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내렸다. 모처럼 강화도에 쉬러 갔는데... 계곡에 발을 담그고, 말 그대로 탁족을 하려 했는데... 비라니... 탁족은 고사하고, 우산도 변변히 챙겨가지 못해 비를 피하기에 바빴다. 덕분에 어제는 더위를 잊을 수 있었지. 비가 오는 날임에도 사람들은 어디든지 많았고... 이제는 그 비로 인해 많이 시원해지겠지 했는데.. 오늘은 해가 쨍하다. 다시 덥다. 더위도 결코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겠다는 자세다.

 

오래 된 시집을 읽었다. 민영의 "엉겅퀴꽃"

오래 된 이라는 말이 들어맞는지는 모르지만 벌써 25년 전의 시집이니, 오래 된 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강산이 두 번하고도 반이 바뀐 세월이고, 우리의 생활 모습은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언제 샀을까? 예전에는 책을 사면 책의 밑에다 날짜를 써두던 습관이 있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책 중에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책들은 2000년이 넘어서 산 책들이고, 2000년이 넘어서부터는 책에다 날짜를 써두지 않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서.

적어도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내 곁에 남아 있는 책들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내 곁을 떠나가야 하는 책들도 있기에, 그 책들에 내 흔적을 문신 새기듯, 낙인 찍듯 남겨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짜를 적지 않았다.

 

이 책은 날짜가 적혀 있다. 1997년 2월 27일.

 

무더위에 다시 꺼내 읽었는데,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추위가 어느 정도 가시고, 이제 곧 봄이 올 때였단 말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위도 차츰 사라질 때... 이 시집은 추위가 사라질 때, 그리고 더위가 사라지려 할 때 다시 나에게 다가온 시집이구나. 이런 데서 새삼스러움을 느낀다.

 

아마도 나는 이 시집을 두 편의 시 때문에 샀으리라. 하나는 '수유리 하나'라는 시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해마다 봄이 되면 4.19가 되면 민영의 '수유리 하나'가 생각이 났고, 힘없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보면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가 생각이 났으니 좋은 시란 그시를 읽는 독자가 많다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콕 박혀 언제든지 다시 불려나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영의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짧은 시편에 담아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 시인이 시로써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더하려 하는 순간이다.

 

그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들이 다 거리로 나가 막강한 힘을 지닌 압제의 무리와 몸으로 부딪칠 수도 없는 것이라면, 힘겨운 겨룸터에 뛰어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태주고, 그들을 위해 기쁨과 슬픔의 노래라도 불러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위해보기도 한다.

민영, 엉겅퀴꽃, 창작과비평사, 1987. 후기에서

 

그렇다. 시인이 천상의 고고함만을 노래할 수는 없다. 지상의 비루함도 시인에게는 노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이 노래하는 지상의 비루함으로 인해, 우리는 천상의 고고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시인은 직접 돌을 들지 않아도, 세상의 비루함을 파괴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분단의 슬픔, 가난의 슬픔, 무언가 이루지 못한 슬픔, 사회 모순의 슬픔 등등이 이 시집 속에, 짧은 시행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아마도 이 시집은 몇 년 뒤, 몇십 년 뒤에 읽으면 그 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과거가 잘 들어있다. 민주화되기 이전의 우리나라 모습이.

 

지금도 내 마음에 있는 시 두 편. '수유리 하나' 그리고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이 시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아직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벗어나야 한다.

 

수유리 하나

 

한 늙은이의

더러운 욕망이

저토록 많은 꽃봉오리를

짓밟은 줄은 몰랐다.

 

 민영, 엉겅퀴꽃, 창작과비평사, 1987. 수유리 하나 전문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아들에게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 늘 약골이라 놀림받았다. / 큰 아이한테는 떼밀려 쓰러지고 / 힘센 아이한테는 얻어맞았다.

 

어떤 아이는 나에게 / 아버지 담배를 가져오라 시키고, / 어떤 아이는 나에게 / 엄마 돈을 훔쳐오라고 시켰다.

 

그럴 때마다 약골인 나는 /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갖다 주었다. / 떼밀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 얻어맞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 떼밀리고 얻어맞으며 지내야 하나? / 그래서 나는 약골들을 모았다.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 우리는 더 이상 비굴할 수 없다. /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 / 어깨를 겨누고 힘을 모으자.

 

처음에 친구들은 주춤거렸다. / 비실대며 꽁무니빼는 아이도 있었다. / 일곱이 가고 셋이 남았다. /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약골이다. / 떼밀리고 얻어맞는 약골들이다. / 그러나, 약골도 뭉치면 힘이 커진다. / 가랑잎도 모이면 산이 된다.

 

한 마리의 개미는 짓밟히지만, / 열 마리가 모이면 지렁이도 움직이고 / 십만 마리가 덤벼들면쥐도 잡는다. / 백만 마리가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코끼리도 그 앞에서는 뼈만 남는다. / 떼밀리면 다시 일어나자! / 맞더라도 울지 말자! / 약골의 송곳 같은 가시를 보여주자!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 우리 나라도 약골이라 불렸다. / 왜놈들은 우리 겨레를 채찍질하고 / 나라 없는 노예라고 업신여겼다.

 

민영, 엉겅퀴꽃, 창작과비평사, 1987.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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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이 자라면 온 세계가 성장한다 - 간디학교, 또 다른 배움의 이정표를 세워 온 15년의 기록
산청 간디학교 엮음 / 낮은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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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리 실험 이야기"

이것은 간디자서전의 작은 제목이다. 우리나라에 간디자서전이라고 제목이 붙어있지만, 간디는 자신의 삶을 진리를 실험하는 과정이자, 진리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이러한 간디의 철학을 이어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진리를 구현하고자 세운 학교가 간디학교다. 그런 간디학교가 설립한 지 15년이 지나가고 있다고 한다.

 

15년, 짧다면 짧은 기간일 수도 있지만, 길다면 엄청나게 긴 기간일 수도 있는 기간이다. 공자가 말했다지 않은가. 사람 나이 15시가 되면 학문에 뜻을 두어야 한다고. 그래서 지학(志學)이라고 한다고.

 

이 때 학문에 뜻을 둔다는 얘기를 말 그대로 공부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예전에 학문이란 바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진리 추구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학문에 뜻을 둔다는 소리는 삶의 방향을 정하고, 그것에 매진하겠다는 소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공부라고 하면 대학을 생각하고, 특정한 지식을 습득한다고 생각하는데, 공부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무엇이 진리인가. 나는 어떻게 진리를 추구할 것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을 공부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간디가 자신의 삶을 진리 실험이라고 했듯이 공부란, 학문이란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공부라고 해야 한다.

 

삶을 위한 학문, 삶의 학문, 학문이 곧 삶인 그러한 상태. 간디학교가 첫발을 대디뎠을 때 지녔던 마음가짐이 그 땐 탄생을 해서 살아남기에 급급했다면, 이제 15살이 된 간디학교는 나름대로의 방향을 지니고 그것에 매진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15년의 과정 속에서 간디학교는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과 방향을 정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성장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을까 한다.

 

간디 학교에서 지냈던 학생들의 모습, 그들이 치열하게 고민했던 과정들, 그리고 교사들의 모습, 학부모의 모습, 또 밖에서 애정을 가지고 간디 학교를 지켜봤던 사람들의 모습이 이 책이 오롯이 담겨 있다.

 

대체로 이 책에 실린 글들에서 느껴지는 점은, 간디학교에 대한 애정, 자부심, 그리고 간디학교 출신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등이다. 이런 고민들이 곧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고, 단지 대학에 가기 위한 고민이 아니라, 진정한 삶에 대한 고민이 있는 학교이기에 기대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학문에 뜻을 둘 나이가 된 간디학교. 간디학교가 굳건히 자리잡고, 자신들의 방향성을 널리 퍼뜨려 대안학교라는 말이 없어지게 되기를 바란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대안학교든, 제도권 교육이든, 삶을 위한 배움,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방향을 잡는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꿈꾼다.

 

어떤 교육이 바람직할까 고민하는 사람들, 이 고민이 녹아 있는 이 책을 보면 나름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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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 풀 꺾이고 있다. 아무리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라도, 지구온난화라 하더라도 계절의 흐름을 아직은 이길 수 없나 보다. 입추와 말복이 지나가고 있으니,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바람에 시원한 기운이 실려서 우리 몸에 다가오리라.

 

이번엔 함민복 시인의 시집을 골랐다. "긍정적인 밥"처럼 많이 유명해진 시가 있는 시집이었으면 더 좋았으려나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집, 좋다. 유명해진 시와 시집의 좋음은 상관관계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 시집은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의 시집을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강화도로 쉬러 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함민복 시인은 강화도에 살고 있다고 알고 있기에, 강화도에 가기 전에 그 시인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고 펼쳐들었다.

 

총 4부로 되어 있는데, 시들이 길지 않고, 각 부분에서 마음에 드는 시들이 물 속에서 숭어가 뛰듯이 막 뛰쳐 나온다. 싱싱하다.

 

다른 시들이야 넘어간다 쳐도, 이 시집에는 특히 섬 생활에 관한 시들이 많다. 물고기를 낚는 일, 뻘에 관한 일들이 시로 넘쳐나고 있다.

 

그 중에 우선 물과 관련된 시를 하나 보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수직과 수평이 늘 교차하는 것만이 아닌, 수직을 통한 수평의 성립.

 

 

소낙비 쏟아진다

이렇게 엄청난 수직을 경험해 보셨으니

 

몸 낮추어

 

수평으로 흐르실 수 있는 게지요

수평선에 태양을 걸 수도 있는 게지요

 

함민복,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년 초판 3쇄. 물 전문

 

이 시를 거꾸로 읽으면 가장 낮은 것이 가장 높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고를 경험했기에 자신을 한껏 낮출 수 있다는 사실. 예수를 보아도, 부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 이 사람은 결코 높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진정 높음을 안다면 자신을 낮추고, 자신을 평평하게 만들어 누구나 자신에게 다가올 수 있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태양을 걸 수 있듯이 높은 성취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시인은 쏟아지는 비, 수직으로 땅을 향해 맹렬히 내리꽂는 비를 보고, 하늘을 경험한 존재로, 그래서 그런 수직을 통해 수평이 된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진정 하늘을 아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 이런 사람, 시인은 바란다. 그래서 "기호 108번"이란 시에서 '국민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 말을 파신 분이나 / 말을 파실 분들은 / 중생들이 다 극락왕생할 때까지 / 성불하시지 않겠다는 / 기호 108번 / 지장보살님 꼭 한 번 생각해주세요'(기호 108 부분)라고 한다.

 

수평이 되지 못한 존재들, 그들은 자신들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하고, 겉으로만 하는 반성이 아닌, 뼛속까지 스며드는 반성을 해야 한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 검처럼 신성한 / 죄란 말 / 오염시키지 말자'(죄 부분)

 

이런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는 시인이기에, 도시의 생활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도시의 삶은 경직되어 있는 딱딱한 것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반면 시인은 말랑말랑한 삶, 그러한 삶을 추구한다. 도시의 삶이 빛이라면 농촌의 삶, 어촌, 산촌의 삶은 그림자다. 그러나 시인은 빛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림자를 추구한다. 오죽하면 이 시집의 2부가 "그림자"겠는가.

 

그림자가 부정적으로 쓰이기 보다는 우리네 삶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그 어떤 무엇이라고 봐야 하고, 우리가 그림자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 삶은 빛과 그림자가 균형을 이루는 수평적 삶, 평평한 삶을 이루게 된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부드러운, 말랑말랑한 것들에 애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말랑말랑한 힘'을 보자. 울림소리들의 반복으로 운율이 입안에서 저절로 살아나는 시. 시 자체도 정말로 말랑말랑하다.

 

 

말랑말항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2005년 초판 3쇄. 말랑말랑한 힘 전문

 

강화도에 가서 나도 뻘에 발 한 번 담가야 겠다. 말랑말랑한 힘을 느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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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는 도시에서 더 심하다. 실질적으로 발표되는 온도는 서울이 늘 최고는 아니지만, 도심에서는 온갖 물질문명으로 인해 몸이 느끼는 온도는 엄청나다. 그것도 기분 좋은 더위가 아니라, 몸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기분까지도 끈적거려지는 더위다.

 

이런 도시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긴 나도 잘 버티고 있으니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도시의 일상을 시로 표현한 시집은 없을까? 왜 없겠는가? 다만 요즘 서점에서 시집 코너가 사라지거나 축소되고 있듯이, 시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살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서 그런 시집을 찾아내기가 힘들기 때문일 뿐이지.

 

언젠가 눈에 들어온 한 시 때문에 사게 된 시집이 바로 김기택의 "사무원"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도시의 삶을 이토록 냉철하게 관찰하고 표현하는 시인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단지 도시의 생활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을 시인은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고 또 이를 시로써 표현해내고 있다. 이 관찰력, 이것은 애정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우선 내 눈에 들어온 한 시.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이 시를 읽으며, "그래, 정말 그래." 했었는데...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날개 없이도 그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를 나설 때

잠시 땅을 밟을 기회가 있었으나

서너 걸음 밟기도 전에 자가용 문이 열리자

그는 고층에서 떨어진 공처럼 튀어 들어간다.

휠체어에 탄 사람처럼 그는 다리 대신 엉덩이로 다닌다.

발 대신 바퀴가 땅을 밟는다.

그의 몸무게는 고무타이어를 통해 땅으로 전달된다.

몸무게는 빠르게 구르다 먼지처럼 흩어진다.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가기 전에

잠시 땅을 밟을 시간이 있었으나

서너 걸음 떼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새처럼 날아들어 공중으로 솟구친다.

그는 온종일 현기증도 없이 20층의 하늘에 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쉴새없이 지저귀느라

한순간도 땅에 내려앉을 틈이 없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2010 초판 10쇄. 그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는다 전문

 

원시시대 때 맹수들의 위협을 피해 나무 위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 땐 땅을 밟는다는 행위는 위험에 자신을 내보내는 행위였을텐데... 이후 도구의 사용과 직립 보행으로 땅을 밟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삶을 유지하는 행위가 되었는데... 고도화된 산업사회, 특히 도시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땅을 밟을까? 정말로 우리는 새보다도 적게 땅을 밟지 않을까? 그나마 밟는 땅도 흙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땅이니...이렇게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잘 표현한 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 그는 도시인의 삶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이 도시에서의 삶은 인간적인 삶과는 좀 거리가 있다. 따라서 그가 도시의 생활을 시로 표현했을 때는 우리의 일상임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암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이미 생활이 아닌 생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이젠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 땅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사무원'을 보자.

 

사무원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붙박여

보리밥과 김치가 든 도시락으로 공양을 마쳤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 가는 것을 처음으로 목격했다는 사람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의 다리는 의자가 직립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하루종일 損益管理臺帳經과 資金收支心經 속의 숫자를 읊으며

철저히 고행업무 속에만 은둔하였다고 한다.

종소리 북소리 목탁소리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에다 자금현황 매출원가 영업이익 재고자산 부실채권 등등을

청아하고 구성지게 염불했다고 한다.

끝없는 수행정진으로 머리는 점점 빠지고 배는 부풀고

커다란 머리와 몸집에 비해 팔다리는 턱없이 가늘어졌으며

오랜 음지의 수행으로 얼굴은 창백해졌지만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수행에 너무 지극하게 정진한 나머지

전화를 걸다가 전화기 버튼 대신 계산기를 누르기도 했으며

귀가하다가 지하철 개찰구에 승차권 대신 열쇠를 밀어넣었다고도 한다.

이미 습관이 모든 행동과 사고를 대신할 만큼

깊은 경지에 들어갔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30년간의 長座不立'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 부르든 말든 그는 전혀 상관치 않고 묵언으로 일관했으며

다만 혹독하다면 혹독할 이 수행을

외부압력에 의해 끝까지 마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나마 지금껏 매달릴 수 있따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의 통장으로는 매달 적은 대로 시주가 들어왔고

시주는 채워지기 무섭게 속가의 살림에 흔적없이 스며들었으나

혹시 남는지 역시 모자라는지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의자 고행에만 더욱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그의 책상 아래에는 여전히 다리가 여섯이었고

둘은 그의 다리 넷은 의자다리였지만

어느 둘이 그의 다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 초판 10쇄. 사무원 전문

(한자어, 순서대로 손익관리대장경, 자금수지심경, 장좌불립)

 

새보다도 땅을 적게 밟고 산 결과 그는 다리를 여섯개가 가진, 그러나 걷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맡겨야 하는 노동자들의 삶, 우리네 삶을 이토록 아프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그래도 이것은 좀 낫다. 뒤에 가면 이런 사무원은 결국 '화석'이 된다. 그 자리에 붙박혀 더이상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화석.

 

그는 언제나 그 책상 그 의자에 붙어 있다.

(중략)

겨울이 지나고 창 안 가득 햇살이 들이치는 봄날,

한 젊은이가 사무실에 나타난다. 구둣소리 힘차다.

그의 옆으로 와 멈추더니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는 기척이 없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붙어 있다.

젊은이가 더 크게 소리치며 굽은 틍을 툭툭 친다.

먼지가 일어나고 등이 조금 부서진다.

젊은이는 세게 그의 몸을 흔들어댄다.

조그만 목이 흔들리다가 먼저 바닥에 굴러 떨어진다.

이어 어깨 한쪽이 온통 부서져내린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져버린 그의 몸을 들어낸다.

재빠르게 바닥을 쓸고 걸레질을 하고 새 의자를 갖다놓는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년 10쇄. 화석 부분

 

평생을 일해도 그는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는 한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물에 불과하다. 그의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그는 가차없이 버림받는다. 여기에는 피가 흐르는 사람의 모습은 없다. 젊은이는 그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그 역시 세월이 흐르면 화석으로 변하고, 곧 치워져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네 도시의 삶은 이렇다.

 

하지만 이런 삶 속에서도 시인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런 희망을 어린이에서 찾는다. 어린이의 존재 자체가 싱그러움이다. 희망이다. 삶의 활력이다.

 

이 어린이들이 자랐을 때 사무원과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시인은 그래서 이러한 희망과 희망이 없는 일상이 반복되는 현재를 병치해놓고 있다. 희망 없음 속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신생아 3

 

아기의 맑은 울음소리

시냇물 소리로 듣는다

바람 소리로 듣는다

어두운 귀 열어

그 원시림을 한껏 들이쉬니

사각의 아파트 실내가 문득

깊어지고 울창해진다

 

김기택, 사무원. 창비. 2010년 10쇄. 신생아 3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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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흐리다. 무더위가 조금은 꺾이는 듯하다. 계속해서 시집을 읽고 있는 중.

 

시는 노래다. 이 말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시는 이야기다.” 그러면 무슨 소리하느냐고 다시 한 번 쳐다보는 사람은 많다. 그만큼 시는 노래와 가깝고, 이야기라고 하면 시를 통해 대표되는 운문이 아닌, 주저리 주저리 말을 풀어내는 산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는 말 그대로 말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갈래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사람들이 “시는 노래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는 이야기다.”하면 갸웃거리게 된다.


그런데도 “시는 이야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들도 시는 노래라는 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것을 전제로 시에도 이야기가 있다고, 시도 이야기처럼 쓸 수 있다고 할 뿐이다.

그런 시를 우리는 ‘이야기시’라고도 하고 ‘리얼리즘시’라고도 하며, ‘단편서사시’라고도 한다.


아마 이 논쟁이 일제시대 때 임화의 시부터 시작되었을 텐데...

임화 시에 나오는 그 이야기성은, 우리에게 시를 한 편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게 임화의 시에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풍습을 우리말로 잘 표현했다고 알려진 백석 시에도 이러한 이야기성이 잘 드러나 있다. 그의 시 “여승”은 한 편의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점을 보아도 시에는 노래의 요소도 이야기의 요소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성이 강한 시와 노래 쪽에 가까운 시로 나뉠 수 있을 뿐이다.


난 이야기시의 대표로 최두석의 시집을 꼽는다. 서정춘의 시집 제목이 “죽편”이었다면 최두석의 시집 제목은 “대꽃”이다. 둘 다 대나무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면, 서정춘의 대나무는 개인적이고 서정적이라면, 최두석의 대나무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이며 집단적이다.


또 서정춘의 짧막한 시들이 ‘노래’ 쪽에 가깝다면, 최두석의 시는 이야기 쪽에 가깝다. 아니, 본인은 이야기시를 쓴다고 직접 이야기한다.


그가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밝힌 다에 의하면 그의 시는 이야기라 해도 좋다.

이 시집에 수록된 상당수의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 내가 실화에 얽매이는 것은 이 질퍽거리며 끈적거리는 흙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최두석, 대꽃, 문학과지성사. 1989년. 3쇄 자서에서


처음 에 나는 아무 생각없이 이 자서를 읽었을 때 실화를 설화로 읽었다. 그만큼 이 시집에는 설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자서를 보았더니, 그 조그마한 글씨가 세상에 설화가 아니라 실화다.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고 시인이 아예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설화도 우리들이 있어왔다고 믿거나 우리의 의식을 규정한 이야기로서 어느 정도는 실화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도 좋겠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은 노래보다는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우리의 마음보다는 뇌에, 이성(理性)에 호소하겠다는 이야기다.


하여 시집의 첫 시가 바로 노래와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는 시인이 자서에서 한 말을 시로써 보충해주고 있다. 다음부터 나올 시는 그래서 이야기에 중심을 두고 읽으란 얘기로 받아들여도 된다.

노래와 이야기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최두석, 대꽃, 문학과지성사, 1989년 3쇄. 노래와 이야기 전문


우리가 겪어온 험난한 세월을 시인은 노래로써 심장으로써 느끼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이미 노래로 다스릴 수 있는 상처는 아니기에. 그렇기에 이야기로 상처를 다스리려 한다. 뇌수는 곧 이성의 힘이다. 이성의 힘으로 차분히 분석하고, 힘을 키우고,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의 심장만 울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 시대를 불문하고 퍼져나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는다. 그랬었지. 그랬었어. 그렇군.  그래야겠어 하게 한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시인이 추구하는 시의 힘이다.


이 힘이 대나무로 나타난다. 대나무로 의인화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대꽃’이란 연작시다. 이 시집에는 1부터 8까지의 대꽃 시가 있다. 주로 동학 혁명을 다루고 있고, 대꽃의 마지막으로 오면 4.19가 나온다. 우리의 역사, 민중의 힘이 대나무로 등장한다.


대꽃 8

- 대꽃


  이루어진 지 스무 해쯤 되어 보이는 대숲에는 삼십대의 상인도 오십대의 품팔이도 들어가 섰읍니다. 철 모르는 어린이도 섞였읍니다. 대숲이 출렁거리더니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읍니다. 서걱이는 행진의 걸음마다에 외마디 외침이 폭발했읍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귓속으로 파고드는 이 소리는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곧장 달려갔읍니다. 소리가 부딪친 전방 바리케이트에서는 돌연 총포가 난사되었읍니다. 이에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어요.


한 송이 피면

또 한 송이 거품 뿜으며 피고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우르르우르르 무리져 피는

피다가 모두 죽은

대꽃. 


최두석, 대꽃, 문학과지성사, 1989년 3쇄. 대꽃․8 전문

(80년대 후반에 맞춤법이 개정되어 ‘-읍니다’는 모두 ‘-습니다’로 바뀌었다. 그래도 시인이 쓴 표기를 존중하여, ‘읍니다’로 그냥 표기한다. 혹 개정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는 시의 내용이나 시의 표현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기에 아마도 개정판이 나온다면 모두 ‘습니다’로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 시에 4.19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을. 이 대꽃들이 몇 십년 뒤에는 찬란한 촛불로 다시 피어오르게 됨을... 아직도 진행형임을...


또 이 시집은 고은이 쓴 “만인보”의 전신이라고 할 만큼 시인이 알고 있던 실제 인물들이 시 속에 등장하여 우리네 삶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시집에 등장한다. 그래서 이 시집은 내용에서도, 소재에서도  리얼리즘시를 구현한 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내가 갖고 있는 최두석 시인의 시집엔 이상하리만큼 “꽃”이란 낱말이 모두 들어가 있다. 그만큼 시인은 사람이 꽃처럼 피어나는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그 시집들을 이야기하면 이 “대꽃”을 비롯하여, “성에꽃”,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다. 안치환의 노래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 우리가 만나야 할 세상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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