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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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로서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소설가로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해놓고 정작 나는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낸 적이 없기에 왜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조목조목 댈 말은 없다. 어느 날 여동생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고 들어왔다. 누군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며 읽어보라 했단다. 이윽고 나는 동생 대신 그 책을 읽기 시작했었지만... 끝내 완독하지 못한 소설로 남았다. 그 다음부터 막연히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청춘에 그의 작품과 조우했던 극적인 순간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오히려 너무 젊어서 그의 소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정서들, 느낌들과 나 사이에는 분명 어떤 휑한 간극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이야기하는 하루키는 대단히 성실한 사람이다. 대인관계도 활발하지 않고 그저 규칙적으로 일어나 근육을 단련하듯 필력을 연마하는 겸손한 생활인이다. 그런데 그가 썼다는 이야기들에는 흔히 방황하는 청춘이 있고 꿈틀대는 심연의 욕망이 있고 때로 미처 실현되지 않은 좌절된 꿈들이 있단다. 그는 나의 엄마 연배이다. 그러한 그가 썼다는 이야기가 정말 그 어떤 젊음에 가닿을 수 있을까, 나는 의심했다. 그러니 내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의구심이 항상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쩌다가 이동진과 김중혁이 이야기하는 색깔 없는 사내 다자키 쓰쿠루와 엮여 버리고 말았는 지. 만약 이번에 다자키 쓰쿠루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나는 영영 하루키의 소설과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매혹된 지점은 읽기도 전에 서른여섯이 스무 살로 돌아가서 푸는 어떤 실타래라는 것이다. 종종 아니 이제는 가끔 나는 그 비슷한 연배에서 스무 살로 곧잘 돌아가서 움직이고 느끼고 사랑하고 울고 좌절하는 나를 무연히 지켜본다. 그 나이의 나는 지금의 '나'와 백만년보다 더 떨어져 있다. 분명 똑같은 나인데 지금의 깨달음과 노쇠함을 가지고는 그 시절의 나를 곱게 지켜볼 도리가 없다. 아마 그런 아이가 내 주변에 지금 있다면 나는 참 황당한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잔소리와 훈계를 해댈 지도 모른다. 나는 스무 살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었다.

 

내 인생은 스무 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고 다자키 스쿠루는 신주쿠 역의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그 이후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 시간은 잔잔한 바람처럼 그의 주위를 조용히 불어 지나갔다. 상처도 남기지 않고 슬픔도 남기지 않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쁨도 추억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이제 그는 중년의 영역으로 접어들려 했다.

-p.421

 

"대학교 2학년 7월부터 다음 해 1월에 걸쳐 다자키 스쿠루는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다",로 시작하는 다자키 스쿠루의 이야기.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 그룹에서 제명당한다. 이유도  모르는 채 모두 그의 연락을 피한다.  그는 고향 친구들의 왕따에 여린 속살이 칼로 베이는 것처럼 아파한다. 이후로 그는 대학을 마치고 철도기업의 지하철역을 설계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안정된 것처럼 보이며 그 일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히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며 다시 그 일을 떠올리게 되고 그녀의 제안과 독려로 스무 살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옛 친구들을 찾아 순례를 떠난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그는 함께 했던 친구들이 때로는 사회에 잘 적응해 살아남고 때로는 부적응자가 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모습들과 조우한다.

 

그리고 그 우정의 펜타곤이 무너진 지점에 그룹의 일원인 시로가 자신을 그녀의 삶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지목한 것을 발견한다. 도저히 그럴 캐릭터가 아니었던 그였지만 친구들은 저마다 각자의 생존을 위해 그녀의 위증 아닌 위증을 수용한다. 하루키가 주목한 지점은 이곳이었다. 남녀가 섞여 있던 친구 집단에 그 어떤 이성적 호기심도 허락하지 않았던 암묵적 동의 밑에 깔려 있던 저마다의 어두운 욕망, 질투가 마침내 옅은 속살을 뚫고 나온 곳. 누구나 비뚤어지고 어그러진 욕망이 해소되지 못한 지점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는 통찰. 만약 그랬더라면,의 가정들이 난무하는 추억으로의 회귀 지점에서 그러나 다시 돌아오는 똑같은 오늘에 대한 긍정. 여기에는 매일 아무리 힘들어도 육체 단련을, 글쓰기를 미뤄두지 않는 성실한 절제력을 가진 하루키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욕망을 응시하지만 그 욕망에 함몰되는 인간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 욕망을 억지로 비끄러매고 숨기면서 때로 불거지는 비극으로 인간의 삶 전체를 포박하지 않는다.

 

쓰쿠루가 대학에서 만나게 된 연하의 친구와 그를 그룹에서 내치게 만든 여자 친구 시로와 쓰쿠루를 연결하는 지점에 리스트의 피아노곡 <르 말 뒤 페이>가 있다. 그 자신이 재즈바를 해서 그런지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조예는 소설적 정서와 장면의 여운을 고조시키는 데 아주 절묘한 역할을 한다. 그 어떤 부속이 아니라 순간 핵심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개별의 이야기를 보편의 그것으로 확대시키는 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듯하다. 이 소설은 단지 무미건조한 쓰쿠루가 겪은 왕따의 아픈 추억에 대한 치유의 여정이 아니다. 직업병에서 비롯된 면도 있겠지만 쓰쿠루가 지하철역에서 관찰하는 그 수많은 출퇴근에 지친 직장인들의 정경, 특이한 유실물들에 대한 역직원들과의 대화, 아버지의 방황기를 통해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대학 후배와의 대화 들은 내러티브를 뛰어넘는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진지한 철학이 있다. 사람의 내면에는 아무리 친밀한 타인도 심지어 그 자신도 응시하기 힘든 어두운 심연이 있다. 그 심연에 조약돌을 던져 생기는 파문이 번져가는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자리에 하루키가 서성거리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지나치게 골몰하거나 함몰되지 않는 미덕에 그가 거는 타인과의 공명이 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주한 '너'와 충실하게 걸어가는 것이 삶에 대한 책무라는 것을 하루키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이제서야 온전히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냈다. 그것은 분명 이십 대의 나로부터 내가 걸어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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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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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산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그러한 풍경은 나의 것이 아니라고 속단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에 하필 읽은 이러한 이야기들은 위로가 된다기보다는 가슴 한켠을 묵직하게 누른다.

 

김숨의 소설집의 그녀, 그들은 늙었거나 가난하거나 배신당했다.

지금 이 순간 젊거나 행복하거나 부유한 자는 없다.

김숨의 그녀, 그들은 탐욕스럽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다.

추상적인 문제들이나 고차원적인 사고나 뜬 구름 잡는 식의 호사가 그네들에게는 없다.

그래서 잘 읽히나 그 읽힘이 편안하지 않고 뒷맛이 쌉사래하다.

그것은 작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시선에서 조망된 우리네 삶이 본래 그런 식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국수>

이미 읽었던 작품인데 다시 읽어도 마지막 대목에서는 눈물이 또 툭 떨어진다. "그래요, 지금은 반죽의 시간입니다...."로 시작하여 국숫발을 뚝뚝 끊어 설암에 걸린 계모에게 먹여주는 마지막 장면까지 반죽을 치대고 밀고 썰어 자신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전처의 자식 넷을 거두었다 말년에 홀로 외롭게 암으로 투병하며 죽어가는 어머니에게 예전에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국수를 만들어 주는 과정 하나 하나에 모녀의 관계를 투영한 이야기는 여자의 인생, 가족의 숙명, 삶의 지난함 등이 눈물겹게 형상화되어 있다. 소설이라는 것이 대단한 서사를 스펙터클하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 하나의 과정, 하나의 감정을 심도있게 묘파해 내는 과제를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방증 같은 이야기다.

 

 

 

 

 

<옥천 가는 날>

옥천은 나에게 조금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곳이다. 열두어 살 무렵 할머니집이 있는 대구로 내려가다 아버지는 접촉 사고를 내셨고 대부분 안 다친 상황에서 나는 이를 심하게 다쳤다. 가장 가까운 장소가 옥천이었고 아무데나 짚어 간 조그마한 치과에서 중년의 여의사는 응급 처치를 아주 정교하게 신속하게 잘 해치웠다. 사고수습으로 바쁜 아버지를 대신하여 동행한 나이 든 사촌 오빠를 아버지로 착각한 그녀는 어떻게 하다 아이 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심하게 야단을 쳤다. 여하튼 옆으로 넘어간 이를 지지대로 다 세우고 상처난 곳을 붕대로 덮어주는 등 그녀의 처치는 나중에 다른 치과 의사들한 테도 매우 깔끔하고 인상적이었다는 칭찬을 들었다. 그래서 '옥천' 하면 아무 연고도 없이 기착지처럼 들른 그곳이 참 믿음직하고 따뜻하게 기억된다. 그러나 정숙과 애숙 두 자매가 옥천으로 가며 주고받는 이야기들로만 짐작할 수 있는 그녀들의 사연은 어둑시근하고 가슴아프다. 구순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그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인 것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느라 노모를 돌보지 못하는 언니 정숙,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노모를 마지막까지 돌보았으나 요양급여를 타기 위해 노모의 온전한 정신을 치매로 위장해야 했던 동생 애숙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들은 그녀들의 팍팍하고 고생스런 생계와 노모와의 아픈 추억들을 외연으로 밀어낸다. 완전히 죽어 있다는 암시 대신 마치 지척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듯한 암시를 주는 노모와 그녀들의 자리는 마무리 즈음에 가서야 구급차라는 것을 알게 된다. 좁은 구급차 안에서 생과 죽음이 속살거리는 풍경. 그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중풍에 걸린 홀시아버지를 모시는 첫애를 임신한 며느리의 마음 속은 무간지옥이다. 하루종일 오리 뼈를 고아 그 국물을 마시며 생에 대한 끈덕진 애착을 시위하듯 표현하는 노인은 어느 날 이웃집 여자에게 빌려 준 돈 삼십만원을 대신 며느리가 받아 쓰라는 이야기를 한다. 산책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노인, 약속한 귀가 시간을 한참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시아버지에게 삼십 만원을 빌려 갔다는 이웃집 여자의 부재.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은 어쩌면 그 누구의 귀환도 바라지 않는 여자의 진심일런지도 모른다. 어떤 대답도 듣기 어려운 삶 그 자체일런지도 모른다.

 

<명당을 찾아서>

홀린듯이 부동산의 사내의 '명당 운운'에 석모도라는 섬을 따라나선 부부의 이야기는 기막히게 괴괴하다. 김숨 작가의 서스펜스적인 문장들은 큰 사건 없이도 읽는 이의 간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신기루처럼 잡을 듯하면 사라지는 꿈꾸었던 집 대신 이 부부가 당도하게 되는 목적지는 과연 어디일까. 역시나 이야기는 흔쾌히 답을 주지 않아 김이 좀 빠지기도 한다.

 

<구덩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구제역으로 숱한 돼지들의 목숨줄을 끊어놓아야 했던 아픈 시간들을 우리는 금세 잊어버렸다. 이 이야기는 돼지들을 살처분할 구덩이를 파는 사내의 던적스러운 삶의 행로와 인간들이 꾸역꾸역 살기 위해 그 구덩이 속에 파묻어버리는 것들의 풍경이 교차하면서 읽는 내내 소름이 오소소 돋게 한다.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아내와의 이혼을 종용받는 사내와 그 사내가 지금 하는 일에 끊임없이 욕설을 퍼붓는 교통사고 휴유증을 앓는 주인집 아들의 대면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삶의 행로를 따라 비어져 나오는 숱한 지저분한 실수들과 악행들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삶과 나이듦과 죽음의 그 거칠고 적나라한 속살. 한결같은 그 천착이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자꾸 동심원을 맴도는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그렇다.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과 손길이 빚어낸 이야기들의 울림은 크고 깊다. 입 안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턱 언저리에 묻기도 하고 흘리기도 하는 국숫발을 반죽하는 시간이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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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8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 역시 대단하군요.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이 소설집을. 한달 뒤에나 가능한 얘기지만.. 여튼 블랑카님 글은 늘 균형있고도 설득력 있는 섬세함을 잃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전 단편 '국수'만 읽었거든요. 두번 읽어도 같은 부분에서 찡했어요.)

blanca 2014-01-08 16:29   좋아요 0 | URL
섬님도 국수 읽으셨군요! 어떤 대목에서 찡하셨는 지 궁금합니다. 저는 솔직히 읽으면서 어울리지 않게 국수가 자꾸 먹고 싶어져서 ㅋㅋ 혼났습니다.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 손수 국수 반죽을 밀어 동네 아주머니들과 나누어 먹던 기억도 떠오르고요. 요새는 참 보기 힘든 풍경이지요.

페크pek0501 2014-01-0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어린 데도 읽을 것 다 읽으시는 님의 책에 대한 열정... 을 봅니다.
차라리 아이가 어릴 때 저도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젊었으니 눈이 피로하지도 않았고
오랜 시간 책을 봐도 끄떡없던 시절이었어요. 아이가 낮잠을 자거나 좀 커서는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줄창 책을 봤어요.

김숨 작가의 글은 (이름은 들어 봤으나) 아직 읽어 보지 못했으니 제가 이 시대를 잘 따라가지 못함은 확실한 것 같네요.
느릿느릿... 저는 고전에 묻혀 지낼 새해가 될 것 같아요.
대신 님의 리뷰 보면서 아, 이런 소설이 있구나, 하는 정도는 하고 살아야겠어요. ^^

blanca 2014-01-10 09:40   좋아요 0 | URL
아, 아이 안고 재우거나 수유할 때 책을 보게 되요. 그래야 즐겁게 견딜 수 있거든요^^;; pek0501님의 모옴 여정이 너무 기대됩니다. 페이퍼 열심히 찾아가서 볼게요.

세실 2014-01-12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 작가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가슴 한켠이 묵직하게 되는, 외면할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이군요.
읽어봐야 겠습니다.

blanca 2014-01-13 21:23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젊을 때부터 지금도 젊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내면을 그려내는 솜씨가 아주 비범한 작가예요. 주로 노인들의 고달픈 삶, 내면을 많이 그려서 사실 읽고 나면 한없이 다운되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을 아주 노련하게 잘 그려내고 읽히는 재미도 있어서 추천드리고파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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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많이 울었다. 업어 키우다시피 한 남동생을 잃은 어느 누나의 글을 읽고 한참을 울었다. 그 누나의 글에 댓글을 썼다 아침에 지워버렸다. 나와는 다른 고통의 층위. 이해한다고 나도 안다고 마치 고통의 경중을 겨루듯 적은 나의 글이 불편하고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구나 '나'라는 주어가 들어가면 최악의 상황은 예외가 될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한없이 안전하고 안온하게 그렇게 심심하지만 부드러운 삶을 주문한다. 하지만 삶의 응답은 때로 가혹하다. 평균적인 평범한 그러한 수식어로 둘러싸인 안전망이 항상 나를 둘러싸고 보호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예외란 없는 것임을 깨달으며 늙고 죽어간다. 그게 또 삶의 또다른 단면이다. 애써 부정하고 돌아서면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이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노작가. 그녀는 영어를 쓰지만 미국도 영국 출신도 아니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라 이제 여든을 바라본다. 게다가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젖을 수 있는 장편이 아닌 단편작가다. 단편은 때로 숨이 차고 때로 흩어지는 집중력으로 귀기울이기 힘들다. 그래서 아주 잘 쓸 수 없다면, 아주 잘 읽힐 수도 없다. 그러니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준비 대신 딴 생각을 할 구석을 남겨둔다.

 

구석에 다림질을 할 수 있는 다리미대와 다리미를 두었다. 그곳에서 와이셔츠를 다리며 때로 드라마를 본다. 그때 기분은 아주 묘하다. 정말 주부가 된 느낌. 진짜 '나'는 어디로 가버린 느낌. 다림질이 훑고 간 자리에도 남는 주름은 나의 무능력과 나의 열패감 같다. 나른하게 행복하기도 하고 뼈아프게 슬프기도 하다.

 

내 삶을 해결할 방법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어느 날 저녁 셔츠를 다림질하고 있을 때였다. 그것은 간단하지만 뻔뻔해져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거실로 들어가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말했다.- <작업실> 중

 

앨리스 먼로는 분명 남편의 셔츠를 정기적으로 다림질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업실>의 그녀가 하필 다림질을 하다 습작 작가로서 '작업실'을 얻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대목. 여자에게 집이란 남자와 같은 곳이 아니다,라는 말.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대체로 옷을 다려주지 않는다. 남자에게 보호받으며 대신 얽매여 지내야 했던 것들에 대한 고찰. 그녀는 작업실을 얻었지만 기묘한 임대인의 귀찮은 관심권 안에 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남자다. 그는 남편대신 그녀에게 사소한 관심들과 억압과 권력을 암암리에 행사하려 한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방을 빼게 된다. 다시 그녀는 남편의 셔츠를 다림질하던 그 자리로 돌아왔을까.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는 어떠한가. 화자는 어린 소녀. 아버지는 소위 온갖 것을 파는 만물 외판원이다. 우리나라의 약장수 같은. 어느 날 아버지는 소녀와 동생을 데리고 약을 팔러 떠나고 어린 시절, 혹은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하지만 지금은 더이상 아름답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한 여인의 집을 찾아간다. 그녀와 추억하는 것들. '나'는 너무나 달라져버린 아버지의 현재의 삶의 풍경을 관조하며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깨닫는다.

 

<휘황찬란한 집>은 어떤 집일까. 달걀장수 노파가 엉버티고 살아가는 퇴락하고 흉물스런 집 앞에서 선량하고 아이들을 더 잘 키워내고 싶어하는 '우리들'은 그 노파를 어떻게 하면 합법적으로 몰아낼 수 있을까를 아이들의 생일파티에서 공모한다. 이미 '우리들'보다 훨씬도 전에 그곳에서 그렇게 자신의 삶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노파의 무게는 간곳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을 그저 비난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때로 무심코 타인이 가진 것들을 침해한 적은 없는지. 삶은 가끔 누군가를 딛고 진행될 때가 있다.

 

그 간극은 <태워줘서 고마워>에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장갑공장에 다니는 소녀를 잠깐 태워주고 사랑을 느껴버린 '나'도 느낄 수밖에 없다.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에서 여우의 먹이가 되어버릴 찰나 말이 도망갈 수 있게 울타리 대문을 닫지 않은 계집아이가 아버지 앞에서 계집아이가 되기를 강요당하며 느낀 좌절감이 온 곳이기도 하다. 삶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장치에 오히려 속박당하며 무거운 철책을 사이에 두고 건너갈 수 없는 이야기들을 독백처럼 쏘아보내고 다시 튕겨져 나오는 그것들을 주워담는 일.

 

이 이야기들에는 저돌적이고 도전적이고 낙천적인 사람들 대신 때로 순응하고 체념하고 무력해지는 우리들에 대한 흔적이 있다. 앨리스 먼로는 이야기라는 장치를 통해 허울좋은 거짓말로 휘황찬란한 모조품을 만드는 대신 솔직 담백하지만 한없이 그리워지는 우리들의 유년을 잊지 않는다. 이곳에 살기 때문에 저곳을 돌아보지 않는 의도된 무관심을 방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때로 불편하고 때로 너무 가슴 아프다. 한때 외면했던, 이제는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상처들의 속살거림 속에서 당신은 흐느껴 울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설픈 소통대신 완벽한 고독을 택하는 그녀 앞에서 알은 체 하지 않고도 딱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약간의 눈물을 훔치는 일,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다. 삶의 뒤안길, 인간 내면의 어두운 구석, 퇴락해 버리고 잊혀져 버린 것들, 그러한 그림자들을 딛고 선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들은 조각조각 모여 삶의 거대한 하나의 은유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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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12-1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울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입을 꽉 다물고, 울면 다 무너질까봐 버티고 묻어버리고 억압하고 부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요...

블랑카님 글을 보면서,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던, 나에게는 결코 일어날 법하지 않던 일들이 숱하게 현실이더라는, 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더라는, 현실은 실제로 더욱 참혹하더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하니까요. 그게 간혹 저를 휘청거리게 합니다만....

그러나 다림질하면서 블랑카님이 느꼈던 슬픔과 행복, 동시에 다가와서 살만합니다.
좋은 페이퍼네요,,, 쪼옥~

blanca 2013-12-18 20:3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겠군요. 너무 큰 상실과 고통을 안고 가는 사람들. 누구나 아픔이 있겠지만 삶이란 게 참 가혹하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이제 또 연말이라 그럴까요. 한 살 더 먹고 인생의 반 정도를 향해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린 시절은 잡힐 것 같은데 참, 싱숭생숭해요.

그래도 순간 순간 맛난 커피, 좋은 책, 좋은 사람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아요, 우리.

페크pek0501 2013-12-19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벌써 이 책을 읽으시고 리뷰가지 쓰셨네요.
저는 이 책을 사 놓고만 있습니다. 내년에나 읽겠지요. (내년이 꽤 먼 것 같네요. 바로 코 앞인데...ㅋ)
이야기가 끊어져서 단편보단 장편을 좋아하지만 이 책은 읽어 볼 만하겠지요.
도대체 얼마나 잘 써야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인지, 궁금해요.
님 덕분에 미리 리뷰를 읽으니 좋습니다. 책이란 정보를 갖고 읽으면 더 좋은 법이니...

blanca 2013-12-20 10:22   좋아요 0 | URL
페크님, 꼭 읽어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사실 노벨 문학상으로 갑자기 조명되는 작가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신이 있는데 이 작가 작품은 딱 한 권 읽었는데도 그래서 탄 거구나, 싶더라고요. <디어 라이프>도 읽고 싶어요.
 
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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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아스팔트 위에서 아물아물 춤추는 초여름 오후입니다. 훈풍이라는 말이 존스 씨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일본어에는 정말 아름다운 말이 많다고 존스 씨는 생각합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에 든 봉지가 차락차락 울립니다. 봉지 안에는 갓 뽑아낸 우무채가 들어 있습니다.

 -p.5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

이제 본격적인 한여름을 앞두고 끈적이는 습기와 내리꽂히는 빗소리에 불쾌지수가 마구 올라가는 아침에 혹은 저녁에

이런 청량한 초여름에 물꼬를 트는 이야기는 청량하다. 에쿠니 가오리는 친절한 경어체로 독자를 맞이한다. 어떤 이야기일까.

남자는 게다가 일본에 체류 중인 오십 대의 미국인 강사다. 그는 장성한 남매를 미국에 두고 아내와는 별거 중인 남자다. 가족들과는 1년에 한 번 정도 재회. 그리고 그의 방에는 해가 잘 들지 않는다. 그러니 한낮인데도 어두운 방이다.

 

상대 여자는.

언덕 위의 군함 같은 하얀 집에 아이 없이 사업가 남편과 살고 있는 전업 주부 미야코.

그녀는 아주 착실한 살림꾼이다.

종일 청소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매일 새로운 밥을 짓고 때로 이웃집 아이를 돌봐주고 하는.

 

둘은 같은 동네 주민으로 함께 산책을 다니게 된다.

존스가 '필드 워크'라 명명한 그 기묘한 여정에서 미야코는 무심코 들었던 예쁜 새소리가 박새 소리임을 알게 되고 유치원떄 오렌지반이었다는 것, 남자는 초등학교 때 너드였단 것을 서로 고백한다.

불륜일까? 동네 이곳저곳의 스쳐 지나던 풍경이 남녀의 동행으로 더 풍부하고 사랑스럽게 변모하고

여자는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여자의 죄책감을 남자는 '자의식'으로 수정하여 가르쳐준다.

미야코는 더이상 집안에 갇혀 남편의 저녁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작은 새 같은 귀여운 존재로 남아 있지 않는다.

어쩌면 인형의 집에서의 탈출 같은 이 여정에 대한 이야기는

에쿠니 가오리의 그 간명하고 청랑한 언어로 투명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언어로 물빛 같은 색채를 띤다.

 

황금색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여기저기에서 한잎 두잎 떨어져 공중을 나는, 12월의 오후입니다. 겨울 채비, 라는 단어가 존스 씨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일본어에는 흥미로운 말이 정말 많습니다. 어깨에 짊어지듯이 들고 가는 양복-방금 세탁소에서 찾아오는 길입니다-에 덮인 비닐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락사락 소리를 냅니다.

-p.239

 

 

초여름에 우무채 봉지를 들고 거리를 걸었던 남자가 이제는 '겨울 채비'라는 말을 떠올리며 세탁소에서 양복을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어느새 저문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반년 남짓의 기간을 거치며 여러 색채로 변모하지만 그 관계 자체가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닌 것같다.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작은 새처럼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살림을 했던 여자는 결국 '불륜'을 저지르고 남편과도 소원해지지만 '한낮인데 어두운 방'에서 만났던 남녀는 어둑신한 결말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남자는 작은 새 같았던 여자와 만나 행복했고 여자는 남편과의 관계가 지녔던 그 얄팍함을 간파하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에 아픈 만족감을 가진다.

 

그들을 스쳐 지나갔던 풍경은 다시 흐른다.

나이 든 어른들의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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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이 다가오는.. 비 오는 날 이 시간에
blanca님의 청량하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blanca 2013-07-03 12:46   좋아요 0 | URL
댓글이 더 근사합니다.^^

안녕미미앤 2013-07-12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 만족감' 이라.. 아픈 만족감.... 아픈 만족감..
내공이 있는 블로그들을 만나면 따뜻해지는 무언가가 있어요.. 고마워요 블라카님..

blanca 2013-07-12 16:16   좋아요 0 | URL
안녕미미앤님, 아직 저는 '내공'이 부족합니다. 언제나 그럴 테지만요. 비가 많이 와요. 이런 날 이런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한 걸요. 주말 잘 보내세요^^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한번쯤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타인에게 저지른다. 시간의 신은 가해자도 피해자의 윤곽도 흐릿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용서'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흔히 자기 정당화로 스스로를 재빨리 용서해버리는 오류를 범하며 늙어간다. 그래, 그때는 어렸어, 철이 덜 들었었어, 라고.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는 견디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명확한 진실을 오도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는 일은 흔히 '속죄' 그 자체의 과정이기도 하다.

 

아주 뒤늦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찬탄을 받은 이언 매큐언의 이 책을 지금이라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35년 뜨거운 여름날, 탈리스 가의 막내 딸 브리오니는 오빠의 귀향을 환영하기 위하여 무모한 사랑에 빠져 불행해졌던 소녀가 새로운 사랑을 찾아 행복해지는 내용의 희곡을 쓴다. 부모의 이혼으로 가정이 해체될 위기에 처한 외사촌 언니 롤라와 아홉살 쌍둥이 잭슨과 피에로는 뜻하지 않게 이 희곡의 공연을 위하여 차출되게 된다. 모든 것을 제자리에 정리하고자 하는 열망과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사춘기 소녀 브리오니는 언니 세실리아와 신분 차가 나는 청년 로비 터너가 사랑하는 장면을 엿보게 되고 마침 없어진 쌍둥이 형제를 찾으러 다 흩어진 가족들 틈에서 사촌 언니 롤라가 누군가에 강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자기만의 왜곡된 퍼즐 맞추기를 시도하며 마침내 로비 터너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된다. 그렇다. 탈리스 가의 집안 일을 거들었던 어머니와 가족을 방치하고 떠난 아버지의 결손 가정에서 자라 브리오니 아버지의 후원을 받으며 의대생을 꿈꾸었던 전도 유망한 청년 로비 너는 두 소녀의 저마다의 굴절된 진실의 틈바구니에서 파멸하게 된다. 그녀들은 어렸고 각자의 욕망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채색했다. 로비를 사랑했던 세실리아는 부모와 의절하다시피 하고 로비는 수감되었다 온갖 살육과 잔인함, 방치가 난무하는 전쟁터로 떠나게 된다. 평범했던 안온했던 아기자기했던 그 여름날은 삶의 무참한 우연적 칼날 앞에서 난도질 당한다.

 

절규하는 서사 앞에서 이언 매큐언은 담담하게 소설의 역할을 역설한다. 그것 안에는 과장되지 않은 진실의 핵이 강력한 흡인력의 자기장을 떨친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교훈이었다.-p.67

 

이것은 브리오니의 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실수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잊어버린다. '너'도 '나'와 똑같은 소중한 마음, 감정을 지녔다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그 수많은 폭력, 오해, 전쟁, 기만적인 이기적인 행위 들을 이해할 도리가 없다. 로비 터너가 전쟁터에서 겪게 되는 그 수많은 처절한 참상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이 끈적끈적한 여름 속에서 한기를 실어온다. 마치 그 현장에서 직접 그 수많은 비극적인 사건들을 목격하고 겪는 듯했다. 로비가 느끼는 고통, 무감함, 피로, 욕망은 이윽고 독자의 것으로 환치된다. 그것은 이언 매큐언의 위대한 힘이다. 지천에 깔린 죽음을 목격하며 사내들이 아버지가 되기를, 생명을 갖고 즐거운 나의 집을 이루기를 꿈꾸는 그 슬픈 모순의 욕망에 대한 묘사는 히 더 그러하다.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래서 더욱 아버지가 되기를 열망하는 로비 터너의 꿈에 대한 묘사는 처절하리 만치 현실적이고 몽상적이고 아름답다. 됭게르크를 향하여 힘없이 퇴각하는 영국 군인들의 행복한 가정에 대한 꿈은 우리 인간이 극단적인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되려 생명을 매개로 한 회복과 부활을 꿈꾼다는 그 무력하지만 끈질긴 생존에의 열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이언 매큐언은 삶에 대한 그 무조건적인 애착의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브리오니는 속죄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한다. 브리오니가 아니라 읽는 우리들은. 그녀가 언니처럼 전쟁터의 병사들을 치료하는 간호사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고행의 행군으로 밀어넣는 그 절절한 대목들에서 어쩌면 그녀의 그 실수가 용서받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녀가 결국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 터너를 만나고 로비 터너의 그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 위하여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뒤로 하고 런던 남부의 지하철역에서 연인들과 헤어지는 장면. 어쩌면 적절한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수도 있었을 그 장면은 슬픈 반전을 품고 있다.

 

1999년 런던. 유명한 소설가가 된 브리오니는 일흔일곱 번째 생일파티를 유년 시절의 대저택에서 맞게 된다. 그곳에는 그 여름날 실종되어 모든 사건의 전초를 만들게 되는 쌍둥이 형제 중 생존한 노인 피에로의 증손자 등이 육십사 년이 지나서야 무산되었던 공연 <아라벨라의 시련>을  연기한다. 그리고 브리오니의 슬픈 고백은 위험한 반전을 예고한다. 그녀는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로 헤어져야만 했던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 터너를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그 슬픈 연인은 전쟁통에 죽고 용서하고 용서받을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다. 브리오니의 고백은 소설을 통하여 그 연인의 결합과 그녀 자신의 과거를 되돌리고자 하는 노력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히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것의 복선이기도 했다. 브리오니는 "그들이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는 슬픈 고백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독자는 철저히 속았다. 그러나 이 기만 행위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속죄'는 드라마틱하지도 쉽지도 않다. 어쩌면 하나의 허망한 환상일런지도 모른다. 이미 저질러진 행위와 가한 상처는 무뎌질 뿐이지 '무' 아래로 가라앉을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기 전에 그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은 소중한 마음이 있다,는 그 사실을 항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내 마음의 속살과 같은 여린 부분이 그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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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1 1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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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2 14: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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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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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5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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