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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국의 모리아티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미요시 히카루 그림, 타케우치 요스케 구성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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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셜록 홈즈의 숙적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우국의 모리아티> 1권이 출간되었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으면서 모리아티는 어째서 교수이면서 범죄자라는 두 얼굴을 가지게 되었는지. 셜록 홈즈가 인정할 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범죄에 뛰어들었는지 궁금했던 독자라면 이 만화를 읽어보길 바란다. 





이야기의 배경은 영국이 전 세계를 쥐고 흔드는 패권국으로 군림하던 19세기 말. 런던의 명문가 모리아티 가(家)의 장남 앨버트가 한 소년과 마차를 타고 가고 있다. 앨버트가 친동생처럼 친절하게 대하는 소년의 이름은 제임스. 지금은 앨버트의 허락 하에 상류 계급처럼 옷을 입고 앨버트의 동생인 척하고 있지만, 사실 제임스는 최하층민으로 앨버트와 함부로 말을 섞어서는 안 되고 섞었다가는 매타작을 당한다. 


아니나 다를까. 제임스가 상류 계급처럼 옷을 입고 앨버트의 동생인 척한 것이 들통나서 모리아티 가에서 한바탕 난리가 나고 제임스는 혼쭐이 난다. 그래도 제임스를 모리아티 가의 저택에서 쫓아낼 수 없는 건, 제임스와 제임스의 동생을 모리아티 가의 저택으로 데려온 것이 모리아티 가의 장남이자 차기 당주인 앨버트이기 때문이다. 





앨버트는 1년 전 한 고아원에서 제임스가 아이들을 향해 열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출신이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 상류 계급으로 태어나면 평생 부유하고 존경받으며 살 수 있고, 최하층민으로 태어나면 평생 일해도 내 집 한 번 못 가지고 남에게 굽신거리다가 죽는 사회. 이런 사회를 만든 나쁜 귀족은 없애야 마땅하다. 나쁜 인간을 제거하면 이곳은 이상적인 나라가 될 것이다... 


앨버트는 귀족인데도 제임스의 말이 옳다고 여겼고, 제임스와 제임스의 동생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타락한 세계를 정화시키기 위한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인다. 그리고 얼마 후 일어난 방화 사건과 살인 사건. 앨버트의 '진짜 동생'이 되는 제임스. 그토록 싫어했던 모리아티 가의 일족이 된 제임스는 과연 어떤 일을 벌일까. 다음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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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오타쿠소년☆아사히나 1
나나미 신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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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이 자랑하는 국민 미소년 아이돌 군단 하면 바로 '쟈니스(JOHNNYS)'를 떠올릴 것이다. 쟈니스는 1962년 창업 이래 SMAP, TOKIO, 킨키키즈, V6, 아라시, 칸쟈니, 헤이세이점프 등 수많은 남성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켰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친구들이 신화나 클릭비 같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할 때, 나는 동생의 소개로 쟈니스를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덕질을 하고 있다.


'쟈단계(쟈니스 다단계)' 이력도 나름 화려하다. KAT-TUN으로 시작해(아카메의 전설을 아시나요) V6, 칸쟈니를 거쳐 2010년부터 현재까지 SMAP을 좋아하고 있다(SMAP은 영원합니다). (나를 이 수렁에 빠트린 장본인인) 동생도 쟈덕이라서 동생이 파는 그룹도 웬만큼 안다(참고로 제 동생은 지금 섹시존을 팝니다). 





'이 만화 혹시 제가 그렸나요... ?' 나나미 신고의 만화 <J오타쿠 소년☆아사히나>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이다. 주인공은 잘생기고 키도 크고 두뇌 명석, 스포츠 만능인 우등생 아사히나. 동급생 여자아이 아오바 와카나는 남몰래 아사히나를 짝사랑하고 있는데, 실은 이 아사히나가 엄청난 아이돌 덕후다. 그것도 여성 아이돌이 아니라 자신과 동성인 남성 아이돌! 그룹으로 모자라 회사 전체! 


아사히나는 일본이 자랑하는 국민 미소년 아이돌 군단 조커스의 광팬인데, 이거 누가 봐도 쟈니스잖아요(또르르)... 니시키는 아라시, 나니조커는 칸쟈니, TAI!SHOW!JACK는 HEY!SAY!JUMP, EAST는 JOHNNYS WEST, EFG-X는 ABC-Z, Safety Dome은 Sexy Zone, MUSE는 NEWS ㅋㅋㅋ 심지어 쟈니스 아이돌이 총출동하는 아이돌 잡지 MYOJO, 포로로, POTATO, WINK UP, DUET도 이름이 바뀌어서 나오고, 쟈니스 아이돌이 나오는 프로그램도 역시 이름이 바뀌어서 나온다. 쟈덕이라면 만화에 나오는 이름들의 진짜 이름을 알아맞히는 재미가 쏠쏠할 듯. 





이 밖에도 쟈덕이라면 대공감할 포인트가 아주 많다. 좋아하는 멤버가 나오는 콘서트 당일, 멤버 컬러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코디네이트하고, 멤버의 얼굴이 박힌 부채(우치와)를 들고 비장한 표정으로 콘서트 장으로 가기. 이거 다들 해봤거나 해보고 싶잖아요(저는 안 해봤습니다;;;). 


일반인들과 노래방에 갈 때는 눈치 보느라 아이돌 노래 선곡 못 하지만, 아이돌 팬끼리 노래방에 갈 때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이돌 노래 부르는 건 쟈니스 팬뿐만 아니라 아이돌 팬이라면 다들 공감할 듯(이건 저도 해봤습니다). 아이돌 팬끼리 노래방에 가면 일반인이 알 턱도 없는 마니아틱한 노래를 부른다는데, 그 노래가 왜 하필 <키친 타월 맨>인가요... 이거 누가 봐도 SMAP의 <토일렛 페퍼 맨>이잖아요 ㅋㅋㅋ 





일본의 대형 음반 매장에 가면 반드시 있는 쟈니스 전용 코너, 전 세계 쟈니스 팬의 성지인 하라주쿠 쟈니스 숍, 여러 쟈니스 그룹이 이미지 캐릭터를 맡은 바 있는 배구 대회 관련 에피소드 등 쟈니스 팬이라면 무한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가 줄줄이 나온다(작가님 몇 년차 쟈덕이세요... 담당은 뉘신지...). 


아사히나가 다니는 고등학교의 국어교사 미나미 미츠카, 일명 밋짱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밋짱은 겉보기엔 신뢰감 넘치는 고교 교사이자 능력 있는 20대 커리어 우먼인데, 실상은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중인 중증의 J 오타쿠. 커밍아웃은 엄두도 낼 수 없다. 일코 따위 하지 않는 아사히나와 일코에 목숨을 거는 밋짱의 모습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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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박스 세트 - 전5권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이가라시 유미코 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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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을 한껏 즐길 거예요.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잖아요." 1908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의 친구가 된 소녀 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빨강머리 앤>이 애장판 만화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애장판은 <캔디 캔디>의 작가 이가라시 유미코가 작화를 맡아 기존의 <빨강머리 앤>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을 전한다. 이가라시 유미코 특유의 우아하고 화려한 그림체가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앤의 눈에 비친 세상을 더욱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이번에 출간된 애장판은 총 다섯 권이다. 애장판 다섯 권은 <빨강머리 앤 박스 세트>라는 이름의 박스판으로도 판매 중이다. <빨강머리 앤 박스 세트>는 <빨강머리 앤> PART 1~3권과 4권 <앤의 청춘>, 5권 <앤의 사랑>으로 구성된다. 애장판 다섯 권 외에 그린 게이블의 봄을 전하는 은은한 향이 담긴 향낭이 초판한정 부록으로 제공된다. 






원작 소설 시리즈는 전체 열 권으로, 이 중에 앤의 생애를 다룬 것이 여덟 권, 외전이 두 권이다. <빨강머리 앤> PART 1~3권은 앤 시리즈의 대표격인 <빨강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가 원작이고, 고아인 앤이 에이번리 섬의 초록색 지붕집에 오고 나서 '마음의 친구' 다이애나를 사귀고 훗날 반려가 되는 길버트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앤의 청춘>은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에이번리 섬을 떠났던 앤이 매슈가 죽고 나서 적적해 하는 마릴라를 걱정해 에이번리 섬으로 돌아와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다(이 부분에 해당하는 소설 제목은 <에이번리의 앤>). <앤의 사랑>은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한 앤이 길버트 외의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이 부분에 해당하는 소설 제목은 <레드먼드의 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이 만화의 장점 첫 번째는 앤이 묘사하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이가라시 유미코의 화려한 그림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상하길 좋아하는 앤은 평범한 가로수길도 '환희의 하얀 길'이라고 부르고, 보잘 것 없는 연못도 '빛나는 호수'라고 이름 짓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마법처럼 평범했던 풍경이 색다르게 보이고 전에는 없었던 빛을 발한다. 이런 장면들을 그림으로 볼 수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 


원작의 명장면을 다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빨강머리 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앤이 길버트에게 화가 난 나머지 길버트의 머리를 석판으로 내리치는 장면인데, 이가라시 유미코 특유의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그림으로 보니 장면의 충격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석판으로 내리쳤는데 석판이 깨지다니... 길버트 머리는 石머리??).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이 만화의 장점 두 번째는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은 우정을 과시했던 앤과 다이애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빨강 머리와 주근깨, 빼빼 마른 몸이 너무 싫어서 검은 머리의 귀엽고 통통한 여자아이가 되길 간절히 소망했던 앤은 다이애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마음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착한 다이애나는 무조건 승낙한다. 


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다이애나는 얼마 후 큰 사고를 치는데, 그것은 바로 앤이 포도주인 줄 모르고 건네준 딸기 주스를 한 병 다 마시고 쓰러지는 바람에 앤이 다이애나 엄마의 미움을 사게 만든 것이다. 앤이 떠드는 동안 다이애나가 "딸기 주스가 이렇게 맛있었나?"라고 혼잣말하며 직접 포도주를 따라 마시는 모습을 다이애나 엄마가 봤어야 되는데 ㅋㅋㅋ 댁의 따님이 10대 초반에 술맛을 스스로 깨쳤습니다 ㅋㅋㅋ 





이 만화의 장점 세 번째는 대다수의 독자들이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앤이 어른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빨강머리 앤> 그 이후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소설로는 <빨강머리 앤>과 <에이번리의 앤>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에이번리 섬을 떠난 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못하다가 만화 <앤의 사랑>을 보고 그다음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한 앤은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되는데 보내는 원고마다 번번이 퇴짜 맞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앤이 원고를 보낸 적 없는 출판사에서 상금을 보내오는데, 알고 보니 다이애나가 앤의 원고 일부를 살짝 바꿔 투고했던 것이다(다이애나가 현대에 태어났으면 마케터나 홍보 전문가로 성공했을 것 같다 ㅋㅋㅋ). 


앤은 또한 대학에서 필리파 고든이라는 새 친구를 사귀고 로이 가드너라는 새 연인을 맞는다. 필리파 고든은 첫인상이 별로였지만 알고 보니 착하고 속정도 깊은 친구였고, 로이 가드너는 첫 만남부터 앤을 사로잡았지만 알고 보니 앤에 대한 사랑이 별로 깊지 않은 남자였다. 결국 앤은 길버트만이 자신의 진짜 사랑임을 깨닫는데, 그렇다고 해서 앤과 길버트가 맺어지는 건 아니다(대체 언제쯤 ㅠㅠ). 





<빨강머리 앤>을 비롯해 <플란다스의 개>, <톰 소여의 모험>, <소공녀 세라>,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등 해외 아동문학이 원작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 <세계명작극장>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벤트가 있다. 용산역 아이파크몰 팝콘D스퀘어에서 열리는 <세계명작극장전>이다. 지난 주말에 다녀왔는데 추억의 만화를 오랜만에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등의 원화도 볼 수 있고,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역대 만화도 알 수 있어 좋았다. <빨강머리 앤>의 초반에 잠깐 언급되는 앤의 어린 시절을 길게 쓴 소설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꼬꼬마 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조만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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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04-0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이 길버트를 좋아하기는 해도 그런 마음을 잘 모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도 나중에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살지요 예전에 소설 다 보기는 했는데 그때 앤이 조금 좋아한 다른 사람이 있었는지 그건 생각 안 나요 드라마에는 그런 모습이 있기도 하지만(그것도 아이가 있는 사람)... 거기에는 원작에 없는 것도 나오더군요 길버트가 전쟁에 나가고 앤이 찾아나서는... 앤은 간호사로 가고 길버트 만납니다 그건 예전에 EBS에서 봤습니다 소설에서는 앤 아들이 전쟁에 갔다 돌아와요 그 부분에서 감동스러운 건 아들을 기다리는 게 개라는 거예요 역에서... 개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 같아요

예전에 드라마를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찾아보니 그건 나오지 않고, 2017년에 만든 드라마가 나오는군요


희선

키치 2018-04-03 07:30   좋아요 0 | URL
저는 소설은 <에이번리의 앤>까지밖에 읽지 않았는데 이 만화 시리즈 중에 <앤의 사랑>을 보니까 앤이 대학에서 로이 가드너라는 멋진 남자를 사귀었더라고요. 앤이 길버트하고만 사귄 줄 알았는데, 길버트 말고 다른 남자도 만난 적 있고 여러 경험 끝에 최종적으로 택한 남자가 길버트란 걸 알고 나니 앤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실 전 이 작품 볼 때 앤이 만나는 남자들보다도 앤의 성장에 많은 자극을 주는 여자 캐릭터들이 흥미롭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멋있고 당당한 여자들을 잘 골라서 만나는지 ㅎㅎ 말씀하신 전쟁 시기의 앤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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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의 신간이다. 학문과 글쓰기에만 조예가 깊은 줄 알았더니, 어린 시절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에서 음량을 음소거에 가깝게 해놓고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를 본 시네마 키드라고. 그때부터 영화는 무조건 혼자서 보는 게 습관이 되었고, 영화를 보고 나면 가급적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바로 집에 돌아와 감상을 글로 적었다. 덕분에 영화에 관한 글이 엄청나게 쌓였고, 그중 28편을 갈무리해 만든 책이 <혼자서 본 영화>다. 


역사학자는 역사 영화만 보고 과학자는 과학 영화만 보라는 법 없듯이, 여성학자인 저자 또한 이른바 '여성 영화'만 보는 건 아니다. <디 아워스>, <문 라이트>, <타인의 삶>, <밀양> 같은 여성주의, 평화, 인권 연구자로서 당연히 봐야 할 법한 영화도 보지만 <맘마 미아!>, <외출>, <YMCA 야구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웰컴 투 동막골>, <머니볼> 같은 대중 영화도 보고,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같은 이른바 '알탕 영화'도 본다. 


여성학자이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일반 관객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장면을 눈여겨보거나, 일반 평론가들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같은 영화는 북한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라서 특별한 게 아니라 '한국 영화의 주요 소비 계층인 20~30대 여성과 북한 남성의 가상 로맨스'라는 점이 특별하다. 이는 남한 남성에게 실망한 남한 여성이 정우성, 강동원, 공유, 현빈 등이 연기하는 북한 남성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게 하는, '북한 남성을 대상화'하는 영화들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대한 해석도 재미있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여성 상사가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여성 비서에게 시키는 일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남성 상사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시키는 일이다(옷 가져와라, 커피 사와라, 자식 뒷바라지하라 등등). 여성 리더들은 '아내'가 없기 때문에 비서에게 아내 역할을 대신 수행하게 한다. "여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성공이, 남성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봤는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도 이렇게 섬세하게 영화를 보고 느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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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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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의 2017년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아몬드>가 선천적인 이유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일반적이지 않은' 소년의 이야기라면, <서른의 반격>은 별 볼 일 없는 대학을 나와 별 볼 일 없는 직장에서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보내는 '일반적인'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1988년생 김지혜. DM 그룹 산하의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직업도 다르지만 지혜의 일상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나 역시 아카데미 비슷한 교육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지혜처럼 교육 프로그램 기획이나 마케팅 업무를 배우길 기대하고 인턴으로 들어갔지만, 막상 출근하면 수강생들 오기 전에 책상과 의자 정리하고 칠판 닦고 정수기 물통 채워놓고. 직원들 식사 주문하고 스타킹, 담배 심부름하러 뛰어다니다가 결국 반 년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


의자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지혜의 말이 어찌나 내 마음 같던지. 다만 지혜에게는 동갑내기 신입 인턴 규옥과 무명 시나리오 작가 무인,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남은이 있고, 지혜는 이들과 손잡고 부당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사소한 '반격'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1년이 가도록 소식이 없는 상사의 책상에 장난 쪽지를 놓는 것이다. '방귀 좀 뀌지 마. 트림할 때 입 좀 다물어. 머리는 화장실 가서 긁어. 이 가엾은 돼지님아!' 


어찌 보면 유치하다 못해 치졸하게 느껴지는 장난인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다. 내친김에 지혜와 동지들은 또 다른 반격을 시도하고, 이런 식으로 지혜는 답답한 일상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반격이라고 하기에는 강도가 약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조차도 상상해본 적 없는 (쫄보인) 나로서는 지혜와 동지들의 반격이 그저 용감해 보일 뿐이다. 그나저나 나이 먹고 '방귀 좀 뀌지 마. 트림할 때 입 좀 다물어. 머리는 화장실 가서 긁어. 이 가엾은 돼지님아!' 이런 쪽지를 받는 어른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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