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서 나는 처음 내방이란걸 가져봤다. 공부방- 일명 서재라 어마거창하게 불리는 그런 방도...비록 12평짜리 햇빛도 안드는 1층 전세집이었지만....

원체 물건 사러 다니고 하는걸 귀찮아 하는 성격이다보니 결혼할 때 내 혼수품은 내 손으로 고른게 없었다. 친정엄마와 여동생 둘이 가구며 전자제품이며 그릇이며, 하여튼 내가 고른건 없다. 나는 한 마디만 했다. "대충 사라, 무조건 싼걸로다가..." 그리고 난 내 할일을 하고 이 두사람 너무 너무 신나하면서 물건 사러 다니더라. 그리고는 꼭 저녁에는 나한테 자랑을 하는데 나 한마디만 했다. "좋네..." (도대체 누가 결혼을 하는지...)

그런 내가 유일하게 내 손으로 직접 찾아다니면서 고른 것이 있으니, 바로 책상과 책장이다.

나의 조건은 간단했다. 다른데서 돈 무지 아꼈으니, 책장만큼은 돈이 좀 들더라도 무조건 책 많이 넣을 수 있고 튼튼한것일 것, 그리고 책상은 지저분하게 이것 저것 딸린 것 딱 질색. 역시 넓고 단순할 것....

근데 이런 저런 매장을 다녀봐도 맘에 드는 것이 별로....

그러다가 동생이 제안한게 좀 폼은 안나도 내 조건에 딱 맞는게 있다는거다. 바로 사무용가구 전문 매장인 '퍼시스'(여기서 학생용 시스템 가구 전문으로 독립해 나간 회사가 꽤 알려진 일룸이다.)

여기 책장, 책상 내맘에 딱이었다.

요기 사진들...





모두 나무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옆의 세로 버팀대만(이 명칭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고, 나머지 책꽂는 상판들은 모두 철판이다.

이 책꽂이의 장점

1. 진짜 튼튼하다. 두 번의 이사에도 긁힌 데 하나 없고(하기야 철판에 일부러 긁지 않는 이상 어디서 긁히랴..) 아무리 많은 책을 얹어도 전혀 휠 염려가 없다. 철판이다 보니 습기나 뭐 이런거에도 끄떡없다.

2. 엄청 책 많이 꼽힌다. 자유자재로 단 조절이 가능하다. 그래서 결혼하고 처음에는 거의 5단으로 사용했는데, 1년에 한번씩 책정리하고 방출하고 해도 쌓이는 책에 상판을 낱개로 더 사다가 조절을 한 결과 지금은 제일 왼쪽 7단, 나머지 2칸 6단으로 사용하고 있다.(지금은 포화상태다) 천정에도 조금 올라간 부분이 있어 책꽂이로 사용이 가능하다.(이것까지 치면 8단 7단씩이 된다.) 거기다가 원목이 왠만큼 좋은거라도 세월이 지나면 휘는걸 어쩔 수 없어 대부분 책꽂는 칸이 좁은 데 반해 이건 한 칸의 폭이 무지 넓다. 그리고 책의 종류에 따라 칸의 세로 폭을 자유자재로 조절이 가능하다.(거의 5cm마다 고정 나사칸이 뚫려 있다.)

3. 가격 - 이건 약간 문젠데 결코 싸진 않았다. 하지만 보통 시스템 가구의 원목 책장들과 비교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던 걸로 -아니면 약간 더 비쌌나? 하지만 유용도에 비하면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던 듯...하지만 나는 이 책장을 앞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가지고 다닐거다. 아마 그때까지도 별 문제가 없을 듯... 그러므로 가격 좀 비싼 것 감수할 수 있다.

4. 단점 - 원목 책꽂이에 비해 중후한 맛은 안난다. 하지만 이건 원래 내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기에 별문제 아니다.



최근에 책장이 모자라서 새로 사 넣은 책장.(최근에 산 책들을 그냥 꽂아놓아 중구난방이다) 일룸의 제품인데 제일 위의 자투리 공간까지 치면 6단짜리다. 결론 - 마음에 안든다. 폼은 더 나나 칸 조절도 맘대로 안되고 쓸데없이 상판만 두껍고, 높이는 낮고.... 조만간 예린이와 해아 책장으로 밖으로 밀어내야 할 것 같다. 애들 책장을 아주 싼걸-하나에 2만원짜리-로 작은걸 구입했었는데 지금 곳곳에 나사 풀어지고 제일 아래쪽 문은 부서지고 장난아니다. (싼게 비지떡이란 말을 실감) 그래서 이걸 밖으로 내서 애들 책장으로 쓰고 나는 기존의 것과 같은 걸로 사서 이어붙일 생각이다. 돈생기면....

알라딘에 늘어나는 책장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썼는데.... 기왕 하는김에 청소좀 더 하고 찍을걸....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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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8-1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정말 많으시군요,,
너무 멋져요,,

비로그인 2005-08-1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원사,빛깔있는 책들 시리즈가 광이 번쩍번쩍 납니다.*^^ 역사쪽도 많으시고 내공이 상당하시네요.열하일기 3권만 봐도 든든해집니다..와우,처음뵙는지요?..흑백TV라고 합니다.넙죽~

엔리꼬 2005-08-1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뽀삐뽀 119! 민중의 세계사! 세계의 동화(이 책 재미나나요? 너무 학술적인가요?)
그나저나 책 앞쪽에 딱풀 몇개밖에 없네요... 저희 집 책꽂이는 온갖 잡동사니가 책 앞에 널부러져 있는데..

바람돌이 2005-08-19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책이 아니라 책꽂이를 보시라니까요. 평생 들고 다닐 책꽂이라잖아요. 에잉 이러니까 무슨 가구회사 영업사원 같잖아...
새벽별을 보며님/ 저도 남 책장 구경하는거 좋아해요. 저 중에서 뭘 뽑아갈까 하고 눈을 번득거린다는...^^;
흑백TV님 /열하일기 3권 아직 안봤습니다. 사놓고 안 본책 천지입니다. 하도 여기저기서 많이 뵌 분이라 처음 뵙는 분 같지 않은데요. ^^
서림님/ 세계의 동화-그냥 동화책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녀와 야수 같은 동화도 있구요. 온갖 민담과 동화를 모아놓은 책이라 심심할 때 하나씩 읽어주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다만 책이 너무 무거워서 힘겹지만서도.... 그리고 이 책장 사진 찍을려고 청소한 겁니다. 좀 부실해서 그렇지... ^^

panda78 2005-08-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몇개 맞출래요. 캐테 콜비츠, 당신의 미술관 1,2,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1,2,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1-4, 대한민국사.
7단으로 쓰시는 거 정말 탐나요. 칸 높이가 딱 좋네요. ^^ 일룸이라.. 이사갈 때 고려해봐야겠군요. ^^

바람돌이 2005-08-1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다님 판다님/ 일룸이 아니고요. 일룸은 마지막꺼 맘에 안든다니까요. 제 책장은 퍼시스예요. 사무용 가구 전문점이죠

panda78 2005-08-1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 퍼시스였군요. 이부분을 못보고 뒤에 갈려져 나간.. 부터 봐서 일룸인 줄 알았어요.^^;;
퍼시스, 기억할게요, 바람돌이님!

국경을넘어 2005-08-19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랑 비슷한 게 눈에 많이 들어오네요. 끼리끼리 모아논 것도 어쩜^^* 국편 한국사에서 개론서 쭈욱, 어떻게살았을까 쭈욱, 대원사책 쭈욱, 역사교육 쭈욱, 다음 책꽂이는 기행 미술 관련 쭈욱,,, 근데 클리오님 얼굴 공개하고 바람돌이님 서가 공개하고 오늘 무슨 커밍아웃하는 날인가요?

날개 2005-08-1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왜 책장에 책이 가득 들어찬걸 보면 뿌듯할까요~!^^ 근데, 조만간 책장 모자라시겠어요...

연우주 2005-08-1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책이 많아요. 저는 diy쓰는데. 공간박스요. ^^

클리오 2005-08-19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역사선생 방 같아요.. ^^ 색깔만 봐도 무슨 책인지 아는 저 책들... 왠만한 도서관 안부럽겠어요. 흐~

2005-08-19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5-08-2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퍼시스 요즘 도서관 용품으로 굉장히 인기예요~~
제가 근무하는 간행물실 책상이며, 쇼파 모두 퍼시스로 바꾸었답니다.
저도 집에 퍼시스 책상으로 들여놓을까 생각중입니다. 4인용으로 해서 마치 도서관처럼 꾸미고 싶어요~~ 아쉬운건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아영엄마 2005-08-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꽉 차도 단정하군요. 저희집은 크기가 제각각인 그림책들이 많다보니 들쑥날쑥인 느낌이 많이 들거든요.

로드무비 2005-08-20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하고 갑니다!^^
(묵직한 책장과 책들 부럽네요!)

히피드림~ 2005-08-2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사무용가구 브랜드에서 책장샀는데 보통 가구브랜드보다 값도 저렴하고 튼튼합니다. 바람돌이님 첨 뵈었을때 제가 추천해 드린, 김원봉연구와 최후의 분대장도 보이네요. 흐흑ㅠㅠ 감격^^

조선인 2005-08-2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시 퍼시스에서 떨어져나온 유아이 책장이에요.
큰 맘 먹고 지른 책장이라 평생 짊어지고 다닐 거에요. 히히히

진주 2005-08-2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악........제가 갖고 싶어했던 열하일기가 그 뚱뚱한 몸매를 자랑하며 꽂혀있군요....바람돌이님 사모합니다....
(그런데 철재라면 무겁지 않은가요?)

바람돌이 2005-08-2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밤사이 이리도 많은 댓글이.... 역시 알라디너들에게 가장 관심있는건 책이었군요. ㅋㅋ
폐인촌님/ 그래도 님의 서재 책들은 저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티가 많이 나던데요. 메인 화면에 아이들 둘 뒤로 보이는 책장을 열심히 살폈죠..ㅋㅋ 이동네 전공자 책장들은 아마 다 비슷한 것 같죠. 그런데 커밍아웃이라뇨? 그래도 저는 얼굴은 공개안할 것 같은데.... 워낙 미모라서 즐찾이 다 줄어들까봐서요.
날개님/ 맞아요. 이 책장은 이제 더이상 들어갈 때가 없구요. 이제는 책 늘어나는거 보고 책장은 다시 구입해야 돼요. 하지만 아직은 새로 산 작은 책장으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보라빛 우주님/공간박스는 자투리 공간 활용할 때는 좋은데 이게 어느정도 규모를 넘어서면 공간박스 정리도 힘들어질 것 같아서요.^^
클리오님/아마도 클리오님 책장이나 저나 비슷하지 않을까? 글구 흉볼정도로 기억하는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다만 우리가 아는 누구랑 같이 있는걸 봤다 정도?
세실님/아 요즘 도서관도 돈을 들이는군요. 근데 님은 집에 4인용 책상을 들인다면 들이고 나면 꼭 사진 보여주세요.

바람돌이 2005-08-20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정말 애들 책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서 꼽기 너무 힘들죠. 저희집은 애들 책은 몽땅 거실에 다 내놓아서 여기는 안보이니 좀 단정해 보이는거죠 뭐
로드무비님/한번 큰맘먹고 지르면 평생이라니까요. ^^
punk님/ 드디어 만났네요. 사무용 가구 동지. 이게 가격은 다른 시스템 가구랑 거의 비슷하면서 튼튼하고 실용적인걸로는 최고죠? 글구 제가 저 책들 살 때 땡스투도 눌렀다구요. 최후의 분대장은 우리집 서방이 먼저 읽고 좋다고 하더라구요.
조선인님/ 우리 같이 짊어지고 다니자구요. 애고 무거워라....^^
진주님/ 아무리 그러셔도 열하일기 못드려요. 아직 안읽었어요. ^^ 책장이 무겁긴 하겠지만 제가 들 일이 없으니 전혀 상관없죠. 설치는 가게에서 알아서 해주고 이사 때도 포장 이사 하니까 이사짐 센터에서 알아서 해주더라구요. ^^


물만두 2005-08-2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흰 그냥 mdf만 씁니다... 넘 비싸면 엄마한테 책사지 말란 소리를 들어서리 ㅠ.ㅠ 부러워요...

바람돌이 2005-08-20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요한건 책장이 아니라 책이죠.... 만두님의 추리소설들, 만화들 진짜 부러워요. ^^

stella.K 2005-08-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책장 있는 사람이 젤 부러워요. 전 언제나 다시 책장을 가져볼까요? 책 정말 많으시군요.^^

바람돌이 2005-08-2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조마간 가지시지 않을까요? 뭐 책장정도가지고.... 님이 가진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

야클 2005-08-2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와~ 멋진 책장 가지셨군요. 책장 보다는 꽂혀있는 책들의 면면이 더 부럽구요. 님 서재를 하루만 더 빨리 알았더라도 리스트를 보고 곰브리치 미술사가 아닌 수잔나의 책을 주문했을텐데요.ㅋㅋㅋ 앞으로 자주 놀러올게요. ^^

바람돌이 2005-08-23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야클님! 제가 님의 글에 댓글을 단게 얼마 안됐는데 벌써 이렇게 방문을.... 수잔나의 책이 더 쉽고 도판도 좋지만, 무게나 내용에 있어서는 역시 곰브리치죠... 재밌게 읽으세요. 저도 앞으로 자주 놀러갈게요. ^^

2005-08-23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8-2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대충 보이죠? ^^

바람구두 2005-08-2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친구는 속일 수 없는 법이니까요. 흐흐.

passy 2005-08-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 휘지 않는다는 점이 꽤 마음에 드네요. ^ ^

바람돌이 2005-08-26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책과 친구는 속일 수 없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흐흐...
오프엔디드님/처음뵙죠 반갑습니다. 이 책장 진짜 튼튼 하나는 끝내줍니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전5권 세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내가 이 책을 왜 봤을까? SF매니아도 아니고(매니아이기는 커녕 난 영화도 SF영화는 별로 안좋아한다.)...

다만 이 책이 재출간되었을 때 알라딘의 그 열광적이던 반응과 그리고 끝내주는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5권이나 되는 분량이 나를 망설이게 했지만 쉽게 읽히리라는 나의 성급한 판단이 이 책을 들게했다.

하지만 결론은 절대로 쉽게 안읽히더라.... 저자의 말도안되는 종횡무진한 우주적 농담을 따라가기에는 내 호흡이 너무 짧더군.... 이 책을 보기전에 주의할 것.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과학적 지식도 버려라. 쓸데없이 과학지식을 가지고 이것저것 재볼려고 하다간 아마 평생이 걸려도 이 책을 다 못읽을 것이다. 왜냐고... 과학적 근거가 있는 소리는 이 책에 단 한줄도 없으니까... 다 황당한 농담일뿐이다. 그것이 너무 황당하고 시시껄렁해서 오히려 책장이 안넘어가는 이런 황당한 일이..

그럼에도 이 책이 보여주는 세계는 그리 낯설지 않다.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제 마음대로 넘나들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의 모델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이 공간이다. 이 지구라는 공간이 얼마나 말도 안되고 웃기는 공간인지... 그 속에 살고있는 인간이란 존재들도 같이 말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세계를 인간이라는 존재를 마음껏 비웃고 있다. 이런걸 영국식 농담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박장대소를 어떤 경우에는 실소를, 또 어떤 경우에는 도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여튼 내가 아는 모든 웃음의 감정을 다 끼득거려 가면서 이 책을 봤다.

하지만 이 책의 기본적인 웃음은 '냉소'다. 그것도 지독한 냉소. 그는 인간성에 대한 지구의 미래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얘기하지 않는다. 말도 안되는 이 지구라는 공간을 냉소하고 비웃고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박장대소하면서 보다가 점점 더 책갈피가 넘어가지 않는 이유의 많은 부분이 이 냉소의 덕분일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좀 나아지고 있는거야"라고 애써 자위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저자의 '냉소'는 참 힘겹다.

이 책을 쓴 저자는 행복할까? 이런 냉소뒤에 남는 것은 뭘까? 책의 마지막은 결론을 제시한다. 행복하지 않는 결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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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8-19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낄낄거리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책이에요. 가끔은 심각한 더글라스 애덤스이지만, 이 책에선 도저히 그의 철학을 찾을 수 없고, 그냥 낄낄거리면서 썼을것 같으니깐, 그러니깐 낄낄거리면서 읽어줘야 할 것 같은. 그러니깐. 좋다는 얘깁니다. 오디오북으로도 들었는데, 더글라스애덤스가 직접 읽어요. 오버스러운 니그니글한 목소리가 정말 압권입니다.

돌바람 2005-08-19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자고 뭐하세요? 이런 야심한 시각에 리뷰를 다 올리시고(바람돌이님 버전으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시리즈가 번역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잖아요. 그동안 우리는 백민석을 통해 비슷한 류의 작가들을 가깝게 접했고, 냉소와 조롱, 풍자는 더글라스 아담스의 통찰 방식인 듯 하여요. 저는 새와물고기판으로 나오다 중단된 3권까지 보았었는데, 책세상판은 좀 시간이 지나서도 읽고 싶어지면 읽으려구요.

바람돌이 2005-08-19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저도 낄낄거리면서 보다가 이게 4권쯤 되니까 도대체가 책장이 안넘어가더라구요. 바로 앞장에 뭘 읽었는지도 모르겠고... 근데 더 웃긴건 다시 돌아가서 알아보고 싶은 맘이 하나도 안생기는 거예요. 어차피 상관도 없을거고, 앞으로 남은 부분 읽는데 지장도 없을거고...그러면서 5권쯤 되니까 우울해지네요. 책의 내용이... 근데 가끔 알라딘에는 외국어가 되는 분들이 있더구만요. 하이드님처럼.... 이 책 보면서는 워낙에 작가가 말을 가지고 장난을 많이 친 것 같아서 영국문화에 대해서 좀 알고 영어로 읽으면 더 재밌겠다 싶은 생각이 들던데.... 하지만 전 불행히도 외국어 알레르기라는 불치병을 가지고 있어서요. 기냥 하이드님 같은 분들을 부러워만 할 뿐입니다. ^^
돌바람님/ 그냥 오늘은 좀 우울하고 성질도 나고 그런 날이어서 지금 혼자서 맥주들고 이러고 있습니다. 이 책은 중간에 읽다가 말았으면 저같으면 다시 안봐질 것 같애요. 근데 진짜로 돌바람님이나 저나 새벽에 오면 만나지는군요. 저는 앞으로 이 생활 겨우 한 10일 남았습니다. ^^

돌바람 2005-08-19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주에 방학 끝. 담주부턴 죽었습니다. 일인 3역으로 변신합체를 반복해야 합니다. 윽, 그래서 기운이 떨어졌나, 저도 오늘 죽갔습니다. 깡통은 안 보이고, 나가긴 귀찮고~~

바람돌이 2005-08-19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잉~ 뭘하시는데 일인 3역이라뇨?

국경을넘어 2005-08-19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거의 은하철도 999같은데... 하긴 이것도 결국은 냉소 아닌가요? 정말 제목이 멋집니다.

바람돌이 2005-08-19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하철도 999가 훨씬 심각하죠. 차라리 제 감성에는 은하철도 999가 더 맞는것 같아요. 심각성 바람돌이? 이건 좀 아닌것 같은데... ^^

클리오 2005-08-19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시리 심각한 학문을 전공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지요... ^^;

2005-08-19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5-08-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흐흐...^^
제게만 보이는 님/ 님과 취향이 비슷하다니 이런 황홀한 일이... 어쨌든 이 책은 나쁜 책은 아니예요. 다만 취향에 따라 열광하는 사람과 좀 힘겨워하는- 저같은 사람이 나뉘어질 책 같아요.

kleinsusun 2005-08-2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너무도 솔직한 리뷰에 힘을 얻고 갑니다.
저도 SF가 버겁거든요. 제 상상력을 타박하고 있었지요. ㅋㅋ

바람돌이 2005-08-2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의 글에서 제가 항상 용기를 얻는데, 한번쯤 저도 님에게 힘을.... 근데 잘 못하는걸로 힘을 줘도 되남요? ^^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서민 지음 / 다밋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나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고?

철저하게 문과적 감성으로만 똘똘 뭉쳐 이과적 감성 지식 제로인 사람... 고등학교 때 나 빼고 모두 이해하는 것 같았던 플레밍인가 하는 사람의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하는 법칙을 아직도 이해못하는 사람(그 때 우리반 아이들이 개인지도까지 해줬지만 나는 이해못했다. 그 때 그 친구들의 한심해 하던 표정을 아직도 못잊는다.), 고등학교 성적표에 과학 과목을 '양'으로 도배해본 사람(그래도 나의 뛰어난(?) 무조건적인 암기력으로 '가'는 면했다),  운전할 때 핸들방향과 바퀴의 방향의 상관관계가 여전히 헷갈리는 사람이 나다. (그래도 운전은 이제 몸에 익어 오로지 이론 무시하고 몸이 그냥 알아서 한다)

이러니 의학 역시 과학 비슷한거라고 느끼는 나에게 이런 책은 손이 가는 책이 아니다. 아는 지인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안 읽었을 가능성이 더 많으리가.

근데 이렇게 무지한 내가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은 젠체하지 않는다. 어려운 말 없다. 가끔 읽는게 지겨워질 것 같으면 저자의 유머가 박장대소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알아야 할 의학지식들을 꼼꼼히 가르쳐 준다. 내가 그동안 궁금해 하던 많은 것들이 책속에 거의 다 들어있다.

얼마전에 어머님이 수술을 하셨다. 그 때 본 서울의 커다란(너무 커서 길을 잃고 헤멘적이 여러번) 병원의 풍경은 이 책의 1장과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워낙에 지금의 나의 상황과 맞아떨어져 가장 도움을 많이 받은 부분이기도 하다. 엄마의 수술 후 선택진료비로 청구된 그 엄청난 금액을 보면서 난 한동안 의아했었다. 도대체 선택진료가 뭐지? 뭐 좋겠지 하면서 신청은 했지만 나중에 나온 청구서를 보니 돈이 장난아니었다. 그런 나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면서 돈은 좀 들었지만 선택진료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하고....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의사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환자의 입자의 있을 사람들이 더 많을걸 고려하면 이 책은 상당히 유용하다.  적어도 내가 돈을 쓰면서 왜 쓰는지는 알아야 할게 아니겠는가? 게다가 아플 때 도대체 어디를 가야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1장의 내용들은 모두가 잠재적 환자인 우리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선사한다. 그것도 너무나도 쉽게, 재미있게...

2장에서 다루는 음지의 질환들은 보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저자의 시각이 맘에 들었다. 말더듬이. 틱, 탈모, 변비 등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서 사실 혼자서 맘고생만 하는 병들에 대해 보다 건강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우리 사회나 우리가 어떤식으로 대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3장 역시 난무하는 의학상식들에 대해 속시원한 결론을 얘기해준다. 물론 저자의 결론이 다 맞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어떤 의학적 행위를 할 때 이게 뭐라는것 정도는 한 번 생각하고 알 고 할 수 있도록 상식을 제공한다.

이 책이 지나치게 피상적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나보다는 똑똑한 사람들을 위한 얘기인것 같다. 나처럼 의학상식이고 뭐고에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딱인 책이었다. 그리고 앞의 다른 분의 리뷰에서 말한 것처럼 가정에 하나쯤 비치해두면 좋은 가정의료 상비약같은 책이라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마지막 보너스 하나. - 이 책보면서 내가 깔딱깔딱 넘어간 부분

개한테 물리면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다. 개가 광견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람을 문 개는 그대로 달아나 버린다. .... 그럴때는 일단 비눗물로 씻고 지혈한 후, 국립보건원에가서 광견병 백신을 달라고 해야 한다. 물론 안준다. 개가 광견병에 걸렸다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할거다. 왜? 백신 한병에 100만원이 넘으며, 보유 개수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견병이란 일단 발병하면 끝인데, 개를 찾아다니느라 허송세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달라고 떼를 쓰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사정을 하는 걸 권한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갈등이 원만한 공적 절차를 거쳐 해결되는 곳이 아니며, 큰 목소리와 버티기 등의 실력행사나 연줄을 통한 회유가 아직 통하니까 말이다. 이틀만 드러누워 있으면 십중팔구 약을 탈 수 있지 않을까. 극적인 효과를 위해 거품이 나는 약을 입에 넣고 있으면 더 빨리 얻을 수도 있다. 일단 자신이 살과 봐야 할게 아닌가.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으니 나도 개에 물릴지 알 수 없는 일. 꼭 외워두었다가 혹시 그런 일이 있으면 써먹어야 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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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8-1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늦은 시간에 리뷰 올리시네요.
정말 이 책은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작가의 모습이 선하게 보여요 그쵸? 유익하면서 굉장히 재미있고요, 저도 많이 웃었어요. 지금은 우리 아들이 읽느라고 시도 때도 없이 킬킬거리며 발작하는 웃음을 터뜨려요.

-플레밍인가 하는 사람의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하는 법칙을 아직도 이해못하는 사람, 진주 드림(이 부분 읽다가 제가 이 야밤에 배를 잡고 웃었어요. 리뷰쓰시는 님도 저자의 유머까지 그대로 전염되어 버린 것 같아요)

국경을넘어 2005-08-18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아내가 먼저 보고 있는데 저를 보는 아내의 시선이 별로 곱지 못하군요. 도대체 무슨 내용이 쓰여 있길래...

바람돌이 2005-08-18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진주님이야말로 이 늦은 시간에 아니 주무시고 뭐하신대요. 이렇게 돌아오셔서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너무너무 기뻐요. 앗싸 앗싸~~^^
한 며칠 알라딘에 제대로 못들어왔더니 병난것 같이 맘이 허해서 모처럼 시간난 오늘밤 야밤까지 이러고 있답니다. ^^

바람돌이 2005-08-18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폐인촌님 남자분이셨어요? 이 무슨 뒷북이람.... 저는 아이들 사진이 있길래 기냥 여자분인줄만....
글쎄요. 기냥 책 읽어보세요. ^^

국경을넘어 2005-08-18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어,,, 바람돌이님. 어제 달아논 댓글하고 다르군요^^* 제가 그땐 손이 떨려서 답글을 못달았습니다. 그 언저리에 있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05-08-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밤이 아닌 관계로 전연령용 멘트입니다요. ^^ 이런 소심한 나를 또 들켰군 ^^

2005-08-18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5-08-1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책이 부인이 보시면 문제될 부분이 있나요? 폐인촌 님?? (잘 이해할 수 없다는.. 흐흐..)
 

클리오님 답사는 잘 갔다오신 것 같네요. 많이 힘드시죠...

나이가 들수록 할때는 잘 모르겠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면 회복기가 길더라구요. 특히 전국 모임 답사처럼 강행군일때는....

클리오님이 보내주신 책

 바로 요 책 말예요. 받기는 벌써 받았죠. 하지만 님이 안계신걸 아니 감사 인사도 그냥 갔다오시면 해야지 하고 기다리면서 다 읽어버렸네요. 이 글 쓰고 리뷰도 올려야지요.

 처음에는 그냥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몇장 뒤적이다가 요즘의 제 상황과 맞물려서 그냥 순식간에 읽어지던군요. 재밌었어요. 클리오님 아니였으면 지금까지 그냥 읽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을텐데 님 덕분에 지금 저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그나 저나 우린 참 희안한 인연인것 같군요. 두 집 합쳐 4명의 전공이 같은 건 그러려니 했습니다. 이 동네가 워낙 과커플이 많은 동네인지라...(다른 동네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제가 나온 학교의 우리 과는 학생 숫자도 정말 적으면서 과커플을 무더기로 양산했거든요.)

그리고 님과 저의 성씨가 같은 걸 보고 또 참 공통점이 많구나 약간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성씨가 또 아주 희귀성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결정타....  세상에 사는 아파트 동과 호수까지 같다니.... 알라딘에서 이렇게 모든게 같은 두 사람이 만날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우리 혹시 전생에 부부는 아니였을지.... 전생에 사이가 너무 안좋아서 이생에서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떼놓았다거나, 아니면 사이가 너무 좋아 견우 직녀처럼 신의 질투로 떨어졌다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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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8-18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아니... 민망하여라... 마태님이 보시면 왜 본인 책을 보냈냐고 황당해하시겠군요... ^^;;; 책 재밌게 잘 보셨죠? 저도 순식간에 읽어버렸거든요... 하기야 님께서는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더욱 많은 생각이 드셨겠어요... 제가 쓴 '인연설'도 정말 신기하죠?? ^^ 전생에 부부였다가 인터넷에서 만난 인연이라... 이왕이면 사이가 좋았던 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더 잘 지내요... 흐흐.... 좋아해주셔서 제가 더욱 좋습니다... ^^

클리오 2005-08-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번 답사는 다녀오고 나서 전부다 비실거리며 뻗었다고 합니다.. 부산 모임에서는 오세운 샘의 터프함에 "불친절한 세운씨"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고 하고, 홍 모 샘께서는 경국대전을 읽는다는 김모 회장님에게 애정표현을 아주 찐하게 했다는... ^^;

바람돌이 2005-08-19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더운 여름에 서울거리를 활보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다들 뻗는게 당연하지 않을까...홍모샘이라면 누군지 알겠네요. 우리한테는 홍언니라는 명칭으로 주로 불리는...대충 상황이 짐작이 갑니다. 흐흐 ^^ 근데 그 김모회장님은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참 별별 책을 다 읽으십니다. 오세운 샘 역시 기억나네요. 다들 보고싶은 사람들입니다.
 



경천사지 석탑이 복원됐다. 10월에 개관할 국립 중앙박물관 '역사의 길'에 기나긴 복원의 과정을 거쳐서 며칠전 삐까한 복원식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픔도 많고 어처구니 없는 일도 많았던 탑이다. 근데 이 착잡한 기분은 뭘까?

이 탑은 국보라는 이름에 걸맞게-아니 넘칠정도로 -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탑이다. 탑 전체의 균형이나 모습의 아름다움은 말할것도 없고 그 세부조각에 가면 넋을 잃을 정도다.

하지만 이 탑의 건립과정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한 때 우리가 한세기 동안이나 몽고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 그 식민문화의 소산이다. 고려의 한 친원파 귀족이 몽고의 실력자에게 아부하기 위해 개인용 사찰을 지어바쳤고, 그것이 경천사라는 절이다. 이후 원나라에서 직접 설계를 하고 조각가들을 데려와 만든 완벽한 수입품이 바로 이 탑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그대로 본떠서 만든 원각사 10층석탑외에는 계보도 전통도 찾아볼 수없는 유일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밀반출에 의해 일본 도쿄로 옮겨졌었고, 이후 베델 등을 비롯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시 돌려보내졌으나 제자리를 잃고 경복궁 앞뜰에 세워지게 되었다. 섬세한 조각을 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니 이 과정에서 이 탑이 겪은 수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을 수 밖에.... 그 후에도 서울의 공해에 찌들려 탑의 마모가 너무 심해지자 새 박물관 건립계획과 함께 대대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가 이제 국립중앙박물과 내부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문화재의 보존이란 참 어려운 문제다. 망가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냐? 아니면 보존 자체를 위해 박제화라는 길을 택할 것이냐? 제자리에 서있지 못하는 유물은 - 그 역사적 의미를 상실하고 그냥 미술품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경천사 석탑 역시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오래도록 사게 되겠지만, 이 탑의 역사적 의미를 같이 생각해주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이 탑을 보고 원의 지배와 그에 기생하던 고려귀족들의 횡포에 아파하던 고려의 사람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있을까?

또 하나 이 탑에 얽힌 웃기는 이야기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명목하에 조선 총독부 건물을 다시 회복하지도 못하게 철거해렸다. 그 철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정권의 이벤트를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근데 웃기는건 처음 중앙박물관 건립지침에 박물관 메인 로비에 이 경천사지 석탑을 놓기로 했다는 거다. 식민역사청산을 위해 박물관으로 쓰이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마당에 또다른 식민문화의 소산을 박물관의 얼굴로 사용하겠다? 다행히 내부의 이의제기로 그 계획은 철회되고 지금 역사의 길이라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참 이래 저래 사연많은 탑이다.

   -본문의 내용중  경천사 탑의 건립과정과 중앙박물관 건립계획부분은 김봉렬씨의 책 '시대를 담는 그릇'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바로 이 책인데요. 한국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은 책인데 아쉽게도 절판이네요. 저에게는 재간해야할 책 1순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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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5-08-1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들 것도 아니면서 버젓이 루브르니 대영이니 하는 박물관에 진열하는 양놈들 보면 그래도 양호하지 않나 싶으면서도 좀 찜찜하죠. 사진이 무척 크군요. 내려받아 가겠습니다.^^*

조선인 2005-08-1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갈께요.
그리고 좋은 책 권해주시면서 절판소식까지 전해주시다니 정말 너무해요. ㅠ.ㅠ

로드무비 2005-08-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하시네요.
(뭐 저는 그냥 조선인님 따라해봤습니다. 멋있어 보여서요.^^)
추천 필!^^

바람돌이 2005-08-1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퍼온것입니다.
조선인님, 로드무비님 / 에고에고~~~ 죄송해요. 이 책이 모두 3권으로 된 시리즈인데 나머지도 다 품절이네요. 진짜 좋은 책인데..

숨은아이 2005-08-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따라와서 추천...

파란여우 2005-08-13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겨레의 수난사와 연결고리로 맞물린 탑이지요.
수난을 당한 탑이 어디 이거 하나뿐이랍니까...돌아오지 못하고
일본땅 어느 졸부의 정원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도 있지요.
더 가관인 것은 우리정부의 문화재 안목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시멘트에 환장한 박정희 정권이 가장 코메디라고 여겨요

히피드림~ 2005-08-13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님의 친절한 설명 잘 듣고 갑니다. 경천사지 석탑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어쨌건 복원작업 자체는 뜻깊은 일인것 같아요. 그래야 앞으로도 소중한 유산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테니까요.^^ 사진도 참 멋집니다.

바람돌이 2005-08-13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감사 감사 ^^
파란여우님/저도 박정희 정권의 그 시멘트 사랑과 미색 페인트 사랑은 코메디 맞다고 봐요. 근데 그런 코메디가 낳은 결과가 너무 처참해서 슬플 뿐이죠...그쵸?
punk님 /맞아요 복원은 해야죠. 문화재를 어떻게 둬야 가장 잘 보존하는 것인가 무척 어려운 문제예요. 이렇게 공해가 심하다가는 언젠가 모든 문화재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