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이향규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6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3/0707/pimg_7801421013922859.jpg)
⠀
⠀
고백하건대 작년만 해도, 나는 에세이를 찾아 읽지 않았다. 지극히 일상적이며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버무린 글뭉치를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편협한 생각과 편견을 산산조각 낸 작품을 만난다. 바로 백수린님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이 그 책이다. 에세이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었다.
⠀
⠀
이번에 만난 에세이는 '사물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글묶음이다.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 이야기들. 물건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과 기억들을 한데 그러모아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준다.
⠀
⠀
첫 꼭지를 지나 두 번째 꼭지 '팔찌'에 대한 글부터 마음이 찌르르 저려왔다. 세상에 마흔여덟에 파킨슨병 진단이라니!! 남편이 젊은 나이에 노년층 중대질환인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당시 한국에 머물던 가족은 남편의 진단을 계기로 남편의 나라인 '영국'으로 오게 된다. 영국은 국가 보건 서비스로 의료가 전면 무상이고 파킨슨병 환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
⠀
팔찌에는 지원센터 연락처와 '저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팔찌는 대부분의 영국인은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알아서 배려해 준다고 한다. 도심역 플랫폼 또는 대중교통 안 광고판에도 '다른 사람을 재촉하지 마세요. 우리 중 어떤 이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라는 문구가 여러 곳에서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보건 서비스와 너무 비교된다. 그러니 영국으로 갔겠지만.
⠀
⠀
⠀
앞서가는 남편의 어깨와 등을 봤다. 마음속에서 잔물결 같은 것이 일어났다. 이걸 연민이라고 해야 할지, 슬픔이라고 해야 할지,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뒷모습에는 보는 사람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는가 보다 내 마음이 순해지는 것 같았다. 뒷모습은 사람을 관대하게 만든다. _ '자전거' 중에서
⠀
⠀
짝이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에게 등을 보이면서 긴 시간 함께 가는 자전거 여행 같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마지막까지 서로를 지켜줄 사람은 단연 배우자일 것이다. 남편이 앞에서 페달을 밟다가 지치면 내가 앞서 페달을 밟고 내 등에 편히 기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우리보다 조금 더 긴 세월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저자의 일상은 그저 남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겪게 될지도, 더 빨리 또는 조금 더 늦게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일지도.
⠀
⠀
변호사였던 시누이는 자신의 엄마가 병석에 눕자 최사를 하고 간병에 자처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후 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를 돌보며 십 년의 세월을 보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저자는 딸들이 나를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하길 원치 않으며, 아이들에게 자신을 돌보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
질병, 돌봄, 죽음, 노후 불안... 어릴 때 생각도 못 한 일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더 많은 노후준비를 해야 할 텐데, 어찌 둘 다 태평성대인지. 재산을 물려줄 사람도 없으니 주택연금으로 연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
⠀
⠀
⠀
저자의 기억 속에 사물들인 도토리, 편지, 전조등, 자전거, 모자, 등산화, 기차 등에 담긴 이야기들에 마음이 아리기도, 환해지지고 했다. 타향살이 중인 저자에게서 고향에 그리움이 맡아졌다. 타향에서 귀한 김치를 나눔 받으면 도로 여러 사람에게 나눠주는 한국의 정을 과시하며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사람으로부터 위안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
⠀
⠀
⠀
이 글이 당신의 기억을 불러오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_프롤로그
⠀
⠀
이름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사물은 저마다의 기억들로 존재한다. 노래도. 음식도. 이 책에서 내 기억을 길어올려본다. 또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물건을 볼 때 떠올려질는지.
⠀
⠀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사물에대해쓰려했지만 #이향규 #창비교육 #에세이 #일상 #질병 #죽음 #돌봄 #노후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