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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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은 글쓰기를, 아니 그는 쓰기가 아니라 짓기라고 하는데, 건축에 비유하고 있다. 좋은 건축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듯이, 좋은 글 역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리라. 단지 감동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까지도 이뤄내는 것이 바로 좋은 건축, 좋은 글이리라.

 

이 책은 이런 신형철의 산문 모음집이다. 소설, 영화, 시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 대한 것까지 전방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글 하나하나가 제 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의 글짓기에 대한 생각이 글로 실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글짓기에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인식을 생산해낼 것. 둘째 정확한 문장을 찾을 것, 셋째 공학적으로 배치할 것. 여기에 가치 있는 것을 줘야 한다는 것. (5-6쪽)

 

가치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생명인데, 생명을 줄 수는 없으니, 생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신형철은 자신의 시간을 글에 투여해 우리에게 주고 있고, 우리는 그런 작가에게 다시 우리 시간을 준다. 우리가 시간을 주지 않으면 글은 그냥 화석이 된다. 화석이 의미있게 되기 위해서 우리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쓴 글들을 모아놓았는데, 제목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 말의 철학적인 의미를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전해내려오는 말을 떠올린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그렇지만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27쪽)

 

좋은 문장이다. 슬픔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람과 함께 지내기가 힘들어진다. 그는 오만과 독선에 빠지기 쉽다. 자기만을 내세우는 사람, 그 사람에게 타인의 슬픔은 다가올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슬픔의 총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나누지 않으면 그대로라는 말이 아니라, 더 늘어난다는 말로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그것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치열한 공부를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사회는 더 좋아진다.

 

많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 그 작품들을 만나고 싶은, 그 작품들에 내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부록으로 소개된 책들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이것이 바로 책이 지닌 의미이리라.

 

자신에게서 끝나지 않고 다른 책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그런 책들... 그리고 그런 글을 쓴 사람만이 우리에게 자신의 시간을 주는 가치 있는 활동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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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중고서점에서 구한 시집이다. 가끔 이렇게 중고서점에서 시집을 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시집을 주욱 읽어가다가 수상작보다는 수상작과 더불어 있는 시에 눈길이 멈췄다.

 

'개부처손'

 

  '개'들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 반려동물인 개가 아니라, 접두사 '개-'다. 도처에 '개-'가 붙은 말들이 난무하는데...

 

  예전 욕 중에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참, 개 처지에서는 억울하겠다. 자신들은 못된 짓도 하지 않고, 속이지도 않고 오로지 살아갈 뿐인데, 자신들에 빗대어 자신보다도 못하다고 욕을 하다니...

 

  아마 개들의 세계에서는 '사람만도 못한 개'라는 욕이 최고의 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전에 '개-'라는 접두사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1」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개금개꿀개떡.

「2」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개꿈개나발.  개수작.    

「3」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예) 개망나니.    개잡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개-'라는 말이 긍정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김선우 시를 읽어보지 않았을텐데, 김선우 시에 나오는 개부처손처럼 어떤 의미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반려견에 대한 사랑으로 '개-'자의 의미가 바뀌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튼 '개-'라는 접두사는 이제 부정의 뜻보다는 '정말 좋은, 아주 멋진' 매우, 꽤' 등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개멋져, 개예뻐, 개간지' 등등

 

언어라는 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기도 하지만, '개-'자처럼 이렇게 정반대로 바뀔 수가 있다니... 역설이다. 역설 속에 오묘한 진리가 숨겨져 있다고 하더니.

 

김선우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개부처손

 

개두릅 개복숭아 개살구 개머루 개꿈 개떡 같은

참 것이나 좋은 것이 아닌 함부로 된 걸 말하는 개, 라는 접두사가

부처님 손바닥처럼 생긴 풀 앞에 그것도 좀 모자란 듯한 잘디잔 손바닥 앞에 이름 붙어

개부처손이라 했다

 

납작한 바위를 감싸며 깊은 그늘 만들고 있는

고작 엄지손톱만한 개부처손들 앞에서 서성거린다

 

저자거리의 좀 덜된 무명씨 같은 이도 부처될 만하다는 것 같기도 하고

막된 인사(人事)보다 개가 부처를 이루는 게 도리라는 것도 같고

개나 소나 팽나무나 바위나 그저 데면데면하게 바라보던 것들 중에

이미 부처를 이룬 것들이 수두룩할 것 같고

 

2004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피어라, 석유! 현대문학 2004년. 김선우, 개부처손. 17쪽.

 

누가 이런 개부처손을 비속하다고, 또 작다가 업신여기겠는가. 이렇게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부처가 아닐까 한다.

 

부처에 등급이 있겠는가. 무슨 해탈에 등급을 매기겠는가. 그러니 자신의 자리에서 제 존재의 의미를 온전히 살아가는 존재라면 그것이 바로 부처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개-'라는 말을 붙인 것은 비하가 아니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아니 반대로 부처는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고 비루한 존재,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시인은 도처에서 부처를 보고 있다. 우리가 그간 '데면데면하게 바라보던 것들 중'에 부처가 있다는 것, 우리 자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높은 성전 속에서, 남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 눈에 띄지 않더라도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존재가 바로 부처라는 것.

 

이것이 '개부처손'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족속들, 그들은 부처가 무엇인지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꼭 부처가 아니더라도 남들을 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을 해보았는지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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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
김현수 지음 / 해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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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처럼 말했었다. 세종대왕 때도 요즘 젊은이들은 싸가지가 없어서 걱정이란 말이 있었다고. 기성세대들은 자기들이 살아온 경험으로 잣대를 만들고, 그 잣대로 자신들 뒤에 올 세대를 재단한다.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을 낡은 틀에 끼워 맞추려고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세대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세대갈등이 일어나면 뒷세대가 앞세대를 이겨내야 한다.

 

기성세대를 넘어서야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고, 그것이 건강한 사회일텐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꾸라고, 목표를 가지라고, 노력을 하라고 하는 것은 고문이다. 희망고문. 되지도 않을 일을 마치 되는 것처럼 말해서 결국 좌절하게 만드는 것.

 

이 책 표지 그림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젊은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들의 잔소리, 또는 충고가 아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어른들이다.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하더라도 해야 한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한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조건 공부를 하라고 한다. 공부, 그것도 삶을 살아가는 공부가 아니라 대학에,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공부다.

 

삶과 동떨어진 공부. 입시공부. 오로지 입시공부에만 매달려 다른 일은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부모에게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아니 벗어날 수가 없다.

 

한번도 제 스스로 해본적이 없는데, 실패를 하면서 그것을 이겨나가는 연습을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독립할 수가 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른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해준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자신들이 살아왔던 시대보다는 좋은 시대를 만드는 것이 사람들이 지녀야 할 자세일텐데, 우리들은 더더 힘든 사회를 만들어 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만드는 책이다.

 

'헬조선'이란 말이 공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표지에 있는 말들을 보라.

 

"일단 제 편이 되어 주세요. 비웃지 말고 격려해 주세요. 내일은 과연 오늘보다 더 나을까요? 우리들의 새로운 문화를 이해해 주세요. 마음 둘 곳이 없어요! 돈으로 때우지 마세요. 존중하며 잘 들어주세요.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요! 그냥 답답할 뿐입니다" 이런 말들이 적혀 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힘든 현실, 그 속에서 점점 무기력해져 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마냥 답답하게만 여기는 어른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 보고 행복하라고 말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오로지 공부, 공부, 공부!만을 외칠 뿐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더 힘들어질 수밖에. 어른들 자신도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식을 낳은 다음부터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거는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행복하라고 할 수 있는지.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알려주고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만큼 어른들 역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널리 전파가 될 수 있다. 행복바이러스라는 것을 퍼뜨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행복해져야 한다.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이 글을 먼저 읽는 것도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한국은 심리적 위험사회의 증거이다'라는 제목으로 그 지표를 들고 있는데...

 

1. 자살 사회   2. 고립 사회   3. 중독 사회   4. 초저출생 사회   5. 희망 부재 사회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지. 이 다섯 가지 지표가 각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모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이 지표 중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결한다면 나머지 지표들도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복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고, 아이들의 삶 역시 돈으로 치환될 수 없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 놓고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자살도, 고립도, 중독도, 초저출생도, 희망 부재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물론 어른들 역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고.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 정치란 현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 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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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억울하다· 2


이런 이름을 지닌 풀들

쥐오줌

개불알

개쉽싸리

존넨시름


이런 이름을 가진 집단들

태극기부대

자유총연맹

어버이연합

자유한국

보수 우익이라지만

알고 보면 수구꼴통


부르기 민망한 이름이나

이름값도 못하는 단체나

없느니만 못한 이름


그러니

잡초는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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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탄생 - 모방이론을 통해 보는 사랑의 심리학
장-미셸 우구를리앙 지음, 김진식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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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거창하게 심리학에 관한 전문적인 책으로 보아도 좋지만, 심리학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에 관한 책으로 보아도 좋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왜 그 사랑을 지속하지 못하고 서로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결국 헤어지게 될까? 그것의 원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문제가 이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문제는 모방에 있다. 즉 상대방의 욕구를 모방하기 때문에 그 욕구들이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이가 좋을 때는 상승작용을 내는 모방 욕구들이 사이가 좋지 않을 때는 안 좋은 쪽으로 강화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그를 경쟁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쟁자로 여기는 순간 모방이론은 상대를 꺾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경쟁을 보면 그 사랑이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시소게임과 같다고 한다.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갈 수밖에 없는.

 

그러나 사람의 사랑이 어디 시소와 같은가? 좋을 때는 같이 올라가고 안 좋을 때는 거의 같이 내려가지 않는가. 이러니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경쟁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튼튼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경쟁에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미세한 불평등이 끼어드는 순간, 다름 아닌 평등이 반복되는 폭력과 긴장과 비교의 원인이 된다. 나는 일종의 선택된 위계질서라 할 수 있을, 두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차이와 균형 잡힌 불평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부가 시소 게임을 시작하면 관계가 빗나가기 시작한다. ... 둘 중 하나는 상대의 욕망을 위해 자기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사랑을 살리려면 경쟁을 희생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욕망의 대상을 포기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332-333쪽)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두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이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욕망의 희생은 또다른 불평등을 낳고, 상대의 욕망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행위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랑은 자신의 전존재를 내건 행위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을 때는 상대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뢰가 바탕을 이루지 않을 때 모방 욕구가 작동하고, 경쟁이 끼어들 틈이 생긴다.

 

그래서 상대를 내 욕망에 굴복시키려는 행위가 시작된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신뢰, 내 욕망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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