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강은주 지음 / 아카이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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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2011년. 세상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일어난 해. 안전하다고 말하던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아니면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나야 했던 해. 그리고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진행이 되고 있는 문제가 발생된 해.

 

체르노빌, 후쿠시마. 아마도 이 도시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 가장 큰 재해 중의 하나로.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재해 중의 하나로 말이다.

 

체르노빌은 사고가 발생한 지 26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사람들은 살 수 없으며, 원인 모를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원자력 발전소는 아직도 제대로 폐쇄되지 않았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여기에 2011년 겨우 1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중 하나인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체르노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의 일처럼 취급했다. 그냥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오히려 우리나라 원자력을 세계에 수출할 절호의 기회라고 떠들어대었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멈추거나 앞으로 어떻게 폐쇄할 것인지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도 건설하겠다고, 지금의 23기도 부족해서 더 짓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지니고 있는지. 이번 총선에서도 원자력발전의 문제는 강하게 제기되지 못했고, 원자력발전 폐기를 들고 나왔던 녹색당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원자력 발전이 거대한 집단들의 연합으로 작은 힘으로는 막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켰다고 할 수 있다.

 

체르노빌에서도 후쿠시마에서도 사고를 예측하지는 못했다. 안전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도 사고가 났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3개 원자력 발전소 중 하나라도 큰 사고가 난다면 이는 거대한 재앙으로 우리에게 다가올텐데...여기에 원자력발전소를 더 짓겠다니.

 

체르노빌, 후쿠시마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이 책에 나와 있다. 결국 원자력 발전으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고, 발전 중에도, 또 사고가 난 뒤에 더 큰 희생을 당하는 존재들은 평소에도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 책 곳곳에서 알 수 있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을 때의 피해만을 생각하기 쉽다.

 

폭발했을 때의 피해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고, 그러한 폭발 사고는 몇 십년이 지나도, 아니 몇 백년이 지나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뒷부분에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굳이 폭발 사고가 아니더라도 원자력발전소는 건설과정부터 작동 중일 때도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삶터를 잃어야 하는 사람들에서부터, 한 마을 공동체가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지는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으며, 원자력 발전소 인근 마을에서는 송전탑 문제로 또한 자신들의 생활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로 인해 마을이 파괴되고, 또한 보관한 방법도 별로 없어 먼 미래 세대에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발명한 오만한 기술이 인간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현실. 그래서 대안이 뭐냐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 기술은 우리가 사용해서는 안되는 기술이라는 인식을 먼저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인 적정기술과는 거리가 먼 기술이기에 하루바삐 다른 기술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방식을 되돌아보고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에는 원자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단다. 이 내용을 읽는 순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원령공주"가 생각났다. 인간이 만든 무기 총으로 인간이 자연의 신을 살해하는 순간, 자연이 처절히 죽어가는 장면. 거기에서 멧돼지 지도자가 했던 말. 점점 자신의 종족들이 작아지고 있다는. 인간의 힘이 늘어날수록 자연의 힘은 약해지고, 자연의 정복이 가속화될수록 인간도 역시 제대로 살기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데... 총이 아니라 원자력은 그야말로 핵임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영화의 끝장면에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데...

 

원자력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공존, 아니 생존을 위해서는 폐기되어야 할 기술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나 할까.

 

무지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원자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 실상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원자력을 핵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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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멈춰! - 보살핌 우정 배움의 공동체 평화샘 프로젝트 2
문재현 외 지음 / 살림터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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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뜨거운 화두다.

 

학교를 보내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내기도 하고, 또 학교 폭력이 심각하다고 경찰들까지 배치하겠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내 아이는 아니겠지 하는 마음이 있기도 하고, 청소년기엔 다들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배움에서도 생활교육에서도 학교에 그리 만족하지 않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학교는 보낸다. 아니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스스로 찾는 아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의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할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도 행동도 학교에 규정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떤 존재인가? 자아실현을 하게 하는 장소이어야 하는데,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알려주지 않는 공간이 학교이다. 학교는 지식을 중심으로 굴러가고, 지식 습득에 뒤처지면 생활도 뒤처지게 된다. 자연스레 그런 학생들은 따돌림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집단괴롭힘을 당하게 된다.

 

결국 성적, 성적 하는 학교가 폭력을 조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폭력은 반복될 뿐만이 아니라 확대재생산된다.

 

청소년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폭력의 문제는 너무 심각하다. 단순한 한 때의 다툼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피해자뿐만이 아니라, 가해자도 역시 정신적으로, 삶적으로 피폐해진다.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은 교사들이 평화샘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천결과를 책으로 내었다. 북유럽의 실천을 받아들이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고쳐서 폭력을 없애는 나름의 지침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지침서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하나하나 따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폭력의 반대가 평화라는 사실, 보살핌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보살핌이 학교에서 살아날 수 있음을 자신들의 실천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 실천 중의 하나인 폭력에 대처하는 4대 규칙을 보자.

 

1. 우리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2. 우리는 괴롭힘 당하는 친구들을 도울 것이다.

3. 우리는 혼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할 것이다.

4. 만약 누군가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학교나 집의 어른들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누구나 실천하기는 힘든 이 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멈춰!"를 도입한다. 괴롭힘이 있을 때 피해자가, 또는 주변의 친구들이 멈춰라고 말하고, 회의를 소집한다. 회의과정에서 역할극을 하고, 이를 다른 경우로까지 적용하여 일반화한다. 그래서 폭력을 단지 방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평화를 만드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게 한다.

 

이 제도가 정착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의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교사부터 선언해야 한다는 사실, 본인부터 체벌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하겠다는, 폭력에는 끝까지 책임지고 대처하겠다는 그런 선언을 해야 한다고 한다.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교사가 하고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평화가 깃들도록 하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아니, 반드시 교실에 평화가 깃들도록 해야 한다.

 

남학생의 사례에서 여학생의 사례, 직접적인 폭력에서 간접적인 폭력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들고, 그 해결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학교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런 면에서 교사들이 꼼꼼이 이 책을 읽고 대처한다면 학교 폭력이 많이 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 책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풀어가기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그 수준에 맞는 해결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는데 있다. 담임이 거의 모든 시간을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초등학교와 담임이라고 해도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중,고등학교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러한 실천사례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평화샘들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럴텐데, 중,고등학교에서도 이러한 실천사례들을 정리해서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폭력이 일어났을 때 그에 대처하기보다는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평화로운 학급, 보살핌이 있는 학급, 학교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서 우리는 밝은 미래를 볼 수 있다. 다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학습에 시간을 쫓기는 아이들에게서는 평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자신을 차분히 돌아보고, 남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면 폭력은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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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지식여행자 14
요네하라 마리 지음, 한승동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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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의 책, 이게 두 번째 책이다. 첫번째 책은 발명마니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자유로의 사고와 거침없는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생각과 거침없는 표현이 잘 드러나고 있다. 또한 박학다식하다. 정말로 많이 안다. 아는 것을 우리에게 쉽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파사현정(破邪顯正) : 그릇된 것을 깨뜨려 바른 것을 드러낸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 교수신문에 한 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싣고 있다. 이 파사현정이란 말은 2011년을 대변한다고 하는 사자성어다.

이 말의 뜻을 풀이해주지 않으면 '아, 이런 뜻이구나'하고 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한자어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한글이 이미 우리 말의 중심이 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한 나라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꼭 이렇게 한자어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식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우리나라에 속담이 얼마나 많은데... 그 속담들 중에서 한 해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골라 발표를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얼마전에 "미주알 고주알 우리말 속담"이란 책이 우리말 속담에 대해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삶과 관련지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 책을 읽으며 참 좋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이번에 읽은 이 책은 한 나라의 문화, 생활을 넘어서 세계적인 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속담이라는 것이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골고루 퍼져 있으며 또한 민족이라는 특수성이 인류라는 보편성에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우물 안 개구리를 넘어

 

속담이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비슷하다면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 속담을 아는 것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속담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우리의 생각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 있는데, 이 도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구라면 속담에 대해 안다는 사실은, 이미 우물을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속담을 아이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이 책의 마지막 속담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어 이미 시작을 했다면 반은 성공한 것이나 진배없다고 시작의 중요성을 알리는 말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그리고 이 시작을 끝까지 밀고 나갈 노력의 중요성도 우리나라의 '공든 탑이 무너지랴'처럼 세계적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고, 또 그것을 밀고 나가 제대로 된 끝마무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이처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세계 어디서나 인종을 불문하고,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하다는 생각. 그래서 우리는 인류라는 동료애를 지니고, 인간애를 지니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

 

이 책에 어울리는 말이다. 아니 보기 좋은 떡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러나 구성면에서 참 재미있게 되어 있다. 속담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나오지 않는다. 속담을 작은 제목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각 속담의 시작은 재미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이야기와 속담이 연결이 되고, 각 나라의 속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한다. 보기 좋은 떡이라고 하기보다는 읽기 좋은 책이 이해하기도 쉽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재미도 있고, 읽으면서 생각도 할 수 있고, 여기에 사회문제까지 건드려주고 있으니, 속담을 통해 두 마리 새를 모두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 군데 생각이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세상 일을 바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세상일을 속담으로 표현해내고 있으니, 촌철살인, 그야말로 재밌게 읽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글쓰기, 지금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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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전기 - 세계 사랑을 위하여
엘리자베스 영 브륄 지음, 홍원표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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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의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온 지도 꽤 오래되었고, 그의 거의 모든 저서가 번역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물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의 주요 저작들은 이미 다 번역되었다고 봐야 한다.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정신의 삶과 같은 책들을 우리는 한글로 읽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아렌트는 영어보다도 독일어로 사유하고, 독일어로 글을 썼다고 봐야 하는데, 그의 사상들이 독일어에서 영어로 번역이 될 때도 많은 과정을 거쳤을텐데, 이 저작들이 다시 한글로 번역이 될 때 우리는 아렌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의문.

 

워낙 고대 그리스 사상부터 로마, 그리고 중세, 또 칸트, 헤겔에 맑스에 이르기까지 사상의 편력이 다양한 사람이라서 어느 한 면으로 아렌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학문 풍토에서 이들 서양철학자들을 전면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서양철학에 서양정치사상사까지 훑은 학자는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많은 공부가 아니라 그 정도는 공부해두어야 아렌트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고, 이를 한글로 번역하여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이는 읽는 나 자신의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에, 한글로 된 책을 읽으면서도 글자는 한글이되, 그 글자들이 모여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렌트 전기도 마찬가지다. 전기문이라서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것이 우선 잘못이었다. 우리는 전기문을 학생들에게 권할 정도로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 않나. 그냥 그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접어든 이 책은 우선 분량에서부터 주눅들게 했다. 아니 무슨 책이 이렇게 두꺼워.

 

여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 이렇게 비싼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에 매겨진 값만큼은 읽고서 남겨야 하지 않나 하는 부담감. 전기문을 집어들었는데, 가격과 분량에서 우선 부담을 지니고 들어갔으니...

 

내용도 만만치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읽기가 힘들다. 이건 전기문이 아니다. 굳이 전기문이라고 한다면 출생에서 죽음까지 다루었다는, 전기문의 시간적 형식을 갖추었다는 점에서만 전기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기문 중에 평전이라고 하면 된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전기문.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평전과 또 전기문과 자서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아렌트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일생에 대해 알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그것은 실수다. 곧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망설이게 된다. 끝까지 읽을 것인가, 중간에 그만둘 것인가?

 

전기문이라고 하기보다는 아렌트 사상 해설서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이 전기문 자체가 아렌트 사상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고, 아렌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러한 사상을 지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렌트 사상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나온다. 따라서 아렌트의 책을 미리 읽지 않았다면 이해하기가 힘들다. 아니, 읽었다고 하더라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것은 아렌트 자신의 해설도 아니고, 아렌트의 책을 읽은 우리들의 해설도 아니고, 이 전기문을 쓴 영-브륄의 해설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뿌듯함이 밀려온다. 해내었다는 마음. 그런 마음이 든다. 정치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은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나는 여기서 아렌트의 삶이 사회 전반의 문제에서 인간의 문제, 그리고 사유의 문제로 계속 더욱 정교하게 발전되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직접 자신이 겪었던 무시무시한 세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나타난다면, 그 세계에서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인간의 조건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다면 세계속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것이 정신의 삶. 즉 사유-의지-판단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렌트는 결국 무국적자였다는 생각. 무국적자였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관찰하는 사람에 가까웠고, 관찰하는 사람이었기에, 사유-의지-판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런 고민이 결실을 맺었으면 우리가 그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기문이 아니라, 철학사상서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드는 이 두꺼운 책은, 끊임없이 우리의 머리를 괴롭힌다. 제발 생각 좀 하라고. 그냥 따라 읽지 말라고. 네 생각을 정립하면서 따라오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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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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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따뜻한과 경쟁이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 웬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낱말이 하나로 묶였다. 경쟁이란 남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 과정이기에 따뜻하기보다는 차갑다는, 냉정하다는 생각이 더 드는데, 이 책에서는 따뜻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우리가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는 그런 경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선의의 경쟁이라고 하면 의도만을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따뜻한이라고 하면 의도뿐만이 아니라 결과까지도 이야기를 하고 있단 생각이 들게 하기에 선의의 경쟁이라는 말보다는 따뜻한 경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더 마음을 편하게 하고, 더 마음에 다가온다.

 

경쟁이 없다면 좋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다고 전제한다면,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함께 더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러한 경쟁은 우리가 장려해야 할 경쟁이 되리라.

 

이런 경쟁이 되기 위해서는 큰 틀을 공유해야 한다. 즉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협동, 더 나은 공존을 위해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스위스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스위스는 경쟁을 배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경쟁 만능주의에 빠져 있지도 않다고 한다. 경쟁을 하되, 처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 또 다른 경쟁에서 탈락을 한다면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사회, 그것이 바로 스위스 사회라고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승자독식주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돈을 많이 번다면 그는 세금을 더 많이 내서 사회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기여를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으며, 굳이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일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스위스 사회라고 한다.

 

여기에 인간만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자연과 다른 동물들과의 공존도 고려하는 사회. 개발 개발을 외치지 않고, 함께 조화를 이루는 삶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회, 당장의 교통 편의보다는, 자연이 그대로 있음으로서 더 많이 줄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회. 하여 70킬로미터가 넘는 강에도 다리가 달랑 하나뿐이라는 사회.

 

금융업이나 기술업으로 번 돈을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업분야에 투자하는 사회. 그래서 사회의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사회. 그것이 바로 스위스 사회라고 한다.

 

스위스 이야기를 하는데, 스위스 이야기보다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더 많다. 아니, 지은이는 스위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치 우화처럼. 우화에서 사람보다는 토끼나 여우, 사자 같은 동물들이 나오지만, 우리는 우화를 동물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화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자연스레 우리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고, 어떤 삶이 바람직한가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얘기, 스위스 얘기, 그리고 다른 나라 얘기가 혼재되어 나오지만, 결국은 우리나라 얘기다. 바로 우리 얘기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까 하는 얘기를 스위스에 빗대어 하고 있다.

 

승자독식사회. 자연과의 공존보다는 자연을 파괴하는 시멘트가 지배하는 사회. 함께 일을 줄여가기 보다는 나만이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하는 사회. 교육이 국민의 의무라고 하면서, 사실은 국가의 의무가 교육이고, 따라서 당연히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이를 사교육에 맡기는 책임방기의 사회. 민주주의 보다는 아직도 구태의연한 정치가 만연한 사회.

 

이런 우리사회를 바로 보라고, 스위스라는 거울을 들이대고 있다. 그 거울을 보면 우리 사회의 모습이 비친다.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일그러져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스위스라는 거울을 통해 나타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싫다고 눈을 감으면 사실이 사라지는가? 아니다. 우리는 눈을 감으면 안된다. 오히려 더 자세히 보아야 한다. 알아야 고칠 수 있으므로. 거울에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으므로.

 

특파원으로 직접 스위스에 가서 생활한 기자가 쓴 글이라, 전문적인 사회과학 서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누구나 어, 그래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공연히 학술서에 주눅이 들었다면, 그래서 사회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읽자.

 

사회 문제는 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 누구도 사회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자, 스위스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자. 보고, 우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부터 하자.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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