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의 포트폴리오
커트 보니것 지음, 이영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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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소설을 읽다가 이거, 정말 다윈상 후보에 대한 이야기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 자신의 생명을 거둘 수도 있는 호기심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 이야기. <'소심한'과 '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서>라는 소설,


다윈상이 무엇인가? 위키백과를 참조하라. 하여간 어리석은 행동으로 자신의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다윈상 수상자는 그래서 살아 있지 않다- 수여하는 상 아닌가.


다윈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소설 제목이 재미 있는데, 영영사전에서 timid(소심한)과 Timbuktu(멀리 떨어진 곳) 사이에 위치하는 단어가 time(시간)이라고 한다. (7쪽)


시간은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을 돌릴 수가 없다고...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시간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고, 정말로 죽을 때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자신이 그러한 죽음에 이르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정말 죽어가던 사람이 깨어나서 하는 말, 내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어요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이 죽음을 불사하는 실험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결과는, 아마도 다윈상의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리석음, 지나친 호기심. 호기심이 창조를 낳기도 하지만, 생명을 없애기도 하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예전에 몇몇 알던 다윈상 수상자들을 떠올렸으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집 제목이 '멍청이의 포트폴리오'이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도 다윈상을 받을 만한 사람들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그것은 아니다. 다양한 내용의 소설이 묶여 있다. 아마도 커트 보니것 초기 단편들을 모아놓은 듯하고.


마지막 소설인 '로봇빌과 카슬로우 씨'는 미완성작이니... 내용이 중간에, 아니 어쩌면 시작 부분에서 멈추고 말았다. 뒤에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모르니, 작가가 구상한 소설 중에 어느 정도까지 진전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여기에 '마지막 태즈메이니안'은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라고 하고, 그의 신랄한 사회비평이 담겨 있는 글이니,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커트 보니것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제목이 된 소설을 보면 과연 이 소설의 주인공이 멍청이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인물은 우리가 좋은 의미로 쓰는 '바보'라는 말이 어울린다. 바보 의사 장기려처럼... 또는 바보 소리를 들었던 김수환 추기경처럼. 또한 바보 소리를 들었던 어떤 정치인처럼.


자신이 받았던 것을 조건 없이 남에게 베풀려 하는 사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멍청이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사람들로 인해 사회는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움직이지 않을까... 보니것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


자신이 준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드러나게 행동하지 않는, 그야말로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고 멍청하다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좀더 좋아짐을, 또 그런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음을 소설이 보여주고 있다. 


짧은 소설들이 묶여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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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2025 월급사실주의
김동식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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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이건 자신의 능력에 비해 직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더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여기에서 이렇게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담긴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귀천이 없을까? 힘듦과 쉬움이 있고, 수입이 많음과 적음이 있지만 그것으로 귀천을 따지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 그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인 작가들이 모여 그러한 현실을 소설로 썼다. 이 책이 세 번째 책이다. 2023년에 첫 책이 나왔고, 해마다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으니 올해 나오면 네 번째 월급사실주의 소설이 되겠다.


월급사실주의, 노동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이 삶과 동떨어져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 문학이 작가의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것도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있는 문학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이 이루어졌느냐는 것을 따지기 전에 이러한 작업을 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둘 수 있겠다. 문학을 통해서 현실을 만나고, 간접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나만 힘든 삶을 겪고 있구나 하는 위안을 느끼는 동시에, 이러한 힘겨운 삶이 내 탓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함께해야 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 문학은 그렇게 현실에 참여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 황모과가 쓴 '둘이라면 유니온'에서 약간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계엄 선포하기 전에 모인 국무회의 장면이다.


회사에서 일하며 느꼈던 일들을 쓴 소설. 비록 노조를 결성하지 않았지만 둘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장면을 회상하면서 그런 행위가 노조를 결성한 행위라고 여기기로 했다는 소설 속 인물.(215쪽) 이 인물은 그 회사에 더 이상 있지 않고 나온다. 자신의 양심으로 계속 있기 힘들었으니...


그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써왔던 소설을 쓰기로 하고, 나중에 작가노조에 가입을 한다. 하, 소설에서는 작가노조가 금속노조 지회가 되었다고 하는데, 왜? 작가도 철(금속)을 이용하니까... 현실에서 이렇게 소설 속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검색해 보니 2025년에 작가노동선언을 발표했던데... 노조로 아직 공식 출범한 것 같지는 않지만 조만간 작가노조가 출범하겠지. 노조에 대한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은데, 이 역시 특정 권력집단과 언론이 조장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이 소설에서 임원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장면 '이 겨울, 기시감에 시달리며 '회의실의 피터들'을 떠올렸다. '회의실의 코끼리'는 회의중에 절대로 언급되지 않는 일들을 비유한다. 그리고 조직에서 승진하는 사람들은 완벽하게 무능하거나 승진한 뒤엔 반드시 무능해진다는 것이 '피터의 법칙'이다. 리안과 나는 회사 회의실에 피터들뿐이라고 말했었다. 그걸 떠올리니 12·3 내란의 밤, 국무회의 분위기도 할 만한다. ... 아무도 언급하지 않아 코끼리가 된 피터들의 표정은 지겨울 정도로 친숙하다.' (212-213쪽)


그렇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이런 피터가 되기 싫어 회사를 나온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일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고, 회사원의 처우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피터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노조를 결성할 수밖에 없고. 회사를 나와 작가가 된 이후에 작가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소설들이 바로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이 쓴 소설이다.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노동현장을 소설로 보여주는 것, 그런 부당함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최근 '쿠팡 사태'를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아니, 쿠팡 사태 이전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면, 월급사실주의 소설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살기 위해서 노동을 하는데, 오히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는 현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작가라면 그런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이러한 현실이 직장을 얻지 못하는 젊은이들, 인종차별을 알게모르게 당하는 이주노동자들(우리나라에 온 이주노동자 문제도 있지만, 외국으로 나간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돌봄노동자들, 비정규직, 방송의 윤리 문제를 생각하는 방송인, 시각장애인, 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 라벨링을 하는 노동자, 중증장애인들이 겪는 문제를 지 작품집에서 각 소설가들이 다루고 있다.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실. 바꿔야만 하는 현실. 사람이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그러한 환경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현실에서도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니, 월급사실주의 동인들의 작품,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올해도 작품집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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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무엇일까? 시집 제목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는 '비가(悲歌)'다. 말 그대로 슬픈 노래.


  그런데 시인은 이 시에서 이 노래는 '아직 한번도 불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는 슬퍼하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슬픈 노래는 '불길처럼 흘러간 후에 / 강물보다 더 우렁우렁 눈물 쏟아낸 다음에 / 끝내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 길을 지우고 난 후에 / 사막 같은 악보를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사막 같은 악보. 무엇이 있지. 무엇을 찾을 수 있지. 백지라고 해도 좋을 듯한 표현인데... 그만큼 마음에 모래만이 가득한 상태. 바람이 불면 이 모래가 흩날려 곧장 제 형태를 바꾸곤 하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형태가 바뀌어 버리는 사막. 그래서 누구나 다 다른 모습을 기억하는 그러한 사막. 사막 같은 악보. 이런 사막같은 악보가 쉽게 드러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노래를 부르는 사람 또한 제 마음을 드러내기 힘들다. 밖으로 표현하지 못해 안에서 안에서 메말라가는 마음.


이렇게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노래는 진정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일 것이다. 


그런데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슬픔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서 있는 사내 2'라는 시를 읽으며 어쩌면 이 사내와 같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슬픈 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 있는 사내 2


  쑥부쟁이 칡덩굴 얽히고설키며 철 따라 피고 지던 꽃들과 풀들의 흙을 밀어내어 논을 만들고 밭을 일구다가 꿈같은 속세의 끄트머리라고 당간을 세우고 금천을 넘게 하더니 어느날 불타고 무너져 내려 인의도덕을 서원하는 마당이 되더니 다시 부수고 그 자리에 고랑을 파고 씨를 뿌리는 전답이 되었으니 이 조화는 사람의 일인가 세월의 장난인가

  큰길 오가던 사람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고 후세에 비석으로 한을 달랜들 금 가고 마음 모서리 떨어져 나간 채 서 있는 저 사내의 삭은 가슴만 하겠는가


*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 


나호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문학의 전당), 2017년 초판 2쇄. 44쪽.


아마도 시인은 원주 흥법사지에 갔으리라. 거기서 느낀 점을 시로 썼으니, 시집에 작은 글씨로 *표로 장소를 알려주려 했겠지.


산에서 절로, 절에서 서원으로, 다시 서원에서 전답으로 바뀌었던 과정.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오고갔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곳에 서려 있을 텐데, 그것을 지켜보는 사내의 심정은 어떨까?


그 사내의 삭은 가슴에서 나오는 노래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 아닌가. 그런 노래, 듣고 싶은가. 아니 그런 노래는 불러지면 안 된다. 불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마음이 사막이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마음을 사막으로 만들어놓고, 그들로 하여금 슬픈 노래를 만들게 해놓고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들은 또 누구인가.


그런 자들로 인해서 슬픈 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왜, 슬픈 노래는 슬픔이 다 지나간 다음에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애도가 끝나야 그때서야 비로소 슬픈 노래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슬픈 노래가 사막 같이 변한 마음에 오아시스처럼 그 사람의 마음을 위안해주기 위해서는 슬픔이 지나가야 하니까. 그런 슬픔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하여 '삭은 가슴'을 지니지 않게 해야 하니까.


이 시집을 읽으면서 하염없이 슬픔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그럼에도 슬픔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히는 것이 아니라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되듯이, 그렇게 시집을 읽으며 희망을 찾는다.


           비가(悲歌)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불러지지 않은 그 노래는

슬픔이 불길처럼 흘러간 후에

강물보다 더 우렁우렁 눈물 쏟아낸 다음에

끝내 불러보지 못한 이름이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길을 지우고 난 후에

사막 같은 악보를 드러낼 것이다

슬픈 사람은 노래하지 않는다

외로워서 슬픈가

슬퍼서 외로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어디쯤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리는 듯

슬픈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부르는 그 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나호열,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시인동네(문학의전당), 2017년 초판 2쇄.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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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춘이라는 시인
하종오.조기조 엮음 / 비(도서출판b)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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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 시의 길이가 짧다고 시에서 느끼는 감흥이 적다는 말은 아니다. 짧은 시에서 번져오는 깊은 울림. 마음을 물들이는 시들. 그런 시들을 쓴 시인 서정춘.


짧게 쓴 시들만큼이나 시집도 많이 내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첫 시집이 28년만에 나온 것에 비하면 나머지 시집들은 아주 빠르게 나온 셈인데...


그는 평소 자신은 세 가지에서 짧다고 '삼단(三短)이라 했다는데,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시인 정 아무개의 말처럼 '극약 같은 짤막한 시'만 쓴다" (문인수, '지네-서정춘 전'에서. 29쪽)고.


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닐 정도로 가난했던 삶. 마부였던 아버지. 하지만 어린 시절 시에 반해 시집을 필사하면서 시 쓰기를 갈망했던 시인.


주소를 바꿔 투고를 하는 바람에(?) 신아일보에서 시로 당선이 되었다는 시인. 그 전에 용꿈을 꾸었다고... 신아일보에는 시조를 보내고, 동아일보에는 시를 보내려 했는데, 술을 많이 마신 바람에 두 작품의 주소가 바뀌었다는데.


이 책에 실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서정주의 심사평이 웃음을 자아낸다. 하아, 참... 이런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


'선자와 성명 중의 두 자가 같다는 우연한 사실 때문에 혹 있음직도 한 오해가 염려되지 않은 것도 아니나, 출중한 것을 그 때문에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당선자 서정춘 씨와 선자는 일면식도 없고 단 한 번의 서신거래도 없는 사이인 것을 먼저 여기 분명히 밝혀 둔다.' (157쪽)


이렇게 이 책은 이런 시인 서정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해서 후배 시인들이 기획해서 내었다. 1부에는 서정춘이 등장하는 시들을 - 와, 이토록 많은 시인들이 서정춘이란 시인에 대해서 시를 썼다니, 그의 짧은 시와 대조적으로 그의 영향력은 길고도 길구나!-, 2부에는 서정춘 시에 대한 해설을, 3부에서는 서정춘의 사진들과 서정춘의 시에 장사익이 작곡을 했다는 노래 악보와 당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던 기사 등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정춘의 연보가 실려 있는데, 이 연보가 그냥 연대기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전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되어 있다. 서정춘이라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이 연보에서 아버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피아노 최씨와 외팔이 장씨), 그는 외팔이 장씨를 통해 정지용, 백석 등의 시인을 알게 되고, 외팔이 장씨가 '너는 이미 시인'(172쪽)이라 했다고... 

 

서정춘이란 시인을 잘 모른다면 이 연보를 먼저 읽고, 2부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1부로 넘어가면 좋으리라. 


이 책에서 서정춘에 대한 이야기 중에 김성동이 한 말... 하, 이 정도의 시인이었단 말이구나, 서정춘이란 시인은.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목월이 있다."

  시단에 떠도는 말 듣고 이 중생이 말하였다.

  "북에 소월이 있고 남에 목월이 있다면 그 가운데 용래가 있다."

  다시 말하겠다.

  "평안도에 백석이 있고 충청도에 용래가 있다면 전라도에 정춘이 있다." (109쪽)


이 책을 읽으면 서정춘의 시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몇 권 그의 시집이 있지만,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시집들이 있다. 품절된 시집인데... 그러한 시집들이 다시 우리 곁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참에, 그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죽편'이란 시에 곡을 붙인 장사익의 노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노래의 1절과 2절 사이에 [죽편]의 첫 시인 '30년 전 - 1959년 겨울'이란 시가 장사익의 읊조림으로 들어가 있다. 장사익은 죽편이라는 시 제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여행'이란 제목으로 바꾸었는데, 인생은 여행인가? 검색하면 들을 수 있지만, 여기에 링크를 걸어둔다.


EBS 스페이스 공감 - 263회 장사익 - 여행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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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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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니, 어떤 무리에서 기피하여 따돌리거나 멀리함.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상실하여 비인간적 상태에 놓이는 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사람이 소외되었다고 하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권력을 쥔 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소외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 책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필에 가깝다고,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만민보 시리즈-두 권까지는 나왔는데, 그 다음에는 나오지 않은 듯. 그리고 이 책들은 절판이 되어 지금은 읽기 힘들어졌다. 세풀베다가 이 책에서 했던 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쉽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노회찬 재단에서 기획해서 책으로 나오고 있다. '6411의 목소리'로 대변된다- 비슷하다고 해도 좋을 듯)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스스로 권력에서 멀어진 사람들이다.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다.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위해, 환경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세풀베다의 다른 소설들도 이런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짧게 그 사람들 (때로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도 나오지만, 그 고양이는 세풀베다 작품인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의 주인공 고양이 소로바스다)을 소개하고 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사람들의 삶.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를 위해 사는 삶이 결국 자신을 위하는 삶이라는 것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


첫 이야기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발견한 문장이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는 문장. 죽어가면서 자신이 여기에 있었다고 외치는 사람. 그 사람은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외된 사람이 그 사람뿐이었을까? 또 강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소외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 문장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자각이, 그런 사람들이 잊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세풀베다는 이 책을 썼다.


왜냐? 이야기하는 게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러한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한, 그들은 소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문장 앞에 있음을 '그들 모두와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이 돌멩이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13쪽)고 세풀베다는 이 책의 첫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로 다음에 나오는 두 여자의 이야기, 칠레의 비극에서 살아남은, 자신과 동료를 끝까지 지킨 그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지하 감옥에서 처음 만났다는 두 여자. 이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나는 말하지 않았어.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이기지 못했어' (16쪽)이다. 심한 고문을 당했음에도 동료를 보호한 그들. 


25년 후 그들은 삶을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상처들이 바탕이 되었음을, 그들을 사랑스럽고 자랑스레 바라보는 세풀베다의 시선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1960년대의 꽃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여학생들 같았다. 사랑과 생각이 모두 반항적인 소녀들 같았다. 그들은 영혼과 희망을 함께하는 동료였다. 내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그들을 바라보았는지! 나의 영원한 소녀들을!'(19쪽)


어찌, 이런 사람들을 소외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을지언정 민중으로부터 또 역사, 진리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의 육체는 늙었을지라도 정신은 영원한 청춘이다. 이를 세풀베다는 찬미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짧은 이야기들이 마음을 울린다. 엄혹한 세상을 헤쳐나온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런 세계를 우리가 유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다. 눈에 보이는, 남 앞에 나서는 사람, 권력을 쥔 사람들보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필요했고, 또 우리를 소외되지 않게 했다. 


칠레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우리나라도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런 기록의 힘, 이야기의 힘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이 되고, 민중들이 소외되지 않고 주체가 되는 길이기도 함을 우리 역시 역사를 통해서 경험했다.


그럼에도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도 나온다.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남에게 휘둘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을 옛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면서 겪게 되는 민족 참상의 현실을 '잃어버린 섬'에서 보여주고 있다.


한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적으로 변하는, 그래서 결국 이웃 공동체가 파괴되고 마는 모습을 보여주는 '말리로시냐' 섬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권력자의 선동에 넘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소외다. 이런 소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삶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결코 이들은 소외되지 않았음을, 세풀베다의 이 책을 통해 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살아오고, 또 미래에도 계속 살아남을 것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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