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생] 선비, 붓을 잠시 놓고 劍을 뽑다
[조선일보 2006-05-02 03:03]    
‘武의 문화’ 보급 나선 동문선 출판사 신성대 사장
인문서적만 만드는 뚝심의 출판인 사무실
한켠에 무예수련장 만들고 국군전통의장대에 십팔기 가르쳐

[조선일보 조민욱기자]

“칼로 싸우다 지면 깨끗이 승복하는데, 말(言)로 지면 앙금이 남습니다. 요즘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입니다. ‘문(文)의 문화’가 대세가 되면서 ‘무(武)의 문화’의 장점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찾아야 합니다.”

서울 인사동의 중견 출판사 ‘동문선’의 신성대(辛成大·52)대표는 괴짜들이 몰려든다는 인사동에서도 터줏대감이 되기에 손색없는 ‘왕괴짜’다. 그는 600여 종의 인문서적을 줄기차게 펴낸 출판인으로도 이름 있지만, 여기까지만 알았다면 그를 반도 못 안 것이다. 신씨는 37년째 전통무예 십팔기(十八技)에 정진하고 있는 무인(武人)이기도 하다. 그는 출판사 대표인 동시에 ‘십팔기 보존회장’이며 ‘동양무예연구소장’이다.

출판사 사무실 한쪽엔 아예 무예 수련공간을 꾸며 놓고는 종종 칼을 들고 수련한다. 4년 전부터는 십팔기 시범단을 만들어 전국을 돌고 있으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90여 차례 공연한 공로로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외부 활동도 문무 두 영역을 넘나든다. 어느 날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에서 ‘출판·편집 실무’를 강의하고, 또 다른 날엔 국군전통의장대 무예십팔기 지도사범 자격으로 병사들을 호령한다.

남이 쓴 책을 출간만 해 주던 그가 생애 첫 책을 써 냈다. 최근 나온 ‘무덕(武德)-무(武)의 문화, 무의 정신’(동문선)은 한마디로 그가 무예를 통해 무엇을 깨닫고 얻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신씨에게 무예 수련이란 단순한 신체단련의 차원이 아니다.

그는 “문이 사유(思惟)하는 철학이라면 무는 행동하는 철학”이라면서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을 숭상하고 무를 푸대접함으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국민성을 형성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씨는 “가령 옛날 500원 지폐엔 이순신 장군 초상과 거북선이 있었지만, 요즘 우리 돈에는 세종대왕·퇴계·율곡 등 문(文) 쪽의 인물 일색 아니냐”고 했다.

“특히 현대사에서 군사독재의 어두운 역사 때문에 ‘무’(武)가 더 폄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 변함없는 항심(恒心), 신의(信義) 등을 특징으로 하는 무의 정신과 에너지는 이어받을 가치가 큰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은 선비 정신이 만든 게 아니라 우리 혈관 속에 흐르는 기마민족의 진취적인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닙니까?”

그는 “내가 돈 안 되는 인문서적을 고집스레 출판하는 것도 무인의 뚝심 때문”이라고 했다. 굴곡 많은 인생길을 헤쳐온 힘도 무예로 닦은 정신력이다. 경남 마산에서 상경한 10대 시절의 신씨는 무예는커녕 동네 왈짜패들에게 괴롭힘을 받던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싸움 기술이나 익혀 보려고” 도장을 찾았다가 십팔기의 유일한 전승자인 해범(海帆) 김광석 선생을 만나 평생 제자가 됐다. 젊은날엔 전공(해양대 부설 전문대 기관과)을 살려 외항선 마도로스가 되어 오대양을 누비기도 했으나, 한 친구의 동업 제의로 출판에 뛰어들었다. 첫 작품으로 이외수씨 책을 낼 땐 동업자가 신씨 돈을 갖고 잠적해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다행히 이외수씨가 사정을 듣고는 ‘쓰다가 버린 파지’라며 건네준 원고가 ‘말더듬이의 겨울 수첩’이라는 베스트셀러 산문집으로 히트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말라카 해협서 해적을 만났을 때, IMF를 맞아 출판사가 부도 직전에 갔을 때에도 저를 버티게 해준 것은 무예입니다. 칼날 위를 걷는 심정으로 한순간 한순간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살 길이 생긴다고 믿었죠.”

그가 무예 대중화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십팔기는 어느 한 문중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만든 무예로 세계에서 유일한 것입니다. 이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이 무인으로서의 저의 사명입니다.”

(조민욱기자 [ mw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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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21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후안무치해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 사람은 그런 점에서는 질적 비약을 이룩한 사람인 듯 ...

이런 인사가 책 냈다고 인터뷰 기사를 실어주는 곳이

어디인가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조선일보였다.

물론 한겨레도 만만찮다. 한겨레의 뛰어난 균형 감각!

http://news.empas.com/show.tsp/cp_hn/20060501n06527/?kw=%BD%C5%BC%BA%B4%EB+%BD%C5%BC%BA%B4%EB+%BD%C5%BC%BA%B4%EB+%7B%7D

 


퍼그 2006-06-21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상대로 '너무나' '특이한' 분이네요.ㅎㅎ "동武선"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

balmas 2006-06-2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문선은 원래 있던 출판사인데, 이 사람이 아마 중간에
인수한 게 아닌가 싶어요. (확실치는 않지만 ...)
그나저나 한겨례가 정말 놀랍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기사를 떡하니 실어주는지 ... -_-+

에로이카 2006-06-2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웬일로 발마스님께서 악명높은 동문선 기사를, 그것도 조선일보 기사를 퍼왔나 했습니다. 동문선이 프랑스 서적들 번역출판권을 입도선매해서, 그지같은 번역으로 책 망쳐놓고, 저작권 계약 없이 다른 곳에서 나온 번역서들 거둬서 다 소각시키기로 유명하더군요.

balmas 2006-06-2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문선은 후안무치하기가 이를 데 없는 출판사죠.
저는 동문선에 기생하면서 알토란 같은 프랑스 서적 정보들을 제공해주고
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사실이 더 우울하고 안타깝더군요.
동문선을 통해서 나오기도 전에 죽어버린 책들, 그것도 하나같이
귀중하고 값진 책들을 생각하면 ...

불어 깨나 하고 프랑스에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많다는 우리나라
프랑스 학계 교수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저 같으면 프랑스 출판사들에게 편지를 쓰고 하소연을 해서라도
이런 사태를 막아보겠는데 ...

포월 2006-07-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장님이 선원도 하시고 이력이 화려한 분이예요. 빛더미에 올라앉아 있던 동문선을 인수해서 그 빚 다 갚았다던데. 세상에 대한 빚은 언제 다 갚을런지...

balmas 2006-07-0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이력이 다양하더군요.
왜 그런 이력을 가지고 출판계에 뛰어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더군요. -_-
 

 

 

축구가 지배하는 세계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7) - 축구가 안내하는 것, 기다리는 것

 

완군(문화연대) ssamwan@jinbo.net

땀구멍이 열리는 순간의 따끔따끔한 감촉, 하나의 허벅지가 낯선 허벅지와 엉켜 창조적 공간을 열어가는 역동성, 한계를 뛰어넘는 생동적 몸짓의 정점에 축구가 있다. 축구는 혁명적 신체, 전복적 신체을 향해 한계를 모르고 달려간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축구를 열광하는가? 또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이 복잡하고 대책없는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축구, 그 자체에 답이 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아주 어린 시절 둔탁한 공의 궤적을 따라 걸음마를 배웠고, 쉬는 시간 10분동안 쏜살같이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공을 찼으며, 수능을 앞두고서는 텔레비전 앞에 납작 엎드려 숨죽이며 월드컵에 열광했었다. 축구는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 재미를 보장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축구는 “시장과 민족국가, 기술의 통합”되어 만들어질 수 있는 모든 재미의 총체이다.

짧게나마 대학물을 먹고, 민가를 배우고 거리에서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난데없이 2002년이 도착했다. “지루한 일과, 피곤한 인간관계, 반복되는 사물과 상품, 늘상 해결되지 않는 돈과 욕구”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었다. 그것은 궁핍과 부족함의 반복이었고, 억압과 비루함의 연속이었다. 도저히 해결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무엇. 그것은 바로 일상이었다. 사람들은 어렴풋하나마 완고한 일상이 모든 실험과 혁명을 삼켜버렸음을 알고 있었다. 완강히 지속되는 일상, 그것은 실로 거대한 위대함이다. 또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인간의 삶이 영원히 지속되는 한 일상성은 땅에 뿌리를 박고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2002년의 난데없음을 둘러싼 체계를 따지려고 했으나 하나 같이 실패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맛보는 일탈을 정치적 관점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을 경멸했으며, 일탈의 체계를 분석하려드는 지식 권력을 단호히 거부했다. 또 다른 이들은 난데없음의 우연성을 필연화 하려는 시도들을 했다. 광장과 축제에 대해 이야기했고, 열정과 욕망에 관한 찬사가 난무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붉은 티를 입고 거리를 점령하고 소리를 지르고 술을 마셨다. 때마침 메인무대에 올라있는, ‘태극전사’라고 명명된 ‘영웅’들까지 승승장구했다. 세상이 모든 질서와 이데올로기에서 한 발짝 비껴선 듯 했다. 그 모든 것을 축구가 만들었다고 선전되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축제이든 모험이든 혁명이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일상성의 완고한 지속성과 거대한 위대함이 2002년에만 살짝 사라졌을 리 만무했다. 붉은 기운에 도취되어, 아스팔트의 해방감에 망각되었을 뿐이었다. 2002년의 기쁨과 쾌락은 또 다른 일상의 확인이었다. 사람들은 조금 늦게서야 ‘국가’와 ‘민족’에서 ‘자본’과 ‘소비’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거대한 지배구조가 본격적으로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이해했다.

사람들은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세계화’의 실체를 확인했다. 무역 장벽이 무너지고 기술 발전으로 세계가 동네가 되고 있다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상호의존적 세계 혹은 제국 의존적 세계 질서에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렇게 IMF는 극복됐고, WTO체제는 진화하며, FTA는 순항중이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프랑스의 지단, 잉글랜드의 베컴을 인식하고 그들이 자본의 지휘아래 ‘레알마드리드’에서 함께 뛰는 것보다 더 극적으로 ‘세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는 없다. 여기에 기술의 발전까지 더해졌다. 실로 눈 시린 광경이다.

그렇게 2002년은 그리고 축구는 하나의 지향이 되었다. 우리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으며 또한 세계를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심장한 약속이 이뤄졌다. 우리는 그 전환적 순간을 축제로 만들었고 대체로 흥겨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신화는 현실이 되었고, 꿈은 이뤄진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과연 그럴까?

한국 사회에서 축구는 확실히 신체 감수성의 확장, 몸으로 느끼는 재미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중동에서 축구가 억압적 가부장 질서를 깨고 나가는 서구식 자유를 상징하듯, 유럽에서 축구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져가는 지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듯, 미국에서 축구가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프로그램을 상징하듯이, 한국에서 축구는 초국적자본의 지배 속에서 대한민국은 부강할 것이며, 한민족의 번영과 소비의 만개를 경험하는 개인의 등장을 상징한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모두가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주술이다. 지배와 피지배, 계급간의 착취를 넘어설 수 있으리라는 강력한 환상이다. 달콤하되 불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현대사회의 일상성과 소비사회의 도래라는 복잡한 인과관계와 다층적 욕망을 ‘국가의 계급적 본질, 즉 그것이 독점자본의 지배도구라는 사실’이라는 쾌쾌한 한 문장으로 독해하려는 이들을 보는 일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철지난 유행가가 그럴싸한 훈계와 계몽으로 둔갑 되는 한 결코 축구가 지배하는 세계에 도전할 수 없으며, 돌파할 수도 없다.

2006년 월드컵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것은 결코 축구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를 통한 정치적 우민을 양산하는 국가계급의 소박한 불량함을 훌쩍 넘어서는 도발적 질문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축구는 손가락일 뿐이다. 축구가 가리키는 달을 봐야한다. “문화적으로 억눌린 동시에, 욕망하는 한편, 자본에 의해 조작되는 대중”을 월드컵이 호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세계화’를 구매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축구일 뿐이라고 선전되고 있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개인으로 호명됐던 이들을 열혈 민족주의자로 변모시켰던 축구이다. 그 퇴행속에는 근대적 억압과 지배구조의 자가발전이 있었다. 그리고 축구가 지금 다시 조건 없는 경쟁, 예외 없는 개방, 시장 우위의 사회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국가주의 장치로서의 월드컵, 구식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게임으로서의 축구를 훌쩍 뛰어넘어 2006년 월드컵이 도착했다. 자본이 깔아놓은 전지구적 꽃비단 길을 따라 신자유주의가 만개를 기다리고 있다.

완군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로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고정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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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으)로 검색한 결과 총 202 건의 상품이 검색되었습니다."

헉, 꽤 많네 ... -_-;;

우선 갈레아노의 [축구, 빛과 그림자]

스테판 지만스키, [왜 세계는 축구에 열광하고 미국은 야구에 열광하나]

프랭클린 포어,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리처드 줄리아노티, [축구의 사회학]

등이 읽을 만할 것 같은데,

줄리아노티의 책은 번역이 별로 시원치않은 듯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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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6-1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쟈게 많군요. 저 책들의 출판일자를 확인하고픈 욕구가...
요즘은 뭐든 '축구'만 들어가면 다 팔린다고 한던데
 

1943년에 이르면 예술가로서의 피카소의 생애 중 두번째이자 최후의 위대한 시기는

마감하게 된다. 그 시기 동안 그는 몇몇 졸작들을 그리기도 했지만 걸작 또한 몇 점을 남겼다.

1943년 이후 그는 그 전 시기에 비교될 만한 작품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왜 그는 그전처럼

계속할 수 없었을까? 1931년에서 1943년 사이에 그려진 피카소의 걸작 그림들은 모두,

<게르니카>를 포함하여-- 그리고 바로 그것이 많은 비평가들이 그토록 오판했던 대목이다--자전적이었다.

그것들은 고도로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의 고백들이다. 그것들은 보통 현대에서 쓰이는 의미로서의

사회적 상상력을 전혀 구현하고 있지 않다. 초기의 그림들은 성적인 쾌락에 관한 것들이었다. <게르니카>와

전쟁을 소재로 한 그 비극적인 그림들은 고통에 관한 것으로, 에로틱한 그림들의 정반대 면이었다.

에로틱한 그림들은 모두 감흥을 표현하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 그것들 모두는 부분들을 해체할 자유--큐비즘

에 의해 획득된 자유-- 이용하여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써버렸다.

 

  이러한 주제들을 찾기 위해서 피카소는 자신의 육체를 떠날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가 에로틱한 그림들을

그린 것은 자기 육체의 경험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가 전쟁 그림을 그렸던 것은, 성적 경험으로 고양된

자신의 육체적 상상력을 통해서였다. (전쟁 그림의 경우 등장 인물들의 거의 모두가 여자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의 성공적인 주제의 선택은 매우 본질적인 차원에서 그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 차원 -- 어느 유럽 출신 화가도 그 이전에 그토록 깊이 탐사한 적이 없는 차원 -- 에서 하나의 주제

가 갖는 특별한 중요성 혹은 의미는 문화적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으로 확인된다. 그 차원에서는 -- 우리가

그것을 수긍할 만한 용기가 있다면 --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존 버거,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김윤수 옮김, 미진사, 1984, p.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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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6-06-1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이 책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그 후 몇 년 뒤 이미지에 관한 그의 또다른 책을 읽었는데

(국내에는 [영상커뮤니케이션과 사회]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된 책과

[이미지 : 視覺과 미디어]라는 제목으로 동문선에서 나온 책,

그리고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또다른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있는데,

나는 동문선에서 나온 책을 보았다. 번역은 별로 -_-;)

이 책 역시 감동적이었다.

그 뒤 나는 존 버거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는데,

알라딘을 검색해보니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가 증보판으로 나와 있다.

마침 큐비즘에 관한 내용이 보충되어 있다고 하니,

당장 구입해봐야겠다. :-)


비로그인 2006-06-1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요? ㅋ 흠 죄송합니다..;;

balmas 2006-06-1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국민학교가 아니라 유아원??
 
 전출처 : 바람구두 > 친일파 후손, 서울대 총장 임명 옳은가?

친일파 후손, 서울대 총장 임명 옳은가?
[오마이뉴스 2006-06-15 16:56]
[오마이뉴스 정지환 기자]
 
▲ 이장무 서울대 총장 후보. 이 교수 홈페이지 캡처.
"이장무 서울대 총장 후보가 일제시대에 식민사관을 수립하고 전파한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최근 만났던 몇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받았던 질문 내용이다. 그들이 기자를 대면한 뒤 잊고 지냈던 것을 갑자기 생각해낸 것처럼 이런 질문을 던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기자가 수년 전 <시민의신문> 지면을 통해 보도하며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기사, '비명(碑銘)을 찾아서-실증사학자 이병도와 특무대장 김창룡의 기묘한 인연'을 떠올렸던 것이다.

우선 이 기사가 나오게 된 전말부터 소개하면 이렇다.

이건무-이병도-이완용, 이들의 기묘한 인연

2003년 3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차관급으로 승격된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이병도의 손자 이건무씨를 임명했다.

바로 그 다음 날 이 신임 관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인 이병도의 친일행적 논란과 관련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는데, "할아버지의 실증사학 얘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보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핵심 내용이었다.

물론 손자가 할아버지를 옹호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변호에도 어느 정도의 논리와 상식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할아버지를 옹호하려 한다고 해도 이른바 '국립'중앙박물관장이라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민족과 역사의 정체성까지 훼손하는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를 포함해 한국의 언론인 중에서 이 발언에 주목하거나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말이지 부끄럽게도 열흘 정도가 흐른 뒤 우연히 사석에서 몇몇 역사학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기자마저 그런 인사(人事)와 발언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군을 '사냥'했던 죄업 때문에 해방이 되자 한때 지하로 숨기도 했지만 정부수립 직후 도리어 이승만 대통령이 총애하는 심복으로 변신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특무대장 김창룡, 그가 옛 부하들에게 암살된 뒤 이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묘비에 객관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용비어천가를 방불케 하는 낯부끄러운 엉터리 비문을 지어바쳤던 역사학자 이병도.

3년 전 기자가 그들의 기묘한 인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역사기행'을 떠난 데는 이런 전사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맨땅에 헤딩하기 식의 역사기행 끝에 도달한 행선지에서 야생동물의 배설물과 흙덩이와 뒤엉킨 채 쓰러져 있는 김창룡의 조각난 묘비를 찾아냈다.

역사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증사학'이라는 그럴듯한 가면으로 위장한 이병도가 사실은 친일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과 같은 가문(우봉 이씨)이었으며, '가문의 수치'를 은폐하기 위해 원광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이완용의 관 뚜껑이라는 역사적 유물을 가져다가 일방적으로 태워버렸다는 엽기적(?) 사실과도 조우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병도가 이완용을 자신의 조상으로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즉 '이완용 콤플렉스'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그런 이병도를 두고 이병도의 손자인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할아버지의 실증사학 얘기는 역사를 올바르게 보자는 것"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그것은 '죽어서도 편치 못한' 친일파와 그 후손의 비극적 말로와 왜곡된 세계관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초상이기도 하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혹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역사의 진실은 밝혀졌지만 이미 이병도의 손자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상황이었다.

이번엔 또 다른 손자가 서울대 총장 눈앞

 
▲ 서울대 정문 앞 전경. ⓒ2006 안현주
ⓒ2006 안현주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그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친형이 '국립'서울대학교 총장 후보로 선출되어 대통령의 낙점만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저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몇몇 사람들이 바로 기자에게 제보를 한 사람들임은 물론이다.

독일월드컵 열풍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지만 6월은 보훈의 달이다. 얼마 전에는 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인 현충일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이 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일제가 한국사를 왜곡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중추원 산하에 급조한 조선사편수회에서 부역하며 식민사관 총서인 <조선사> 간행에 관여했고, 그 씻지 못할 죄업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단행본에서도 청산돼야 할 친일파로 규정된 사람의 자손들이 당당하게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된 데 이어 '국립'서울대학교 총장까지 석권할 판국이다.

아시다시피 민족사학의 거두 박은식이 중국에서 지은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국내에 유입되자 당황한 조선총독부가 조선사 왜곡을 위해 급조한 것이 '조선사편수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가 2005년 8월 29일(경술국치일)에 사전 공개한 3090명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상 1차 명단 자료에 따르면, 이병도는 이 식민지 관제 기관의 주구로 무려 13년(1925년∼1938년) 동안 일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아무리 손자가 할아버지를 옹호할 수 있다고 해도, '조선사편수회'를 무슨 '조선어학회'라도 되는 것처럼 오만방자하게 행동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일대 모독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병도(실증사학파의 대부)가 지식인이자 역사가로서의 지조를 내팽개치고 외세의 간교한 권력과 타협하며 알량한 일신의 안위와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역사가인 백남운(사회경제사학파의 대부)은 옥고를 치렀고, 신채호(민족사학파의 대부)는 망명을 택했기에 더욱 그렇다.

문제제기 없는 언론들... 왜?

참으로 암담한 것은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변함없이' 어떤 언론도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고 할 것이다. 도리어 "민감한 인사 문제 개입이나 현대판 연좌제 적용은 위험" 운운하면서 비판적 문제 제기의 책임을 방기하거나 나아가 그러한 시도를 방해하고 있다.

평소 '코드인사 절대불가'를 외치며 온갖 민감한 인사 문제에 개입해 왔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체성을 생명보다 귀중하게 강조하던 보수언론도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병도 문제는 단순히 한 개별의 자연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 젊은 역사학자가 기자에게 전해준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단재 신채호를 보면 두계 이병도가 보인다. 단재는 박은식과 함께 한국 근대 역사학와 민족사학의 비조로 불린다. 그러나 그가 제대로 된 학술적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부끄럽고 놀랍게도 1970년대에 들어와서였다. 그것도 신용하(사회학), 김영호(경제학) 교수 등 역사학자가 아닌 다른 학문 분야의 사람들에 의해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아는가? 이병도가 해방 이후 서울대 사학과(한국사 분야)를 접수한 뒤 주류 역사학계는 이병도 후학들에 의해 장악됐다. 그렇게 '이병도 사관(史觀)'이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신채호 같은 인물은 철저히 잊혀진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언론의 정면비판이 진정 국내정치용 제스처와 포퓰리즘에 입각한 눈 가리고 아웅식 접근방식이 아니었다면 우리 내부의 친일 문제부터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가 시민의신문에 보도했던 기사를 정리해 올린 것입니다. 인터넷시민의신문(ngotimes.net)에는 이밖에도 몇편의 글이 더 실려 있습니다.


기자소개 : 정지환 기자는 현재 <시민의신문> 취재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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