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다. 시의 소재가 주로 달, 물, 산, 돌 등이니 잔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인의 두 번째 시선집이라고 하는데, 시인이 '근래에는 달과 별, 꽃, 무지개, 돌, 들에 마음이 빠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단순한 자연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이별과 만남, 삶과 죽음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습니다.'('시인의 말'에서)라고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아닌가 싶다.


 자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없겠지. 자연처럼 순환이 인간이 지닌 운명임을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을 영원히 살겠다는 욕심을 버리겠지.


세상에 죽지 않은 인간들이 계속 지구에서 살아간다면 도대체 지구가 몇 개나 필요할까? 몇 개가 뭐야, 우주 곳곳에 있는 행성으로 이주해도, 그 행성들도 곧 포화상태가 되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이주하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을까.


결국 자연은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데, 인간도 역시 그러한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지구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지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유한성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유한성을 거부하고 무한을 추구하는 인간들. 과학기술을 앞세워 영생을 추구하는 현재. 과연 우리는 자연에서 얼마나 멀어지려 하고 있는지.


자연에서 가장 멀어지는 것이 전쟁 아닌가. 무기, 온갖 무기. 이 무기들이 사람만 죽일까. 아니 지구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함께 죽인다. 그리고 쉽게 빨리 사라지지도 않는다. 전쟁이 남긴 상흔은 꽤 오래 간다. 상흔만이 아니라, 무기들이 남긴 오염들, 피해들 역시 복구하기 쉽지 않다.


하여 가장 반(反)자연적인 것이라고 하면 무기다. 최첨단 무기. 그러한 무기들이 지상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날아다니면서 많은 것들을 파괴하는 전쟁. 이 전쟁은 그 자체로 반(反)자연적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킨 사람, 자연을 거스르는 사람.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 인간이 거주할 지구를 파괴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세계가 과연 그러한가.


말이면 다 말인 줄 알고 뱉어내는 힘센 나라 대통령이란 작자. 제 나라 영토에 폭탄이 떨어질 일이 거의 없다고 남의 나라를 폭격하는 사람. 주변 국가들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사람. 그의 말은 폭탄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을 죽이는 그러한 폭탄들. 그 폭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강대국의 대통령이다. 이름을 말하기도 싫다.


시집을 읽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시집에서 어째서 그런 반자연적인 인간을 떠올리게 되었을까? 바로 이 시와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는 자가 그 자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 자가 이런 생각을 한 순간이라도 해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시를 보자. 제목도 '무지개'다.


    무지개


섬광이 터지고

사람과 사람 말 사이에

무지개 섭니다


저 무지개 걸어가려는 나의 무게는 너무 무거운 걸까요

내가 아무리 무게를 줄이려 하여도 한 마리 나비처럼은

될 수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 위에 그어진 무지개 위에 누군가 손짓하여 걸어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면

오오 무슨 마술을 부려서라도 내 마음을 나비 한 장의 무게로 변신시킬 수는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 무지개 위에서

내가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설혹 원수를 만난다 할지라도

외나무다리 아름다운 무지개다리 위에선


함께 부등켜 포옹할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리라


김선영, 누구네 이중섭 그림. 인간과문학사. 2013년. 119-120쪽


이럼 얼마나 좋을까.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 색색깔의 아름다운, 어느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다양함. 그리고 상대를 구속하지 않고 제 때가 되면 사라지는 그런 다리.


이 다리를 걷는 사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를 걸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절대로 말 폭탄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리라. 그리고 이런 사람은 자연과 사람을, 사람과 사람을, 아니 우주라는 존재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제 때를 알고 갈 수 있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일 텐데...


맑고 밝고 따뜻한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그것과 반대되는 이 지구의 현실에, 폭탄의 다리가 아니라 무지개다리가 서로를 이어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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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하트 - 제1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정아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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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 헌터' 생소한 말이지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찾아 연결해 주는 직업이다.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진 요즘, 이직을 하기 위해서 여러 조건을 따져야 하는데, 사람을 구하는 직장과 직장을 구하는 사람이 서로 맞아떨어지게 하는 역할, 그러면서 자신들의 수익을 챙기는 직업.


이 직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잘 연결해야 한다. 연결이 되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기업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그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의 능력, 조건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


연결하기 위해서는 양쪽을 다 알아야 하는데, 그래서 면접을 보기도 하는데, 이때 정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일까? 흔히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능력에 별 차이가 없다면? 경력이나 능력이 비슷하다면 무엇을 볼까? 외모? 아니다. 학력이다.


학벌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학벌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지금도 그러냐고? 아니라고 답할 수가 없다. 여전히 학원에서는 대학들의 순위를 무슨 노래 가사처럼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 서열이 의대로 인해서 흐트러졌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의대도 그러한 순위에 따라서 판단을 하니,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학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모던 하트라고 한글로 쓰여 있는데, 영어로 modern heart가 아닐까 하는데, 현대적 사랑 또는 현대의 열정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제목인데, 현대의 사랑이 무엇일까?


제목만 보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현대인들에게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직장. 좋은 직장은 무엇일까? 연봉이 높은 직장. 요즘에야 워라벨이라고 해서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연봉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좋은 조건이 바로 연봉과 직결이 되니까. 


이직을 하는 이유도 전부는 아니겠지만 연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테고, 연봉이 높은 직업을 갖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중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학력이다. 학벌이라고 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지라는 말이 얼마나 순진한 말인지를 헤드 헌터인 미연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 회사에 딱 맞는 사람임에도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뽑지 않는 경우가 있음을.


여기에 미연 자신도 학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고, 자신이 만나는 상대로도 좋은 학벌을 지닌 사람을 원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미연의 제부는 어떤가? 여동생인 세연이 결혼한 사람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그럼에도 사법고시에 합격하지 못하고 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빈둥대고 있는 인물, 빈둥대면서도 부끄러움조차 없는, 집안일은 자신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그런 인물. 


미안해 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런 인물에게 반한 이유는 바로 학벌이다. 이 학벌이 가정생활에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학벌에 연연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 미연의 가족, 또 미연이 연결해 주는 회사들의 인사 방침을 통해서 보게 된다. 그리고 미연이 사랑한다고 느낀 태환이라는 사람에게서도 이런 학벌의 후광이 자리한다. 


소설은 이렇게 우리 사회의 학벌을 꼬집는다. 학벌에 가부장적인 모습까지 겹치면 참 대책이 없다. 이 대책 없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설에 제법 나오는데,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 학벌 하나로 인정받은 사람들. 그들의 모습이 어떤지를 소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물론 학벌 좋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단 이야기는 아니지만, 소설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니...


결혼과 직장. 이 두 가지에서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헤드 헌터인 미연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지금은 이런 인습에서 벗어났으면 싶은데...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개정판에 실린 작가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인공지능 시대, 세상에 인간 중에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인공지능을 앞설 수 없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해야 할 이 시대에 여전히 학벌, 학벌한다면 과연 그것이 바람직할까.


학벌이 어떻게 우리 사회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 작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 희망...우리 역시 놓으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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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은 있는가요 - 정아은 추모소설집 marmmo fiction
장강명 외 지음 / 마름모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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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내게 정아은이란 작가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의 저자로 기억된다. 그 책을 읽으면서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야지 했는데, 작가가 세상을 뜬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알라딘 책 추천에서 '정아은 추모소설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어, 이 작가가 세상을 떴구나, 이 작가를 추모하는 문인들이 작품을 냈구나, 읽어봐야지 생각을 하고 책을 구입했으나,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우선 정아은 작가를 잘 모르고 있고, 그가 쓴 소설을 읽은 것이라고는 단편소설 하나밖에 없었으니, 작가를 잘 모르는데, 추모소설을 먼저 읽는다는 것이 조금 망설여져서 그랬는데...


그래도 이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지 않아도 작가를 추모하는 소설들을 읽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 추모소설이니까 정아은 작가와 관련이 있는 작품들이겠고, 제목이 '엔딩은 있는가요'니, 끝이라고 하기보다는 또다른 시작이라고, 이 작품들을 통해 정아은 작가의 작품에 다가가자고 마음 먹고 읽기 시작.


작가는 갔지만 작품은 남고, 또 그의 뜻을 이은 작가들로 인해 그의 작품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추모소설집답게, 소설을 쓴 작가가 정아은 작가와의 인연을 산문으로 쓴 글이 함께 실려 있으니...


그러한 산문을 읽으면서 정아은 작가는 참 따뜻한 사람이었구나, 그를 추모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니, 작가들이 각자의 작품으로 이렇게 추모를 하고 있으니 더욱 그의 소설을 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집에서 '전두환'이 등장하는 소설들이 있는데, 정아은 작가가 사회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작품에 담으려 했다는 점, 그리고 전두환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해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으니...


이 중에 정명섭이 쓴 '돌을 던지다'를 보면 옛날 풍경이 되살아난다. 무슨 대통령이 외국 순방을 마치고 왔다고 학생들을 동원해 길거리에 세워두고 박수를 치게 하던 그때의 모습.


민주주의 국가라는 곳에서,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하는 국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말을 하면서도 국민 위에 군림했던 그 시절의 모습. 


그런 대통령에서 돌을 던지고 싶어하는 아이들. 이런 소설이 바로 정아은 작가를 추모하는 방식이겠다.


따스한, 절로 웃음이 나오는 소설도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정아은이라는 이름이 직접 나오고, 유고집을 내려는 출판사 이야기가 나온다.


김현진이 쓴 이 소설의 제목을 왜 '오만과 판권'이라 했는지 궁금했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정아은 작가가 '오만과 편견'을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좋은 책을 내려는 출판사의 모습과 좋은 작가를 독자들 곁에 있게 하려는 노력들을 소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데, 그런 과정이 험난할 텐데, 그것을 따스하게 웃음지며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정아은 작가와 관련이 있는 내용들이 소설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이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정아은 작가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으니, 그래, 작가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와 얽힌 이야기, 또 그와 관련된 소설들을 읽었으니, 이제는 정아은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작가는 떠났지만 작품은 남아 있으니... 또 그를 이어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있으니, 문학엔 엔딩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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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한국사 - 우리는 무엇을 먹고 마시고 탐닉했나
김동주 외 지음 / 서해문집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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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우리가 주로 먹고 마시고 탐닉한 것들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여러 학자가 모여서 다양한 대상들을 탐구했는데, 그것들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우리들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오거나 중요하게 다가왔다.


처음은 밥에서 시작한다. 밥이라고 하지만 쌀이다.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쌀. 쌀 소비량은 많은데 생산이 적어 혼분식을 장려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를 한 적이 있었으니... 쌀밥을 싸온 학생은 벌을 받았는데, 이 책에 보면 그렇게 벌을 받은 학생을 부러워한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왜? 그 아이는 쌀밥을 싸오고 싶어도 쌀 수 없었을 테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쌀을 구할 여력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혼분식을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도 건강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혼분식을 장려하고 강제한 것은 쌀 생산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리 쌀 소비량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맛없는 밥은 잘 먹지 않았다. 생산량이 많은 통일벼가 실패한 이유가 바로 밥맛을 좋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 입맛까지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즘은 쌀소비량이 급격히 줄었고, 쌀만은 100% 자급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고 하는데, 과거에 이렇게 쌀을 선망하던 시대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이 책은 밥으로 시작해서 마약으로 끝난다. 마약, 한때 마약청정국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도 마약의 유통이 많아졌다고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으니... 하지만 마약을 소비하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관행이 굳어져 있는데, 공급원을 단속하고, 그들을 막을 방도를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이 책에서 마약을 다룬 저자의 주장이다.


식물에게서 추출한 마약 (대마, 아편)은 오래 전부터 비상 약품으로 쓰이기도 했고, 더욱 위험한 것은 합성 마약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마약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때로는 권장되기도 했다고 하니, 지금처럼 풍요로운 세상에서는 마약 문제는 공급을 차단하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동조하는데...


그렇다고 '소비의 한국사'라는 제목의 책에서 굳이 마약을 다룰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은 있다. 마약을 소비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니기 때문인데... 이 책에서 다루는 대상들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즉 대다수의 사람이 생활하면서 소비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마약을 제외하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것들 중에 이것들이 이렇게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왔구나,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는 것들이 이 책에 많이 나온다.


물... 이건 우리 생활에, 아니 생존에 필수적이다. 물이 없으면 죽는다.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수돗물을 마시는 사람보다는 생수를 사서 마시는 사람이 더 많다. 생수를 배달시켜 먹는 모습과 근대에 물장수들에게 물을 사서 먹는 모습을 비교하고 있는데...


물을 사먹는다는 개념이 생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식수가 부족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즉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식수 공급에 차질이 생기니 먼 곳에서 물을 길어와 생활을 할 수밖에 없고, 이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물장수였다는 것. 지금은 생수 판매자들이라고 해야 하는데... 수도 시설이 잘 되어 있음에도 생수를 사서 먹는 사람이 많다는 현실에 대해서 좀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해주었더라면, 왜 우리는 수돗물을 마시지 않고 생수를 사 먹게 되었나 하는 점을 밝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장이었는데...


'물'은 필수적이니 그렇다쳐도,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생활에서 거의 곁에 있는 소비 대상이 '라면, 커피, 술'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지금도 엄청나게 소비되고 있는 것들이 바로 이것들이니, 이런 소비 대상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글들이 있으니 읽을 만하다. 아, 이렇게 이것들이 우리 생활에 자리를 잡았구나 하는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는 내용들이 있었다.


음식과는 달리 우리 생활에 들어온 것들, 가전제품이다.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학교에서 가정형편조사를 할 때 이것들이 있느냐 없느냐를 물었던 때가 있었으니... 우리나라는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순으로 대부분의 가정에 보급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빨래를 담당하는 세탁기가 맨 뒤에 자리잡은 과정을 보면 우리 현대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바로 '식모'라는 존재인데, 이 '식모'라는 존재는 도시화로 인한 이농 현상과 연결이 된다. 농촌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에 도시로, 특히 서울로 나이 어린 사람들(식모들은 여성들이니, 여자들이라고 하자)이 올라오는데, 학력도 기술도 갈 곳도 없는 이들이 식모로 남의 집에 들어가 집안일을 하면서 생활을 하게 된 한국 현대사의 모습.


이들이 빨래를 했기에 굳이 세탁기가 필요 없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식모라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은 사회로 변하면서, 주부가 직접 빨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세탁기를 거의 도입하게 되었다는 말. 하... 슬픈 한국 현대사의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강남'을 보면, 왜 그곳에 집착을 할까 하지만, 현대판 신분을 말해주는 곳이 바로 강남이라고 할 수 있으니... '분당'-확장 강남이다-에 사는 사람은 성남에 산다고 하지 않는다. 분당에 산다고 하지. 마찬가지로 '동탄'에 사는 사람은 화성에 산다고 하지 않는다. '동탄에 산다'고 한단다. 이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닌데. 이것의 원조가 바로 '강남'이라고... 이것은 바로 지역을 소비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고.


이밖에도 '음악, 극장, 관광, 기차역, 장난감, 투기와 도박'등도 다루고 있는데... 이 중에 기차역에 관한 내용은 얼마 전 고속도로의 종점을 두고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권이 걸려 있는 일에 달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니.


다양한 소비의 대상들. 그것들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떻게 생활에 들어왔는지를,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관심 있는 대상을 골라서 읽어도 좋다. 그러면서 지금과 비교, 대조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비슷한 경우는 많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니까. 즉,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소비를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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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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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이 쓴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자수성가'라는 말로 정리되는 책이라고 생각했으니.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쉽게 '라떼는~'을 말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을 사회의 책임보다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J.D.밴스. 솔직히 모르던 이름이었다. 모르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름을 들었어도 관심이 없었다는 뜻인데,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부통령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것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정부에서 그 다음의 자리인 부통령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니, 내게 호감을 줄 리가 없다. 그런 사람이 쓴 책을 읽을 일도 없다고 여겼고.


40세에 부통령이 된 사람이니 좋은 환경에서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겠거니 했다가, 이병한의 글을 읽고 아니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자신이 성장한 환경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 정말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나이 불문하고 그들은 환경에 매몰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 자신은 그 소굴을 벗어났으니까. 그런 소굴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니까.


과연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면서 밴스 역시 사회, 국가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것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으니까. 비슷한 환경인데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 것을 사회나 국가에 미룰 수는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밴스가 극도의 가난을 경험했던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가난한 생활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살던 곳은 미국에서도 가난한 마을이었고, 대다수의 가정이 불완전했고 폭력적이었으며,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술이나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수 있었다. 그의 집안이 지닌 폭력성. 말보다는 몸으로 해결하려는 모습들. 수없이 이혼을 하고 마약에까지 손 대는 엄마. 아빠 없이 자란 밴스. 여기까지 그가 자란 환경을 보면 그 역시 폭력과 마약, 그리고 성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는 빠져나왔는가? 아니 그는 이런 환경에서도 또다른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사실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다른 것을 지니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고급 음식점에 가지 못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는 대신에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지만, 굶주림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에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또한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주려는 누나가 있었고. 이들이 다른 삶이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그에게는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는데, 대학에 가기 전 해병대에 입대에 학비를 마련하고, 어느 정도 성장을 한다. 대학에서도 공부에 집중에 약 2년만에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한다.


미국에서도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 정치인들이 나온 예일대에 다니면서 연애를 하고, 자신의 삶을 다른 세계로 옮기게 되는데... 여기까지의 과정을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성공담이다. 이 성공담을 통해서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그런 환경을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될까를 고민하는데...


개인이 중요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개인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혼자서 그런 환경을 벗어기는 무척 힘들다.


밴스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 누나, 이모들이 있었고, 자신에게 모범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우연히, 정말 우리가 말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처럼 그는 운이 좋았다고 자신도 이야기한다. 여기에 그는 백인이다. 자신은 와스프(WASP)가 아니라고 하지만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태어났다거나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라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라는 뜻이다. 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해보자. 전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여 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자신에게 다른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려운 환경에 그냥 빠져들기만 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노력하려는 자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노력하라고, 이렇게 또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자신이 믿는,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이야기한다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책임이 물론 크지만, 그러한 개인에게 다른 삶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회와 국가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아니겠는가?


즉 좋지 않은 공동체가 아니라 힘든 환경에서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충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정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와 국가의 의무다.


밴스는 부통령이 되었다. 과연 그는 그런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을까? 미국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내게는 그가 그런 정책을 펼치는지 알 수가 없지만, 트럼프라는 사람이 그런 정책을 펼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그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환경과 기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학교다. 의무교육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니, 학교에서 다른 삶을 경험할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 교육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학교를 통해서 다른 삶을 만나고, 보게 되고 또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며,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자신만이 겪고 있는 일이 아님도 알게 될 것이고.


신뢰받는 교사들이 있다면 학생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고, 또래 집단들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밴스가 예일대 로스쿨에 들어가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명문이라고 하는 학교에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전, 의무교육을 받는 동안 모든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한다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라도 다른 삶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에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위기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마음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는 잘 서술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내용은 없다. 구체적인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밴스가 말하듯이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 다른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것 말고, 사회가 국가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 미국 부통령이 된 지금, 그가 이 책에서 쓴 내용을 과연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없으니... 


자수성가한 사람, 진흙탕에서도 꽃을 피워낸 사람의 이야기로 읽기에는 좋지만... 그가 과연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런 정책을 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사회 제도를 바꾸려는 모습을 밴스가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책이다.


참고로 힐빌리는 가난한 마을 사람을 일컫는다고. 화이트 트래시 white trash 또는 레드 넥red neck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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