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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버린다. 남성 서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체공녀 강주룡>에선 다르다. 주룡은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사랑을 버리는 대신, 사랑을 지키기 위해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길을 택한다.
때는 일제강점기. 스무 살 '과년한' 딸을 치우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부모에 의해 억지로 시집 간 주룡은, 다섯 살 어린 남편 전빈의 해사한 외모에 반해 첫날밤을 치르기도 전에 이렇게 다짐한다. 나이도 많고 박색인 나를 최고로 아껴주는 남편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하리라. 남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시할머니와 시어머니가 때리는 매도 달게 맞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비웃는 소리도 흘려들으리라. 남편이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국가에 살기를 바랍네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을 때에도 주룡은 망설이지 않고 결심한다. 나 또한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국가에 살기를 바라므로 독립을 위해 뭐든 다 하리라고.
결심을 지키기 위해 주룡은 스무 살 갓 넘은 여자의 몸으로 독립군에 들어간다. 수십 명의 장정들도 하지 않는 허드렛일을 하고, 옷 속에 무기를 숨겨 운반하고, 사람을 쏘고 돈을 훔치는 등 갖은 고생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어린 나이에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다. 시댁에선 살인범이라고 신고하고 친정에선 소박맞은 딸년을 거북해 하는 상황. 쫓겨나다시피 고향을 떠난 주룡은 평양에서 공장 노동자로 새 삶을 시작한다. 비록 쥐꼬리만한 급료를 받고 감독에게 매를 맞아가며 일할지언정,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영화를 보고 커피를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번다. 돈을 조금만 더 모으면 '모단 껄'이 될 수도 있다. '모단 껄'이 되어 제 한 몸 재미나게 사는 것이 주룡의 새로운 목표가 된다.
하지만 얼마 후 제 한 몸 재미나게 사는 것조차 주룡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기생이나 학생만이 '모단 껄'이 될 수 있다는 감독의 말에 오랫동안 차게 식어있던 주룡의 심장이 다시 타오른다. 주룡만 '모단 껄'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애를 낳고 몸을 풀기도 전에 공장으로 출근해야 했던 삼이도 '모단 껄'이 될 수 없다.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직해야 했던 옥이도 '모단 껄'이 될 수 없다.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 몫까지 일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노동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어머니도 '모단 껄'이 될 수 없다. 자칭 혁명을 한다는 엘리트 운동가의 아내들도 남편 부양하고 애들 키우느라 '모단 껄'이 될 수 없다. 돈을 벌고 잘 살게 되고, 독립을 하고, 혁명을 해도 여성은 기생 아니고 학생 아니면 '모단 껄'이 될 수 없다면, 자기 마음대로 머리카락도 자를 수 없고 몸치장도 할 수 없다면 과연 무엇을 위한 노동이요, 독립이요, 혁명이란 말인가.
오래전 남편을 지키기 위해 간도로 떠났던 주룡은 마침내 노동자들과 여성들을 구하는 노동 운동가로 변신한다. 긴 허리로 세상을 두루 안아주라고 주룡(周龍)이라 이름 붙여진 그의 사랑은 국가와 민족을 넘어 계층과 세대를 아우른다. 비록 그 자신은 역사에 이름 남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파업을 성공적으로 주도하고도 오랫동안 역사에서 잊혀 있다시피 했지만, 그럼에도 주룡이 자기 한 몸 바쳐 단식하고 농성하고 투쟁하고 저항한 결과는 역사에 아로새겨져 이 땅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 덕을 보고 있다.
농성을 하고 단식을 하고 군화에 짓밟히고 고문을 당해도 주룡의 정신이 멀쩡한 비결은 사랑이다.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사랑. 급료를 덜 주어도 죄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리고 욕해도 죄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죽여도 벌받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인간인데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주룡은 대의를 위해 사랑을 버리는 대신, 이들에 대한 사랑을 지키는 것을 곧 대의로 삼았다. 우리가 1931년 평양 평원 고무 공장 파업을 주동하며 을밀대 지붕에 올라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을 사랑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