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 30분의 감동…연극 한편의 놀라운 힘
연극비평_레프 도진의 ‘형제자매들’(LG아트센터, 5.20~21)

2006년 06월 03일   노이정 연극평론가 이메일 보내기

얼마전 내한한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형제자매들’에 쏟아졌던 관심만큼이나 그 여파가 적지 않다. 연극 한편이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레프 도진이 연출한 이 작품에서 우리는 사라져가고 있는 연극의 힘을 재발견했다. 특히 우리 연극인들에게 반성의 거울이 됐다. 배우들, 극작가들, 연출가들에게 이 연극은 우리가 연극에 담긴 가능성을 얼마나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이렇게 쉬우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니!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직전 초연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순회공연을 해온 이 작품은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으로서 레프 도진의 초기작이다. 스탈린 시대 러시아 북부 아르항겔스크 지역을 배경으로 한 아브라모프의 소설 4부작 중 앞의 3부(‘형제자매들’(1958), ‘두 해 겨울과 세 해 여름’(1968), ‘길과 갈림길’(1978))를 연극화했다. 공식적으로는 2년 간 준비했다지만 1977년 배우들과 함께 아브라모프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직접 찾아가 생활하는 등 도진의 고백에 따르면 준비기간은 10년에 이른다.


공연 전 우리가 주목했던 건 7시간 30분(순수 공연시간 5시간 20분)이라는 공연시간이다. 세계적으로 10시간을 넘는 연극 작품도 꽤 있지만 요즘 국내 연극은 2시간을 채 넘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효율로, 속도로 계산하는 시대에 몸으로 대항하는 이 연극은 우리 관객에게도 느린 호흡으로 살 기회를 제공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동지들이여, 시민들이여, 형제자매들이여!”이라는 스탈린의 연설과 함께 배경에 1940년대 전쟁기록영화를 투사하면서 시작된 연극은 1941~1950년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러시아 집단농장 콜호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보여줬다. 러시아판 인생유전이라 할만하다. 나이가 차지 않아 참전 못한 청년 미하일과 남자들이 없는 마을을 책임지는 콜호즈 여위원장 안피사 등의 이야기가 이 펼쳐지는 제1부 ‘만남과 이별’, 전쟁이 끝나 남자들이 돌아오고 스탈린 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제2부 ‘길과 갈림길’ 사이에 십 년의 세월이 있다.


연극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교차를 다룬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는 이 위로도 배신으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불신과 분열의 분위기가 무대를 지배하게 된다. 농촌에 남은 사람들, 도시로 간 사람들의 삶은 달라지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영광의 인물과 위기의 인물도 끊임없이 생겨난다.


이것이 정해진 스토리대로, 쓰여진 텍스트대로 진행된다면 아마도 매우 지루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극은 주요 인물들의 에피소드에 집중돼 그 이야기들 사이에서 긴장과 이완을 체화한다. 보는 관객도 그 흐름에 따라 집중과 이완을 하게 된다. 이것을 도진은 하나의 교향악이라 표현했다. “드라마에는 그 자체에 멜로디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는 이 긴 시간 동안 관객이 편안히 연극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자체에 들어있는 음악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마리아 셰브초바는 이 연극의 스타일을 ‘산문의 연극’이라 칭했다. 배우들이 “소설을 온전히 공연하면서” 즉흥적 시도를 통해 “대본의 신체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소설의 강건한 내러티브는 배우들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응축된다. 전체적으로는 비극적인 톤을 가진 이 작품을 우리가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한 사건이 끝나면 다른 사건을 맞기 위한 여유가 생기고, 비극적 사건들 사이에는 긴 희극적 릴리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아니한가.


여성과 남성 집단으로 나뉘어 질펀한 음담패설을 나누는 마을 주민들의 집단적 휴식, 씨뿌리기도 축제와 같이 함께 하는 농촌의 전통이 이 연극에 희극적 에너지를 부여한다면, 불행하게도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양이 적어진다. 집단농장의 삶이 곤고해지면서 사람들의 집단성은 분열되고 이기심이 싹트며 연극 첫 막에서 제시되던 카니발리즘적 에너지는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집단성의 해체, 혹은 코러스로 합류해 들어가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해체돼가는 코러스로 변화를 보여주면서 연극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명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머니즘이 살아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단지 어떤 한 시기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적 허구와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 사회,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고발이다.


이 긴 공연의 모든 사건 속에 뗏목과 장대들이 있다. 10여 년의 삶의 다양한 무대들, 방과 집, 헛간, 목욕탕 등의 사적 공간과 파종과 축제의 무대가 되는 공적 공간들은 뗏목 모양으로 만들어져 무대 중앙에 매달린 단 하나의 나무판으로 만들어진다. 360도로 회전하고 아래위로 오르내리면서 모든 장면의 배경이 되어주는 이 뗏목은 나무로 만들어진 등장인물과도 같다. 무대를 감싸고 선 20개의 장대들은 숲인 듯 감옥인 듯 이곳을 탈출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에워싼다.


이 공연을 보고 아무도 이것이 새롭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공연은 ‘새로움’이 아니라 ‘낡음’을 강조한다. 목재로만 제작된 무대, 배우의 연기와 제스처만으로 연결되는 이야기들, 모든 관객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삶의 원초성에 대한 대사들. 그런데 왜 이 연극은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


이 연극이 처음으로 서유럽에 소개될 때 서유럽 관객들도 연극에 놀랐다. 1988년 파리 가을축제에 초청된 이 공연을 보고 현 보비니 극장 예술감독인 파트릭 소미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건 우리가 연극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하는 것들의 종합이잖아. 코러스적 성격, 준 자연주의성, 서사적이고 교훈적인 인물. 이건 이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들인데.” 그런데 도진과 말리극장의 연극들은 계속 서유럽에 초청됐고 인정받았다. 1992년에 초청된 ‘가우데아무스’(2001년 내한)와 1994년의 ‘폐소공포증’은 유럽의 새로운 연극 현상인 ‘코러스성’(등장인물들이 코러스가 되는 현상)의 문제를 무대로 회귀시킨 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2002년 유럽연극상을 수상한 도진은 인터뷰에서 그의 연극의 근원을 스승과 제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우리사회가 진보의 행렬 속에서, 새로운 지식습득의 방법 속에서 상실한 것 중 하나로 그는 ‘전통적 가르침’을 들었다. 피와 살이 흐르는 선생이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체되는 상황. 그는 선생은 제자들에게 사물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사람이며 제자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 말하면서 유년기부터 자신의 삶을 만들어온 스승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첫 연극 스승은 두브로빈이다. 메이어홀드의 제자였으나 소련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연극을 만드는 것이 금지되자 전문적 활동을 포기하고 어린이들과 작업했던 그의 스승. 도진은 12살 때 수영강좌가 마감돼 연극을 하게 됐고, 그를 만났다. 도진이 말하는 두브로빈의 수업은 다음과 같다. 스승은 자기 주위에 아이들을 둘러앉게 하고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이들은 아무거나 물었고 그는 마치 랍비와 같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했다. 도진의 회고에 따르면 그때부터 그에게 극장은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한다. 이 선생에게서 도진은 즉흥의 방법, 낡은 텍스트를 바꾸는 기적을 배웠다.


피터 브룩의 러시아 순회 공연과 조르지오 스트렐러 작품 ‘벚꽃동산’의 단 한 장의 사진에 자신의 상상력이 불타올랐다고 고백하는 도진은 실상 가장 중요한 훈련은 제자들과 수업이라고 단언했다. 제자들은 자신의 젊음을 이야기하여 선생을 늙지 않게 한다. 그리고 선생은 같은 것을 다른 세대에게 반복해서 말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워져야 한다.


이 이야기에 새로운 것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거기엔 다만 우리에게 잊혀진 것이 있다. 가르침과 배움에 관한, 인간과 연극의 진실에 관한 오랜 믿음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이 시대에 그의 연극은 사람 사이의 교류에 대한 오랜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아리안느 므누슈킨이나 피터 브룩, 오태석 등 우리가 아는 연극의 대가들은 모두 이 믿음에서 연극을 시작한다.

노이정 / 연극평론가


©2006 Kyosu.net
Updated: 2006-06-0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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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05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휴식 시간에 먹으며 봤으면 끝내줬겠어요.
세 번째 장면 사진 보니 어떤 연극인지 느낌이 옵니다.
이틀밖에 안하고 끝났나 보네요.

balmas 2006-06-0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예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벌써 시작하고 끝나버렸네요. -_-
한번 봤으면 좋았을 것을 ...

린(隣) 2006-06-12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부산에서도 보려가려고 다이어리에 몇 달 전부터 적어놓고 손꼽아 기다렸는데,
정말 암 것두 하기 싫은 맘 땜에 그만 놓쳐 버렸네요.
근데, 공연 며칠 후 라디오에서 한 진행자 왈, 같이 울고 웃고 가슴 아파하다보니 그 긴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연극이 끝났더라고 하더군요.
이 글은 더 실감나게 절 아쉽게 만드는군요.

그러니, 학위도 하셨는데 바쁘시겠지만 가까이서 좀 챙겨 보세요. 예?
멀리 있는 사람 성질 나거든요.ㅎㅎ

balmas 2006-06-1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앞으로는 애용하겠습니다.
그런다고 카우테님이 덜 열받게 될까요? ㅋㅋ
 

 

황라열씨 보도…언론은 '벌떼'인가

[기고] 정영찬·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 편집장

2006년 06월 01일 (목) 23:10:55 정영찬·스누나우 편집장

'벌떼 같다.' 창공을 가르는 벌떼를 본 적이 있는가. 벌떼는 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가 꿀을 찾아온다. 또한 그들은 동족의 신호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꿀이 있는 장소로 달려든다. 서울대 2006년(49대) 총학생회장 황라열 씨에 대한 기성 언론의 태도는 마치 벌떼와 같아서, 꿀이 있는 곳이라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꿀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그 꿀(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사정없이 빨아댄다.

총학생회장 당선 때부터 시작된 언론의 집중 보도

   
  ▲ 황라열 서울대 총학생회장 ⓒ노컷뉴스  
 
'먹을 것 앞에서 참기 힘들다'는 생리적인 점까지 곤충과 닮았는지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총학생회장 당선이 확정된 지난 4월13일 오전부터, 조선일보와 MBC를 비롯한 기성 언론들은 '이색 경력 총학생회장'을 주 기사거리로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4월13일자 기사에서 "황라열 씨의 이력서는 말 그대로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라며 황 씨의 화려한 경력을 강조했고, 같은 날 경향신문은 "마치 한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늦깎이 대학생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며 흐름에 따랐다.

중요 이슈에 집중하는 언론의 태도는 비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중요 이슈'였는가에 대한 사유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다. 또한 '다양한 이력'과 '서울대 총학생회장'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경력 중심의 보도는 '사실 확인'이 뒷받침되지 않은 '선정적 보도'였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황 씨의 경력의 일부가 '허위 또는 조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 미비로 빚어진 '한총련 탈퇴' 보도 소동

벌떼 언론의 행태는 여기서 끊이지 않았다. 황 씨가 한총련 탈퇴 기자회견을 했을 당시, 기자회견장엔 30여명이 넘는 기자로 붐볐다. 의심 없는 벌떼와 같이, '그들'은 황 씨의 말을 받아 적고 그 말을 그대로 보도했다. 마치 '서울대 전체'가 황 씨의 의견에 동조라도 하는 듯 '굿바이 투쟁의 시대(조선일보 5월10일)'라는 자극적 표제를 쓰거나, "사상으로 뭉친 소수의 집단이 이끄는 학생운동은 저물고 있다(국민일보 5월10일)"라는 교수의 말을 통해 '이제 서울대에 운동은 없다'란 주장을 폈다. 하지만 '그 때'는 평택 미군기지 문제로 인해 연행된 50여명의 서울대 학생들이 풀려난 직후였다.

편향된 시각을 통해 거시적 논점이 결여된 채 양산된 당시 기사들은 서울대 총학생회와 한총련의 관계에 대한 과거사적 서술이 없다는, 그 내용적 공통점에서 맥락을 완전히 일탈하고 있다. '용기있는 서울대의 한총련 결별(세계일보 5월11일)'과 "이번 선언은 학생 자치활동 역사에서 구시대의 종언(終焉)과 새 시대의 개막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동아일보 5월11일)" 식의 보도는 학생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총련과 서울대 총학생회의 관계가 소원했던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없는 단체를 탈퇴했다는 점에서 이는 마치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은 80년~90년대 초반과 다르게 현재는 한총련(전신 포함)이 학생운동의 주류에서  밀려나있고, 학생운동이 총학생회와 별개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는 '현장 변화'에 대한 취재가 미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이에 대해 "한총련과 서울대 총학생회는 1998년 이후 사실상 단절된 사이, 의미 없는 것을 갖고 서울대 총학생회가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5월12일)"는 한총련 측의 입장을 전했다.

반성없는 기성 언론…허위 경력 파문에도 '맹신' 또는 '외면'

언론의 집중이 벌떼와 같은 무작정 '집착'이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 것은 근래의 황 씨의 '허위 경력' 파문을 통해서다. 당선 직후, 황 씨의 화려한 경력을 보도했던 수많은 언론들은 말 그대로 '뒷통수'를 맞은 꼴이 된 것이다. 황 씨의 '고대 입학'과 한겨레21 수습기자 경력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면서 그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팩트 중심의 기사'란 가장 기본적 보도 윤리가 무시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성 언론은 '반성'이 아닌 '맹신'과 '외면'의 한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황 씨의 경력 조작이 밝혀진 후 일부 언론은 "그는 '고려대 의예과에는 특차로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등록을 포기했던 것이 본의와 다르게 입학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또 '한겨레21의 기고문 요청에 응한 사실이 다른 잡지사 수습기자 경력과 묶여서 표현되는 과정에서 수습기자인 것으로 잘못 전달됐다'고 덧붙였다(경향신문 5월27일)"는 식의 보도를 통해 이러한 발언을 '그대로 믿는' 태도를 보였다.

실수란 성공을 위한 어머니가 아니라, 또 다른 실수를 위한 도약인가. 왜, 황 씨의 해명에 대해선 사실 확인의 노력이 없는가. 또한 스누나우에서 '대마초 판매 경력' 관련 보도를 한 것에 대해 황 씨가 해명하자, 그에 대해서도 "코믹해 보이는 게 우려되지만 나프탈렌, 소위 말하는 좀약을 판 것이라고고 해명했다(세계일보 5월29일)"는 보도를 통해 황 씨를 맹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총련 탈퇴 선언 당시 선정적 제목을 통해 보도했던 조선일보 등은 이번 경력 조작 사태를 보도하지 않는 '외면'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황 씨의 말이 '거짓일 수도 있다'라는 반성적 보도 태도는 언제쯤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집중이 집착이 되고 그것이 맹신이 되면 그것은 이미 '기사'가 아니다. 그것은 팬레터일 뿐이다. 기성 언론의 올바른 보도 행태를 촉구한다.


정영찬 /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www.snunow.com)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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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6-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balmas 2006-06-0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세요. :-)

승주나무 2006-06-0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신문이어서 그런지, 문체가 좀 속상하군요. 논술로 따지면 빨간줄이 수십개는 걸려 있을 거에요. 칼럼이니까 감정을 싣는 것은 상관 없겠지만, 기성일보나 다름없이 고발형으로만 쓰는 게 되지 않나요. 내 학생이 쓴 글이라면 "기성 언론의 올바른 보도 행태를 촉구한다"을 핵심에 놓고 다시 쓰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주는 '팩트'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balmas 2006-06-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역시 승주나무님답습니다.
스누나우에 가셔서 따끔한 지적을 좀 해주시죠. ^^;;

승주나무 2006-06-0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한 가지 고딩스러운 실수를 했네요. '행태'라는 말은 주로 부정적인 행위에 쓰는데, '올바른 행태'라는 말은 스누나우가 고차원적인 의도가 아니라면, 정말 바보 행태로군요.

아잇! 내가 대딩 편집자를 두고 무슨 짓이지^^ 무료해서 그랬어요.

행태(行態)
「명」행동하는 양상.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음주 행태/사재기 행태(국어대사전)

balmas 2006-06-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승주나무님 ...
 

 

 

인터넷실명제 불복종...최종 7백50만원 과태료

<민중의소리>, 과태료 이의 신청 및 위헌 소송 준비

제정남 기자    메일보내기  

 인터넷 언론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실명확인제에 <민중의소리>가 지난달 25일부터 불복종을 한 것과 관련해 선관위가 7백50만원의 과태료를 최종 통보해 왔다.
  
  선관위는 2일 오후 <민중의소리>로 발송한 '과태료처분 최종통지'라는 제목의 공문서에서 "인터넷실명확인제 의무규정을 이행하지 아니한 인터넷언론사 민중의소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과태료를 최종 결정하여 부과"한다고 알려왔다.
  
  선관위가 <민중의소리>에 부과한 과태료의 내역은 실명제 미이행에 대한 과태료 5백만원과 인터넷실명확인을 할 것을 요구한 선관위 명령을 불응한 뒤 매 1일마다 가산되는 50만원을 합한 것.
  
  즉 <민중의소리>는 지난달 25일 인터넷실명제 도입에 불응해 5백만원의 과태료를 통지받았고, 26일부터 30일까지의 5일간 선관위 방침을 계속 거부해 2백50만원의 가산액이 부여됐다.
  
  선관위에 의해 부여된 과태료는 공문서를 수령한 시기로부터 20일 이내 납부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으나 <민중의소리>는 선관위의 과태료처분에 항의해 2일 오후 곧바로 이의신청을 정식 청구할 방침이다.
  
  아울러 '선거실명제폐지공동대책위원회'는 <민중의소리>가 과태료에 대한 이의를 신청해 정식재판이 시작될 경우,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한편 <민중의소리>를 관할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로 보낸 내부공문에서 "위반자(민중의소리 대표)는 민중의소리 홈페이지에 독자게시판을 개설하고 실명이 아닌 비실명으로 누구나 다 글을 게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각종 기사에 대하여 비실명으로 누구나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는 등 조항을 위반하였으며, 우리위원회가 제시한 이행명령기한을 초과하여 실명확인을 위한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있음"으로 결과를 보고했다.


2006년06월02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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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호 (통권 65호)
| 월간사회운동소개 | 정기구독신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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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와 대안세계화 운동
   

    현재 한미FTA가 던지는 진정한 쟁점 | 정지영
    대안세계화운동과 한미FTA 반대투쟁 | 류미경
    비교우위, 자본축적, 사회주의 | 굴리에모 카르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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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65호)

 갈월동에서

전쟁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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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운동으로 세상을 변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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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랑수아 셰네, <금융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 | 윤여협
책속의책
기로에 선 세계의 여성 운동들 | 캐롤 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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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나]
<부서진 미래>를 읽고 | 이동현
  [갈월동기행] 1993년, 2006년, 새벽이 멈춘 곳 | 박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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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과연대
전국영화산업노조 인터뷰 | 김현호
가족 구성원에 대한 책임전가에서 보편적 권리로! | 최예륜
비닐하우스촌 주거연합의 출범과 주거권운동의 방향 | 유의선
네팔 민주화 투쟁(4월혁명)과 새로운 개혁을 위한 도전 | 버지라 쿠마르 라이

사회운동과연대
볼리비아 국유화 정책의 의미와 향후 과제 | 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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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03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죠? 늘 유익하고 흥미있는 읽을 거리가 가득한 거 ... ^^;

에로이카 2006-06-03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읽을 것 진짜 많네요.. ^^

balmas 2006-06-03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렇죠? ^^;


린(隣) 2006-06-1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얘긴 좀 쑥쓰럽지만,
발마스님 덕분에 사회운동 사 보고 있습니다.
아직 정기구독은 아니구요, 글구 요번 달엔 아직 못 챙겨 본 데다,
발마스님 서재에서도 늦게 봤네요.
암튼, 여러모로 많은 배움 주셔서 다시 한번 꾸벅^^

balmas 2006-06-13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자주 사보세요. :-)
 

 

손발 들썩이며 차베스와 힙합하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슬럼가의 흥겨운 힙합 거리공연…석유재벌 개혁정책 향한 지지, 낙서와 랩에 담아

▣ 글·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REUTERS/NEWSIS/JORGE SILVA

지난 4월22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슬럼가에서는 다양한 힙합 음악과 낙서가 난장을 이룬 흥겨운 문화공연이 열렸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이끄는 사회주의 혁명은 베네수엘라 민중의 손발을 들썩이게 하는 힙합 음악처럼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 농구 골대에 꺼꾸로 매달린 아이의 등 너머에서 베네주엘라 젊은이들이 차베즈 대통령의 개혁 정책을 지지하는 낙서를 그리고 있다.

그는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개혁을 이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선진국의 석유재벌들은 베네수엘라 석유회사와 개발투자계약을 맺고 개발 이익을 싹 쓸어갔다. 차베스는 “그런 꼴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가 석유회사 지분의 51%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시민들은 빠르고 경쾌한 힙합과 랩 음악 속에서, 초라한 도심 뒷골목의 서투른 낙서 속에서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차베스 대통령은 매주 일요일 <알로 프레지덴테>(안녕! 대통령)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차베스의 독자 노선에 불편한 심기를 가장 먼저 드러낸 곳은 미 백악관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그를 히틀러에 비교했고, <뉴욕타임스>는 “차베스 대통령이 수십억달러 규모의 원유 공급을 통해 미국에 대항하는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세력 결집을 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 랩 공연은 이번 문화 공연의 하이라이트다. 젊은이들이 무대 주변에 모여들여 공연을 감상하고 있다.

평범한 베네수엘라 민중은 이날 열린 거리공연에서 부른 흥겨운 랩 가사 속에서 “그의 개혁이 가난한 다수에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더 많은 권리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외쳤다.

도심의 낡은 뒷골목에 울려퍼지는 흥겨운 랩 음악과 비판의 메시지를 담은 서투른 낙서 속에 차베스 개혁의 정수가 담겨 있다.


△ 젊은이들은 벽에 빈 공간이 나타날 때마다 스프레이로 낙서를 그린다.


△ 흥겨운 힙합 음악이 끊이지 않도록 음악 DJ가 끊임 없이 음반을 갈아 끼우고 있다.


△ 베네수웰라 젊은이에게 미국은 맥도널드 햄버거와 무자비한 탱크로 상징되는 나라다.


△ 젊은이들에게 뒷골목의 빈 담벼락은 캔버스, 스프레이는 열정을 발산시킬 수 있는 붓이다.


△ 조지 부시 W 미국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낙서 속에서 베네주엘라 민중들을 겨냥한 폭탄과 같은 위험한 존재(Mr Danger)다.


△ 젊은이들이 랩 선율에 맞춰 박자를 맞추고 있다.


△ 혁명(Revolution)이라는 글자는 베네주엘라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낙서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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