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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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간송미술관도 가보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하는 간송전도 가보았지만, 그 문화재들이 얼마나 힘들게 우리 품으로 돌아왔는지는 실감하지 못했다.

 

그가 갑부였지만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구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 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손에 들지 못했던 책인데,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 집에 사놓고 소장하면 좋겠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빌려보기로 한 것.

 

책을 펼치자마자 약간의 실망을 했다. 어라, 완전히 사실이 아니었어. 평전이 아니네. 그렇다면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유족들도 줄거리 구성에 허구(상상)가 있음을 밝히는 조건으로 출판해 동의해 주었다(10쪽)는 말이 있으니, 그래도 역사소설처럼 사실에 기반한 책임을 알 수 있어서 계속 읽기로 했다.

 

간송 전형필을 아는데 처음에 소설을 읽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무엇보다도 간송에 대한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인데...

 

이 책은 평전이라고는 할 수 없고, 팩션(팩트+픽션: 사실에 기반하여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으니, 80%이상은 사실일테니, 구체적인 상황은 상상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

 

몽유도원도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 사실, 모두 간송의 손에 들어온 작품들이니 그 작품들의 구입 정황이 상상력을 동원하여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는 장점이 있다.

 

시종 눈을 떼지 못하게 흥미롭게 전개되는데...

 

우리 문화재를 우리 것으로 하는데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니, 단지 돈이 아니라 민족의 얼을 보존한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문화재를 수집하고, 그것을 개인박물관을 만들어 보관하여 후손에 전해주는 과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간송미술관을 다시보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문화적인 면에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운 나에게 그래도 간송전을 세 번 봤다고 반가운 작품들이 곳곳에서 나오니 더욱 흥미로웠고, 그 문화재들에 얽힌 사연들을 읽게 되고 책에서는 또 사진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니 문화재들이 더더욱 아련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

 

일본으로 또는 외국으로 아니면 사라질 뻔한 문화재들을 살려 우리 곁으로 되돌려준 간송. 그의 일생은 당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흐르면서 더욱 빛나는 삶이 됨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가 있어서 좋았다.

 

매년 개최하는 간송전, 이 책을 먼저 읽고 가면 더욱 감상하는데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얼마나 좋은가. 내가 보는 그림, 도자기, 불상, 석조물 등에 이러한 사연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보는 재미가.

 

이런 문화재는 한 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간송처럼 보고 또 보아도 언제나 우리 마음을 울리는 맛과 멋이 있으니...

 

멋있는 사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런 그의 멋이 우리의 문화, 우리의 얼을 살려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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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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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이제는 많이 알려진 이름이지만 예전에는 알아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는 단지 북한에 남았다고 남한의 문학사에서 지워진 이름이 되었다. 지워진 이름으로만 남았으면 다행이었겠는데, 그의 시집을 지니고 있으면 반공법, 국가보안법에 걸리곤 했으니, 해방 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백석을 알기에는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백석이라는 이름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의 논문에서도 백석 시연구가 유행을 했고, 그의 시전집이 나오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백석은 일제시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존재하기 시작했고,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서도 그의 작품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난 백석 시가 좀 어렵다. 그가 구사하는 평안도 사투리가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 않고,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으니 마음을 잘 울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자야와의 일화까지 덧붙여져 백석의 숨결을 느끼러 길상사에 들르는 사람도 생길 정도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백석은 우리나라 시사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이런 그를 언제 죽었는지, 일제시대가 아닌 남북으로 분단된 다음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다행이 최근에 와서는 그에 대한 자료를 구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또 직접 시인이 만나고 다녀서 조사한 바를 정리해서 완결된 '백석 평전'이 나왔다.

 

'연어'로 유명한 또는 소위 '연탄재'라고 알려진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로 유명한 안도현이 자신이 존경하는 백석에 대해서 평전을 쓴 것이다.

 

안도현은 자신에게 시인의 길을 알려준 사람이 백석이라고 한다. 또 우리나라 시인들이 뽑은 대표적인 시집에서도 백석의 '사슴'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시집으로 뽑히기도 했으니, 그의 영향을 받은 시인은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한둘이 아니다.

 

그 중 이 책의 뒷부분에 실려 있는 이동순의 글을 보면 안도현이 백석의 영향을 다분히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유명한 시인 한 명을 더 덧붙이자면 '신경림' 시인 역시 백석을 존경하고 그의 시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안도현, 시인으로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시인이기도 한 그가 그에게 영향을 준 시인인 백석에 대해서 연구하고 책을 낸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분단이 된 이후 북한에서의 백석의 활동을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안도현의 표현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분단 이후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작가는 살아 있는 표현을 하고 있어서 백석의 전 생애를 연결지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평전이라고 해서 일반 위인전처럼 생애를 간추리고 작가의 평을 간략하게 써넣는 것이 아니라 백석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책의 곳곳에서 그의 삶과 시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평전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백석 시를 만나게 되고, 백석 시가 왜 좋은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또 시만이 아니라 백석의 수필도 많이 수록하고 있어서 백석 글의 특징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백석의 공과를 떠나서(사실 그에게 공과를 따질 수는 없다. 그는 어떤 이념적 지향을 지니고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고향이 북쪽이었고 가족이 그곳에 있었기에 거기에 남았다고 하면 된다. 공과를 따진다면 그와 관련된 여인들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는 시인으로 살았고, 시인으로 우리에게 남았다고 보면 된다.

 

천상 시인은 시인이다. 시인에게서 시를 앗아갔을 때 그 때 시인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니, 그가 시를 쓰지 못하게 된 1963년 이후의 백석은 우리에게서 자연스레 잊혀져 갔을 뿐이다.

 

다만 그 이전의 시들은 우리에게 남아 끊임없이 백석이라는 이름을 우리가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백석의 위대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덧글

 

이 평전을 읽으면서 안도현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제시대 가부장제가 극심한 그 시대에 백석은 결혼을 두 번(혹은 세 번)이나 하고도 도망치고 만다. 그렇다면 그와 결혼을 했던 여인들은 어떻게 됐을까? 이 책에서는 모른다고 한다. 다만 그들이 결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을 것만은 분명하다고 당시 일어났던 사건을 예로 들어주고 있다.

 

결벽증에 가까운 태도를 지니고 있던 백석이 이런 여인들에게 준 상처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을까? 그런 궁금증...

 

읽다가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물론 전체적인 글 내용에는 치명적이지 않은 그리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평전인데... 정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

 

우선 110쪽 날짜 계산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정월 대보름이라면 양력으로는 1월 9일이다.'는 구절이 있는데, 통상 음력이 양력보다는 빠르다. 하여 달력변환기로 찾아보았더니 음력으로 1936년 1월 15일은 1936년 2월 7일인데...

그냥 보름이라고 하면 음력으로 1935년 12월 15이 양력으로 1936년 1월 9일이니 이해가 되는데... 정월대보름이라고 해놓고 어떻게 양력 1월 9일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는 백석이 통영을 방문한 기간을 확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백석과 만난 여인들 이야기 중에서 최정희, 노천명, 모윤숙에 관한 부분

95쪽에서는 '백석보다 여섯 살이 많은 최정희는...'이라고 했는데, 159쪽에 가면 '백석하고 최정희는 동갑이었고, 노천명은 이들보다 한 살이 많았으며...'라고 했다.

최정희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어떤 곳은 1906년생이라고 하고, 어떤 곳은 1912년 생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정확한지 이 평전에서 알려줘야 하는데, 두 나이가 함께 나오고 있다. 어느 것이 맞을까?

그리고 노천명도 찾아보니 1912년 생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러면 백석하고 동갑인데, 호적이 잘못된 것인가? 이에 대한 이야기가 보충설명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280쪽. 아주 사소한 것

'암말과 당나귀 수컷 사이에서 태어나는 2세가 노새다. 노새는 당나귀보다도 체구가 작다'고 했는데, 교배하여 노새를 낳게 하는 이유가 당나귀보다도 힘이 센 동물을 만들기 위해서 아니던가. 그러면 상식적으로 노새가 말보다는 작겠지만 당나귀보다는 커야 한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 평균적으로 노새는 당나귀보다도 체구가 크다.

 

내 책만 이런가? 이미 수정이 된 것인가.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닌가 해서(가끔 눈이 나를 배신하는 적이 있으니) 여러 번 보았는데 2014년 6월 30일 초판 3쇄인 내가 본 책은 이렇게 되어 있다.  

 

참 사소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작고 하찮고 쓸쓸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시인이 쓴 평전이니 한 번 살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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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상 돌아가는 일을 보면서 다산 정약용이 생각났다.

 

그가 살았던 시대...

 

정조 집권기 희망에 불타던 시대. 무언가를 할 수 있었고, 하게 했던 시대. 그래서 꿈많은 젊은이들이, 능력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꿈을 펼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시대.

 

온갖 사상들이 들어오고, 실험되고 정치권에 반영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사상들이 탄압을 받을 전조를 마련하기도 했던 시대.

 

그러다 곧 정조의 사망 이후 닥친 광풍의 시절...

 

꿈많던, 능력있던 사람들이 찬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던 시대. 굳건하게 버티려고 하던 잎들을 일부러 날려버리던 시대.

 

다산은 두 시대를 견디어 내었다. 그는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또 밀려난 다음에는 집필을 통하여 자신의 사상을 가다듬고 남겨두었다.

 

그런 그가 쓴 한시에는 시대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고, 그 시대를 건너가는 지식인의 삶이 온전히 드러나고 있다.

 

어떨 때는 그의 목소리가 걸러지지 않고 나타나기도 하고...

 

학창시절 배운 '적성촌에서'나 '애절양' 말고, 다산의 한시집을 다시 읽으니 마음에 쏙 들어오는 시들이 있다. 물론 한시를 읽어낼 능력이 없어서 번역한 한시집을 읽었지만 말이다.

 

한문으로 읽지 않아도 그 마음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리고 다산은 지금의 나에게 묻는다.

 

네가 사는 시대는 어떤가? 설마 나와 같은 시대는 아니지? 나와 같이 이런 노래들을 부르는 시대는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아니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해야 하는데, 왜 그런 말을 할 자신이 없지. 왜 자꾸 다산이 떠오르지. 그가 살았던 시대가 떠오르지. 그의 시대와 지금 시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왜 들지. 

 

그가 견디어 내어야 했던 그 시대가!

 

다산이 쓴 시 세 편을 보자... 과연 지금과 다른지. 

 

남의 것 본뜨기에만 정신 없으니

 

슬퍼라, 우리나라 사람들이여

자루 속에 갇힌 듯 너무 외져라.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이고

북쪽엔 높은 산이 주름졌어라.

팔, 다리가 언제나 굽어 있으니

큰뜻이 있다 한들 무엇으로 채울 건가.

성현께선 만리 밖 먼 곳에 계시니

그 누가 이 어둠을 열어 주려나.

머리 들어 인간세상 바라다봐도

밝은 마음 가진 사람 보기 드물고,

남의 것 본뜨기에만 정신 없으니

정성껏 자기 몸 닦을 틈이 없어라.

무리들이 어리석어 바보 하나 떠받들고

야단스레 다같이 숭배케 하니,

질박하고 옛스런 단군 세상의

그 시절 옛 풍습만 못한 듯해라.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28쪽

 

지구화 시대... 우리는 아직도 다산이 한탄한 그런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고...

 

그래도 다산 시대는 한반도가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남북으로 갈려 육로로 대륙으로 진출할 길이 막혀 있으니, 다산 시대보다 더 못한가...

 

다음 시.

 

     고관집 아들

 

고관집 대문 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땅에 떨어지자마자 당장 귀한 몸 되네.

아이 때부터 아랫사람 꾸짖는 법을 가르치니

총각이 되면 벌써 오만스레 고갤 세우네.

아첨하는 식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팔찌도 걷어 주고 버선까지 신겨 주네.

잠자리서 너무 일찍 일어나지 못하게 하니

아들이 병이라도 날까 두려워서라네.

높은 벼슬 저절로 굴러들테니

애써가며 글공부 쌓지도 않네.

 

 

그 아이가 자라더니 과연 드날려

말 탄 채로 대궐에 들어가더라.

말 달리는 게 마치 나는 용 같아

네 다리가 하나도 땅에 닿지 않더라.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65쪽

지금 서울대 입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해보면 이 시에 나타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굳이 서울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재계, 정치계에서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옛말이 되어 버렸다고 한탄하는 소리도 들리고. 

 

이런 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떨까? 세상을 변혁하고 싶은데, 할 수는 없고, 오히려 자신은 멀리 쫓겨나 버린 상태. '비정상의 정상화'가 아니라 '정상의 비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는데...

 

       근심에 쌓여

 

어렸을 땐 성인(聖人) 배울 생각했었고

중년 들며 점차로 현인(賢人)이라도 바랐어라

늙어 가며 우하(愚下)도 달게 여겼지만

근심에 싸여서 잠들 수 없어라.

 

한 알의 야광주가

장삿배게 실렸다가

바다 복판서 바람 만나 가라앉으니

만고에 그 빛이 빛날 수 없어라.

 

취하여 북산에 올라 통곡을 하니

울음소리 푸른 하늘 끝까지 닿았네.

옆 사람들 내 뜻을 알지 못하고

내 한몸 궁박해서 운다고 하네.

 

술 취해 정신 없는 사람들 속에

몸가짐 단정한 선비가 있네.

모두들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이 사람만 미쳤다고 몰아세운다네.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120-121쪽

 

답답하다. 다산이 다시 이 시대에 와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세상엔 이런 미친 사람 대접받는 사람들에 의해 바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역사의 법칙이다. 우리 인간이 걸어온 길이고, 걸어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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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세우기 치료 - 트라우마에 대한 통찰과 해결
최광현 지음 / 학지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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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전 사회적으로 트라우마가 넘치는 시절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곳곳에서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일들이 어찌 그냥 넘어가겠는가.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남아 우리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그런 트라우마, 해결하지 않고 넘어가면 비록 내 대가 아니더라도 후대에서라도 발현이 된다고 하는데... 이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가족세우기 치료'를 들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가족세우기 치료에 대한 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데, 작은 제목이 '트라우마에 대한 통찰과 해결'이다.

 

자신이 일으킨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 일어난 일들이 자신에게 나타나기도 한다는 사실에 착안해 가족구성원의 세우고, 그 관계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일.

 

가족세우기 치료는 문제점을 찾아내는데서 시작한다. 일반적인 가족치료와는 달리 내담자의 가족 상황에 대해서 시시콜콜 알려고 하지 않고, 큰 틀의 사건들만을 알고 여기에서 가족들을 한 자리에 세우는 과정을 통해서 문제점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문제점을 찾아내면 어느 정도 해결책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가족세우기 치료에서는 딱 이렇게 하는 것이 문제해결점입니다 하고 제시해주지 않는다.

 

단지 관계를 통해서 문제점을 파악하게 하고, 그 문제점을 받아들이게 한다. 문제점을 받아들인다는 것, 이것은 내가 책임질 일과 다른 사람이 책임질 일을 구분하는 일이고, 내가 부담하지 않아도 될 부담에서 벗어나는 일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상담자는 적절한 치유 언어를 구사해야 하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음을 속단해서는 안된다.

 

문제 해결은 내담자가 꾸준히 그 관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받아들이는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세우기 치료는 가족간의 관계를 중시하고, 가족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대리인을 통해 그 가족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다는데 장점이 있다.

 

당사자가 아니기에, 또 가족 간의 관계나 문제를 자세히 알지 못하기에 가족 세우기 자리에서 자신이 느낀대로 이야기할 수 있고, 이를 지켜보는 내잠자는 그러한 활동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족세우기 치료에 대해 이 책에서는 맨 마지막 부분에 구체적인 사례를 세 가지 제시해 주어 어떻게 가족세우기 치료가 이루어지는지 보여주고 있어서 생생하게 가족세우기 치료를 접할 수가 있다.

 

가족세우기 치료 안내서 답게 가족치료와 가족세우기 치료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으며, 가족세우기 치료의 절차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으며, 주의해야 할 점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문제가 내 문제만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임을, 또 사회의 문제임을, 그래서 가족세우기 치료를 해봤으면 하는 사람이 생각남을... 나 자신의 가족도 한 번 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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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시국선언 및 조퇴투쟁으로 3명 영장 신청

 

이게 며칠 전 기사다.

 

헌재에서 교원노조의 집단행위를 금지한 교원노조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교사의 정치중립성이라는 명목하에 교원노조를 설립하되, 집단행동은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이 헌법에 맞다는 판결이라니...

 

교사의 정치중립성은 필요하다. 수업에서 교사가 정치적 발언만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학교에서 교사이지 학교 일과가 끝난 다음에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자기 의견을 똑바로 말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할 수 있는지...

 

최근에 다산의 한시를 읽었다. 이 책의 뒷부분 다산의 시해설에서,

 

다산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어지러운 세상을 아파하고 퇴폐한 습속을 통분히 여기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며 진실을 찬미하고 허위를 풍자하며 선(善)을 드러내고 악(惡)을 징계하는 뜻이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의 한시 17. 다산 정약용 시선, 허경진 옮김. 평민사. 2008년 초판 8쇄. 154쪽

 

여기서 시를 교육으로 바꾸자. 그러면 무엇이 이 시대에 필요한 교육이 되는지 알 수 있다.

 

교육은 절대로 중립일 수 없다. 교육내용을 국가에서 정하면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대안 교과서를 만들면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하여 교육현장은 진보와 보수가 자기들의 논리를 가지고 충돌하는 장소이다. 이런 충돌이 사회를 더욱 튼튼하게 한다.

 

하나의 사상만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지식의 근친상간, 사상의 근친상간이 되어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게 될 뿐이다.

 

백가쟁명... 온갖 사상들이 교육현장에 넘쳐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교육이 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교육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교육이 절대로 정치중립적이지 않음을 논파한 책.

 

교육이 정치에서 중립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파헤친 책이다. 이런 책이 이미 오래 전에 나왔는데...왜 아직도 우리는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지...

 

이는 학생들은 교사들의 말을 무조건 듣는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준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교사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교사는 교사이기 전에 시민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수업시간에 자신의 수업을 하지 않고 정치적 발언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수업시간에는 정해진 교육과정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를 떠나서, 즉 학교 밖에서는 교사는 시민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대부분의 나라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 아쉬운 판결이고, 아쉬운 영장 신청이다. 다양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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