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쿠라노소시
세이쇼나곤 지음, 정순분 옮김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4년 8월
품절


당시 결혼과 가족 제도는 오늘날처럼 일부일처를 중심으로 해서 부모 형제가 같이 사는 방식이 아니었다. 부부 관계를 맺은 남자는 저녁때 여자의 집에 가서 묵고 이튿날 새벽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찾아가지 않으면 부부 관계가 끊기기도 했고, 여자든 남자든 반드시 한 사람하고만 부부 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그렇게 부부 관계가 불안정했기에 남녀는 항상 긴장감을 느껴야 했고, 여자 쪽이 수동적인 처지가 되기 쉬웠다. 그러한 여자들의 고독과 고뇌가 헤이안시대 여성문학의 발달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청령일기蜻蛉日記> <이즈미시키부일기和泉式部日記>가 대표적인 예다.

-56 각주쪽

후조(後朝) : 남녀가 함께 밤을 보낸 후의 아침. 당시에는 남녀가 밤을 같이 보내고는 새볔녁 해 뜨기 전에 이별을 하고, 남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바로 후조 편지를 써서 여자에게 보내야 했다. 만약 후조 편지를 보내지 않으면 앞으로 관계를 끊겠다는 뜻이었다.
-81쪽

풍류를 알고 아직 독신인 남자가, 전날 밤 어느 여자네 집에서 잤는지 새벽녘에 돌아와서 졸린 눈을 비비며 벼루에 먹을 곱게 갈아 후조 편지를 정성 들여 쓰는 것은 정말 운치 있다. 흰 속곳 여러 겹 위에 황매와 옷과 다홍색 옷을 입었는데, 그 흰색 홑옷이 심하게 구겨진 것을 내려다보면서 편지를 다 써서 바로 앞에 있는 뇨보한테 주지 않고 일부러 밖까지 나가 시종을 부른 후에, 무슨 말인지 조용히 이르고 편지를 줘 보내는 것이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편지를 보낸 후에도 혼자 상념을 빠져 밖을 내다보면서 경전 여기저기를 조그만 소리를 읊조리는데, 안쪽 방에서 아침 죽과 물을 준비해서 뇨보가 갖고 왔지만 계속해서 책상에 앉자 책만 본다. 조금 흥이 나는 곳이 소리 높여 읽는 모양이 멋있어 보이고, 손을 씻은 다음 노시만 입은 뒤에도 허공을 향해 법화경 6권을 읽는 모습이 마음에 스미는 듯하다. 그러는 동안에 상대방 여자네 집은 가까운 곳에 있는지 아까 심부름 간 시종이 답장을 받아 와 손짓하자, 독경을 멈추고 그 답장을 펴 본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독경을 게을리 하면 벌을 받게 되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3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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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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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心 때문에 몇 번이고 속을 가라앉혀야 했다. 2주에 걸쳐, 겨우 완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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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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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생을 얼마쯤 살다 보면 완벽한 행복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 정반대되는 측면을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즉 완벽한 불행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 양 극단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인생의 순간들은 서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모든 영원불멸의 것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늘 모자란 인식도 그중 하나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희망이라 불리고 어떤 때에는 불확실한 내일이라 불린다. 모든 기쁨과 고통에 한계를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도 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물질적 근심들도. 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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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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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님 제삿날, 갓 시집온 새댁이 밤중에 일어나 제삿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나갔다. 인기척 소리에 사랑방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물었다.
"얘야, 아직 이르지 않느냐?"
그러자 며느리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아버님,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시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며느리는 자신만만했다. 왜냐면 시집 오기 전에 친정집에서 몇번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 첫번째 오줌이 마려울 때 일어나면 그때가 바로 제삿밥 지을 때가 딱 들어맞았던 것이다.
우스개 같은 옛날 이야기지만 시계가 없던 시절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흔히 제삿날 밤에는 여인들이 잠을 설치며 연신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며 별자리를 찾거나 달이 있는 밤이면 달을 쳐다보며 시간을 재었다.
제사가 있는 날만이 아니라 기계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날 우리 조상들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래서 달력이 없어도 날짜는 정확히 알고 시계가 없어도 시간을 알았다. -93쪽

꼭두새벽부터 어둑새벽, 찬새벽, 밝을녘 등등으로 아침시간을 나누었다. 저녁나절부터는 해거름, 해넘이, 어스름저녁, 이렇게 숫자표시보다 훨씬 따뜻하고 시적인 시간개념으로 사물을 표현했다.-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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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커리 정원의 여행자 - 어느 우퍼의 영국 여행 다이어리
문상현 지음 / 시공사 / 2009년 2월
절판


BBC 라디오4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공영방송사인 BBC의 라디오 채널이다. 클래식, 스포츠, 드라마, 월드 서비스 등 10개가 넘는 BBC의 라디오 채널 중 영국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최고의 채널이기도 하다. 24시간 제공되는 시사, 다큐멘터리, 뉴스, 인권, 역사, 드라마, 비즈니스 등의 다양한 고급 콘텐츠로 남녀노소의 귀를 사로잡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어려서부터 상당수의 영국인이 BBC 라디오4 청취에 익숙하다는 것. 아침이면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빠와 라디오 뉴스를, 오후에는 어머니와 드라마로 고전 원작 『닥터 지바고』를, 저녁에는 역사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위해 다큐멘터리로 「페르시아 전쟁」을, 잠자리에서는 '베드타임 스토리'로 「마지막 잎새」를 들으며 자라난 영국 아이들이 이 방송을 일상의 일부로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하리라. 물론 현란한 영상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라디오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교육과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세계의 상을 모두 휩쓸 만큼 뛰어난 BBC의 콘텐츠 제작 능력은 BBC 라디오4의 위상을 '지성인을 위한 대중 채널'로 격상시켜 놓았다.

-190~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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