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디자인 - 아이들이 몰입하는 맘에드림 혁신학교 이야기 10
남경운.서동석.이경은 지음 / 맘에드림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가 지방자치 단체장 및 교육감 선거일이었다. 오늘 결과가 나왔는데, 교육감을 선출하는 17곳 중에서 13곳에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는 혁신학교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던 후보가 낙선하고, 혁신학교를 계승발전시키겠다는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혁신학교가 뭐길래 이렇게 논쟁이 되었는지, 혁신학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잘 알 수가 없으리라. 다만 교육이란 진보니 보수니 하는 진영논리로 이야기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진영을 떠나 함께 협력해야 할, 백년을 내다보고 실시해야 할 그런 백년지대계라는 사실만 명심했으면 좋겠다.

 

이 책은 서울의 한 혁신학교에서 수업혁신을 시도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수업혁신!

 

어느 순간부터 수업이 되지 않는다고, 학생들이 수업으로부터 도피한다고 그런 말들을 했었는데,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혁신학교에 지원하고 수업혁신을 중점사업으로 삼은 학교의 이야기다.

 

수업혁신이 교사가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까 하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며 배울 수 있을까 하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노력이라면, 수업혁신은 교육의 입장에서 출발하지 않고, 배움의 입장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교사를 중심에 놓은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육. 교사의 설명이 주가 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이 주가 되는 수업. 그런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배움으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는 일. 이 학교에서는 한 학기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한다. 수업혁신이라는 것이 교사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한 학기를 지나면서 깨닫게 되고, 결국 교사들이 함께 수업혁신에 나설 때 수업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고 그렇게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 수업이니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가 아니라, 우리의 수업이니 우리가 함께 책임지자라는 자세로 돌아서는 이 지점. 바로 이 지점에서 수업혁신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우리의 수업이 같은 교과만의 수업이 아니라, 모든 교사의 수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내 수업을 같은 교과의 교사들에게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과의 교사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것이 이 학교가 실시한 수업혁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과의 교사들이 모여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이게 혁신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겠지만... 우선 교사의 잡무를 없애야 한다. 전담행정사를 두어 교사를 공문으로부터 해방하는 일. 그 다음에는 방과후 수업을 현직 교사들이 하지 않도록 한 일. 그래서 오후의 시간을 낼 수 있도록 한 일.

 

이런 조건이 갖추어진 다음에 비로소 교사들이 시간을 내어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자, 이것이 불가능한가? 이렇게 되기까지 지원을 해주는 것이 혁신학교에 대한 특권인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교사들이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일. 방과후에 교사들끼리 모여 의논을 할 수 있게 하는 일. 이건 학교 교육의 기본이 아니던가.

 

혁신학교라서 가능하다가 아니라 모든 학교가 이렇게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기관이 바로 교육청이다. 다행히도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이 때 아마도 교육조건에 대한 이런 논의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수업혁신이 되었다고 당장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조급증이다. 이 조급증을 버리고, 수업혁신을 통해 아이들의 수업태도가 달라졌음에 만족을 해도 되고,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졌음에 만족해도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아이들은 배움으로 한발짝씩 다가서게 된다.

 

여기에 결과 중심의 평가보다는 과정 중심의 평가가 이루어진다면 수업혁신은 더욱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수업이 아니라 우리의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수업을 고민하면서 수업했던 서울형 혁신학교...한울중학교 선생님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수업혁신이 모든 학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그게 가능하게 교육의 조건을 만들어가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교육감들이 이런 조건을 만들어 내는 정책을 펴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난징대학살.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 왜냐하면 우리나라 역사책에 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가해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철저하게 감추려고 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라는 말에도 논란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로 보고, 그 규모에 관해서만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이를 조작된 것으로 보고, 사실이 아니라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꽤나 오래 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남경대학살"이라는 책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제목도 출판사도 생각이 나지 않고, 책에 나와 있는 사진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책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해서 그냥 사진만 훑어보다 만 책이었는데... 그래서 남경대학살이라는 말은 내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한자어로 남경을 중국어로 난징이라고 하니, 그 때 내가 본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독일이 자행한 유태인 학살에 비견될 수 있는 이 집단 학살극이 어떻게 묻힐 수 있었는지... 세계 정세와 각국의 힘이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은 "난징의 강간"이다. "강간"이라는 말이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 의사대로 강제로 상대방을 겁탈하는 것이니, 강간이나 대학살이나 비슷한 의미로 쓰면 될 듯한데.. 굳이 "강간"이란 용어를 쓴 이유는 "대학살"은 죽음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반면에 "강간"은 상대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고, 상대방 본인에게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행위, 그것이 "강간"이고, 난징에서는 아예 집단적으로 이러한 "강간"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피해규모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없던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진정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아이리스 장..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자신의 가족에게 들은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난징 대학살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를 한다. 그러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책을 써냈기 때문에 이 책은 난징 대학살에 관해서 상당히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난징 대학살은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실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나게 끔찍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고, 난징 대학살을 경험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보면 역사는 강자의 편에 선다. 아니, 역사 자체가 강자의 역사다. 패자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사라져버리고 만다. 하여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현상이 역사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역사는 늘 강자의 편에 서는가? 아니다. 강자가 영원하다면 모를까, 인류의 역사상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은 순간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순간, 강자가 될지 모르지만 영원히 강자일 수는 없다.

 

20세기 초 일본은 동양에서 최강국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 이처럼 강자는 바뀐다. 그렇다면 역사는 도대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역사는 바로 진실,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강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숨기려 하지만, 어떻게든 진리의 편에서는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 속에서 순간 감추었던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마는데... 일본이 사과도 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는 난징 대학살은 이미 중국에서는 드러날 대로 드러나 기념관까지 생겼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봤자 비웃음만 살 뿐이다.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낸 대가는 어떨 때는 혹독하기까지 하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쓴 아이리스 장 역시 어려움에 처했다. 테러 위협 등을 겪으며 심각한 우울증세를 나타냈다고 하는데... 결국 2004년 아이리스 장은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다고 하지만... 이것은 타살이라고 해도 된다.

 

진실을 드러내려 했다는 이유로 온갖 위협을 받았을 그가 견딜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슻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이것이 어떻게 자살일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타살이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아이리스 장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이야기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리스 장도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목숨을 버리게 되었다. 이게 진실을 대가라니...

 

그래도 이런 진실의 대가로 우리는 이제 난징 대학살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난징 대학살은 20세기 중국의 난징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극이라는 인식을 한다. 아이리스 장과 같은 사람 때문에 난징 대학살이 역사의 한 사실로서 자리를 잡았다.

 

일본...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인데, 아직도 이들은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요집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책에 나오는 난징 대학살이 어떻게 중국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우리나라도 위안부 문제, 징용, 징병 문제부터 우리나라 사회가 왜곡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일본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무려 34년 11개월을 식민지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일본이 통렬히 반성을 하고,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용서를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문제다.

 

다시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강자의 편에 설 것 같지만, 아니다. 역사는 진실, 진리의 편에 선다. 지금은 감추고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곧 드러나게 된다. 그 드러냄.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결국은 드러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해서 우리 인류의 역사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들 가운에 한 사람... 아이리스 장.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글

 

책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책이 미국에서 1997년에 발간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4년에 번역 발간되었다. 그리고 아이리스 장은 2004년에 죽었다고 나와 있다.

 

중간에 책이 다른 판본으로 나왔다는 설명이 없는데...이 책 300쪽 '여전히 계속되는 역사 왜곡 망언' 부분에서는 2004년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누가 쓴 것인가? 재판을 발행하면서 편집자들이 보충을 한 것인가, 아니면 번역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보충을 한 것인가. 거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차라리 주나 보충설명을 통해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아이리스 장이 쓴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아있는 한국 신화 - 흐린 영혼을 씻어주는 오래된 이야기
신동흔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화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재미있게 읽기만 하여도 뭔가 남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신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교육을 통해서 우리 신화보다는 외국의 신화를 먼저 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는 것이 천대를 받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신화만큼 홀대받은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 신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껏해야 단군신화나 고주몽 신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하여 이 책은 그러한 신화를 모아 놓았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 신화를 모아 놓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이본이 존재하는 신화 중에서 가장 서사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나, 우리 민족의 심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본을 선택해서 실어놓고 있다. 

 

가히 완성된 신화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히 신화만 정리해 놓았어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텐데, 여기에 나름대로 해석을 싣고 있다.

 

그 신화가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네 삶의 어떤 부분들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 우리는 그 신화를 통해서  무엇을 생각하고 얻을 수 있는지를 풀이해 놓고 있다.  

 

그래서 명실상부한 신화 풀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읽어서 알고 있는 신화도 있고, 처음 읽는 신화도 있었지만, 재미를 주지 않은 신화는 어느 하나도 없었다.

 

새록새록 우리 신화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이 신화는 우리 민족의 이런 생활을 나타내고 있구나 하게 만든 책이었다.

신화가 없는 민족이 어디 있겠으렸만, 우리는 우리의 신화에 대해서 너무도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 신화가 가진 특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은이는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잘 가꾸어진 정원과 같은 이야기라면 우리 민간 신화는 거친 들판의 야생화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권력자나 문인 지식인의 보살핌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멸시화 배제와 억압에 노출된 상태에서 자생적으로 생명력을 이어온 야생의 신화가 바로 우리 민간 신화다. 596쪽

 

바로 이것이 우리 신화다. 집집마다 적어도 한 권쯤은 우리 신화에 대한 책을 가지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 사라진 민족 사라진 나라의 살아 숨 쉬는 역사 지도에서 사라진 시리즈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흐른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세워졌다 사라졌다 했을까?

사라진 나라들 중에서 기록을 남긴 나라는 얼마나 될까?

한때 위용을 자랑했던 나라들이라고 해도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나라도 많고, 또 역사 속에서도 찾기 힘든 나라들도 있는데...

 

사람들은 혼자서 살기 힘들다고 나라를 구성하고 그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말은 차라리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통하여 보면 우리 사람들은 늘 사라질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지도에서 사라졌다는 말은 역사에서 잊혀졌다는 말과 통할 수 있고, 아니면 자신들이 세웠던 나라가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 이어져 오지 않고 있기에 사라졌다는 말과 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주가 탄생한 이래, 아니 지구가 탄생한 이래 인류가 이 지구상에 산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이제는 지구 자체를 명망시킬 정도로 강성해진 인간들이 살아온 역사를 살피는 일은 중요한 일이 되는데...

 

여러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살피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되고, 그것이 바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한 때 강한 나라여서 상당한 힘을 발휘하던 나라였음에도 이제는 지도상에서 찾기 힘들고, 또 역사 책에서도 찾기 힘들어진 나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이 해주고 있다.

 

서양에서부터 동양에 이르기까지 사라진 나라들에 대해서 살피고 있어 흥미를 주고 있다. 여기에 처음 듣는 나라들도 있으니... 그 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흡수되어 사라져버린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에 수록된 사람들(민족? 나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수메르인, 히타이트인, 에트루리아인, 켈트족, 파르티아인, 훈족, 에프탈족, 아바르족, 흉노족, 오환족, 유연족, 탕구트족, 거란족, 옥저인, 동예인, 부여인, 우산국인, 가야인

 

이 중에서 훈족과 흉노족은 같은 종족이라고 보아도, 참으로 많은 종족들이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거나,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전쟁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정복, 약탈, 전쟁으로 인해서 흥망성쇠가 결정이 되는데... 조금 강하다 싶으면 다른 나라를 침범해 영토를 확장하려고 하고, 약해지면 침략을 받아 멸망을 하는 그런 반복.

 

인류의 역사가 이토록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얘기는 앞으로도 전쟁이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반증이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을 막기 위해서 국제연합이라는 세계적인 단체를 만들기도 했고, 유럽연합이라든지 하여 나라들끼리 통합하여 평화롭게 지내려는 노력도 하고 있지만, 조금 강한 나라는 여전히 약한 나라를 힘들게 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사라졌던 나라들이 세월이 흐른 다음에 다시 자기들만의 나라를 만들고,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다시 나타난 사람들이 되려고 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고, 파괴가 일어나고, 살육이 일어나고 하는 반복.

 

역사는 반복되는가? 기원전까지 따진다면 수 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인류가 배운 것이 없다는 얘기가 되나? 서로가 공존하면서 사는 방법, 그것을 찾아야 하지 않나?

 

결국 과거의 전쟁이 먹을거리로 인해, 생존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 인류의 생존문제를 해결한 지금은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 평화롭게 공존하는 인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람들, 나라들처럼 또다시 사라지는 길을 밟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책에 나와 있는 민족들이 나라를 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가 사라져버리지 않고 다른 민족들에 동화되어 살아남았겠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인류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종족멸살이라는 홀로코스트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이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는 이유는, 또다시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애서이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만드러내지 않는 방법, 그것은 평화적 공존밖에 없다. 이 책을 보라.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 대부분 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한 절멸과 합병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손 안의 미술관 1
김영숙 지음 / 휴먼아트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루브르 박물관. 이름만 들어본 박물관이다. 아니 "다빈치 코드"란 소설을 통하여 접하기도 한 박물관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많은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박물관. 한 때 프랑스가 제국주의이던 시절,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문화재들이 이곳에 많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내게 루브르 박물관은 너무나 멀다. 그곳까지 가기엔 너무 힘들다. 시간도 돈도...그리고 그렇게 할 마음의 여유도.

 

이렇게 먼 루브르 박물관. 그렇다고 없는 셈 칠 수도 없는 것이고, 혹시 아나, 언제 가게 될지.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고 주어진 시간도 많다고 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갈 수 있는 곳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요즘처럼 지구화, 세계화 시대에 굳이 맘만 먹는다면 못 갈 것도 없는데...

 

선뜻 가기에는 너무 멀고, 시간도 그리 많지 않고(이건 분명 핑계임에 불과하지만), 돈도 넘치지 않으니 지금은 그냥 언젠가 한 번은 가 볼 곳으로 생각하고 있을밖에.

 

이곳에 문화재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38만점(3만8천이 아니다!)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하고(이책 100쪽), 또 그냥 걸어도 동선이 무려 60킬로미터가 넘는다고 (100쪽) 하니, 작품 앞에서 감상을 하지 않고 쓱 보고 지나치기만 하여도 반나절은 훌쩍 지나갈 정도(100쪽)라고 한다.

 

이런 엄청난 규모를 지니고 있는 루브르에 미술작품들만 해도 약 6000여 점의 회화작품이 있다고 한다. (101쪽) 그림만 해도 6000점이란다. 세상에...

 

얼마 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갔다 왔는데... 간송문화전을 관람하러, 그 곳에서 그림과 도자기 등을 보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는데... 그것도 평일에 갔음에도 사람들이 많아서 한 그림을 보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만 쓸 수밖에 없었는데...국보급 도자기를 요리조리 요모조모 자세히 살펴볼 틈도 없이 사람들에 밀려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혜원화첩의 작은 그림들을 정말로 자세히 보아야 했음에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나라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도 그냥 슥 지나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족히 한 시간은 돈 것 같은데... 6000점이란다. 그 그림을 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아니 그 그림들을 자세히 볼 시간이나 있을까? 루브르 박물관에 회화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 세 공간이라고 하는데... 하나는 드농관, 또 하나는 리슐리외관, 그 두 관을 이어주는 쉴리관. 이렇게 셋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루브르에 갔다왔다는 사람들은 이 세 관을 제대로 돌아보고 왔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으니...

 

그냥 모나리자만 보고 나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다왔다고 하는지... 모나리자도 사람들의 흐름에 쓸려 그냥 쓰윽 지나치고 말았으면서 다 보았다고, 잘 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냥 학창시절, 또는 다른 매체를 통하여 들은 모나리자에 대한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들춰내면서 그 그림을 자신의 지식에 맞추어놓고는 제대로 보았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내 미술관 감상 경험에 의하면 사람이 많으면 제대로 미술품을 관람할 수 없다. 미술품을 제대로 보려면 적어도 상하좌우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보아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공간 역시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미술품을 잘 관람할 수 있을까? 결국 아는 수밖에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미술품에 대해서 알면 더 자세히,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직접 미술품을 보고 자신이 아는 것 위에 새로운 지식을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루브르의 6000여 점의 회화를 어떻게 하루만에 다 본단 말인가? 또 30만점이 넘는 문화재들을 어떻게 다 본단 말인가?

 

하여 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회화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지식을 이 책이 채워줄 수 있다. 루브르 회화의 도록이 아니므로 모든 작품에 대한 해설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지은이가 명화라고 생각하는 작품 100편을 선정해서 그 작품의 화가에 대한 설명부터 그림이 지니고 있는 의미, 의의까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도 또 관대로 분류를 해서 설명을 해주고 있으므로, 루브르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이 책에 나와 있는 지식을 검증할 수 있을테고, 또 자기 나름대로의 감상을 덧불일 수도 있으니 루브르 회화를 좀더 잘 감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책의 도움으로 다른 작품을 더 자세히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작품들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니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 시간을 많이 투여해 더 자세히 감상을 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지 루브르 박물관에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서양미술에서 중세시대의 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흐름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으니... 서양 중세 미술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는 장점을 자연스레 얻을 수가 있다.

 

게다가 적어도 명화 100편은 감상을 하게 되니 얼마나 좋은가? 지금까지 보았던 작품도 있지만 처음보는 작품도 있으니 작품을 보는 재미도 있어서 좋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문화생활을 누리려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도 이제는 문화강국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문화란 단지 지식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니, 우리가 직접 감상하고 만들어내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든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 문화생활이 아닌(비록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는 회화들 중에 많은 것들이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만들어지거나 구입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특정 소수 계층에 해당하는 문화였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그런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된다면 이 책에 나와 있는 그림들을 이렇게 책을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볼 수도 있겠고, 또 우리나라 곳곳의 미술관, 박물관들에서도 더 훌륭한, 더 마음이 끌리는 문화재들을 수시로 감상할 수 있게 되겠지.

 

이 책이 단지 그냥 루브르 회화 안내서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