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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지음 / 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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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작가의 글은 독자의 기대를 늘 배신한다. 제목으로 보나 표지로 보나 '달콤'하거나 '상냥'할 것 같아서 읽어보면 서늘하고 예리한 문장이란 칼날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독자의 마음을 쑤시고 벤다. 


정이현의 신작 <우리가 녹는 온도>도 다르지 않다.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소설과 열 편의 산문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가볍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무겁다 못해 묵직하다. 여행지에서 만나 좋은 감정을 가진 남녀가 생활에 쫓겨 멀어지는 이야기, 아버지와 이혼하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오랜만에 재회한 딸의 이야기, 지하상가에서 휴일도 없이 일하는 남녀가 몸을 누일 단칸방 하나 구하지 못하는 이야기 등등. 귀찮음과 번거로움 대신 멀어짐을 택하는 인간관계, 주머니 사정 때문에 졸아드는 사랑, 낭만이니 여유니 하는 말이 사치와 동의어로 쓰이는 세태를 정이현은 '웃는 얼굴'로 날카롭고 치밀하게 서술한다(특히 부동산에 관한 한 정이현만큼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묘사한 작가가 없다). 


어디서 또 칼날이 날아올까. 두려운 마음을 부여잡고 소설을 읽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무너지고 말았다. 이유 없이 아프다고 찾아온 환자에게 트레이너가 말한다. "제가 하나 마나 한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속이 상할 때는요, 따뜻하고 달콤한 걸 먹으면 도움이 좀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상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잠시 잊을 수 있으니까요.” 이 말이 어쩌면 그렇게 좋던지. 소설을 읽는다고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찬 속에 따뜻하고 달콤한 걸 넣으면 안정이 되듯이, 세파에 흔들릴 때 이런 소설을 읽으면 마음의 중심이 잡히고 삶을 견딜 힘이 생긴다. 이런 힘이 간절해서 나는 소설을, 정이현의 소설을 쭉 읽어왔나 보다. 정이현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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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이야기
니시 카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생각정거장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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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뿐 아니라 이집트, 베네수엘라, 세네갈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전부 맛있을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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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이야기
니시 카나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생각정거장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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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임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음식만 한 화제가 없다. 영화 안 보는 사람 있고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있지만 밥 안 먹는 사람은 없는 까닭이다. 좋아하는 음식, 추억의 간식, 최근에 찾은 맛집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훅 좁혀지고 시간이 금방 흐른다. 다음에는 어디서 무엇을 먹자는 약속까지 정해지면 그날 모임은 성공이다.


<사라바>로 2015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니시 카나코는 음식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이란에서 태어나 이집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저자는 흰쌀과 날달걀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없는 현재의 생활이 무척 소중하다. 이집트 쌀에는 돌이나 벌레가 섞여 있어서 한 번 밥을 지으려면 어머니가 일일이 불순물을 골라내야 했다. 식재료도 신선하지 않아서 날달걀을 먹었다가는 큰 병에 걸릴 수 있었다. 어쩌다 일본에 다녀오는 사람이 있으면 날달걀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저자는 도쿄에 온 뒤로 2년 동안 시부야에 있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관심사는 술보다 음식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일하는 바를 포함해 자매점 두 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 대개 대여섯 명, 많을 때는 열 명 정도의 양을 만들었다. 저자는 니쿠자가(고기감자조림)를 비롯해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맛있어!"라고 칭찬하며 음식을 먹어주었던 동료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지금 나는 소설을 써서 먹고살고 있다. 독자에게 "좋았어요." "재미있어요." 하는 말을 들을 때는 그야말로 꿈을 꾸는 듯 행복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아르바이트할 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맛있어!"하고 눈이 동그래지는 표정을 본 그 '순간'의 '기쁜' 마음은 이길 수 없다. (10쪽) 


책 못지않게 음식을 사랑해서, 소설을 읽다가 음식이 나오는 장면이 있으면 꼭 멈추고, 그 맛이 궁금해 찾아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평소에는 스낵 과자나 아메리칸도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여행을 떠나면 흥분해서 끊임없이 주전부리를 찾는 사람. 라면이든 우동이든 약간 덜 익어서 꼬들꼬들한 면보다는 푹 익다 못해 퉁퉁 퍼진 면을 좋아하는 사람, 오코노미야키와 다코야키를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오사카 사람답다."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아닌 척하는 사람... 


이런 사람의 이야기라면 하염없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책이 너무 짧다.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세네갈의 전통 가정 요리 '쩨부젠'과 베네수엘라의 국민 요리 '파베욘 크리욜로'을 국내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나 찾아보며 다음 책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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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18-01-3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네요
 
삼색고양이 후짱은 아기 돌보미
오타베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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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고양이와 한 집에 산다니. 상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집에 일찍 돌아가고 싶을 것 같지만, 막상 아기든 고양이든 키우는 입장이 되고 보면 마냥 마음이 포근하지도,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도 않을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한때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지, 주변의 아기 키우는 부모들이나 냥집사들(을 비롯한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잘 알겠다. 


그래도 미짱과 후짱처럼 귀여운 아기와 고양이가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유명 블로그 사이트인 '아메바 블로그'에서 고양이 카테고리 1위에 빛나는 인기 블로그 '고양이가 있는 행복'을 책으로 엮은 <삼색 고양이 후짱은 아기 돌보미>를 읽고, 저자 오타베의 딸 미짱과 반려묘 후짱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저자 오타베는 30대 주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남편과 딸 미짱(2살), 고양이 후짱(6살)과 함께 살고 있다. 아기가 있는 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워도 괜찮을까? 저자도 처음에는 걱정했다. 안 그래도 길고양이 출신이라서 낯을 많이 가리는 후짱이 낯선 아기를 보고 겁을 먹지는 않을지, 겁을 먹고는 집을 나가거나 아기를 해치지는 않을지 이래저래 불안했다. 


미짱이 태어나자 모든 걱정과 불안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후짱은 미짱을 보자마자 언제 낯을 가렸냐는 듯이 애교를 부렸고, 행여나 미짱을 할퀼세라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다. 엄마가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후짱이 대신 미짱과 놀아주고, 미짱이 위험에 처하지는 않는지 지켜보기도 한다. 이 정도면 고양이가 아니라 미짱의 어엿한 '언니'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ㅎㅎ 





고양이의 존재는 저자가 독박 육아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저자의 남편은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저자는 하루 종일 집에서 미짱을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했을 터. 그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저자의 곁에 살포시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후짱 덕분에 저자는 힘을 낼 수 있었다(감동 ㅠㅠ). 


미짱 역시 후짱 덕분에 외동딸인데도 외로움을 덜 타고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미짱이 생애 최초로 한 말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 후짱이라고 ㅎㅎ). 아기와 반려동물을 같이 키워도 괜찮을지 궁금한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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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 - 일상을 정갈하게 마음을 고요하게
야마시타 히데코.오노코로 신페이 지음, 이소담 옮김 / 이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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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것만 남기고 모두 버려라.' 한국은 최근에야 정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고 있지만, 일본은 진작에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했고 그전에는 '단샤리'가 정리, 수납 분야를 평정했다.


'끊고[斷], 버리고[捨], 멀리함[離]'을 뜻하는 불교 용어를 정리, 수납 분야에 처음 도입한 인물이 <소중한 것은 모두 일상 속에 있다>의 저자 야마시타 히데코이다. 이 책은 야마시타 히데코가 몸 심리학자 오노코로 신페이와 공저했고, 두 저자가 생활, 물건과 공간, 말, 마음, 관계, 의식, 몸, 부분과 전체, 변화, 진화 등에 관해 각자의 의견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마시타 히데코의 전작 <버리는 즐거움>이 구체적으로 정리, 수납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실용서였다면, 이 책은 정리, 수납에 앞서 자신의 삶의 자세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음공부 책 내지는 잠언집이다. 야마시타 히데코가 불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만큼 불교와 관련된 가르침이 많다. 


의식은 근대에 들어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무의식' 안의 자각적 영역에 '의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음을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무의식과 의식은 연속적입니다. 무의식의 바다에서 추출된 수준 높은 층이 바로 '의식'입니다. 그리고 이 의식 계층을 좀 더 다듬어 순수하게 만들면 '미의식'이 됩니다. 매일 어떤 의식을 지니는가에 따라 미의식이라는 결정체가 만들어집니다. (121쪽)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글은 오노코로 신페이가 쓴 무의식과 의식, 미의식의 관계에 관한 글이다. 무의식, 무자각 상태에서 하는 일들이 의식을 만들고, 의식이 모이고 깎이고 다듬어지면 미의식이 된다. 인간으로 치면 먹거나 잘 때 별 뜻 없이 한 행동들이 습관을 형성하고 일상을 이루고, 그것이 취향이나 인격이 되는 셈이다. 


버리고 정리하는 습관은 무의식을 조정하고 의식을 개선하며 궁극적으로는 미의식을 좋게 만든다. 미의식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오늘 밤엔 방 청소를 하고 자야겠다(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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