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국민이 합니다 : 이재명의 인생과 정치철학
이재명 지음 / 오마이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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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비상계엄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책은 그렇게 시작하지만 이 책에 실린 내용은 그 전부터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인생 역정이 간략하게 담겨 있는 책. 주로 그가 한 연설을 실었는데, 연설이 무엇인가?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해서 검증받으려 하는 일 아닌가. 자신에게 한 약속이기도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이기도 한 것이 바로 연설이다.


국회에서, 거리에서 한 연설이 이 책에 실려 있으니, 대통령이 되기 전에 한 연설이니까 더욱 의미있게 살펴야 한다. 연설할 당시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현할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물론 야당 대표도 어느 정도 이러한 정치철학을 실현할 수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통령만큼 정치철학을 잘 실현할 자리는 없다) 이제 그는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현할 자리에 있다.


그리고 1년이 되어간다. 5년 중 1년, 임기의 20%, 또 대통령으로서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때, 이때 그가 자신이 한 말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앞으로 남은 임기도 기대하면서...


아직 섣부른 판단을 할 수가 없지만,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어느 정도 실현가능한지는 판단할 수 있겠다. 정치인만의 정치가 아니라 결국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국민이 주권자로서 정치에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될 일이다.


결과를 떠나서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면, 그의 정치철학은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책을 통해서 이런 정책은 실현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국민소환제다. 누구를? 국회의원을... 그도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도록 하겠습니다.'(217쪽) - 2025년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3권분립을 하는 이유가 서로 적절한 견제를 통해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국회는 입법부로서 법률을 제정하기도 하지만, 행정부를 견제하기도 한다. 국정감사를 통해서 국민을 대변해서 공권력이 제대로 행사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제대로 못하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짬짜미가 되는 순간, 민주주의에서 멀어진다. 말뿐인 삼권분립이 되는 것인데...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가 결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또 국민들의 주권 행사를 위해서도 선출직 의원들을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는 필요하다. 


선거날 전까지 그들이 국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선거일이 끝나도 국민을 섬기도록 하는 방책이 바로 언제든 일을 잘못하면 소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면 선거일이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마지노선이 아니라 임기 내내 또 국회의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준비 기간 내내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실천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국민소환제'에 대한 논의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으니... 야당의 대표로서 국회에서 연설했지만 곧 대선이 있었고,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으니, 이것은 이제 국회, 특히 민주당의 몫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없던 일처럼 묻히고 말 것인가, 지켜봐야겠다.


다음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인데... 


'내란수괴 윤석열과 내란 잔당들이 대한민국에 가장 큰 위협입니다. 내란 세력의 신속한 발본색원만이 대한민국 정상화의 유일한 길입니다.'(133쪽) - 2024년 12월 27일 내란 사대 대국민 성명


하, 이거 아직도 진행형이다. 대통령이 바뀐 지 한 해가 다 되어 가는데, 재판은 지지부진이고, 판결은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고...


여전히 윤어게인을 외치는 집단이 있고, 그를 옹호하는 정당이 있으며, 이런 세력들과 손을 끊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이것 역시 국민소환제와 연결이 된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권한이 없을 때, 한번 선출된 국회의원은 국민의 뜻에 반할지라도 4년 동안의 임기가 보장이 된다. 그러니 누가 국민의 눈치를 보겠는가. 선거철이 임박해서야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하지... 


이러니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겠지.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지. 아직 한 해도 채 안 되었으니... 여러 정책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전 정부와는 다르게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 하고 있으니... 입틀막은 이 정부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발본색원의 주체가 국민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 실려 있는데, 대통령이 되기 전에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은 연설들이 주로 실려 있다. 그러니 이 연설들에 있던 내용들이 이제 하나하나 실현되기를 바라고...


적어도 이 말에 대한 믿음은 있다.


'정치에서 우선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의지와 방향이다. 능력은 그 다음의 문제다. 의지와 방향이 있다면 부족한 능력은 다른 쪽에서 끌어다 쓰면 된다. 그래서 능력의 유무는 차선이고 무엇을 지향하는가의 의지와 방향이 더 중요하다.' (159쪽)


이런 의지와 방향을 이번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라는 이름으로 표명했다. 국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이런 의지와 방향이 정해졌으니 이제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발탁해서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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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2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유라시아 견문 2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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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이다.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는 저자인데, 이번에는 미얀마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인도를 거쳐 이란, 이집트 등의 이슬람 국가들로 가는데... 정말 많은 나라들을 견문하고 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있지만, 그간 알고 있던 것들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많은 책이다.


저자는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또한 책에만 매몰되어 있지도 않다. 여기에 서구의 시각을 벗어나 있다. 현지에 가서 현지인들과 만나면서 현지 방송, 현지 언어로 자신의 견문을 넓힌다.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읽다 보면 저자가 상당히 많은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는 기본이고, 아랍어까지 공부를 한다. 왜냐? 한쪽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만 얻어서는 균형을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쪽 언어로 어떻게 전달이 되는지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현지의 언어를 공부한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2016년이 주요 시대다. 10년 전이다. 과거의 일이라 저자의 예측이 빗나간 경우도 있다. 당연하다. 당시의 눈으로 판단한 역사의 흐름이 그대로 전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은 방향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지만 순간순간 정체되기도 하고 방향을 살짝 틀기도 한다. 여기에 숱한 우연들이 겹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저자의 예측이 맞았느니 틀렸느니 따질 필요는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자세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저자의 주장이 어떤 의미인지, 그러한 주장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10년,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역사라는 긴 강물로 보면 아주 짧은 시간이다. 저자의 예측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선형으로 갈 수도 있으니까. 


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번에는 '인도'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의 분할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도 명확히 알게 되었고... 여기에 미국-영국의 식민지 정책이 한몫을 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고나 할까.


자신들이 싼 똥을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치우게 하고 있다는 생각. 이것은 중동도 마찬가지다. 중동을 화약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 중동 국가들이 이렇게 된 이유도 바로 유럽의 제국주의에서 기인한다는 것.


이들이 전파한 민족주의가 이슬람이라는 전체의 세계를 나라로 축소시키고, 다시 이들을 영국이나 미국같은 제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지지하고, 우호적이지 않은 나라를 적대하면서 갈등을 일으켰다는 것. 제국주의 분할지배가 성공하면, 그 다음에는 이렇게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를 통해서 보게 된다.


이슬람이 수천 년 여러 민족, 여러 종교들을 포용하면서 서로 공존하는 삶을 살아왔었는데, 이를 '움마'라고 표현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민족주의가 국가와 결합하면서 국경선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


최근에 다시 이슬람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세계화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저자의 예측이 있는데...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갈등이 사그라들 것 같았던 중동이 여전히 갈등 중이고, 이제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려 한다는 움직임마저 있으니.. 아직도 중동은 '화약고'인 것이 맞다.


물론 저자는 '중동'이라는 개념도 반대하고 있지만, 이 중동이라는 개념 역시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쓰고 있는 '유라시아'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번 권의 작은 제목이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인데... 여러 나라에 머물면서 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살피고, 그것을 세계의 관점에서 살피는 일. 그야말로 견문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학자들이 외국에 나갔다 와서 쓴 글들도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그 나라를 통해서 우리의 현재를 보고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는데, 이 책 역시 그렇다.


유라시아의 견문을 통해 현재를 살피면서 과거를 불러와서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이 바로 '히잡'에 관한 것이었다. '히잡'을 여성을 억압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슬람에서 히잡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나타나는 상징이 되고 있다고.


여성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히잡 착용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이 히잡을 다양하게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히잡'이 남성의 시선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는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점도 그렇고, 프랑스에서 히잡 착용을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종교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자, 우월의식이 발동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


똘레랑스의 나라에서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고, 그것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주는 것이 당연한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을까 했는데, 저자를 통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고.


할랄 음식도 마찬가지다. 할랄은 좋다. 건강한 먹을거리니까, 세게 도처에서 할랄 표시를 한 음식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이슬람에서 약간 비판적이라는 것. 왜냐하면 이슬람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데, 할랄 표기를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할랄 음식으로 번 돈을 자본 축적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쓸 때 그때서야 비로소 할랄 음식이라 할 수 있다는 말... 


이슬람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이번 권인데... 이런저런 그동안 한쪽으로 치우친 내 생각을 다른 방향에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유라시아 견문'이다. 이제 3권이다. 어떤 견문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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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 1 -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유라시아 견문 1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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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 된 책이다. 10년 전에 나온 책. 강산이 한 번은 변했다. 아니, 요즘처럼 격변하는 시대에는 강산이 여러 번 변한 시기이다. 강산만 변하나 하면 아니다. 세계가 변했다. 


따라서 이 책에 나온 내용이 시대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시에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현재를 읽고 미래로 나아가려고 했는데, 이 책에서 예측하거나 제시한 내용들이 이미 실행이 되었거나, 또는 실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10년이라는 세월이 아무리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어도 기본적인 원리는 바꾸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항들이 아니라 기본이 되는 원리, 원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짧은 시간에 바뀌는 정책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 저자 역시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그 점을 깨닫고 또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다.


저자가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보는 것은 세계를 남과 북으로 나누는 것,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는 것과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대결로 보는 것, 그리고 여러 종교들의 갈등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중 어느 하나로 치우치지 않는 융합이다.


즉 과거로부터 이어받을 것은 이어받고, 서양이든 동양이든 경계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체제,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세계화 시대가 당연히 그러하다고 생각하지만 예전에도 이러한 주고받음이 일상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가 간의 경계에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 확장이라고 해도 좋지만 경계를 열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유라시아를 통해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고의 유연성, 대책의 현실성, 그리고 근본을 찾으려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하나의 국가나 체제의 틀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그간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세계화가 지금 시대에 별안간 나타난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이미 있었음을, 당나라 때 수도인 장안은 국제도시였음을, 그리고 동남아와 중국, 남아시아, 페르시아 등등이 이미 교류를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모습들이 서양의 근대화로 인해 오히려 닫혀버렸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이런 국제적인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따라서 진보가 일직선 상에서 일어나는, 과거를 밀어내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에 불러와 미래에 통합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한다.


이슬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데, 이는 동남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문화권에 살고 있고, 이들의 문화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문화가 대립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저자가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순간 교류가 끊기고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보다는 배척하려는 모습이 우세하게 되었는데, 과거를 제대로 안다면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미래로 나아가기 힘들다는 것.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서 저자는 과거뿐이 아니라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2015년에 유라시아 견문이 시작되었는데, 오래 전 이야기라고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책이다. 지금도 우리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제시되어 있다.


특히 특정한 나라의 시각에 많이 치우쳐 있는 우리의 현실을 교정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2권, 3권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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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는 깨진 것들을 사랑의 얼굴이라고 부른다'('불사조' 중에서. 16-17쪽)


  이 구절이 충격이었다. 깨진 것들이 사랑의 얼굴이라니... 그러다 생각해 보니 사랑은 깨짐 아니던가.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것들이 깨졌을 때 비로소 상대에게 나 자신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이렇게 깨지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버려야 한다. 이 버림이 이루어지면 자신은 작아질 수 있다. 깨짐이 무엇인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점점 작아지면 컸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래서 작은 것들도 사랑하게 된다. 


수많은 작은 것들이 주변에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서 또 깨지고 깨지고, 깨지지만 죽지는 않는다. 이 시 제목인 불사조처럼.


불사조는 죽음에서 태어난 존재 아닌가. 그러니 불사조는 깨짐으로서 자신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다. 이 불사조와 연결되는 것이 '시인하다'라는 시다.


시인 역시 수많은 깨짐, 죽음을 거치고서 시에 자신을 불어넣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냥 한글로 '시인하다'라고만 되어 있어 무슨 뜻인지 고민해야 하지만, 읽어보면 시를 쓰는 시인이 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시인하다


스무 살의 나는 하루에도 아홉 번씩 죽었다

서른 살의 나는 이따금 생각나면 죽었다

마흔 살의 나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죽는 법을 자꾸 잊는다

무덤 속에서도 자꾸 살아난다

사는 일이 큰 이득이라는 듯,


살고

살아나면

살아버린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 

산문이 있었다


그걸 쓰느라 죽을 시간이 없었다!


박연준,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문학동네. 2024년 1판 5쇄. 125쪽.


이래서 시인은 불사조다. 시만 쓰지 않는다. 산문도 쓴다. 쓴다는 행위로 살아간다. 쓰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 열정으로 넘치던 20대에는 여러 번 죽을 수 있다. 그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들어 가면서 죽음의 횟수는 줄어든다. 다른 말로 하면 열정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할 수 있다. 열정이 줄어들었을 때 시는 멀어지기도 한다. 열정이 자신을 꽉 채웠을 때 시가 다가온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따라서 시인은 이때 산문을 쓴다. 쓰기를 버릴 수 없으므로, 더 깨지기 위해서 산문을 쓴다. 그래서 죽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시를 써야 한다. 살았으니까. 죽음에서 살아왔으니, 시를 써야 한다.


그러니 시집 제목이 된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했더니,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구절이 바로 '불사조'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불사조는 바로 시인이다. 이렇게 시인은 깨지고 깨지고 죽음에서 다시 태어나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 깨져서 작아졌기에 더욱 작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 죽음도 볼 수 있는 사람. 그러기에 '시인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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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의 조개껍데기
김초엽 지음 / 래빗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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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란 말이 생각났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아니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늘 생각한 것이, 또 SF라고 평가받는 소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낯설게 하기'다.


낯설다는 말은 곧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나'라는 자아가 있고, 이 자아와는 다른 '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때 낯섬이 일어난다. 즉 낯섬은 다름을 인식하는 행위다. 다름을 인식해야 변할 수 있다.


남을 인식하지 못하고, 남을 인식한다고 해도 나와 남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그냥 나의 다른 부분으로만 여긴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다. 변화는 다름의 인식에서 오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으면 갈등도 없다. 갈등은 낯섬과 마주쳤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즉 삶이 변화없이 잔잔하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서 앞으로 어떤 삶이 전개될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측불가능성, 이것이 낯섬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낯섬은 불안을 동반한다. 불안을 안정으로 해소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해소를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이 따르게 된다. 이 갈등이 바로 우리 삶이다.


그러므로 SF소설은 낯섬을 통해서 우리에게 삶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소설을 통해서 다름을 인식하게 되고, 이 다름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균일하고 평평했던 안정적인 삶에서 균열이 일어난다. 변화가 일어난다. 그럼에도 두려움과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소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과는 다르다. 


현실과 다름을 인식하고 읽어가서 실제 삶에서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 이렇게 다른 삶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소설 읽기의 즐거움이다.


김초엽 소설집을 읽으면서 낯섬, 다름, 그러면서 단순히 관광객이 아닌 내 삶에 그러한 낯섬을 끌어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관광과 여행을 구분한 사람이 있었다. 관광은 보고 지나침, 여행은 내 삶에 끌어오기였던가?)


적어도 같음만을, 단일함만을 추구하지는 않게 되었다고 할까? 낯섬이 작동하기 위해서 '나'를 인식해야 하듯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내 삶, 내 사고방식을 생각했다고나 할까.


나를 알지 못하면 낯섬을 경험할 수 없다. 낯섬이란 바로 '나'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초엽의 소설을 읽으면서 먼저 '나'를 생각한다. '나'를 생각하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니 나와 같지 않음을 생각한다. 다르지 않다는 말은 존재한다는 뜻이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서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면, 존재들은 모두 다름을, 심지어 '나'조차도 하나가 아님을 깨닫는 데서 나와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뭐,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작품을 읽으면 된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김초엽 소설들처럼 잘 읽힌다.


잘 읽히면서도 무언가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소설의 끝에 가서 더, 더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 어쩌면 계속되는 과정 속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도 있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를 생각할 수도 있고, 세상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고민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하나의 답이 없음을, 나 자신도 하나가 아닌데 어떻게 하나의 정답이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는 여러 삶이 있고 그러한 삶의 우열을 가려서는 안 되니, 이 삶이 옳다 그 삶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음을...


다만 관계를 통하면 자신만의 삶을 유지할 수는 없음을, 관계란 바로 낯섬에서 발동하고, 낯섬은 나와 너를 인식한 상태에서 서로가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잃으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는 관계의 시작임을 생각한다.


총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중에 다른 책에 수록된 작품이 네 편이다. 아마도 읽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이 소설, 어디에서 읽었는데, 어디였더라? 찾아보기도 했으니까.


예전 습관대로 소설집 뒤를 찾아보았다. 예전에는 소설집으로 단편 소설들을 엮어서 낼 때 그 소설들이 처음 발표된 지면을 알려준 적이 많았기 때문인데... 없다. 작가의 말을 읽어도 추천의 말을 읽어도 읽은 작품이 어디에 먼저 발표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런...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분명 읽었는데... 찾아볼 순 있다. 조금만 수고하면. 그 결과 종이책으로만 이야기하면, 먼저 출판된 책들은 다음과 같다.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자이언트북스. 2023년)

'양면의 조개껍데기' (팔꿈치를 주세요]-큐큐. 2021년)

'달고 미지근한 슬픔' ([다시, 몸으로]-래빗홀. 2025년)

'비구름을 따라서'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허블. 2025년)


여기에 '진동새와 손편지'란 소설은 '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의 의뢰를 받아 쓴 작품이고 이 소설의 한 문장 한 문장을 타이포그라피로 써서 전시도 했다고 한다. 이 전시 영상이 있는데... 이것도 보면 좋을 듯하다.


한국타이포그라피 학회 (http://www.k-s-t.org/vibrating-birds-and-handwritten-letter/about.html)


여기에 덧붙이면 이 책을 산 이유 중 하나가 비정기 무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출간될 때는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출간되자마자 사놓고, 이제서야 읽었으니...


한편 한편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겠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이 낯섬이고, 이 낯섬을 통한 관계 맺기는 결국 우리 삶은 과정에 있고, 늘 변화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마디 더 덧붙이면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편하게, 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은 '소금물 주파수'였다.


작가의 고향인 울산과 고래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이렇게 존재들이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낯섬이 불안과 두려움이 아니라 나와 남의 관계 맺기의 시작임을 또 그것이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고 있어서.


판매되지 않는 이 무크지에 실린 김초엽 자신이 이번 소설집에 대해 한 말을 끝으로 인용한다. 이보다 더 이 소설집을 잘 정리할 수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편협한 한 개인의 몸에 갇혀 살아가고,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고, 오해하고 충돌하고, 그러면서도 각자의 경계 밖을 이해하고자 갈망하고,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는 한계가 우리가 지닌 희미한 빛이자 가능성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여기 담긴 소설들은 그 한계와 가능성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초엽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출간 기념 무크지.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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