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의 비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 배경 단편집. 미미 여사 책 중에는 에도시대 배경 소설들도 많은 까닭에, 책을 사기 전에 시대 배경을 확인하는 건 꼭 필요하다. 북스피어에서 내고 추지나 편집자가 번역했다.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작품의 분위기가 편마다 많이 다르고 그래서인지 호오가 분명히 엇갈린다, 나의 경우에는. 표제작인 '지하도의 비'는 미스터리를 차용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련한 느낌을 주는 연애 스토리여서 흥미로웠다. 돌발적인 범죄에 의해 피폐해진 한 남자와 그를 상대해야 하는 형사반장의 고뇌를 그린 '무쿠로바라'는 전편 중에 가장 뛰어났다. (그런데 결말을 읽고도 이해가 잘 안 된다는 점을 고백하겠다. 묘한 여운을 남기면서 끝나 버린다.) 50대의 나이에 독신으로 죽어간 완벽한 이모의 장례식, 그 와중에 발견되는 남자의 편지 한 통.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여러 사람의 눈으로 보여주는 따뜻한 미스터리 '영원한 승리'.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으스스한 괴담 '결코 보이지 않는다'도 읽고 나면 찡하다.  

나머지 세 편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음-. '불문율'은 왠지 미완성 같고 '혼선'과 '안녕, 기리하라씨'는 좀 너무 농담 같았달까. 아무튼 미미 여사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읽을 만한 단편집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현대 배경 장편이 난 너무 기다려진다.) 

 

 

 

중년에 적당한 몸집, 중키. 하느님이 진흙을 빚어 인간을 만드는 작업에 질렸을 무렵 한 손으로 꾸깃꾸깃 둥그스름하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이목구비다. – 178쪽

 

 

 

 

   
  반장이나 아내는 전선에 너무 가까워서는 안 된다. 작은딸은 금세 한쪽에 붙어 버린다. 큰딸은 전선을 둘러보는 눈과 전선에서 날아오는 불똥을 정면으로 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현명함을 겸비했다. – 203쪽  
   

 

 

 

 

좀 더 젊고 에너지가 있는 남자, 아직 세상에 바닥이란 없고 설령 있더라도 바닥에 돌을 쌓아 올려 어둠의 깊이를 낮출 수 있다고 믿는 남자, 긍겅적인 신념을 지닌 남자만이 하시바를 도울 수 있는 게 아닐까. 반장처럼, 세상에서 가장 희망이 없는 부분을 자꾸만 봐야 하는 업무에 시달리고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뼛속까지 서서히 병들기 시작한 남자가 아니라. – 210쪽

 
   

북스피어 책답게(?) 책날개가 넓어서 사진을 찍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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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의 비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추지나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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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적당한 몸집, 중키. 하느님이 진흙을 빚어 인간을 만드는 작업에 질렸을 무렵 한 손으로 꾸깃꾸깃 둥그스름하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이목구비다.-178쪽

반장이나 아내는 전선에 너무 가까워서는 안 된다. 작은딸은 금세 한쪽에 붙어 버린다. 큰딸은 전선을 둘러보는 눈과 전선에서 날아오는 불똥을 정면으로 받지 않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현명함을 겸비했다.-203쪽

좀 더 젊고 에너지가 있는 남자, 아직 세상에 바닥이란 없고 설령 있더라도 바닥에 돌을 쌓아 올려 어둠의 깊이를 낮출 수 있다고 믿는 남자, 긍겅적인 신념을 지닌 남자만이 하시바를 도울 수 있는 게 아닐까. 반장처럼, 세상에서 가장 희망이 없는 부분을 자꾸만 봐야 하는 업무에 시달리고 거기에서 뿜어져 나온 방사능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뼛속까지 서서히 병들기 시작한 남자가 아니라.-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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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7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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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타케 나나미는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라는 놀라운 데뷔작 이래, 다양한 시리즈로 독자를 공략하고 있다. 그 동안은 <다이도지 케이의 사건 수첩>,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인 <네 탓이야>, <의뢰인은 죽었다> 등의 연작소설들이 국내 출간되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장편소설.

하자키라는 가공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의 첫 권이다. 다음 편으로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가 출간되어 있다. 하자키는 고급 별장지인 가루이지와 옆에 있는 수수한 해변 마을로 그려진다. 여름이면 관광객들이 들어닥쳤다가 사라지는. 이 나름 평화로운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매그놀리아라는 빌라에 사는 주민들이 모두 살인 용의자 선상에 오른다. 그리고 근처 고급주택에 이사온 하드보일드 소설 작가 고다이 부부, 부동산업자인 고다마 부부도 모두 주인공이다. 이 수십 명의 주인공들을 다루는 데 어설프면 소설이 성립될 리 없겠지만, 참으로 인물을 스케치하는 솜씨가 능수능란하다.   

이 작가는 늘 '어떤 사람도 감추고 싶은 비밀(과거, 흠)이 있다'라는 전제하에 작품을 쓰는 것 같다. 이것이 진리이기에 소설 내용은 더욱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사건을 추적하는 수사반장 고마지와 신참형사 히토쓰바시 콤비도 제법 그린 듯 자연스럽다. 황금수프정이라는 매력적인 레스토랑의 묘사도 그렇고, 하드보일드 작가 고다이의 하드보일드스러운(?) 행동도 퍽 흥미로와서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것 같다. 

살인은 일어나지만 그 또한 일상적인 사건 속에 버무려지는 그런 구역, 하자키에 우리는 발을 들여놓았다. 웰컴 투 더 하자키!

   
 

난폭한 운전으로 주차장에 차를 집어넣은 쓰노다 고다이는 술 냄새를 풀풀 뿜어내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주차장 바로 앞에 떨어져 있는 커버 시트를 집어 벤츠에 정성껏 덮으려 하다가 그만뒀다. 내가 왜 이런 시시한 짓을 해야 하는 거야? 나는 당대 최고의 하드보일드 작가야. 그런데 어째서 이런 범부나 할 일을. 범부라고? 차에 시트를 덮는 것이 범부나 할 일인지 어떤지, 하드보일적 행동인지 어떤지, 그는 머릿속으로 고민하면서 흔들흔들 언덕길을 올라갔다.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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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 4 - 고양이는 이사할 때 세수한다 고양이 탐정 쇼타로의 모험 4
시바타 요시키 지음, 권일영 옮김 / 시작 / 2010년 6월
절판


하지만 심술 사나운 동거인은 남자가 애써 고양이를 기를 수 있는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자고 했는데도 그걸 딱 잘라 거절해버렸다.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느냐고 내가 심하게 항의했건만 동거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야옹야옹 하며 내 의견을 이야기했더니 무슨 오해를 했는지 통조림 하나를 따주었다. 나는 그 통조림을 먹다 보니 그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말았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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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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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성탐정이 주인공인 하드보일드 소설은 드물다. 바로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탐정 시리즈가 그 중 하나. 우리나라에는 묘하게도 완결편인 <다크>가 먼저 출간되었고, 이번에 기리노 여사의 데뷔작이자 미로 탐정의 탄생을 알리는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출간된 셈이다. 기리노 여사의 작품들 중에 최고로 꼽는 <아웃>, 그리고 <다크>. 나는 이 작가의 하드보일드한 서술법이, 그런 여자 주인공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작품 초반부에 미로는 아버지가 탐정이고 어머니는 없는 30대 초반 여성으로 묘사된다. 직장은 그만두었고 하는 일은 딱히 없다. 그러던 중 친구 요코의 행방불명을 알게 되고, 요코가 거액을 들고 튄 덕분에 야쿠자로부터 덩달아 의심을 받는다. 1주일 안에 1억엔을 되찾아올 것-이라는 뻔뻔한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응한다. 그 과정에서 요코의 애인 나루세와 같이 행동을 하게 된다. 작품 끝에서 미로는 드디어 탐정 비슷해진다. 

사건을 해결하다보니 그녀는 터프하고 제멋대로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고 사건의 핵심을 향해 잘도 달려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두뇌로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때론 위험에 빠지기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하드보일드 탐정인 것이다. 핏줄은 속일 수 없는 걸까. ㅎㅎ 

요코라는 행방불명된 여성의 캐릭터도 참 오묘하고 멋지다. 그녀의 화사한 매력이 미로의 무덤덤함과 대조되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출세를 위해 어떤 쇼맨십도 마다않는 르포라이터 요코. 그녀 주변에는 시체애호가, 나치주의자 같은 위험 인물이 그득하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돈을 갖고 튄 걸까. 아니면 살해당한 걸까. 이 책을 읽으면 궁금증은 풀리리라. 

<다크>보다는 좀 연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미로의 탄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작품이다. 데뷔작을 이렇게 잘 쓸 수 있다니! 역자 후기에는 기리노 여사가 미스터리 장르을 쓰는 것의 어려움을 도시락 만드는 것에 비유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 장르 규칙에 얽매이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는 것은, 작가의 작품들이 전형적인 장르소설에서 벗어난 것이 많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약간 공감이 가는 게, 본격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좀 갑갑증을 느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점을 벗어난 순수유희로서의 추리물에 대해서는, 뭔가 좀 아쉬울 때가 있다.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출간 리스트

  • 1993년 9월 : 얼굴에 흩날리는 비 
  • 1994년 6월 :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 1995년 10월 : 물의 잠, 재의 꿈 
  • 2000년 6월 : 로즈가든 
  • 2002년 1월 : 다크 
   
 

"기리노 나쓰오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도시락 같은 것이라 체재를 정돈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잡지 인터뷰에 응했는데......(하략)" 이에 대란 기리노 여사의 반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귀한 미스터리를 도시락 따위에 비유했다고 화를 내고 있다. 뭐가 잘못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도시락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5년간 매일 아침 도시락을 쌌다. 지금도 싸고 있다 (중략) 도시락이 어떻다는 것인가. 불평을 하려면 도시락을 싸보고 나서 하기 바란다.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남자는 도시락을 만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407쪽, 역자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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