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감동을 만나고 싶다 - 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창조성의 비밀 아우름 11
히사이시 조 (Joe Hisaishi) 지음, 이선희 옮김 / 샘터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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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는 내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리고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라는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음악을 잘 모르는 나에게도 그의 음악은 마음 속으로 들어왔는데...

 

그러다 "웰컴 투 동막골"의 영화음악도 담당했다는 말도 듣고, 영화를 보면서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가 글로 자신의 음악 세계와 생각을 펼친 책을 펴냈다.

 

관심 있는 사람이 낸 책이니 안 읽을 리가... 읽으면서도 한편 한편이 마음에 들었다. 무어라 요약할 수 없지만,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일류의 조건'이라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은 점(點)이 아니라 선(線)이다. 집중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창조적인 작업을 끊임없이 해낼 수 있느냐 없느냐.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

프로란 계속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프로로서 일류이냐 이류이냐의 차이는 자신의 역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쪽)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영화음악을 만들 때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한다. 영감을 받아 한번에 일을 몰아쳐서 해서 끝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결국 점에 불과하다는 것. 한두 번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계속 그렇게는 할 수 없기에, 자신의 일을 규칙적으로 만들어 꾸준히 한다는 것. 선으로 일을 만들어 한다는 것.

 

이것에는 재능만이 아니라 의지도 필요하다. 의지 없이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음을 히사이시 조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기교보다는 음악으로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음악은 기교들의 집합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작업이다. 음악을 통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그는 음악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끌어올리려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창조성이란 이런 상태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이 책의 뒷부분에 가면 히사이시 조가 일본을 넘어서려는 모습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영화음악을 한 것과 중국 영화음악도 했다고 하니, 그는 음악이라는 보편적인 도구를 가지고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일을 한 것이다.

 

이렇게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일본의 한계를 보게 되었다고 하는데.. 같은 음악을 연주해도 다른 느낌의 연주가 된다는 것.

 

남을 따라하는 데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일본인이 창조적인 면에서는 매우 뒤쳐진다는 것, 그들에게는 혁신보다는 과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역시 남을 뒤쫓아 지금의 자리까지 오지 않았던가. 이제는 뒤쫓을 일이 없어지면 우리가 앞서가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창조성을 발현하는 일이고, 혁신을 이루는 일이 아닐까. 히사이시 조는 한·중·일 삼국의 음악이 지닌 차이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작곡한 <여행을 떠날 때~>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을 중국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자 실로 편안한 대륙적인 소리가 나왔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는 너그러운 느낌이 배어나왔다. 하지만 일본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조촐한 느낌이 전해졌다. (172쪽)

 

이렇게 같은 음이라도 전통에 따라서 또 습성에 따라서 다른 느낌을 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문화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한편의 글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또 그가 작업한 영화를 떠올리면서 읽어도 되고...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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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홍,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법 - 긍정의 힘으로 인간을 위한 로봇을 만들다
데니스 홍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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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홍, 세계에서 알아주는 로봇 과학자라고 하면 된다. 그가 만든 로봇이 각종 국제 대회에서 상을 휩쓸어서 유명해졌고, 또 강연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법. 그가 살아온 과정과 로봇에 대한 열정, 그리고 그의 로봇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지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학문에 대한 이야기, 기술발전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좋다.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을 지니고 자신이 좋아하던 분야에 발을 담그고, 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데니스 홍이다.

 

이 책을 로봇에 중점을 두고 읽지 않고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어떻게 성취해가는가를 중심에 두고 읽었는데, 그런 읽기가 더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는 자신이 성공한 결과만을 보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만 하는데, 그가 성공하기 위해서 거쳤던 수많은 실패들에 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실패 없이 성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데니스 홍만해도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로 임용되는데 많은 실패를 거쳤다. 많은 대학에서 거절을 당한 것인데,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열정을 드러내 보였다. 그 다음 실패는 교수가 되어서 연구비를 타기 위해 냈던 제안서들의 실패다.

 

로봇을 연구하는 교수가 연구소를 운영할 자금이 없다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연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안서를 냈는데 계속 거절을 당한다면, 그만한 실망도, 그보다 더한 좌절도 없을 것이다.

 

이때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데니스 홍은 그 많은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나아간다. 그 결과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교수가 되어 연구소를 운영할 때도 그는 자유롭게, 또 대학원생만이 아니라 학부생까지도 받아들여 공동연구를 한다. 대학이 학문을 하는 곳이라는 말을 그가 운영하는 연구소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세번째 좌절은 대학을 옮기면서일 것이다. 그가 대학을 옮기자 전 대학인 버클리 공대에서는 그가 그동안 만들었던 로봇을 주지 않는다. 그는 졸지에 자신의 로봇들을 모두 잃은 것이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다시 시작한다. 그에게는 로봇을 만들어야 할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행복. 우선 자신의 행복, 가족의 행복, 그리고 사회의 행복이다. 사회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로봇이라면 그는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는 확고한 목표가 있다. 그는 연구의 목적을 확실히 해야 한다(271쪽)고 한다. 연구의 목적은 바로 사회가 좀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있다. 그가 거부하는 것은 전쟁과 관련된 연구다. 전쟁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 유익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의 로봇들은 그런 목표를 향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를 악용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세 가지를 제안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라고 한다. 그래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그런 그가 만든 시각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에 관한 일화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그의 관점이 변해가는 것과,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사회에 제공하려는 그의 노력이 마음을 울린다.

 

기술은 이렇게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 때는 학생들이 무조건 놀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무거운 책가방,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은 없애야 한다고... 여기에다 코딩 교육 열풍이 불었을 때 그가 우리나라 관계자에게 했다는 말.

 

추리소설을 읽히고 요리를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는 말... 컴퓨터 교육을, 코딩 교육을 물어본 사람에게 그가 한 이 대답에서 우리는 무엇이 먼저 실시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논리력과 조직력을 키우는 것, 창의력은 그들의 뒷받침으로 생길 수 있는 것, 이들을 도외시한 코딩 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지금과 같은 입시교육으로는 더이상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

 

참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로봇과학자인 그가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섰는지, 그는 어떤 관점에서 로봇을 만들려고 하는지, 로봇에 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라면, 또 자신의 꿈을 좇는 사람이라면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로봇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데니스 홍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다. 더불어 많은 것을 생각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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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모. 내게는 학창시절에 국어시간에 배운 시로 알려진 사람. 학자이기도 했고, 그래서 한국현대시문학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잊혀지는 시인이었는데, 우연히 헌책방에서 정한모 시전집을 발견하게 됐다.

 

  책을 보는 순간, 학창시절이 떠올랐고, 그의 시를 배우던 기억이 떠올랐으니... 그를 시인으로 크게 대접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랴, 어린 시절 배운 것이 몸에서 나가지를 않고 있으니.

 

  이래서 어린 시절 교육이 중요한가 보다. 마음에 와닿는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세월이 흘러서도 그의 시집을 집어들게 만드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는 두 편이다. '나비의 여행'과 '어머니6'. '나비의 여행'은 배웠지 싶은 기억만 있는데, '어머니 6'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나비의 여행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의 강을 건너

빚뿌리는 기억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나르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히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정한모 시전집1. 포엠토피아. 2001년. 180-181쪽.

 

 어머니·6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들의 가슴 속에서

벅찬 자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운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

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진주를 다시 쓰린 눈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정한모 시전집1. 포엠토피아. 2001년. 230-231쪽.

 

따스한 위안을 주는 시다. 지금 읽어도 마음 한구석에서 따뜻함이 새어나온다. 그렇게 시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시들이 지금까지 살아남는지도 모르고.

 

그럼에도 수많은 시인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다. 세월의 힘에 견뎌내는 시인들, 그들이야 말로 위대한 시인이다. 정한모는 '길 위에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세월 속에서 스러져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길 위에서

 

늙은 사람들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지식들을 들고

바쁜 걸음들이 뒤따른다

 

그들이 또 말할 것이다

「늙은 사람들은 어느덧

보이지 않는다」고

 

정한모 시전집1. 포엠토피아. 2001년. 307쪽.

 

그러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온다. 그것이 바로 삶이다. 우리 인간들이다. 인간들이 남긴 문화다. 정한모 시전집을 읽으며 다시 과거를 현재로 불러왔다. 시인들, 결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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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6-1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이름은 생소한데, 시를 읽으니 시는 또렷하게 기억이 나네요~ 저의 추억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kinye91 2019-06-18 09:49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읽어주셔서 저또한 감사합니다.
 
10대와 통하는 음식 이야기 - 음식으로 바꾸는 세상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30
박성규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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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먹을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먹을거리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떨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어떤 때는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음식을 아무 생각없이 먹는다.

 

하지만 음식은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고, 음식문화는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음식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들이 먹는 음식들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아마 다른 공부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 이러한 음식 공부이리라. 나를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서 아는 일이고, 내가 먹는 음식이 환경을 덜 파괴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 의무이기 때문이다.

 

여러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음식물에 있는 성분 표시를 읽는 법을 알려주고 있고, 또 탄소발자국같은 것도 이야기해주어서, 흔히 신토불이라고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도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 음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는데... 이 부분은 매우 새로웠다.

 

음식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사회를 바꾸기 시작한 요리사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으니 말이다. 요리하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셰프들이나 또는 유명인이 나와 말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요리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고, 또 이들이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음식의 중요성이 더 잘 느껴진다.

 

내가 먹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누구의 노동이 들어갔으며, 지구라는 행성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또한 요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그러한 일들을 하는 사람도 있음을, 우리나라도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특히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먹는 음식에 대해 별다른 생각없이 지내기 쉬운데, 이 책은 이러한 청소년들로 하여금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음식을 통해 사회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먹을거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유로울 수 없으면 음식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지녀야 한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건강에도, 또 지구에도, 또 윤리적으로도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노력, 그러한 음식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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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7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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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로 시작하고 싶다. "이 소설은 내 소설이다"라고 제목을 쓴 작가의 말. 작가는 '소설을 쓰는 것이 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171쪽)고 했다. 그는 창조주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들이 그가 창조한 세계에서 거닐기를 바라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자신이 창조주임에는 확실한데, 참 한심한 창조주라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르코 폴로처럼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여행하는 것에 가깝다.' (171쪽)고 말하고 있다. 먼저 문을 열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또 그들이 떠나라고 하면 언제든지 떠나야 하는 여행자. 그런 여행자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세계의 한계 속에서만 할 수 있다. 소설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또 말하고 있다.

 

'소설가라는 존재는 의외로 자율성이 적다. 첫 문장을 쓰면 그 문장에 지배되고,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을 따라야 한다. 소설의 끝에 도달하면 작가의 자율성은 0에 수렴한다. 마지막 문장은 앞에 써놓은 그 어떤 문장에도 위배되지 않을 문장이어야 한다.' (171-172쪽)

 

여기까지 작가의 말을 따라가니 이상하게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 역시 소설을 읽으며 자신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있다고 느끼고, 그 세계 속에서 또다른 자신을 발견한다고 생각하지만, 철두철미하게 소설 속 인물이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작가는 그럼에도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 (172쪽)

 

독자 역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내가 읽는 소설이다. 내가 읽어야 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은 독자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설가에게 소설이 자신의 것이듯 독자에게도 소설은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소설을 읽어야 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작가의 말을 인용한 것은, 너무도 잘 읽히는 이 소설이 도대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살인자... 수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어느 순간 살인의 세계에서 물러나 딸을 키우며 살아가던 살인자. 그러다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또다시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마을에서 자신의 딸을 지키고자 하는 살인자.

 

과거의 살인자가 현재 살인자로부터 딸을 지키려고 한다. 그것도 자신이 죽인 부부의 딸을. 그는 마지막으로 살인을 기획한다. 딸을 지키기 위한 살인. 과거의 살인은 철저히 자신을 위한 살인이었다면 이번에 계획한 살인은 딸을 위한, 즉 남을 위한 살인이다.

 

그런데... 소설은 반전을 이룬다. 그에게 딸이 있었던가. 연쇄살인은 일어나고, 그에 대한 진실은 소설 후반부에 가면 밝혀진다. 그렇다. 기억을 잃어간다고 해도, 자신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행위를 기억하지 못할 뿐, 행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아무리 없는 것(無)으로 돌리려 해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기억하지 못할 뿐,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래서 기억하기 위해 글로 쓰거나 녹음을 하는 기억 장치들을 동원한다. 그런 장치들 역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만 남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런 기록들도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장치들로 기억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는 소설을 읽어가면 알 수 있다. 또한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자신의 행위를 지워가는 일이 될 수 없음을 알아가게 된다. 온전하지 못한 정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기억을 하지 못할 뿐이다. 내면에 들어 있는 습성들이 어느 순간 터져 나오게 되는 것, 그런 행동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

 

사람은 무(無) 다시 무(無)돌아간다고 하지만, 처음의 무와 마지막의 무가 같을 수는 없다. 우리가 공(空)들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처음을 극복한 공(空)이 되어야 한다.

 

소설에 나오는 반야심경이나 금강경의 내용은 제자리 걸음을 하는, 또는 단순히 부정을 하는 무나 공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고민, 삶을 거쳐 깨달아야 하는 경지다. 그런 경지에 든 다음에 다시 자신이 있던 위치로 오는 것,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러 세상으로 나오고, 예수가 민중들 속으로 들어가듯이 그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깨우침인데,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망상 속에서 얻어지는 깨우침은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행동이 변하지 않는,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공에 대한 추구는 제자리 걸음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꽤나 스릴 넘치고 반전이 있는 이 소설을 불교의 십우도에 비유하면 결국 무에서 무로 가는 과정인데, 십우도가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이 과정이 아닌 오로지 제자리 걸음을 하는, 망상 속에서만 다른 차원으로 가게 되는, 현실과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태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늘 같은 나같지만, 결코 같은 나가 아님을, 나는 망상 속에서만 달라진 나를 발견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서 달라진 나를 발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함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술술 읽히는 소설이다. 재미도 있고. 그렇지만 무언가를 더 생각하게 하는, 찜찜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기도 하다. 나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생각하게 하는, 그러한 찜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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