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읽다 - 꽃의 인문학 ; 역사와 생태, 그 아름다움과 쓸모에 관하여
스티븐 부크먼 지음, 박인용 옮김 / 반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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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가 들수록 꽃이 눈에 들어온다는 말은 참말인 것 같다. 이십 대 때만 해도 길가에 꽃이 피든 누가 꽃을 주든 심드렁했는데 삼십 대인 지금은 꽃이 그렇게 좋다. 눈길 머무는 곳에 꽃이 있으면 반갑고 꽃 선물이 제일 반갑고 기쁘다. 꽃꽂이, 꽃 드로잉 같은 취미도 관심이 간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곤충학자 스티븐 부크먼이 쓴 <꽃을 읽다>도 그래서 읽었다. 꽃을 보면 예쁘다, 아름답다는 생각만 했지, 꽃의 역사와 생태, 꽃을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논쟁이나 갈등 같은 건 전혀 몰랐다. 이 책은 꽃의 생식과 기원, 재배, 육종, 판매부터 사람들이 꽃을 먹는 이유, 문학과 미술, 신화 속에 등장하는 꽃, 과학과 의료에 이용되는 꽃 등 꽃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꽃 하나로 이렇게 많은 걸 알게 되니 득 본 기분이다. 


식물에 처음부터 꽃이 달렸던 것은 아니다. 꽃은 처음에 줄기 맨 위 다발로 된 작은 잎에서 진화했다. 더 많은 곤충이나 동물과 교배하기 위해 녹색을 잃고, 현재의 꽃에서 볼 수 있는 꽃잎이나 포엽 등으로 발전했다. '여기로 오라'는 신호로서 향기를 뿜기 시작했고, 넥타를 좋아하는 벌을 유인하기 위해 넥타를 머금었다. 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식물이 번식을 위해 진화한 결과이자 발명품이다. 꽃이 아름다움을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해서 얻었다고 하니 더욱 어여쁘게 느껴진다. 


부케를 만든 건 언제부터였을까. 이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여성에게 꽃은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의식마다 따라다녔다. 처녀들은 결혼식 때 샤프란, 스노플레이크, 때죽나무, 갈란투스 등 흰 꽃이 피는 야생화를 골라 화환이나 화관을 만들었고 이것이 부케의 기원이다. 고대 그리스의 결혼 부케 중에는 떠돌아다니는 질투심 많은 혼령을 쫓기 위해 마늘이나 톡 쏘는 맛의 약초를 넣은 것도 있었다. 마늘 부케라니. 뜻은 갸륵하지만 상상하니 우습다. 


오늘날 꽃은 정치적 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콜롬비아에서 재배한 꽃이 현재 미국 절화 시장의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콜롬비아는 원래 마약의 원료로 사용되는 코카 재배로 유명한 나라다.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의 일환으로 콜롬비아산 꽃에 대한 수입관세를 유예해 코카 재배를 대체하게 했고, 그 결과 미국의 화훼 시장이 궤멸되고 콜롬비아의 화훼 시장이 성장했다. 최근에는 중국 남부와 두바이의 화훼 시장이 급성장하는 추세다. 꽃을 둘러싸고 정치적 분쟁이 일어날 정도라니. 앞으로는 한 떨기 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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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도덕을 말하다 - 좋은 삶을 향한 공공철학 논쟁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 옮김, 김선욱 해제 / 와이즈베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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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오월엔 공휴일이 많다. 게다가 올해는 정부가 내수경기 회복을 위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주말 사이에 낀 5월 6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해 4일을 연이어 쉴 수 있다. 빨간 날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현대인들에게 4일 연휴는 감지덕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번 연휴는 나흘간의 '휴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마이클 샌델의 새 책 <정치와 도덕을 말하다>를 읽는데 마침 공휴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왈저가 염두에 둔 그러한 종류의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표현 한 가지가 바로 공휴일 제도다. 그는 현대적인 휴가와 대조해 공휴일 제도(public holiday)를 살펴보았다. 휴가가 개인적인 행사로서 책무를 떨쳐내고 일상적인 장소에서 "벗어나는" 시간인 반면, 공휴일은 우리가 함께 축하하거나 기념하는 시적인(때로는 종교적이고 때로는 공민적인) 행사다. 


그는 "휴가(vacation)"라는 말의 역사를 되새기며 우리가 공동의 생활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보여준다. "고대 로마에서는 종교적인 제전이나 주요한 경기가 없는 날을 디에스 바칸테스(dies vacantes), 즉 '비어 있는 날'이라고 불렀다. 이와 대조적으로 공휴일은 충만한 날이었다. 책무와 축하가 충만한 날로서, 음식과 가무를 즐기고 의식과 연극을 준비하는 등 할 일이 많았다. 당시는 장엄한 의식과 흥청거림을 공유한다는 사회적 재화를 생산할 정도로 무르익은 시대였다. 누가 그러한 시절을 저버리려 하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충만감을 상실했다. 이제 우리가 갈망하는 시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스스로 채울 수 있는 비어 있는 날일 뿐이다." (pp.261-2)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그동안 미국 사회의 공공생활을 움직이는 도덕적 딜레마와 정치적 딜레마를 탐구해 쓴 31편의 평론을 모은 것이다. 미국 정치의 전통을 조망하는 1부, 소수집단우대정책, 낙태, 동성애, 배아줄기세포 연구, 오염 배출권, 대통령의 거짓말, 범죄자 처벌 등 최근 20년 동안 논쟁거리가 되었던 이슈들에 대해 정치철학적으로 접근하는 2부, 오늘날 두드러지는 자유주의 정치이론에 대해 연구한 3부로 나뉜다. 



위의 인용은 3부 '공동체와 좋은 삶' 중 '공동체 구성원 자격과 분배 정의'라는 글에 나온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저는 공휴일이 종교적, 공민적 의무의 색채가 짙은 반면 휴가는 그러한 종교적, 공민적 의무에서 벗어나는 의미가 강하다고 설명하며, '공휴일보다 휴가에 가치를 두는 공동체는 모종의 충만이 부족할 뿐 아니라, 공동체가 그러한 공휴일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소속감을 유지하지 않기 마련'이라고 설명한다. 즉, 공동체가 공휴일을 통해 그날이 기리고자 하는 의미나 가치를 되새기지 않고 각자 알아서 휴가를 즐기는 데 만족한다면 공휴일의 의미는 퇴색되고 공동체의 결속 또한 약해지리라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당연시하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관념이나 사회 제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국가 복권사업, 공공 영역의 브랜드화, 스포츠 비즈니스, 능력 장학금 등 사회적으로 수차례 제기된 문제들이 대부분 큰 정부와 작은 정부, 집권과 분권,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성장과 분배 같은 전통적인 논쟁에서 파생된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목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자유와 그러한 '동질감을 느끼는 공동적 삶에 대한 참여자로서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고 싶은' 공동체적 열망 사이의 갈등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올해 미국 대선에 대한 특별 기고문이다. 저자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샌더스와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트럼프가 이념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미국 대중에게 호소하는 지점은 같다고 본다. 오늘날 미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미국 사회의 최대 문제는 불평등이다. 이들이 불만을 품는 대상 또한 거대한 자본과 타협해 불평등을 해소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기득권층 전체이지 민주당이나 공화당 어느 한쪽이 아니다. 이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이 안온하게 대처하는 동안 샌더스는 대형은행 해체, 금권정치 타파, 금융 투기에 대한 세금, 국공립 대학 등록금 무상화, 전 국민 단일 의료보험 시스템 같은 급진적인 개혁안을 내놓아 민주당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는 불법 체류자 강제 추방을 의제화해 이민자로 인해 일자리와 임금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근로계층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샌더스와 트럼프 지지자 간에 이념적 유사성은 없지만 무엇이 옳고 어떤 세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가에 대한 도덕적 관념은 비슷하다고 본다(이건 한국 정치 상황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또한 정치와 도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이념 논쟁이나 효율성과 형평성 같은 경제 논쟁에 치우쳐 있는 오늘날의 정치 담론의 실상은 좋은 삶, 좋은 공동체에 관한 도덕적 담론이라고 설명한다. 



공휴일은 일 년 중 하루라도 그날의 의미를 생각해보자는 공적인 약속이지 그냥 하루 쉬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휴일을 한낱 '빨간 날'로 여기는 건 오늘날 공동체적 결속이 약해졌다는 방증이다. 한국의 경우 사람들이 공휴일을 휴가 대신으로 여기는 걸 단순히 공동체적 결속 탓만 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근로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이 2057시간으로 OECD 국가 3위를 기록할 정도니 공휴일에라도 미처 누리지 못한 휴가를 즐길 수밖에. 그나마도 어린이날이다 어버이날이다 해서 가족들 챙기고 의무를 다하면서 흘려보내니, 한국인들 참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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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이 이기는가 - 성공하는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클로테르 라파이유.안드레스 로머 지음, 이경희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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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 세계에 이백여 개의 나라가 있는데 어떤 나라는 잘 살고 어떤 나라는 못 사는 이유가 뭘까. 기후, 지리, 질병,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가지 답이 있지만 이 책에 따르면 '문화'다. 남한과 북한은 기후가 비슷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사회의 발전 정도가 전혀 다르다. 미국과 프랑스는 정치 체제는 민주주의, 경제 제도는 자본주의로 같은데도 사회 분위기나 부를 대하는 태도가 상이하다. 저자들은 문화야말로 한 나라의 발전을 좌우하며, 한 나라의 문화는 생존(Survival), 성(Sex), 안전(Security), 성공(Success)이라는 4가지 생물 논리에 좌우된다고 분석한다. 


4가지 생물 논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으로, 인간의 두뇌 중에서도 호흡, 체온조절 등 생존에 필요한 부분과 번식을 담당하는 가장 원초적인 뇌인 파충류 뇌에 의해 지배된다. 살기 좋은 나라는 먹고 자고 섹스하기를 원하는 파충류 뇌의 욕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지닌다. 여성과 아동과 소수집단이 전체에 통합되며 인권을 존중하고 장려한다. 성을 금기시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며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한다. 자유시장이 허용되며 재산권이 명확하다. 변화에 개방적이고 모험을 선호하며 계층 간 이동이 자유롭다. 반대로 살기 안 좋은 나라는 파충류 뇌의 욕구를 억제하는 문화를 지닌다.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성을 금기시하며 부패와 차별이 만연하다.


문화의 목적은 불안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이다. 문화는 구성원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의 준거 체계를 제시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조직의 규칙을 따르고, 소속감을 느끼고,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생존이다. 소속감이 없다면 생존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pp.96-7)


어떤 나라가 파충류 뇌의 욕구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여성의 성적 본능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여자도 남자 못지않은 성적 본능을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나라와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일부다처제, 여성 할례 등으로 여성의 성적 본능을 금기시하고 억제한다. 애인을 여럿 둔 남자는 찬사를 받지만 애인을 여럿 둔 여자는 그렇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최악이다. 이 나라에서 여자들은 투표를 할 수 없고 성폭행을 당하면 법정에서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여성은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없고 여행을 하거나 병원에 갈 때에도 남자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이런 여성차별은 인적 자본의 큰 손실을 초래한다. 인구의 절반이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집에서 죽어가니 나라가 퇴보하는 건 당연하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문화가 대뇌피질의 도움을 받아 파충류 뇌의 욕구를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이다. 전문 기술과 수준 높은 문화를 관장하는 대뇌피질은 먹고 자고 섹스하고 화장실에 가는 등의 기본적인 쾌락을 높은 차원의 문화와 예술로 바꾼다. 미국에서 술은 취하기 위한 수단이고 범죄의 온상으로 여겨지지만, 프랑스에서 술은 식사 전 입맛을 돋우어 주며 맛의 감각을 키워주는 중요한 음식 문화다. 많은 나라에서 집안에서 하는 취미 활동을 사소하게 여기지만, 1년의 절반가량이 어둡고 혹독한 겨울인 북유럽 국가들은 집안에서 하는 취미 활동을 음악, 문학, 미술, 디자인 등 수준 높은 예술로 끌어올렸다. 

파충류 뇌의 욕구를 즐거움으로 바꿔서 성공한 기업도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늘 어떻게든 가능한 한 즉시 만족을 얻고자 하며 공동체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인정받길 원하는 파충류 뇌의 욕구를 충족시켜 성공했다. 스타벅스는 8만 7천 가지 메뉴를 제공하며 일회용 컵에 고객의 이름을 쓰고 일정 이용 금액을 달성하면 이름이 새겨진 금색 카드를 준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고 대접받고 싶어 하는 파충류 뇌의 욕구를 제대로 간파한 서비스다. 나라든 기업이든 본능에 충실한 문화가 승리한다. 억제하고 감춰야 하는 줄만 알았던 본능이 성공의 키포인트라니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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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6-05-11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의 상술에 놀라게 되네요...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 천천히, 조금씩, 다 같이 행복을 찾는 사람들
나유리.미셸 램블린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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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는 가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무밍과 따루, 얼마 전 <북유럽 빵빠라빵 여행>이라는 책에서 본 맛있는 핀란드 빵을 제외하면, 나에게 핀란드는 살인적인 물가와 매서운 추위가 존재하는, 그다지 가보고 싶지 않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핀란드는 살고 싶은 나라 1순위가 되었다. 높은 수준의 복지, 천혜의 자연환경, 아름다운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다. 착한 소비니 손으로 만드는 행복이니 같은 것도 부차적이다. 그보다 앞서 이 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힌 정신이 부럽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부럽다.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핀란드인)는 핀란드가 유럽의 외딴 나라이고, 춥고, 언어도 다르고, 다른 나라에 비해 약소국이며, 그래서 아무도 오려 하지 않는 나라라고 항상 생각해. (중략) 이런 성공을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필요하다'라는 가르침을 배웠다고 생각해. 우리는 '이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다 중요하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 고작 인구 500만 명 가운데 얼마나 많은 천재가 있겠어?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중국 같은 경우 우리보다 똑똑한 인재들이 훨씬 많겠지. 그래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 수 없다는 게 핀란드 사회야. 우리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함께 일해야 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p.75)


이 책을 함께 쓴 나유리, 미셸 부부의 친구인 핀란드인 요한나의 말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인구가 적고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며 함께 일하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한다. 핀란드가 자랑하는 높은 수준의 복지 제도는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사회에 불행한 이가 많다면 결코 행복한 사회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수입이 낮은 사람도 안전과 복지를 보장받아야 하고, 이것이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p.71) 남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에 찬성하고 벌이가 많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것도 받아들인다. 


복지뿐 아니라 교육, 여성 정책, 외국인 정책 등도 이 같은 생각에 기반을 둔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획일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다양한 개성과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교육한다. 고등교육을 받든 취업을 하든 차별이 없고, 다른 분야로 재교육, 재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보장된다. 사람이 귀하므로 성차별은 있을 수 없다. 인구가 부족한 마당에 아이를 낳아 인구를 늘려주는 여성은 애국자로 대접받는다. 외국인도 마찬가지. 굳이 핀란드 같은 멀고 척박한 나라에 와주는 외국인에 대해 핀란드 정부는 무상 교육을 제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택 지원, 보조금, 점심값, 교통비 지원 등도 아낌없다. 이 같은 혜택은 물론 자국민들에게도 돌아간다. 


물가가 높은 대신 누구나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쓸 수 있도록 학교에서 교육한다. 학교에서 미술과 별도로 공예 교육을 하기 때문에 간단한 옷이나 물건은 핀란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다(핀란드의 높은 디자인 수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간단한 채소는 도시에서도 직접 길러 먹고, 숲이나 들판에서 과일이나 견과물 등을 직접 채집해 먹는 일도 다반사다. 핀란드는 토지를 개인이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개념이 희박해 나무에 열린 과일이든 땅에 떨어진 밤이든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그렇게 직접 만든 옷이나 물건, 직접 딴 재료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는 마켓도 일반화되는 추세다. 


핀란드가 전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여성 문제의 경우, 100년 전만 해도 거리의 부랑자들 대다수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온 여성들이었으며, 1950년대만 해도 상대방의 불륜 증거를 제시해야만 이혼이 가능했을 정도로 사회 분위기가 반(反) 여성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마땅한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고 바람직한 사회 문화와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덕분에 오늘의 핀란드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인구가 적고 약소국인데, 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낙오자로 만들며, 다 같이 잘 살기보다는 나만 잘 살고 보자는 생각이 팽배한 걸까. 가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는 나라 핀란드가 너무 부럽다. 부럽기만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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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슬로우 라이프 - 천천히, 조금씩, 다 같이 행복을 찾는 사람들
나유리.미셸 램블린 지음 / 미래의창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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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적고 약소국이기 때문에 모두가 필요하고, 이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한 명 한 명의 노력이 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핀란드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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