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과학자들 - 생명 윤리가 사라진 인체 실험의 역사
비키 오랜스키 위튼스타인 지음, 안희정 옮김 / 다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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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읽기에 너무도 마음이 불편하지만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어쩌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 장래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에게 반드시 읽혀야 할 책.

 

한스 요나스의 "책임의 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또 인류를 위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책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서 입에서 상스러운 말이 막 튀어나오고, 내 마음의 파장이 깨지는 그런 경험을 하기는 하지만, 마음의 파장이 깨지면서 평정이 깨지는 것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기에, 그러한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읽어야만 한다.

 

우리 인류가 인류애란 이름으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그것도 사람을 살린다는 의사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들을 죽였는지, 그러면서도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요즘은 의사보다는 제약회사라는 다국적 기업이, 돈을 앞세워 사람을 실험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형편이니, 더더욱 이런 책은 읽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 기니 피그(실험용 인간)"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 명의 과학자와 한 명의 시인이 생각이 났는데, 다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노구치 히데요, 황우석, 윤동주

 

노구치 히데요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닥터 노구치"라는 제목의 만화로 9권이 나와 있다. 그 만화 참 감동적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결국 인류를 위하는 세균학자가 되는 노구치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잘 표현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책에도 그 이야기가 조금 나온다. 물론 그 시대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황우석도 마찬가지다. 한 때 우리나라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사람 아니던가. 배아복제, 줄기세포 등등에서 앞서 나가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원들에게 난자를 제공하게 했던 사람.

 

난자를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문제가 불거지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과연 자신의 연구를 위해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그것이 최선일까? 아니, 요즘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떨어뜨리는 일에 불과하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있다. 그 누구라도. 그러기에 인간은 태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배아복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으니,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고.

 

여기에 윤동주. 일본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죽어갔다고 알려져 있는 순수한 시인. 그의 자기성찰이 나타난 시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럼에도 그는 실험용 인간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그런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 특히 731부대에 관한(마루타라는 말로 유명해진)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하여간 읽어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데... 무엇보다도 실험용 인간이 된 사람들은 전시에는 군인들을 비롯한 사람들... 평상시에는 사회에서 정말로 힘 없는 약자들이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도 힘든 사람들, 사회로부터 낙오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약간의 이익을 주고 실험용 인간으로 사용했다. 그 실험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이것이 과연 인류를 위한다는 것인가.

 

정작 인류를 위하는 일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즉 인류를 위하는 일은, 수단이 목적과 일치되어야만 한다.

 

과학자들이, 의사들이 구하고 싶어하는 인류는 바로 그들이 실험대상으로 삼았던 그렇게 힘없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막 다루면서 인류를 위한다고 하는 말은 거짓에 불과하다.

 

정작 인류를 위한다면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가장 낮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할 일이다.

 

이 책은 그 점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책의 끝부분에는 토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으니, 우리나라 똑똑한 학생들, 특히 과학자나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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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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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를 찾는다. 단지 도시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간다. 그 미술관엣 그 나라 출신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본다. 그런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것이 이 책이 쓰여진 방식이다. 웬디 수녀는 그림을 이야기해주는 수녀다. 그의 그림에 대한 해석이 다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그림은 자신에게 다가온 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웬디 수녀가 방송국의 협찬을 받아 유럽 여러 도시에 있는 미술관에 가서 그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그림을 그 이유와 더불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제목에 '산책'이라는 말이 들어가듯이 전문적인 미술 해설서라고 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쓴 책이다.

 

그림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각 장을 시작할 때는 그 도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그야말로 '산책'이 된다.

 

유럽의 도시들을 다니고 미술관에 가고 그림을 보니, 자연스레 유럽 여행이 된다. 그림을 통한 여행, 여행은 낯선 곳에 나를 데려가 나를 만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웬디 수녀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들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웬디 수녀가 간 도시들을 살펴보면,

 

마드리드, 피렌체, 로마, 베네치아, 빈, 상트 페테르스부르크, 베를린, 파리, 안트베르펜, 암스테르담, 헤이그

 

이렇게 11개의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도시들에 있는 미술관에 들러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한다.

 

이 중에는 처음 듣는 작가와 그림들이 있었지만,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그림들도 있다. 미술 관련 책을 조금 읽은 덕분에 이제는 아는 작가들이 많아져서 이 책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은 그림이 직접 말하게 하거나, 그림 바깥에서 말하게 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하게 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웬디 수녀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오로지 자기만의 이해 방식으로.

 

그래서 더 읽기가 쉽다. 그냥 산책하듯이 그림들을 만나면 된다. 산책을 하다가 멋진 풍광을 만나면 잠시 쉬어가고, 또 더 천천히 걷는 장소가 나오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오면 오랫동안 보고, 음미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많은 그림들 사이를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 웬디 수녀와 함께 유럽의 도시들에 가서 그림들을 보는 산책, 여행을 하게 된다. 

 

그래서 좋다. 산책은 늘 사람의 마음을 좋게 만들어주니, 이 책 역시 그림 산책을 통해서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것을 주제가 있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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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만나는 법 - 역사와 이야기가 만나 펼치는 조선 시대 45장면
신병주 지음 / 현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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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를 알게 해주는 거울이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현재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역사는 늘 우리와 함께 했고, 언제든지 배워야만 하는 학문이었다. 학문이라기보다는 삶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듯하지만, 공자까지도 역사를 중시해서 "춘추"라는 역사서를 쓰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나라 역사를 통하여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역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역사에 관한 책을 왕조가 바뀌어도 계속 냈던 이유는 과거를 정리한다는 면도 있지만, 과거를 정리하면서 현재를 만들어간다는 측면이 더 강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역사는 우리의 삶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기록이 잘 남아 있는 시대가 바로 조선 시대 아니겠는가.

 

현대와 가까운 시대이기도 했지만 엄청난 기록유산들이 남아 있기도 하고, 성리학을 공부한 양반 계층들이 어떤 형태로든 당대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에 그래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시대가 조선시대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라고 하면 27명의 왕들이 있었다는 기본적인 사실 말고, 어렸을 때 노랫가락에 맞춰 부르던 "태정태세 문단세..." 말고 조선을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시간 순서대로 쓰이지도 않았고, 또 사건 중심으로 쓰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몇 개의 주제로 분류를 해 놓고 있는 책인데... 조선 시대 일어났던 일들을 그 당시 기록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책이다.

 

역사를 공부한 저자의 해설이 중심이 아니라 조선 시대 그 현장에 서 있던 사람의 글이 중심이고, 그 글을 중심으로 저자의 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해석된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해석할 역사로 이 책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 적어도 옛글을 통해 직접(?) 선인들을 만나고, 선인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조선 시대 풍습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역사와 이야기가 만나 펼치는 조선 시대 45장면'이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의 생활과 사상을 알 수도 있지만, 옛글에 비추어 지금을 알 수도 있게 되는,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를 읽으면서 느끼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가령 '영조의 반값 군포는 과연 성공했을까?'라는 글을 보면 시작을 이렇게 한다.

 

"정치권에서 국민과의 소통은 늘 중요한 화두이다. 그만큼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전통 시대에도 백성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강한 왕들이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영조다."(219쪽)

 

현재와 과거가 소통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 '불통의 시대'라고 일컬을 수가 있는데, 여기서 소통을 잘한 왕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제목에 '군포'가 들어가는데, 이 '군포'는 요즘 말로 바꾸면 '세금'이다. 과거가 현재로 확 들어오고 있다.

 

영조가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가 반값 군포 즉 군포 2필을 1필로 납부하게 하는 정책을 펼친 이야기가 나온다. 그 다음에 저자의 생각이 영조의 일에 덧대어 펼쳐지는데...

 

"결국 균역법의 실시는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양반층, 특히 땅이 많은 지주들의 부담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백성들과 소통하면서 균역법이라는 국가 정책을 실천한 영조의 모습이 결코 옛일로만 느껴지지 않는 시대다." (223쪽)

 

이거 어째, 조선 시대 부흥의 시대, 영조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 우리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소통이 되는가? 서민들의 세금 부담이 줄었는가? 오히려 '부자 감세'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 아니던가.

 

어떤 정책이 국민을 위하는 정책인지, 이미 영조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영조 때 조선 시대는 제2의 중흥기를 맞이하지 않는가.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일, 역사를 현재로 가져오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의미다.

 

'조식이 백성을 두려워하라고 한 이유는?'이라는 글에서는 남명 조식을 들어 정치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백성을 떠난 정치는 있을 수 없음을, 결국 정치인을 뒤집는 것은 백성임을 조식의 글을 들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에게 조식의 「민암부」를 정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백성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위정자의 마음가짐이 더욱 절실한 시대라.'(284쪽)라고 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화석이 아니다. 역사는 바로 현재다. 현재로 들어오지 않는 역사는 의미가 없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바로 현재를 바르게 살기 위해 준비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역사는 중요하다. 단지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45개의 글들이 하나하나 다 읽을 만하다. 옛글만 실었으면 읽기에 상당히 지루했을텐데, 옛글을 적절하게 나누어 읽기에도 편하고, 또 중간 중간 저자의 해설이 들어가 있어서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를 과거의 유물로써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을 비추는 거울로 만나게 되어서 좋다.

 

한국사, 한국사 하면서 무척 강조를 하고 있는데, 정작 그렇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다는 기막힌 현실...

 

그래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또 지금 우리의 삶과 역사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덧글

 

아주 소소한 오타. 글을 읽으면 당연히 알게 되는ㅡ 그러나 오타임에는 틀림없는.

 

'정조가 매일 일기를 썼던 이유는?'이라는 글에서 "일성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202쪽. '위의 기록에서 영조와 신하들이 주고받은 대화와 함께...'라는 구절. 여기서 영조는 정조의 오타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앞뒤로 모두 정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그 다음에 "일성록"은 정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으니... 너무도 분명한 오타라 잘못 읽을 일은 없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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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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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더욱 익숙하다. 이 말은 '집은, 혹은 건축은 단순히 기술적 구조적인 측면에서 세우는 물리적 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짓고 밥을 짓듯이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하여 뭔가 만들어내 가는 것'이란 뜻이다.

... 도시의 가로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건물들 가운데 이런 의미에 부합되는 건축을 구별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믿는 한, 첫번째는 그 건물이 합목적인가에 있다. 두번째로 장소성을 들 수 있다. 세번째로 거론해야 하는 중요한 명제는 시대성의 문제이다.' (23쪽)

 

건축을 그냥 기술로만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건축을 예술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승효상은 이 책에서 건축은 이런 개념으로만 설명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건축의 어원을 따져 건축(architecture)이 으뜸 혹은 크다는 뜻의 'arch'와 기술 혹은 학문이라는 뜻의 'tect'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해서 '원학(원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시작하는 글에서 말하고 있다.

 

그만큼 건축은 우리 삶의 원형이라는 말이고, 건축에는 우리 삶을 만들어가는 요소가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그는 겉으로만 화려한 건축을 무시하고 경원하고 있다. 겉모습이 아니라 생활이 반영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축이야말로 의미가 있고, 그것이 좋은 건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좋은 건축이라고 말하는 세 가지 요소를 보면 알 수 있다. 삶에 기여하는 합목적성과 그 시대, 그 공간에 어울리는 장소성과 시대성을 확보해야만 좋은 건물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주변에서 좋은 건축이 어떤 것인가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건축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있다. 이 여행은 몸의 여행이자 사유의 여행이기도 하다.

 

책으로만 접한 건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그것을 자신의 사유로 끌어안아 자신의 건축으로 되살려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 보고 느낀 결과는 책에서 생각했던 결과와는 다르며, 이런 보고 느끼고 생각함이 승효상의 건축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이 책은 건축기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건축기행이라고 하기보다는 승효상의 건축 사유 기행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그는 세계 각지의 건축을 통해서 자신의 건축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키고 만들어가고 있다. 그 점을 하나하나 건축기행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축물들을 그를 따라서 함께 보면서 느끼는 시간이 바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되는데...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가서 보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으니 책을 통하여 여행하는 방법이 차선으로 선택된다.

 

그렇다. 이 책을 통해서 승효상과 함께 건축 기행을 한다. 그와 함께 건축에 대한 사유를 넓혀 나간다. 단순히 넓혀만 나가서는 안된다. 깊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것이 된다.

 

기행이나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인 결국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공부가 스승의 학문을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야 진정한 공부가 되듯이, 건축 또한 세계 각지의 좋은 건축을 보면서 결국은 내 건축을, 우리의 건축을 생각해야 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건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이 책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빛에 대한 문제, 사람 삶에 대한 문제, 그리고 비움의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건축은 삶일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의 삶에는 빛과 공기가 필수적이고, 이러한 빛과 공기는 공간이라는 비움으로 인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테니...

 

몇 권 되지 않지만 건축에 대한 책을 읽으며 봐왔던 건축물도 있지만, 그것들에 대해 새로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책이고, 왜 그 건축들이 좋은 건축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책이어서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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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과의 만남
EBS 화인 제작팀 지음 / 지식채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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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관한 책들을 보다가 그것도 주로 서양의 미술을 보다가 왜 우리나라엔 서양처럼 이렇게 화려한 채색을 하지 않았을까? 색깔이 있다고 해도 너무도 단조로워 오히려 흑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수묵담채화라서 그런가? 그렇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과연 색채에 무심했던가 하는 생각들을 했었다.

 

우리나라가 성리학의 영향으로 수수한 삶을 추구했다고 하지만, 자연과 조화되는 삶을 추구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 전체가 칙칙한 흑백의 세상은 아니었을테고, 상류층들의 옷들은, 왕의 옷은 화려함의 극치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그림이 너무도 없다는 사실에, 서양화들을 보다보면 우리나라 그림들이 너무 어둡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안 그린 건지, 못 그린 건지, 아니면 색깔이 변색이 되어 남아 있찌 않은 건지... 유화라는 기법을 사용한 그림이 과거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

 

게다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후기 세 명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이 이름은 사실 처음 듣는다. 내가 EBS다큐프라임을 보지 않았기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던 인물이다)의 그림에서도 서양의 그림에 나타나는 그런 화려한 색감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책에서는 신윤복은 조선의 색감을 살린, 채색의 절정을 이룬 조선의 색을 살린 화가라고 하지만, 그의 색깔은 서양 그림의 색깔에 비하면 단조롭기 그지 없다. 이 단조로움 자체도 예전의 그림에 비하면 엄청 진일보한 것이라고 하지만.

 

특히 간송미술관에서 원본을 보았을 때도 색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조명 탓이든, 아니면 색감을 못 느끼는 내 눈 탓이든, 나에게는 그저 그런 색으로만 보였는데... 조금 진하고, 화사하다고 할 정도에서 머물렀을 뿐.

 

그렇다면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우리 그림은 화려함을 뽐내기보다는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사람의 정신을 드러내는데 있지 않았을까? 그림에서 정신의 높이와 깊이를 발견해내려고 했던 선인들의 그림 감상법이 그렇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데...

 

풍속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당시의 풍속을 모사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태도가 그림에 드러나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홍도의 그림을 보아도 그냥 그 시대는 그랬구나가 아니라, 그림 속의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또 그 시대의 정신문화가 그림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지 않는가. 즉 인물들이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다. 그것이면 됐다.

 

거기다 일반 서민들의 옷은 그야말로 흑백이었을 터. 그러니 김홍도의 작품에서는 색채가 미약하다고 투덜거릴 일이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서민들의 삶에 대한 태도, 그들의 마음을 느끼면 된다.

 

그것을 이 책은 김홍도의 그림 기법과 더불어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에 비하여 신윤복은 그림을 그리는 대상이 다르다. 그는 주로 기생들을 그리고 있다. 기생들의 옷은 서민들에 비해 화려하다. 화사하다. 그러니 신윤복의 그림에는 색채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다.

 

화사한 모습 속에서도 무언가 생각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림을 통하여 기생들과 양반들의 생활 내부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의 그림 기법은 요즘 인테리어 기법을 생각나게 할 정도라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데... 그만큼 그가 색채 뿐만이 아니라 구도에서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여기까지는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두 사람의 화가 이야기인데, 김준근으로 넘어가면 도대체 누구야? 하고 말 정도다. 또 그의 그림은 풍속화라기 보다는 안내그림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풍속그림을 그렸기에 배경은 생략하고 풍속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 그래서 이 그림에서는 풍물은 있으되, 사상은 없는... 무언가 그림 뒤로 들어가 더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고 있다.

 

개항이라는 시기에 상품으로 외국인에게 넘기는 그림들이니 가능하면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리려고 했으리라.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는 우리나라 풍습의 핵심을 짚어냈으니, 그런 점에서 김준근의 그림이 의미가 있겠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그림에는 상업의 냄새가 너무 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이면에 있는 그 어떤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김홍도, 신윤복의 그림과 김준근 그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비록 서양화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신들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또한 우리 그림의 장점이 아니겠는가.

 

서양과 추구하는 정신세계가 달랐던 우리나라에서 서양화와 비교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떨쳐버리려 한다. 우리 그림은 우리 그림대로 그 시대를 충실히 반영하였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글쓴이는 말한다.

 

풍속화는 그들의 삶이며 예술이며 무기였다. 그들은 풍속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 속에 뿌리 내렸다. 그러기에 그들의 작품 속에는 실로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 배어 있다. 필시 그들의 풍속화가 오래도록 우리 주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힘의 원천 역시 이것이리라. (이 책 종(終)에서)

 

그런 점에서 쉽게 조선 후기 풍속화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마 영상으로 보면 책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어떤 것을 볼 수도 있겠지.

 

삐딱한 덧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은 시종일관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책에서 저자라고 하면 EBS 화인 제작팀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책의 출판서지를 보면 글 서주희 · 화인제작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사람은 김광호 피디라고 한다.(책 표지 접힌 부분에 보면)

 

아마 글을 작가가 좀더 부드럽게 하기 위해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썼나 본데... 즉, 공동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책의 내용을 전개할 때 '나'라고 하지 말고, '우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김광호 피디 책임 하에 화인 제작팀이 제작하고, 글은 서주희가 씀이라고 먼저 밝혔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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