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처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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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해 보이던 <얼음공주>에 비해 <프리처>의 제목과 표지는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너무나 근사한 그녀의 작품을 피해갈 수는 없지. 그리고, 읽어보니, 완벽하다!  

배경은 피엘바카, 주요 등장인물도 전작과 동일하다. 에리카와 그녀의 남편 파트리크 형사. 이번에는 에리카가 아닌, 파트리크가 사건 해결의 중심이다. 에리카는 임신 말기로 묘사되어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임산부라면 공감 가는 그 묘사들은, 작가가 세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듯해서 흥미롭다) 파트리크가 속한 경찰서의 인물들도 여전하여 무능한 서장, 사고만 치는 뚱보 형사, 노회하고 태만한 늙은 형사(이번 작품에서 변화의 기미를 보인다), 의기충천한 젊은 형사 마르틴 등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_^ 

사건은 20년 넘게 실종된 두 소녀의 유골과 최근 살해된 젊은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두 죽음은 관계가 있는가, 있다면 어떤 미치광이가 그녀들은 그런(어두운 곳에 가두고 뼈를 하나씩 부러뜨리는) 방식으로 살해했는가가 스토리의 초점이다. 이를 해결하면서 파트리그 형사는 곳곳에서 훌트 가문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집안의 광기와 모순을 파헤치게 된다. 기독교의 모티프를 차용한 듯한 훌트 가문의 이름들 또한 흥미롭다. 에프라임(아브라함?), 가브리엘, 요한네스(요한), 야곱 등. 아마 성경의 어떤 스토리와 연관이 있을 듯한데 어릴 때 들었던 거라 가물가물하다. 

구성 방식은 촘촘히 수십 명의 관점에서 전개되는데 그 속도가 빨라 첫 몇 줄을 읽을 때는 어, 누구에 대한 이야기지 하고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읽는 사람도 이 모양인데 쓰는 사람은 얼마나 머리가 아팠을까?! 그러니 카밀라 레크베리는 천재가 틀림없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범죄와 관계없는 흥미로운 사실들도 알게 된다. 스웨덴 피엘바카에는 친척들이 여름 무더위를 피해 피서를 온다는 것, 괴로운 친척에 대응하는 에리카의 방식은 풋, 통쾌했다.

마지막 결론은 참 놀랍다. 단지 '범인이 그 사람이었어?" 정도의 반전이 아니라, 그런 종류의 살인에서 으레 그럴 거라고 생각되는 결말과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참 슬프다. 읽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불행이 (꼭 무덤에서 여러 개의 손들이 올라오듯이) 아우성치듯 느껴지는데 결말도 그러하다. 특히 1979년에 죽어간 그녀들의 독백은 잔인한 묘사 없이도 너무나 잔인하게 읽힌다.

출판사에서 '차세대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별명을 홍보하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와는 작품 색깔이 너무 달라 좀 당황스럽다. 그만큼 이 작가가 위대함을 설명해주는 문구라고 보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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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서의 우리 上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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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게, 세키구치 군. 이 세상에는 일어나야 할 일만 일어나고, 있어야 할 것만 있는 법일세."-225쪽

"그래, 맞네. 과학과 괴이는 본래 서로를 보충하는 일은 있어도 반발하는 대상은 아닐세. 하지만 그러면서도 절대로 융합되지도 않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서로 반발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어. 심령과학은 그 오해 위에 성립하는 것 같은 구석이 있고, 게다가 융합되지 않는 것을 통합하려고까지 하고 있단 말일세. 사상누각, 지붕 위에 지붕을 짓는 거지."-232쪽

그 사건은 실로 내게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사건을 수습하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어떤 나를 죽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것에 대해 망집도, 비애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죽어 버린 어떤 나의 유령이 내 안을 간간이 오갈 때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유령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결심한 일이다.
한 번 죽은 덕분에, 나는 지금 살아 있을 수 있다.
그 여름날, 나는 그렇게 마음을 정했다.-270쪽

정월과 마찬가지다. 오기 전까지는 무의미하게 흥분되지만 오고 나면 별 것 없다. 기대대로 그것을 얻을 수 없어서,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어른인 나의 정월은 언제까지나 미적미적 계속되는 것이다. -303쪽

"그러니까 아는 것, 모르는 것,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있을 수 있는 것, 있을 수 없는 것- 이것들은 명확하게 구별해서 생각해야 했어요. 다시 말해 '공중부양하는 승려'는 있을 수 없지만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나타난 시체'는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우리는 에노키즈 씨의 말씀대로 그 부분을 전부 혼동하고 있었던 거예요."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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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 하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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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은지 얼추 한 달이 되어 간다. 덴도 아라타의 <가족 사냥> 같은 책을 읽어 봤는데 소재에 비해 재미가 적었다. 그 이유는 설교적이기도 하고 작가의 소설 서술방식이 '아이의 인권 보호' 등 가치관에 따라 소재를 고르고, 사건을 묵묵히 적어내려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교 같은 것은 부족한 작가에 속한다.  

상,하권 합쳐 총 1500쪽에 이르는 이 대작 역시 설교를 길게 늘어놓은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짧게 압축된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인권을 함부로 유린할 권리는 없다". 이 한마디를 위해 세 명의 아이는 기나긴 인생 여정을 살아간다. 작가가 툭-하고 생기를 불어넣은 더미 인형처럼. 부모에게 (다양한 형태로) 학대당하고, 어린 시절 정신병동에 갇혀 생활하고, 그런 과거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결국 성인이 되어 나름의 인생을 살고, 셋이 재회를 하고, 다시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린다.  그 성인이 되어 발생하는 사건들의 인과관계나 추리과정 등이 조금은 부자연스럽다. 인물들이 좀 작위적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뭉클하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다. 안타까움도 느꼈다. 그건 확실히 주제의식이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절한 부분을 지적한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권리는 어디까지인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자기 아이라고 굶겨 죽이거나 때리거나 지속적인 언어 폭력은 일삼거나 하는 부모들도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묵묵히 그냥 읽어내려갔다.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책읽기였다. 하지만 그의 문제 제기에는 공감한다. 사족이지만 흔히 사회파 미스테리라고 부르는, 무거운 사회의식에 바탕한 글쓰기라면 덴도 아라타가 아닌 미야베 미유키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더 손에 잡힐 듯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에 재발간된 이 책은 공들여 참 잘 만들었다. 흠이 있다면 겉표지가 얇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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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 상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읽은지 얼추 한 달이 되어 간다. 덴도 아라타의 <가족 사냥> 같은 책을 읽어 봤는데 소재에 비해 재미가 적었다. 그 이유는 설교적이기도 하고 작가의 소설 서술방식이 '아이의 인권 보호' 등 가치관에 따라 소재를 고르고, 사건을 묵묵히 적어내려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교 같은 것은 부족한 작가에 속한다.  

상,하권 합쳐 총 1500쪽에 이르는 이 대작 역시 설교를 길게 늘어놓은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짧게 압축된다. "부모라고 해서 아이의 인권을 함부로 유린할 권리는 없다". 이 한마디를 위해 세 명의 아이는 기나긴 인생 여정을 살아간다. 작가가 툭-하고 생기를 불어넣은 더미 인형처럼. 부모에게 (다양한 형태로) 학대당하고, 어린 시절 정신병동에 갇혀 생활하고, 그런 과거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결국 성인이 되어 나름의 인생을 살고, 셋이 재회를 하고, 다시 여러가지 사건에 휘말린다.  그 성인이 되어 발생하는 사건들의 인과관계나 추리과정 등이 조금은 부자연스럽다. 인물들이 좀 작위적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뭉클하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다. 안타까움도 느꼈다. 그건 확실히 주제의식이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적절한 부분을 지적한다. 부모의, 아이에 대한 권리는 어디까지인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자기 아이라고 굶겨 죽이거나 때리거나 지속적인 언어 폭력은 일삼거나 하는 부모들도 있는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부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묵묵히 그냥 읽어내려갔다.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책읽기였다. 하지만 그의 문제 제기에는 공감한다. 사족이지만 흔히 사회파 미스테리라고 부르는, 무거운 사회의식에 바탕한 글쓰기라면 덴도 아라타가 아닌 미야베 미유키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더 손에 잡힐 듯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에 재발간된 이 책은 공들여 참 잘 만들었다. 흠이 있다면 겉표지가 얇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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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기억들 Medusa Collection 4
토머스 H. 쿡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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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선의와 악의가 있다. 악의는 끝도 없이 선의를 덮치려고 꿈틀거린다. 사람 속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악의가 자리잡아 자라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밤의 기억들>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걸작이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대단한 책>에서 친구가 추천한 책이라며 언급한 걸 보고 이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심문>을 먼저 읽었다. 그리고 이제야 손에 든 바로 그 <밤의 기억들>의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나는 작가가 구축해놓은 마치 인셉션 같은 가상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의 주인공은 소설가다. 그=폴 그레이브스는 케슬러라는 악당을 뒤쫓는 슬로백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 소설을 쓴다. 첫 장면에서 그는 소설 속 슬로백을 죽이는 엔딩으로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시리즈는 반복되고 악당은 강해지고 형사는 점점 노쇠해진다.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현실에서 그는 혼자 생활한다. 철저히. 그 이유는 책을 읽다보면 드러난다. 과거의 아픔. 무덤처럼 묻어둔 기억. 그런 그에게 리버우드의 어떤 부유한 여성이 50년 전 살인사건의 해결을 의뢰한다. 단, 진짜 사건 해결이 아닌 '소설가로서 그럴 듯한 범인을 창작해 내라'는 주문사항. 탐정이 아닌 소설가에게 사건을 의뢰한 이유는 그것이다. 이 주문이 참으로 흥미롭다. 그는 짐을 싸서 리버우드의 오두막으로 들어가고, 과거 사건의 퍼즐 맞추기에 몰두한다.  

나중에 알게 된 50년 전 살인사건의 진실은 참으로 추악하다. 그 작업은 그의 과거의 기억을 자꾸만 건드리고- 그는 엘리너라는 다른 여성과 사건을 추적하면서 점점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밝혀지는 그의 과거의 진실. 왜 그는 자신의 누나의 죽음에 대해 침묵했는가? 라는 부분이 밝혀지는 대단원. 정말이지, 놀라운 반전이다. 너무나 끔찍한 진실을 담고 있는 그 반전은 인간의 악의에 대해 끝도 없이 반추하게 만든다.  

소설적인 재미도 풍부해서 밤마다 이 책을 조금씩 읽었던 시간은 참 행복했다. 토머스 H. 쿡은 정말 최고의 작가다.

   

 

그러나 그레이브스가 생각해도 슬로백은 이제 중년의 나이였고, 아이도 없이 혼자였다. 무거워져 자꾸 땅으로마 가라앉는 몸뚱이는 살과 피가 그득한 자루에 불과했으며, 정신은 소름 끼치는 장면과 섬뜩한 비명으로 녹초가 된 상태였다. -74쪽

 

 

 

   
  밤이 되면 그레이브스는 이웃 사람들이 집에 드나들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산다는 데 평온함을 느꼈다. (중략)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가까이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가 느끼고 싶은 것은 단지 누군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불침번을 서듯 그를 지켜보고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필요했다. 끔찍한 악마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고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91쪽  
   

 

 

 

"수용소에 있을 때 실험을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느 방에 가면 탁자가 하나만 있다더군요. 엄마와 딸을 서로 마주 보고 앉게 한대요. 각각 의자에 묶은 다음 몸에 전선을 연결하는 거죠. 딸은 한쪽 손을 놀릴 수 있어요. 전기 스위치를 만질 수 있죠. 명령을 내리면 딸은 스위치를 당겨야 해요. 그러면 엄마한테 전기가 흐르죠. 만일 딸이 명령을 거부하면 대신 딸의 몸에 전기가 흘러요. 이게 실험이에요.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딸로 하여금 친엄마에게 어떤 짓을 하게 하는지 보는 거죠." -4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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