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기의 힘이라는 꼭지로 여러 글이 실려 있다. 읽기 자체에도 엄청난 힘이 있는데, 함께 읽기는 더 많은 상승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혼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함께 진리를 추구한다면 진리에 다가가는 길이 단 하나가 아님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은 홀로일 수 없다. 교육이라는 말에는 이미 '함께'라는 말이 들어 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의 상호작용. 이것이 교육이다. 배움이라고 해도 좋다.

 

  디지털 배움이라고 해도 컨텐츠 속에 이미 상호작용이 들어 있다. 누군가는 가르칠 목적으로 내용을 제공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통해서 배운다. 결국 '함께'할 수밖에 없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학교에 왜 청소년들이 다니는가? 탈학교 청소년들도 꽤 많아졌지만,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학교에 있다. 단지 부모들이 다녀야 한다고 해서? 갈 곳이 없어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함께'라는 말에 더 많은 이유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한다.

 

학교가 사교의 장, 수면이 장, 식사의 장으로 변했다고 하지만, 친구 만나 함께 먹고, 함께 놀고, 가끔은 졸거나 자기도 하는 장소가 바로 학교 아닌가. 그런 곳에서 '함께' 할 수밖에 없고, 그 함께 함 속에서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이렇듯 함께 지내는 시간 속에서도 배우는 것이 있는데, 함께 읽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독서를 무척이나 강조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홀로 읽기가 아닌 함께 읽기를 강조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들레처럼 스스로 서는 것을 강조해도,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라는 말에서 이미 '함께'가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함께 읽기, 그래서 다양함을 살리는 삶을 살아가기는 무척 중요하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과연 우리나라 학생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있을까? 그들에겐 여가 시간이 없다. 오로지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일 뿐이다. 움직여야만 한다.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을 해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

 

그러니 책을 읽어도 함께 읽지 못한다. 그냥 점수를 따기 위해서 읽을 뿐이다. 좀더 좋다고 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 자신의 생활기록부에 기록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읽을 뿐이다. 여기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욕구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냥 읽을 뿐이다.

 

함께 읽기라는 말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학창시절,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함께 읽기는 해본 적이 없다. 아니, 학교 교육에 다양성이라는 말은 교과서에만 있는 말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면 곧 제재가 들어온다. 다양함을 다양하게 살리는 일이 함께 읽기라면 학교가 추구하는 것과 이미 함께 읽기는 맞지 않는다.

 

마치 70-80년대 학교에서 책을 읽으면 공부 안 한다고 교사들에게 맞았던 것과 비슷하게... 읽어도 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읽어야 한다. 답을 만들기 위해 읽지 않는다. 함께 읽으며 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있음을, 아니 꼭 답을 찾기 위해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바로 기성세대다. 이들은 불안해 한다. 학생들이 청소년들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좀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또 너무도 혼란스러워 보여도, 결국 그들이 자신들의 길을 갈 거라는 믿음이 부재한 세대가 바로 기성세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끊임없이 답을 미래세대에게 강요한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등등...

 

이번 호에 나온 이 말이 그래서 더 마음에 다가온다.

 

청소년들은 미래를 미리 살 필요가 없다. 어른이 걱정을 그들에게 짐 지우지 말아야 한다. 어른들의 역할은 언젠가 어른이 될 그들의 현재를 온전히 지켜주기, 하나의 잣대로 그들을 평가하지 말고 함부로 개입하지 말기, 그리고 옆에 나란히 서서 그들이 걷는 스텝 한 발 한 발을 바라봐주기가 아닐까. 그래야 그들은 팔딱팔딱 살아 숨쉴 수 있다. (171쪽)

 

이 구절을 읽고 함께 읽기, 함께 살기, 함께 고민하기는 바로 어른들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 호에서 어른들의 함께 읽기 모임에 대한 글들이 많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 되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함께 읽기, 함께 하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렇게 함께 읽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청소년들을 좀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지켜보아주는 어른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호 김달님이 쓴 '사랑으로 도착한 곳'은 깊은 울림을 준다. 어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격월간 민들레는 그래서 함께 읽기가 더욱 필요한 책,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말하고 함께 행동하는, 그렇다고 똑같이 살아가지는 않는, 다양한 삶을 추구하게 하는 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한미술과 분단미술 - 작품으로 본 북한과 우리 안의 분단 트라우마
박계리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북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방송에서 연일 북한과 미국의 갈등을 다루고 있고, 그들이 말폭탄을 주고받고, 또 유엔 안보리에 미국이 북한 문제를 상정했다고 하는 기사를 읽고 듣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도 더 심하게 떨어져 지냈다. 떨어져 지낸 정도가 아니라 서로 교류를 하면 간첩으로 몰려 처벌을 받는 사회였으니, 알고도 모른 척, 아니 아는 기회가 생겨도 알려고 하면 안 되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다.

 

남북 긴장관계가 조금 풀어져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금강산 관광이 있었고, 개성 공단이 가동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때... 지금은 둘 다 막혀 있는 상태. 여기에 남북 정상이 회담을 하고 손을 잡고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선을 넘었다 왔다 갔다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예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간 상태.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지금의 현상을 잘 분석할 수 있는 틀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북한도 미국도, 그리고 우리나라도 모두가 잘 되기를,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는데, 그 접점을 찾기 위해서 지금 서로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측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북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생각은 학창시절에 배운 것으로 끝나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분단 트라우마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 책에서 가끔 지적하듯이 의도적인 망각 속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외국에서 보면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험악한 상황인데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간다. 사재기가 없는 나라다.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절대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당위로 그렇게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저자는 의도적 집단 망각이라는 의미의 말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망각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우리들의 믿음이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사재기가 일어나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전쟁이 눈 앞으로 다가오게 된 것처럼 느끼고 실제로 그 불안은 어떤 돌발상황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망각이 아니라 의연함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에 대한 깜깜함 속에 이 책은 북한 미술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 분단미술이라는 말이 들어갔지만, 후반부에 다루고 있는 내용은 우리나라로 탈북해온 미술가들의 작품이나 또는 외국에서 볼 수 있는 북한의 작품, 그리고 우리 분단을 다루고 있는 미술가들의 작품들이니... 제목에 분단미술이라는 말보다는 통일미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중에 로저 세퍼드라는 작가가 찍었다는 백두대간의 사진 중 '돌강'이라는 사진이 이 책의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든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356쪽)

 

아무리 둘러봐도 물은 보이지 않고 돌만 보이는데, 물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딱딱한 돌들이 쌓여 물길을 막고 있는 것이 분단이라면 이 분단 속에서도 물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 통일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이 장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금은 황량한 돌들만 보이는 강일지라도 그 밑에서는 물이 흐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분단 현실 속에서 통일에 대한 발걸음은 결코 멈춰지지 않았다는 것.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이렇게 북한 미술을 다루고 있는 것은 분단에 대한 인식은 곧 통일에 대한 걸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책은 앞부분에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학교 교육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북한 미술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물론 북한은 우상화 작업도, 공산주의 사상을 강조하는 작품들도 많이 창작했지만, 그것 또한 그들이 지나온 역사이니, 우리가 굳이 부정하거나 감출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예술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그 무엇이 있다.

 

예술의 공통점에 민족이 지니는 어떤 공통된 감정들이 작품에 나타난다고 보면 되는데, 북한 미술을 보면서 우리 미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작품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정현웅의 이 그림을 이름을 가리고 보면 어디 북한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우리나라 50-70년대 아이들 모습이라고 해도 믿지 않겠는가.

 

이 책이 주는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미술을 통해서 북한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또 단지 북한이 아니라 분단된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게 하고,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갈 수 있게 디딤돌을 놓는 것이다.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교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이질감들이 상당히 극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말 어원사전 -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잘난 척 인문학
이재운 지음 / 노마드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알아두면 잘난척 하기 딱 좋은 우리말 어원사전'이라고 했지만,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알아두면'이라고 했는데, 우리말에 그런 조건을 달아야 할지 의문이다. '알아두면'이 아니라 '알아야'라고 해야 한다.

 

영어를 아주 어린아이 때부터 가르치면서 영어, 영어 하면서도 우리말에 대해서는 무지하게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있었다. 하다못해 국어보다는 영어가 더 우위에 서는 경우도 많으니, '알아두면'이 아니라 '꼭 알아야'라는 말로 제목을 달아야 한다.

 

다음 '잘난 척 하기'가 아니다. 우리말에 대해서 알고 있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째서 '잘난 척'인가. 그것은 잘난 척이 아니라 그냥 '잘난'것이다. 아니, '잘난'이 아니라 '당연한'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잘 모르는 것이 부끄러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이게 우리나라 국어교육의 현실이다. 1920-30년대 소설은 말할 것도 없고, 1950-70년대 소설도 읽지 못하는 어휘력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다. 이런 청소년들이 이상하게도 어려운 책들을 읽고 논술을 한다. 독서토론을 한다. 거참 이상하다.

 

소설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데, 읽지 않고, 그래서 우리말에 대한 실력을 쌓지도 않고 고등학교에, 대학교에 진학하는데, 나중에 보면 이들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책을 읽을 시간이 분명 없었을 텐데. 물어보면 제대로 읽은 소설이 없던데... 거참 괴이한 일이다. 이러니 우리말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잘난 척'이 되기 쉽다. 그냥 '당연'이 '특별'이 되는 세상이다.

 

'어원 사전'이라고 했는데, '어원'이라는 말보다는 '유래'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언어학적 분석보다는, 우리나라에 그 말이 언제 쓰이기 시작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어원보다는 유래, 그리고 그 말이 들어오게 된 시기, 문화 등을 알려주고 있기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리말에 어떤 어휘들이 첨가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 점에서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지 낱말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문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흔히 쓰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라는 말에서 문제가 되는 낱말이 바로 '담배'라는 말임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담배는 광해군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하니, 그 전에는 담배라는 것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겨우 500년 된 담배가 우리나라 사람들 생활에 너무도 깊숙히 들어와 있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김치하면 빨간 김치를 떠올리는데, 고추 역시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에나 전해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것으로 알고 있는 말들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고구마 역시 마찬가지고.

 

낱말을 시대 순으로 정리해서 그 시대에 어떤 낱말들이 생겨났는지를 알려주고 있기에, 낱말을 통해서 우리나라 말들의 역사, 우리나라 문화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된다. 낱말 하나하나를 시간 나는 대로 들여다 볼 수 있기에, 버스나 전철과 같은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 틈틈이 들여다 보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영어 단어 외우기를 강조하면서 우리말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게 해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12-11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1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서 책을 신청하면 보내준다고 해서 신청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오히려 일본과 사이가 더 안 좋아져 경제갈등에 이르기까지 된 지금은 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지 배상금 문제가 아니다. 돈 문제가 아닌데, 자꾸 돈을 강조한다. 왜 그럴까? 사과, 진정성 있는 사과. 아니 깨끗하게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 그것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잘못이 없단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받아들일 수 없는데,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떼고 있다. 제국주의라는 제도 아래서 사람들은 수단에 불과했고, 특히 여성들을 착취했는데, 그것을 제도 탓이라고 해도, 그런 제도를 운영한 사회를 반성하고 사죄해야 하는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모르쇠가 아니라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 상태.

 

이것을 배상의 문제로만 치환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가 일본인 이유는, 이렇게 그들은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묻어두려 한다. 그러면서 아시아를 서양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고 한다.

 

지금 미국이 쓰는 용어 '부수적 피해'란 말과 일맥상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국을 위해서 개인은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 제국을 위해 개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그러므로 제국의 시대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 자료를 통해서 자발적이었다고 주장하는 그런, 자발적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은 배제하고 그 말만으로 주장하는 것도 이상하고, 돈을 받았다고 자발적이라고 하는 것도, 착취는 없었다고 하는 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법적,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있었음을 생각하지 않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으니...

 

국가 간의 협정으로 이미 과거의 일로 다 끝났다고, 이제는 책임이 없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국가 간 배상과 달리 개인에게도 배상을 해야 함을 이 보고서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은 그러해야 하고, 다른 나라들도 이런 가해국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하도록 국제법이나 국제적 협의를 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동 없는 미래 -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온다
팀 던럽 지음, 엄성수 옮김 / 비즈니스맵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인공지능, 제4차산업혁명 등 과학기술의 시대에 인간의 일자리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책들은 비관적이거나 낙관적인 관점을 택하고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비관적인 주장에 반대해 그만큼 다른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낙관적인 주장도 있다.

 

어떤 것이 맞을까? 그것은 모른다. 미래의 일을 추측, 예측할 수는 있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그대로 맞힐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예견과 달리, 우리들의 행동으로 인해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나비의 날개짓으로도 태풍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동에 대한 위협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아르바이트 자리로 청소년들이나 노인들이 취업했던 주유소가 셀프 주유소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도 하이패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것뿐인가? 자동화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그만큼 다른 일자리가 생기면 좋겠지만, 없어지는 일자리에 비해 생기는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다. 이렇게 사람들 일자리는 기계에 의해 또 인터넷을 활용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의해 사라져 가고 있다. 도대체 이 일은 거스를 수 있는 것인가.

 

없다. 지금까지 이룩해 온 발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미 우리는 로봇,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적일까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다른 관점에서 시작한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을 경제, 기술, 과학의 문제로 다루려 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저자의 시각이 독특하고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를 정치적인 문제라고 한다. 노동, 일자리 문제인데 정치적인 문제라고? 그렇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다른 답을 찾을 수 있다. 왜 우리가 꼭 노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하고,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과거의 일, 현재의 일을 이 책에서 먼저 살펴보고 있다. 일이 인간의 삶에 본질적인 것인가?  과거 일은 노예들이 하는 것이었다. 인간으로 대접받는 시민들은 노예들이 하는 일을 바탕으로 생긴 여가를 통해 다른 활동을 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적이라고 여겨졌다. 현재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노동은 인간 삶을 유지하는 기본 수단으로 인식되었지만, 자동화가 되면 이제 과거의 양상과 비슷해질 수 있다.

 

우리 생계나 생활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기계가 할 수 있다. 아니 지금도 기계가 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동화로 사라진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할 것인가? 아니라고 한다.

 

다른 활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창조적인 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지내는 일 등, 여러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 없는 미래는 경제, 과학,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 조건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저자가 노동 없는 미래와 기본소득을 연결지은 것이 새롭다. 그리고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최근에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자동화와 연결지은 것이 좋다. 이렇게 기본소득과 연결이 되면 노동 없는 미래는 자연스레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기본소득은 정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일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불리한 조건에서도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에 노동을 하더라도 주체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사용자들도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시간 노동을 할 필요도 없다. 이미 생계는 확보되었기 때문에 생활의 윤택함을 추구하게 된다. 이때 노동을 기계에 맡겨도 된다. 기계화 시대가 되었는데 굳이 그것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활동을 하면 된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시대일지도 모른다. 기반 시설부터 다른 조건들도 충분하다. 다만, 한가지가 마련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정치적인 문제다.

 

생산량도 물품도 넘쳐나지만 누구는 없어서 못 쓰고, 누구는 남아돌아서 버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활동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미래로 가기 위해 근무 시간 단축과 기본소득이라는 디딤돌을 놓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현재 대부분 선진국의 통치 방식과는 다른 통치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 더는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놓고 쓸모없는 논쟁을 벌이지 알고, 함께 상상력을 발휘해 우리 모두를 해방시켜줄 일이 없는 미래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257쪽)

 

그래서 우리 미래는 정치에 달려 있다.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문제는 정치다. 우리들 삶이 로봇이,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사회에서 더욱 비참해지느냐 아니면 여러 사상가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되느냐는 정치에 달려 있다.

 

이렇게 정치를 강조한 것, 과학기술의 발전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정치적인 문제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더 많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분명 예전보다는 일을 덜 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계속 일을 더 하려고 하는가? 일을 더해도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로봇이나 인공지능, 자동화로 인해 일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에 대한 부담이 더 늘었다. 일자리를 가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 충분히 바꿀 수 있는 환경임에도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정치에 달려 있다.

 

노동 없는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읽을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