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100% 페이백]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 진실의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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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의 이름은>에서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는 시골에 사는 소녀 '미츠하'를 만나러 간다. 우여곡절 끝에 소녀가 살던 마을을 찾아내지만 그곳에는 마을이 있었던 흔적만 있고 소녀는 이름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세월호를 떠올렸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를 향해 출발한 세월호는 해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배는 선체만 남았고 그 안에 있던 304명은 이름으로 남았다. 영화 속에서 소년은 소녀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애쓴다. 우린 어떤가.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세월호 사건을 취재해 온 한겨레21 정은주 기자와 박다영 씨, 박수빈 변호사, 박현진 씨가 참여한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10개월 동안 세월호 관련 기록과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기울어지기 시작해 10시 30분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치밀하게 재현한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를 왜 못 구했는지,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지, 세월호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세월호는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지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101분을 그린 부분은 눈물 없이 읽기 힘들다. 승객들은 배가 기울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 이렇게 큰 배가 침몰할 리 없다, 침몰하더라도 해경이 출동하고 정부가 나서서 바로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배는 점점 급격히 기울었고 선내에 물이 들어왔다. 선내에 있던 가구가 쓰러지면서 다치는 사람도 생겼다. 선내에는 침착하게 대기하라는 내용의 안내방송만 울려 퍼졌다. 그 사이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의무가 있는 선장과 선원은 승객들을 뒤로하고 배를 떠났다. 구조 요청을 받고 출동한 해경은 배 근처에 오기를 꺼려 인근에 있던 어선이 대신 승객들을 구했다. 


정부의 대응은 더욱 기가 막히다.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즉각 대응에 착수하지 않고 대통령께 보고를 드리려면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정황을 알아야 한다며 해경을 채근했다. 해경은 대통령께 올릴 보고를 준비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구조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304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은 대형 사고인 만큼 책임자들 모두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건만 대부분 경미한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아직까지도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사고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모두 은폐하려 했을 뿐 아니라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난하는 여론을 조직적으로 조장한 혐의가 있다. 


영화 속에서 소년은 기적처럼 소녀를 다시 만나지만, 현실에선 세월호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은 가능하다. '그날' 세월호 안팎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 그들의 넋이라도 달래는 일은 가능하다.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 있는 자들을 처벌하는 데 관심과 노력을 더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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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더십 - 좋은 리더를 넘어 위대한 리더로, 인문고전에서 뽑아낸 리더십의 핵심
조슬린 데이비스 지음, 김지원 옮김 / 반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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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데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고전은 사람들을 이끌 방법을 찾을 때 그 위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둘째, 고전은 MBA 과정 안내문에서 볼 수 있는 주제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고전은 훨씬 더 큰 주제, 위대한 리더들이 잘 아는 분야를 다룬다.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마지막으로, 고전의 내용은 시대의 시험을 이겨 낸 것이다. 고전의 배경은 오래된 과거지만, 고전 속 인물들의 걱정거리가 우리의 걱정거리고 그들의 조언은 지금도 유용하다. (7쪽) 


'인문학 열풍'이 대세라는데 정작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알고 배우는 사람은 드물다. <인문학 리더십>의 저자 조슬린 데이비스에 따르면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MBA 프로그램과 경영 이론서보다는 셰익스피어와 마키아벨리, 제인 오스틴의 책에서 리더십에 대해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믿었다. 인문학 고전은 MBA 과정보다 훨씬 더 큰 주제를 포괄하며,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시험을 이겨냈다. 빌 클린턴, 마크 저커버그, 오프라 윈프리 등 성공한 리더 중 상당수가 고전 애호가인 것은 이 때문이다. 


저자는 총 24장에 걸쳐 리더가 알아야 하는 덕목과 리더가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한다. 제1장 '하나의 신화, 세 가지 진실'에서는 리더십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책으로 성경의 <탈출기>를 든다. 성경의 <탈출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히 출애굽, 엑소더스(exodus)라고 한다. 모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훌륭한 리더의 조건을 갖추지 못 했다. 성격은 내향적이었고, 겁이 많았으며, 말더듬증도 있었다. 하지만 신으로부터 위대한 부름을 받자 모세의 단점은 장점으로 바뀌었다. 내향적인 성격은 깊은 생각으로 이어졌고, 겁 많은 성격은 신중한 것으로 보였으며, 말을 더듬는 습관은 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세를 돋보이게 했다. 결국 모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리더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리더가 되었다. 


제2장 '여덟 가지 함정 :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는 리더가 된 사람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여덟 가지 함정을 제시한다. 여덟 가지 함정은 '맹점을 무시한다', '인간관계를 순진하게 생각한다', '감상적인 면을 깔본다', '단순한 답만 좇는다', '너무 일찍 승리를 선언한다', '적응에 실패한다', '남의 강점을 폄하한다', '지배하고 포기한다'이다. 저자는 함정에 빠진 리더의 예로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 왕>에 나오는 리어 왕을 든다. 리어 왕은 큰딸과 둘째 딸의 아첨에 속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딜리어를 알아보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좋은 리더라면 달콤한 말에 속지도, 쉽고 단순한 길을 택하지도 않아야 한다. 


저자는 이 밖에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플라톤의 <국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등을 읽고 리더에게 필요한 변화, 정의, 힘, 권위 등의 덕목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철학, 문학, 정치학, 사회학 서적 외에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같은 수기, 칼 융의 <심리학적 유형> 같은 심리학 서적도 있고, 노자의 <도덕경> 같은 동양 철학서도 있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 좋은 리더를 가려내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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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노엄 촘스키 지음, 구미화 옮김, 조숙환 감수 / 와이즈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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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가 이렇게 생겼나?' 책 표지를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촘스키 이름만 알았지 얼굴은커녕 사진도 본 적 없다. 그의 생애나 이론은 더욱 모른다. 이럴 때는 검색이 답이다. 위키백과를 찾았다. 


노엄 촘스키. 1928년 12월 7일생(내 생일과 하루 차이다!).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정치 운동가, 아나키스트, 저술가, 진보적 교수이자 좌파 학자이며 현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언어학과 교수다. 그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히브리어 학자이며 어머니는 벨라루스 출신이다. 그가 처음 접한 언어는 이디시어이고, 유대인 집단 거주 지역에 살면서 히브리어 문화와 문학에 노출되었다. 아일랜드계 가톨릭과 독일계 가톨릭 그리고 반유대주의 등을 경험한 바 있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한 것이 그를 언어학으로 이끈 것 같다. 


(잘 모르는 관계로) 촘스키가 언어학에 기여한 바에 대한 설명은 건너뛰고 정치적인 행보를 보았다. 촘스키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부터 미디어 비평과 정치적 행동을 활발히 했다. 그는 권위주의적인 국가에 비판적이며, 부시 정부 때 네오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자 미국 주도의 글로벌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촘스키의 저서 <패권인가, 생존인가―미국의 세계 전략과 인류 미래>를 보이며 "미국 국민은 꼭 이 책을 읽어야 한다."라고 했고, 그 다음날 이 책은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08년 대한민국 국방부는 촘스키의 책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두 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자유를 두려워하고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려는 이들이 늘 있게 마련이며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그 대열에 합류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아마도 국방부를 '자유,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국방부'로 개명해야 할 것 같다."라고 비판하며, 자신의 책들은 고르바초프 이전 소련에서도 금지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상 위키백과 '노엄 촘스키'편 참조) 


노엄 촘스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니 이 책 <촘스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언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는 언어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곧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것과 연관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각을 하고, 언어는 인간이 하는 무한한 생각 그 자체다. 


문제는 인간의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장 '우리는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서 인간의 인지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논증한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신체 능력과 유사하다. 신체 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인지 능력 또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한 이해는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3장에서는 '공공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논한다. 언어를 논하다가 갑자기 공공선을 논하다니. 뜬금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에 따르면 당연한 전개다. 인간은 인지적 동물인 동시에 사회, 문화, 제도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싶다면 언어와 인지능력만 살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의 역할도 함께 살피는 것이 지당하다. 저자는 아나키스트이지만 국가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로커가 말한 "공동체 이익에 부합하는 조직적인 관리"는 지지한다. 나아가 자치공동체와 일터의 폭넓은 연합도 지지한다. 저자가 반대하는 것은 공동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권력이며,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고 때에 따라서는 정치로부터 배제할 필요도 있다고 믿는 엘리트주의다. 저자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실상 귀족정치체제라고 본다. 이런 체제에서 대중의 처지는 노예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혁명은 가격에서 임금으로의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 노먼 웨어는 생산자가 자기 상품을 일정한 가격을 받고 팔 때는 "그의 인격이 유지가 됐지만, 그가 자신의 노동을 팔기 시작했을 때는 그의 인격도 함께 팔렸다"라고 말한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노예, 흔히 말하는 '임금 노예'가 되었다. (147쪽) 


4장의 제목은 '자연의 신비 : 얼마나 깊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이지만 실상 2장에서 논의한 인간의 인지능력에 대한 고찰로 돌아온다. 저자는 4장에서도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설명한다. 철학과 물리학, 뇌 과학을 넘나들며 설명을 시도해도 결론은 동일하다. 인간의 사고, 우주의 작동, 뇌의 작용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인간 또한 어떠한 존재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니!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을 알기 위해 이만큼의 철학적 논고가 필요한가 싶지만 의의는 있다. 저자의 언어학, 정치학, 철학, 물리학, 뇌 과학적 성찰을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따라가면서 인간은 결코 완벽하거나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며, 타인을 억압할 권리도 없고 타인에게 억압당할 의무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언어학자인 촘스키가 그동안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해온 것이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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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2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촘스키의 나이가 구순이군요. 리영희 선생은 촘스키 일년 동생입니다. ^^
 
궁극의 생명 Life - 위대한 석학 21인이 말하는 생명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최첨단 생명과학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5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이한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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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정치인과 경제인이 모이는 모임이라고 하면 뭔가 권력과 돈의 냄새가 풀풀 나지만, 세계 각국의 과학자와 철학자, 예술가, 기술자들이 모이는 모임이라고 하면 고도의 지식과 교양의 향연(이라고 쓰고 '덕후'들의 정모라고 읽는다)이 연상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모임이 있다. 1996년에 출범한 엣지 재단이다. 엣지 재단에는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제레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니스벳,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대니얼 카너먼 등이 속해 있다. 매년 런던, 파리, 뉴욕 등지에서 만찬회를 열며 활발하게 교류도 한다. 


엣지 재단은 책도 낸다. <마음의 과학>, <컬처 쇼크>, <생각의 해부>, <우주의 통찰>에 이어 최근에는 <궁극의 생명>이라는 책을 냈다. <궁극의 생명>에서 다루는 학문 분야는 생물학이다. 리처드 도킨스를 필두로 데이비드 헤이그, 로버트 트리버스, 에른스트 마이어, 스티브 존스, 에드워드 윌슨 등 진화생물학, 유전학, 정보과학, 생명공학 등의 분야에서 현재 최고의 업적을 자랑하는 학자들의 강의와 대담을 합해 17편의 글이 실렸다. 엣지 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https://www.edge.org/)에 접속하면 이 책에 담긴 강연을 포함해 지난 15년 동안 엣지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볼 수 있다(물론 다 영어다).


글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생물학을 포함해 과학 전반에 무지한 나로서는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은 글도 있고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글도 있다. 가장 편하게 읽은 글은 현존하는 최고의 진화 이론가로 손꼽히는 로버트 트리버스의 글이다. 그는 이제까지 해온 유전학 연구를 마무리하고 지금은 심리학 쪽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관심 있는 주제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편향된 정보 흐름이다. 그가 풀이한 바에 따르면 '무의식에서는 지극히 정확히 또는 어쨌거나 더 정확히 현실을 파악하면서 의식적인 마음에는 그 현실을 왜곡해서 전한다'는 것. 쉽게 말해 무의식이 아는 것을 의식이 모르는 (척하는) 현상이다. 


그는 이러한 '자기 기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살아온 이력을 들려준다. 어릴 때 그는 장난감 칼을 가지고 싶었는데 가격이 6달러였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장난감 가게에 갔더니 주인아저씨가 6달러가 아니라 6.98달러라고 했다. 가격표에는 6.98달러라고 쓰여 있는데 장난감 칼을 사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던 나머지 98이라는 숫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아주 작게 쓰여있기도 했다). 그는 이후 대학에 진학해 여러 번 전공을 바꾸고, 출판사에 입사했다가 대학원에 진학해 '나 자신의 번식에 성공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고생을 하면서 학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동안 그는 '그 문제를 생각하는 대신에 실천해왔기 때문에 그 문제를 강의하기가 난처하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기만과 자기 기만을 반복했다고 고백한다. 


로버트 트리버스의 글을 읽고 나서 책의 맨 처음에 실린 리처드 도킨스의 글부터 다시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훨씬 수월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과학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과학자라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뛰어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과학에 문외한인 게 부끄러워서 과학 공부해야지, 해야지 말만 했는데, 과학자가 쓴 자서전이나 과학자에 대해 쓴 평전을 읽는 걸로 시작해 봐야겠다. 아마도 그것이 나에게는 '궁극의 공부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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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만 하며 사는 법 - 원하는 삶을 이끌어내는 내 마음대로 사고법
고코로야 진노스케 지음, 정혜주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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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딨어? 그건 이기주의자야." 어린 시절 부모님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순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철석같이 믿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 돈을 못 벌고, 좋아하는 일만 하면 성공을 못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만 잘 벌고 성공만 잘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힘들다고 말들 하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직업이라는 이유로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이 책을 쓴 저자도 한때는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굳게 믿었다. 20년 동안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싫은 일을 많이 겪었지만, 싫어도 이를 악물고 견디면 언젠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업무는 점점 강도가 높아졌고, 취미 생활은커녕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인간관계를 망친 적도 많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좋아하는 일'을 하고부터다. 회사를 그만두고 심리상담사가 된 저자는 처음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홍보하고, 조금이라도 더 서비스하고 싶은 마음에 세미나 수강료도 낮췄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이래선 샐러리맨일 때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고 출장을 그만뒀다. 수강료도 받고 싶은 금액으로 올렸다. 그랬더니 수강생이 오히려 더 늘고 출판사와 방송사에서 제안이 잇달았다. 나 좋은 대로, 좋아하는 일만 했을 뿐인데,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 때보다 일이 잘 풀렸다. 


'남의 힘'이 많이 모여 움직일 때, 비로소 노력 없이도 '좋아하는 일'들을 점점 더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남의 힘을 움직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의 힘을 이용해야 합니다. (48쪽) 


'좋아하는 일'이 가진 힘은 무궁무진하다. 저자의 지인은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그는 어떤 배우를 정말 좋아해서, 그 배우를 만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배우의 에세이를 기획했고, 일하는 사이에 친한 사이로 발전했다. 에세이 표지는 평소에 좋아하던 그림 작가에게 일러스트를 의뢰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에세이가 몇 십만 부나 팔리면서 편집부에 인센티브가 지급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만든 책이지만, 관계자 모두가 이득을 보았다. 그가 남의 눈을 신경 쓰느라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주변에서 보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만 잘 벌고 성공만 잘 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렇다. 해당 분야의 문외한인 사람들이 보면 덕후라고 손가락질할 법 하지만, 그 분야에서는 남다른 식견과 비범한 취향을 인정받으며 '거장', '마스터'로 불리고 돈까지 번다. 무엇이든 깊이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 자신뿐입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습니까? 좋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은 사실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요. 정말로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인 척하지 않습니다. 이미 좋은 사람이니까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는 거죠. (163쪽)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지 못하게 막는 최대의 적은 '타인의 기준'이다. 남들이 나쁘게 볼까 봐,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 봐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저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싫어하는 일'이란 남들이 나쁘게 보는 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일이다. 


저자는 처음에 책을 냈을 때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책을 팔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 평범한 사람이 책을 냈으니 발품이라도 팔아야 비범한 사람의 발끝이라도 다다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은 처음부터 노력하지 않는다. 대단한 사람이므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이 사실을 깨달은 저자는 이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출판사 마케터가 "이제부터는 저희가 팔아보겠습니다.", "선생님, 맡겨만 주세요." 라며 발 벗고 나섰다. 출판사 직원들이 뒤에서 저자 욕 좀 했겠지만, 결과는 저자에게나 출판사 직원들에게나 좋았다.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고 숨긴다....... 그 선에서 끝나면 상관없지만, 숨겼던 것을 진짜로 싫어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은 정말 좋아하는데도, 얻을 수 없으니까 싫어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자신의 부모님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정말 좋아했다. 부모님께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부모님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실은 부모님이 싫었다'고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191쪽) 


좋아하는 일을 찾는 힌트는 '분노' 속에 있다. 정말 싫어하는 것, 용서할 수 없는 것, 화가 나는 것 중에 진짜 좋아하는 것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저자는 옛날에 지각하는 사람에게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다. 어느 날 '나는 지각하는 데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라고 생각해봤다. 그랬더니 '사실 나는 시간을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답이 나왔다. 실은 내가 지각을 하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에 맞춰 왔는데, 상대방이 지각을 하니까 분노가 터진 것이다. 


그때부터 저자는 시간 따위 지키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을 순순히 인정하고 적당히 살기로 했다.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운 만큼 상대방에게도 너그러워졌다. 내가 싫어하는 것, 용서할 수 없는 것, 화가 나는 것 중에는 어떤 '좋아하는 일'이 숨어있을까. 찬찬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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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16-12-1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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