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콘서트 - 통합교과수업을 위한 행복한 멘토링 교과서, 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행복한 교과서 시리즈 7
이경원 지음 / 행복한미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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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육. 이번에 교육부장관이 바뀌는데, 부총리를 겸하게 되어 격은 올라갔지만 그에 맞는 역할을 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

 

교육부 장관이 자주 바뀌는 것이 참 싫었는데... 말로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해놓고 그를 책임질 교육의 수장을 몇 년에 한 번씩 갈아치우는 것은 교육의 연속성을 해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정책에 관한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 비전을 함께 할 사람이 참모로 존재해야 하며, 당선이 되어서는 그 사람을 통하여 임기 내내 자신의 교육정책을 펼쳐야 할텐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없는 장관과 부서를 뽑으라면 교육부장관과 교육부가 꼽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육부 장관의 임기는 짧으며, 교육부는 자신들의 장기적인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는 형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상태에서 교육부에서 정한 교육과정은 금과옥조처럼 학교에 전해 내려오는데, 말로만 금과옥조처럼 내려온다. 학교에서 교육을 하는 교사들이 누가 교육과정을 공부한단 말인가?

 

교사들은 단순하게(? 이 말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교사들에게 미안한 말이기는 한데) 교과서를 잘 가르치려고 하지 교육과정을 공부하지 않는다.

 

사실 교육과정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교육과정을 교과성에서 다 구현해 놓고 있으며, 이러한 교과서는 국정(지금은 없는데... 부활조짐이 있는 몇 교과목이 있다)이나 검인정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국가가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과서를 가르치지 않으면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무어라고 하며(일종의 계기수업이라는 것,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회문제에 관한 수업을 하려고 해도 교사의 정치 중립성 위반이니, 정치적 목적을 가진 편향적 교육이니 하면서 금지하라는 공문이 내려오는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학부모들로부터도 도대체 학교에서 왜 제대로 가르치지 않느냐는 항의전화가 오기 십상이다.

 

이런 현실이니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구태여 공부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여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보지 않는 이유가(공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는 것이다. 교사용 지도서에 보면 교육과정은 늘 강조되어 나와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고, 또 교사들이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교사들이 굳이 교육과정을 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을 보고 그 취지에 맞는 교육을 하려면 오히려 힘들어지는 현실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교사들이 교육과정에 손놓고 있는가? 아니다. 아무리 불성실한 교사라 해도 교육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한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승진만을 목표로 하는 교사라 해도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만나야 하고, 아이들과 수업을 해야 한다. 수업을 해야한다면 교과서를 무시할 수 없으며, 그 교과서에 나와 있는 교육과정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교육과정보다는 교과서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교육현실이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고 해도 교사들 역시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런 교육과정에 충실한 교육, 교육과정에 충실하되 학교 현장에 맞는 교육과정을 구현할 수 있는 수업, 거기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교사, 연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시간. 이런 것들을 확보해야 한다.

 

또 공부도 해야 한다. 교사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직업이고, 공부하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언제든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교사의 말 하나 하나, 지식 하나 하나보다는 교사라는 사람 자체에게서 더 많이 배운다. 그러기에 교사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그 점을 '교사가 교육과정이다'라는 말로 하고 있다. 교사는 그 자체가 교육과정이다. 그러니 교사들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사회에서 또 교육 관료들과 비교해서 약자일지 모르지만, 수업에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교사는 전부다. 아이들에게 전부인 것이 바로 교사다. 그런 교사, 자신이 교육과정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교육과정으로 고민하던 이 책의 저자, 그 학교의 교장선생님 말씀(이런 훌륭한 교장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교장은 교사에게 멘토여야 하는데... 과연 현실은?)에 불현듯 깨달음 얻는다.

 

"교과서를 버려라"

 

그렇다. 교과서는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한 도구일 뿐이다. 교육학에서 늘 이야기하는 이 말이 학교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는데... 교과서를 버려라. 교과서를 버린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교육과정에 집중할 수가 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아니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배워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고민의 지점이 바뀐다.

 

교과서를 잘 가르쳐야지 하는 잘 전달하겠다는 기술적 측면에서 무엇이 중점이 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왜 그것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책의 지은이는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처음에는 자신만이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수업을 했다. 어쩌면 주제통합수업이 한 반의 거의 모든 수업을 담임교사가 하는 초등학교라서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중학교에서도 주제통합수업이 시도되고 있으니 중학교도 가능하리라 본다.

 

혼자서 하다가 다음엔 동학년 교사들과 함께 교육과정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함께 수업을 한다. 그런 결과물이 이 책에 오롯이 실려 있다. 고민하고 실천하게 된 과정이 앞부분을 이룬다면, 실제로 주제통합수업을 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뒷부분을 이루고 있다.

 

수업시간에 재구성한 교육과정을 통하여 국가의 교육과정을 무시하지도 않고 학교교육과정과의 어울림 속에서 지식도 재미도 실천도 모두 아우르는 수업을 했음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업을 받은 아이들이 참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과 그 행복이 아이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열어가는데 두고두고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특출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다 해야 하는 그런 수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학교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서 가르치는 교사들. 그런 교사들이 지금은 주로 '혁신학교'에 모여 있지만, 혁신학교는 일반 학교에서도 할 수 있는 교육을 먼저 시도했을 뿐이므로, 이들이 한 이런 교육활동은 교사들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진 교육과정 재구성. 아마도 모든 초등학교 교사들이 참조할 만한 책이리라. 마찬가지로 중학교, 고등학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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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학교 - 밥상의 안전부터 에너지 대안까지 방사능 시대에 알아야 할 모든 것
김익중 외 지음 / 반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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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말은 '00마피아'다. 해피아라든가, 관피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는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도와 하나의 권력집단이 되어 있다. 

 

사실 마피아란 말이 일본의 야쿠자나 우리나라의 조폭처럼 안 좋은 말이지 않은가. 이 말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그런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비도덕적 집단이 우리 사회에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해피아든 관피아든 척결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는데, 우리가 잘 모르는 집단으로(또는 알면서도 넘어가는 집단으로) 원자력마피아(정확한 용어로 하면 핵마피아가 될 터인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원자력이란 말로 잘 알려져 있으니 원자력마피아라고 해도 될듯)가 있다.

 

정확한 용어에 대해서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최무영 교수의 다음 글을 참조하면 될 듯하다.

 

  흔히 원자력발전소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원자력이란 완전히 잘못된 말입니다. 핵에너지는 원자력이 아닙니다. 원자력이란 원자끼리 작용하는 힘을 가리키는데, 극서은 본질적으로 전자기력입니다. 원자의 주위에 전자가 있는데, 이 전자와 원자핵 사이의 힘이 바로 전자기력이지요. 그런데 핵에너지와 관련된 힘은 전자기력이 아니라 핵력, 즉 강상호작용입니다. 원자의 가운데에 있는 원자핵 안에 양성자와 중성자들을 강하게 묶는 힘이 핵력이지요. 다시 강조하면 핵에너지는 원자핵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핵과 원자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에너지와 힘도 다른 양입니다. 원자력은 원자 사이의 힘이라는 뜻이지 에너지가 아니고, 핵발전은 핵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지 원자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원자력이란 말은 핵에너지로 바꿔 써야 합니다. 원자력발전도 핵발전으로 바꿔야 하고요. (최무영. 142-143쪽)

 

이렇듯 핵마피아는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을 일컫는 말인데, 워낙 핵발전이 전문적인 일이라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게 일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들은 나름 전문가집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들은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했음에도 경각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는 이런 큰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일본의 핵발전소와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다르다고 오히려 일본의 일을 기회로 우리 원전을 수출해야 한다고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원전을 더욱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게도 되었으니 이들의 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로 인해서 일어난 엄청난 홍보, 그리고 핵발전소가 아닌 원자력발전소로 알고 있는 잘못된 이름, 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발전이라는 허상 등으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핵발전이 중단되지 않고 있으며, 그에 대한 경각심도 덜한 편이다.

 

이 책에서 말한 핵발전의 관성을 없애기 위한 역돌출부가 필요한데, 그러한 역돌출부는 시민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시민들이 핵발전에 대한 반대운동에 광범위하게 나서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앙집권된 에너지정책과 엄청난 핵홍보, 그리고 미약한 반핵 또는 탈핵 시민운동으로 인해서 세계에서 가장 핵발전 밀집도가 높은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핵발전소의 20킬로미터 이내에 300만 명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인데도 이렇듯 핵발전에 대한 통제가 미미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위험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이대로 넘어가야 할까? 정부를 믿고 핵관련자들을 믿고 우리가 이 생활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도 우습다. 핵발전은 분명 우리에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재앙이 되는데, 우리 때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엄청난 처리비용과 사고 위험을 물려주게 되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가 있단 말인가? 또 당장 우리에게도 엄청난 사고 위험의 부담을 느끼게 하고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반핵, 탈핵 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한 홍보 부족. 이를 메우기 위해서 탈핵학교를 진행했다고 한다.

 

핵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리고 대안이 있음을 알리는 학교. 그러한 학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핵발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방사능은 생명체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한다면 방사능을 제일 많이 배출하는 것이 자연이 아니라 핵발전이라는 사실은 명확하기에 핵발전은 반생명적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반생명적인 기술을 우리가 유지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출발하면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의료기술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병원에 간다. 특히나 전국민이 몇 년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정기검진을 받는다. 이 정기검진의 필수항목으로 엑스레이 촬영이 있다.

 

가장 약하게 하는 사람이 흉부촬영만 하는데, 좀 있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방사선 검사를 여러가지 한다. 그것들을 할 때 방사능에 피폭된다는 의식없이.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방사능에 대해서 무지했는지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죽이는 검사를 받는다. 역설이다. 그런데도 이것들이 더 확대되고 있다.

 

의사들, 학자들 이런 점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 한 때 비행기를 타도 방사능에 노출이 된다고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방사능에 노출되고 피폭되고 있다. 그것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으로 병원에 가서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는 현실이라니..

 

이 책의 첫부분이 바로 의료기관에서 피폭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다음에는 먹을거리.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시작해 조금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는데,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핵'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 알게 된다.

 

사실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핵과 관련된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학교가 많이 필요하다. 공교육기관에서 핵에 관련된 진실을 얻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교육에는 정말로 많은 00마피아들이 관련되어 있다. 아주 강고한 집단들이 얽히고 설켜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 매듭을 한 칼에 잘라버렸듯이 자르지 않으면 교육에 얽힌 00마피아들을 없애기는 어렵다), 공교육 밖의 단체에서 이런 활동들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홍보가 되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거나 의식있는 사람들만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들, 대충 알고 있던 사람들, 아니면 핵발전에 찬성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탈핵학교 같은 곳에 가야 한다. 가서 듣고 토론해야 한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시민들의 의식이 고양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의식만 바뀌어서는 안된다. 의식과 더불어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찻잔 속의 폭풍에 불과하다.

 

내 생활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네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내 생활이 전기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 다른 폐기물들을 얼마나 배출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고칠 수 있는 것부터 고치는 생활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이런 탈핵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하는 것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상상력" 바로 이것을 지녀야 한다고. 이 상상력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현실을 제대로 읽는 능력이다. 내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나와 다른 사람, 또 인간과 자연, 지구와 우주 등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상상력이다. 이런 상상력을 우리는 성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을 지녀야 한다. 내 삶 속에 매몰되어 버리지 말고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함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핵에 대한 모든 것. 우리의 삶이 정말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또 윤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탈핵학교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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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입시를 넘다 - 사교육 구렁텅이에서 어떻게 빠져나올까?
홍세화 외 지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기획 / 우리교육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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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름이 좋다. 사교육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교육의 병폐는 이루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아이들이 세계 최장의 교육노동시간에 시달리게 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사교육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주범도 바로 이 사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아이들의 창의성과 주체성을 빼앗아 버리는 주범도 역시 사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능력을 살리되 공교육에서 주어지지 않는 기회를 사교육을 통해서 살린다면 그것은 용인할 수 있지만, 공교육의 수준을 넘어서 오로지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하는 사교육은 아이들을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사교육이 필요없게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고 이들은 이미 "아깝다! 학원비" , "아깝다! 영어 헛고생" 등을 비롯한 소책자를 내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소책자 발행과 더불어 "등대지기 학교"를 통하여 오프라인 모임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데, 이 등대지기 학교에서 여러 강사들을 모시고 강연과 질의 응답을 한 결과가 바로 이 책 "교사, 입시를 넘다"이다.

 

학생들을 사교육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인데...

 

강사가 홍세화, 황선준, 최영우, 고병헌, 김상봉, 김승현, 송인수 선생이었다. 하나하나 다 들을 만한 강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이책에 나와 있는 강연내용들이 모두 생각할 만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교육이 심해진 이유는 좀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기 때문이고, 좀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나라의 강고한 학벌체제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진로 교육은 진학 지도에 불과하게 되었고, 진학 지도에서 성공하는 학교란 곧 이름난 학교에 학생들을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이니 정상적인 교육보다는 입시에 유리한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학교가 된다.

 

이런 상태가 계속 맞물려 돌아가다 보니, 우리나라 공교육은 입시에서 절대로 자유로와질 수가 없었고, 오히려 '입시에 의한 입시를 위한 입시의 교육'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런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고만 있을 것인가? 구렁텅이에서 나오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나? 또 구렁텅이에서 나오려고 하는 사람에게 잡을 막대기를 건네주어야 하지 않나?

 

그런 역할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하고자 한다고 느껴졌다. 그런 노력의 차원으로 이런 강연회도 열고 한 것이겠지.

 

입시로 인해 왜곡된 우리나라 교육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교사들의 노력이다. 교사들이 제도가 너무도 강고해서 도저히 어쩔 수 없어 하고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안되더라도 교사는 그 강고한 벽에 조그마한 금을 내는 일부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어놓은 금을 누군가가 또 긋고 그으면 결국 금은 틈이 되고 틈은 벽을 무너뜨리는 폭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는 2022년이면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입시위주의, 학벌 위주의 교육이 없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없앨 수 있도록 노력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와 더불어 자신들에게 호응해주는 단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런 단체, 교사들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비록 교사들이 무력증에 빠져 있고, 신자유주의에서 안정된 직장이라는 과실을 맛보고 있지만,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교사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과 더불어 지낼 때 가장 행복을 느끼며, 자신이 가르치는, 또 가르쳤던 사람이 행복해 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갈 때 가장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니, 왜곡된 교육 구조 속에서 가장 못견뎌하고,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교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강연회에 많은 교사들이 참석하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교사들 역시 이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결국 교육을 바꾸는 중요한 주체는 교살일 수밖에 없다.

 

이 교사들이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또 시민단체들과 함께 할 때 절대적일 것 같던 입시위주의 왜곡된 우리나라 교육도 바뀔 수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그런 희망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널리 퍼뜨리고 있다. 함께 가자고... 한 사람의 백 걸음보다 백 사람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다고, 그러니 우리 함께 하자고 교사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한 김상봉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분노"를 지녀야 한다. "분노"를 느껴야 한다. 지금 아이들을,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 교육제도에 대해서. 그 분노를 바꿈의 힘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자고 한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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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끝에 서라 -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가장 쉬운 창조법
강신장.황인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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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창조의 세기다. 창조적인 사람이 대우받는 시대가 되었다. 20세기가 이미 주어진 지식을 습득하여 그것을 적용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주어진 지식은 언제든지 습득이 가능하기에 그러한 지식을 어떻에 응용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주어진 지식에 자기만의 무엇을 더하는 시대,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던 시대에서 이제는 무언가를 더 보태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더 보탠다는 것은 창조적인 삶을 산다는 말이다. 창조란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도 있지만, 이미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사용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이 더욱 우대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조성은 어떻게 해야 키워지는가?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연습까지 시켜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겉표지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가장 쉬운 창조법'이라는 말이 있고, '위대한 창조의 시작,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말도 있다.

 

창조성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고,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감성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감성을 끝까지 밀고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감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에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없다.

 

단순한 사물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자신과 같은 대상이 된다. 그들의 말을 대신해 줄 수 있기도 한다. 이게 바로 시인이다. 그리고 이런 시인의 감성을 우리가 지닌다면 우리는 기존의 지식에 우리의 지식을 덧붙여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에 대한 설명을 말해주듯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의 내용을 전개해 가고 있다. 읽으면서 그렇지, 이렇게 할 수 있겠군 하는 생각을 쉬임없이 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고...

 

내 생각을 자극하는 면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창조적인 생각과 더불어 시를 쓰는 즐거움도 선사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창조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녀야 할 자세는...사물의 마음을 먼저 보아야 한다고 한다. 사물의 마음을 본다는 것은 사물과 일체가 된다는 말인데... 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물로 자신의 입장을 바꿔보아야 한다고 한다.

 

사물로 자신을 바꾸어보고, 그 사물의 마음을 서술어(동사, 형용사)로 표현해보라고 한다. 이를 "마음 DO"라고 한다. 그 사물이 되어 사물의 마음을 표현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물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시인들의 창조법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것을 "오감법, 오관법, 오연법, 오역법"이라고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감정을 느끼기, 자세히 살피기, 관련 사항 찾기, 거꾸로 보기라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구체적인 내용이야 책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창조법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주기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냥 읽어가면 이해가 되니 창조적인 발상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창조적 생활. 별 거 아니다. 우리 자신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살피기 시작한다면 우리네 삶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창조적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창조성이라는 것이 부단한 연습을 통해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삶에 여유가 있다면 자연스레 갖춰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일은 노동시간을 줄여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너무도 바빠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는 사람에게 넌 왜 창조적이지 못해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창조성을 살리려면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하는 것도 좋은데,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로 하려면 우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 속에서 창조성은 태어나게 된다.

 

아마도 이 책은 그러한 여유를 기본전제로 하고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리라.

 

21세기.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또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한 번 "감성의 끝에 서" 보자. 이제는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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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마음을 만지다 - 시가 있는 심리치유 에세이
최영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인지,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이 되는 것인지 하는 질문이 있었다. 참으로 심오한 질문이기는 한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왜냐하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시를 쓸 수 있으며, 시를 쓰면서도 시인이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우리들은 시를 쓴다는 시인들을 특별한 사람 취급할까? 이렇게 된 데는 우리나라 문학교육이 한 몫을 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학교 다닐 때 시교육 수업을 생각해 보면 도대체 뭔 소린지도 모르는 시들을 온갖 표현법부터 상징적 의미까지 쪼갤 수 있는 데는 모두 쪼개 놓고 보았고, 또 시란 아무나 쓸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종류의 문학처럼 여기도록 배워왔다.

 

도대체 왜 시가 그래야 하지? 이 시가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고민하는 수업은 전혀 없었다. 요즘은 시를 시로써 감상해야 한다는 교사들도 많아졌고, 그러한 수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시를 어려워 한다. 시는 여전히 국어 시험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를 통해서 치유를 한다고? 오히려 병이 걸리지 않고?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학창시절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이 시는 치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어느 순간 시는 마음 속에 다가온다. 어, 이 시가 이랬어? 이 시가 내 맘을 이렇게 잘 아네...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시인이 된다. 그리고 그 시를 다시 읽는 순간, 소리내어 낭송하는 순간, 시인이 쓴 시를 우리가 또다시 쓰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순간을 이렇게 말한다.

 

  시도 누군가에게 읽히기 전에는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큰 소리로 낭송할 때 그에게로 가서 완결된 한 편의 시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인의 진액이 녹아 있는 고통과 희열의 잔을 시인과 나누어 마신다. 그리하여 낭송하는 자도 더불어 시인이 되는 것이다.

  시 낭송은 이처럼 가만히 한 자리에 머물러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시선과 흔적을 따라 시를 체험해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시와 삶의 행복한 일치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시를 낭송해보면 그냥 눈으로 읽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던, 행간 깊숙이 숨어 있는 시인의 마음을 한순간에 낚아챌 수 있다. 그 시를 쓴 시인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31쪽

 

한 번 시를 낭송해 보라. 시에는 어떤 시를 불문하고 음악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낭송을 하는 순간 우리에게 어떤 운율을 부여한다. 우리가 어떤 가락을 느끼고 그 가락이 온몸을 울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시의 내용이 아니다. 시를 읽는 동안 그 소리들의 울림이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울린다. 그 울림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 일상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이미 시를 낭송하는 순간, 나는 나에게서 거리를 두고 시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말이 내 가슴에서 울리고 나를 울리고 내 영혼을 울린다. 그런 울림으로 나는 나에게서 있던 슬픔, 우울, 고통 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지닐 수 있게 된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시는 지니고 있다. 아니 시가 지니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이 책의 지은이가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듯이 낭독되는 시가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는 낭송해야 한다. 소리내어 읽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자신의 말을 소리내어 말하고 듣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기계에 대고 하는 소리는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뱉어내는 소리에 불과하다. 내가 말하고 듣는다는 것은 일방적인 뱉어냄이 아니라 내 맘 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시 낭송은 시를 내 맘 속에서 받아들이고, 그것이 울림을 통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 맘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된다.

 

시에서 멀어진 시대... 그러나 시대가 험할수록 시를 읽어야 한다. 시를 읽어야 험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세상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일... 그것이 바로 시가 지닌 힘이고, 시를 낭송하는 우리들이 지닌 힘이다.

 

이렇게 시를 낭송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시인이 된다. 그런 시인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더욱 밝아진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혼자만 있는 공간에서 조용히 시를 낭송해 보았다. 내 목소리가 내 가슴을 울리고, 그 울림이 내 머리까지, 내 영혼까지 울리는 경험을 한 책읽기였다.

 

시, 저 멀리 고고하게 혼자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함께 있는 존재다. 시를 가까이 하자. 가끔 시를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하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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