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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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에 이은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는 일종의 '학교 범죄 시리즈'라 지칭할 만하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그 목격자인 네 명의 소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관점에서 그녀들의 인생을 추적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때 살해당한 소녀의 엄마가 네 명의 소녀에게 "평생 속죄하며 살라"는 협박 같은 말을 하는데- 그 말의 무게에 넷 다 휘둘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불행의 모습들의 현실적이지 못하다. (어떻게 넷 다 000를 저지른단 말인가?) 특히 결론에서 밝혀지는 범인의 실상은 충격적인 만큼 작위성도 짙다. 

소설 속에는 도시에서 시골로 온 아이들의 심리나 반대로 도시 아이를 바라보는 시골 아이들의 심리가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프랑스 인형으로 거실 꾸미기 같은 시골 풍습이 도시 아이의 시시하다는 한마디에 무너지고 다른 놀이로 대체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너무나도 유사한 <고백>과 <속죄>의 공통점을 짚어볼까? 

  • 편지와 고백 투의 문체 선호 
  • 사건이 일어나기까지,가 아니라 사건 이후를 추적한다는 점
  • 주된 사건이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일어난다는 점
  • 어른이 아이에게 협박을 한다는 점  
  • 4의 협박으로 인해 아이의 인생이 망가진다는 점

소재만 놓고 보면 사회파 추리소설 같지만 '인간의 뒤틀린 감정'에 더 관심이 크다는 점에서 사회파로 분류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빨려들 것처럼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뭔가 모를 찜찜한 여운을 남기는, 그래서 나랑은 궁합이 좀 맞지 않는 작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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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여사는 킬러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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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소설을 읽을 때는 흥이 절로 난다. 이 책이 그러했다. <단편집 굿바이 파라다이스>에서 한국적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신문물 검역소>에서는 새로운 소재와 스릴러를 엮는 능력을 보여준 작가 강지영, 이번에는  더 발전된 장편 스릴러로 돌아왔다. 

이 책은 심은옥이라는 평범한 아줌마가 칼을 잡게 된 사연, 그 칼을 들고 킬러가 된 사연에서 시작한다. 웃기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전부 정상이 아니라는 점. 심여사가 취직한 스마일흥신소의 사장 박태상, 직원 최준기, 경쟁업체 해피기획의 나한철, 그녀의 와이프 홍미숙, 박태상이 주워다 키웠지만 자살한 여자애, 박태상의 옛 연인... 하나같이 정말 골-때-리-는 인생들이다. 책의 목차가 이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 각자의 인생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읽으면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연에 공감하며,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참 파란만장할 거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들이 딸들에게 그런 말 하곤 한다. 약간 욕심낸 듯한, 작위적인 듯한 이야기도 섞여 있었지만 쓰다보면 그럴 법도 하다 싶다. 정말 처절한 아줌마 킬러 이야기,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의 코믹 버전 쯤으로도 읽혀진다.

작가는 젊은 나이에 궁상맞은 인생사를 어쩜 노인네처럼 빠삭하게 꿰고 있는 것인지? 게다가 그걸 담는 그릇인 문장력이나 스토리 구성력도 나무랄 데 없다. 현실적인 인생 이야기를 스릴러로 풀어내되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중심 잡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심은옥] 예봉중학교 졸업. 학력난에 쓸 것이 바닥났다. 1999~2003년 정육점 운영. 경력난에 쓸 것도 바닥났다. (중략) 이력서는 끝내 두 둘로 끝이 났다. 학창시절 붓펜으로 장난삼아 그리던 난초나 대나무로 빈자리를 메울까 하다가 조기치매 소리라도 들을까 겁이 나 그만두었다. 나는 슈퍼에서 카스텔라 한 덩이와 흰 우유를 사먹고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쇼핑백 안에 든 칼들이 서로의 몸에 부대끼며 찰캉찰캉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 나를 수상한 아줌마로 바라보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지만 사람들은 얼결에 뺨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은 표정으로 제 갈 길을 걷고 있었다. 인생의 끄트머리에 내몰린, 여자도 남자도 아닌 아줌마에게 누가 관심을 갖는단 말인가.  -12p

 
   
   
  [박태상] 나는 사장이 되고 싶었다. (중략) 요컨대 배가 부르다는 건 사람을 선하게 하는 기본 요건 중 으뜸이다. 범좌자의 상당수는 배가 고픈 자들이고, 그들의 열패감이 악의 씨를 싹 틔웠다. 악의 씨가 간혹 부자들의 주머니에 흘러들어갈 때도 있지만 뿌리를 내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부자들은 보통 여러 벌의 외투를 가지고 있고 한 번 입은 옷은 반드시 드라이클리닝을 했으므로 악의 씨앗은 자연히 더 가난하고 배고픈 자들의 꿉꿉한 주머니를 찾아가 움틀 수밖에 없었다.  -31p  
   
   
  [박현석] 교사에게 학생이란 대단한 노력 없이도 성난 이빨과 풀 몇 포기만 있으면 다루기 쉬운 한 무리의 양떼 같은 존재였다. 품과 길이가 어이 없이 큰 교복을 걸쳐 입고 새카만 조약돌처럼 반들거리는 까까머리로 온종일 무언가를 읽고 외우고 풀어내거나, 틈만 나면 식어빠진 튀김 따위를 입에 우겨넣는 군청색 양들에게는 저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이 제아무리 잘나봐야 그들 역시 양떼를 지키는 멍청한 목양견에 불과했다. 종이 울리면 벤치에 모여 앉아 인스턴트커피를 홀짝이며 담배나 뻐끔거리다 다시 종이 울리면 자신들의 양떼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빈자리가 있는지, 졸거나 시건방지거나 되바라진 녀석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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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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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매력적인 작품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류의 코지 미스테리와 <인사이트 밀> 같은 본격 미스테리로 알려진 신예작가다. 이번 작품은 그 둘을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  

총 5편의 연작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들을 하나로 엮는 공통점은 상류계급 영애들의 독서모임 '바벨의 모임'이다. 하지만 이 모임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은 아니고 상류층의 오랜 저택, 그 딸들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하녀가 중심이 되어 괴담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꽤나 잘 짜여진 이야기들이다. 개인적인 베스트로는 그림 속에 숨은 수수께끼가 흥미로운 '북관의 죄인'과 결말이 꽤 으스스한 '덧없는 양들의 만찬' 두 편을 꼽고 싶다.

반전이나 본격 추리를 기대하고 읽기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괴담으로 읽으면 좋다. 책 곳곳에 미스테리 팬을 잔뜩 의식한 듯, 동서양 고전 추리소설들이 많이 인용되어 재미를 더한다.   

책의 외관은 보통 정도. 표지를 벗긴 뒤의 속표지가 더 단단하니 아름답다. 느낌 좋은 까만 장정에 빨간 양이 콩 하고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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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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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화된 이야기구조가 그다지 재미없음, 오쿠다 히데오 중에서는 범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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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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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다 소지의 처녀작으로 본격 추리물이 아니라는 홍보문구에도, '이시오카 + 미타라이 콤비의 첫 만남'을 그렸다기에 호기심이 일었다. 쩔쩔매고 어리버리한 이시오카와 능청스러운 미타라이의 콤비야말로 참 걸작이란 말이지. 

기억을 읽고 벤치에서 깨어난 한 남자,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낯선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이시오카)는 이방에서 뻔뻔한 점성술사를 만나 위안을 얻는데 그가 바로 미타라이다. 그러다가 자신의 기억을 찾아줄 단서를 발견하는데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다. 과연 그는 왜 기억을 잃었을까? 그는 살인자인가, 아닌가를 밝히는 이후의 빠른 전개는 재미있었는데, 소설의 전반부는 그저 평온한 생활을 그리고 있어서 좀 지루한 감도 있다. 하지만 시마다 소지 작품 치고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해서 나름의 매력도 있었다.  

시공사에서 나왔는데 표지도 멋지고 겉표지를 벗기면 안의 장정이 단단하고 아름답게 제본되어 있다. 제목인 '이방의 기사'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양각 처리해서 맛이 살아났다. 잘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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