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의 시답게 의미가 한 번에 파악되지 않는다. 시에 쓰인 언어들이 하나의 의미와 대응하지 않고 여러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석이 될 수 있는 시들이 많이 있고, 언어 유희라 할 수 있는, 발음의 유사성으로 한글을 한자로 바꾸어 표현한 시도 있다.

 

  대체로 시들이 길어서 읽는 시가 되지, 마음을 울리며 외울 수 있는 시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한 시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참,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그런 시인데... 이 시를 읽으며 '오르가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빌헬름 라이히는 오르가즘을 제대로 향유하지 못하면, 즉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성년이 된 사람들은 남들 위에 군림하여 지배하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오르가즘을 막는 사회에서는 파시즘이 등장한다고 했는데... 청소년기에 오르가즘 느끼고 욕구를 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욕망, 욕구를 밖으로 분출하는 것, 안으로 쌓아두다가가는 그것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는 주장을 했는데... (빌헬름 라이히, 오르가즘의 기능 참조)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런 오르가즘을 극도로 억압하고 있는 사회 아닌가 하는 생각. 특히 청소년들의 오르가즘은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억압받고 있다는 생각.

 

이렇게 억압받고 지내는 학생들의 모습이 학교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또는 다른 일탈행위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특히 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은 현대판 정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

 

교복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머리를 염색할 자유도, 파마를 할 자유도 박탈당하고, 자신의 얼굴에 화장품을 바를 권리도, 귀를 뚫을 자유도 박탈당하고 지내는 학생들이 어떻게 오르가즘을 발산하면서 성장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놀 권리 역시 박탈당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학생들은 오르가즘이라는 것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신체 표현의 자유도 교복이라는 정조대로 억압당하고 있는데, 성에 관해서랴. 물론 성적인 오르가즘만이 문제는 아닌데... 우석훈의 "88만 원 세대"의 시작 부분이 '청소년에게 섹스를 허하라'는 말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떠나서, 오르가즘이란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분출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성이든 다른 면이든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게 된다.

 

오르가즘을 느끼는 세상, 그런 세상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그것이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때 오르가즘은 나만이 아니다. 상대가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황, 그래서 나 역시 즐거움을 느끼는 상황, 이것이 진정한 오르가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김경주의 '몽유, 도원'이란 시를 읽으면. 어쩌면 이렇게 오르가즘을 생각하게 하는데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게 하는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되는데...

 

몽유, 도원

 

  오늘 따라 어쩐지 나는 그걸 하고 싶다

 

  귀이개를 가지고 귀를 팔 때

  몇 번 넣어 본 구멍이라고

  귀이개를 그것처럼 밀어 넣는다

 

  보이지 않지만, 도도하게 구멍에 대해 가지는 그 구체성,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구멍에 대한 상상력은 의외로 선명하다 넌지지 닿고 있다는, 어떤 곤경을 긁어내고 있다는, 그 시원한 질감으로부터 뭉게뭉게

 

  귓밥이 흘러나온다 어둠 속에서 파도

 

김경주, 시차의 눈을 달랜다, 민음사, 2009년. 70쪽

 

기가 막히지 않는가.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이 오르가즘의 향연.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느낄 수 있는 관계. 내가 분출하는 것이 아닌 상대가 분출하게 하는 배려. 이것이 바로 오르가즘 아닌가.

 

이런 오르가즘 사회는 행복한 사회, 바로 우리가 꿈 속에 그리는 이상향 아닌가. 그렇게 나의 오르가즘이 너의 오르가즘이 되는 상황, 그래서 우리가 오르가즘을 느끼게 되는 그런 상황, 몽유, 도원.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의 오르가즘만을 분출시키는 그런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나만을 바라보는 사회와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는 이 시집에서 주로 나오는 단어인 '시차(時差)'에 해당한다.

 

바로 '시차(時差)'가 '시차(視差)'이므로. 우리는 이런 시차(時差, 視差)를 인정해야 서로의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다.

 

시차(時差, 視差)를 인식하는 순간, 나만이 아닌 남을 생각하는 자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특히 요즘에, 김경주의 시집 속에서 발견한 '몽유, 도원'이란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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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시전집 - 1953-1992
이연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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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전집을 읽으면서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시들이 이렇게 어둡다. 칙칙하냐, 이 시인 밝게 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시인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기에 시인을 검색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시들이었는데...

 

제목들도 그렇다. 생전에 발간한 시집 제목이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이라니...

 

매음녀... 삶의 나락에서 그래도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내맡길 수밖에 없는 사람, 낮에 활동하기 보다는 밤에 활동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매음녀 아니던가.

 

이런 매음녀에 관한 시가 6편이 실려 있다. 이상하게 '매음녀1'부터 '매음녀7'까지 제목이 붙어 있는데도 '매음녀2'라는 제목을 가진 시가 없다. 그래서 6편이다. 아마도 시인이 썼지만 발표는 하지 않은 듯하다.

 

몇 개의 제목을 보아도 시집이 참으로 음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토피아는 없다, 어떤 행려병자, 악몽의 낮과 밤' 등등

 

유고시집 제목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속죄양, 유다"

게다가 처음 시작부터 부제를 달고 있는 시들이 있는데, 그 부제가 '위험한 시절의 진료실'이다. 9편의 시가 이 부제로 실려있는데... 시대와 화합하지 못한 시인의 모습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시들이다.

 

시인은 그렇게도 이 세상의 삶에 고뇌를 했나 보다. 그의 삶이 유다의 삶처럼 괴로웠던 걸까? 이 전집에는 시인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시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부터 고민해야 하는데...

 

검색해보니 한국여성문인 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 여성시인이고, 40이 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이 자살이라고 하니...

 

세상의 고민을 짊어지고 그 고뇌를 시로 표현해서 삶을 추구했으나, 결국 자신이 고민을 모두 짊어지고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이 무겁도록 음울한 내용들이 시전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시인이 살았던 시대, 우리 사회가 참으로 무거운 시대였지만, 그 시대의 무게를 온몸으로 시인 역시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생전에 한 권의 시집을 내었고, 유고시집 한 권 도합 두 권의 시집이 전부인 시인의 전집을 내는데... 동인 활동으로 발표한 작품을 모아놓은 것까지도 좋은데... 시인에 대한 해설,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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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17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시는 가슴의 통점 자극제입니다....

kinye91 2017-04-17 14: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박근혜가 가자마자 세월호가 올라왔다. 그러나 미수습자 수습도, 진실 규명도 아직은 요원하다.

 

  삶창 110호가 왔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는 창을 만나게 되는 책. 이 책의 표지가 바로 세월호 희생자들, 홍성담이 그린 '내 몸은 바다(2)'다.

 

  홍성담의 그림으로 세월호를 잊을 수 없음을, 우리 사회가 영원히 기억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함을, 따라서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의 침몰, 그리고 제대로 된 구조를 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미 우리에게서 밀려난 정권이었다. 그런데도 그 정권을 떨쳐내는데 두 해가 넘는 세월이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세 해. 예전이면 시묘살이를 하더라도 끝낼 시간. 하지만 세월호는 끝나지 않는다. 이제야 시작이다. 철저한 진실 규명에 의한 책임자 처벌. 이것이 되어야만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삼 년이라는 시간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이번 호를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선과도 맞물려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꼭 대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할 문제를 제기했다고 보면 된다.

 

이 중에 마음에 콕콕 와 박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밥' 문제다. '밥'은 곧 '생명'이다. 이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일자리'다.

 

그런데 우리의 일자리는 안녕한가? 하면 절대로 안녕하지 않다. '안녕하십니까 또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조선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조선업이 망해가고 있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밥줄'을 놓게 생겼으며, 다른 기업들에서도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밥줄'을 스스로 끊게 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노조들은 점점 힘이 없어져 투쟁에서 승리하기는 커녕, 제대로 된 싸움도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각종 소송에 휘말리고 자본의 교묘한 술책에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는 '353일, 그러나 끝나지 않은 싸움(김성민)'의 글과 ''밥이 불안하다(표성배)'의 글을 보면 절절하게 나와 있다.

 

여기에 영화 한 편을 추가하면 '모멸감을 견디며 살아남는다는 것(이수향)'의 글을 읽는 것도 좋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의 시평인데, 평생을 성실하게 노동하면서 살아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당하게 되는 현실을 잘 그려낸 영화다.

 

영국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어쩌면 영국보다 더 심각한 우리나라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선 즈음해서 많은 정당들에서 나오는 공약들에 노동자들의 권리가, 적어도 '살 권리'가 보장되는 공약이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일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는 4시에 퇴근하고 평일에 2시간 더 근무하는 제도를 처음 시행했는데,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제도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아랫돌 빼어 윗돌 괸다는 식, 또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아닌가. 도대체 여기서 노동시간이 어디 줄었는가. 그냥 똑같지 않은가. 그럼에도 난리다. 대기업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아 공무원들만 시행을 했고, 일반 기업에서는 시행율 0%라고 한다.

 

이정도 정책도 기업에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인데... 반대로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또 대기업노조들을 귀족노조라고 하는데, 그들이 정상적으로 기준 시간만 일하면 과연 그렇게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이들 임금이 높은 이유는 시간외 수당, 초과근무, 휴일 특근 수당 등을 모두 받기 때문 아닌가.

 

결국 하루 8시간 노동, 주 5일 근무 즉, 40시간 노동만 해서는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고 살기 힘든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또는 생활물가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를 현실화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만 두 시간 당겨 퇴근을 해서 가족과 함께 소비를 하는 삶을 살라고 하는 것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이런 주장을 하기 전에 주5일 근무, 40시간 노동시간만으로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노동을 하며,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치인들에게 지금 우리가 주장해야 할 문제다.

 

사실은 주40시간 노동도 많다. 이보다 더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지금은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사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주장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이번 호에 실린 '노동의 가치에서 삶의 가치로(김경윤)'의 글을 읽어보라. 지금 우리는 '노동을 할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파르그)'를 주장하거나 '게으름에 대한 찬양(러셀)'을 할 때다. 그래서 강수돌의 말처럼 '일중독에서 벗어나기'를 해야 한다.

 

그러고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기본 생계는 사회가, 국가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세월호 같은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밥' 걱정 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도 할 수가 있고. 이번 호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지만 '기본소득'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이런 저런 글들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그리고 가슴 한 켠을 짠하게 울렸던 글, '내 이름은 임순분(박중엽)' 그 놈의 '사드', 정말 '사드'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드가 배치될 그곳에는 바로 '사람'이 살고 있다. 그 사람, 임순분...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다. '소성리에도 사람이 산다'고.

 

어디 이뿐이랴. 더 많은 일들이 많다. 더 많이 생각할 것들이 많다. 대통령 선거를 즈음해서, 국민의 힘으로 국정농단 대통령을 밀어낸 그 힘으로 이번에 새로 시작해야 한다. 또다시 사람만 바꾸는 그런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삶창 110호' 새로운 시작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야말로 삶을 보는 창을 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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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6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6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은 법가가 판치는 사회다. 뭐든지 법, 소송이다. 소송 만능시대다. 그래서 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또 힘없는 사람은 당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한비자'가 원하는 '법'은 이런 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백가쟁명 시대였으면 좋겠다.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 나와 각 당의 주장들을 설득력 있게, 그러나 명확하게 차이나게 잘 주장했으면 좋겠다.

 

아마 역대 대선 중에서 많은 후보가 나와 설전을 벌이는 경우는 드문 경운데, 오랜만에 다양한 정당들의 정책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나물에 그 밥인 경우도 있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하는 이유는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거나 남의 주장을 반복하거나, 남의 주장을 반박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자신들의 주장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은 각 당의 후보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파악하고 지금 우리 시대에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집권한 다음에 정세를 봐서 어떻게 하겠단 식의 주장은 하지 않겠다는 말, 또는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말과 같다.

 

사회의 쟁점이 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후보들은, 또 정당들은 명확한 관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적어도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그런 말들 말고.

 

이때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의 주장을 참고하면 어떨까 한다. 정치가들이? 아니, 국민들이. 그 시대에는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나왔다.

 

공자와 맹자로 대표되는 인과 예를 중시하는 유가, 법치를 주장하는 한비자로 대표되는 법가, 인위적인 구속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일명 도가 ,겸애와 절용, 평화를 중시하는 묵자로 대표되는 묵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때로는 날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 가운데 공통점은 있다. 바로 백성들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것.

 

이를 기반으로 이들은 각자의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치가들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 이것을 기본으로 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단지 정권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에 이 많은 주장들 중에 어떤 주장이 실효성이 있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과거의 조건에서 그 주장이 타당했다고 해서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 그런 기계적인 적용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에 맞는 응용, 그것이 바로 온고지신이다.

 

그렇다면 정치가들도 이런 고전을 읽어야 하겠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정말로 투표할 때만 주권을 행사한다는 비아냥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국민들이 이런 고전을 읽어야 한다. 읽고, 지금 이 시대를 대표할 수 있고,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주권자가 되기 위해서 이런 준비는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전의 힘, 지금이 바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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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학교의 눈물
SBS스페셜 제작팀 지음 / 프롬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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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답답해지는 책이다. 학교에 관한 책이라면 사실 마음을 편하게 하기보다는 더 불편하게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학교는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교육은 즐거움이어야 한다. 세상에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배움의 고통만을 안고 지내는 학교에서 어떻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고통이 즐비한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탈출구를 마련하는 일은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전가하는 일이 아닐까. (그러면 안 되지만, 전두엽이 덜 발달한 청소년기에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아주 작은 차이로도 배제시키고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고통 속에서 서로 연대해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게 되는 모습.

 

학교 폭력은 과연 사라졌는가. 이 책이 나온 것은 2013년. 그때만 해도 학교 폭력은 심각했다. 아니 지금도 심각하다. 오죽하면 학교에 전담경찰관제도가 있고, 배움터 지킴이라고 하여 전직 경찰관 출신이나 교사 출신들이 상주하고 있겠는가.

 

또 웬만한 폭행사건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회부하게 되어 있으니, 이것들만 봐도 학교 폭력은 여전히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심각한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소송만능주의가 횡행해 학교폭력자치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서 행정소송을 거는 학부모들이 비일비재하다.

 

일각에서는 학교 폭력이 변호사들의 새로운 블루오션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제는 학교 폭력은 학교를 떠나서 법의 세계에 들어서고 있다.

 

법이 교육에 우선하는 시대, 그럼에도 학교 폭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더욱 음성화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방송으로 내보냈던 것들을 그 시작과 과정 결과들을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학교 폭력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뿐만이 아니라 방송에서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또는 학교 폭력에 가담한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학생들과 함께 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외국의 사례들까지, 또 학부모가 해야 할 일까지 제시하고 있어서 학교 폭력에 관한 종합적인 사례을 알려주고 예방할 수 있는 예방 지침서라고 할 수가 있는데, 문제는 이 책을 읽어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 말대로 학교를 없애면 학교 폭력이 사라진다고나 해야 할까.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학교 폭력은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폭력이 심해지는 사회는 빈부격차가 큰 사회다. 빈부격차가 크다는 말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 지수가 높은 사회라는 뜻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공동체라기보다는 다른 계급에 의해 불평등하게 유지되는 사회라면 갈등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대화나 타협보다는 폭력과 강압이 먼저 나올 뿐이다.

 

그러니 답답할 수밖에.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특히 정치권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인데, 그것이 쉽지 않음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그럼에도 학교 폭력 예방이나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또 그렇게 교육 정책을 짜고 있기도 하다.

 

이들이 실험한 학교는 '소나기 학교'라고 해서 8박9일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섞어 함께 지내게 하면서 치유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했다.

 

이를 학교에서 응용하면 되는데, 이 '소나기 학교'와 다른 점은 소나기 학교는 교사 수가 학생 수보다 많았고, 학생 수가 14명으로 아주 적었지만, 대다수의 학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작은 학교를 폐교처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교사와 학생 간 신뢰관계를 확립하는 거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에게는 허튼 행동을 하지 못한다. 교사와 학생이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또 규칙에 얽매인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서 만남을 이룬다면 학교 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발판은 마련한 셈이다.

 

여기에 학생들이 자존감을 지닐 수 있도록 교육을 해야 하고, 비폭력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교에서는 집안의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런 일이 선행이 되면서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야 한다. 한 교실에 20-30명이 앉아 있고, 교사 한 명이 그들과 만나야 하는 구조에서는 학교 폭력이 제대로 예방될 수 없다.

 

또한 입시를 향해 무한히 달릴 수밖에 없는 교육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입시로 인해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넘어선다. 이런 스트레스를 엉뚱하게 옆에 있는 만만한 학생에게 풀기도 하는 것이다.

 

내 맘이 편치 않기에, 내 맘 속에 분노와 울분이 가득 차 있기에 누군가가 잘못 건드리기만 해도 그것이 터져 버리는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입시위주의 교육을, 학교에 더해서 학원이나 과외로 더해지는 공부까지 문제삼아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의 생존이 문제가 되기에 입시에 목매달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학교 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학교만 보아서는 안 된다.

 

물론 최초의 책임은 학교가 져야 하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변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해야만 학교 폭력을 없앨 수가 있다.

 

이래서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학교 폭력을 없애는 길은 참으로 먼 길이라는 생각. 그럼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것 때문이다.

 

여전히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집단 생활을 하는데 그들 사이에 폭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스웨덴 교장의 말을 명심하자.

 

학교 폭력은 학교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막는 교육을 해야 한다. 한시라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 사회에서도 누구나 생존을 넘어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학교 폭력이 줄어들게 된다.

 

'학교의 눈물'이 앞으로는 '학교의 웃음'이 되는 그런 교육, 그런 교육정책, 그런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교와 관련이 있을테니, 이 책을 꼭 읽고 현실을 바로보았으면 한다.

 

학교에서는 법보다는 교육이 먼저라는 사실을, 법만으로는 학교 폭력이 해결되지 않음을 명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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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1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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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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