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 - 우리는 왜 강남에 주목하는가
김시덕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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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 유예가 없다는 발표. 그러니 다주택자들은 집을 팔라고 하는 정책. 그러자 똘똘한 한 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은? 이라는 의문이 나오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보유세 인상 운운하는 말이 나오고 있고.


그런데 똘똘한 한 채라는 말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건 강남에서 온 말이리라. 강남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보통 사람들은 살 수 없는 금액이 되었으니...


청년들이 집을 포기한다는 말이 나온 지가 오래되었는데, 이때 집을 포기한다고 했을 때 집의 기준이 강남이면 당연히 포기할 수밖에 없다. 무슨 집값이 평당 1억도 아니고 2억에 가까운지... 어떤 곳은 평당 2억도 넘으니... 누가 집을 살 수 있겠는가.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으로 강남 집값이 내려간다고 하는데, 그 폭이 몇 억이다. 그런데 몇 억을 내려도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다. 보통 서민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집값 상승의 원흉으로 불리는 강남. 도대체 강남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부촌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가?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은 어린 시절에 강남에 살았다고 한다. 그는 강남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체험만이 아니라 여러 자료들을 살펴 강남의 역사와 앞으로의 전망을 살피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강남하면 우리는 아파트를 먼저 떠올리지만 강남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들은 아파트가 아니라고 한다. 소위 주택이라고 불리는 집들과 빌라라고 하는 집들이 대다수고, 예전 골짜기에 아파트들이 들어섰다고...


이 아파트들도 계획적으로 강남 3구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들어섰다고 하는데, 본래 상습 침수구역이던 강남에 치밀한 대책 없이 아파트들과 도로들, 지하철이 들어서서 홍수에 취약한 점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강남 개발의 처음에는 강북에 살던 사람을 강남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이었으나, 집들을 지어놓고 교통 편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아 강북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는 사실.


여기에 지금의 잠실이 잠실도라는 섬이었는데, 강남 개발을 추진하면서 한강의 지류와 본류를 바꾸어 잠실을 강남에 묶어놓았다는 것. 지금 잠실 롯데월드 근처에 있는 석촌호수는 본래 한강이었는데, 강남 개발을 하면서 한강을 막아 호수가 되었다는 점.


강남 개발의 목적이 안보 문제였다는, 즉 강북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접해 있으면 유사시 피난하기가 힘드니, 인구를 한강의 남쪽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목적으로 추진했다고, 그래서 강남의 모 아파트 단지에는 총을 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었다고, 또 그린벨트라고 개발제한구역이 환경을 지키기 위한 목적보다는 군사상 안보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 등 강남의 역사에 대해서 시대 순으로 어떻게 개발이 되었는지, 그렇게 개발되었을 때 나타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강남의 역사를 알 수 있고, 또 앞으로 확장 강남이라고 해서, 강남의 미래도 알 수 있게 되는데...


정부 주도로 강남 개발을 하다가 도중에 더 남쪽에 관심을 두어 강남 개발에서 거의 손을 떼었다고 하지만,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어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점. 여기에 온갖 투기 세력들이 가세해서 더욱 집값을 올려놓았는데... 


한번 오른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고 또 많은 편의시설이 들어오면서 강남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강남의 집들은 똘똘한 한 채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강남이라고 해서 다 부유한 사람들만 산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비닐하우스가 있던 곳이 강남이라는 것, 강남 개발을 위해 쫓겨난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소수에게만 이득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남 개발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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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꿈꾸는가 - 인간과 비인간, 그 경계를 묻다
제임스 보일 지음 / 미래의창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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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말도 많지만, 아마도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있고, 세계가 다 연결되어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사이버) 세상에 집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정보들을 우리가 보고 이해하려면 평생이 걸려도 힘들겠지만, AI는 그렇지 않다. 순식간에 모든 정보를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재배열하기도 한다. 언어 사용이 그렇다. 이제는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언어 구사를 한다고 하니... 하긴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런 활동을 가지고 AI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인간과 같은 (또는 비슷한, 아니면 인간에 준하는) 활동을 하는 존재인데,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AI가 지닌 위험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래에 AI로 인해 벌어질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면서 우리 인간이 지닌 두려움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AI는 분명 지속적으로 개발될 것이고, 왜냐하면 이토록 매력적인 AI를 한 나라가 포기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런 기술을 선점한 나라가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가게 될 것이므로, 어떤 나라도 쉽게 AI 개발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지금 돌아가는 추세를 봐도 그렇다. AI에 대한 경쟁이 심해지면 심해졌지, 결코 줄지 않을 것이고, 이미 개발된 AI를 되돌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불가역성이라고 해야 하나? 한번 나온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이용되느냐에 대해서 합의를 볼 수는 있지만, 그 합의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것이 문제지만, 그래서 AI로 인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보다는 인간(인격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즉 AI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는 문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로 나아가게 된다고... 결국 타자는 나를 이해하기 위한 짝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AI를 인간이냐 아니냐로 판단하게 되면 결국 인간은 무엇이냐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직관적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구분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말 말고, 인간처럼 대우해야 한다는 '인격성' 개념으로 가면 달라진다.


비인간 존재들 중에서 인간처럼 대우받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법인'이다. 이런 '법인'의 사례를 잘 살펴서 AI에 대한 논의에 참고로 삼아야 한다고 한다.


'법인'을 인격성 있는 존재로 인정한다면, AI 또한 인격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인간-동물들은 어떤가? 이미 비인간-동물들을 인격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해서 소송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았는가.


소송에서 승소했느냐 패소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송의 당사자 (비록 대리인이 소송을 진행하기는 했지만)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들에게 '인격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키메라'와 같은 혼종 존재는 또 어떤까? 


인간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비인간-동물, 그냥 키메라로 통칭한다면, 이 키메라에게 인격성을 부여해야 하는가 하는 점도 문제가 된다. 


'인격성'이라는 말이 인간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격성을 지닌 존재로 인정한다는 말은 독립된 개체로 인정한다는 말. 즉 인간처럼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존재들을 인간의 이익만을 위해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기에.


저자는 '새로운 기술로 창조된 인공의 존재를 법적 평등권을 누리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의 일원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바로 내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였다'(312쪽)고 말하고 있다.


AI로 인한 유토피아냐 디스토피아냐를 따지기 전에 그는 먼저 우리가 창조한(?) AI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것인지를 생각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법인, 비인간-동물, 키메라와 같은 혼종 존재'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쉽지 않은 문제고, 이 책의 저자도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는 '우리 사회는 종 기반 논리 및 능력 기반 논리를 병행하는 이중 기준에 기반한 접근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즉,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능력과 무관하게 경계선 안에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핵심 원칙이다. 다만 인간이라는 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442쪽)고 하고 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이는 어떤 고민도 없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는 바로 종 기반 논리다.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인간의 범위를 종 기반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존재도 인간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그 능력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또한 문제가 된다.


인간과 비슷한 능력이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인간을 중심에 놓고 다른 존재를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종 기반 논리로만 인간을 정의해서는 안 된다고... 능력에 기반한 것도 포함해서 인간의 범주를 확장해야 한다고, 우리의 경계선을 넓혀가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미 인간 사회에서 법적인 권리를 누리고 있는 '법인'이고, 이를 참조한다면 AI를 인간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 즉 고차원적 지능 및 의식을 갖추고 추상적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격체'들이 이 행성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게 될 수 있다'(522쪽)고 하니,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의 경계를 넓혀가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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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 -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렉스 카프, J.D. 밴스, 이들은 미국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가 뉴 노멀 탐문 1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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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견문을 흥미롭게 읽었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어서,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해주어서.


이번에는 아메리카 탐문이라고 해서 기대를 갖고 읽었다. 미국이라는 나라 무시할 수 없는 나라 아닌가. 비록 저물어가는 제국이라고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미국이 앞으로 몇 년 몇 십 년 동안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트럼프 말고. 이런 예측불가능한 인간 말고, 이 예측불가능한 인간 뒤에 있는 사람들.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


누굴까?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일론 머스크? 그는 한 때 트럼프 행정부에서 관료들을 해고하는 첨단에서 활동했었다. AI시대에 관료주의는 걸맞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많은 관료들을 AI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


그래, 그는 화성으로 인류를 이주시키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고 했지. 지금은 화성보다는 달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하던데, 달은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니, 우선 달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다면, 또는 그곳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다면, 우주로의 꿈에 한발짝 다가갈 수도 있겠다.


일론 머스크 말고 나머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이들의 좌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 피터 틸이라고 한다. 실리콘밸리를 벗어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단지 관심이 아니라 미국 정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일론 머스크와 팔란티어 기업의 운영자인 알렉스 카프를 트럼프에게 소개하다시피 했다고 하니... 이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1기, 2기 모두) 승승장구하게 된 것도 피터 틸 덕분이라고 한단다.


이런 피터 틸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체제를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신정정치라고 할 수도 있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신념. 


종교는 영성이고, 이러한 영성을 잃은 사회에서 영성을 회복한 사회로, 그럼으로써 공동체를 중시하는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하는데...


조금 이상하다. 종교로 회귀한다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다른 정치인들은 고정관념에 빠져 있어 자신들의 주장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예측불가능한, 제멋대로인 트럼프를 잘만 조정하면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피터 틸의 수제자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트럼프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하고 있는 밴스라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미군에 각종 장비와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는 팔란티어 기업의 카프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력은 만만치가 않다고.


그 역시 피터 틸과 같이 종교와 정치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하며, 세계화를 거부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이 네 명이 대단한 건 맞아, 그런데 이 대단함이 인류에게 무슨 이익을 주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피터 틸이나 밴스가 주장하는 것은 종교와 결합한 정치이지만, 이것이 세계로, 인류로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 안으로, 그것도 백인들로 축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으니... 


트럼프의 이민자 정책이 그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 각국을 관세로 협박해서 자국에 투자하게 만드는, 백인들의 삶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는 현실이 무슨 종교와 정치의 결합이란 말인가?


종교는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지 않나? 이 사랑과 평화가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면 그것이 어찌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종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한데 종교란 이름으로 오히려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 아닌가. 이들이 참여하고 있는 트럼프 정부의 모습이기도 하고.


저자인 이병한이 이들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지만, 책의 말미에서 이들의 주장이 실현될 가능성은 10%도 안 될 것이라고 한다. 60%정도는 지금의 미국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흘러갈 것이란 예상인데... 그러면 미국은 곧 세계 최고의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들 주장대로 되어도 문제라는 생각을 한다. 팔란티어 기업만 보더라도 AI기술을 군대와 결합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군대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곳에 AI를 보급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런 사회에 과연 영성이 꽃필 수가 있을까?


힘든 일, 돈을 버는 일은 AI가 하고,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영성을 키우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생활 하나하나까지도 통제받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다른 존재들을 몰아내는 배타성이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되었는데, 이들 네 사람이 아무리 영성을 중시한다고 해도, 지금 나타나고 있는 모습은 그와 반대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기한이 정해져 있는 정치를 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들은 무기한 자신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정치를 하려고 한다. 마치 교황처럼. 아니면 플라톤의 철인처럼.


그것이 가능할까? 그러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종교와 결합하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현실정치에서 종교가 작동을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족쇄가 될 것인데, 그 족쇄는 다른 집단이라고 명명된 사람들에게 작동할 것이니, 포용이 아닌 배타가 만연한 사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사회가 바람질할까? 하는 생각.


피터 틸, 일론 머스크, 알레스 카프, J.D. 밴스를 다루고 있는 이 책. 이 네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데서 의의를 찾아야겠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미국이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고. 


AI시대. 지금까지 경험 못했던 세상. 예측하기도 힘든 세상. 그런 세상을 선도하고 있는 네 사람의 이야기니, 참조할 만은 하다. 이들의 삶이나 주장에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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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3-01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급해주신 알렉스 카프의 기술공화국 선언, 피터틸의 Zero to One 은 그 내용 자체로 보아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수 있다고 봅니다. 둘 다 법학과 철학 전공자들인데 극우성향을 보이고 있어 더욱 위험한 인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힘이 아주 강력해서 몹시 염려스럽군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kinye91 2026-03-01 16:18   좋아요 2 | URL
그래요. 저도 읽으면서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들이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 되면 안 될텐데, 참으로 예측하기 힘든 미래네요.
 
유라시아 견문 3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유라시아 견문 3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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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권이다. 유라시아라고 하면 결코 적지 않은 나라들이 포함되니, 책의 분량 또한 만만치 않다. 분량만이 아니다. 담겨 있는 내용 역시 그렇다.


그런 내용들이 과거에 주장했던 사실로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길잡이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가 예측했던 내용이 맞았다 틀렸다를 따지기보다는, 그때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 그 주장의 핵심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과거 사실의 실현 여부만 따져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가 주목한 것은 한 나라가 아니다. 특히 미국은 더욱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이미 저물고 있다는 그의 진단. 이 진단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미국이 하는 일들을 보면.


하지만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미국을 고립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이미 세계는 고립된 한 나라로서 존재하기는 힘들어졌다. 연결이 필요하다. 이 연결이 종교, 민족을 떠나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연결을 절대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무력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화 시대라는 말이 저물고 이제는 국가간의 각자도생의 세계가 된 듯하지만, 각자도생의 세계에서도 연결은 중요하다. 각자도생하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나라들과 연합해야 하기 때문인데...


세계 정세를 잘 읽을 필요가 있고, 일방향의 정보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편견에 갇혀 자신의 생각만을 고수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생각이 그런데,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저자는 이슬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다른 인식 중에 이란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지금 미국과 이란이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과거의 사례들로부터 찾아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만이 아니다. 러시아와 터키에 대해서도 저자는 다른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물론 시일이 좀 지나긴 했지만, 터키와 러시아의 지도자에 대해서 한 방향으로만 얻을 수 있던 정보를 다른 방향에서 얻을 수 있다.


이런 여러 시각. 그런 시각을 갖추어야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가 있다. 지구 속의 한 국가로, 이제 한 쪽을 보던 시각을 여러 방향으로 돌려야 함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


어떤 새로운 시각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도록 하자. 아마, 지금을 살펴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사항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권에 걸친 대장정이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만나고, 인터뷰한 내용도 담겨 있어서 다양한 시각을 만날 수 있다. 또한 3권의 마지막에 실린 에필로그는 이 대장정을 잘 정리해주고 있으니, 에필로그를 먼저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에필로그를 읽고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되짚어가는 것도 의미 있는 책읽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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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격조했습니다 - 편지로 읽는 한국문학의 발자취
이동순 지음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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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 시인이 받은 편지를 그 사연과 함께 실은 책이다. 잘 알려진 시인뿐만 아니라 평론을 하는 사람, 나중에 미술 분야로 나아간 사람 등등이 있다. 다른 분야로 나간 사람도 시작은 문학이었으니, 또 평론은 문학의 한 분야이니, 이 책은 우리나라 현대 문학에서 이름을 알린 문학인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공개했다고 보면 된다.


편지란 무엇인가? 이동순은 이렇게 말한다.


'편지는 읽는 재미, 보는 즐거움, 읽고 난 뒤의 가슴 설레는 여운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127쪽)


그렇다. 편지에는 쓴 사람의 필적이 담겨 있고, 필적을 보면서 쓸 때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쓸 때의 설렘과 보낼 때의 기대, 그리고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받았을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보내자마자 받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숫자가 편지에는 없다. 상대에게 잘 도달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상대의 답장을 받았을 때만 알 수가 있다. 그러니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 이제 우편으로 보내는 손편지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 거리에 흔하게 보였던 우체통을 보기 힘드니까. 우표를 사러 가는 수고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테니, 편지를 쓰는 사람도 거의 없겠지만, 편지를 보관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예전에 받았던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지 않으니까. 젊었을 때 편지를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멀리 떨어진 친구, 군대에 간 친구, 그리고 한참 어린 사람들, 나이든 사람들에게 보내고 받은 편지들. 이런 편지를 그냥 없애기는 뭣해서, 면장철에 보관해 놓았었다. 그런 면장철이 책장 한 곳을 다 차지하기도 했었는데...


하지만 시일이 지나면서 이사를 몇 번 다니고 또 다른 물건들이 많아짐에 따라 점차 내 곁을 떠나가게 되었는데... 가끔 그때 그 편지들을 없애지 않았다면 지금 어땠을까, 가끔 꺼내 읽어보면서 추억에 잠기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지닌다.


이동순 시인은 편지를 잘 모아두었나 보다. 편지를 꺼내 읽으면서 과거 추억을 되새기고 있으니...그러한 추억을 우리에게도 전달해주고 있으니. 그가 받은 편지들을 쓴 사람들의 마음, 그들과의 교류를 책에서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고 있다.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언행이 눈에 보이는 듯이 서술하고 있는 것은 이동순 시인의 능력이겠지만, 편지라는 형식이 그런 느낌을 지니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동순 시인의 이 말에 동감하게 된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엔 그걸 쓴 사람의 당시 마음가짐이나 필체, 영혼의 상태, 감정의 기복까지 담겨 있다. 그것은 그냥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온몸에 전해져 온다.'(164쪽)


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된다. 좋다. 여기에 잘 알려진 안도현 시인과의 인연은 문학에 관심이 있는 나조차도 잘 모르고 지나갔던 일들을 알게 해주었다.


안도현 시인이 고등학생 때 백일장에 나갔었고, 그때 심사위원이 이동순 시인이었다고. 안도현 시인이 시를 평해달라고 보내고 그러한 인연이 나중에도 이어지는데, 이들을 더욱 가깝게 한 시인이 '백석'이라는 것.


이동순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석 전집을 냈고, 안도현 시인은 [백석 평전]을 썼으니, 백석이라는 연결고리가 이들에게 또 있었다고, 시인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 둘은 사돈이 되었으니... 정말 인연도 이런 인연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실, 편지란 개인의 내밀한 속사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니, 편지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이동순 시인의 이 책 역시, 편지를 쓴 사람만이 아니라 편지를 받은 이동순 시인의 내밀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도 해주고 있다.


여기에 이동순 시인이 등단하고 얼마 안 되어 '명이(明夷)'라는 독서회 활동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명이'라는 독서회는 이 책에 자주 언급이 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받은 편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인데...이 '명이'라는 뜻은 주역의 36번째 괘 '지화명이(地火明夷)'에서 따왔다고 한다. '해가 뜨기 직전의 시간, 즉 캄캄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밝음'(91쪽)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명이' 활동을 함께 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쟁쟁한 사람들이다. '송기원, 김성동, 최원식, 이시영, 이동순'이다. 모두 우리나라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들과의 일화가 이 책에 잘 나와 있고...


이 일화 중에 흥미를 돋우는 것이 이들 모임은 김지하와 관련이 있는데, 김지하와 이동순은 밤새워 노래 대결을 했다는 이야기가 이 책에도 나온다. 


이렇게 여러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내용도 있고, 그간 알고 있던 시인들의 편지를 통해서 그 시인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던 책읽기.


이런 기회를 준 이동순 시인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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