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진화론 - 세상을 바꿀 엄청난 변화가 시작됐다
우메다 모치오 지음, 이우광 옮김 / 재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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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까지 출판계와 유통업계의 주역은 출판사 및 서점과 유통업자였다. 서점과 창고와 재고 관리에 적지 않은 고정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매출이 있는 책, 즉 '공룡의 머리'(그래프 왼쪽)에서 수익을 내어 롱테일(그래프의 오른쪽)의 손실을 보전하는 사업 모델을 유지해왔다.
2004년 가을에 롱테일론이 각광받게 된 것은 인터넷 서점이 이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버렸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제창자는 미국 <와이어드(Wired)>지의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 미국의 서점 체인인 '반즈 앤드 노블스'가 보유하고 있는 도서의 총수는 13만 타이틀(판매 랭킹 13만 등까지)인데, 아마존 닷컴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13만 등 이하의 책에서 올리고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중략) 일반 서점들은 '팔리지 않는 책'을 재고 비용 때문에 서가에 비치하지 않지만, 아마존은 도서 목록에 올릴 수 있다. 그 이유는 책 목록을 추가하는 데 드는 비용이 거의 '제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아마존이 230만 종이 넘는 서적을 다룰 수 있는 비결이다. -104~105쪽

우리들은 검색 엔진의 편리함에 너무 젖어 있다. 그래서 책 내용까지 검색 엔진으로 검색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라는 생각도 한다. 인터넷상의 단편적인 정보보다는 책의 본문이 좀더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본문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것에 대해 공급자인 출판사나 저자는 극력 반대한다. 책이란 돈을 내고 사서 보는 상품이며, 내용 일부를 검색 엔진으로 공짜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책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아마존닷컴이나 구글-인용자)은 서점에서 현재 판매되고 있는 책은 물론, 전세계 도서관에 소장된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든 책을 스캔해서 정보발전소에 집어넣고, 그 내용을 누구라도 자유롭게 검색하게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리고 "책 본문을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공급자인 출판사와 저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새로운 이론을 마련해 공급자 설득에 나서고 있다. -106쪽

도서공급자는 이런 미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공급자측에도 두 가지 생각과 입장이 있다. 이를 '공룡의 머리파'와 '롱테일파'라고 부르기로 하자.
공룡의 머리파는, 베스트셀러나 잘나가는 책의 판매가 둔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출판사는 줄곧 공룡의 머리 부분에서 수익을 내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출판 관계자들은 공룡의 머리파에 속한다. 책 본문에 대한 인터넷 검색을 허용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절대악'이다.
하지만 같은 도서 공급자라도 롱테일파는 다르다. 롱테일 부분에 있는 책은 어짜피 잊힌, 거의 팔리지 않는 책들이다. 그들은 어떤 계기가 마련되어 그 책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한 책 본문 검색을 쌍수 들어 환영하는 것이다. 검색한 100명 중 한 명이라도 책을 사주면 성공이다. 한 권도 팔리지 않던 책이 한 권 팔린 책이 되는 것이며, 판매를 계기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106~107쪽

아마존닷컴은 2003년 10월, 본문 검색 서비스인 '서치 인사이드 더북(Search Inside the Book)'을 시작했는데, 거래처인 출판사들과의 합의를 존중하면서 원만하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아마존은 이 외에도 책을 페이지 단위로 판매하는 '아마존 페이지'. 아마존을 통해 종이책을 구입한 고객은 온라인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아마존 업그레이드' 등 참신하고 파괴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략)
반면 구글은 과격하고 급격하다. 전세계 도서관의 모든 책을 스캔해서 검색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구글 북 서치'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작가와 출판사들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규칙 파괴자와 책 공급자 간의 알력이 커진 근본 배경에는 공룡의 머리파와 롱테일파의 세계관의 차이가 있다. -10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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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절판


잡지를 모아둔 도서관으로 유명한 '오야 문고五宅文庫'는 그 분류법이 독특한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오야 무노는 오야 소이치五宅壯一(일본의 사회평론가 및 논픽션 작가. 그의 이름을 딴 오야 소이치 논픽션 상은 그 권위로도 유명하다 -옮긴이)가 자신의 작업을 위해 개인적인 자료서고로 만든 것이다. 개인적인 자료서고니까 철두철미 자신에게 맞게 만들었고 그러다보니 독특한 분류법이 태어난 것이다.


-54~55쪽

대항목은 비교적 건실한 것들이지만 그중에는 '기인奇人 연인', '여자', '도박', '정사情死 및 자살' 같은 이채로운 항목도 있다. '범죄 및 사건'이라는 대항목에는 25가지의 중항목이 있는데 그중 다섯 가지가 살인 사건 관계로 '살인 일반', '존속 살인', '보험금 살인',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해치는 살인, 무차별 살인', '유명한 살인 사건' 등으로 되어 있다.

소항목을 보면 개개의 살인 사건 외에도 '인체 절단 살인 사건', '푸대, 자루, 콘크리트에 묻어서 살해한 사건', '치정 살인'등의 항목도 보인다.

'세태'라는 대항목에는 21가지의, 중항목이 있다. 그중 '돈'이라는 항목에는 '인색', '돈 폭력', '성금', '부자 순위', '보물찾기', '돈벌이', '아이디어' 등과 같은 소항목이 늘어서 있다. '장사, 소비, 직업'이라는 중항목에는 '사기를 이용한 장사', '꿈을 파는 장사', '이동식 포장마차', '싸게 사는 요령', '몸으로 거리 광고를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소항목들이 포진해 있다.

도서관의 십진분류법 등속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독특한 분류다. 자신만을 위한 분류라면 누구든지 이 정도는 독특한 분류를 하는 것이 좋겠다.
-5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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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정여울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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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거칠게 단순화시키자면, 현재 한국에서 21세기형 비평가의 '이상적'(?) 모델은 가라타니 고진형과 슬라보예 지젝형으로 이분화된 것은 아닌가 한다. 문학의 영토로 시작되어 철학의 고원으로 옮아간 가라타니 고진, 그리고 철학과 정신분석학의 지층에서 시작하여 영화를 비롯한 전방위적인 문화비평으로 나아간 슬라보예 지젝. 평론가들은 이들의 텍스트를 수많은 '각주'로 소비하지만, 비평가라는 존재의 윤리적 차원에서 두 사람은 더더욱 복잡한 화두들을 던지고 있다. -28~29쪽

소설가는 '소통 불가능성'이라는 거대한 암벽을 타며 손발로 끊임없이 소통의 언어를 더듬는 고독한 등반가다. -39쪽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며 타인의 고통을 타자화시킬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타인의 고통을 들쑤시는 행위 자체의 수치심과 싸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타인만의 고립된 상처로 봉인하지 않기 위해 문학은 좀더 더러워져야 하고 훨씬 많이 수치스러워져야 하며 있는 힘껏 혐오스러워야 한다. 이토록 휘황한 문명의 시대에 이토록 거대한 빈곤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는 것, 여전히 빈곤이 인류의 화두라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감당해야만 할 인류학적 스캔들이 아닐까. -90쪽

대중문화의 최전선 혹은 대중문화의 맨 밑바닥에서 정치적 폭탄을 길어올리는 것.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소프트하게 번역하기 위해서도, 이데올로기의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자기 시대의 버려진 물건들의 상처를 통해 다가올 미래의 혁명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벤야민의 빛나는 명랑성은 여전히 소중하다. -115쪽

미디어는 '심심한 자들의 킬링타임거리'나 '약자들의 도피처'가 아니다. 현대인에게 '삶으로서의 권태'는 일상적이며, 권태로운 인간은 우울에 빠진다. 그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엔터테인먼트다. 벤야민의 말처럼, 권태는 현대인의 존재론적 기초다. 이것이 바로 미디어의 존재 이유다. 범람하는 미디어 비판론이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것을 넘어설 만한 강력한 대체재가 없기 때문이다. 웬만한 양식 있는 지식인들은 민족주의의 타파를 부르짖고, 어지간한 비판적 지성들은 모두 미디어를 비판하지만, 우리에게 민족주의가 주는 대중적 위안을 뛰어넘을 마약이 있는가. 영상 미디어를 압도할 만한 관능적 매혹의 텍스트가 풍부한가. -144쪽

유비쿼터스의 환상과 싸우는 김애란, 한유주가 진정 미디어를 뛰어넘기를 원한다면, 그녀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균질화된 평범성'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매스미디어는 자본의 가면이자 혈관이다. '나는 미디어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위치시켜서는 안 된다. 벤야민이 자본의 매혹을 통해 자본주의를 내파했듯이, 그들도 미디어의 방관자가 아닌 미디어에 매혹되고 중독된 자리에서 미디어를 내파하기를. 우리는 외계인 사령부에 보내는 지구답사기를 원치 않는다.-144-145쪽

원룸형 솔로레타리아의 집단적 탄생. 이것이야말로 21세기적 인간형의 핵심적 문제다. '원룸-편의점-비정규직 일터'로 상징되는 솔로레타리아에 대한 계급적/심리학적 분석이야말로 이들 소설이 보여주고 있는 현대사회의 치명적 환부가 아닌가. -171쪽

"선택은 자아의 본성을 직접 반영한다.(...)단 하루 동안에 천 가지의 조그만 선택들을 할 수도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중요한 것들이다.
- 앤서니 기든스, <현대사회의 성, 사랑, 에로티시즘> 163p 재인용.-197쪽

인스턴트 식품과 유전자조작식품이 점점 '안전한 식탁'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사회에서나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요리하고 먹는지가 그 사람의 일상은 물론 가치관과 운명까지 집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엌은 현대인의 정신적/육체적 통과제의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235쪽

(권여선에 대하여)

그녀의 붓은 수정처럼 단단하되 물결처럼 유연하다. 그녀는 방울뱀처럼 치명적인 독을 품으면서도 화려한 무늬를 자아내는 문체를 구사한다. '오정희'적 문체와 '최윤'적 지성, 고집스런 감수성과 세련된 지성을 동시에 품은 그녀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진다. -255쪽

70년대에 태어나고 90년대에 대학생이었던, 현재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인 세대를 묶어줄 만한 이름이 있을까. 아니, 묶는다는 것이 가능하거나 필요한 일일까. 이십대 초반에 IMF를 겪었으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청년실업'이라는 단어를 귀가 아프게 들어야 했던, '백수'를 표현하는 온갖 창조적인 표현들을 발명해낸 이 세대. 오프라인의 경험을 온라인의 경험보다 굳이 우위에 두지 않는 이들의 정신세계를 '한 큐에' 엮을 통쾌한 명명법은 없는 것일까. 나는 아직 이들을 '우리 세대'라 묶을 수 있는 어떤 경험적 증거도 찾지 못했다. 이 세대들에게서는 경험의 공통분모도 감수성의 교집합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가까스로 이들의 문화적 취향과 의식적 성향을 얼기설기 묶어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X세대나 N세대 같은 미디어의 언어로는 이들의 감각을 아우를 수 없다. 어쩌면 우리 세대의 가장 분명한 공통적 감수성은 그 어떤 집단과도 공통의 경험을 나눌 수 없다는 '단절감'이 아니었을까. -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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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절판


'.....지금 당신이 있는 장소에는 숱한 소리와 목소리들이 웅성거리고 있어. 그 속에서 가장 작은 소리에 귀를 귀울여봐. 그러면 당신의 의식은 집중하기 시작할 거야. 그 작은 소리가 확실히 들린다면 이번에는 그보다 더 작은 소리를 찾아내는 거야. 그리고 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야. 그 소리가 또 확실하게 들린다면 그보다 더 작은 소리를 찾아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렇게 천천히 당신 앞으로 침묵을 끌어내봐. 어부가 그물을 당기듯이.'-168쪽

시각에 의한 기억은 여행 중의 메모이며, 일기와 다름없는 것이다. 여행을 마친 후 그 여행에 대한 감상을 기술하려고 할 때 우선 시각의 인화지에 타들어간 그 순간의 장면부터 떠올린다. 그 장면들 중 가장 작은 디테일부터 상기하는 것이다. 그 디테일이 다음 순간의 디테일을 떠올리는 열쇠가 되고, 그 같은 디테일의 연쇄가 나중에는 거대한 세계가 된다. 그렇게 재현된 세계 속에서 나의 의식은 마침내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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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군신위 - [초특가판]
박철수 감독, 방은진 외 출연 / 플래닛 엔터테인먼트 / 200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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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간다, 안 간다 하면서 간더더니 이제 k선배도 혼기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올 설에 잠깐 만난 k선배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결혼 예식의 청사진을 이렇게 그리고 있었다. 1.부조를 받지 않는다. 2. 뷔페 음식 대신 정성스레 준비한 국수를 대접한다. 3.주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배우자에게 보내는 글을 지어 낭송한다.

 혼례, 장례, 돌잔치 등, 대부분의 예식들을 마뜩잖아하는 내게 이런 이야기들은 신선한 감흥을 준다. 매뉴얼대로 잘 하는 것도 어렵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일도 어려운 일일진대 나는 팔짱만 끼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데 위에서 말한 1.2.3은 소위 현대화된 ‘웨딩 패키지’라는 틀에서 뛰쳐나가려는 노력이지, 혼례 문화 자체를 재조직하려는 시도까지는 아니다. 사실, 조상들의 전통 혼례를 잘 들여다보면, 번거롭기는 하여도 ‘분리-전이-통합’의 단계를 착실히 밟으며 의미와 내용을 잘 조직하고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니까 각종 예식에 대한 나의 마뜩잖음은 전통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는 시시하게 ‘패키지-화’되어버린,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패키지-화’는 장례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얼마씩 적립하면, 장례지도사가 기본 절차에 따라 필요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례 상품’이 유행하고 있지 않은가. 울긋불긋한 상여 대신 링컨콘티넨탈 리무진을 타고 가는 세상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절이기에,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는 전통 장례에 대한 기록 영화처럼 느껴진다. 초혼과 반함, 빈상여놀이 등 현대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의식들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코미디’로 분류되어 있다. 상복 입은 여인네들이 그렇게 목 메게 우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도 ‘코미디’다. 흐벅진 허벅지가 어둠 속에서 경련을 하고, 기다란 장총이 푸른 하늘을 가르고, 로타리 다방 레지 아가씨들이 남행열차를 부른다. 씨가 불분명한 어린 자식이 병나발을 불고, 흑돼지는 잡혀죽기 싫어 꽥꽥거리며 뛰어다니고, 보험 신청서가 부지런히 왔다갔다한다.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이 각기 문상을 와서 주먹질을 하고, 염불과 찬양이 서로 소리를 드높인다.

 이 시끌벅쩍한 와중에 때로 뜨뜻한 눈물 방울도 얼룩진다. 자전거포 주인은 진작 자전거 페달을 고쳐주지 않아서 사고가 난 거라며 자기 탓을 하며 울고, 다방 레지 아가씨는 하룻밤만 같이 자줬어도 노인이 십 년은 더 살았을 거라며 울고, 수십 년 전 ‘도라꾸’를 몰고 도망쳤던 윤 기사는 돈가방을 싸들고 와서 잘못했다고 빌며 울고, 머리채를 붙들린 채 쫓겨났던 막내딸은 다시 가족의 품에 안기면서 운다.

 이처럼 격식 있고, 또한 난장판이며, 애 끊는 눈물이 넘치는 장례 장면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리란 사실을 박철수 감독은 예감했던 것일까? 90년대 중반, 경상도 시골의 한 장례 장면이 불과 10여년 만에 이렇게 생경해지고 말았으니. 

하긴, 눈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회사로 출근해야 하고, 허니문의 달콤함을 음미하기도 전에 밀린 서류파일 더미를 해치워야 하는 것이 우리네 조건 아닌가. 그러니 의식은 점점 간소화되고, 그에 따라 우리네 희로애락도 점점 간소화되어갈수 밖에. 어쩌면 우리는 일상과 의례를 깔끔하게 구분해주는 패키지 상품에 고마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안도하며 내쉬는 그 한숨 속으로, 질펀하게 감정을 풀어헤쳐놓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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