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지음, 김경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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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리모컨을 잡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오래된 뮤직비디오 한 편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영국 록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음악도 영상도 멋있지만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애절하면서도 파워풀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얼마 후 프레디 머큐리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놀라지 않았다. 소수자라는 비애가 그의 음악성을 증폭하지 않았을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소수자 문제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유난히 그런 문제들이 나의 눈에 들어오고 귀를 사로잡았다. 중학교 때 일본에서 온 친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고 고백했을 때, 고등학교 때 친구가 가족 내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내 마음은 평소보다 세게 뛰었다. 대학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성 소수자, 장애인, 재외 동포, 이민자들을 만났을 때에도 그랬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여성 문제는 나와 무관하지 않지만, 성 소수자, 장애인, 재외 동포, 이민자 문제는 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재일 코리안, 피차별 부락, 오키나와 문제도 관심은 있지만 상관은 없다. 다수자이면서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건 괜한 오지랖이나 외부자의 관음증이 아닐까. 이 또한 당사자에게는 폭력이 아닐까. 그런 고민이 나를 늘 괴롭혔다. 



나는 재일 코리안이나 피차별 부락이나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해, 또는 여성이나 장애인에 대해 누가 보더라도 다수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싶다는 마음에 보잘것없지만 공부를 해 왔다. 또한 일이나 사생활 면에서 그런 사람들과 맺은 관계도 점차 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지점에서 역시 나는 다수자일 수밖에 없다. (p.179)


이 책의 저자 기시 마사히코는 소수자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다. 오키나와인, 재일 코리안, 피차별 부락민, 장애인, 게이, 이주 여성, 복장 도착자, 조직폭력배 등이 저자의 연구 대상이다. 저자는 소수자가 아니다. 일본인이고, 건강한 사람이며, 이성애자이고, 남성이다. 그런데도 소수자 문제를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말을 흐린다. 대학 졸업 후 공사장에서 막노동꾼으로 일한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미움을 샀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도 정답은 아니다. 


저자는 대체로 다수자이지만 때때로 소수자다. 저자는 무정자증이다. 사람들이 자녀들의 사진을 보여주거나 왜 아이를 가지지 않느냐고 물을 때 저자는 폭력을 당하는 듯하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저자에게 아이를 가진 사람은 다수자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은 아이를 가진 사람의 행복을 짐작하지만, 아이를 가진 사람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의 불행을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만이 아니다. 배제된 경험, 차별당한 경험, 고통을 겪은 경험이 더 적은 쪽이 다수이며, 다수는 소수에 대해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다행히 사람은 누구나 어떤 문제에 있어서 다수자이거나 소수자일 수 있고, 다수자로 살 것인지 소수자로 살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저자는 소수자로 살기를 택했다. 재일 코리안, 장애인, 성 소수자, 여성 문제에 대해 평생 모르거나 무관심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기꺼이 관심을 가지고 사는 길을 택했다. 소수자들의 눈에는 그가 다수자로만 비치겠지만, 저자는 삶에서 다수였던 경험보다 소수였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규정한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누가 다수자이고 누가 소수자일까. 이 또한 정답은 없다. 


한쪽에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다른 한쪽에 '일본인이라는 경험'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한쪽에는 '재일 코리안이라는 경험'이 있고,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애초에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도 없는' 사람들이 있을 따름이다. (p.166) 


저자는 이제까지 만난 소수자들을 연구 대상이 아닌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인연으로 본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돌멩이를 아무것이나 주워 바라보면서 "이 드넓은 지구에서 '이' 순간에 '이' 장소에서 '이' 나에게 주워 올려진 '이' 돌...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음과 무의미함"에 전율하고 감동했던 것처럼 그들과 만난 것에 감사한다. 그렇기에 논문이나 책에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조차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 책은 여러 이유로 버려야 했지만 끝내 버릴 수 없었던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버려질 뻔한 이야기를 모았다고 해서 낮추어 보면 곤란하다. 일본 사회의 소수자로 흔히 거론되는 오키나와인, 재일 코리안, 피차별 부락민, 장애인, 게이, 이주 여성 등을 취재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어 일본 사회의 소수자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회학자로서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딜레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구해가는 이유 등도 자세히 나와 있다. 


현대 사회는 상이한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 소수자 문제에 무심한 다수자는 소수자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까닭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기 쉽고, 이는 공격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누구도, 누구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지 않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세계, 자기가 누구인가를 완전히 망각한 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꾼다.


나도 꿈꾼다. 프레디 머큐리의 이력에 동성애자라는 말이 나올 필요가 없는 세계, 어린아이가 외국 학교에서 차별받지 않아도 되는 세계, 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 미움받지 않아도 되는 세계, 장애가 있거나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2등 시민이 되지 않아도 되는 세계. 과연 그런 세계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아니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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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10-17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올라오는군요.
˝2016년 기노쿠니야 인문 대상˝을 수상했다는 화려한 장식성을 갖추지 않고 소수자에 대한 내용만을 얘기하려고 한 키치님의 안배가 돋보입니다. 이 책 취지와 부합하는...
잘 읽었습니다^^

키치 2016-10-19 11:34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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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요코는 1986년부터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예인이다. 1997년, 저자는 여성을 차별하는 언동과 성희롱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연예계 현실에 맞서고 '말싸움에서 이기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로 불리는 도쿄대 사회학과 교수 우에노 지즈코의 수업을 듣게 된다. 뜻은 거창했으나 배우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수업마다 읽어야 할 문헌의 양이 엄청난 데다가 문헌에 쓰인 용어는 일본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다. 일본 최고 명문인 도쿄대 학생들도 어려워하는 수업을 단기대학 출신에 나이까지 든 나로선 따라갈 수 없다는 자격지심도 더해졌다. 


그러나 대학원 3년 내내 어렵다, 힘들다고 징징댈 수만은 없는 일. 저자는 첫 1년 동안 지난 3년치 논문을 전부 읽는 열성을 보였고, 바쁜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우에노 지즈코가 하는 강연이란 강연은 전부 따라다니며 공부에 매진했다. 모르는 단어나 개념이 나오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자기보다 훨씬 어린 학우들에게 과외를 받으면서까지 노력한 결과 저자는 3년 만에 간사이의 한 대학에서 젠더론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으며, 드세고 말 많다는 꼬리표를 떼고 도쿄대에서 배운 지식으로 무장한 페미니즘의 전사로 거듭났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게 정말......" 그녀는 말을 여기서 딱 멈췄다가 천천히, 분명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무서워요." (p.39)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심만 있고 지식은 없었던 저자가 페미니즘을 배워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뿌리 깊은 열등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도쿄대 안에 있을 때면 '강의실에서 내가 가장 바보'라는 생각으로 괴로워했고, 도쿄대 밖으로 나오면 '(네가 도쿄대에 다니다니) 거짓말일 거다, 다닐 수 있을 리 없다, 다닐 이유도 없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수업 첫머리에 발제문을 받고 너무 어려워서 언제나처럼 '난 진짜 바보야. 아무리 읽어도 모르겠어. 역시 못 따라가겠어.'라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이 발제문은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요?"라고 질문한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발제문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때까지 저자는 도쿄대 학생들과 자신 사이에는 커다란 능력 차이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질문은 부끄러워서 할 수조차 없다고 여겼다. 처음 발표자가 되었을 때도, 강사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도 열등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저자에게 우에노 지즈코는 '사회학은 틀을 의심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며, 연예계라는 틀에 의심을 품고 도쿄대의 문을 두드린 저자에겐 뛰어난 직관이 있다고 격려했다. 저자는 여기에 <싸우는 여자는 아름답다>의 저자 오다 모토코의 말을 덧붙인다. '학문의 세계, 특히 인문과학의 세계는 권위 지상주의 사회'이며 '학문이라는 권위 장치를 알아차리기 위한' 공부가 페미니즘'이라고. 저자에게 페미니즘은 학문으로 향하는 입구였으며, 저자에게 학문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페미니즘의 일환이었다. 


러고도 여자냐, 그러고도 엄마라고 할 수 있냐, 결국 자신만 소중한 게 아니냐 등등 젠더를 공격하는 말이 너무 많아 일일이 셀 수도 없다. 그런 말을 듣고 흔들리면 진다. '그래도'나 '하지만'으로 말을 꺼내면 변명처럼 들리기만 하니 꼭 피한다. 그럴 때는 '자신이 소중한 게 왜 나쁘냐'는 식으로 곧장 되받아 치자. (p.258) 


그래서 결국 저자는 도쿄대에서 '말싸움에 이기는 기술'을 배웠을까? 물론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싸움을 하는 열 가지 방법'이라는 챕터를 마련해 도쿄대에서 배운 말싸움에 이기는 기술을 자세히 소개한다. 그중 첫 번째는 '되받아치기'이다. '결국 자신만 소중한 게 아니냐'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소중한 게 왜 나쁘냐', '사랑과 모성이 결여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사랑과 모성이 결여된 게 뭐가 나쁘냐'고 되묻자. 참고로 여성학에선 사랑을 '남편의 목적을 자기 목적으로 삼아 여성의 에너지를 동원하기 위한 이념 장치'로, 모성을 '아이들의 성장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여겨 희생하도록 여성을 종용해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한 욕구를 억누를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한 이념 장치'로 정의한다. 


두 번째는 '모르겠다면서 도리어 질문하기'이다. 상대방이 안이하게 생각 없이 쓰는 표현에 대해 모르겠다,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갖고 놀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기술을 활용해 말싸움에도 이기고 자기 자신을 지켰다. 페미니즘을 쉽고 재미있게 배우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는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큰 배움과 감동을 얻었다. 저자 하루카 요코도 멋지지만, 이런 멋진 제자를 둔 선생 우에노 지즈코는 어떤 인물일까. 하루카 요코의 다른 저서와 우에노 지즈코의 저서를 읽어보고 싶다. 


p.s.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을 읽고 저자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졌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접속해 저자 이름을 검색하니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내용이 나왔다. 검색된 내용을 읽어내려다가 하루카 요코의 저서 첫 줄에 이 책의 원제인 "<東大で上野千鶴子にケンカを学ぶ(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처음 출간된 해가 무려 2000년. 다른 건 몰라도 페미니즘은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지 않을까 지레짐작한 건 실수였을까. 한국에선 페미니즘 서적이 올해 들어서야 겨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반해, 일본에선 이미 2000년에 이 책이 22만 부나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아, 부럽다. 아, 배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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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부헌 2017-11-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이곳은 한국 입니다 너무 보고 싶고 하루카 요코 자주 만나고 싶어요 꼭 알고 지넸으면 합니다

권부헌 2017-11-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6일날 일본 오사카 집에서 만났읍니다 너무 반갑고 싸인까지 받아서 한국에 와서 잘 보관 하고 있읍니다
 
자존감 수업 -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윤홍균 지음 / 심플라이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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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존감이 높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한다', '다시 태어나도 나였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책의 저자 윤홍균은 서문에 '나는 지금의 나에게 상당히 만족한다'고 당당히 밝힌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직업이 주는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명성 때문은 아니다. 자존감은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직업이나 직장, 경제적 여유나 사회적 지위와는 별개다. 자존감은 자기 효능감,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되며, 학업이나 직업적 성취와 관련 있는 자기 효능감이 낮아도 자기 삶을 자기가 이끄는 자기 조절감과 좌절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는 자기 안전감이 높으면 자존감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저자는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조절감, 자기 안전감이 두루 높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존감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을 수정하고 자존감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자세히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자존감 저하를 호소하는 이유는 자존감이 자기 효능감만으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 효능감 외에도 자기 조절감과 자기 안전감을 살피면 자존감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 자존감은 또한 부모와의 관계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고, 칭찬을 받는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며, 자아도취 또는 나르시시스트적인 증상과도 관계가 없다. 설사 부모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거나 원하는 만큼 칭찬을 받지 못 해서 자존감이 낮다 한들 낮은 자존감을 다시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심리학 책을 읽는 것은 좋지만 한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심리학 책은 심리적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가진 문제를 보편화하고, 죄책감을 타인(주로 부모)에게 전가하며, 감정을 살피거나 직접 체험을 하는 대신 지식을 쌓는 데에만 몰두하는 지식화의 문제를 낳는다. 저자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남들 생각을 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라고 충고한다. 나에 대해 적어보기, 괜찮아 일기 쓰기, 나를 위한 선물 고르기 등을 예로 든다. 


지금의 자신에게 상당히 만족하는 저자도 한때는 입시에 실패해 좌절하고 잘나 보이는 사람들과 자기를 비교하며 주눅 들고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아 방황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것은 물론이다. 저자는 자존감이 원래 그렇게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하는 것이므로 자존감이 낮다고 좌절하지 말고 적정 상태를 유지하는 연습을 해두라고 충고한다. 나 역시 자존감이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해 괴로운데, 저자의 충고를 따라 자존감을 적정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연습을 해둬야겠다. 그중에서도 '나를 위한 선물 고르기'가 참 좋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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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 - 너와 나를 격분시키는 말 그리고 수행성의 정치학
주디스 버틀러 지음, 유민석 옮김 / 알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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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발언 이전에 언어에 관한 책인데 이 책의 언어부터 너무 어렵다. 몇 번을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는 머리를 자책하며 읽다가 옮긴이 해제를 보니 주디스 버틀러가 '최악의 저자 상'을 수상했을 만큼 원래 난해한 글쓰기로 악명이 높다고. 그렇다 한들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요, 본서를 비교적 쉽게 요약한 옮긴이 해제 역시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평을 한 줄도 남기지 않을 수는 없으니 이해한 범위 내에서 적어보겠다. 


저자는 오스틴의 언어 행위 이론을 인용하며 언어에는 '발언 내 행위'와 '발언 효과 행위'가 있다고 전제한다. 발언 내 행위는 발언 자체가 곧 행위인 반면, 발언 효과 행위는 발언과 행위가 별개라서 발언의 효과가 시간차를 두고 나타난다고 본다. 그렇다면 '혐오 발언'은 어떨까? 사람들이 어떤 말을 듣고 상처를 받거나 모욕을 느낀다면 언어는 그 자체가 행위이고 어떠한 힘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혐오 발언을 발언 내 행위로만 볼 수는 없다. 혐오 발언을 듣고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언어에 힘을 부여하는 존재를 가해자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고 더욱 넓게 볼 수 있다. 저자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모욕하기 위해 사용한 혐오 발언이 어느 시점부터는 피해자 집단을 대변하거나 결속시키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한다.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기 위해 사용한 '니거(nigger)', '니그로(nigro)'라는 표현이 흑인들 사이에서는 결속감을 높이는 단어로 사용되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차별하기 위해 사용한 '퀴어(queer)'라는 표현이 이제는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보편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것이 그렇다. 그렇다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혐오 발언을 스스럼없이 쓸 수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흑인 아닌 인종이 '니거', '니그로'라는 말을 쓰면 여전히 인종차별에 해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가 화자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개념이라면, 중요한 것은 언어 이전에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닐까 싶다. 설사 화자에게는 아무런 악의가 없다 해도 누군가에는 어떤 발언이 상처가 될 수 있고 혐오 발언으로까지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는 것은 매사에 있어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해야 하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혐오 발언이 넘친다는 것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일까. 어떻게 보든 마음 아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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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코뿔소가 온다 - 보이지 않는 위기를 포착하는 힘
미셸 부커 지음, 이주만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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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통 읽지 않지만 한때는 경제경영서를 열심히 읽었다(이래 봬도 경제학 전공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경제경영서 중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이 있었는데, 얼마 전 <블랙 스완>을 보완하는 성격의 경제경영서가 나왔길래 읽어보았다. 책의 제목은 <회색 코뿔소가 온다>. 저자는 세계 최고의 위기관리 전문가이자 세계적인 싱크탱크 세계정책 연구소의 대표이사인 미셸 부커이다.


'블랙 스완'이 일반적 논리와 맞지 않고 매우 예측하기 힘든 위기를 의미하는 반면, 미셸 부커의 '회색 코뿔소'는 개연성이 높고 예측하기 쉬운 위기를 의미한다. 누구나 알 수 있고 예상할 수 있는 위기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저자는 누구나 알 수 있고 예상할 수 있는 위기인데도 위험성을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대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짜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눈에 뻔히 보이는 위기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이유는 대체로 집단 사고나 보수적인 시스템 탓이다. 가령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금융 위기나 테러 위협, 자연재해 등은 사전에 크거나 작은 전조 내지는 조짐을 보이게 마련인데, 사람들이 이를 뻔히 보고도 위급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치명적인 위기나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피 튀기는 기사라야 주목받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혹은 일을 잘못 처리해서 대참사로 이어진 사건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반면 위험을 무사히 피한 사건들은 신문 1면을 장식하지 않는다. 우리가 미래의 대재난을 피하기 위해 연구해야 할 대상은 바로 이런 사건들이다. (p.51) 


다가오는 게 뻔히 보이는 회색 코뿔소를 피하지 않고 있다가 해를 입는 경우는 개인의 일상에도 왕왕 있다. 저자는 사소한 구강 질환을 무시했다가 증상이 악화되어 급기야 잇몸 수술을 받아야 했던 일을 예로 들기도 한다. 회색 코뿔소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자는 '자동 조종 장치'를 만들라고 충고한다. 인간은 본능에 약하다. 본능에 굴복해 현실을 부정하며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이성이 있을 때 따로 알아서 작동할 수 있는 자동 조종 장치를 만들어두면 좋다. 개인이 미래에 가난해질 것을 대비해 지금부터 저축 예금을 들고 월급날 자동이체가 되게끔 하는 것이나, 정부가 평화 시에 위기관리 시스템이나 사고 처리 매뉴얼을 만들어두는 것이 이런 예다. 큰 문제일수록 작게 쪼개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성인병 예방을 위해 당장 10kg을 감량하기란 어렵지만 한 달에 1kg씩 감량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인간은 위기보다 기회에 더 잘 반응하는 법이다. 위기를 새로운 이익을 창출할 기회 또는 기존 체제를 수정할 터닝 포인트로 활용한다면 회색 코뿔소 피하기가 마냥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체험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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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7-18 0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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