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사는 법 - 일, 사랑, 인간관계가 편해지는 심리 기술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김한나 옮김 / 유노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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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한때 완벽주의자였다. 시험을 보면 백 점을 받아야 했고, 경쟁을 하면 무조건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항상 백 점을 받고 1등을 할 수만은 없는 법. 무수히 많은 시험에 떨어지고 경쟁에 지고 나서야 뒤늦게 나는 완벽하지 않고 완벽해질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적당히(또는 대충대충?) 살고 있다. 


이 책을 쓴 고코로야 진노스케도 한때는 '적당히'를 몰랐다. 20년 동안 대기업에서 현장 영업과 영업 기획 업무를 담당했던 저자는 '시간을 지키자', '납기일을 엄수하자', '매출 목표를 달성하자', '상사가 시킨 일은 반드시 성공시키자', '부하 직원은 확실하게 지도해서 육성하자' 같은 회사의 구호를 솔선수범했고, 부하 직원과 가족, 주위 사람들에게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러니 탈이 날 수밖에. 언제부터인가 업무가 부담스럽고 인간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저자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자 심리학을 공부했고 급기야 심리상담사로 전업했다. 현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아도 좋다', '나답게 적당히 살아도 괜찮다'는 조언을 대중들과 나누며 인기 강연자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젊었을 때 착하고 우등생이었던 사람보다 엉뚱한 짓만 골라 하면서 남에게 폐를 끼친 사람이 훨씬 멋지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쁜 사람에게 걸리거나, 사랑에 빠져서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엉망이 되어 보아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깨닫기도 합니다. 지도나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고 날마다 대충대충 운전하는 사람이 지름길을 잘 아는 택시 기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11~12쪽)


'적당히 일한다', '적당히 공부한다', '적당히 산다'고 말하면 왠지 부정적으로 들린다. '적당히' 하는 것은 '대충' 하는 것 같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면 뭐 어떤가. 저자는 심리상담가로 일하면서 예전의 자신처럼 무심코 노력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노력을 멈추고 일부러 얼렁뚱땅, 대충대충, 적당히, 게으름을 피워야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지 못하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력하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을 '적당히' 산다는 것은 '목표를 정하지 않는다', '남에게 폐를 끼친다', '되는 대로 산다'는 것이다. 남이 정한 목표대로 움직이지 않아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기분대로 행동해야,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고 되는 대로 살아봐야 자신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다. 


인생을 적당히 살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기분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삶의 목표 상실, 결정 장애, 우울증 같은 문제는 인생을 적당히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당신은 '회사를 관두면 ~해야지', '시간이 좀 더 생기면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까? '~되면', '~없으면', '~관두면' 등과 같이 '~하면'이라는 말이야말로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 '~하면'이라는 말의 뒤에 오는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조건이나 변명, 제한 등은 일단 전부 제쳐 놓고 먼저 행동하면 됩니다. (75~77쪽) 


인생을 마음 가는 대로 적당히 살지 못하는 것은 대체로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훈육에서 비롯된다.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이 성인이 된 후에도 그대로 남아서, 마음 가는 대로 살지 못하게 막고 적당히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사회의 의무 또는 규칙은 지켜야 하지만, 나의 가치관을 내가 스스로 만들었는지, 부모가 주입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사소한 생활 습관부터 선호하는 정당이나 경제 감각까지 부모의 것을 의심 없이 따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른들 말씀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일하지 않는 부자도 많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노력이 보상받지 못할 때도 많다.


'몇 살까지 얼마를 벌어야 한다', '몇 살까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도 반드시 지켜야 하고 안 지키면 큰일 나는 '금언(禁言)'이 아니라 일개 의견에 불과하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다녀야 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하고, 때 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건, 알고 보면 부모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일개 의견'을 확대 해석하는 자기 자신이다. 


설레지 않는 사람과는 가급적 만나지 않는 편이 좋고, 설레지 않는 모임에는 가급적 가지 않는 편이 좋으며, 설레지 않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사실은 가고 싶지 않은데, 그래도 가는 편이 좋겠지?'라고 생각하는 모임에는 가지 않아도 됩니다. '가는 편이 좋다'고 하는, 즉 남의 눈을 신경 쓴 선택을 그만두라는 뜻입니다. (101쪽) 


저자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 나오는 '곤마리의 정리법'이 물건을 정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곤마리의 정리법'은 아주 단순하다. 설레는 물건만 남기고 설레지 않는 물건은 모두 버린다. 


'곤마리의 정리법'을 인생에 적용하면, 설레는 사람만 만나고 설레지 않는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설레는 일만 하고 설레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러면 처음에는 '차가운 놈, 기분 나쁜 놈'이라고 욕은 먹겠지만, 설레지 않는 사람을 만나느라 설레는 사람과의 만남을 놓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설레지 않는 일을 하는 데 쓸 시간을 설레는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다. 


나는 몇 년 전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고 '곤마리의 정리법'을 책 읽기에 적용했다. 곤마리의 방식을 따라 설레는 책만 읽고 설레지 않는 책은 읽지 않았다. 그 결과, 전에는 내가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정확히 알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알게 되었다. 체계 따위 없이 '적당히' 읽었을 뿐인데 이런 효과를 거둘 줄이야. 적당히 살고 있는 내 인생은 언제쯤 효과를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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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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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귀는 이어폰과 떨어져 있지를 못한다. 출퇴근할 때, 이동할 때, 밥 먹을 때, 집안일을 할 때 등등 시도 때도 없이 팟캐스트를 듣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세 편씩 들으니 청력은 약해질지 몰라도, 팟캐스트 덕분에 안 듣던 뉴스도 듣고 정치와 역사 공부도 할 수 있어 당분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악마 기자 정의 사제>도 팟캐스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김용민 브리핑'의 지난 방송 목록을 보다가 '악마 기자 정의사제 북 콘서트' 편이 있길래 뭘까 하고 들어봤더니 무려 방송인 김제동 씨가 북 콘서트 시작 전 바람잡이로 나오고 나꼼수 멤버 전원이 출연했다. 게스트도 빵빵하지만 북 콘서트의 주인공인 시사IN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의 이야기가 워낙 좋아서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청와대, 검찰, 국정원, 조폭, 삼성 등에 관해 독보적인 탐사보도를 하고 있는 '악마 기자' 주진우와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에 투신하여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있어온 '정의 사제' 함세웅 신부의 만남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었다.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관건은 억울한 사람, 약한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또는 무엇을 해주지 않았는가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입니다. (함세웅, 68쪽) 


이 책은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를 돌며 진행한 '속 시원한 현대사 콘서트' 강연을 엮은 것이다. 주진우 기자의 활약은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여러 번 접한 바 있으나 함세웅 신부의 민주화 운동 이력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함세웅 신부는 1974년 초 지학순 주교 등 각계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대거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창립하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으며,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독재 치하에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나는 무교이고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믿어서 종교인이 정치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함세웅 신부의 말에 따르면 '최후의 심판에서 구원받느냐, 구원받지 못하느냐를 가르는 관건은 억울한 사람, 약한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또는 무엇을 해주지 않았는가'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이다. 


권력자를 비판하고 정의를 부르짖었다는 이유로 탄압받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심지어는 배격한다면 그때부터 그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니며, 그 종교인은 참된 종교인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당한 권력과 싸우면서 종교계 내부와 외부에서 모진 핍박과 냉대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켜온 함세웅 신부 같은 분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새삼 생각한다. 


제가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고요. 2050년에 일기를 쓴다면 "2015년 역사 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줄로 요약되는 게 역사예요(청중 환호와 박수). 이런 시각으로 우리가 접근해야죠. 역사는 항상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뜻밖의 사건으로 바뀌게 되어 있어요. (함세웅, 151쪽) 


이 책의 바탕이 된 강연의 제목은 '속 시원한 현대사 콘서트'이지만, 대한민국 현대사는 결코 '속 시원한' 것이 못 된다. 함세웅 신부가 유신 시대부터 몸소 경험하고 주진우 기자가 현재 보도하는 내용만 보아도 즐겁고 행복한 사건보다는 화나고 원통한 것이 더 많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시민들에게 함세웅 신부는 '2050년의 일기를 써보라'고 조언한다. 지금 당장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혼란스럽고 어지럽지만, 2050년쯤 되는 미래에는 사건의 결과만이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후대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함세웅 신부는 (강연을 한) 2015년의 역사가 "역사 교과서를 불법으로 바로잡겠다던 박근혜 그 여인은 참 나쁜 여인이었습니다" 쯤으로 요약될 것이라고 했지만, 2016년인 지금 우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어떤 국면을 맞이했고 역사 교과서를 바꾸려고 한 권력이 어떤 처지에 몰려 있는지 알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이 훗날 대한민국 역사에 어떤 한 줄로 기록될까. 다가오는 2017년에는 어떤 역사가 새로 쓰일까. 악마 기자와 정의 사제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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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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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다. 은밀하게 자리를 잡고 앉은 '대리사회의 괴물'은 그 누구도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고, 발화하고,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대리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덧입힌다. 자신의 차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운전하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p.7) 


저자 김민섭은 2015년 '309동 1201호'라는 필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펴냈다. 지방대 시간강사, 이른바 '지방시'의 처우가 패스트푸드점에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을 밝힌 죄(?)로 그는 그 해 12월 대학에서 나와야 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직업이 '대리기사'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대리기사로 일할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대학에서의 10년보다, 거리에서의 1년이 더욱 가치 있었다." 라고 회고한다. 대학은 이제 성역(聖域)이 아니다. 대학 또한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며 그 구성원들을 끊임없이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대리공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이제 안다. 


<대리사회>는 그가 1년 동안 대리기사로 일하면서 수집하고 기록하고 분석한 '거리의 언어'를 엮은 책이다. 자동차라는 타인의 공간에서 그는 김민섭이라는 인격이 아니라 대리기사라는 역할로서 존재했다. 그가 태운 손님들은 그의 직업이 대리기사이고 그의 시간과 노동력을 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이유로 그의 행동과 언어, 사유를 통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대학 안에서 '교수님' 혹은 '선생님'이라고 불렸던 그는 거리에서 '아저씨'로 불렸다. 손님의 콜을 받는 순간부터 그의 몸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밥을 먹다가도, 아이를 보다가도 뛰어나가야 했다. 손님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땀이 나게 달려야 했다. 운전석에 앉으면 그때부터 그의 입은 손님이 뭐라고 말하든 "네, 맞습니다" 하고 영혼 없이 답하고, 그의 귀는 손님이 하는 말과 손님의 취향에 맞는 음악에 고정되어야 했다. 


'진상 손님'을 만나도 항의할 길이 없었다. 밤늦게 콜을 받고 갔는데 알고 보니 여러 명의 기사를 한꺼번에 부른 것이어서 허탕을 친 적도 있고, 처음에 약속한 금액과 다른 금액을 제시하며 흥정을 하는 바람에 곤란을 겪은 적도 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지도대로 운전했는데도 일부러 돌아갔다며 시비를 걸고, 심지어는 지갑을 훔쳤다고 의심했으면서 사과도 하지 않고 훌쩍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억울해도 손님은 갑, 대리기사는 을이므로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운전석과 다름없는 '을의 공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차의 주인과 대리기사와 같은 역설의 관계 역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어디에서, 주체의 욕망은 쉽게도 타인을 잡아먹는다. 예컨대 의사 결정권자는 언제나 자유롭게 회의 안건을 내고 소통하자고 하지만 그 누구도 화답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상상과 수용 가능한 범위가 제한되어 있음을 모두가 안다. 거기에서 벗어나거나 반론을 내기라도 하면 곧 눈총이 쏟아진다. ...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의 관계부터 시작해 교사,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을의 공간'에서 순응하는 방법을 주로 배워왔다. (p.35) 


대리기사 일은 고되지만 대학교수가 되길 꿈꾸며 불합리한 생활을 해나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저자는 대학에서 일하면서 4대 보험 혜택은커녕 합당한 보수도 받지 못 했다. 자연히 부모와 아내 등 가족들에게 의지해야 했다. 언젠가 교수가 되고 정규직이 되면 그의 부모는 '교수 부모', 그의 아내는 '교수 아내'가 되겠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희생이 보상받으리라고 합리화할 수 없었다. 


몇 년을 기다려야 교수가 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대학이라는 괴물의 욕망'에 포로가 된 자신 때문에 자신의 부모와 아내, 자녀들까지 고통을 겪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가 대학에서 타인의 욕망을 위해 '유령의 시간', '대리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사랑하는 가족까지 유령이 되고 대리 인생을 살길 강요할 순 없었다. 1년 3개월 동안 맥도날드에서 일한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것처럼, 대리기사로 일하는 경험 역시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선사했다. 


'진상 손님'이 있었다면 '좋은 손님'도 있었다. 집에 가서 아내, 아이와 나눠 먹으라며 빵을 한 아름 안겨주었던 손님도 있었고, "여기 높으니 버스 타고 가요" 하고 차비 2천 원을 덤으로 건네주었던 손님도 있었다. 비록 '대리 사회'에서 살지언정 주체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그는 만났다. 


가족의 소중함도 새삼 깨달았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 저자의 아내는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면서 대리운전을 하면 시간도 절약하고 체력도 보전하고 평소보다 많은 콜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어린 아들을 늦은 밤 집에 혼자 두고 나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가정용 CCTV를 켜놓는 것으로 해결했다. 비록 대리일지라도 주체로서 결정하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니 훨씬 나았다. 


대리 사회의 괴물은 대리인간에게 물러서지 않는 주체가 되기를 강요한다.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끊임없이 주문하는 가운데, 정작 한발 물러서서 자신을 주체로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봉쇄한다. 결국 개인은 주체로서 물러서는 법을 잊는다. (p.252)) 


사회가 개인을 주체가 아닌 대리인으로 대우하고 개인의 행동과 언어, 사유를 통제하면, 개인은 좌절감을 느끼고 끝내 분노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분노가, 분노를 야기한 사회 구조나 조직이 아니라 분노와 무관한 약하고 힘없는 개인 또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기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는 경계에 있다." 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우리는 주체임을 부정당하고 경계에서 밀려나고 난 뒤에야 어느 공간의 대리로서 살아왔음을 자각한다. 그전까지 잉여나 패배자로 규정하고 조롱했던 존재가 되고 나서야, 자기를 대체할 새로운 대리인간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한다. 


이미 보편화된 대리사회에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려면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연대하여 행동하는 경험을 자주 해봐야 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거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타인을 위해 길을 양보하고 문을 잡아주는 것도 좋고, 버스 기사든 식당 종업원이든 나를 위해 일해준 사람을 위해 따뜻한 인사 한 마디 건네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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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6-12-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리운저 이야기에 찡해 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우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열정 절벽 - 성공과 행복에 대한 거짓말
미야 토쿠미츠 지음, 김잔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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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가치가 있는' 일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계층 이동과 근로자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하지만 오늘날 근로자들이 이런 일을 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 값비싼 학위와 자격증을 따야 하고, 인권 침해에 가까운 감시를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적은 보수를 받으면서 '전력을 다해' 오랜 시간을 일해야 한다. (pp.18-9)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기 일을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침이면 빨리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깼다. 거울을 볼 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라고 묻고 "아니"라는 답이 나오면 변화를 꾀했다. 


취업하기 전까지만 해도 스티브 잡스는 나의 멘토였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여러 번 인용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처럼 아침마다 일하고 싶어 죽겠다는 기분으로 직장에 달려가고 싶었고, 거울을 볼 때도 일 생각을 놓지 않는 사회인이 되고 싶었다. 막상 취업을 하고 보니 스티브 잡스의 말은 딴 세상 얘기였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 죽겠고, 피로에 절어 생긴 다크서클 때문에 거울 보기가 두려웠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 대답은 "아니"였다. 


<열정 절벽>의 저자 미야 토쿠미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좋아하는 일을 하라 Do What You Love, DWYL'는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근로자'를 이상적인 근로자의 모습으로 여기고 스스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허상에 불과하다. 좋아하는 것과 보수를 받기 위한 노동은 일치하기 어려우며, 행여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수를 받는다 해도 그 일이 즐거움과 행복, 자아실현으로 연결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구호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 승자독식의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것과 사랑과 열정, 행복 등을 임금노동과 연관 짓는 미사여구가 급증한 것은 무관하지 않다. "열정이 있는 곳에 성공이 따른다", "최고의 삶을 살라" 등의 구호가 늘어날수록, 근로자는 자신의 노동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것을 합리화하고 지나치게 일에 몰두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직장과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다. (당연하게도) 그 열매는 근로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몫이다.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없거나 사랑하는 일을 찾지 못할 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주의는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일을 제시했지만, 이런 일은 상당수가 비전문화되었거나 아예 사라졌다. ... 중간 수준의 괜찮은 일자리가 정말로 사라지고 있다면, 이제 사랑과 자율성이라는 미사여구가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정해야 한다. (p.107)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구호는 노동 환경의 변화로 인한 문제를 미온적으로 해결하려는 수단이다. 기계화와 산업화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소수의 간부급 임원과 고위 관리직을 제외하고 거대 조직을 뒷받침하던 중간 관리직이 대거 없어지고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하위직만이 남아있는 실정이다. 


대학(또는 대학원)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단순 업무를 처리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생활에 만족하게 하려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믿음만 한 것이 없다. 기업은 근로자가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인턴을 하고 취업을 하고 업무 성과를 올리고 승진 경쟁을 하는 모든 단계에서 근로자가 스스로 "이 일을 하고 싶다", "이 일을 좋아한다"고 인정하도록 강요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탈락시킨다. 근로자는 "이 일을 하고 싶다", "이 일을 좋아한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거나 거짓말을 해야만 기업에 남고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궁지에 몰린다. 


"전통적으로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답은 가정에서 일하는 여성이다. ... 이렇게 뿌리 깊은 성향은 가정을 벗어난 직장에서도 이어진다. 고분고분 협조하고 끊임없이 감사를 표하며 무상 또는 아주 적은 돈을 받고 일할 것을 강요하는 일자리는 전통적으로 불리한 조건에 놓인 여성들에게 주어지기 쉽다. (pp.122-1) 


저자는 여성 문제도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가정에서 식사 준비나 청소, 빨래, 육아 등을 담당했으며 이는 노동으로 인식되지도 않고 당연히 보수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이런 일은 "사랑과 의무의 표현"이며 "아내이자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역할"로 여겨졌다. 문제는 여성의 일을 저평가하는 인식이 가정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임금 차별은 국가와 직종을 초월하며, 특히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가 36.7%에 달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이는 남성이 100만 원을 벌 때 여성은 63만 3000원을 번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일을 좋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일을 좋아한다는 것이 적은 보상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감내하도록 강요당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을 따랐다가 내 노동을 헐값에 팔고, 일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휴일도 반납하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 떠맡아해야 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 노동'을 하고 있으리라. 언제쯤 이 문제가 바로잡아질까.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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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아버지들 -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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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빛낸 효성스러운 아들딸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눈먼 아비를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의 이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먹을 것이 떨어지자 제 살을 베어 부모를 먹인 자식,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삼 년 동안 묘를 지킨 자식의 이야기는 동네마다 집안마다 하나둘씩 있다. 조선을 빛낸 아들딸을 키워낸 어머니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율곡 이이와 이매창 등 조선을 대표하는 관료와 예술가를 키워낸 신사임당,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라'는 말을 남긴 한석봉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에 반해 조선의 아버지들 이야기는 들어본 것이 없다. 있다 한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영조와 사도세자처럼 불행한 부자 관계뿐이다. 


<조선의 아버지들>을 쓴 과학기술교육대학교 교수 백승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왕따'에 가까운 소외감을 느끼는 현상을 지적하며, 이 현상에 대한 해법으로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울 것을 제안한다. 물론 모든 조선의 아버지들을 보고 배우라는 것은 아니다. 유교 원리를 지배 체제로 택한 조선 사회에선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가장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효도를 받아야지,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사랑을 베풀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심청전>을 보더라도 심 봉사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 꽃다운 딸의 목숨을 앗아갔는데도 심판을 받지 않았다. 유교 사회는 오로지 자식만을 감시하고 자식에게만 효성을 강요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자녀를 지극히 사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15세기 성리학자 김숙자와 유계린, 16세기 성리학자 이황과 김인후, 명장 이순신과 명재상 이항복, 17세기 김장생과 박세당, 18~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 이익, 정약용, 김정희가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 11인의 아버지들과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불행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영조의 사례를 소개하며 오늘날 한국의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자녀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제시한다. 


이어서 아버지(정약용)는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다.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서울에 살 자리를 마련하라." 그 이유는 간단했다. "문화(文華)의 안목(眼目)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pp.39-40) 


이 책에 소개된 아버지들은 조선 시대 선비 하며 떠오르는 엄격하고 고루한 이미지와 다르게 자상하고 다정하다. 이황은 자녀들에게 잔소리 대신 편지로 가르침을 전했고, 김인후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딸을 위해 비통에 찬 시문을 남겼다. 이항복은 아들과 손자가 읽어야 할 책 목록을 친히 작성했고, 박세당은 병약한 아들이 눈에 밟힌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익은 자식들이 자신의 제사에 지나치게 공들이는 것을 염려해 검소하게 제사 지내는 법을 유언으로 남겼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며 가난과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정약용은 아내가 보낸 낡은 치마폭을 잘라 <하피첩>이라는 서첩으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의 교훈을 전했다. "하늘은 게으른 이를 미워하여 벌을 내린다.", "의복은 몸을 가릴 수 있으면 족하다.", "음식은 목숨만 연장하면 된다." 등 구구절절 고개가 끄덕여지는 교훈 중에서 "절대 서울을 떠나지 마라"는 교훈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죄인이라서 벼슬을 못한다고 시골로 내려가면 '문화(文華)'로부터 멀어진다. 지금은 폐족이지만 후손들을 위해 미래를 도모하라는 정약용의 당부가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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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귀양 생활 중에도 아들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친자식처럼 챙겼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