없이 소망하고 희망의 여백을 언제나 포기하기 않기에 한없이 슬프다. 생의 에너지는 필연적으로 결핍과 만난다. 그러니 저마다 딛고 선 발뒤꿈치에 뭉친 울음 한 덩어리씩은 숨기고 있다. 

결국 논둑길에 퍼질러 앉아서 두 늙은 여자는 익어가는 벼를 등지고 함께 울기 시작했다.
-<토지 17권 p.333>

  

존재의 근원, 생명과 닿아 있는 한은 신비롭게도 허무로 흐르지 않는다. 삶의 존귀함과 진실에의 천착은 오도마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삶 자체가 존재하며 그것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아름다웠다. 그런 하나하나가 무리지어 흐르고 있다는 것은 더욱 엄숙하고 경이로운 일이었다. 개미들의 행군처럼 물고기들의 군무처럼. 그러나 언제인가는 사라질 것들,
-<토지 20권 p.268> 

  

*개인에 밀착하는 민족의식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수난은 개개인의 삶으로 스며들어 온다. 전도부인 여옥이 부유한 역관 집안의 딸로 권문세가로 시집 간 명희에게 이젠 깨끗한 것보다 진실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하는 장면은 작가의 독자들을 향한 준엄한 질타 같다. 민족주의는 자아에 대한 방어요, 민족적 존엄은 결국 내 자신의 존엄이기 때문이라는 서의돈의 얘기는 구한말 의병투쟁에서 동학전쟁, 항일투쟁에 이어지는 민족적 움직임이 가지는 본질적 의의를 얘기한다. <토지>에 나오는 사내들은 개인의 영락, 소망, 삶에 대한 기대 들을 가슴 한 켠에 묻고 민족적 자존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산화한다. 그 산화는 그러나 다시 개인의 소망과 내 자신의 존엄으로 귀환한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고리타분한 민족적 자긍심 고취나 맹목적 민족주의가 아니었다. 내 자신을 존귀하게 대우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딛고 서야 할 대지의 좌표를 올바로 정립하는 일. 그것은 결국 또 내가 삶을 제대로 사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물고기들의 군무(펄떡이는 은어처럼...) 

<토지>에는 '나약하며 사악하고 선량하면서도 노회하고,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열정과 냉담, 온갖 특성의 인간'<토지 19권 p.88 >들의 군무가 펼쳐진다.  

가장 악랄한, 잔인무도한 악인이 선량하고 정직한 아우를 껴안고서 눈물을 흘린다. 
-<토지 9권 p.429>

살인자의 자식이 되어 버린 형과 아우는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형은 일제의 주구로, 아우는 독립자금을 비밀리에 만주로 나르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형제는 공통의 비애와 슬픔 안에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재회한다. 우리의 가슴 속에 한 명쯤 있는 형과 아우의 마음. 결국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모습. 모든 모순과 대립은 생명이기에 삶이기에 가능하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기적이며 경위 바른 김이평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본래 최참판가의 노비출신으로 면천한 작인이다. 마을 장정들이 친일파 조준구가 들어앉은 최참판댁을 습격할 때 슬며시 몸을 감추었다 다시 나타나는 그의 모습은 비겁한 것이기도 하지만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악하지도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사회악의 축출에 가담하지도 않으며 적당히 안위를 도모하며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 작은 죄책감 하나를 키우는 그의 모습은 도처에 있다. 적극적으로 친일 행각에 가담하며 축재하는 아들 두만에게 내지르는 일성은 생존과 보신에 엉켜 붙은 자신에게 향한 것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통곡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 자체로 찬란하고 신비로운 것이기에 그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 싶기도 하다.   

 

*희망고문

"어머니! 이, 이 일본이 항복을 했다 합니다!"
"뭐라 했느냐?" 
"일본이, 일본이 말예요, 항복을, 천황이 방송을 했다 합니다."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다음 순간 모녀는 부둥켜안았다. 
-<토지 21권 p.395> 

서희를 휘감은 쇠사슬은 모조리 풀어져 땅에 떨어졌을까. 그로부터 오년 뒤 벌어진 민족상잔의 비극은 최씨가에게 어떤 비애의 자락을 드리웠을까. 아니, 어미는 하인과 통정하여 집을 나가버리고 아비마저 교살당한 휑한 집안을 집안 사람에게 빼앗겼다 이역만리 만주에까지 가서 결국 되찾게 되는 이 집념의 여인을 휘감았던 쇠사슬은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풀어질 수나 있을까. 그것은 차안에서 끊임없이 피안을 기웃거리는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휘감을 수밖에 없는 숙명의 구속이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
-<토지 5권 p.340>


 


댓글(25)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1-08-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토지를 완독했군요, 짝짝짝~~~~~~~~~
서재에 새글도 안 올리고 전념한 토지 읽기, 얼마나 걸린 거에요?^^
토지를 읽으며 휘몰아치던 감정의 파도를 넘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리뷰도 감동입니다!!

blanca 2011-08-11 13:0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안그래도 순오기님이 토지 문학관 가신 것 관련 페이퍼를 읽은 기억이 나서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토지 문학관기행도 꼭 가보고 싶어집니다. 한 달 남짓 걸렸고요. 잡념 없애는 데 최고던걸요^^

2011-08-09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1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1-08-10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전율없이 <토지>를 회상할 수 없게 되었다...란 글을 읽으니 제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에 토지를 읽으며 느꼈던 느낌이 새록새록 하네요~~.^^
토지가 다시 읽고 싶어지긴 하는데 책이 다 미국집에 있어요.ㅠㅠ
도서관에라도 가서 빌려보고 싶어지네요.^^

blanca 2011-08-11 13:04   좋아요 0 | URL
아, 나비님도 이 감동을^^ 대하소설들이 보관하는 데에 있어 곤란한 경우가 많지요. 저도 지금 책이 사방에 난리라 어디 분산 배치하든지 해야 할 것도 같아요. 사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 계획했었는데 읽다가 순서에 맞게 빌려 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도서관 교통이 불편해서 구입해서 읽게 되었어요. 제 딸도 언젠가 읽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마녀고양이 2011-08-1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희는 정말 대단하죠, 서희라는 인물 때문에 토지를 다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블랑카님의 리뷰를 읽다가 문득, '자유와 정의의 공통점은?' 이라는 질문에 머뭇한 기억이 나요.
지금도 머뭇하게 되는게.... 말로는 외치지만 몸으로는 보여주지 못 하는 것과 같은 정답과 어긋난 답만 생각나거든요.
그게 현재의 제 심리겠죠. ^^. 드디어 페이퍼 올리는데 성공하셨군요, 축하해요!

blanca 2011-08-11 13:06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은 지금쯤 여행 준비 하고 계실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아도 여기 알라딘에 와서 칭찬 받으니 괜시리 든든해지네요. 자유와 정의. 만나면 참 좋을 텐데요. 죽을 때까지 고민하며 살게 될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08-1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해요! 멋져요. 페이퍼는 더 좋아요. 그래서 그동안 안보이셨구나? 오오, 블랑카님의 인내와 집중력 그리고 몰두를 본받아야겠어요. 전율.. 이라니. 저는 학창시절에 서점에서 엄마가 사줬는데 1권 읽고 더이상 읽지 않았어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요. 그 사이 새 판본이 나오고 권수가 늘었죠. 세월이 많이 흘렀어요. 박경리 선생님께 더이상 죄송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도 블랑카님처럼 도전하고 싶어요. 참참, 이런 건 7회 연재 이런 걸로 페이퍼 써야 해요!^^

blanca 2011-08-11 13:08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 고맙습니다. 그리고 꼭 도전해 보세요. 어느 순간 정말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동감이 작렬하는 소설이랍니다. 우아, 학창시절에 어머니가 사주셨어요? 완전 근사한 어머니를 두셨군요!

stella.K 2011-08-10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했군요. 저는 2권인가, 3권 읽고 땡쳤는데...ㅠ
오랜만이예요. 토지 읽느라 안 보이셨나?^^

blanca 2011-08-11 13:0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ㅋㅋㅋ 토지도 읽고 아이가 방학이라 종일 인형놀이 상대역 해주고 색칠 같이 해야 하고, 짬도 안 나더라고요^^;;

블루데이지 2011-08-1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솔출판사판으로 10년동안 읽었어요~~
고등학교때 시작해서...20대 후반에 다 읽었으니...깨으름은지..느긋함인지......
축하드려요~~blanca님...저도 이번기회에 10년만에 나남출판사판으로 재도전하고 싶어요~~

blanca 2011-08-11 13:09   좋아요 0 | URL
아, 블루데이지님, 저 그렇게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블루데이지님의 청춘과 <토지>가 함께 곰삭는 느낌, 좋을 것 같은데요. 책이 판형이 작고 편집도 좋아서 읽기 좋더라고요.

cyrus 2011-08-1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그 많다던 토지를 읽으셨다니..
저는 두권 이상은 끝까지 못 읽는 편이라
읽을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

더위, 비 피해 조심하시고요, 행복한 8월의 여름
보내세요 ^^

blanca 2011-08-11 13:12   좋아요 0 | URL
cyrus님이라면 금방 읽으실 것 같은데요. 아, 푸른 하늘을 보고픈데 항상 하늘은 흐려 있네요. 저는 cyrus님 보면 '나는 그때 너무 철이 없었구나.cyrus님은 어떻게 다 알지?' 싶어요. 그냥 눈앞만 보며 달렸던 것 같아서 참 아쉬워요. 참 부럽답니다. 남은 방학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세요^^

비로그인 2011-08-1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뜸하시다 했더니 거사를 치르셨군요. 책걸이를 거하게 하셔야겠네요^^

blanca 2011-08-11 13:13   좋아요 0 | URL
후와님, 아, 책걸이요! 그러게요. 고민 좀 해봐야겠네요^^

oren 2011-08-1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제 아내도 두어달 전쯤 '한달여 동안' 토지만 붙잡고 지내더군요. 아내가 20여권을 다 읽을 동안에 틈날 때마다 '토지를 읽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제게 얘기하는 걸 들어 주느라 애먹었는데, 소설에 자주 나오는 '이해하지 못할 경상도 사투리'에 대해 제게 자주 물어보던데(제 고향이 경상도), 저는 '나중에 읽어볼 요량으로' 아껴두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지리산과 섬진강과 악양 평사리의 너른 들판이 문득 가보고 싶어집니다.
(아참... 마침 다음주에 2박3일로 지리산 종주 산행을 떠날 계획이 잡혀 있네요...)

blanca 2011-08-11 22:58   좋아요 0 | URL
아, oren님 아내분도요! 그러셨군요. 저도 고향이 경상도라면 경상도인에 그래서 좀 사투리가 좀 수월하게 읽힌 감도 있는 것 같네요^^ 다음 주에 지리산 가세요? 저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여즉까지 못가보고 있네요. 즐겁게 다녀오시고 후기도 기다려 봅니다.

꿈꾸는섬 2011-08-1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동안 토지 완독하셨군요.^^
너무 멋져요.
저도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하고 실천은 못하고 있거든요.
블랑카님 너무 멋져요.^^

blanca 2011-08-18 11:12   좋아요 0 | URL
꿈섬님은 벌써 읽으셨잖아요! 그 대하소설의 매력이 참. 어떤 분이 <토지> 읽으면서 살림 작파했다는 얘기 읽고 막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섣불리 시작하긴 그렇지만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대리 경험하는 느낌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임꺽정>이 또 읽고 싶어 몇 번 만지작 거리기는 했는데 올해는 좀 참아 보려고요^^

달사르 2011-09-26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대단하십니다. <태백산맥> 필사 언급에도 와~대단하시다~했더니, 저 길고 머나먼 <토지>를 다 읽으셨단 말입니다까. 와..존경의 박수를 보내드려요. 꺅! 저는 조금더 나이 들어서 읽어볼까, 생각만 하고 있던 중이라, 더 반가워요~

blanca 2011-09-27 10:57   좋아요 0 | URL
달사르님, 저도 <토지>는 분량의 압박 때문에 미루다가 좀 몰입할 게 필요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번 읽기 시작하니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어찌나 생동감이 느껴지던지 제가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다름 사람들의 어떤 삶들을 지척해서 지켜 보는 것 같았어요.

달사르 2011-09-27 23:19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박경리님은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 아주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는 분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 사람이 저렇게 많은 군상들이 등장하고 대를 이어 삶을 이어가는 대하드라마를? 하면서 의아해하기도 한다구요. 저는 박경리님이 소설에 모든 애정을 쏟아서 그래서 되려 일상에서 차갑게 느껴지는 점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저에게 말을 건네주신 분 또한 그리 말씀해주셨구요. 그 말을 전해듣고, 아...나는 담에 <토지>를 읽겠구나..생각했는데요. 그게 한 달도 전의 일이어서 블랑카님의 이 포스팅이 더 반가웠어요. ^^ 블랑카님 말씀처럼 한번 읽기 시작하면 길게 느껴지지 않을 듯 싶어요. 내년이나 즈음에 날 잡아서 시작하고 싶어지네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에벌린은 차를 세우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설움에 복받쳐 흐느끼면서. 왜 사람은 늙고 죽어야먄 하는 걸까. 
p.500

사람은 늙고 죽는다. 이 명제는 언제나 '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명제를 자주 잊어 버리고 자신은 예외라고 착각하고 이따금 떠올리고 그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바스라지고 소멸된다고 항상 떠올리며 숨을 쉰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잔인하고 가혹하다. 아름다운 것들, 소중한 것들이 퇴락하고 사라지는 시간을 무방비 상태로 체험하게 된다. 벌써 2011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1980년대의 시간에서 되짚는 1930년대의 얘기를 듣게 된다. 근시로 살았던 관성 덕택에 갑자기 높은 곳에서 조망하게 되는 삶의 정경에 멀미가 날런지도 모른다. 삶과 사람들을 내려다 보는 위치는 언제나 허락되는 게 아니다. 모르는 체로 때로는 알면서도 기만하며 살아가는 게 생이니까. 

여든 여섯 살이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그게 난 어떤 차이도 느끼지 못해요. 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건 아주 살금살금 다가오죠. 어떤 날엔 젊었는데 다음 날엔 가슴과 턱이 처지고 어느 샌가 고무 거들을 입고 있어요.
-p.293 

나보다 열 살이 넘게 어린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식당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없었다. 정말 걔들은 '아이'처럼 보였다. 스무 살이었던 스물두 살이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여든여섯 살이 될 것이고 지금의 모습을 한 여자를 아이라고 느낄까? 육십 후반의 할머니가 오십 중반의 아줌마를 보고 "젊어서 좋겠다"고 부러워하던 정경이 떠올랐다.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는 과거의 나의 모습들은 각자 다른 독립된 개체들처럼 와글거린다. 지금 살고 있는 게 삶인 건지,과거의 그 통제 안되던 정열과 순정 들이 진짜 삶인 건지 도통 구분이 안 간다.  

끊임없이 남들의 시선, 단것들, 무력감들, 굴욕, 체념에 시달리는 중년의 여자 에벌린은 시어머니가 있는 요양 병원에서 여든 여섯 살이 된다는 것의 느낌을 기탄없이 얘기해 줄 수 있던 니니를 만나 그녀가 얘기해 주는 휘슬스톱 까페의 두 여주인 이지와 루스의 삶을 듣게 된다. 휘슬스톱 까페에서는 남녀의 차이, 흑백 인종의 차별, 빈부의 격차, 연령의 구분 등 모든 인위적인 대단찮은 경계가 모호해진다. 배고픈 사람, 상실감과 상처로 마음이 다친 사람들이 모여들어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사연을 경청하는 그곳은 작가가 '나의 사람들' '나의 고향'이라 지칭했던 곳의 은유이기도 하다.   

여자와 흑인과 노인과 부랑자들에 대한 얘기. 서로 토닥이며 전진하는 그 여정에 대한 복기. 들여다 보면서 몇 번이고 설움이 복받쳐 흐느끼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왜 사람은 늙고 죽어야만 하는 걸까. 영원히 물음표로 남을 질문을 가슴에 품고 마침표를 찍고 말 것을 알기 때문일까.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1-05-0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아주 살금살금 다가오죠. 정말요. 아... 너무나도 딱 맞는 '살금살금'
이것보세요. 전 이거 영화로 봤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잖아요. ㅜㅜ
어떤 나이는 살금살금 다가오고, 어떤 기억은 연기처럼 날아가고..
그러니까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도록 자꾸 얘기하고 또 얘기해서 언제고 얘기할 수 있도록 잘 가꿔야겠다는 생각하면서 오늘 밤은 blanca님께 굿나잇~ 인사하고 물러갑니다.

blanca 2011-05-03 10:19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케시베이츠가 무언가를 막 먹으면서 니니 할머니의 얘기를 듣던 그 장면 정도가 기억에 남네요. 굿모닝 인사 해야 시점에서 메리포핀스 님의 굿나잇 인사를 들으니 재미있네요^^ 오늘은 황사가 좀 걷혔으면 좋겠어요.

oren 2011-05-0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록 영화속의 얘기일지는 몰라도) 주인공 '이지'를 보면, 비록 쇠락과 소멸을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며 요양병원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80대의 노인일지라도, '달콤한 벌꿀을 위해 겂없이 벌집을 건드리는' 20대 젊은이의 활기 속에서 얼마든지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품어보게 됩니다. 비록 그 나이에 그렇게 젊게 산다는 건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 * *

최악의 경우 세계가 단 하나의 출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출구와 그것을 통해 세계를 벗어나는 것의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문이 방의 일부이듯이, 세계를 벗어나는 것도 세계를 구성하는 일부이다.

우리는 마치 궤도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 탄환처럼 실존 속에 발사된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이 세계 - 세계는 항상 여기 지금의 세계다 - 에 떨어질 때 짊어진 운명은 그와 정반대다. 우리에게 부과된 것은 하나의 궤도가 아니라 여러 개의 궤도이며, 따라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얼마나 놀라운 조건인가! 산다는 것은 우리가 자유를 행사하고 우리의 위치를 이 세계 속에서 선택하도록 운명적으로 강요받았음을 느끼는 것이다. 한 순간도 우리의 선택 행위를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낙담하여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에 빠진 경우조차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대중의 반역』中에서

blanca 2011-05-03 10:20   좋아요 0 | URL
아, 이 글 너무너무 좋아요.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이름도 무지 길고 어렵네요^^;; 근사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 꼭 필요한 얘기이군요.

turnleft 2011-05-03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페이지 수가 만만치 않네요. 이젠 나이가 들어서(쿨럭;;) 그런지 300 페이지 넘어가면 힘에 부친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blanca 2011-05-03 10:23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저도 그래요. 막상 받아보고 완전 쫄았었잖아요. 저도 두꺼운 책은 이제 힘에 부쳐서요. 하지만 이 책은 두꺼울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찬찬히 그냥 곁에 두고 야금야금 읽다 보면 그 시간의 흐름과 공간을 이렇게 형상화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은 생각이...

턴레프트님, 그 ireaditnow 어플 메일로 백업할 때 별점과 읽은 기간은 안 되는 게 넘 아쉬워요. (자꾸 부담 드려 죄송합니다.^^;;)

비로그인 2011-05-03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늙는다는 일이 서러운 것은, 늙음 그 자체가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겉과 따로 노는 마음이 더 슬플 거라고.
이렇게 늙어도 지혜롭지 못하고, 주변에서는 지혜를 바라고, 마음은 여전히 젊은 어느 자락에 머물러 있는 것이 비극이 아닐까요.

그러나, 이 글을 읽으니 그럴 것 같아요. 늙음은 그 자체로 슬픕니다. 그게 아무리 자연의 일이라도.

blanca 2011-05-03 10:25   좋아요 0 | URL
저는 나이 드는 게 좋다,고 얘기하는 연예인들 얘기를 별로 신뢰할 수 없어요. 물론 저도 나이 들면서 성숙한 면도 있고 그 때의 그 좌충우돌과 넘치는 열정, 오만이 희석되어 좀 편안하기도 하지만 그게 과연 좋다,고 뭉뚱그려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맞아요. 저는 그래도 젊음이 좋아요. 죽음을 기다리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충만감을 느낄 정말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싶어서요. 죽는 건 항상 두렵잖아요. 결국 이별이니까요.

마녀고양이 2011-05-03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책 너무 좋아하잖아요.
10여년도 전에 이 책 사서, 다섯번은 읽은 것 같아요. 첫 페이지의 휫슬 스톱 카페 메뉴가 너무 좋아요.
이상하게 향수를 느끼죠, 이 책을 읽다보면. 나도 그렇게 사람과 지지고 볶고 살고 싶다는 환상도 가지게 되고.

영화도 좋아해요.
아마......... 그런 진정한 관계가 부러운가봐요.

blanca 2011-05-03 23:17   좋아요 0 | URL
다섯 번이나요? 이 두꺼운 책을요! 마고님 앞에 넙죽 엎드립니다.^^;; 아, 저도 그래요. 저도 그런 관계가 부러워요. 영화도 한 번 봤는데 너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어요. 니니 역을 맡았던 할머니는 아주 예전에 돌아가셨더라구요. 괜히 또 한 번 더 짠했어요.

반딧불이 2011-05-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본 것 같은데 책도 있군요. 나이 든다는 거, 참 생각도 많아지고 할 말도 많은 그런 말이에요.

blanca 2011-05-03 23:17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 맞아요. 무언가를 점점 더 알아가는 건지 잃어버리는 건지 감도 못 잡겠구요. 저는 이따금씩 늙어 죽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답니다.

2011-05-06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06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5-0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방송에서 이 영화를 종종 볼 수 있었죠.그 할머니 역 맡은 제시카 탠디는 1994년 타계했군요.

blanca 2011-05-06 22:01   좋아요 0 | URL
노자님, 저도 안 그래도 찾아 봤어요. 그 할머니 참 고왔죠.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영화에도 나왔었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05-07 15:06   좋아요 0 | URL
미스 데이지 역으로 역대 최고령 아카데미 주연상을 탔더군요.

비로그인 2011-05-19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음표 마침표가 또 이렇게 바뀌어 blanca님 얘기를 풀어주네요.
물음표 마침표.
이 간단한 부호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쓰인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같은 책은 아니더라도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 방 구석에 몇 권 있는 것 같은데 좀 들춰봐야겠습니다.

blanca 2011-05-19 11:17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이게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인 줄도 모르고 손에 쥐었었어요. 길고 참 저릿한 소설이었답니다. 이런 시간과 공간을 길게 마구 늘인 것 같은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삶과 생,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잠시 멈추고 곱씹어 볼 수 있어 참 좋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팔아요, 팔아. 자리도 비좁고!
아버지는 내키지 않는듯 머뭇거린다.
그래도 할머니가 사 주신 건데......

좁은 집에서 세 형제가 십 년 가까이 방치하고 있던 밤색의 삼익 피아노는 그렇게 실려 나갔다. 

   
 

 우리는 피아노에 꿈을 투자한다. 지나가다 내키면 건드려본다. 그 위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나 귀중한 물건을 올려놓아 집안의 성전으로 꾸며 놓는다. 이런 피아노가 우리 삶에서 사라지면 그것은 사실 대체할 수가 없다. 거기 포함되어 있는 우리 삶의 흐름의 한 부분을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p.217

 
   

 

만 다섯 살도 되지 않아 피아노 가방에 바이엘을 넣고 가정식 피아노교습소를 들락거리게 됐다. 어렸을 때 너무나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지만 팍팍한 생활로 좌절당한 엄마는 벼르고 있었다는 듯 이사만 갔다 하면 제일 먼저 근처의 피아노 학원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딸은 절대음감과는 거리가 멀었고 아버지가 눈물의 피아노라고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던질 만큼 언제나 야단맞고 흐느끼며 피아노를 쳤다. 그 부작용의 여파로 지금도 나는 아이의 의사에 반하는 조기 음악 교육에 반대한다. 공부하는 것보다 피아노 연습하는 게 더 싫고 지겹고 힘들었다. 소질이 있냐, 소질이 있다, 피아노 선생과 엄마 간에는 희망없는 모종의 공모와 속임과 속아줌이 있었다. 콩쿨 예선에서 바로 탈락한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소위 좀 쪽팔려서 조금 울고 말았지만 의외로 야단치는 사람도 없고 기대했던 사람도 없었던지 하나의 해프닝이 되어 버린 일. 나는 피아노에 소질이 없었다.

   
 

 이런 종류의 발표회는 모든 피아니스트 지망생이 제2의 호로비츠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엄청난 신용사기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극소수의 독주자만이 정상에 이르러 음악을 업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어린아이에게 재능이 좀 있다고 하면 지레 그런 능력, 그 모호하고 진귀한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에 걸쳐 수없이 많은 어린 음악가가 억지로 되풀이하여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하는 그 엄청난 시련을 겪는 체계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p.90

 
   

 파리의 한 동네 좁은 거리, 피아노를 수리하고 중고 피아노를 사고 팔기도 하는 아뜰리에를 방문하며 저자는 (작중 화자)는 '피아노'를 살아 숨쉬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유년기의 역사를 오롯이 복원해 내는 하나의 매개체로 다시 만나게 된다. 피아노의 역사, 구조가 지루하거나 사변적으로 흐르지 않고 매우 흥미롭고 평이하게 그려진다. 언제나 한 발치 물러서서 조금은 겁먹은 상태로 바라봤던, 다시 끌려 들어갈까봐 스리슬쩍 도망칠 준비를 했던 피아노 건반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쉬운 연습곡을 조율이 안 된 상태로 다시 치게 되었다. 형편없었지만 색다르고 소중한 느낌이었다. 전적으로 이 책 덕택이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성인이 되어 재회한 피아노와의 사연을 담담하게 고백한 에세이에 가까워 보인다. 중고 베이비 그랜드를 데포르주 공방에서 구입하고 다시 교습을 받게 되며 '나'는 피아노에 헛된 꿈을 투자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거는 대신 '나'를 투명하게 보태고 자기 규율이 주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그건 어린 시절과는 분명 또다른 피아노가 주는 즐거움이었다고 고백한다. 초등학교 4학년 어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좌절감을 맛보며 덮었던 바하인벤션은 중학교 1학년때 쉬운 대중음악곡이나 초보용 재즈 연습곡으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번성했던 레코드점에서 <라붐>의 주제곡 악보를 삼백원 주고 사와 연습하여 음악 실기 시험 시간에 치며 아이들의 호응을 얻어내며 참 오랜만에 피아노 배우기를 잘 했다,고 으쓱했다. 그런 대중음악들을 연습하기 시작하면 손을 망친다,고 겁을 줬던 사람들도 있었지만(망칠 손도 없었지만) 즐기며 평이한 유행가들을 가끔 쳐대며 유년 시절 울며 억지로 피아노를 쳤던 시간들 덕을 조금씩이라도 봤다. 

   
 

 마지막 화음들이 허공에 머물다 서서히 물러나는 동안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소유하기는 했지만 결코 정복하지 못한, 언제 보아도 낯설어 보이는 악기 안을 들여다보았다. 당연히 음악이 중요했다.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였다. 그러나 나는 내 피아노로 어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게 얼마나 깊은 만족을 주는 일인지 다시 깨달았다. 감정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그 만족은 무한했고, 그것이 내 삶에 주는 영향은 깊디깊었다. 나는 방 건너편에서 피아노를 바라보면서, 그 모퉁이가 텅 비었을 때를 기억해보려 했다. 전생의 일 같았다.
-p.345

 
   

 

텅빈 모퉁이. 그 모퉁이를 채웠던 밤색의 삼익 업라이트 피아노는 지금 어디에서 누군가의 손 밑에서 또다른 의미와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을까. 아님 아예 죽어버렸을까. '너'의 행방을 궁금해하며 너가 있었던 그 시간들을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더듬거리며 그리워한다.


댓글(27)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2-04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설 잘 쇠셨죠? 쓰신 페이퍼 차분히 읽고 갑니다..
번역도 괜찮고, 영화의 카메라같은 저자의 시선이 높지 않고 편안한 위치여서 부담 없이 푹 빠질 수 있었던 책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책장에서 뽑아 다시 들고 있는데요. 언제인지.. 밤 11-12시쯤 하던 드라마 같은 느낌도 듭니다.

마치 흙속에 묻혀 있던 무엇인가가 나오듯, blanca님의 기억의 알맹이들이 두두둑 나오는 소리도. 잘 듣고 가고요.

(음악도 한 곡 띄울려고 했는데 되질 않네요.. 코드 붙이는 방식이 바뀐것인지.)




blanca 2011-02-05 22:01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덕분이죠. 고마워요. 저는 너무 잔잔해서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걸요, 정말 말씀처럼 저자의 시선이 참 편안해서 물 흐르듯이 읽히더라구요. 피아노에 얽힌 추억들이 마구 오버랩되면서 참 특별한 독서를 했답니다. 바람결님, 저 이사오면서 컴퓨터 스피커를 버린 게 잘못된 건지 소리가 안 나온답니다. 오디오 카드도 다시 설치해 보고 했는데 정말 알 수가 없네요. 게다가 라디오 클래식 채널도 안 잡히고 참, 총체적 난국 상황이랍니다. 지금 정말 음악이 고파요.

프레이야 2011-02-0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설날 잘 보내셨어요?
저도 피아노를 포함해 악기에 소질 없어요.ㅎㅎ
끈기부족이 제일 큰 원인인 거 같아요.
아주 어릴 적 엄마가 사주신 장난감 피아노가 기억나요.
치면 제법 띵똥띵땅 소리가 그럴싸했어요.

blanca 2011-02-05 22:10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잘 보내셨죠! 전 올해부터 조금 일이 손에 익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예체능에 두루 소질이 없답니다. 딸내미는 안 닮았으면 좋겠어요.

2011-02-05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5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2-0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정영목 씨 번역 책이군요.
예전에 저는 어렸을 때 피아노 치는게 좋아서 피아노 학원에 가게 되면 즐거웠었는데
이제는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남게 되었네요. 글의 제목처럼
예전 그 때가 그리워지기도 하네요 ^^

blanca 2011-02-05 22:12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은 그러셨군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참 아쉬워요. 이왕 하는 거 즐겁게 다녔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정영목 씨가 은근히 눈에 많이 띄네요. 요즘에 정말 번역자 들을 한 번씩 확인하게 됩니다.

잘잘라 2011-02-06 21:08   좋아요 0 | URL
정영목 씨 번역, 좋아해요^^

다락방 2011-02-0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이 아름다운 책을 blanca 님도 읽으셨군요! 반가워요!
:)

blanca 2011-02-05 22:1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다락방님이 이 책 얘기 하셨죠! 그 빵냄새 나는 골목 부분 인용도 해 주셨고요. 차암 좋더라구요. <올리브키터리지>도 이 책도 저를 한 방에 훅 가게 하네요^^ 현대 영미소설을 안 읽는 편이었는데 요즘 아주 즐겁습니다. 읽을 책이 왜이리 많죠!

순오기 2011-02-06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피아노 얘기에 공감할 분들이 많을 거에요~
나는 피아노를 배우는 세대가 아니어서, 우리 애들에게 답답함을 면하라고 배우게 했지만, 대회는 한번도 안 내보냈어요. 피아노 대회라는 게 어떻게 되는 건지 잘 알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참여시키지 않았어요.
피아노 대회에 참가 시키기 위한 피아노 교육의 폐해를 잘 그려낸 <피아노를 쳐 줄게>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아직 리뷰를 쓰지 않았는데 포토리뷰로 올릴거지만...

blanca 2011-02-06 21:2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잘 하셨어요. 저희는 잘 모르고 그렇게 힘들게 고생 한 번 진하게 했어요. 그런 그림책이 있어요? 요즘에도 그런 풍경이 사라지지 않았나 보군요. 포토리뷰 기다리겠습니다.^^

2011-02-06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6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2-06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두 라붐 사서, 연습했었는데... 아하하.

피아노 말이죠, 어릴 때 배우는데 정말 능력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더라구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다시 배우고픈 욕구가 엄청 솟는거예요. 코알라 핑계대고 그럭저럭 괘안은 디지털 피아노를 샀는데,
우리 코알라는 냉큼 피아노 관두고, 저는... 아직두 미련을 못 버려서 언젠가는 다시 배울거야 하는 중~ ^^

정말이지, 지난 날을 생각하면 이젠 전생의 기억 같아요. 에고.

잘잘라 2011-02-06 21:10   좋아요 0 | URL
흐하하하. '전생의 기억'같다는 말, 실감나요. ㅎㅎ

blanca 2011-02-06 21:27   좋아요 0 | URL
마고님도 라붐 ㅋㅋㅋ 저도 그래요. 다시 한 번 제대로 즐기며 배워 보고 싶어요. 아이를 위해서도! 디지털 피아노 사셨어요? 저는 피아노가 집에 없어요. 언젠가 또 다시 사게 되겠죠. 저는 어제도 전생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1-02-06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모니카를 조금 불줄 압니다.패티 김의 '이별'을 연주하면 여자들이 쓰러집니다.

blanca 2011-02-06 21:28   좋아요 0 | URL
노자님 댓글을 저를 빵 터지게 하네요 ㅋㅋ 저보다 젊으신 걸로 아는데 패티 김의 '이별'이라니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02-06 23:28   좋아요 0 | URL
으하하...제 애창곡으로는 연령 추정을 할 수 없다니까요.70년대 가요는 물론이고 60년대 가요도 많이 알아요.청소년들보다 최신곡을 더 많이 알고 있기도 하구요.

블랑카 님 또래들도 패티 김의 '이별'은 거의 모르지 않을까...음...길옥윤 씨가 작곡한 노래가 좋은 게 많아요.그리고 정훈희 씨 20대 때 노래 중 '너무나 사랑했기에'(김학송 작곡)는 기타로 연주하면 좋답니다(근데 저는 기타는 못쳐요).한번 검색해 들어보세요.기타 간주가 애절한 곡이랍니다.

잘잘라 2011-02-0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피아노에 꿈을 투자한다. 지나가다 내키면 건드려본다. 그 위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나 귀중한 물건을 올려놓아 집안의 성전으로 꾸며 놓는다.....」 공감 백배, 페이퍼에 몰입해서 어릴때 살던 성북동 개량한옥 작은 방까지 다녀왔어요. 아... 피아노 치구 싶네요. 외워서 칠 수 있는 건 동요 몇 곡 뿐이지만요. ㅎㅎ

blanca 2011-02-06 21:29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성북동 개량한옥이 어린 시절!!! 정말 눈물나게 부러워요. 그럼 어린 시절 한옥에 사셨건 거예요? 지금 언제라도 가보실 수도 있고요? 외워서 칠 수 있는 곡이 저는 없답니다. 무참하지요. 친 세월이 몇 년인데 저는 피아노 조기 교육의 철저한 실패 사례인듯 합니다.--;;

잘잘라 2011-02-07 11:12   좋아요 0 | URL
성북동 그 집, 지금은 없어요.
앞 집에서 우리집을 사서 두 집 다 허물고 3층 건물 새로 지었거든요. ㅜㅜ

blanca님! 피아노.. 아픈 과거(?^^)는 잊고 새로 시작하시는 어때요?
저는 떠돌이 신세라 피아노는 사서 둘 데두 없구,
해서 기타 배울 생각이예요. ^^

blanca 2011-02-07 21:49   좋아요 0 | URL
아아아. 그렇군요....저도 피아노 없어요. 바이올린이나, 해금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이제는 현악기로^^ 클래식 기타 배우실 거예요? 메리포핀스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치시는 날 꼭 페이퍼 올려주세요. 저의 로망입니다.^^

잉크냄새 2011-03-1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기 하나쯤 연주할수 있으면 인생이 더 풍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구입한 오카리나는 먼지만 쌓이고 있지만요...

blanca 2011-03-15 22:0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님 오랜만이에요. 오카리나가 먼지에 쌓인 풍경을 어느 집에서도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늦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오카리나 소리 참 좋아요.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백 페이지도 안 되는, 옮긴 이가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감동이 찾아 온다고 속보이는 칭찬을 하는,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인 작가가 쓴, 그렇고 그런 책인 줄 알았던, 이 책.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 마지막 대목을 읽으며 결국 옮긴이의 속보이는 그 칭찬에  동조하게 되었다.  광고회사의 잘 나가는 아트 디렉트였고, 세 번 결혼을 했고, 이제 일흔하나인 그는 오른쪽 경동맥 수술을 위해 수요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갔다. 그는 아직 떠나고 싶지 않았고, 아니 영영 떠나고 싶지 않았고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했지만, 심지어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내일을 그렸지만 그는 이제 없었다.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과거 추억을 복기한 경험이 있긴 했지만 머나먼 미래, 그것도 '나'라는 존재가 없어 울 수도 웃을 수도 불평할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알아 보고 안아 줄 수도 없는 상황을 섬뜩하고 슬프게 그려 보기는 처음이었다. '있음'을 치우고 난 후에는 그 어떤 것의 의미도 '나'를 걸러 건져 올릴 수 없게 된다. 여전히 남은 사람들은 지겨워하며 일상을 누리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서슴지 않고 상처를 내는 언사들을 날릴 것이고 영원히 살고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모든 것들을 오만하게 움켜쥘 것이다. 

소설의 처음은 소설의 말미에 희망을 품고 수술실에 들어간 '그'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탈장 수술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길, 거기에서 목도한 옆침대 소년의 죽음, '에브리맨'이라는 상호의 아버지의 보석가게, 그리고 하필 겨우 서른 넷에 머나먼 얘기인 것 같은 죽음을 의식했던 일 등 그의 죽음 전에 삶을 채웠던 기억의 편린들은 조각조각 그 '있음'과 '없음'의 간극을 메운다. 흔해 빠진 죽음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추상화된, 일반화된, 간접화법으로만 떠오를 수 있는 단어였다. 불멸의 보석을 팔았던 그의 아버지와 그 보석상의 이름인 '에브리맨'과 그는 모두 그 무한한 '무'에 도달한 그 시점에서도 결코 그것과 화해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죽음은 부당하다. 논리적이도 유의미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그건 바뀌지 않는 진실이다. 그럴듯한 논거들을 갖다 붙여 정당화해도 그건 다 사기다. 왜냐하면 그것을 얘기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살아 있지 않는가. '있음'의 지점에서 '없음'의 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척 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콧 니어링이 백 살 앞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자발적인 죽음을 택하고 "좋아"한 것은 불가능하고 도저한 일을 이루어 냈기 때문에 회자되는 것이지, 모두가 가능한 일은 특히 에브리맨이 가능한 선택지는 결코 아니다. 이 작품이 섬뜩했던 것은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을 수긍하지 않는 주인공의 헛된 미망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다. '그'는 소위 사회적인 시선으로 매우 성공한 축에 꼈던 사람이다. 전도유망한 아트 디렉트였고 퇴직 후에는 고급 은퇴자 마을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그건 우리가 부러워하는 삶의 전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래도 끝은 역시나 허망하다. 더 허망했다. 

희망을 얘기하고 의미를 덧붙이는 이야기가 날아가고 난 자리에 슬몃 끼여든 이 적나라한 무의미한 삶에 대한 폭로.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정말 그런걸까.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1-02-0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번역서를 고를때, 역자를 좀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어요.
정영목님은 그런 의미에서 제가 왕 애정하는 역자세요.
그분이 번역하신거면 그냥 읽고봐요, 후회하는 법이 없죠.
그런 의미로 지명도와 다르게 제겐 별로인 분이 김석희 님이세요~^^

참,참,참...참 고우시더군요~
신문을 들추다가 '와락~' 신문을 끌어안았다니까요.
올핸 님을 롤 모델로 삼아도 좋을 것 같아요.
(전 일주일에 4권,한달에 열 여섯 권 정도 읽어요.)

님 명절 잘 보내시구요~^^

blanca 2011-02-01 20:5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저는 예전에 첨부된 글들은 안 읽었던 것 같은데 요새는 꼭 옮긴이의 글을 읽게 되더라구요. 저는 아직 양철나무꾼님처럼 역자 이름과 성격들을 잘 구분해서 알지는 못해요. 이 책의 감동에 역자의 공도 있었군요. 신문은--;; 그저 감사하고 부끄럽습니다. 양철나무꾼님도 구정설 잘 보내세요!

2011-02-04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2-01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의 소설은 <더 플롯 어게인스트 아메리카>(영문이 안 나오네요 ㅠㅠ)를 사전 찾아가며 따문따문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소설 당기네요. 특히 이 대목이요. "어린 시절 탈장 수술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던 길, 거기에서 목도한 옆침대 소년의 죽음," 어린 시절 탈장 수술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었고, 거기서 앞 침대의 할아버지가 주검이 되어 실려나가는 걸 목도한 경험이 있거든요. 그러니 저로서는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명절 잘 쇠세요 블랑카님^^

blanca 2011-02-01 20:52   좋아요 0 | URL
후와님! 정말 그런 경험이 있으셨어요? 그럼 꼭 꼭 반드시 읽으셔야 합니다. 분량도 얇고 재미도 있어서 시간도 별로 안 걸려요. 후와님의 평이 꼭 들어보고 싶어요. 게다가 주인공과 같은 추억의 공유라니요. 후와님도 즐겁고 따사로운 명절이 되시기를...

비로그인 2011-02-01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우선! 양철님의..
-> 신문을 들추다가 '와락~' 신문을 끌어안았다니까요.

이 신문은 경향신문이겠죠? 아~주 익숙한 주소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ㅎ
그런데 이게 네 번하고 끝이라니, 좀 이상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좀 더 많은 사람을 인터뷰해도 괜찮을 것 같던데..^^

음. 왠지 남기신 글은, 요새 좀 집중해서 보고 있는 실비아 플라스의 삶을 다룬 영화의 장면을 닮은 것 같아서 마음에 닿습니다. 새벽에 앉아 있으려니 술이 덜 깬 것 같아 머리속이 어슴푸레 하지만, 그 영화의 색이 주는 느낌은 꽤나 닮은 구석이 있네요.


blanca 2011-02-01 20:54   좋아요 0 | URL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솔직히 참 힘겹게 읽었어요. 분량도 너무 많고 나중에는 좀 집중이 안되더라구요.(재미가--;;) 그런데 다 읽고 나니 맘 한켠이 어찌나 시리던지. 아이를 두고 그렇게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그 맘이 감히 상상이 안되더라구요. 영화를 봤으면 더 저릿했겠죠. 기네스 펠트로가 아이들을 그네에 태우며 미소짓는 장면 캡쳐한 것만 봐도 슬프던걸요. 그건 저도 나중에서야 제가 끝인 줄 알았답니다.^^;;

마녀고양이 2011-02-0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말이죠, 경향신문 가서 바로 찾았어........ 방금여~
흐흐,,,,, 봐따봐써. 언제 했대여... 아이 이쁘당.... 반가와요.

음, 책 리뷰 보고, 있음 없음에 뭉클해서 생각에 잠기다가 댓글 보고
검색하고 그 바람에 그 감성 다 날아갔네... 어쩔 수 없어요. 즐거운 설 연휴!!

blanca 2011-02-01 20:55   좋아요 0 | URL
마고님 ㅋㅋㅋ 저 느무느무 부끄럽고 그래요. 잊어주세요--;;; 내일 가열차게 일할 예정입니다. 마고님도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2011-02-01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2-0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국문학 작품을 읽게 되면 번역가 이름과 이력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유독 정영목이라는 분의 역서를 많이 읽었던거 같아요.
지금도 민음사 <오스카 와일드 단편선>을 읽고 있는데 이 책 번역 역시 그 분이더군요 ^^
제가 아는 분도 필립 로스의 이 소설을 강추하셨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어요.
최근에 <울분>이라는 제목의 신간도 나왔더군요.
설 연휴 잘 보내시구요,, 명절 증후군 조심하세요 ^^

blanca 2011-02-03 22:46   좋아요 0 | URL
아, 그러고 보니 지금 읽는 책도 정영목시의 번역이네요. <오스카 와일들 단편선> 좋은가요? 궁금했는데. 시루스님 아주 자알 보냈습니다. 힘좀 썼죠 ㅋㅋㅋ 생각보다 안 힘들어서 제 저질체력이 개선되었나 좋아하고 있답니다. 시루스님도 잘 보내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