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새 책 <에디톨로지>를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이제까지 공부라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서 책 읽고 문제 푸는 게 전부였지만, 오늘날의 공부는 다르다. 학교 밖에서, 책 이외의 매체를 통해 공부할 수 있고, 문제 풀고 시험 보면 공부 끝, 이 아니라 공부한 내용을 현실에서 활용하는 방법까지 체득해야 공부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늘고 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학자들의 활동이 학계 내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TV, 신문, 책, 잡지는 물론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학자들이 많다. 어느 대학 교수 또는 강사라는 '간판' 없이 활동하는 학자들도 자주 본다. 그러니 이제 공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 읽고 시험 보는 공부라면 몰라도 내 이름 걸고 상품으로서 팔 수 있는 경지의 공부는 웬만한 노력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디톨로지>의 메시지도 같은 맥락이다. 에디톨로지의 뜻을 찾아봤더니 세상 모든 것들을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편집의 방법론, 즉 '편집학'이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 발명이랍시고 나오는 것들도 뜯어보고 파헤쳐 보면 원래 있던 것들을 접붙이거나 조금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지식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지식 또한 기존 지식을 편집해서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을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저자도 책에 짧게 언급하지만,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예다. 살아있는 동안 그가 편집한 것은 기존 제품, 타인의 기술, 경영학, 인문학, 디자인, 캘리그라피, 프레젠테이션, 검은 목폴라티 등등 수없이 많다. 물론 다른 CEO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기존 제품을 개량하고 타인의 기술을 이용하고 여러 학문을 접목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고 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그는 그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훌륭하게 편집했고, 디자인, 캘리그라피, 프레젠테이션 등 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과 접목하거나 재창조하는 일을 탁월하게 해냈다.
저자 김정운 역시 모범이 되는 사례다. 그는 전공인 심리학을 문화와 접목한 문화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동시에 미술, 음악,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조예를 책으로 풀어쓰고, 한국과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나라의 문화를 비교하는 글을 쓰는 작가다. 최고는 삶과 학문을 접목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구분하고 섞지 않는 데 반해, 김정운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같은 파격적인 제목의 책도 서슴지 않고 쓰고, TV 프로그램에 초대되면 2:8 가르마 머리와 양복 대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파마머리와 가쿠란 패션을 선보이며, 유머러스하고 때론 선정적인 토크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의 저자답게 열심히 놀다가 아예 교수를 그만두고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화를 배우고 있다는 근황도 저자답다. 저만치 따로 놀던 공부와 놀이, 일과 생활, 학문과 취미를 섞으니 이렇게 재미있는 인생이 되고 훌륭한 책이 나온다. 책에 나온 말 중에 '텍스트는 콘텍스트에서 생성된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저자의 콘텍스트가 재미있으니 이런 재미있는 책이 나온다. 한때 연구실에 쳐박혀 공부나 할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고,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앞으로 나의 콘텍스트는 무엇일까,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