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 - 지구상 가장 찬란했던 진화와 멸종의 연대기
스티브 브루사테 지음, 양병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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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지구를 장악했던 공룡이 순식간에 멸종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어쩌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도 공룡처럼 지구에서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하다. 대체 공룡들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사라졌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영국의 고생물학자 스티브 브루사테의 책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를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청년기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고생물학자로서 지구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공룡 화석을 채집하고 공룡의 탄생과 멸종을 연구한 과정을 담고 있다. 내용은 공룡의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루지만 형식이나 문장은 여행기 내지는 관찰기 같아서, 나처럼 공룡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어느 공룡 덕후의 탐사 일지를 읽는 기분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그냥 '공룡의 역사'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인 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세대 과학자들이 엄청난 수의 공룡 화석을 수집해 그동안의 공룡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참히 깨버렸기 때문이다. 공룡은 원래부터 몸집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다. 공룡의 조상으로 짐작되는 동물은 지금의 고양이만큼 작았다. 공룡이 그렇게 커진 이유는 지구의 높아진 온도에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더위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공룡은 효율적인 폐, 기다란 목, 골격 경량화 시스템, 신체를 냉각하는 기낭 등을 갖추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룡을 아주 잠시 지구상에 군림하다 순식간에 사라진 비운의 동물로 여기는데, 실제로 공룡이 지구에 있었던 기간은 약 1억 5천만 년 정도로 추정된다. 물론 엄밀한 의미의 공룡 시대는 쥐라기이며, 최초의 진정한 공룡은 쥐라기가 시작되기 3000만 년 전에야 등장했다. 하지만 단순히 생각해도, 고양이만했던 공룡 조상이 코끼리보다 몇 배는 더 큰 공룡만큼 커지는 데 얼마나 긴 세월이 소요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공룡을 비운의 동물로 기억하는 이유는 극적인 멸종 탓이 크다. 대체 공룡이 멸망한 이유는 뭘까. 저자에 따르면 답은 소행성 충돌이다. 직경 10킬로미터, 에베레스트산 정도의 크기인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오늘날 멕시코의 유카탄반도를 강타했다. 그 결과 엄청난 충격파가 삽시간에 지구에 퍼졌고, 그 피해는 인류가 경험한 그 어떤 지진이나 쓰나미보다도 훨씬 컸다. 충돌로 일어난 먼지, 흙, 재 등이 하늘로 솟구쳐 대기를 가렸고, 지구의 기온이 급격히 상승해 엄청난 규모의 화재가 일어났다. 만약 인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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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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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문이든 시작은 철학이고 끝도 철학이다. 철학과 아주 멀어 보이는 과학 분야조차도 맨 처음에는 우주의 원리와 생명의 발단을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틸리 서양철학사>이다. 이 책을 지은 프랭크 틸리(1865~1934)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를 역임했다. 틸리의 대표작인 <서양철학사>는 1914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20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의 각 대학 철학과에서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교과서'답게, 이 책은 서양철학사의 발전 과정과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사상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서양철학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해, 소피스트의 시대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위대한 사상가들의 시대, 중세에 등장한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주의, 스콜라주의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르네상스의 철학 경향과 근대 철학의 시작,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 독일의 합리론과 관념론, 헤겔 이후의 독일 철학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배울 것이 이토록 많은 시대에 굳이 어려운 서양의 철학을 배워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말한다. 총명한 사람은 결국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사람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삶이 끝나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고 번민하게 된다. 이때 길잡이가 되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내가 지금 하는 고민들 중에는 옛사람들이 먼저 한 고민들도 많다.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나보다 먼저 삶을 경험한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고민한 끝에 얻은 답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철학자 또는 철학 사조에 동의하는지 생각해봤다. 처음 철학을 배운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 성향이 에피쿠로스 학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쾌락이라는 자기 본능을 추구하는 존재다. 틈만 나면 놀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은 것은 인간다운 본능의 발현이다. 하지만 방종과 자기 탐닉만이 인간이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인간이 쾌락을 느끼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놀고 싶고, 먹고 싶고, 자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며 열심히 공부했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지금의 나는 실존주의에 관심이 있다. 실존주의하면 떠오르는 철학자는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이다. 사르트르는 실존보다 본질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유신론적 이론을 뒤집고, 본질보다 실존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무신론적 존재론을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는 아무리 그래도 현대의 인간이 자기 자신의 안위보다 신을 중시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고, 종교를 지키기 위해 공동체의 안위는 물론 자신의 안위까지 져버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새삼 사르트르가 얼마나 전위적인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정치학 전공자로서는 루소와 칸트 등을 다룬 부분이 흥미롭게 읽혔다. 정치학은 권력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인 동시에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태도, 인간의 권력 추구 성향을 다루는 학문 분야이기도 하다. 루소는 인간이 본래 선하고 흠이 없다고 봤다. 인간은 원래 선하므로, 선한 인간이 직접 통치를 하면 자연히 좋은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칸트 역시 이상주의자였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에 기반해 판단한다고 봤다. 과연 그런가.


나는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 역시 본능에 기반하며 결국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무엇을 쾌락으로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가 공감한 에피쿠로스 학파 역시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있고, 무엇을 쾌락으로 삼고 사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했다. 어떤 정치인은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쾌락으로 느낄 것이고, 어떤 정치인은 나만 잘 사는 사회를 쾌락으로 느낄 것이다. 그러한 차이가 왜,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는 인간을 더욱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책을 몇 번은 더 반복해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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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취업 2020-06-24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은 그 쾌락이 아니잖아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키치 2020-06-24 19: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청년취업 님!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쾌락이라는 개념을 인정하되 궁극적으로는 쾌락 중에서도 ‘아타락시아‘를 추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 글에서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추구한 좁은 개념의 쾌락(=아타락시아)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넓은 개념의 쾌락이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학창 시절의 저는 쾌락이란 마음 가는 대로 먹고 자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 쾌락의 정의가 그것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에피쿠로스학파가 추구하는) 높은 차원의 쾌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위 글에서 그러한 깨달음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잘 전해지지 못한 것 같네요.

저의 공부가 짧고 제가 쓰는 글에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 정진하겠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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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책이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재미있게 읽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입했는데, 읽으려고 보니 표지에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 '논어 에세이'라고 쓰여 있어서 잠시 낭패감을 느꼈다(21세기에 <논어>라니! 이걸 읽어 말아?). 1분 정도 고민하고 결국 읽기로 한 건, 저자에 대한 신뢰 때문인데(김영민 교수가 쓴 책이 웃기지 않을 리 없어!), 결론적으로 이는 매우 옳은 판단이었다. 책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저자도 <논어> 읽기가 현대인들에게 무슨 의미인지, 어떤 효용을 지니는지 많이 고민한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 또한 <논어>가 아무리 대단한 고전이라고 해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현대인들이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음을 인정한다. ("<논어>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 11쪽) 다만 <논어>가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고, 어떤 계층 또는 사람들에 의해 필수 고전으로 인정받고 연구되어 왔으며, 그러한 목적 또는 의도는 무엇인지 등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말한다. 즉, <논어> 읽기를 통해 텍스트를 이용해 콘텍스트를 읽는, 텍스트 정밀 독해 기법을 배우라는 것이다.


책에는 <논어>에 나오는 주요 문장들에 관한 해석을 비롯해 공자와 그의 제자들,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특징, 공자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시각 차이, 공자 이후 유학의 변화 등 <논어>와 공자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공자 하면 완전무결한 성인(聖人)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상 공자는 성인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출세와 권력에 대한 집착도 상당했고, 제자들에 대한 차별과 비난도 서슴지 않았으며, 남에게 당하면 참지 않고 똑같이 갚아줬다. 공자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누군가 공자에게 "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떨까요?"라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그럼 덕은 무엇으로 갚으려고?" (93쪽)


흠결이 없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제자들이 공자를 따랐던 이유는 뭘까. 저자는 그러한 흠결이야말로 공자라는 인물의 매력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완전무결한 사람보다 약간의 흠결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일이 잘 풀리는 사람을 보면 열등감을 가지고,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젊은이들도 날고 기는 사람들보다는 나름 똑똑하고 성격도 괜찮은데 왠지 모르게 출세를 못하는 공자의 처지에 더 공감하고 열광했다. 조선 시대 때 중앙 권력에서 배제된 지방 사림들이 유학을 숭상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영민 교수가 쓴 책이 웃기지 않을 리 없'다는 예상대로 책 곳곳에 유머와 위트가 녹아 있어서 어렵다, 지겹다는 생각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학부 때 동양의 정치사상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것이 늘 가슴 한편에 아쉬움과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감정이 다소 덜어졌다. 이 책을 시작으로 총 4부에 걸쳐 논어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나올 세 권의 책도 모두 구입해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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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권리 - 이유 없이 상처받지 않는 삶
일레인 N. 아론 지음, 고빛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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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은 누구일까? 부모? 형제? 상사? 애인? 친구? 베스트셀러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일레인 N. 아론의 책 <사랑받을 권리>에 따르면, 나를 못살게 괴롭히는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면 "왜?"라고 생각하고, 걸핏하면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끼고,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힘들 거야.", "내 주제에 무슨..."이라며 포기하는 주체는 결국 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못난 나'라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소개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대체로 심리적인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면 된다. 패배나 좌절 후에 따라오는 수치심이나 굴욕감은 신체적 고통과 동일한 수준의 상처를 뇌에 남긴다. 자라면서 부모나 형제, 친구나 애인으로부터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이나 학교나 직장, 사회에서 겪은 패배나 좌절 등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못난 나'를 상기시키고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막는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실제보다 더욱 못난 사람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예를 들면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아예 시험을 보지 않는다거나, 성적이 낮은 건 교수님 때문이라고 남 탓을 한다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싫어서 고생을 자처한다거나, 인정 욕구가 지나쳐서 과도하게 성취하려고 한다거나, 초라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허세를 부린다거나, 열등감을 자극하는 사람을 혐오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책에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내면의 비판자'를 길들이는 방법도 나온다. 내면의 비판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는 순종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반론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발표를 한 후 머릿속에 '발표를 망친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보자. 내면의 비판자가 "네가 그러면 그렇지.", "너는 잘 하는 게 없구나.", "회사에서 잘리겠다." 같은 말을 하면, 지지 않고 열심히 다른 장점들을 언급하자. "그래도 저번 발표보다는 나았어.", "피피티는 잘 만든 것 같은데.", "설마 이것 때문에 회사에서 잘리겠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책에는 방어 기제가 심했던 사람이 저자에게 심리 상담을 받고 적극적 상상 기법을 이용해 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례가 나온다. 적극적 상상 기법이란 심리학자 칼 융이 개발한 것으로, 무의식에 살고 있는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의 자아를 불러내 대화를 나누고 친해지면서 종국에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적극적 상상 기법을 연습하다 보면 트라우마가 남게 된 상황과 그때 느꼈던 감정을 돌아보게 되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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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 돌베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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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2017년까지 <뉴욕타임스>의 서평을 담당한 미치코 가쿠타니의 책이다. 전부터 미치코 가쿠타니의 서평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주로 미국 문학을 평론하고 영어로 쓰여있다 보니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미치코 가쿠타니의 신간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정통 문학 평론이 아니라 정치, 사회 평론인 점은 아쉽지만, 우리말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재 미국 사회 전역에 거짓말과 가짜 뉴스, 반지성주의, 혐오 등이 판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고 지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일삼고, 우파 언론과 손잡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며, 고등 교육을 받은 엘리트를 조롱하고, 여성, 소수자, 이민자,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믿음이 팽배해졌고, 그 결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 부합하는 의견만을 취사선택하며 극단주의로 향하고 설명한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에 비로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로 통칭되는 상대주의, 해체주의, 주관주의, 반이성주의 등의 흐름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트럼프라는 괴물이 탄생했으며 점점 그 흐름이 강해지고 있고 있다고 분석한다.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의 작가들이 만들어낸 다중시점, 신뢰할 수 없는 화자, 뒤엉킨 이야기 구성 등의 장치는 오늘날 줄리언 반스, 길리언 플린, 로런 그로프, 돈 드릴로 같은 현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어디에도 진실이나 정의는 없고, 삶은 그저 허무하고 무의미하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퍼져 있다. 저자는 미셸 우엘벡의 소설과 영화 <파이트클럽>,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HBO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 등을 예로 든다.


이 책의 해제는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썼다. 정희진은 미치코 가쿠타니의 관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도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린다는 사실에 열광하며 그를 '욕망한다'. "모두가 트럼프가 되기 전에"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정희진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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