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출판] 인문출판 20년 동문선 신성대 사장

[속보, 생활/문화, 연예] 2004년 02월 02일 (월) 18:39
‘신학이란 무엇인가’(데이비드 F 포드 지음, 강혜원 등 옮김), ‘코란이란 무엇인가’(마이클 쿡 지음, 이강훈 옮김), ‘푸코와 문학’(시몬 듀링지음, 오경심 등 옮김)….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들춰보지도 않을 만큼 난해한 내용, 표지엔 저자 사진 한 장 달랑 넣은 단순한 디자인으로 일관된 동문선의 ‘문예신서’ ‘현대신서’시리즈는 사흘이 멀다 하고 한두 권씩 나오고 있지만 판매와 거리가 멀다. 문예신서는 1988년, 현대신서는 98년부터 선보이고 있다.신성대(50) 동문선 사장은 20년간 이처럼 ‘안 팔리는 책’을 만들어온 괴짜 출판인이다. 84년 ‘뭣 모르고’ 출판사를 인수한 후 지금까지 500종가까이 책을 내면서 그에게 남은 건 수 억원의 빚과 팔리지 않은 수십 만권의 재고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표정은 밝기만 하다.

‘자선사업을 하는 것인가’란 물음에도 “이윤 따지려면 진작에 배추장사로 나섰다. 웬만한 책은 다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에둘러 말했다. 그래도 책을 엄선해서 낼 수 있지 않느냐고 하자 ‘태산은티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중국 속담으로 응답한다. “팔릴 만한 책을골라서 내는 것은 자기 집에 정원을 꾸미는 것에 불과해요. 보기 좋은 정원수를 가꾸기보다는 자연을 흉내내고 싶다고 할까요.”그의 뚝심과 옹고집에 원고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오히려 판매 걱정을 해준다고 한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 중에 99%가 초판만 찍었고, 그것도 팔리지않아 대부분이 창고에 쌓여 있으니 그럴 만하다. 일산에 있는 60평짜리 농가 창고 3개 동에 보관된 책들은 관리비만 한 달에 270만원, 1년이면 3,000만원이 들어간다.그러나 ‘소도 뒷걸음질하다 쥐를 잡는다’고 했던가. 그 동안 많은 책을내다보니 베스트셀러도 있긴 있었다. 2000년 처음 출간된 ‘느리게 산다는것의 의미’(1~3)는 30만부가 팔려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 “어려운 책들을 다루다 보니 답답해서 머리 식히려고 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번역이끝나고도 6개월이나 묵혀두었고 초판도 2,000부만 찍었죠.”여기에 소설가 이외수씨의 작품 ‘말 더듬이의 겨울수첩’을 비롯해 10여권이 그의 빈 주머니를 그나마 채워주고 있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가족들과 함께 상경한 신 사장은 신림동 판잣집에서 새벽엔 신문배달, 밤엔 지게를 지고, 주말에는 소와 돼지를 키우는 등 해보지 않은일이 없을 만큼 고생도 실컷 했다.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해양대 부설 해양전문학교를 졸업, 7년간 외항선 기관사로 세계를 누비며 돈을모아 출판사를 냈다.

서울 마장동 전셋집에서 살다가 최근에야 은행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다는 그는 가난이 지긋지긋하기도 할 법한데 여유만만하다. 쪼들리는 생활속에서도 중학교 때부터 배운 전통무예십팔기 보존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1년에 2,000만~3,000만원씩 지원금도 내고 있다.IMF 외환위기 후에는 회사 사정이 더 어려워졌지만 출판에 대한 열정은더욱 뜨겁다. 지난 해에는 86권을 냈는데 올해에는 100권, 앞으로 하루에한 권씩 내는 게 목표이며 조만간 각종 사전 편찬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그래서 그는 사무실에 들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작업에 방해를 받을까 봐출판사 간판도 없애버렸다.“‘동문선’ 책들은 기초 인문도서인 1차 저작물입니다. 이런 분야의 저작이 쌓여야 인문학이 살고 그래야 출판이 발전합니다. 요즘 베스트셀러는대부분 이런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3차 저작물입니다. 언론도 대중들의눈높이에만 맞추지 말고, 세상에 어렵고 복잡한 사고를 하는 분야도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서울 종로구 관훈동 사무실 한 켠에 적힌 ‘꾸준함을 이기는 경쟁자는 없다’는 글귀가 동문선의 꿋꿋한 자세와 신념을 함축하고있다.

/글 사진 최진환기자 choi@hk.co.kr

 

교수신문

외국서적 번역 이대로 좋은가...짧은 시간에 졸속 양산
프랑스 철학서들 오역논란 빚어

2004년 02월 26일   강성민 기자 이메일 보내기

최근 철학계에 오역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진태원 서울대 강사(철학)가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데리다의 '불량배들'(이경신 옮김, 휴머니스트 刊)에 대한 독자서평을 올리면서 불거졌다. 진 씨는 '불량배들'이 "거의 페이지마다 오역이 있으며, 개념을 잘못 옮긴 부분도 많다"라며 예를 들어가며 지적했다.

또 '그라마톨로지'(김성도 옮김, 민음사 刊), '마르크스의 유령들'(양운덕 옮김, 한뜻 刊)도 오역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진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진경·권순모 씨가 옮긴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인간사랑 刊)도 "매 쪽마다 심각한 오역이 하나씩 나온다"라고 지적하는 등 "학술적 인용을 위한 전공도서로는 문제가 많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철학서적의 번역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프랑스 철학일수록 오역논란이 그치질 않는다. '믿음에 대하여'(슬라보예 지젝 지음, 최생열 옮김)를 비롯한 지젝의 책들, '진보의 미래'(도미니크 르쿠르 지음, 김영선 옮김) 등이 구설수를 타고 있다. 특히 '진보의 미래'는 읽을 수도 없을 지경이라는 후문이다. 그러다보니 프랑스 철학서들을 많이 펴내는 동문선, 인간사랑 출판사는 '오역 공장'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이다.


동문선의 신성대 대표는 "우리 책이 오역이 좀 있죠. 고쳐야죠"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 줄일 지는 대책이 서지 않고 있다. 동문선은 거의 4일마다 책을 한권씩 내는데 "실용서 개발로 경영손실을 충당하면서 학술번역은 좀더 신중을 기하면 어떤가"라는 질문에 "전공자의 번역기피가 심각한 상황에서 마냥 역자를 기다릴 순 없다. 올해는 3일에 1권씩 내야 먹고살 것"이라고 해 어안이 벙벙하게 만든다.


좋은 책이 죽는다는 것도 문제다. 안 팔리다보니 금방 절판돼, 불명예를 안고 죽어가는 책들은 보는 識者들의 한숨을 불러오기도 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오역을 막기 위한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프랑스학회, 프랑스학회, 한국불어불문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는 필요성만 인정할 뿐 구체적 고민은 없는 상태다. 최근 '영미문학연구회'가 학진 지원연구로 광복 이후 2003년 7월까지 발간된 번역본 573종을 평가한 사례는 꽤 고무적이다.


학술지에서 '서평'란이 없어지는 것도 번역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학진의 학술지 평가나 대학의 연구업적 평가에서 서평에 점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글쓰기를 꺼리는 것이다.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학술진흥재단 측은 "학술지평가의 평가 항목 중 편집위원 연구실적 부분에서 서평을 연구실적으로 일정비율을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제 지식인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진태원 씨는 번역에 대한 토론영역을 섹트별로 나눠서 차례차례 접근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식인을 활용하는 출판시스템의 문제, 오역과 스타일의 구분, 분석철학·정치철학·형이상학 등 분과별 참조점의 차이, 번역을 학술업적으로 인정하는 문제, 많은 인적자원을 거느린 대학출판부의 역할강화 문제 등을 논해서 번역에 대한 지적 公準을 마련하는 일 말이다.


이번 '불량배들'에 대한 비판 역시 이런 비평문화의 부재 위에서 제기됐다. 이 책의 번역자인 이경신 씨는 "모든 페이지가 오역이라는 비판은 잘못됐으며, 짧은 기간과 薄利라는 어려운 여건에서 번역에 나선 역자에게 치명타를 안겨주는 발언"이라며 자기성찰적인 비판문화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포월 2004-03-01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문선’ 책들은 기초 인문도서인 1차 저작물입니다. 이런 분야의 저작이 쌓여야 인문학이 살고 그래야 출판이 발전합니다. 요즘 베스트셀러는대부분 이런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3차 저작물입니다. 언론도 대중들의눈높이에만 맞추지 말고, 세상에 어렵고 복잡한 사고를 하는 분야도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아연실색입니다!!
이만하면 필화사건(?)으로 불붙은 건가요? ^^; 당연히 중요하게 지적되었어야 할 문제였습니다. 혹 어려움 겪고 있다면 힘내세요. ^^

balmas 2004-03-0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특별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좀더 문제가 널리 알려지고 검토되고 해법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가 동문선 출판사라는 한 출판사의 문제는 아니지만, 동문선 출판사는 여러가지 점에서 우리 사회 지식-출판 시스템의 문제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증상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 관해 조만간 제가 생각하고 있는 점들을 간단히 적어서 올려놓겠습니다. 한번 같이 토론해 보지요.
 

한림대 철학과 교수인 장춘익 선생의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재기가 넘치면서도 매우 신랄한 분류법인데, 이걸 읽으면서 나는 어디에 속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철학자 유형>

 

산까치형 - 여기저기 찍어 보는데, 끝까지 먹는 게 없다. 이 놈 때문에 멀쩡하게 남는 주제가 없다.

암벽등반가형 - 어렵지 않으면 하지도 않는다. 부상은 곧 명예다.

두더지형 - 이 놈이 뭐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놈이 뭐 내놓을지 모른다고 기다리다가 다들 지친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또 꿈틀거린다.

미식가형 - 제 딴에는 핵심만 골라 공부하고 말하는데, 영양실조(지식실조)에 걸린다.

(오만한) 광산가형 - 저 혼자 금 캐고 남들은 다 석탄 캐고 있단다.

(착한)연탄집주인형 - 달동네 사람도 연탄 써야 한다고 나르듯이, 힘들고 돈 안 되는 작업(예를 들어 안 팔리는 책 번역하기) 만 골라서 한다.

해외특파원형 - 딴 나라에서는 뭘 하는지 열심히 전한다. 독자수준이 낮을 때는 남의 것을 슬그머니 자기의 창작으로 둔갑시켜서 내놓기도 한다.

목욕탕주인형 - 제 속은 안 보여주지만, 딴 놈들 껍데기 속을 다 안다.

때밀이형 - 열심히 논평해서 남의 잘못 고쳐주는 것을 보람으로 안다. 너무 빡빡 밀었다가 항의도 자주 받는다.

영웅적 순교자형 - 철학해서 저 빼놓고 세상을 다 구하겠다고 한다.

소심한 순교자형 - 한 번 틀린 것을 가지고 평생을 후회한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절필을 선언한다.
 
마를린 먼로형 - 수준은 낮은데, 이상하게 아무도 그를  비판하지 않는다.

타이거 우즈형 - 그에게는 굿샷과 배드샷만 있다.

 

* 이 유형은 사실 아래 글에 딸린 일종의 부록입니다.

 

<지도를 그리는 마음으로>

인문학자의 바람직한 태도라는 것이 있을까? 좀 황당하고 위험하기조차 한 질문이다. 이런 물음은 자칫 인문학을 지식체계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로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지식체계라면, 그것이 정확히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그 지식을 얻는 데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인문학적 지식이 소위 정상과학과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측면이, 일급의 인문학자들의 경우를 빼놓고는, 인문학에 (그리고 인문학자들에게도) 득이 되기보다는 (자주 치명적인) 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을 인문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인문학이 인문과학이 못되어서 너무나도 아쉽다.

그러니,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좋은 인문학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내가 하려는 것은 분명 아니다. 윤리로서의 인문학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는 <지식으로서의> 인문학의 발전에 보탬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내가 최근에 생각하게 된 것은 지도를 그리는 자세이다.

지도를 그리려면 전체를 효과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의 고안부터, 특정지역과 대상에 대한 정밀한 묘사까지, 여러 가지 종류의 노력이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 노력은 정말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 전체를 개관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또 특정지역에 대해 세밀한 지도를 그리는 사람도 필요하다. 지도를 그리는 방법은, 또 어느 정도로, 어떤 면에 치중한 세밀한 지도를 그릴지는 필요와 역량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도는 실제지형에 바탕하고 또 실제지형을 추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식의 다름이 지식의 지식적인 성격을 위협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지도 그리기에서는 지식의 우열문제보다 지식의 결합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야말로 - 내가 실제로 그려보지 않았지만 - 다른 사람들의 작업이 자신에게 불가결한 도움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인문학에서 모험적 광산업자의 태도가 가장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금을 캐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셔보고 다니는데, 어디 하나 정교하게 작업을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다. 혹시, 혹은 좀더, 금이 많이 나올 것 같은 곳이 보이면 즉각 옮겨버린다. 그 바람에 환경만 오염되고, 후속자의 작업도 빛을 잃는다. 또 혹시 무언인가를 발견하면, 자기는 금을 캐고 있는데 남들은 석탄이나 캐고 있다고 비웃으며 남의 작업의지마저 꺾는다.

나는 인문학에서 모험적 광산업자의 태도가 그저 개인의 기질만이 아니라 인문학의 성격<과> 환경에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과학성의 부족,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 연구비든, 학자의 명예든, 대중성이든 간에 - 소위 히트를 쳐야 하는 부담, 그리고 일반인의 인문학에 대한 기대가 결합하여, 광산업자의 태도를 갖도록 유인하고 또 종종 성공으로 이끈다. 과학성 검증이 잘 안 되니, 또 인문학에 대한 일반의 기대가 정확한 지식보다는 어떤 암시 같은 것이기에, 주제의 선점이 곧 주제의 소유자 내지 그 주제를 다루는 학자로 만들어 준다. 게다가 이제 인문학자도 연구비를 위해서든 지식엔터테이너로서의 성공을 위해서든, 자신을 부각시켜야 하겠으니, 광산업자적 태도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성공의 확률은 높고, 혹시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지식의 탐사에 나선 사람의 실수로 용서받으면 된다. 최악의 경우조차 별로 나쁘지 않다. 무엇 무엇을 밝힌 것이 아니라 무엇 무엇을 <다루었다는 것>을 공공연한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의 실정이니 말이다.


(후기: 내가 그린 지도?: 나는 어렸을 때 이불에다 지도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주로 술집지도만을 그렸지.. 또 뭘 그렸더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