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나 사이를 걷다 - 망우리 비명(碑銘)으로 읽는 근현대 인물사
김영식 지음 / 골든에이지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죽음은 참 멀다. 그러나 죽음은 참 가깝다. 멀고도 가까운 존재, 바로 죽음이다. 그런 존재를 우리는 한사코 거부하려 한다.

 

주변에 묘지가 들어서려 하면 혐오시설이라고 하여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다. 자신들의 미래를 미리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죽음과 관련된 시설이 들어설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즐길 수도 없다. 그냥 한 번으로 끝나는 경험이다. 누구에게 설명해줄 수 없는.

 

다만,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것이 바로 묘지에서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묘지들이 몇이 있는데, 망우리 역시 그 중의 한 곳이다.

 

국립묘지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다면, 수유리에는 4.19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묻혀 있다면, 마석 모란공원에는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이 묻혀 있다면, 망우리는 공동묘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듯이 수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이 묻혀 있다.

 

이런 망우리 공동묘지를 공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데, 망우리공원이 되고 산책로가 만들어져 사람들이 쉽게 찾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쉽게 찾고 쉴 수 있다는 것, 죽음과 삶이 함께 공존한다는 것, 그것이 망우리공원이 지닌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망우리공원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분들의 묘소가 있다는 사실. 이 책을 통해서 더 자세히 할게 되었다.

 

그들의 묘소를 찾는 길을 이 책을 읽으며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망우리공원에 있는 사람들 중에 이 책에서는 40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 우리가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사람으로는

 

박인환, 방정환, 이중섭, 계용묵, 한용운, 오세창, 지석영, 안창호, 조봉암 등이 있다.

 

물롱 이 중에는 안창호처럼 이장을 해서 지금은 망우리공원에 없는 분도 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큰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 이곳에 묻혀 있기도 하다.

 

죽음, 늘 우리 가까이에 머물고 있음을, 그래서 죽음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껴안고 살아가야 함을 망우리공원을 거닐면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공원에서 만나는 이들의 묘소는 이들의 삶을 생각하게 하고, 곧 내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묘지는 혐오시설이 아니라 우리에게 참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필요시설인 것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아니면 서양의 유명 화가들에게 한 때 유행했던 '바니타스(vanitas)'그림처럼 죽음은 우리 삶 곁에 있다. 우리를 겁주고 위축시키려고가 아니라 우리가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저자가 망우리공원을 거닐며 보여주고 있는 비명(碑銘)을 함께 읽으며 저자와 함께 산책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함께 읽으며 우리나라 현대사도 다시 생각할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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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가는 길


맑은 연못 백 개 있어

연못 하나 진리 하나

진리 하나 구원 하나

드러나지 않아 드러남이여

만해는 백담에

시 하나씩 88편

다 채우면 남이 채울 것 없어

12개를 남겨 놓았을 터

다음에 올 일해를 위함은 아니었을진대

굽이굽이 백담에

일해도

연못을 한 자락 메우고 있는지……


나무들이

큰 놈, 작은 놈

곧은 놈, 비뚤어진 놈

가리지 않듯

물이 

더러운 물, 깨끗한 물

굽이치는 물, 곧게 흐르는 물

가리지 않듯

백담은

사람은 사람일 뿐,

생명은 생명일 뿐이라

하여

백담에는

만해도, 일해도

나같은 한산객(閑散客)도 있는 것

아닐런지.

 

---- 만해 : 한용운의 호 

        일해 : 전두환의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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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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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인은 저쪽을 보여주고 있다. 단지 여기에만 안주하지 말고 저 너머를 보라고.

 

  그렇다. 그래서 시인은 귀하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언덕 저쪽을 보여주는 사람, 그가 바로 시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시인은 이 쪽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겠지만, 눈은 항상 다른 곳을 향해 있어야 한다.

 

  늘 깨어있는 의식, 살짝 빗겨설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 시인에게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시인에게서가 아니라 시에서이겠지만,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니...

 

  명예퇴직

 

잠든 사이

감또개 떨어진다

 

아무도 몰래

남아야 할 것들은 남고

떨어져야 할 것들은 미련 없이 떨어진다

 

제자리가 아닌 것을 안다는 것은

누가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 비켜 앉아

지나온 길 바라보면

그 길은 이미 내 길이 아니었다

 

산비탈에 감자나 심고

몇 줄 시나 쓰고 살아야 했던 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십 년을 잘도 버티어 왔다

 

오늘 아침 문득

감또개 떨어진 자리

적막의 한순간을

 

홀로 낯붉히며 바라본다.

 

고영조. 언덕 저쪽에 집이 있다. 포엠토피아. 2001년 1판 1쇄.  88-89쪽.

 

어디 이런 일이 시인뿐이랴. 하지만 시인은 이쪽에서 산 삶을 가지고 저쪽을 보여준다. 다른 쪽도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참 세월이 흐른 다음에 '스스로 비켜 앉아 / 지나온 길 바라보면'이라고 했지만, 이렇게 하기까지는 너무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 바로 이러한 시를 통해서다. 지금 삶의 한복판에서 아등바등대고 있지만, '제자리가 아닌 것을 안다는 것은 / 누가 가르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고 하지만, 참 힘든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삶 속에서 자신의 자리인지 아닌지 고민할 틈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저 편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 이십 년을 잘도 버티어 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감또개처럼 여물지도 못하고 떨어지는 것을 보며, 떨어져야만 더 커다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굴을 붉혔다고 하지만...

 

이런 시의 화자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이 편에만 머물러 있던 삶에서 저 편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보게 된다.

 

물러나야 할 때를 모르면서, 감또개를 보면서도 제 자리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 남들이 명예퇴직 하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내 삶과 다른 저 편의 삶도 보게 된다.

 

그렇게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도 생각해 보게 하는 시, 그런 시를 읽으며 잠시 내 삶의 길에서 잠깐 멈춰보고, 비켜서 있어 보기도 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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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2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2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경준 작품집 - 지만지 고전선집 282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현경준 지음, 윤송아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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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준'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생소하다. 일제시대 얼마 되지 않는 소설가들을 적어도 이름은 들어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현경준이라는 이름은 그 생소한 이름에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헌책방에서 현경준 작품집이라는 책을 보고, 살짝 들춰보니 일제시대에 소설을 쓴 작가다. 일제 후반기에 리얼리즘 소설을 쓴 소설가, 한국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비록 시대는 한참 지났지만 문학사에 이름을 올리는 작가니 한 번 읽어보자고 골라 들었는데...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한 편은 "탁류" - 사실 "탁류"하면 채만식의 탁류를 떠올린다. 그만큼 채만식의 "탁류"는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다 - 다른 한 편은 "유맹(流氓)"이다. 

 

"탁류"는 짧은 단편으로 일제 말기 전향을 강요당하는 지식인들, 자신들의 위치를 읽은 지식인들의 모습에 갈등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이미 세상은 변했고, 친구들 가운데서도 변한 사람들이 많은 상황. 그럼에도 그 상황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자의식. 그렇게 갈등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짧막한 소설에 담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였으리라. 그렇다고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부정할 수도 없었으리라.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라고 생각하고 살기에는 너무도 치열하게 살아왔으리라.

 

그 삶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변화를 추구하기엔 일제는 너무도 강고하다는 생각을 하고, 서서히 변해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갈등도 했으리라.

 

그럼에도 굴복할 수 없다는 지식인의 자의식,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데...

 

채만식의 소설에서는 장편에서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주인공을 휩쓸어버리는 거친 세상을 "탁류"라는 제목으로 잘 표현했다면, 이 소설에서는 '지식인'들을 휩쓸어가고 있는 모습을 '탁류'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집에서 "유맹"이 읽을 만하다. 그런데, 이 소설은 친일이다 아니다 논란이 좀 되고 있다고 한다. 읽어보니 논란이 될 만하다.

 

만주의 어느 부락, 폐쇄된 부락이다. 다른 말로 하면 '게토'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부락을 갱생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 부락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서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이 부락의 구성원들을 분석한 앞의 내용을 보면 '중독자, 밀수업자, 도박상습범, 사기횡령범, 기타'로 되어 있다. 즉,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갱생시키려고 만든 부락이다. 수용소라고도 할 수 있는데... 수용소와 다른 점은 이들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교화시키는 소장의 열정이 표현되어 있고, 그런 소장을 도와 열심히 일하는 긍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순동이와 순녀 같은 인물을 보면, 일제시대 만주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는 긍정성을 덮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일제가 이런 부랑자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렇게 감시하고 가두고 억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점은 이 소설의 긍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이런 일제의 활동을 긍정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는, 왜 이들이 아편중독자가 되었는지, 이들을 왜 이렇게 가두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일제시대, 참 암담한 시절, 그것도 더 암담한 만주국 시절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의미, 그 정도. 현경준 소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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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듯,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 지긋지긋하던 무더위도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에 서서히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이렇게 여름은 가는구나. 더위와 비로 고생을 한 여름이 한때이듯이 힘들고 지치고 절망과 좌절에 빠뜨린 세월들도 한때였으면 좋으련만.

 

  자연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위 배웠다고 하는, 조금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

 

  제 잘못은 전혀 보지 못하고, 제 집에 구멍이 나 비가 숭숭 새고, 바람이 솔솔 들어와 찬 바람이 불면 견디지 못할 지경임에도 다른 집 낙서만 손가락질 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자연의 섭리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내려가면 올라갈 일이 있는 것.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바래고 만다는 것.

 

지금 자신이 높은 곳에 있다고 해도 그 자리에 영원히 앉아 있지는 못한다는 것, 오히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낮은 곳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남에게 돋보이는 자리가 아니라 제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 어쩌면 자연에서 하찮은 것이 없듯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

 

최서림의 시집을 읽다. 집과 말이 이 시집의 주요 소재다. 집, 시간이 갈수록 낡아가는, 그러나 낡아감이 익숙함으로 변해야 하는데, 그 익숙함은 그 집에서 계속 살 때, 그 집을 아끼고 사랑하고 가꿀 때만 그럴 수 있다는 것.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늙어가지 않고 낡아간다. 낡아서 어느 한 순간 폭삭 무너져 버린다. 마찬가지다. 말도. 언어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말은 칼과 다름 없다. 사랑이 없는 말은 사람과 사람을 맺어주는 관계의 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끊어버리는 절단의 말이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국제적으로도 관계의 말이 아닌 절단의 말, 단절의 말이 난무하고 있고, 우리나라 안에서조차도 관계의 말이 아니라 절단, 단절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으니...

 

말들이 이렇게 가시 돋치고, 날카로움만 지니면 말들로 인해 사람들은 상처받고 소외되기만 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낮은 곳을 보지 못한다. 오로지 강한 것, 큰 것, 화려한 것과 같이 노력하지 않아도 보이는 것들을 숭배하게 된다.

 

그런 사회에서 이런 '오랑캐꽃'과 같은 내용은 나올 수가 없다. 아니, 반대다. 시인은 이런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랑캐꽃'과 같은 시를 노래하고 있다.

 

시로써 시인은 사람들의 눈을 틔워주고 있다. 제발 눈 좀 뜨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저절로 보이는 크고, 화려한 것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적으로 찾아야 할 작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그러한 것들이라고.

 

시를 보자.

 

    오랑캐꽃

 

모든 꽃은 다 꽃을 피운다

바위취, 국수나무 같이

그늘 밑에 자라는 것들도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영영 꽃이 없을 것 같은 생명들도

언젠가는 꽃을 피워 올린다

버려진 들판의 찔레꽃 냄새가

담장 안의 장미꽃 향기를 감싸 안듯,

이름이 뭣해서 불러주기 민망한 쥐똥나무

꽃냄새가 화장실 냄새를 덮어주듯,

누군가를 위해 물길처럼 낮아지고

남의 인생을 데워주기 위해

불길처럼 굽어져 본 사람, 한평생

남의 그늘에 가려 제 그늘이 없는 사람도

이른 봄 오랑캐꽃처럼 꽃을 피워

젖은 낙엽을 살짝 밀어 올릴 줄 안다

하늘을 들어 올려 순간

제 그늘을 희미하게 만들 줄 안다

 

최서림, 물금, 세계사, 2011년 초판 2쇄. 37-38쪽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시인의 눈. 그리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시인의 말. 표현. 그래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찾을 수가 있다. 시인 덕에.

 

자연의 섭리처럼 사람들 사이에서도 꼭 필요한 것들,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이 있음을, 비록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음을, 그 존재들은 그런 존재 자체로 소중함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존재들에게 눈길을 줄 때 집은 익숙함으로 늙어가고, 말은 사랑이 넘치는 관계의 말로 바뀔 것이다. 이제는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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