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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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누구한테나 공평한 것이 죽는거라는 말을 한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일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죽었고, 이순신도 죽었고 그리고 도모유키도, 어린 병사 도네도 죽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누가 동격에 두고 보겠는가?

누가 역사의 한페이지를 찬란하게 장식할 정도로 이름을 올려는가 하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도요토미나 이순신의 경우 자신의 신념을 위한 삶을 살아봤고, 그리고 죽었다.
하지만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쟁터에 끌려나가 이유도 모른채 죽어갔던 사람들은.....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는 생명이고 사랑이었을게다.
그 생명과 사랑이 단지 쪽수라만 불리워질때 개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화살받이로 나가야 하는 쪽수.
적군에 바쳐질 수급의 쪽수.
채워져야 할 포로로서의 쪽수.
이미 그들은 제 이름을 잊는다.
저는 안 잊었건만 누구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임진왜란을 그저 끌려왔을 일본 병사의 눈으로 본다는 건, 어쩌면 조선의 이름모를 수많은 희생자의 눈으로 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게다.
그들의 모습은 겹친다.
세상사라는게 서러울 정도로 없는 이, 갖지 못한이들의 삶은 지지리도 닮았다.
그것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앞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이들에게는 더더욱!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위한 진혼곡!
역사의 이름으로 어쩌구하는 거대한 수식이 아니라 그 속에 묻혀있을 수많은 쪽수로만 분류되었던 사람들이 이제 겨우 한자락이라도 불려왔으니 그나마 위로가 되어질까?
마지막 도모유키의 눈에 조선의 여인이 모두 명외처럼 보이는건 우연이 아니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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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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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저 악동처럼 생긴 얼굴을 보자!
곳곳에 유치찬란한 반짝이가 난무하고 온갖 명랑만화체로 무장한 표지!
한편으로 유치하기 짝이 없고, 웃기기도 하고....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 보는 표지는 왠지 슬프기까지 하다.
주인공 나 -스기하라는 재일교포다. 지금 나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가 처한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꾼 재일 한국인.
일본인도 아니고 북한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그 무엇!
그는 그런 국적 자체를 버리겠다고 선언한다.
그 무겁기만 한 국적이라는 올가미에서 그는 가볍게 한없이 가볍게  탈출을 시도한다.
그 탈출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미래가 그렇게 암울해보이지는 않는다.
경계인으로서 어둡고 무거운 경험 투성이지만, 그 무거움을 같은 무게로 버티기 보다는 오히려 권투의 풋웍같은 가벼움으로 지나 온 그이기에....
어쩌면 그는 영원히 경계인으로 어정쩡하게 살수도 있을 것이고, 진정한 자유로움으로 날아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재일교포라는 말은 항상 무거움으로만 다가온다.
무관심이라는 두툼한 갑옷으로 무장한 다수의 폭력쪽에 가담해 있는게 나이기에 그들의 이름은 부담스러운 이름이다.
항상 내가 뭔가 해야 할 것같은....
역사의 무게로만 항상 대해지는 그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이공 - 저 오만방자한 얼굴의 나는 그런 나의 가장된 무거움을 폴짝 뛰어넘어버린다.
아마도 저 얼굴은 나에게 "신경끄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가 벗어나고자 하는 역사의 무게가 아직은 그를 완전히 놓아주지 않지만 아마도 머지 않은 미래에 그는 그 짐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땅바닥에 줄 그어놓고 여기는 내편, 저기는 네편을 가르는 엄숙한 국가주의에 한 방 먹여보자고!!!

GO!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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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5-12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극히 가볍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차별과 편견은..정말 무섭더군요...^^

바람돌이 2006-05-1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그래서 그것을 뛰어넘는 주인공을 응원하고 싶어요. 이 책 저는 전혀 가볍지 않더라구요. ^^
 
수상한 식모들 -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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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신화를 비트는 발상은 참으로 신선하다.
단군신화에서는 오로지 환웅과 곰이 주인공일뿐, 우리 역사 최초의 실패자로 기록되어있는 호랑이의 이후 삶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갖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호랑이에 주목하여 그 호랑이는 어찌 되었을까라는 도발적인 물음에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환웅이라는 남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후에 -인간여자로 다시 태어난 호랑이는 이후 호랑아낙들도 이어져 간다.
이 부분에서 어쩌면 이 소설이 역사를 비틀고, 역사속에 소외되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줄지 않을까 기대해보았다. -물론 이런 기대가 역사소설을 쓰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다만 그의 발상의 전환만큼이나 확실한 입담과 비틀기를 기대했다고나 할까?
내가 기대한건 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같은 류였다.

하지만 호랑아낙들의 활약은 그 시작이 창대했음에도 별로 두드러져보이지 않는다.
그저 연산군때 궁녀로 있었던 호랑아낙들이 어찌 어찌 했더라라는 식의 바람결에 스쳐가는 소문같은 속삭임만 전해주고 만다.
이왕 역사와 신화를 비틀었다면 좀 더 화끈한 상상력을 발휘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에 책을 읽어가는 호흡이 한 순간 흐트러져 버린다.

하지만 어차피 이 책의 주인공이 호랑아낙이 아니고 그들의 후예인 수상한 식모들이니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 모든 인간을 휩쓴 자본의 물결은 호랑아낙들의 모습도 변신케 한다.
바로 수상한 식모들이 바로 그들이다.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치가 매겨지고 자리매김되어지는 시대.
이들은 이제 부르조아 가정에 침투하여 허위에 찬 가족을 해체하고자 한다.
뭐 때로는 성이 수단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수 위의 전략을 고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해체하고자하는 것들은 여전히 아리송하다.
수상한 식모들은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들의 정체성이 흐릿함으로써 수상해진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휘두르는 식칼은 이미 무딜대로 무뎌져 버렸다고나 할까?
도대체가 그들이 휘두르는 칼은 무엇을 향해서 휘두르는건지 정체가 애매하다.
방향도 칼의 예리함도 무엇하나 제대로 잡히는 게 없다.

책을 부분 부분 떼서 본다면 어디나 재기발랄하고 넘치는 상상력으로 충만해있다.
따라서 보는 동안은 이제 한 칼이 나오겠지 하면서 호기심 만발로 책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상상력이라는게 그에 뒷받침되는 튼튼한 이야기의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면 수상한 식모들처럼 빈 허공을 휘두르고 마는게 아닐까? 무도 못자르는....
결국 다 읽고 나니 뭘 읽었는지 생각이 안나고 정리가 안되는 지경에 도달해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제목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길 잃은 수상한 식모들> 별로 재미없는 제목이네.... ^^

뱀꼬리 - 별점 딱 3개 반 줬으면 좋겟는데 없다. 그렇다고 이 튀는 상상력에 3개는 너무 한 것 같고 울면서 4개를 준다. 모자라게 주는 것 보다야 좀 남는게 그나마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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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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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거나 하는 사람들을 경멸했었다.
하지만 그런 경멸이 내가 세상을 그리고 산다는걸 얼마나 쉽게 생각한 결과였느지를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절실히 이루고 싶은 일이 있는데 뜻대로 안될때....
그것이 3년간 죽을 힘을 다해 더 이상 쓸 힘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되어질 때....
어느쪽을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때...
남들이 보기에는 뭐 그깐 일로 싶기도 할테고, 또 죽을 정도로 괴로우면 그런 각오로 노력하면 될 것 아니냐고 옛적에 내가 잘 날리던 멘트를 날리겠지만...
절망은 참 순각적으로 찾아오곤 했었다.

핀란드라는 나라. 퍽이나 생소하고 머나먼 나라이다.
그래도 이 나라에 대해 떠오르는건 우리보다 훨씬 사회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라는 이미지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나라에 그토록 자살인구가 많다는건, 하루하루 생존에 이 악물고 버텨야하는 대한민국에선 이해하기 힘든 일면이다.
흔히 하는 말로 호강에 받쳐 요강에 똥싼다고나 할까?

하지만 절망이 경제적인 면에서만 오는건 아니지 않은가?
인간의 절망은 그 인간의 숫자만큼 다양한 것일게다.
그래서 부자도 절망하고 가난한자도 절망하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결국 혼자가 된 남자 하나와 자신의 존재의미가 사라지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은 남자 하나! 이 둘의 만남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둘이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이들은 둘 다 그냥 쓸쓸히 죽어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늘 자살을 꿈꾸면서 하루 하루 절망하면서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두사람은 서로 만남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쓰다듬어줄 동지를 만난걸게다.
자살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 둘은 핀란드 전체에서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을 모아 서로의 절망을 같이 공유해볼 기회를 가지자는데 합의한다.
그리고 핀란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자살희망자들의 기발한 여행이 시작된다.
그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노르웨이 끝의 북극해로, 스위스로 유럽의 끝 포르투갈로 온 유럽을 헤매고 다니면서 갖가지 사건들을 겪게 된다.
글은 그들 한 사람 한사람의 내면을 다 따라가지는 않는다.
그저 그들이 도달하는 갖가지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따라갈 뿐이다.
그것들은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초라하고, 또 때로는 연민을 자아낸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의 그 코믹한 반응, 상황이 경멸스럽지는 않다.
그들이 삶과 죽음의 경험을 같이 나누는 여행을 통해 마음의 안식과 기댈곳을 찾아가는게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다.
사람들마다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방법도 가지가지인걸 보면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지만 그래도 "맞아 그게 인생이야"라고 식상한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절망이 절망인건 희망이 안보여서도이긴 하지만 그 절망을 이해해주고 아파해 줄 단 한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힘들고 절망스럽다고 생각했을때 늘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봐진다.
그들에게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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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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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은 새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축복이자 이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일이라고, 남자들은 말했겠지...
그리고 여자들은 "그래 그래!! 맞아 맞아 축복이고말고... 내 몸안에서 이렇게 신기하게 꿈틀거리는 생명이라니 얼마나 경이로운가 말이다."

나는 그리고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세뇌당했다.
그리고 그 반대의 맘이 들때는 무자비하게 맘을 묶어 꽁꽁 숨겨야한다.
아릿한 죄책감과 함께....

나의 경우 임신은 결혼 후 3년간의 심사숙고와 철저하게 때를 맞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만큼 당연히 당황스럽지도 갑작스럽지도 않은 임신이었고, 그런만큼 당연히 무한정 기쁘기만 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니 내가 당연히 느껴야 한다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그 감정 외에 어떤 감정도 나는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변기통을 부여잡고 웩웩거리는 순간!
내몸인데도 내가 마음대로 못해 먹고싶은 것들을 참아야 하는 순간!
부풀어오른 배가 너무 무거워 내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던 그 순간들!
밤이면 다리에 쥐가 나 비명을 지르며 깨던 순간들!
배가 불러올수록 출산의 공포에 짓눌리던 순간들!

그 순간들에 과연 나는 행복하기만 했던 것일까?
남들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때가 제일 행복하더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때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말에 동의한 적이 없다.
내게는 임신기간 자체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둘째가 뱃속에서 쑤욱 빠져나오던 그 순간! 내 머리속은 환희로 가득찼었다.
그것은 새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 같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로지 이제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환희가 순간 내 머릿속을 완전히 점령했었던 것.

고통은 피하고 싶은게 인간의 당연한 욕구라고 배웠는데, 왜 유독 임신의 고통만은 기쁨으로 미화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순간들을 고통으로 여기던 내가 왜 죄책감을 가져야 했는지....
그저 생물학적으로 임신 캘린더를 만든다면 이 책처럼 되지 않을까?
뱃속의 보이지 않는 아기가 아니라 나의 캘린더 말이다.
남들은 이 얘기속에서 오싹함을 느낀다지만 나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언니에게 온갖 농약으로 범벅이 되었을 미국산 그레이프 프루투로 잼을 만드는 동생은, 임신기간중에도 커피를 못끊어 아침 저녁으로 두 잔은 꼭 마셔대던 나의 모습같아 위로를 받는달까?

당연시되고 그래야 된다고 강요되는 감정의 이면에 다른 것도 있음을 보아달라고....
그래야 삶의 진실이 보인다고 항변하는 것 같은 책.
그래!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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