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
김용석 지음 / 멘토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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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고전문학 읽기 매뉴얼>도 아니고 <고전문학 '읽은 척' 매뉴얼>이다. 책 소개를 보니 '누군가에게 잘 알지 못하는 인문 고전 얘기로 불의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의 가녀린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호신용 서적', 심지어는 '고전이 얼마나 재밌는가를 은하계에서 가장 재밌게 설명하는 고전 안내서'란다. 연평균 성인 독서량이 10권 미만이고,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오타쿠 보듯 하는 나라에서 책 안 읽은 게 정말 흉이 될까 싶지만, 아는 척, 있는 척, 배운 척 하는 사람이 태반이니 안 읽은 책을 읽은 척 하는 사람도 많을 터.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이 구원이 되면 좋으련만, 내 생각엔 조금 힘들 것 같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이 책은 <죄와 벌>, <자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덴의 동쪽>,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농담>, <1984> 등 제목만 들어도 한숨이 나오고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고전문학 열세 편을 웃겨서 배를 잡고 구를 정도로 재미있게 소개한다(그 중에서도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감동적이며 다소 야하기까지 한 <에덴의 동쪽> 편을 강추한다 ㅎㅎ).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어디 가서 읽은 척 하라고 만든 매뉴얼답게 소설의 줄거리와 작가,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한 소개는 물론 저자만의 해석도 빼놓지 않았다. 저자는 훌륭한 고전은 대개 특정 이념이나 사상을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인간을 묘사하는 문학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다른 소설은 몰라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1984>만큼은 이념성이 농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해석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도 야하다는 말만 듣고 안 읽으려고 했는데 읽고 싶어졌다. 주인공 멜러즈가 무려 조르바와 비슷하다고!



한 편의 글에서 한 권의 책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권의 책을 언급하며 비교한 점도 좋았다. <이방인>과 <죄와 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연결되고, <그리스인 조르바>가 다시 <이방인>, <자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연결되고, 다시 <그리스인 조르바>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연결되고, 카인과 아벨로 <에덴의 동쪽>과 <목로주점>이 연결되는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대체 난 뭘 읽었던 걸까?이 책에 소개된 작품 열세 편 중에 여덟 편을 읽었는데 전부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은 나도 이런데 읽지 않은 사람들은 책에 소개된 작품을 읽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저자의 독서력과 필력이 대단하다. 다른 글도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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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모든 것
레오 보만스 엮음, 민영진 옮김 / 흐름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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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생 '사랑'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을까. 연인, 배우자, 친구, 가족에게서는 물론, 영화, 드라마, 가요 등을 통해 듣는 경우까지 합하면 그 수가 엄청날 것이다. 그럼에도 질리거나 지치지 않고 사랑을 갈구하는 건 우리 삶에 사랑이 넘치기 때문일까, 부족하기 때문일까. 전작 <세상 모든 행복>에서 전세계 학자들에게 행복의 정의를 물은 바 있는 레오 보만스가 이번엔 100명의 전문가에게 사랑에 대해 물었다. 책의 제목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심리학, 신경학, 경제학, 인류학 등 각기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사랑은 몰라도 사랑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만큼은 넘치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 책의 학자들은 사랑의 형태를 연인 간의 사랑이나 부부 간의 사랑 같은 이성 간의 에로스에 기반한 사랑에 한정하지 않았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동성 간의 사랑, 심지어는 동물들의 사랑, 외계인의 사랑까지 폭넓게 연구해, 사랑이라고 해서 남녀 간의 사랑부터 떠올린 나를 반성케 했다. 해석도 다양하다. 어떤 학자는 사랑이 강박장애와 유사한 생화학적 이상 현상이라고 정의했는가 하면, 어떤 학자는 성적 욕망에 불과하다, 또 어떤 학자는 서구가 비서구 사회를 문명화하기 위해 주입시킨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아무리 똑똑한 학자들도 사랑을 하나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좋은 짝의 정의도 천차만별이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 좋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뭐, 사랑만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도 없으니 학자들이라고 별 수 없을 수밖에.


어쩌면 '별 수 없'는데도 알고 싶어하는 학자들의 마음이야말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 학자들이 학문에 대해 알고 싶어서 밤낮으로 연구하는 마음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마음과 꼭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보니 모든 학문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철학은 영어로 'philosophy', '앎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이다. '앎에 대한 사랑'의 앞뒤 단어를 바꾸면 '사랑에 대한 앎'. 이 책의 컨셉과 일치한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해서 제목이 과하지 않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가장 적절한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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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7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사랑을 박애주의 관점으로 풀어본 것이군요. 저는 필로소피라는 단어가 정감이 가요. 우리가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철학`이라고 하는 저 단어 속에 `앎에 대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를 떠올려봅니다.

키치 2015-01-18 08:39   좋아요 0 | URL
멋지십니다 ^^
 
중국, 당시의 나라 - 중국 땅 12,500Km를 누빈 대장정, '당시'라는 보물을 찾아 떠나다
김준연 지음 / 궁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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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보보경심>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 현대 중국 여성이 우연한 사고로 타임 슬립해 청나라 황실 시녀가 된다는 황당한 설정인 데다가,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중국어는 더더욱 잘 모르는데도 재미있게 본 건 주옥같은 대사 덕분이다. 그야 의상도 예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한 편의 시같기도 하고 노래같기도 한 대사가 요즘 드라마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언어 자체에 매력을 느껴야 외국어 공부도 할 수 있는 법. 어쩌면 그 때부터 중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 당시의 나라>는 저자가 직접 중국 땅 12,500km를 누비며 당시의 자취를 찾아다닌 기행문이다. 비유하자면 <나의 '중국 당시' 문화유산답사기>라고나 할까. 당시라고는 학창시절 고전문학 시간에 잠깐 배운 이백, 두보가 고작이라서 읽기 전부터 어려우면 어쩌나 겁을 집어먹었지만(게다가 두께마저 상당하다), 읽어보니 중국 고전시가 전문가다운 상세한 해설에 해당 지역에 대한 소개, 저자의 감상 등이 골고루 더해진 구성이라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당시든, 중국 역사든 문화든, 문외한인 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저자가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직접 걸어서 당시에 관련된 문화유적을 찾아다니며 생각하고 느낀 바는 내 마음에 충분히 전해졌다.


당시에 관련된 문화유적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시대의 유적도 없지 않다. 당시라고 해서 시와 시를 쓴 문인에 대해서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시의 소재가 되고 문인들이 존경하고 흠모한 인물에도 주의를 기울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무후사를 비롯한 삼국지 관련 유적들이다. 무후사는 제갈양을 기리는 사당인데, 비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중국 전역에 2천 개가 있고 심지어는 우리나라 전남 곡성에도 있다고 한다. 두보의 <촉나라 승상>, <옛 자취에 기대어 마음을 읊다>, 이상은의 <제갈양 사당의 옛 측백나무> 등을 알고 가면 좋은 곳이라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옛 고전시가를 알고 가면 더 좋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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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4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도 가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문화유산이 많은데 중국에 대한 편견(시민의식 수준) 때문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나마 아는 거라고 만리장성, 시황제 무덤 정도뿐일 겁니다.

키치 2015-01-18 08:4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중국에 가 보았는데 스케일이 엄청나더라구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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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어렵다. 지난 5년 동안 블로그에 서평을 천 편 이상 썼지만 쉽게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쳐도 마음에 드는 글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도움이 될까 싶어 글쓰기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읽고, 연습도 하고, 필사도 하고, 수업까지 받아보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혹시 나만의 '스타일'이 없기 때문일까? 시인, 비평가, 에세이스트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30년 경력의 문장 노동자 장석주의 신간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 따르면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여기서 스타일이란 '재료를 다루는 기교와 기술'이며, '어휘에 대한 편애, 문장을 쓰는 방식, 영감의 원천이 다른' 차이이며, '작품 요소들의 독특한 배열이고 구조이며 그것을 전체로 포괄하는 형식'이다. 헌데 그 스타일을 만드는 게 어디 쉬운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고 여겨지는 작가가 드문 것만 봐도 스타일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길을 안내해줄 책이 있다. 저자는 '밀실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글쓰기라는 지난한 길의 지도를 이 책 한 권에 담았다. 우선 '밀실'은 책읽기다. "작가란 쓰는 자이기 이전에 먼저 읽는 자"이다. 누에가 쉬지 않고 뽕잎을 먹듯이, 글을 쓰려면 먼저 남의 글부터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다음은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준비 단계인 '입구'. 입구를 거치면 글 쓰면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형성된 '미로'가 나온다. 미로를 통과하면 마침내 문학청년 또는 작가지망생이라는 껍질을 벗고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출구'가 나온다. 출구로 나온다고 끝이 아니다. 밖에는 김연수, 김훈, 피천득, 최인호, 박경리 등 국내 작가들부터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허먼 멜빌, 샐린저, 카뮈, 헤세 등 외국 작가, 타계한 작가까지 수많은 '스타일리스트'들이 들어찬 '광장'이 있다. 여기서 내 색깔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아니 위대한 글쟁이일 터. 승부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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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
헨리 뢰디거 외 지음, 김아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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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학생 한 명이 보는 시험을 대략적으로 세어보니 중간, 기말고사, 수행평가, 쪽지시험, 여기에 각종 입학, 졸업 시험, 학원 시험, 자격증 시험, 외국어 시험, 취업 시험 등등을 더하니 수십 여 개에 이른다. 시험만 보다가 학창 시절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시험. 그런데 이게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이란다. 125년의 학습 연구, 40년의 인지심리학 연구, 11인의 학자가 공동 수행한 연구를 통해 도출된 하버드 대학교가 인증한 공부법을 담은 신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따르면, 책을 반복해서 읽고 암기하는 전통적인 공부법보다 학습한 지식을 꺼내는 '인출 연습'이 효과적이며 시험은 인출 연습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시험을 보면 이전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기억해내는 작용, 즉 '반추'를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되는 지식을 다시 되살리게 되고, 이를 반복하면 뇌 속에 확실한 지식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영어학원에서 매번 영단어 100개씩 쪽지 시험을 보면서 영어 성적이 많이 올랐는데, 이제 보니 단어를 한번에 많이 외워서가 아니라 쪽지 시험을 통해 이전에 외운 단어를 반복해서 인출하는 연습을 한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어렵게 배우면 오래 남는 것도 반추의 원리다. 미국에서는 '학습을 위한 글쓰기'라고 해서 수업에서 배운 주제에 대해 반추하며 짧은 글쓰기를 하는 과제가 있는데, 남이 쓴 글을 베껴 쓴 글과 달리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쓴 글은 기억한 양이 월등히 많았다. 직접 노트 필기를 하거나 과제물이나 레포트로 작성한 내용은 기억에 오래 남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일에 착수하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진짜 지식이며 노하우라는 대목도 주의 깊게 볼 만하다. 일에 필요한 지식이라고 해서 경영이나 회계 등 취업에 필요한 지식, 법률이나 의학 등 전문 직업적 지식만은 아니며, 인문, 사회,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두루두루 알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는 김정운의 <에디톨로지>라는 책에 나온 '편집'이라는 개념과도 맥락이 일치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지식, 새로운 공부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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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2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쓸 줄 아는 리터러시 능력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암기만 하면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반복해서 쓰거나 다시 새롭게 쓰다보면 기억이 오래 가더군요. 저도 이 책에 관심이 있었는데 키치님의 서평을 읽어보니까 공부 잘 할 수 있는 새롭고 특별한 비결은 없는 것 같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