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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임신은 새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축복이자 이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일이라고, 남자들은 말했겠지...
그리고 여자들은 "그래 그래!! 맞아 맞아 축복이고말고... 내 몸안에서 이렇게 신기하게 꿈틀거리는 생명이라니 얼마나 경이로운가 말이다."
나는 그리고 세상의 여자들은 모두 세뇌당했다.
그리고 그 반대의 맘이 들때는 무자비하게 맘을 묶어 꽁꽁 숨겨야한다.
아릿한 죄책감과 함께....
나의 경우 임신은 결혼 후 3년간의 심사숙고와 철저하게 때를 맞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니만큼 당연히 당황스럽지도 갑작스럽지도 않은 임신이었고, 그런만큼 당연히 무한정 기쁘기만 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니 내가 당연히 느껴야 한다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그 감정 외에 어떤 감정도 나는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침마다 변기통을 부여잡고 웩웩거리는 순간!
내몸인데도 내가 마음대로 못해 먹고싶은 것들을 참아야 하는 순간!
부풀어오른 배가 너무 무거워 내몸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던 그 순간들!
밤이면 다리에 쥐가 나 비명을 지르며 깨던 순간들!
배가 불러올수록 출산의 공포에 짓눌리던 순간들!
그 순간들에 과연 나는 행복하기만 했던 것일까?
남들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때가 제일 행복하더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을 때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말에 동의한 적이 없다.
내게는 임신기간 자체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둘째가 뱃속에서 쑤욱 빠져나오던 그 순간! 내 머리속은 환희로 가득찼었다.
그것은 새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 같은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로지 이제 더 이상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환희가 순간 내 머릿속을 완전히 점령했었던 것.
고통은 피하고 싶은게 인간의 당연한 욕구라고 배웠는데, 왜 유독 임신의 고통만은 기쁨으로 미화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순간들을 고통으로 여기던 내가 왜 죄책감을 가져야 했는지....
그저 생물학적으로 임신 캘린더를 만든다면 이 책처럼 되지 않을까?
뱃속의 보이지 않는 아기가 아니라 나의 캘린더 말이다.
남들은 이 얘기속에서 오싹함을 느낀다지만 나는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언니에게 온갖 농약으로 범벅이 되었을 미국산 그레이프 프루투로 잼을 만드는 동생은, 임신기간중에도 커피를 못끊어 아침 저녁으로 두 잔은 꼭 마셔대던 나의 모습같아 위로를 받는달까?
당연시되고 그래야 된다고 강요되는 감정의 이면에 다른 것도 있음을 보아달라고....
그래야 삶의 진실이 보인다고 항변하는 것 같은 책.
그래!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