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 국회 기자들이 들려주는 대한민국 국회 정치의 모든 것
양윤선.이소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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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이 말의 앞 뒤를 바꾸어서 '정치는 전쟁의 연속이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정치는 전쟁과 비슷한 면이 많다는 얘긴데, 일례로 전쟁과 마찬가지로 지도부가 있고, 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때가 있으며,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목표가 있다. 이것보다도 더 중요한 공통점은 자기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 있다는 점인데, 전쟁은 대체로 한 국가, 한 민족을, 정치는 자신들의 지지집단을 지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전쟁이든, 정치이든 자신들의 목적을 잃은 셈이 된다. 그래서 전략과 전술이 중요하고, 커다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작은 것을 양보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지켜야 할 집단을 잃는다면 그 다음에는 전쟁이든 정치든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전쟁이든 정치든 거기에 관계되는 당사자들은 일반 사람들이다. 국민이라고 해도 좋고 민족구성원이라고 해도 좋고, 민중이라도 해도 좋다. 사람들이 전쟁과 정치의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심하게는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생활방식,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까지 잃을 수도 있는 지경에 처하기도 한다.

 

이만큼 정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정치에 대해서 사람들이 전쟁만큼이나 관심을 가질까? 아니 정치의 영향력을 전쟁에 비유한다는 것 자체를 거부하지 않을까. 그렇게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토록 정치에 무관심한 것 아닐까.

 

아니면 정치에 관심을 가져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고, 자신에게는 어떤 영향력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국회에 대해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냉소적 시선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냉소적 시선만이 아니라 아예 자기들만의 리그라고 무관심하지 않은가. 선거 때만 반짝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 실상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집단이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럼에도 국회의원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심하게 지내지 않았는가.

 

이 책은 이 점에서 참고할 사항이 많다. 국회에 대해서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만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고, 여기에 더한다고 해도 뉴스에서 보는 그런 비판을 받는 국회의 모습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국민을 대변한다고 하는 국회가 국민에게서 멀어진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직접민주주의가 힘들다고 하는 이 때(꼭 그렇지도 않다고 오히려 지방자치를 확대해서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는 현대 우리나라 정치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막강한 권려을 휘두르는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에서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국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국회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알아야 우리가 무언가를 제대로 주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여 이 책에서는 국회의 모든 것이 설명되어 있다. 그것도 국회방송의 기자들이 자신들이 가까이에서 지켜본 국회를 이야기해주고 있으므로,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어서 국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선거에서부터 지역구 관리, 출판기념회, 그리고 현충원 참배, 미용실, 식사하는 곳, 하다못해 '목욕당'이라는 모임까지... 또 국회에서 일하는 사무처 직원들이라든지, 국회의원 보좌관, 그리고 국회방호직원에, 통역사까지...국회에 관련된 직업에 관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두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하나는 국회방송이 있다는 것. 케이블 텔레비전을 설치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런 방송이 있는 것조차도 몰랐는데... 국회방송의 시청률이 0.067%가량(이 책 288쪽)이라고 하니, 국민들 중에서 국회방송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태반일 것이고, 또 알더라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국회방송은 국회의 일상을, 국회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공영방송으로 존재한다는 점,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국회방송의 시청률도 오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신뢰하는 정치인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런 정치인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도 알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국회방송의 존재가 미미한 것은 어쩌면 국회의원들의 지금 모습이 국민들의 신뢰에서 좀 멀어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호칭 문제. 그렇게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국회의원들이,이 책에도 나오지만 국회의원, 또는 정치인들의 패션부분에서 유시민 전 의원이 당선된 다음 처음 등원했을 때 다른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선서를 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그들이 기자들에게 불리는 호칭이 '선배'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고는 씁쓸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입법기관에 종사하는 정치인이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언론에 종사하는, 그것도 자신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선배'라고 불릴 수 있는지... 선배란 호칭은 적어도 같은 직종에서 먼저 근무하거나 또는 가까운 사이에서나 불릴 수 있는 호칭이 아닌지.

 

의원님이라고 깎듯이 존칭을 쓰는 일도 좀 그렇지만, 기자들이 '선배'라고 부르는 호칭보다는 차라리 의원님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을 대변하는, 대표하는 의원이니 기자들도 의원님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지금도 기자들이 국회의원을 '선배'라고 부르나? 이 책이 2014년 판이니 아직도 그렇겠지.

 

이 책을 쓴 사람들은 국회방송 기자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그런 자부심이 그들 스스로 '의정전문기자'라고 하는데서 나타나는데... 이런 자부심이 계속 유지되고, 국회의 활동을 일반 국민들도 잘 알 수 있도록 이들이 계속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국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겠지.

 

국회의원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국민의 생각을 대표해서 행동하는 사람이니까.

 

덧글

 

읽으면서 나랑 생각이 다른 부분이 조금 있었는데.. 이걸 생각 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사실관계의 문제라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79쪽. '이명박 정부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내걸고 당시 야당인 통합민주당이 주도한 촛불집회는 유모차, 넥타이 부대까지~'라고 되어 있는데... 나는 이 때 촛불집회는 시민들이 주도했고, 민주당 등 정치인들은 나중에 합류했다고 기억하는데... 분명 통합민주당이 촛불집회를 주도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그냥 합류했을 뿐인데...

 

126쪽. 단일화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일화의 위력에 대한 징크스에서... '가깝게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라고 했는데... 이들이 단일화에 합의한 것은 맞다. 그러나 투표일 직전 정몽준이 단일화 합의를 파기하는 선언을 했다. 결과가 이렇게 되었는데... 이것을 단일화라고 해야 하나? 단일화의 위력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287쪽. '결국 민주당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후광을 노리고 문재인 의원을 후보로 밀었다' 민주당 경선을 통하여 문재인 의원이 후보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후광을 노리고'란 표현은 글쓴이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즉 이 문장에는 사실과 주관이 섞여 있다. 이런 표현은 하지 않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을 리포터(사실을 취재만 하는)이지 저널리스트(분석 평가까지 하는)가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은 다음에 292쪽 '기자의 또 다른 이름은 '역사가'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역사가'는 단순히 사실만을 나열할 수가 없다.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들을 재구성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기자의 또 다른 이름이 역사가란 말은 기자는 어떤 사건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해서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 말이다.

 

앞과 뒤가 좀... 차라리 '역사가'라고 하지 말고 조선시대의 '사관'처럼 사실을 기록하여 남기는 사람이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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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마주치다 - 옛 시와 옛 그림, 그리고 꽃, 2014 세종도서 선정 도서
기태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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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꽃.

 

정말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치는 꽃들. 그런 꽃들을 마주친다는 얘기는 똑바로 본다는 것. 즉 비껴보지 않고 제대로 본다는 얘기니, 관심을 가지고 꽃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가 있다.

 

꽃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현실이 아니던가. 그 꽃에 얽힌 이야기는 고사하고 꽃이름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니...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자연에 무심하듯이, 꽃과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꽃에 대해서는 그저 그런 존재로만 여기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꽃들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이다. 꽃에 관한 책이라고 해서 어렵게 전문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옛글과 그림을 통하여 그 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우리가 마주친 꽃들, 마주쳐야 할 꽃들에 대해서 글쓴이는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또 사진과 더불어, 그리고 옛시들을 찾아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여 책을 읽어가는 동안, "어, 그 꽃이었어?" 하게 되기도 하고, 이 꽃에는 이런 역사가 있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하게 되기도 하고, 또 그동안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꽃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가 있다. 

 

이러저런 면에서 주변을 살펴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도 있고,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던 꽃들에 대해서, 그 꽃들에 대한 옛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 마주친 꽃(나무)들은 다음과 같다. 

 

서향화(천리향) 철쭉 오얏꽃 박태기나무 사계화 찔레꽃 작약 앵두 인동초 등나무 봉숭아 수국 맨드라미 나팔꽃 패랭이꽃 자귀나무 능소화 회화나무 파초 석창포 포도 비파 계수나무 금전화 거상화 여지

 

많은 꽃들을 이 책에서 마주치고 그동안 나와 마주쳤던 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 꽃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급변하는 현대사회,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가끔은 주변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예전 사람들처럼 꽃을 마주치고 그 꽃에 대해서 표현도 해보는 그런 여유를 우리가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꽃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아름다움을 알고, 그 아름다움보다도 더 아름다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꽃만큼이나 그 꽃을 노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과 꽃이 함께 어울릴 때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다.

 

덧글

 

앵두꽃에 대한 설명 중에서 104쪽 이교(二喬)에 대한 설명에서 '조조가 적벽대전을 벌였을 때 제갈공명은 전쟁에 망설이는 손책에게 조조의 속셈은 이교를 차지하는 것이라며 손책을 격분시켜 전쟁을 결심하게 한 바~'라고 되어 있는데, 적벽대전에서는 오나라 왕은 손책이 아니라 손권이다. 아마도 대교가 손책의 부인이기에 착각을 한 것이리라.

 

262쪽. 이숭인과 정몽주는 정도전의 하수인에게 피살되었습니다. 는 구절이 있는데, 정도전이 이성계, 이방원의 참모이므로, 이는 이성계(이방원)의 하수인에게 피살되었다고 해야 더 옳지 않을까. 책임은 지도자가 지는 것이 옳을 것 같은데...

 

267쪽. 서거정은 본래 양평대군의 이라고 되어 있는데...이는 안평대군의 명백한 오타이니, 수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오타임을 알 수 있어서 별 문제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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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학의 이해 - 작은책 7
홍기삼 / 민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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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작다. 작은 책이라 들고 다니기 편하다. 가격도 저렴하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한 노력을 한 책이다.

 

두껍고 무거운 책, 종이질이 너무도 좋아 오히려 눈이 피곤한 책. 그러한 책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에는 어렵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벗어나 있어 좋다.

 

다음 이 책은 불교 교리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다. 그냥 불교와 문학의 관계를 말할 뿐이다. 불교 경전 자체가 이미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을 작은 책에서 나름대로 연구하고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 특히나 독일에서는 불교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데... 바그너가 불교에 심취했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점.

 

독일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기에, 그리고 철학이 발전한 나라였기에 불교에도 관심을 지니고, 어느 정도 불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듯 불교에 대해서 종교보다는 문학을 중심에 두고, 문학에 나타난 불교의 모습이라든지, 불교 경전이 지니는 문학성에 대해서 살펴본 작은 책이다.

 

여기에 저자가 어디엔가 발표했음직한 짧은 글들도 수록되어 있는데, 이 글들 역시 불교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글들이다.

 

뒤에 수록된 이 글들은 불교 관련 수필이라고 할 만하다. 수필이 저자의 경험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주고 있기에 불교나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의 뒷부분은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불교를 이야기하고 있는 자리이니, 중언부언할 것 없이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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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텔레비전에서 특집으로 방영해주는 영화 몇 편을 보았다.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했으나 놓친 영화 몇 편과 이미 보았 음에도 또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

 

 그 중에 가슴을 울리는 영화는 역시 "7번 방의 선물"

 

 이 영화는 다시 보아도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볼 만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내용의 사실성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영화 내용만으로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눈물샘에서 눈물이 물 흐르듯 흘러내릴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재판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과연 재판이 공정한가? 인간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럼에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재판이 필요하다면 그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일까?

 

한 사람의 몸을 구속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까지 재판은 이루어져 있다. 몸을 구속하는 것이야 잘못되었다는 판결이 나면 풀어주고,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해줄 수도 있겠으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나중에 잘못되었다고 판명이 되더라도 되돌릴 수 없다.

 

불가역성. 그것이 바로 사형제도의 문제이고, 재판의 무서운 점이다. 우리나라 아직도 사형제도가 존속되고 있는 나라인데... 15년이 넘게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서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라고 하나, 법이 사형을 유지하고 있기에, 대통령이 사형집행에 서명을 하는 순간, 15년간 지켜온 사형 미집행국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영화 "7번 방의 선물". 되돌릴 수 없는 결과...

 

이 영화에도 변호사가 등장한다. 국선변호사. 돈이 없거나 변호사를 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나라에서 선임해준 변호사. 대개는 성의 없이 변론을 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국선 변호사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니...

 

오히려 일부러 국선 변호사가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까... 왜냐하면 변호사란 힘없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사람도 꽤 있으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의 국선 변호사는 정말로 지지리도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마지못해 맡았을 뿐이라는 점이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보이고, 또한 권력에 밀착해 있음이 보이고, 그리고 피의자의 혐의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최근에 나온 영화 "변호인"과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는 변호사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이런 변호사가 실제로는 없겠지만, 영화에서처럼 존재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우리는 영화 "변호인"의 변호사와 영화 "7번 방의 선물"의 변호사가 공존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어떤 변호사가 우리의 권익을 위해 변론을 해줄 것인지 어떻게 아나? 변호사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기들의 위치를 자리매김 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하여 설날에 본 영화때문에... 예전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박원순이 쓴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두레

 

부제가 '한국인권변론사'이고 더 작은 제목은 '가시밭길을 선택한 변호사들'이다.

 

영화 "변호인"과 "7번 방의 선물"을 함께 본 사람이라면 그 영화 속의 변호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험난한 길을 자처했던 변호사들이 이야기니까.

 

이들로 인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조금은 줄었을테니까.

 

가장 좋은 사회는 변호사가 없는, 즉 재판이 필요없는 사회이겠지만, 그런 사회가 되기 전에 우선 제대로 돈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변호사들이 넘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때 두려움을 지니고 재판을 할 수 있는, 그래서 정말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지고 혹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재판. 그것을 돕는 변호사, 그런 사람들로 충만한 우리 사회였으면 좋겠다.

 

지금도 재판은 넘치고 넘쳐 재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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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퀴드 러브 - 사랑하지 않을 권리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권태우 &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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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림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같은 사람의 사진을 모아 커다란 하나의 사람을 만드는 사진.

작은 사진 하나하나는 동일한 인물인데, 이렇게 각자 다른 인물들이 여럿이 모여 동일한 하나의 인물을 만든다.

 

과학을 잘 모르지만 부분이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이론을 아마 이런 데 적용하지 않았나 싶다.

 

바우만의 "리퀴드 러브"-아마도 유동하는 사랑 정도로 해석이 될 이 책은 이렇게 이런 그림 사진과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속한 글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독립된 글이다. 그냥 단편적인 글이다. 그러나

<사진출처 :http://news.naver.com/main/imagemontage/index.nhn?gid=966192#967384>

 

읽어보면 전체 글과 하나가 된다. 즉 부분들과 전체가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엄밀히 말해서 사회학 이론서라고 하기도 그렇고, 철학책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수필집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형식을 파괴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 책이다.

 

하지만 전해주는 말은 분명하다. 어느 한 부분을 읽어도 전체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똑같은 내용이 아니다. 다 다른 내용이다. 이런 내용들이 모여 하나의 글을 이루고 바우만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지금 사회는 일회성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이는 소비자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담을 쌓고 있으며, 이 담으로 인해 너와 나를 구분하고, 공동체는 파괴되었으며, 일명 쓰레기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다.

 

지금이 그런 사회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이야기, 바우만의 저서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다.

 

만남이 얼마나 일회서인가는 성적인 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속적인,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라는 말은 우스워지는 시대가 되었고, 사랑도 인스턴트 사랑, 언제든지 만나고,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문화를 우리가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만남. 또는 연애를 쇼핑처럼 하는 시대.

 

인터넷이 이렇게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다면 휴대폰은 가족간의 모습도 변화시켰다. 하여 우리는 함께 살면서도 함께 살지 않는다. 또한 늘 만나면서도 늘 만나지 않는다. 접속이 가능한 만큼 접속을 끊는 것도 늘 가능한 사회.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가 되었다.

 

이것은 정착할 수 없는 유동적인 근대의 모습이고, 지속성이라는 것은 과거에만 속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의 사랑조차도 그러하니 다른 것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칸트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지구는 둥글다. 우리는 이 둥근 지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둥근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얘기는 누구에게서 멀어진다는 얘기는 곧 누구에게 가까워진다는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이 지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점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 우리가 쓰레기를 양산할수록, 그 쓰레기로 인해 우리의 삶이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 쓰레기란 결국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는 순간.

 

우리가 우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윤리가 된다. 윤리를 넘어 이제는 우리의 생존이 된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우리의 생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다. 이 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라도 소통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언제라도 소통을 멈출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인식하고...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을 유동하는 사랑이 아니라, 이제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의 한 부분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그럿을 코뮤니타스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아마도 공동체 정도로 해석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 역시 이러한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코뮤니타스(그리고 간접적으로는 소시에타스도 마찬가지지만)의 생존과 번영은 인간의 상상력과 발명심 그리고 상투적인 일상성을 깨부수고 시도되지 않은 방법들을 시도해보려는 용기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리스크를 안고 살아갈 수 있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수있는 인간의 능력에 의존한다. 바로 그러한 능력들이 '도덕 경제', 즉 서로 돕고 보살피며, 타자를 위해 살고, 상호 헌신의 조직을 짜내며, 인간들 간의 유대를 단단히 하고 수리하며, 권리를 의무로 해석하고 모두의 운명과 행복에 대한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즉 뚫린 구멍을 막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구조화 작업이 방출한 홍수를 막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이런 것들을 지탱해준다. (178쪽)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의 모습이고, 공동체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지 이 글에 비추어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읽은 바우만의 책과 겹치는 내용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그 겹침은 앞에서 본 사진처럼 각자 다른 것이 모여 또 하나의 같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되는데.. 부분 역시 부분으로써 제 역할을 다한다.

 

이것은 우리네 인간들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지만, 이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다른 사람들이 사회를 만들어낸다.

 

이 책은 바로 앞의 그림과 같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삶도. 그러니 남의 삶을 우리와 똑같이 만들려는 자세를 지녀서는 안된다. 다름이 바로 사회를 이루는 기본요소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 책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앞의 그림 파일과 같은 것들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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