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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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모파상과 체호프. 이 소설집에는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200쪽도 안 되는 분량인데 소설이 10편이면 평균내도 한 소설당 20쪽이 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만큼 짧은 소설들... 한때 우리나라에서 엽편(葉篇)소설이라고 부르던 길이다.

 

특히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은 짧아도 너무 짧다. 7쪽부터 12쪽까지니 겨우 6쪽짜리 소설이다. 그래도 한두 장짜리 소설보다는 길지만...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는 극적인 반전이다. 한 사건을 두고 인물의 심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짤막한 상황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체호프의 단편들에서도 그런 점이 잘 보인다. 그래서 단편소설의 대가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관리의 죽음'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운명을 두고 이렇게 짧게, 그것도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을 그리다니...

 

고사성어 중에 기우(杞憂)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기나라 사람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말인데, 이 말은 지나치게 섬약하여 모든 일에 걱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한다.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이런 섬약한 관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니 몸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극장에서 재채기를 한 번 했다고 며칠 동안을, 그 재채기로 인해 침이 튄 것을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했으니, 이 정도 심리 상태면 병이 나야 정상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신경을 쓸테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서 넘어가야 할 것은 과감하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일에도 무심한 듯 넘어가면 안 된다.

 

그것은 공감 능력의 상실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공감 능력의 상실이 더 늘어나는 현실에서 체호프의 이 소설이 공감을 받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리라.

 

"이거 또라이 아냐...이보다 더한 것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하나하나 신경쓰다 보면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하나?" 라고.

 

하여 요즘은 '내 탓이요'는 만병의 근원이요, 내 건강의 핵심은 바로 '네 탓이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잘하면 내 탓, 못하면 네 탓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바로 이 소설과 정반대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그래, 이 관리처럼 이런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정말 신경써야 할 일에는 신경써야 한다. 그것이 배려고, 함께 사는 기본 예의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이 선집에 실린 작품들은 다양한 주제를 지니고 있다. 불륜을 다룬 작품도 있고(공포, 베짱이), 남과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비극도 있고(드라마), 사랑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있고(베로치카),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일의 어려움(거울)과 살아서 위대한 사람도 금방 잊혀진다는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는 작품(주교)도 있다.

 

우리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이 소설집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소설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보는 것.

 

첫번째 소설인 '관리의 죽음'을 읽으며 내가 내 행동을 판단하는 상태는 어느 정도인지, 중용을 지키며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안 된다는 삶의 자세.

 

오래 된 소설이지만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의 흐름도 바꾸지 못하는 어떤 보편적인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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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2-2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제일 와닿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자세보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이 어렵다는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훅 치고 가는걸까요.^^

kinye91 2018-02-23 21:32   좋아요 0 | URL
헤. 정말 러시아 사람들 이름 어려워요...우리나라 이름이 대부분 세 글자라서 그런지 원...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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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7편의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소설집이다. 작가의 첫소설집이라고 하는데... 읽으면서 마음 속으로 서서히 들어오는 어떤 울림을 느끼게 된다. 공감을 느끼면서 소설의 주인공들의 마음과 같이 울리는 공명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렇게 이 소설집을 읽으면 마음이 울린다.

 

그렇다고 소설들이 밝지는 않다. 분명 어두운 분위기, 어두운 결말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잔잔하다는 느낌과 더불어 마음을 살그머니 흔드는 감동이 있다.

 

어두운 분위기에서도 밝음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소설집의 제목이 된 '쇼코의 미소'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들의 삶이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데, 읽고나서는 주인공들이 그래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온전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실제 생활이 어떠한지를 떠나서 마음에 위안을 주고, 행복을 준다. 그렇게 소설은 공감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이런 공감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작은 일에서도 틀어질 수가 있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기도 하는데... '한지와 영주'란 소설에서 보면 알 수 없는 이유로 좋았던 관계가 틀어지는 모습이 펼쳐진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공감해준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인지도 모를 이유로 멀어지는 관계, 우리의 삶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씬짜오, 씬짜오'라는 소설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가 한 말이 결국 묻혀 있던 진실을 대면하게 해서, 관계를 파탄내는 장면이 나온다.

 

독일에서 만난 베트남 부부와 한국인 부부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생활을 하지만 뜻하지 않게 나온 베트남 전쟁에서 저지른 한국군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이들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성심을 다한 사과가 있어야 용서가 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일본에게 그런 사과를 요구하지만 베트남에서 벌인 일에 대해 과연 우리는 제대로 진심으로 사과했는지, 반성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비록 자신이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국가, 자신의 민족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으면 어떤 관계든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정서가 바로 '공감'이다. 이런 '공감'으로 인해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나 '비밀' '미카엘라'와 같은 소설을 읽으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이런 삶들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삶을 사는 주인공들에게 마음을 주면서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집의 장점은 우리들의 공감 능력을 깨우쳐 준다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공감 능력을 우리 몸 곳곳으로 퍼지게 한다. 빠르게가 아니라 느리고도 아주 잔잔하게...

 

그래서 읽으면서 몸 전체에 공감이 퍼져나가게 된다. 소설을 읽으며 공감 세포들이 깨어나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말로 표현되지는 않더라도 우리들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공감들, 아주 작은 공감들, 그것이 우리를 삶으로 이끌고,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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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경쾌한 리듬에 맞춰

실낱같이 얇은 줄 위에

한 어릿광대

얼쑤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안간힘을 쓰며 잡는 균형


까마득한 하늘,

까마득한 땅,

하늘도 땅도 아닌

줄 위.


두 발로 딛기엔

너무도 좁아,

얼쑤

풍악을 울려라.

하늘, 땅,

다 잊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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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해설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자기 미화와 이상화를 온전히 걷어낸 묵묵한 성찰의 심연은, 시의 본질은 시적 관조이며 시인의 투명하고 맑은 조응 없이 시는 쓰일 수 없음을 적시한다. 되돌아보는 자로서의 이러한 '나'의 모습은 시의 성찰이 시인의 성찰과 한 몸이며, 시를 형성하는 시원(始原)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182-183쪽)
 
  '시의 끼어듦과 스밈과 호흡은 시인의 외로움과 눈물과 숨결과 바람이다. 시의 얼굴은 시인의 얼굴이다.' (196쪽)
 
  이처럼 시인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세상을 자신의 잣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처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우리에게 알려주는 능력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시인이다. 시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시인의 시가 시인의 삶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나라 대표 시인으로 꼽히는 서정주만 해도 친일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문단의 성추행, 성폭력 사태는 또 어떤가.
 
다른 존재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시인들이 자신들의 동료 문인, 특히 여성 문인들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우, 아니면 가벼운 농담이나 행위의 (? 성추행에 '가벼운' 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또는 '관행적으로'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대상으로만 여기고 행동했다는 폭로들이 잇따르고 있다.
 
전혀 시인답지 않은 행동. 시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인데... 남자라는 이유로 그것이 무슨 권력이나 되는 양 하는 행동들은 아무리 시와 시인을 분리해서 생각하자고 해도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한둘이 아닌데, 굳이 행동이 바르지 않은, 시만 번지르한 시인들의 시를 우리가 만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일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폭로와 더욱 조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옛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는 가부장제 사회였으니, 남자들은 세 끝을 조심해야 한다고.
 
세 끝. 혀끝, 손끝, 좆끝이다. 입 함부로 놀리지 말고, 손 함부로 놀리지 말고 (이것은 도박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더 강한데), 좆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것이다. 요즘은 이 세 끝이 모두 성과 관련이 있다.

 

혀는 성희롱, 손은 성추행, 좆은 성폭행... 이들을 구분한다는 것이 의미없지만 주를 이루는 것이 이런 요소들이라는 것인데...

 
따라서 이 세 굳이 남자만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면 조심해야 할 것들인데... 이것을 잘 지키지 않는 시인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400호 기념시집 '내 생의 중력'을 읽다가 김민정의 '젖이라는 이름의 좆'이라는 시를 발견했다. 이 시에 나오는 '어머 착해'라는 표현을 들을 수 있는 좆을 지닌 인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좆은 이럴 때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지, 상대의 의사와 반해서 놀리면 절대로 이런 소리를 못 듣는다. 그것은 그냥 썰어도 무방한 고기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젖이라는 이름의 좆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유치하다면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어쨌거나 우리 쥐면 한 손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아, 난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이 지극한 공평, 이 아찔한 안도)
 
섹스를 나눈 뒤
등을 맞대고 잠든 우리
저마다의 심장을 향해 도넛처럼,
완전 도-우-넛처럼 잔뜩 오그라들 때
거기 침대 위에 큼지막하게 던져진
두 짝의 가슴이,
두 쪽의 불알이,
 
어머 착해
 
홍정선, 강계숙 엮음, 내 생의 중력, 문학과지성사. 2011년 초판 2쇄. 146-147쪽.


시에서처럼 섹스는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 그 나눔 뒤에 오는 착함.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추행을 구분 못하는 사람은 시인이 아니다. 아니, 그는 직업인으로서의 시인이라고는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시인이라고 할 수 없어서 그렇지. 
 
젖은 생명을 키운다. 마찬가지로 좆도 생명을 잉태하게 한다. 비록 키우지는 못하지만 생명 탄생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축복받아야 할 생명 탄생에 잘못 쓰이는 좆은 젖이 아니다. 젖이 될 수 없다.
 
젖이라는 이름의 좆이 아니라 총이라는 이름의 좆일 뿐이다. 그런 총은 우리 사회에 필요없다. 그러므로 좆이 총이 아니라 젖이 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시인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새해에는 이런 '미 투(Me, too)' 운동이 과거의 것으로, 부끄러웠던, 그러나 이제는 없어진 그런 행동을 나타내는 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대가 많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좆을 총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좆을 젖으로 인식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젖이라는 이름의 좆' 정말 환상적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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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0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1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레카의 순간들 - 인류사를 뒤흔든 29가지 과학적 발견과 발명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51
김형근 지음 / 살림Friends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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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가장 배우기 싫은 과목을 꼽으라면 수학과 과학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과학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흥미에서 멀어진 과목이다.

 

예전에는 문과는 아예 난 과학을 못해, 그리고 하지도 않을 거야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에 가면. 그런데 지금은 이제 통합과학이라고 하여 문과도 과학을 해야 한다고 하니, 과학을 싫어하는 학생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참 재미없다. 실험, 실습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잘 마련되어 있지 않고, 수학을 잘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왜그리 계산식은 많은지... 결국 과학에 흥미를 잃고 수학을 포기한 학생이란 뜻의 '수포자'란 말이 있듯이 과학을 포기한 학생, '과포자' 또한 많이 만들어지고 만다.

 

과학, 우리의 생활에서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이렇게 배우기 싫어하는 것은 과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과학이 우리 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것 가르치지도 않는다. 오로지 점수만을 따면 그만이다.

 

또 과학 분야로 진출할 학생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소수의 과학도들을 위해 대다수의 학생들이 어려운 과학을 배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과학을 안 가르칠 수도 없다. 과학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에서 인문학이 필요하듯이 인문학에도 과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에 흥미를 일으킬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보충, 심화 학습을 하면 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쉽고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들, 발견들, 그것들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쓰이고 있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과학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로서도 과학적 사실이나 과학에 관한 역사에는 흥미가 가기 때문이다. 흥미를 가지면 과학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과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유레카의 순간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의 순간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 발견을 통해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 수 있고,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어떻게 발견되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자들의 열정, 노력, 끈기, 관찰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더 좋다. 특정한 어떤 사실보다는 과학적 발견을 이루기까지 지녔던 자세들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냥 과학시간에 이런 책을 읽는 상상을 해본다. 재미있게 읽고, 이 중에 흥미로운 부분에 대해서 더 찾아보기를 하고... 등등.

 

이미 알고 있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처음 알게 되는 장면들도 많았다. 그러한 발견을 29가지 이야기해주고 있다.

 

발견의 순간이라든지, 발견자를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것보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발견을 했는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결국은 필연이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우연히 발견했을지라도 그 우연을 만나기까지 했던 엄청난 노력들, 끈기들, 실패들이 우연을 필연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자세... 그것만 제대로 배워도 '과학'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과학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도 이 책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과학이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 삶에서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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