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 차별은 어떻게 생겨나고 왜 반복되는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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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차별은 어느 정도일까?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 차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많은 부분에서 차별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상하게도 차별금지법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이 있는데, 차별이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차별금지법은 반대한다. 왜 그럴까? 자신의 자유를 차별금지법이 빼앗는다고 생각해서라고 하는데, 차별금지법이 주장하고 있는 큰 내용이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에 자유의 제약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차별을 해도 된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내 뜻대로만 할 수는 없다. 내 자유야! 하면서 누구나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공동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규범이 차별을 하지 말자는 것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차별은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고, 누군가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는 사회를 공동체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십분 양보하자. 차별금지법이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자유를 침해할까? 바로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는 한에서만 금지한다는 법 아닌가.


모든 분야에서 금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소수자를 싫어한다는 마음까지도 규제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저자는 '차별금지 사유의 의의'를 이렇게 표로 정리하고 있다. (86쪽)


표제 내용
소수자 집단 차별금지 사유로 구분되는 집단은 상당 기간 차별받아왔고
지금도 차별받고 있는 소수자 집단이다
합리적
이유의 부재
차별금지 사유는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이용·공급 등에서
고려되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는 유의미한 요소가 아니다
비자발적 요인 차별금지 사유는 생물학적, 태생적,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 것으로서
여기에는 사살상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인간 존엄 훼손과
차별 조장의 효과
차별금지 사유로 부당하게 구분하는 것은 인간 존엄을 훼손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표에서 두 번째 합리적 이유의 부재의 내용에 보면 이 분야에서 차별금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한다. 즉 합리적 이유의 부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런 분야에서는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표에서는 '공공서비스'가 빠졌는데,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차별이 당연히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굳이 넣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부분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분야에 공공서비스가 들어가 있다.


그러니 공동체생활에 꼭 필요한, 홀로 존재할 수가 없는 이 분야들에서 차별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왜 그런지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또 무엇이 차별인지, 어떤 영역에서 차별이 규제되어야 하는지, 지도나 규제, 처벌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는 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지도와 교육을 통해서, 합의를 통해서 해결되는 쪽을 우선하고,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차별금지법은 법으로 해결하기 전에 처벌 대신 권고를 하고, 권고에 이어 시정 명령을 내리는 쪽을 우선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차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라고.


하여 저자는 '차별금지법의 중요한 기능은 기업, 대학 등 개별 조직에 대한 차별금지와 다양성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각 조직이 스스로 차별금지, 다양성 정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것'(254쪽)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남을 차별하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그것을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반대하는 이유가 자유라면, 그 자유가 무한한 자유가 아님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자유를 침해당하기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경우에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보다는 모두가 차별 없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취지다'(213쪽)라고.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는 동일한 또는 비슷한 존재들끼리의 모임보다는 다양한 존재의 모임일 때 더욱 좋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기업이 얼마나 효율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다양한 존재들이 모였을 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음은 여러가지 사례들로 밝혀져 있으니 말이다.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과 연대를 지향하는 것은 우리 공동의 미래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투자다. 차별금지법은 공존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법이다.'(24쪽)는 저자의 말에 이런 의미가 잘 드러나 있고 민생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말 그대로 '절박한' 생존권의 문제'(200쪽)라고 차별금지법 또한 우선해야 할 민생 문제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은 없다. 아니, 물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탄핵 정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것이 바로 차별금지였기에... 빛의 혁명을 통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다들 이야기하니, 빛의 혁명이 주장했던 차별금지의 기초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이제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시급한 민생문제임을 정치권에 알려야 한다. 정치권은 시민의 압력이 없으면 잘 안 움직인다. 그나마 많은 분야에서 차별이 줄어든 것도 당사자 또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말한 것이 과거가 되도록 하루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도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 차별금지법이 없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 특정 종교계 일부에서 지극히 부당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10쪽)라고 하고 있는데, 특정 종교계가 아니라 '일부'다. 정치인들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부'라는 말을.


저자의 통계를 한 번 더 인용한다. '미국의 주류 장로교가 이미 오래전에 동성애를 포용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는 주요 감리교도 동성애 포용 정책에 합류했다'(181쪽), '2022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의 42.4퍼센트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31.5퍼센트였다'(183쪽)


그러니 법을 제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한국 사회가 혐오와 차별과 결별한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확인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276쪽)는 저자의 말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 사람인 니묄러의 말이 생각났다. 이를 하나의 소수자를 차별할 때 침묵하면 결국 자신이 소수자가 되었을 때 남들도 침묵한다는 것. 차별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없애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쪽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시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이 말이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저자의 논의 명쾌하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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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유라 옮김 / 한경arte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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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기획이다. 역사를 딱딱한 객관적 서술로 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서 서술하다니... 특히 그림으로 표현된 인물들을 통해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들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라고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잘 알지 못했던 한 왕가의 역사를 훑어주고 있어서 좋다.


총 12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림 12장을 통해 합스부르크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그림이 12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련된 그림들이 제시되고 있어서, 명화 감상도 되고 역사 공부도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책은 합스부르크 왕가를 시작한 루돌프 1세를 지나 합스부르크가 실세로 떠오르게 되는 15세기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시작한다. 뒤러가 그린 그림으로 설명이 시작되는데, 이때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전쟁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 (37쪽뿐만 아니라 이 문장은 자주 이 책에 나온다)


신성한 푸른 피라고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 근친혼을 한 경우가 많았으며, 그런 이유로 유전적인 질병에 시달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 정략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 제국을 보존하기 위해서 더욱 정략 결혼에 힘썼다고 할 수 있다. 때로는 한때 적대국이었던 나라와도 혼인관계를 맺었으니...


제국의 보존을 결혼을 이용한 것, 이건 어쩌면 제국들의 또는 왕국들의 공통된 유지방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 고려에서 왕건 역시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략 결혼을 많이도 했으니까.


그래서 다양한 왕국과 결혼을 하는데, 그럼에도 자신들의 사촌 등등 근친과 결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으니... 능력이 아니라 혈통이 제국을 유지하는 수단이 되니, 그 나라가 600년을 지속한 것이 신기할 지경이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정략 결혼을 통한 정책이 성공했다고 해야 할까?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200년이 더 지나면 아주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가 나온다. 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가의 끝무렵에 황후가 되는 엘리자베트가 거의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 어쩌면 이들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산 사람들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렇게 거대한 왕국의 황후가 되지 않았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이 거대한 궁정에 갇혀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이끌었던, 스페인 제국을 건설했던 펠리페 2세 역시 합스부르크가 사람이었고... 그에 대해서는 작가가 더 많은 것을 서술하고 싶다고 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티치아노가 그린 '군복 모습의 펠리페 황태자'라는 그림을 통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8장에서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그를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합스부르크가의 '마리아 테레지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이 책에도 마리아 테레지아의 초상 그림이 두 점이 실려 있는데 왜 이것을 장을 시작하는 그림으로 하지 않고, 프리드리히 대왕을 그린 그림으로 시작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부흥하는 독일과 쇠퇴해가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더 잘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은데, 쇠락해가는 합스부르크가를 그나마 지탱하는 사람이 마리아 테레지아였다고 하지만 이미 힘의 균형은 많이 기운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합스부르크 왕가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라지게 되는데, 마지막은 아니지만 거의 마지막 황제라고 할 수 있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이야기는 프란츠 사버 빈터할터가 그린 '엘리자베트 황후'라는 그림에서 펼쳐진다.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김건모 노래 제목처럼 '잘못된 만남'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은 엘리자베트 황후, 궁정생활을 견디지 못해 또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궁정의 일에 완전히 손을 뗀, 오로지 자신의 미모만 가꾸었던 사람의 초상을 통해서 합스부르크가의 최후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여기에 나폴레옹 3세의 권유로 멕시코 황제로 갔던 막시밀리안이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데, 그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동생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60년이 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역사에서 그림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통해 그 역사를 알려주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 왕가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런 기획이 필요하다는 생각, 우리에게 낯선 합스부르크라는 가문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던 그림을 통해서 살필 수 있게 하니, 그림을 보면서 자연스레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책에서 다룬 합스부르크가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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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20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또 책을 사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일단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해서 내용이 겹치는 책들이 많은데 유혹에 잘 넘어가요^^

kinye91 2026-01-20 11:01   좋아요 1 | URL
저도 책 유혹에 잘 넘어가는데 그레이스 님도 그러시군요.
 
폭력의 전염 - 우리 안의 12가지 제노사이드 심리
이스라엘 차니 지음, 김상기 옮김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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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언제 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간 이래로 폭력이 없던 때가 있었던가? 개인 간의 폭력도 문제지만 집단 간의 폭력은 더 심한 문제가 된다.


집단, 특히 국가 간에 또는 국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역사를 우리는 거쳐왔고.


국제협약을 통해 대량 학살을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학살을 막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은 이러한 학살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를 살피고 있다.


아마 책을 읽지 않아도 대충 짐작을 하고 있는 원인들이 많겠지만, 이 책은 그 원인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개인이다라고 말하기는 쉽다. 물론 불법적인 명령에, 대량 학살을 하라는 명령에 거부할 수 있는 개인들이 많다면 대량 학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이 자신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면서 살아가기는 힘든 존재다.


많은 심리학 연구들이 그 점을 잘 밝히고 있지 않은가. 환경에 따라 또 주변 사람들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런 환경에서도 자신의 생각, 행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이 책에서 제시한 12가지 제노사이드 심리에 따르면 그것이 참 힘든 일이다. 따라서 이런 제노사이드 심리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도 깨어 있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제노사이드를 방지하는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불법적인 명령을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하고, 우리나라 비상계엄 사태 때 태업을 한 군인들, 그들로 인해 더 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이렇게 불법에 따르지 않을 권리, 책임을 교육할 필요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12가지 제노사이드 심리는 무엇일까? 12가지 폭력의 기초들이라고 해서 제시하고 있는데...


1. 투사화 

2. 권력 욕망

3. 비인간화

4. 권위 맹종

5. 무비판적 수동성

6. 방관자적 시선

7. 집단화

8. 권위의 남용

9. 이데올로기화

10. 희생양 만들기

11. 부정화

12. 극단주의와 허무주의


아마,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심리들인데, 그 중에 투사화라는 것은 '인생의 어떤 문제, 위협, 재난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는 총체적인 뒤집어씌우기'(87쪽)다. 한 마디로 잘못은 네(너희)가 했어라는 말이다.


권력을 추구하고, 권력에 복종하고, 그래서 남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이 사라져야만 자신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심리들... 이러한 심리들이 꼭 12가지를 모두 충족하지는 않겠지만, 이 12가지 중에 몇 가지만 겹쳐도 다른 존재들을 악마화하게 된다.


악마화, 이것은 상대를 없애야 한다는 행위로 나아가게 되니, 이런 12가지 심리에 감염되지 않았나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개인도 그러해야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12가지 심리가 퍼져 있지 않아 감시하고, 그런 심리가 나타나지 않도록 교육과 제도를 통해 막아야 한다.


그래야만 대량 학살이 벌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당위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너무도 힘든 일이다. 분위기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을 키운다고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니까.


따라서 제도로 법으로 또 사회 분위기로 이런 심리들이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다름을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름을 인정하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고, 다른 존재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른 존재들을 사회가 용인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을 때 대량 학살로 가는 이러한 12가지 심리를 방지할 수 있다.


이런 점과 더불어 이 책의 장점은 부록으로 이스라엘의 폭력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즉 대량 학살을 남의 일로만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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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휴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폐간이라고 해야 한다.


  예전에 내가 받아보았던 잡지들이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계간에서 휴간이 된 경우가 많았고, 노숙인의 자활을 돕고 있는 [빅이슈]도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유지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학교에서 교과서도 디지털로 하자고 하는 세상이니, 종이에 인쇄된 잡지들이 살아남기는 더더욱 힘들어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샘터] 역시 오랜 기간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잡지였는데... 비록 정기구독을 한 적은 없지만 가끔은 읽을 기회가 있던 잡지였고. 그래서 이 잡지가 그만 발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하나의 잡지가 사라지는구나. 이렇게 종이책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구나. 아직은 서점에 가면 종이책들이 많은데, 이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디지털로 읽는 것과 종이라는 물성을 지닌 책으로 읽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데...


너무도 많은 책들이 있어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른다. 잡지들이 하나둘 휴간, 폐간하고 있는데, 이것이 종이책으로 옮겨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하지 못하는 세상이니.


이번에 알라딘에서 샘터 잡지를 창간호와 마지막호를 묶어서 판매를 했다. 이런 책 광고가 나오면 사야지 하는 강박에 시달린다. 읽든 읽지 않든 사놓아야 무언가를 했다는 느낌.


종이책에 덜 미안한 마음. 이렇게라도 사라지는 잡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창간호, 와, 정말 오랜만에 세로로 인쇄된 책을 읽었다.


어린 시절에는 종종 세로로 된 책들이 있었는데, 그때는 신문도 세로 인쇄였지, 아마... 그러다가 가로로 모두 바뀌었는데...


세로 인쇄만이 아니라 창간호는 한자가 그대로 쓰였다. 그래도 사람 이름에는 한글로 토를 달아주어 읽을 수 있는데, 본문에는 토를 달지 않아 한자를 모르는 세대는 읽기가 힘들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한자와 한글이 함께 쓰였던 시대가 있었는데, 샘터 창간호가 1970년 4월호이니, 이때까지도 한자어가 일상에서 쓰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필자로 참여했고, 생각할거리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데, 창간호 특집이 '젊음과 여성'이다.


당시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기획으로 잡아 창간호를 발간했다고 보면 되는데... 젊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때가 되어서야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 여성의 역할과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에 보면 남성 중심의 사고가 더 우세한 것은 말할 것이 없으니, 여성에 대한 관점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비교할 수 있는 창간호이기도 하다.


마지막호의 표제에 '첫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동안 샘터와 만났던 사람들의 글과 독자의 글들이 실려 있고, 새로운 해를 출발하는 1월에 샘터 마지막호가 나오다니,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라는 것을, 그래서 [샘터]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창간호와 같이 고흐의 그림으로 표제를 장식했고, 샘터 기자들의 말이 길게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감회가 새롭다. 


[샘터]의 휴간으로 창간호와 마지막호를 만나게 되었지만, 마지막호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쉼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닌다.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는, 그러한 잡지들이 계속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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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8 1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향수 속으로 사라지는 잡지책들, 출판사 입장에선 팔리지 않는 잡지책의 출간을 이어나가기 힘들겠지요.

kinye91 2026-01-18 17:18   좋아요 1 | URL
그런 점이 안타까워요. 전통이 있는 잡지들이 계속 출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감은빛 2026-01-18 1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잡지와 단행본을 함께 만드는 출판사 여러 곳에 일했었어요. 잡지가 살아남기 어려운 이유는 짧은 소비기한 탓입니다. 책의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단행본은 수십년 동안 판매가 가능하죠. 문학은 수백년도 가능할테고요. 잡지도 물론 내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정기적으로 발행한다는 발행 주기 때문에 다음호 이전까지만 유통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잡지를 거의 읽지 않죠. 그리고 과거 잡지 유통은 몇몇 총판들이 거의 독점했는데, 비합리적인 유통구조 덕분에 유통으로 수익을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버틸수 있는 건, 구독자가 많은, 혹은 충성도 높은 구독자 층을 보유한 곳들 뿐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온라인 서점과 대형서점이 커지고, 지역의 중소 서점들이 몰락하며 잡지 총판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으며 왜곡된 유통구조는 크게 영향받지 않아도 상관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전히 잡지의 유통기한이 짧고, 판매량이 적은 것은 극복하기 어려운 점이죠.

제가 일했던 잡지사 한 곳은 결국 제법 유명했던 잡지를 폐간하고 단행본 출판사로 돌아섰어요. 안타깝지만, 구조적으로 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kinye91 2026-01-19 09:24   좋아요 0 | URL
네, 그러네요. 유통기한이나 판매량이 잡지의 발행에 큰 영향을 주니, 이것을 보완할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수익을 떠나 좋은 잡지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사회였으면 해서요.

카스피 2026-01-18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샘터잡지 오래전에 집에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최인호의 가족이지요.샘터가 폐간하는 이유는 판형이 작고 페이지수가 적어 광고수록이 많지 않아서 그런것 같습니다.요즘 잡지들보면 거짓말 보태서 광고가 반이지요.

kinye91 2026-01-19 09:26   좋아요 0 | URL
광고 없이 좋은 잡지들이 계속 발간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게 참 힘든 일이겠지만요.
 
재난에 맞서는 과학 - 오늘의 과학 탐구 민음사 탐구 시리즈 8
박진영 지음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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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닥치는 재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자연재해를 인간과 관계없다고 말할 수 없는 요즈음인데, 인간으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재난들에 대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맞서고 있었던가.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것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밝히며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과학이 참여함을 말한다. 과학으로 인해 재난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재난이 발생하면 우리는 과학에 의존하게 된다.


왜냐하면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객관성을 대표하는 학문이 과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인-과정-결과-대책을 마련하는데 과학은 커다란 역할을 한다.


커다란 역할은 두 방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피해자를 위한 역할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해자를 위한 역할이다. 과학이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주관이 개입하지 않는 현상이 없다고 할 정도니, 과학자에 따라서 같은 현상도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과학자가 어떤 관점을 지니느냐, 누구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가해자 편에 선 과학을 청부과학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때 청부과학은 결과를 위해 과정을 왜곡하기도 하니, 청부과학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으니 논외로 하자.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재난을 분석하는 과학자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따라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끼리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만의 결과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결과도 보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책은 재난 중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다루고 있다. 2011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하지만 이미 그 전부터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는데, 대응이 늦었다고 한다. 늦게라도 대응을 제대로 했으면 좋겠지만, 주관하는 부처가 어디냐 등등으로 많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고통을 받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여기에 전문가들이 가세해서 원인을 규명하는 노력을 했고, 어느 정도 인과관계를 밝혀냈다고.


하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자를 단계별로 나누는 일도 벌어져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과학자들도 피해자 중심의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재난은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난은 사회적인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과학과 정치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따라서 '정치-과학의 장'이 되어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정치-과학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과학이 전문가만이 해야한다는 사고를 버리고 누구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해야 하고 (저자는 이를 누구나 손 드는 과학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를 중심에 놓는 연구,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가습기 살균제로 발생한 재난을 발생 과정, 대응 과정,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까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읽으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가습기 살균제가 일으킨 재난의 인과관계를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이 책이 쓰인 시점에는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던 기업관계자들이 2심을 앞두고 있다고 나와 있는데, 검색해보니 2024년 1월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2024년12월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고 하고, 최종 판결이 나왔다는 기사를 찾을 수가 없으니, 가습기 살균제 재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규정하고 국가에서 배상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법원은 기업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기업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 과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때 정치를 넘어 법에 다가서는 과학은 저자의 말대로 차가운 과학, 즉 논리와 증거로만 입증되어야 한다는, 그 전까지는 결론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그러한 과학이 아니어야 한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차갑고 객관적이고 완전무결한 과학은 재난을 끝내지 못한다. 과학과 정치와 불확실성과 피해자의 곁에 서려는 마음이 뒤얽힌 과학만이 재난 이후를 내다보게 한다'(189쪽), '재난과 관계하는 과학은 재난 피해와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189쪽)고...


과학도 이러할진대 법은 어떠해야 하는가? 법이 과연 피해자의 편에 서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차가운 법이 아니라 따뜻한 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법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데, 합리와 증거를 내세우면서 차갑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법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과학과 법은 객관성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재난에 맞서는 과학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준 저자의 논리는 법에도 적용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 저자의 말을 살짝 바꿔 법원에, 2심 유죄판결을 파기환송한 대법원에 다시 판결을 해야 하는 법원에 돌려주고 싶다.


'재난과 관계하는 법은 재난 피해와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따뜻한 법이 되고, 사람들을 좌절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야 저자도 말했듯이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실천과 더불어 법과 제도 역시 바뀌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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