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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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팔자는 타고 났다는 말을 한다. 당연한 말이다. 자기가 태어난 년월일시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긴 요즘은 의학기술이 발달해서 태어나는 날을 조정하기는 하지만, 이미 태어났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런데 타고 났다는 말은 바꿀 수 없다는 말과 같지 않다. 사람들이 이 두 말을 같은 말로 쓰고 있는데, 타고 났다는 말은 이미 그랬다는 과거형을 뿐이라면 바꿀 수 있다/없다는 말은 지금이라는, 얼마든지 유동적인 현재형이다.

 

과거형으로 현재를 규정지으려는 것이 바로 운명론이고, 이러한 운명론을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어 체제에 순응하게 만들고 만다. 자기의 운명이 정해졌다는데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운명론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이 아마도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아닐까 싶은데, 자신의 사주를 믿고 평생을 그대로만 살려고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과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살았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운명이란 이미 타고 났지만, 그 타고 남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쪽으로 사주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것이 '사주명리학'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사주명리학을 활용한다면 사주명리학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점집에 가서 점치는, 그 점대로 하고, 또 부적을 받아서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자세를 지닐 필요가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나아갈 길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사주명리학은 운명론이나 미신이 아니라 철학이고 인문학이다. 우리가 살아갈 길을 안내해 주는 이정표이다. 이정표대로 따라가든 아니든 그것은 사람들이 할 일이다. 즉, 운명에 대한 삶은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것일 뿐이다.

 

운명이 그러니 내가 이럴 수밖에 없어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자신이 포기했음을 나타내주는 말일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천지의 기운을 자신의 몸에 받은 것은 당연한 일. 그것이 기질을 형성하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사람은 단지 주어진 것을 따라만 가는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주를 행위를 통해서 또다른 관계로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다.

 

존재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관계론이라는 얘기다. 우리의 운명은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관계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라는 얘기.

 

하여 자신의 사주를 명확히 알 필요는 있다. 사주를 명확히 알고 자신이 추구해야 할 관계를 파악한 다음에 행위로 나아간다면 자신의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이 된다.

 

이 책의 부록에 사주가 단지 8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밝혀놓고 있다. 사주의 경우의 수를 20,736가지, 천간까지 합쳐 계산해 보면 팔자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12,960,000가지(280쪽)라고 한다.

 

천이백만분의 일. 이것이 내가 지닌 팔자다. 여기에 내가 스스로 관계를 통하여 만들어가는 팔자까지 생각해 보면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팔자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팔자는 타고 났지만 결코 정해지지 않는다. 팔자는 유동적이다. 팔자는 관계지향적이다. 관계를 통해서 팔자는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 때문에 팔자는 만들어진다. 팔자는 곧 내 행위를 통한 삶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자신의 처지를 명확히 아는 것. 모든 것은 앎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 이것을 바탕으로 실천으로 나아가 관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자신의 운명이 된다.

 

하여 운명은 길이다. 우리가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길. 이 길에서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우리가 가는 운명의 길이 달라진다.

 

이렇듯 미신이라고 도외시하고 있었던 사주명리학이 단순한 미신이 아닌 삶에 대한 철학, 인문학이었음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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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션 - 결심을 조롱하는 감각의 비밀
살마 로벨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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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각. 우리는 흔히 오감이라고 하는데, 이 오감을 벗어난 감각을 육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육감이란 우리의 신체감각은 아니지만 신체감각처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오감과 육감을 다른 말로 사용을 했고 오감이 우리의 지능이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를 하지 않았다. 단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을 했을 뿐.

 

하지만 우리의 오감은 우리의 인지능력이나 신체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러 실험 사례들을 통하여 알려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오감이 인지 능력이나 신체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육감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육감은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일어날 듯한 느낌을 주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이러한 육감은 오감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 오감이 우리에게 작동할 때의 모습이 바로 육감인 것이다.

 

그냥 이것은 아니다 싶을 때가 있고, 왠지 그 사람이 다정해 보일 때가 있고, 또 그 사람이 못 미더워보일 때가 있는데, 그 때 우리는 그냥 육감이 그래 라고 말을 해왔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것은 육감이 그래온 것이 아니라 오감이 우리의 인지 능력과 신체 능력에 영향을 미쳐서 그런 것이었다.

 

가령 이 책의 처음에 나오는 따뜻한 차는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촉감은 따뜻하냐와 차갑냐에 따라 우리가 받아들이고 행동하는데 변화를 준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이 따뜻함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타협할 자세를 제공해 주며, 차가움은 도전적임, 불편함, 그리고 투쟁해야 한다는 자세를 취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따뜻함은 부드러움과 연결이 되고, 차가움은 딱딱함과도 연결이 된다. 이렇듯 촉각은 우리의 행동을 일으키는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

 

촉각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각 역시 마찬가지다. 빨간색이 신체활동 면에서는 열정을 나타내지만 지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그렇다. 신체가 활성화되면 이는 본능적인 충동이 더 활성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차분히 이성적으로 사고할 능력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적인 면이 필요한 활동에서 빨간색은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검은색은 사악함과 연결이 되고 흰색은 순수함, 착함과 연결이 되니,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단이 더 많은 파울을 얻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라고 하고 있기도 하다. 색채가 우리의 인지 능력이나 활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다 언급하면 끝도 없을 듯하지만, 이는 수직선 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 또한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고 있으며, 무게 역시 중요성을 판단하는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여기에 향기가 우리의 마음이나 행동에도 영향을 주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유적인 말들도 우리의 인지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자신들이 겪은 경험이 '체화된 인지 능력'으로 굳어졌으며, 이러한'체화된인지 능력'은 우리의 감각과 상호작용을 하게 됨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의지'만을 강조해서는 안됨을 알 수 있다. 사회가 각박해졌다고 하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의 감각을 변화시키는 요소들을 활용해야 한다.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결책도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감각을 벗어날 수는 없으므로, 이 감각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감각이 어떻게 우리의 인지나 행동에 작동하는지를 인식했다면 감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최근 공간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그 공간을 어떠한 감각들이 작동하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이 책이 제공해주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 예를 들면 '손을 씻다'와 같은 말처럼 손을 씻으면 자신이 좀더 도덕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하는 것처럼, 실제로 우리의 인지능력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결과를 통하여 보여준 책이다.

 

우리의 감각, 즉 오감이 결국 우리의 육감을 결정함을 명심하자. 육감은 비과학적인 감각이 아니라, 오감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체화된 인지 능력'임을 이 책은 잘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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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세우기 - 버트 헬링거의 놀라운 심리치료법
존 페인 지음, 풀라 옮김 / 샨티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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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세우기에 관한 두 번째 책.

 

어쩌면 순서를 바꿔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출간된 년도를 보니 순서가 바뀌었는데, 하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하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순서가 바뀌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

 

심리치료.

 

현대에 들어와서 더욱 필요한 치료법이 되었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너무도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 더더욱 필요한 치료법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심리치료법 중에 어쩌면 가장 동양적인 치료법이 바로 이 가족세우기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가족세우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에너지, 우리 말로 하면 '기(氣)'에 대해서 인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보지는 못하지만 기가 흐르고 있고, 그 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가 바로 가족의 기라고 한다.

 

그것을 '장(field)'이라고 하는데, 이 장은 바로 기들이 모여 관계를 이루고 있는 공간 또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장 속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가족들의 기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즉, 나는 나라는 존재 혼자로 존재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의 나로 존재한다는 사실, 즉 나는 가족이라는 기들의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기에 이 가족의 기가 흐트러졌을 때 내 삶 역시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나만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가족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가족세우기'다.

 

다른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형태로 세워보고, 그 속에서 어떤 기들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느끼게 될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느낌은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관계 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관계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파악했을 때 문제 해결을 좀더 쉽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상당히 심한 상처들도 이런 가족세우기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하고, 또 그러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가족세우기를 할 때 신경 써야 할 점은 '스토리'가 아니라 '영혼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스토리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의 본질에서 벗어난 말하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반하여 영혼의 언어는 자신의 본질에 와닿는 언어인데, 이런 영혼의 언어를 말하자마자 우리는 치유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고 한다.

 

영혼의 언어를 말하기 위해서 지녀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바로 "용기"라고 한다. 그 용기란 바로 '우리의 판단 실수, 우리의 오만함과 고집스러움, 우리의 분노, 심지어 우리의 고통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286-287쪽)라고 한다.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다음, 가족세우기를 통해서 관계망 속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찾아내고, 그 다믐에 영혼의 언어로 말한다면... 치유는 이루어진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뿐만이 아니라 약물중독 등도 이러한 가족세우기를 통해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다고 하니, 한 번 시도해볼 만한 치유법이지 않나 싶다.

 

물론 이러한 가족세우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로보는 용기가 전제되지만, 이에 못지 않게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세우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이루어진다면 가까운 가족뿐만이 아니라, 아주 먼 조상들까지도 가족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하니, 이 가족세우기는 참으로 고려할 만한 치유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횡으로 나와 관계 있는 사람들과 얽혀 있다는 사실, 그것이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이 동양의 기와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읽으면서 내내 마음에 와닿았다.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는 지금 현실... 가족세우기를 통해 치유를 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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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으로 산다는 것 - 우리 시대 시인 20인이 말하는 나의 삶 나의 시
강은교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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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나오는 시인들을 어떤 기준으로 20인을 선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20인의 시인이 시인이라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들은 각자 다른 말을 하는데, 가만히 읽다보면 다른 말들이 비슷한 말로 수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하는 말 중에 어떤 시인도 부정하지 못하는 말이 자신들은 이제 시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때 시를 벗어나려고 하기도 했고, 또 실제로 벗어난 삶을 살기도 했지만, 돌아온 탕자처럼 언제든지 자신들이 시에게 돌아오면 그들을 받아주곤 했다는 시. 그래서 세월이 흐른 다음에는 이제는 더이상 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고백.

 

이런 고백이 이 책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시인이 시인이 된 계기는 필연 속에 우연이 작동하고, 이 우연이 결국 필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 어떻게든 시인이 된다. 그러니 결코 서두르지 말기를.

 

또 하나 시인들, 가만히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이들은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려고 한다. 그렇게 감추려고 해서 결국은 드러나고 만다. 내적으로 응축이 되어 드디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경우라고 해야 하나.

 

이들의 시는 그들의 내면에서 오기도 하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외부에서 오기도 한다. 그 외부가 바로 이데아다. 플라톤이 말했다는 이상세계인 그 이데아.

 

시인들은 시라는 이데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시라는 이데아를 자신이 느끼는 대로 현실로 끌어올 뿐이다. 그렇게 끌어온 시들이 우리 현실에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시라는 이데아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현실로 끌어온 시를 경험할 뿐이다.

 

그것뿐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러므로 시인은 시라는 이데아를 현실에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우리는 그런 시인들을 통해서 시를 경험할 뿐이다.

 

그런 점을 너무도 잘 보여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20인의 시인들이 각자 자신들의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들의 말에서 다름을 느끼지만, 그 다름 속에서 비슷함을 찾을 수 있는 것. 하여 이 책을 읽으며 시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시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인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시인. 참 독특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이 시라는 이데아를 찾아 헤매는 사람임에 다소 마음에 위안을 받는다. 아직도 나는 시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들도 어렵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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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 긍정의 건축으로 다시 짓는 대한민국 교육
김경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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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육. 정말 중요한 일이고, 현재를 넘어서 미래로 나아가는 길인데, 이런 교육에 대한 논의가 무성함에도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상태, 그럼 미래는 행복해질까?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 그나마도 대안학교다 혁신학교다 하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많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안학교야 원래 취지가 공교육의 반대편에 서서 어떤 교육철학을 지니고 이루어진다고 하니 논외로 한다면 공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혁신학교는 나름대로 성과를 거둬가고 있기도 하다. 적어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뛰쳐나가려고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혁신학교의 성공을 학력에 두고 판단을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판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혁신학교가 성공했다고 해서 혁신학교 주변의 집값들이 덩달아 오른다는 기사는 혁신학교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사들이나 판단은 교육의 성패를 학력에만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학생들의 행복은 들어있지 않다. 우습지 않은가? 교육은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행복을 미래에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을 오로지 학력이라는 잣대로 재는 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에 혁신학교들이 이상하게도 수업혁신이다, 생활혁신이다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무언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무엇이 빠져 있었을까 하다가 이 책을 읽는 순간 "아!"하고 말았다. 그래, 바로 이것이구나, 이것이 지금 우리 교육혁신에 빠져 있는 거구나.

 

그것은 바로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었다. 우리는 학교라는 공간을 그냥 주어진 것으로만 알고 그 공간 속에서 학생과 교사들의 관계에만 신경을 썼다. 사실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막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수업이든 생활지도든 이런 쪽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학교라는 공간으로 접근을 한다.

 

아이들이 대부분 지내야 하는 공간인 학교가 왜 가장 낙후된 시설만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 도대체 적어도 12년을 지내야 하는 공간이 6년, 3년, 3년 이렇게 변화가 되어도 공간의 변화는 없는가.

 

우리나라 초,중,고 학교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차이가 느껴지는가. 어느 도시에 가도 학교는 아, 저것이 학교구나 하고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획일적이다.

 

거기다 학교 내부를 살펴보면 도무지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여기에 거의 모두가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삭막하기는 이루 말할 데가 없을 정도다.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이 지내는 공간으로서 학교는 과거의 유물에 속할 뿐이다. 미래의 사람을 과거에 얽매어 놓고 거기서 미래를 상상하라고 한다. 가능한가? 이 가능하지 않음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오직 교과내용이든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게라든지 하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다행이 몇 년 전부터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생겨왔고, 또 학교라는 공간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어왔다. 이 책은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학교라는 공간이 바뀌었을 때 어떻게 교육이 바뀌는지를 실제 경험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학교 공간으로 바꿨을 때 학생들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또 어떤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무엇보다도 전문가들이 참여하지만 학교 공간을 바꾸는 일에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의 참여를 필수적으로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결국 학교에서 가장 오랫동안 있는 사람은 학생과 교사 아니던가. 그러면 이들이 가장 편안하고 좋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또 자신의 공간을 자신들이 바꾸어간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참여하에서 학교라는 공간을 고쳐 간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화장실을, 어떤 학교는 복도를, 도서관을, 쉼터를... 각자 학교의 사정에 맞게 꼭 필요한 부분들을 전문가들과 협조하여 고쳐간 기록이 이 책인데...

 

이런 과정을 읽어가면서 혁신학교가 한 가지 놓친 것이 바로 이런 학교라는 공간의 개조였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몇몇 학교에서는 벽화그리기를 통해 환경을 바꾸려는 모습도 보였으나,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창출로는 나아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을 깨닫게 하고, 공간 변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해준 책인데...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

 

이것이 이들이 한 일의 주제다. 여기서 문화란 학교라는 공간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붙였을테고... 어떤 학교에서는 쉼터이자 갤러리이자 카페가 되는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니...

 

정말로 학교에 문화가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든 학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학부모가 언제든 와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소망들이 학교라는 공간에 담겨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단순한 꿈이 아니라,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임을 "문화로 행복한 학교 만들기"가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의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지원예산이 대폭줄어 이제는 학교예산으로 해야만 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학교라는 공간이 이토록 중요한데,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아니 우리나라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에서는 학교 공간의 변화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우선인가 생각해 보라.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가장 우선 아닌가. 학생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학교에서 지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고, 나라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의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읽으면서 즐거워지는 책인데... 예산 지원이 대폭 삭감되었다는 후기에 가서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이 무거워진 마음이 정책의 변화로 가벼워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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