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 살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남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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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하면 떠오르는 작가가 몇 있다. 사실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서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코난 도일이 쓴 홈즈 시리즈는 어릴 적에 몇 권 읽었고, 르블랑이 쓴 루팡(또는 루팽) 시리즈도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


그리고 거의 읽지는 않았지만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애거서 크리스티였다. 이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그때까지 번역된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을 모두 읽은 친구가 있었고...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도 살인사건이 주를 이루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이 있어서 결론은 범인이 잡히고 만다로 끝나는, 이미 결과를 알 수 있는, 그래서 추리의 과정을 좇아가는 재미로 읽어야 하는 소설인데,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에 선뜻 손에 잡지 않았던 소설들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라는 영화를 보게 됐다. 처음부터는 아니고,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부분부터 봤는데... 어? 결과만으로 작품을 판단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지니게 됐다. 


  소설을 찾아 읽어봐야지 했는데, 소설과 영화는 내용이 거의 비슷하지만 등장인물에서 차이가 있다. 역시 소설과 영화는 장르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형상화하는 인물도 약간씩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결말은 비슷하게 끝나는데, 영화의 결말이 더 감동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둘 다 좋았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탐정 포아로의 내적 갈등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데, 영화에서는 포아로의 내적 갈등이 잘 드러난다) 


  이 소설을 읽으면(또는 영화를 보면)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정의일까? 사적인 해결은 정의가 아닐까?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일은 정의가 아닐까? 정의 실현은 오로지 법을 통해서, 재판을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할까? 그렇다면 재판은 과연 정의로울까? 우리나라 사법농단도 있었으니, 재판(사법)이 곧 정의라고 말하기도 참 그런데...


함무라비 법전이라고 학창시절에 배운 내용이 생각났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 즉 행한대로 거두리라고 하는 법. 


가해자가 손에 상해를 입혔다면 가해자에게도 똑같이 손에 상해를 입도록 하는 법. 참 원시적이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법이 사적으로 지나치게 가해지는 보복을 막는 효율적인 법이었다니...


그렇다면 법이 할 수 있는 최대치는 피해자가 받은 피해를 양적으로 계산해서 수치화해, 그 최대점을 넘지 않도록 판결하고 집행하는 일. 그렇다면 물리적인, 겉으로 표가 나는 일이야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받은 정신적인(심리적인) 고통은 어떻게 양적으로 나타내 결정을 하지? 아니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이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현재의 법으로 보면 살인죄에도 다양한 법 적용이 있다. 최대치가 사형일 뿐.(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도 많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가 있으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말자)


피해자는 어쩌면 사형당하지 않고 풀려나는 가해자를 보면서 법이 미약하다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을까? 그것도 증거불충분으로 나온다면? 이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추리소설에서 이런 점을 생각하게 되다니...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살인을 당한 사람은 예전에 아이를 유괴해 죽였지만 풀려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죽인 사람들은? 그 아이, 그 가족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에게 죄가 있는가? 당신이 탐정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어떤 행동이 정의에 부합하는가? 소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물론 탐정 포아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한다. 그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 점이 좋은 소설이다. 법은 과연 만능인가? 법대로 하면 정의는 실현되는가? 그렇다고 살인자에게 살인으로 응하는 일이 과연 정당한가? 목숨을 목숨으로 갚게 하는 일이 정의로운가? 그런 질문도 하게 된다.


살인에 살인으로 대응한 사람들은 무죄인가? 그들에게 죄를 물어서는 안되는가? 아니면 그들에게도 똑같이 살인죄를 적용해야 하는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찾도록 한다. 물론 작가는 포아로를 통해 자신의 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은 작가의 답이고, 우리에게는 우리들의 답을 찾도록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문제 제기. 질문하는 책. 이렇게 질문을 머리 속에 남기는 소설과 영화는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단순히 살인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만 매몰되지 않고, 결말을 통해서 우리라면 어떻게 결정할지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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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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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우주다. 그만큼 광대한 존재다. 밝혀진 사실보다 밝혀질 사실이 더 많은 존재이기도 하다. 여전히 많은 부분을 알 수 없는, 그런 존재. 


그 중에서도 인간의 뇌에 관해서는 더욱 밝혀져야 할 부분이 많다. 우리 체중의 2%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를 쓴다는 뇌. 


정재승의 이 책은 과학 분야에서도 특히 뇌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강연체로 글이 쓰여 있어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가 있다. 


책 표지에는 '생각의 모험으로 / 지성의 숲으로 /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 열두 번의 강의'라고 되어 있는데, '생각의 모험으로'가 아니라 생각이라는 모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고 있고, '지도 밖의 세계로'가 아니라 뇌라는 세계의 지도를 어느 정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운전을 할 때 네비게이션에 목적지 설정을 하고 가면 안내에 따라 가기만 한다.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더 넓은 장소 속에서 위치를 가늠하지 않는다. 갔다 오면 갔다 왔을 뿐, 그 장소에 대한 지도는 없다.


그래서 가끔은 지도에서 목적지를 찾아본다. 네비게이션에 의존하기는 하지만, 넓은 위치 속에서 목적지가 어디쯤에 있는지 대략 알고 가면, 좀더 그 장소를 잘 알고 갔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지도 밖의 세계가 아니라 우주라는 지도에서 우리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뇌라는 광활한 우주에서 내가 생각하고 찾는 지식들이 어느 자리쯤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을 이해하는, 뇌를 이해하는 지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도를 읽을 줄 알면 장소를 찾기가 쉽다.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잘 알 수가 있고, 나아가고자 하는 곳을 찾기도 쉽다. 


정재승이 이 책에서 한 역할도 그러한 지도 역할이지 않나 싶다. 과학이라는 광대무변한 세계에서 내가 서 있는 위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그런 책.


열두 번의 강의. 하나하나 읽으면서 좋았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지식 두 가지. 


하나는 서양 사람과 동양 사람들이 사람의 표정을 인식할 때 보는 위치. 동양 사람들은 눈을 중심으로 파악한다면, 서양 사람들은 입을 중심으로 파악한다고... '헬로키티'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헬로키티에서 동서양을 읽다. 194-197쪽)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 우리나라 사람들 문자메시지에 이모티콘을 보낼 때 주로 눈 모양을 사용한다. 감정 표현을 그렇게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입 모양으로 주로 한다고? 이런 것들 역시 우리들 뇌에 각인되어 있으니, 역시 문화 차이가 인식 차이로 가는 데는 뇌가 한 몫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다른 하나는 언어가 각인되어 있는 뇌부위가 있다고 한다. 어떤 특정한 단어를 들었을 때 활성화되는 뇌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단어들이 뇌의 특정한 부분들에 속해 있다면, 그 특정한 부위의 뇌를 조정하면 사람들의 언어 표현도 조종할 수 있다는 말인지...


아마도 더 발전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하니, 뇌 부분만으로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섬뜩함. 그렇다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로 처벌받는다는 영화 속 현실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인지...


하지만 아직도 뇌라는 우주는 우리에게 밝혀진 부분보다는 밝혀지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창의성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상식이라고 알고 있었던 지식을 뒤집는다. 뇌에 관한 또는 창의적이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창의성이 단지 기발한 발상이 아님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는 우리 인간에 대해서 모른다. 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그것이 우리를 앞으로 계속 나아가게 한다. 그렇게 나아가는데 지도가 있다면 조금 더 편해지겠지. 정재승의 이 책, '열두 발자국' 그런 지도 역할을 잘하고 있다.


이 책 말미에 실려 있는 인터뷰에서 정재승을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388쪽)라고 부르고 싶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는 우리가 어렵게 여기는 과학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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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16 0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대식, 김대수 교수님까지 읽었는데
정재승 교수님을 아직 안 읽었어요 ㅜㅜ
기대 됩니다~

kinye91 2021-08-16 09:05   좋아요 0 | URL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말이 잘 맞다고 생각해요. 정재승 교수는 과학을 우리 곁에 있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드는 책이었어요.
 

  코로나19로 거의 갇혀 지내다시피 하고 있다. 6시 이후에는 2인까지만 모일 수 있으니, 아는 사람들과 저녁에 만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렇다고 사람이 집에만 갇혀 지낼 수는 없는 일. 세상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한다.


  가뜩이나 더운데, 더워서 집 안에 있으면서 에어컨을 틀고 나만 시원해도 되나, 안이 시원해지는 만큼 밖은 더 더워질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고.


  그럼에도 틈을 이용해 바깥 나들이를 한다. 나들이를 하면서도 방역수칙이 어떻게 되더라 고민도 하고, 방역수칙을 어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이 참에 받아본 [빅이슈] 256호는 표지부터 시원함을 줬다. 바다다. 그래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밖에 대한 동경은 더 커지고있는데... 


이번 호에서 다뤄준 바다 특집이 그나마 집 안에서 피서를 할 수 있는, 눈이 시원해지는 만큼이나 마음도 상쾌해지는 그런 글과 사진이었다.


어려울 때일수록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편하게 해주는 존재가 있는데, 이 어려운 시기에 [빅이슈]가 그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이야기부터, 연예인들이 해주는 이야기, 또 각자 자신들이 생각하고 살아온 이야기.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국어책에서 배운 수필들... 수필가라는 직업이 있었고 또 유명인사들이 글을 써서 수필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배웠음에도 쉽게 인정을 할 수가 없었는데...


빅이슈를 읽으며 이런 글들이 바로 수필이구나. 정말 수필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솔직하게 쓴 글이구나. 그래서 감동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가식이 없는 글. 사람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글들. 어려운 존재와 어떻게든 함께 가려고 하는 모습들이 글에서 배어나온다. 그래서 좋다.


이번 호를 바다 특집으로 한 이유도 그런 [빅이슈]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지쳐가는 여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에 이어 무더위까지 참 힘들게 하는데, 이 잡지를 읽는 순간만큼은 그것들을 다 잊고 청량감에 마음을 맡길 수 있게 된다.


그래, 힘들 때일수록 함께 해주는 존재들이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지. 그래야만 우리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또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특히 사람들이 있다는 인류애를 잃지 않고 살아가겠지.


8월에 처음 만난 [빅이슈] 256호는 내 심신이 지쳐가고 있을 때에 내게 위안과 휴식을 주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말복이 지나간다. 그리고 더위도 지나가겠지. 이처럼 코로나19로 지나가고, 모두가 다시 저녁에도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때가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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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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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노트라는 제목으로 여러 식물에 관해서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전문적인 이야기보다는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식물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던 식물에 관해서도 모르고 지냈던 부분들을 알게 된다.


특히 식물하면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식물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고, 식물도 경쟁을 하기도 하지만, 협동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식물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여기에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는 부분에서 다시 우리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모든 존재에게서 배울 수 있다. 아니 배워야 한다.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가지고 식물을 바라본다면, 또한 사랑하는 마음으로 식물을 바라본다면 그 식물을 통해서 배울 점이 있다. 그런 배움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두 책을 떠올렸다. 조금 오래된 책이긴 한데, 윤구병이 쓴 "잡초는 없다"라는 책과 황대권이 쓴 "야생초 편지"다. 다 식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통찰하는 내용의 책이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그 책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우리 삶에 관한 이야기다. 만물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이고, 어떤 존재의 사라짐은 우리 삶의 풍요로움이 순차적으로 빠져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식물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결국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우리들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으면서 또 여러 번 읽으면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식물들에 관해서 생각하고, 이 책에는 없지만 주변에 있는 많은 식물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지녀야겠다는 마음도 지니게 하고, 또 식물을 비롯한 다른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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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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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하면 내게는 칼 세이건이 쓴 책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우리나라 늦여름부터 가을이면 지천에서 볼 수 있는 꽃인 코스모스도 떠오르지만. 그 꽃만큼이나 칼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는 내게 코스모스의 대명사라고 할 만할 정도였다.


그만큼 칼 세이건의 책이 내게 경외감을 주었는데... 그 내용을 이해하고 말고의 차원을 넘어서서, 그 책을 읽는다는 사실에서 행복을 느꼈고, 광대한 우주를 세이건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을 지니곤 했다. 지금도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또다른 책인 [코스모스]를 봤다. 어라, 세이건 책이 아니네. 앤 드루얀. 어떤 내용이지. 작은 제목이 있다. '가능한 세계들'


우주 속에서 우리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지닌 별을 찾을 수 있다는 내용인가? 제목이 코스모스니 우주에 관한 내용이리라 추측을 하고 빌렸다. 읽어야지, 당연히. 세이건이 쓴 [코스모스]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지 궁금해 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 전에 저자를 보니, 칼 세이건과 함께 작업을 했던 사람, 세이건이 죽기까지 함께 살았던 사람이다. 그들은 함께 우주를 탐색하고, 과학을 대중들에게 알리려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앤 드루얀이 [코스모스]란 제목으로 여러 번의 작업을 했음도 작가 소개에 나와 있으니 책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다.


이 기대는 감탄으로 바뀌는데는 책장을 얼마 넘기지 않아서였다. 칼 세이건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1939년 뉴욕 세계박람회장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다는 말. 그 말 하나면 이 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말 하나로 과학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고.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26쪽)


이 말을 실천하는데 칼 세이건만큼 행동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앤 드루얀도 마찬가지다. 이 책 역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과학은 골방에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만에게 해당하지 않고 우리 인류 모두에게 필요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는듯이.


우주에 대한 방대한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우주를 이야기하기 위해 앤 드루얀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그리고 우리 지구가 걸어온 역사와 인물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지금 인류세라는 절명위기 시대를 겪고 있지만, 지구 역사, 우주 역사를 보면 그런 일들은 늘 있었고, 그것을 거쳐온 과정이 지금까지 우주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절망만 할 필요도 없다. 많은 과학자들이 예언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카산드라 이야기처럼, 과학자의 예언을 믿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반대하는 이익집단들이 있었다. 하지만, 카산드라의 예언은 비극적일망정,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의 예언은 실현된다.


과학자들의 예언은 예언이라기보다는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에 기반한 증거를 해독해서 그 증거를 토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예측한다. 그러므로 예측은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즉 예측을 통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앤 드루얀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자연을 완전히 경험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둠의 커튼을 살짝 들추는 방법을 하나 안다. 그것은 바로 과학의 기본 규칙들이다. 어떤 발상이든 실험과 관찰로 확인해 볼 것, 시험을 통과한 발상만 받아들일 것, 통과하지 못한 발상은 버릴 것, 어디든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할 것. 권위에 대해서도. 이 규칙들만 지킨다면, 코스모스는 우리 것이다." (33쪽)


자연을, 우주를 완전히 안다는 생각을 버린다. 그저 살짝 들출 뿐이다. 그런데 살짝 들추는 방법도 쉽지는 않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증거들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가. 또한 증거가 있음에도 권위에 굴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과정이 이 책에도 나와 있지만, 역사는, 코스모스의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옳은 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 결과다. 그런 과정을 감동있게 표현하고 있기도 한데...


특히 바빌로프(4장.바빌로프)에 관한 부분에서는 지금 우리 인류가 어떠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된다. 굶주림 앞에서도,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인류를 위해 씨앗(종자)를 먹지 않았던 학자들. 바빌로프의 동료들. 


그들은 인류가 굶주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고, 그 종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세계의 씨앗들을 모아두었다. 전쟁으로 굶주림에 시달릴 때 그 씨앗들을 먹으면 굶어죽을 일이 없을텐데도, 그들은 미래를 위해서 굶어죽는 길을 택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알기에, 그 미래를 파괴하면서 현재를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 과학자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태도 아닌가. 그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택해야 하는 천형과도 같은 윤리다. 그 윤리를 저버리면 이 책에서도 말하지만 (10장, 두 원자 이야기)원자폭탄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데 참여한 데서 더 나아가 더욱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텔러와 같은 과학자처럼 된다.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는 전쟁이 끝나자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한 폭탄을 개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텔러와 같은  과학자도 있다고 하니...참고로 아인슈타인이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서가 핵개발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인류가 합심하자고 하는 버트런드 러셀이 쓰고 로트블렛이 발표한 문서였다고 한다. 


텔러라는 과학자와 아인슈타인 또는 로트블렛이라는 과학자가 걸어간 길은 다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은 바로 아인슈타인과 로트블렛이 걸어간 길. 즉 과학이 파멸의 길로 가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의식하는 과학자. 그리고 그런 과학을 깊은 의미까지 이해해야 하는 우리들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과학자들은 예측을 했다. 그들을 카산드라로 만들지 않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가 힘을 합쳐 그들의 목소리에 반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측을 통해 결과가 바뀔 수 있게 할 수 있다. 아주 작은 힘만으로도 결과는 엄청나게 바뀔 수 있음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앤 드루얀이 쓴 이 책, 광대한 우주 이야기가 결국 우리 인간 이야기임을, 우리 역시 우주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멀리 별을 보아도 좋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좋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존재들을 보아도 좋다. 우리는 모두 우주니까.


그런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고, 또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 앤 드루얀과 칼 세이건이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칼 세이건을 만날 수 있다는 행복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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