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마다 공립교사들은 학교를 옮긴다.
올해는 내가 옮기는 해.
그 옮길 학교 발표가 오늘 났다.
이번에는 내가 속한 교육청의 통폐합을 앞두고 있어서 사실 말이 참 많았었다.
내가 소속된 교육청이 없어지면서 이 지역이 반으로 쪼개지게 되는데 앞으로 계속 좀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닐려면 어쨌든 지금 학교 근처의 학교에 살아남아야 하는 것.
근데 막상 옮길 수 있는 학교를 받아보니 황당하다.
여러가지로 힘을 쓸수 있는 사람들이 이미 이곳에 다 차고 앉는 바람에 이 근처의 학교에서는 선택의 범위가 엄청 좁아져 있는 것.
나처럼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밀릴수 있는 구조다.
그래도 남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볼려고 써냈지만 결과는....
역시나 밀렸다.(뭐 이렇게 옮길때 점수되는것들을 도대체가 챙겨놓은게 하나도 업으니 할말이야 없다.)
좀 먼 교육청쪽 학교로 발령이 났다.
그것도 올해 신설하는 학교.....
뭐 거리는 여전히 가깝다. 다만 이 학교에서 4년후 옮길때 거리가 점점 멀어져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오늘 오후에 새 학교에 인사를 갔다.
아직 1학년밖에 없으니 교사도 딱 교장 교감 합쳐서 21명이다.
다들 표정들이 별로 좋지 않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집가까운 학군에서 밀렸지
게다가 신설학교니 일은 엄청 많게 된다.
학교일이란게 교사가 적다고 줄어드는게 아니니 모두들 기존학교에서 하던 일의 3배정도 되는 업무를 맡아야 한다.
거기다 있는게 하나도 없으니 전부다 처음부터 다시 다 만들어야 한다.
밀려온 자의 설움을 공유한다고나 할까?
간단하게 회의를 마치고 학교를 안내받았다.
그런데.....
정말 이거 중학교 맞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신설학교다보니 정말 시설 빵빵한게 끝내준다.
옛날에는 신설학교라고 하면 3년 내내 공사소리에 스트레스 받는게 일이었지만 요즘은 아니다.
기본적인 학교시설은 3년후까지 예상해서 다 만들어놓는다.
즉 이학교는 빈교실이 21개라는 얘기다.
그 외 좋은점...
학교가 산자락 바로 아래다. 공기좋고 전망좋다.
주차시설 빵빵하다. 운동장 침범하면서 안 캥겨도 되게 지상 지하로 완벽하다.
장애학생을 위한 엘리베이터도 있다.(이건 정말 훌륭하다)
복도가 무지 넓다. 그래서 좁고 복작거리는 느낌이 안난다.
강당겸 실내체육관 - 무지 넓고 냉난방까지 완벽. 창문 환기와 공연시설까지 전자동 조정 시스템.
120석 규모의 소극장 - 강연회, 공연, 시청각교육 등등 다용도로 활용 가능
완전 방음된 음악실과 일반 음악실까지 2개, 무용실 - 무용학원보다 훨씬 좋더라...
과학실 3개, 수도시설까지 완비된 미술실 2개, 넒은 도서관
교실에서 밥 안먹어도 되게 무지 넒은 식당.
각 층에 분산된 소규모의 6개의 교무실 - 이건 좋은 점도 있고 나쁜점도 있다.
냉온수 자유자재인 샤워시설 - 교사용 학생용 다 있다.
남여교사 휴게실 따로에(이건 당연한거고) 교사용 체력단련실까지...
그외 있어야 할 시설이 다 있는데 감격스럽게도 작으나마 학생회실도 있다.
학생회실 있는 학교 처음이다.
거기다 더욱 감격스러운건 첨단 멀티미디어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다용도 학습실 2개 - 한 학급이 들어가면 딱 알맞은 규모.(이건 나의 로망의 실현이다.)
거기다 학생들을 위한 배려도 맘에 든다
ㄷ 자형의 건물을 지으면서 교실들을 모두 남향으로 배치했다.
덕분에 교무실이나 특별실들이 약간 어둡게 느껴지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있는 곳이 교실이니 교실의 방향을 가장 먼저 배려한 것 맘에 든다.
교실에 들어가있는 책걸상들 - 싸구려티가 안난다. 좋다.
교무실 교사용 책상 무지 넓다. 책상이 좁아서 늘 엉망진창으로 자료들 쌓아놓고 찾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감격이다.
일좀 더하면 어떠랴? 더군다나 1년간은 한학년밖에 없으니 수업도 기존 하던거의 3분의 2정도밖에 안될테니 일이야 뭐 하지....
이정도 시설의 학교에서 4년이나 있을 수 있다니 감격 그 자체다.
거기다 오늘 만난 교장선생님 - 온화하고 성실해보이는 인상이다.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욕심많고 나빠보이지 않는다.
그정도만 해도 어디냐? 아이들 책상 들여놓은거 보니 괜찮은 사람같다.
이거 돈떼먹고 싸구려 들여놓는거 교장정도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표도 안나게...
잠시 슬퍼했던게 미안할 지경 - 완전 대박맞은 기분이다.
대한민국 경제 수준이면 아이들을 위해서 이정도의 투자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학교정도가 대한민국 표준이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단 한가지 안좋은 점
전의 학교는 바로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어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릴 수 있었다.
근데 여기는 내가 자주가는 마트가 있다.
도서관 대신 퇴근길에 마트를 자주 들락거릴듯....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